'잠'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1.10.10 바보짓 6
  2. 2011.04.30 뇌우 9
  3. 2011.03.09 무사귀환 6
  4. 2010.12.08 어제 썼다 사라진 글: 꿈 4
  5. 2010.05.07 집에 왔다 8
  6. 2009.12.14 타락마을 엠티 후기 19
  7. 2009.04.23 잠이 보약 15
  8. 2009.04.03 강박증 13
  9. 2009.02.17 엄마와 TV 17
  10. 2009.01.09 악몽 9

바보짓

투덜일기 2011. 10. 10. 03:36

준백수처럼 종일 집에서 빈둥대거나 복닥거리는 날이 이어지다 보면 요일감각, 날짜감각이 사라진다. 그래서 굳이 날짜며 요일을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많지만 주말과 월요일은 그래도 비교적 확실히 안다고 자부했다가 어제 아주 바보짓을 했다.

새벽에 인터넷을 실행시키며 분명 한글날 기념임이 분명한, 구글의 한글 로고를 보았으면서도 이상하게 난 어제가 10일, 월요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말까지는 꼭 보내달라고 부탁받은 꼭지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주말까지 해달라는 말을 나는 월요일 출근 전까지 보내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침까지 눈에 불을 켜고 일을 마쳐 메일로 쏘아주고는 드디어 노곤한 몸을 눕혔다. 

훤히 밝은 날과 소음(아래층 개자식!) 때문에 여러번 뒤척거리다 겨우 잠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퍼뜩 눈을 떠보니 이미 오후였다. 원래 월요일은 조카네 가야하는 날이다. 부리나케 점심을 먹은 뒤 씻고 나서 커피는 조카네 가서 마셔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내가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자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오늘이 월요일이었느냐고, 일요일인 줄 알았다고 의아해했다. 요일 감각 없는 건 모녀가 똑같은지라 그러려니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골목을 후진으로 거의 다  빠져나갔을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전용으로 정해놓은 벨소리. 아 또 뭔가 싶어 이맛살을 찌푸리며 받아보니,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9일이라는 엄마의 전언. 못믿겠으면 휴대폰 날짜를 확인해보라신다. +_+ 확인해볼 것도 없이 민망해 하며 냉큼 그대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오래 전 어느 휴일에 자다말고 깜짝 놀라 회사에 지각한 줄 착각해 헐레벌떡 씻고 나서다 부모님께 깨우침을 받았을 땐 늦잠 못잔 게 억울해서 그렇지 온전히 하루를 공으로 벌은 것처럼 기뻤던 것 같은데, 어젠 남은 하루가 길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젠 휴일도 고스란히 일의 영역이 되고만 삶 때문인지 그저 우스꽝스러운 바보짓인 것만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그나마 엄마가 말려줬기에망정이지 조카네 집까지 가서야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황당하고 멍청이 취급을 받았을까. ㅋ 어쨌거나 나의 착각으로 일요일 아침에 보낸 메일을 보며 담당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모르겠다. 평소처럼, 요번에도 늦어서 미안하다고 서두를 달았는데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려나 어쩌려나. 으으. 창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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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우

투덜일기 2011. 4. 30. 05:45

토요일에 비가 꽤 온다는 일기예보는 들었지만 요란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릴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밤중부터 뒷베란다 섀시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매우 요란한 비가 내리며 간간이 천둥벼락이 쳐댔다. 천둥을 유독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닌데도 공연히 겁이 났다. 번개가 치는 순간 두꺼비집이 내려앉는 건 아닌가, 찌르르 벼락이 전선이나 케이블을 타고 들어와 컴퓨터를 태워버리는 건 아닌가 갖은 상상을 다 하느라 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멀리서 그르르릉 천둥의 전조가 시작되면 몸이 먼저 긴장을 했다. 그러다가 천둥이 치면서 내리는 비를 뜻하는 말이 뭐였더라, 뭐였더라 생각이 나질 않아 또 한참 정신 끄나불을 한 자락 풀어놓았다가 끝내 방금 떠올렸다. 그렇다. 뇌우(雷雨). 몇시간 만에 생각해낸 주제에도 기뻐하다 보니 빗줄기도 얇아졌는지 소리도 덜 요란하고 천둥번개도 잠잠하다. 그러면 뭐하나 온 새벽을 다 황망히 허비하고 나서 머리는 이미 멍해진 시간인 걸. 파랗게 밝아오는 새벽에 느껴지는 묵직한 피로감은 때로 쾌감일 때가 있다. 몸과 정신을 꽤 잘 쓰고 나서 마땅한 휴식을 취할 준비가 됐을 땐 그러하다. 그럴 때 이부자리에 누워 몽근한 잠에 빠져들면 온 세상이 내 것처럼 뿌듯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오늘은 아직 그런 행복을 느낄 자격이 없다. 멍해진 머리를 다시 바짝 조여야 한다. 어렵사리 뇌우 하나 떠올렸다고 기특해할 게 아니라 그걸 잊은 머리에 꿀밤을 먹여야 하느니라. 아, 입이 방정인가. 빗소리가 다시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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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귀환

투덜일기 2011. 3. 9. 20:01

어제 집에 왔다. 작년 여름 최단기간 입원이었다고 기뻐했던 것 같은데 요번에도 날짜상으론 얼추 같은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귀찮아서 지난 포스팅 찾아보고 싶지도 않지만.

이번엔 병실 운이 좋아서 2인실 옆 침대가 계속 비어 있는 덕분에 좁고 낮은 보호자용 간이침상 대신 나도 버젓이 환자용 침대에서 잘 수 있었고, 다들 정신적인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들만 모인 병동이다 보니 간호사들도 밤새 두어번 살짝 문만 열어보고 나가는 식이라 다른 때보다는 나도 훨씬 더 잘 잔 편이었는데도 나이 탓인지 체력 탓인지 어제 오후부터 오늘까지도 끼니 때만 빼곤 정신 못차리고 계속 잤다. 머릿속으론 밀린 일해야 하는데, 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몸이 늘어지는 걸 무슨 수로 막겠나. 일단 자고 보자, 배째라는 마음이 더 컸다.

5박6일간 좀 비싼 건강검진을 받은 셈 치자고 생각하기로 했지만, 지난주의 충격과 당혹감이 혹 착각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왕비마마는 거의 말짱해지셨다. 물론 몇 가지 약을 끊은 바람에 무릎 통증과 손발저림은 심해졌지만 일단 그건 원인도 치료법도 아는 병이니 차차 다른 약으로 대체하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건, 1년 가까이 복용해온 약들이 왜 새삼 이제와서 '충돌'을 일으켜 사람을 놀라게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의사들도 모르겠다는데 그걸 내가 어찌 알겠냐마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그나마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수확을 찾아본다면 없는 것도 아니다. 온갖 성인병을 지닌 종합병원 수준의 몸이지만, 결정적으로 왕비마마의 뇌와 심장은 나이에 비해 꽤나 건강한 편이란다. 방금 했던 말도 까먹는 기억력 감퇴 현상 때문에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만;;) 혹 치매 아니냐고 노상 전전긍긍하셨는데 큰 걱정을 덜었다. 입원 첫날부터 100에서 7을 계속 빼보라는 의사의 요구에 거의 거침없이 대답하는 왕비마마를 보며 나도 좀 놀랐다. 수맹인 나는 속으로 같이 계산해보면서 93에서 7을 빼면 얼만가 머리가 멍해지면서 통 답이 안나와 끙끙 앓았는데 말이다. 지금도 93에서 7일 뺀 답이 86임을 아는 건 몇번에 걸친 연습의 각인 효과이지 즉각 암산해서 나오는 답은 아니다. -_-; 마흔다섯 살 딸보다 셈을 더 잘하는 일흔한 살의 노모라니, 훌륭하지 아니한가. ㅎㅎ

어쨌든 집에 오니 좋다. 며칠 새 더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낼 기력은 아직 없지만 먼지 속에 뒹굴어도, 출판사에서 원고확인 전화 올까봐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속이 뜨끔뜨끔해도, 아무튼 집이 최고다. 집밥과 집잠이 이렇게 달디달다는 걸 나에게 깨우쳐주기 위해서 가끔가다 한번씩 왕비마마가 식겁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 설마 아니겠지? 병원에 있는 동안 발생한 디도스 공격으로 혹 내 컴퓨터 하드도 날아갔으면 어쩌나 살짝 고민도 했는데 기우였다. 하기야 모르긴 해도 그 사이 컴퓨터가 아예 꺼져 있었으니 공격을 하려야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그저 바짝 정신차리고 밀린 일을 하는 것뿐. 일하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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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에 포스팅했다가 이상스레 사라진 글을 얼음배님의 도움으로 찾았다. 시답잖게 끼적인 신변잡기 잡문이라도 기껏 써놓은 글이 없어지니까 마치 소지품 하나를 잃어버린 것처럼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는데, 이렇게 찾고보니 딱 분실물 회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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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순이 답게 꿈도 없이 (단순히 기억을 못하는 거라지만 암튼;;) 깊은 잠을 푹 자는 게 좋은데, 요샌 자고나면 뒤숭숭한 꿈이 기억난다.

아래층 똥개임이 분명한데 모양새는 셰퍼드인지 누렁이인지 모를 커다란 개한테 물리기 직전인 상황. 나는 놈의 머리통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얼어붙어 있다. 놈은 자꾸만 그 무서운 아가리를 벌리며 고개를 돌려 내 손을 물어뜯으려 하고, 나는 징징 울면서 개의 머리통을 놓지도 못하고 코앞으로 다가온 개 이빨에 아득했던 느낌. 그야말로 개꿈이다. 일주일도 더 지났는데 지금도 기억이 선명해 몸서리가 처지는 걸 보면 아래층 개에 대한 나의 공포가 어지간한 모양;;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길인데 자꾸만 난데없이 벽이 앞을 가로막아 쾅 부딪혀 나동그라진다. 거기서 꿈이 끝나면 좋으련면 카트라이더 게임도 아니고 어느새 멀쩡해진 난 또 페달을 밟고 있고 높은 시멘트 턱이나 벽에 또 온몸으로 부딪친다. 막 아파하며 계속 자전거 사고를 반복하다 마지막에야 비로소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이 나이에 키가 크려나, 쳇. 체인에 기름만 쳐놓고 가을 내내 단 한번도 못(안)타고 겨울을 맞은 느루에 대한 나의 죄책감이 불러낸 꿈이라고 자가진단을 내렸다.

장소는 학교. 환경미화 상태로 봐선 초등학교인 것 같은데 나를 포함한 온갖 나이의 학생들이 만들기 수업을 하다가 사이렌 소리에 복도로 나가보니, 새까맣게 전투경찰들이 몰려와 구둣발과 방패를 바닥에 찍으며 쾅쾅 소리를 내 겁을 주고 있다. 나는 소국(?) 한 줄기를 들고 미술관 복도 같은 곳으로 이리저리 달아나다가 전경을 피해 어느 책상 구석으로 숨어든다. 반대편에서 살금살금 내쪽으로 오려는 어린 학생들한테 움직이지 말라고, 그러다 다 들킨다고 화를 내다가 깨어났던가... 이 꿈은 어수선한 시국탓이렸다.

원고마감 때문에 30시간 계속 깨어있다가 시체처럼 쓰러졌던 어제 저녁에 잠시 눈을 붙였을 땐 그냥 계속 이리저리 쫓겨다녔다. 누가 쫓아오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달아나는데 배가 어찌나 고프던지. 뭘 좀 먹으면 다리 놀림이 빨라질텐데 싶어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도 식탐이라니. ㅋㅋㅋ

초절정 마감중이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블로그질은 줄곧 부지런히 하는 인간인데 일요일 새벽 난데없이 모니터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하드가 안 나간게 얼마나 다행인지!)
동생네 모니터를 떼와서 번역하던 파일을 옮기는 삽질을 해야했고, 노트북으로 작업은 가능했으나 어쩐 일인지 노트북은 인터넷선을 인식못하는 만행을 부렸다. 해서 어제 또 다시 동생네 모니터를 공수해 와야 했고, 오늘에야 비로소 급사죄와 함께 일부 원고만 쏘아주고는 시방 또 이러고 있다.

이참에 컴퓨터를 새로 살까도 생각했으나, 프로그램 깔고 파일 옮기고 어쩌고 하는 과정에 들일 시간이 아까워서 일단 점심먹고 나서 모니터나 하나 급히 사올 작정. -_-;; 요번엔 온라인으로 사고 택배 기다릴 여유도 없다. 잊지 말고 매일매일 원고 백업할 것.

마음이 이렇게 콩닥콩닥 바쁘니 개에 물리고 자빠지고 쫓기고 하는 꿈을 안 꿀 리가 있겠나.
설상가상 내일은 할아버지 제사다. 며칠 전에 친척분들한테 미리 죄다 연락해야 하는 임무를 잊고 있던 탓에 어제 오늘 어른들한테 전화로 계속 혼났다. 왜 하필 동생네는 또 이사를 가가지고 말이지. 아침 내내 주소와 길 설명하느라 문자를 수십통 날렸다.

아,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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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다

투덜일기 2010. 5. 7. 20:33

거의 1년만인 지난 일요일에 또 병원 들어갔다가 오늘 나왔다. 나 말고 왕비마마 때문에. ^^;
이번 입원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수술공포에 사로잡힌 왕비마마의 변덕에다 병원과 의사의 삽질까지 더해져 수술일정이 연기되질 않나, 입원예정일엔 아예 수술을 취소했다가 또 다시 날짜가 당겨 잡히질 않나... 지난 일요일에 병원들어가기 직전까지도 통 앞일을 알 수가 없더니만, 바로 다음날 수술, 그리고 5일만에 전격 퇴원, 역사상 최단기간에 간병무수리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기간이 짧으니 그간 쌓인 피로도 덜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간밤에 특히 잠을 설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짐정리 해놓고는 단잠에 빠졌다. 원래도 잠자기를 즐기지만 내방에 편히 누워 따뜻하게 자는 잠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깨어나고 싶지가 않을 정도였다. 집 나가면 고생이고 역시나 집이 최고다 싶긴 해도, 집에 돌아온다고 무수리가 해야할 일이야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묵지근한 몸을 일으켜 왕비마마의 저녁 진지를 챙기며 맥이 또 빠졌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질을 시작하니 비로소 정말 집에 왔다는 푸근한 느낌이 든다. 꼼꼼히는 못읽었지만 대강 이웃 블로그도 한바퀴 돌아보니 나머지공부라도 해서 따라잡아야 할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나의 부재가 짧았다는 의미다. 

암튼 무사히 집에 왔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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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엠티 날이 밝았다. 보란듯이 날씨는 쾌청. 타락마을 주민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비가 오거나 날씨가 나빠진다는 징크스는 몇몇 새 주민들의 영입으로 깨진 게 틀림없다. 담날에도 춥기는커녕 하늘에 거의 구름 한점 없이 맑고 영상의 날씨라, 명색이 겨울 엠티인데 눈 쌓인 풍경 한 번 못 본 건 아쉬울 정도였다.

약속시간에 맞춰 넉넉히 집을 나서려던 계획은 현관에 놓인 고구마 봉다리를 보며 쿠킹호일에 싸가지고 갈까 말까 또 다시 고민을 하며 무너졌다. 잠자기 전엔 분명 호박고구마가 아니라서 주민들에게 쿠사리를 먹을 게 뻔하다며 안가져가기로 해놓고선 또 망설이는 건 뭔지! 정말 우유부단한 인간... 그래도 고구마 고민으로 마루에서 얼쩡거리느라 하마터면 빠뜨리고 갈 뻔 했던 달력과 증정본은 잘 챙길 수 있었다.
암튼 약속시간 15분 전에 벌써 도착했다는 부지런쟁이 미아의 문자가 날아올 무렵 내 위치는 화곡동. 신호등 운만 잘 맞으면 정각에 도착할 것이라 오만한 자신감을 품었으나 그건 오산. 김포공항에 들어가서도 이마트 찾아 헤매느라 공항을 다시 한바퀴 돌아야 했으니 일행을 만났을 땐 이미 10분 지각한 시간. 된통 키드님의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으나, 다행히 더 늦게 오고 있는 벨로 때문에 무사히 넘어간 듯.
이번 엠티를 기회로 <홀로서기>를 강요받게 된 키드님이 적어온 쇼핑 목록에 따라 각개전투를 하듯 순식간에 쇼핑을 마치고 강화도로 출발한 시간이 얼추 세시 반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강화도라고는 하지만, 약도상 강화대교 건너자 마자 나타나는 초입. 김빠지게 30분 만에 도착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으나 그래도 1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문제는 인간 네비게이션을 자랑할 때 필수인 약도 메모지를 집에 두고 온 것. 그래도 강화도는 여러번 가봤고, 비교적 간단한 약도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는 듯 해 잘난 척 앞장을 섰다. 내 기억으론 <강화대교 지나 강화 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 계속 직진하다가 인산저수지 앞 횡단보도에서 우회전. 바로 목적지>였다. 내 기억에서 한 가지 빠진 기점이 있었으니 바로 <안양대학교>. 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한 건 좋았는데 중간에 삼거리가 나오며 여러 관광지 표지판이 적혀 있어 잠시 머뭇대느라 시뻘건 노선버스 아저씨한테 길 막았다고 빵빵 위협 구박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키드님과 파피의 문자 조언으로 그만하면 선방했다.

다락방까지 갖추어져 있는 펜션은 꽤나 흡족. 안에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러나 이 지나친 난방은 밤새도록 몇몇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으니... 으으으) 순식간에 과자 몇봉지와 귤을 까먹으며 저녁 먹을 시간을 기다린 우리는 놀랍게도 손이 빠르신 키드님의 양상추와 오이 씻기의 신공으로 <먹고 마시기> 준비를 일사천리로 끝냈다. 반드시 <강화도 호박고구마>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마트에서도 고구마를 안 사고 근처에서 조달하기로 했던 우리의 염려 또한 키드님의 수완으로 해결되어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깔끔하게 제공받았으며, 홀로 고기 굽고 자르고 소금/후추 뿌리는 솜씨까지 모두를 만족시켰으니 그의 홀로서기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대는 하산하시오~.

약간의 문제는 그래도 겨울이라고 쌀쌀한 날씨에 얼른 방으로 돌아와 시작된 2차 음주 자리부터 시작된 듯하다. 연일 이어진 야근으로 피로가 쌓인 벨로는 차안에서부터 틈틈이 눈을 붙이더니 방에 들어와서는 아예 소파에 누워 맥을 못추며 사방에 잠가루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피곤벨로가 초저녁 내내 눈을 반짝이며 깨어있던 순간은 달력 뽑기 이벤트와 타락마을 싼타 키드님의 선물공세 때 뿐이었다. 다크호스로 기대하던 지다님도 배가 아프다며 이불을 배에 두르고 누워 술마시기 보다는 아이팟과 놀기에 더 흥을 보이질 않나, 이미 이전 엠티에서 구토키드의 별명을 습득한 키드님도 초반부의 강세가 급격히 기울며 11시도 되기 전에 살짝 취해 같은 질문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질 않나, 기대주 파피 또한 술집에서 마실 때는 강해도 엠티에선 은근히 약하다며 일찌감치 쓰러질 것을 예고했으니, 이번 엠티를 위해 집에서 간간이 캔맥주로 미리 간을 단련해온 나로서는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벨로를 엠티 내내 <잠만 처자게> 할 수는 없다며 파피가 불끈 주먹을 쥐고 달려나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커피믹스 세 통을 공수해 와 얼른 타먹인 덕분에 뒤늦게 커피파워로 버티기 시작한 벨로를 마구 독려하며, 나는 은근 다크호스 미아와 파피를 술동무 삼아 최소한 2, 3시까지는 술자리를 이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무렵 구토키드는 계속 들락날락 홀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다님은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취침 중.
허나 이미 세력을 장악한 잠의 기운은 한 사람씩 쓰러뜨리기 시작하였으니, 벨로의 커피파워를 깨워놓은 파피가 제일 먼저 자리에 눕고 잠깐 눈을 붙이겠다던 미아도 그 옆에 드러눕고, 남은 사람은 바깥 계단에 홀로 앉아 괴로워하는 키드님과 치뻗는 커피파워를 주체 못하는 벨로와 나뿐.
"실망이야, 실망이야, 다 실망이야"를 외치고 있던 나도 어지간히 취해 있던 터라 키드님을 집안으로 들여 놓고는 자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 사이 초인적인 커피파워를 발휘한 벨로는 재빨리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해놓지를 않나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나의 잠자리는 키드님이 예고한 대로 격리실 다락방. ^^; 가파른 계단을 한발씩 올라가 누운 건 좋았는데, 아 곧이어 느껴지는 타는 목마름. 아슬아슬 다시 계단을 내려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한 컵 떠가지고 다시 위로 올라가보니 실내 기온이 무려 29도였다. 하필 내 머리맡에 있던 온도계는 계속해서 틱, 틱, 보일러 작동음을 알려주고, 온도를 내려도 여전히 방은 숨막히게 덥고, 목은 마르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생수병에 물을 잔뜩 담아갖고 올라와 자다 깨서 마시고 또 자다 깨서 마시고... 자는둥 마는둥 괴로워하며 문득 깨달은 것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작게 코고는 소리! 아... 나 말고도 누군가 살살 코를 고는구나 누워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무 더워서 다락방 창문을 좀 열어놓고 또 깜빡 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막 떠드는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났다. 아직은 깜깜한데 밖에서 일렁이는 손전등 불빛. 건너편 펜션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잔뜩 쏟아져나왔다. 시간은 겨우 5시. 미친 인간들이 새벽낚시라도 가는 듯... 다시 드러누웠지만 여전히 방은 덥고 머리는 아프고 속은 괴롭고... 아 왜 그리도 과음을 했던고. 후회막급이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또 다시 나를 깨운 건 난데없는 알람. 파피가 혼자 상경을 시도해보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피야, 가지마." 미아의 간청이 들리고 그래도 가겠다고 나서는 듯한 파피. 아직 날도 새지 않은 캄캄함 속에 어딜 가겠다는 건지! 나는 또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파란 털모자를 쓰고 굳이 먼저 가겠다고 나서는 파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 혹시 버스 못 타면 다시 와라. 분홍색 곰돌이 탈을 뒤집어 쓰고 자고 있던 키드님도 벌떡 일어나 파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다시 눈을 떠보니 드디어 아침. 미아와 파피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키드님은 간간이 일어나 밖에 나갔다 와선 다시 끙끙대며 앓고... 어라.. 파피 안 갔네? 그제야 내가 손을 흔들어주었던 파피가 못보던 새파란 모자를 쓰고 있었고, 키드님의 분홍색 곰돌이탈도 떠올랐다. 그게 꿈이었구나. 키키키. 하지만 얼굴과 뱃속은 웃을 형편이 아니었다. 으으윽 머리아파~~

아침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깊은 잠을 자면 금방 나아질 것 같은데 이미 날은 밝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소음... 부지런쟁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아침까지 챙겨먹었지만 나는 슬며시 날아드는 라면국물 냄새도 거북할 정도.. 뇌와 두개골이 따로따로 출렁이는 느낌이었다.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극심한 숙취인지. 어휴... 생각해보니 제주도는 <여행>이라 밤마다 몸을 사렸고, 이토록 음주에 매진한 타락마을 엠티 경험은 처음이었다. 키드님을 제외하고 엠티 경력이 꽤 되는 다른 분들이 왜 전날밤에 몸을 사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몸을 안 사렸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가장 극심한 숙취에 시달린 키드님과 나도 다음번엔 확실히 살살 달리겠지.

지다님의 젤리카메라에 찍힌 담날의 몰골은 아마도 십수년전 과음 후 새벽 백사장을 달린 뒤끝에 온종일 팅팅 불어 있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타락마을 엠티 담날은 다들 그렇게 빌빌대다 암것도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전통인가요? 멀미지다님 때문에 크게는 바라지 않았지만, 12시 전에 체크아웃하면 귀가하기엔 너무 일러 외포항에 가서 석모도 가는 배라도 타고 갈매기한테 새우깡주기 같은 것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었음(물론 나는 갈매기 무서워서 새우깡 주는 거 싫어하지만!). ㅋㅋ 그런데 굳이 친절 베풀겠다며 배웅 나온 아저씨가 경치 좋은 해안도로로 잠시 돌아서 귀경하라는 데도 단박에 거절하는 타락마을 주민들! 다시 출발점에 일행들을 내려주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무려 2시. 나의 엠티 역사상 가장 빠른 귀가시간이었다. 

구구절절 쓸데없이 길게 썼지만, 타락마을의 1박2일 엠티를 한 줄로 요약하면 맛난 고기와 술먹고 수다떨다 꽥.
 ^^; 하기야 엠티가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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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

투덜일기 2009. 4. 23. 15:52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불면증 탓에 며칠 또 제대로 잠을 못자고 빌빌댔다. 온갖 병균들은 그런 때를 귀신같이 간파하고 달려들기 때문에 목감기가 시작된 건 그러려니 했는데, 그제어젠 어쩜 야속하게도 단 한순간도 잠들수가 없는지 기가 막힐 정도. 경험상 그럴 땐 몸과 정신이 더 못 버티고 완전히 뻗어버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마침 출판사 갈 일도 있겠다 안 어울리게 어젠 아침부터 나를 못살게 굴었다. 화분에 물주고, 청소기 돌리고, 국도 미리 끓여놓고, 강건너 출판사 가서 점심먹고, 상담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보고, 정민이 자전거 타는 거 졸졸 따라다니고(행여나 느루 망가질까봐ㅠ.ㅠ), 저녁 해먹이고, 영어수업하고, 잠깐이지만 조카들과 몸을 쓰며 놀아주기까지. -_-;
늦은 밤이 되자 정말 드러누우면 최소한 열두시간은 못일어날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시체처럼 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중간중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깨긴 했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아주 푹 잘 수 있었고 작정한 김에 잠이 깨도 다시 잠을 청해 까무룩 또 잠들 수 있었다. 그토록 달콤하고 행복한 잠이 왜 간간이 나를 버리는지 참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어제 아침엔 온 얼굴의 모공이 분화구처럼 자라고 하얀좁쌀 같은 여드름이 돌연 대여섯개나 돋아 <나 잠 못잤음>이라고 사방에 광고하는 듯한 시커먼 얼굴이라 뭘 찍어발라도 둥둥 뜨더니, 하루 푹 자고 일어난 오늘 얼굴은 세수도 안했는데 다시 뽀얘졌고 뾰루지도 큰것들 빼고는 다 자취를 감췄으며 목도 덜 아프다. 참 놀라운 잠의 효력. 밥심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뭐니뭐니해도 잠이 보약이다.
가끔 잠이 달아나는 건 내가 보약을 불신하기 때문일까? 내가 불신하는 건 원래 뜻대로의 <보약>이 아니라, 발로 밟다가 보낸 중국산일지도 모를 온갖 약재들을 넣고 푹푹 끓여 뜨거울 때 비닐팩에 넣어(분명 환경호르몬 나올거다) 포장해주는 <요즘 보약>일 뿐, 옛날처럼 한약방에서 하얀 종이에 하나씩 담아 접어준 좋은 약재(지리산 같은 데서 딴!)를 들고와 집에 와서 약탕관에 넣고 온종일 부채질해가며 달인 진짜 보약이라면야 나도 벌컥벌컥 마셔줄 수 있단 말이다! 나에게 보약잠은 분명 그런 정성으로 달인 훌륭한 치유제이거늘 왜 자꾸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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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

투덜일기 2009. 4. 3. 17:33

내가 완전히 강박증 환자라는 얘기는 아니고, 사람마다 약간씩 강박증에 가깝게 신경쓰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강박증은 좀 센 말이고 그저 염려증 정도가 적당하려나.
나도 몇가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부분이 있다.

첫번째는 손씻기. 볼일을 보고나서 손을 씻거나 뭔가를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밖에 나가선 손 안씻고 밥도 잘 먹으면서 집에 있으면 커피 한잔을 마시려해도 먼저 손부터 씻고 있다. 문제는 그냥 나만 그러고 살면 되는데, 온종일 엄마한테 손씻으라고 잔소리 하는 것. +_+
울 엄마는 예로부터 전쟁을 거쳐 물 길어 먹던 세대를 오래 살았던 지라, 웬만해선 손을 안씻으신다. ㅋㅋ 씻으라고 잔소리 하면 물 묻히는 시늉만 하시는 정도. 꼭 <비누질> 하시라고 덧붙여도 손씻는데 30초도 안걸리나보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손을 너무 자주 씻는다고 타박이다. 으휴.
그치만 손만 잘 씻어도 감기에 걸릴 확률이 반으로 준다는데!

두번째 염려증은 컴퓨터가 어느 순간 망가져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
거의 컴맹인지라 아주 가끔 <치명적인 오류> 어쩌구 하는 글귀를 볼 때면 겁부터 난다. 최근 10년동안 두번, 컴퓨터가 망가진 적이 있었다. 처음 망가졌을 땐 아무 대책없이 모든 파일을 다 날리고 복구도 하지 못해 새 컴퓨터를 장만하며 정말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컴퓨터 수리를 하러 온 기술자의 실력부족 탓이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이미 엎어진 물. 그래서 옛날 초기에 작업한 책들은 원고가 하나도 없다. 그나마 두번째로 컴퓨터가 이상해졌을 땐, 일부 파일을 복구해주어서 너덜너덜해지긴 했어도 자료를 얼마간 건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컴퓨터에 든 자료를 날릴까봐 염려하면서도 그간 백업을 해놓는다든지 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 섹스앤더시티에서 캐리가 노트북이 망가져 원고를 모두 날리고 전전긍긍하는 에피소드를 봤을 때부터, 나도 백업해두는 습관을 들여야한다고 생각은 오래 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나마 노트북이 생긴 뒤로 usb로 간간이 공유해돈 파일이 있긴 해도 체계적인 백업은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웠다. 원고를 날릴까봐 늘 불안에 떨면서도 외장하드를 사야지 사야지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실천에 옮긴 게 불과 지난달이다. 그런데 그렇게 죄다 복사해놓고도 여전히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외장하드도 에러나면 어쩌나, 이러면서. +_+

세번째 염려증은 매사를 의심하고 걱정하는 나의 태도 자체다.
오늘도 교정지를 퀵 아저씨에게 보내며, 마구 불안했다. 이미 내 머리속에선 퀵서비스 아저씨가 요리조리 복잡한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다 사고가 나 심하게 다치고 상자에 든 원고는 어디론가 내팽개쳐지는 장면이 연상되고 있었다. 켁. 물론 퀵서비스며 택배로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은지 몇년동안 그런 사고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도!
조금전엔 엄마가 동네 친구의 부추김을 받아 뒷동산 산책을 가셨는데, 엄마가 돌아오기까지 나는 계속 부실한 다리로 언덕을 오르다 나동그라져 구급차를 부르는 상황에 놓인 엄마의 모습이 자꾸 상상돼서 안절부절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모시고 산책나가는 건 또 싫다. -_-;
노파심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점점 실감하는 나이가 된 겐가. 젠장.
요 며칠처럼 잠을 부실하게 자면 확실히 쓸데없이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도 같다. 
그저 잠이 보약이려니 생각하고 오늘은 푹 좀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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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TV

삶꾸러미 2009. 2. 17. 00:45

늙은 엄마는 언제나 TV를 틀어놓고 잠이 든다. 그래서 공식적인 딸의 일과는 늘 엄마 방의 TV를 끄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너무 일찍 확인해서는 곤란하다. 엄마가 선잠이 들었을 때 TV를 끄면 퍼뜩 깨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밤새도록 TV를 틀어놓고 주무시게 내버려둘 수도 없다. 한쪽 귀도 어두워져 여간 큰 소리로 틀어놓는 것이 아닌 소음 때문에 엄마가 반드시 요란한 꿈을 꾸다 깨어나기 때문이다. 잠의 질은 엄마의 우울증세를 좌우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지표이므로 딸은 엄마의 잠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TV를 끄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자정 이후. 당연히 딸이 먼저 잠들어선 안된다. 딸이 올빼미 체질인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다. 간혹 몸이 아프거나 며칠 밤샘 뒤끝이라 시체처럼 늘어져 먼저 잠드는 날이 있더라도 딸은 중간에 본능적으로 깨어나 엄마방으로 건너가 TV를 끈다. 피곤하여 먼저 잠들 터이니 오늘만은 TV를 틀어놓지 말고 주무시라고 신신당부를 해보아도, 엄마는 좀처럼 TV 없이 잠들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기운이라지만 딸이 보기엔 시끄럽게 TV를 틀어놓아야 잠을 자는 엄마가 더 신기하다. 딸은 잠을 자려면 반드시 사방이 조용하고 어두워야 하는데. 반대로 엄마는 너무 조용하고 어두우면 잡생각이 들고 무서움이 밀려와 잠들 수가 없단다. 사실 엄마는 홀로 잠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딸과 매일 동침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남편 사별후 처음 몇달은 엄마를 걱정한 딸이 실제로 같이 자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누가 옆에 있어야 코를 골며 깊은 잠을 자는 엄마와 달리 예민한 딸은 누가 옆에 있으면 결코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결국 잠자리는 예전처럼 각자의 방으로 나뉘었지만, 엄마는 잠자리 친구 TV마저 포기하진 못한다. 
매일 똑같은 필름을 상영하듯, 비슷한 시간에 안방으로 건너가 홀로 떠들어대는 TV를 끄고, 코고는 엄마의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고 나오는 딸의 마음은 언제나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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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투덜일기 2009. 1. 9. 06:38
이상한 불면이 또 찾아오는 바람에 이틀 꼬박 예민하게 날선 신경으로 지내야 했는데 
어제 저녁엔 고맙게도 밀린 잠의 공격을 받았다.
잠을 몹시 즐기는 사람이지만 며칠만에 빚 독촉 온 채권자처럼 가혹하게 찾아온 잠의 경우엔 사실 별로 편안하질 않아서 이런저런 꿈을 많이 꾸게 된다. 깜짝 놀라 까무룩 깨어났다가 스르르 다시 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꿈을 연속적으로 꾼 것 같은데, 결국엔 확연한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에 소스라치며 깨어나 더는 잠이 오질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끔찍한 꿈도 아니건만, 꿈속의 나는 너무도 괴로웠고 깊은 절망감으로 숨을 헐떡였던 것 같다. 현실에서도 가끔 맞닥뜨리는 주차장의 두려움이 꿈속에서도 나를 괴롭혔는데, 우리나라에선 잘 볼 수도 없는 드넓은 주차빌딩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차를 찾아 헤매도 끝내 내가 세워둔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동차 열쇠를 손에 들고 끊임없이 사방을 향해 자동열림 단추를 누르며 혹시나 비상등을 반짝이는 자동차가 있는지 살피며 층층이 주차빌딩을 돌아다니던 꿈속의 나는 호흡곤란을 느끼며 울부짖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좁고 굽은 통로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내려갈 때마다 아득한 현기증을 느낀다. 건물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폐쇄적인 느낌도 싫지만 드넓은 지하 주차장에 고만고만한 생김새로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제대로 차를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그러니까 차를 세워둔 곳을 까먹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공간지각력이라고 하던가. 평면 도형의 좌우를 바꾸고 회전시켜 놓은 모양을 찾아내거나, 입체 도형 조각을 조립하여 특정한 형태를 만드는 아이들의 놀이를 대할 때도 나는 언제나 막막함을 느낀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능력이 제각각이듯 공간지각력이 크게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어렵사리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본 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이미 미로에 내던져진 실험용 쥐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할 수가 없다.
실제로 주차 위치를 찾지 못해 오래도록 미친듯이 드넓은 주차장을 헤맨 적도 있었다. 실내 놀이공원과 백화점이 연결된 대형 쇼핑몰에 처음 차를 몰고 갔을 때의 일이었다. 차의 위치를 기억해둔답시고 제 나름대로 기둥에 그려진 주황색 동물 모양을 알아두긴 했지만 나중에 지하주차장에서 한 시간 넘게 자동차를 찾아 헤매다 주차장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자 형광색 모자를 쓴 주차요원은 딱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코끼리 주차장 면적만 해도 수백 평이 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입구도 여러 군데라 기둥에 표시된 글자와 숫자를 모두 알아 놓으셔야 합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되풀이 하며 주차요원은 짜증스럽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친구와 미친듯이 지하주차장을 헤매던 그날의 기억은 그 쯤에서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분명 자동차를 찾긴 찾았을 터인데...
그 때의 낭패를 경험삼아 복잡하고 넓은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울 땐 기둥에 적힌 번호와 글자를 어디에든 메모해두지만, 막연한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면 메모해둔 내용도 소용이 없다. 'A동 라06'이라고 적힌 메모를 빤히 보면서도 엉뚱하게 B동 지하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하주차장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자동차와 함께 논리적인 사고도 삼켜버리는 미지의 검은 공간.
자주 다니는 대형 할인매장이나 대학병원의 지하주차장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 출입구가 빤히 보이고 미로 같은 구획도 없어 헤맬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나선형 진입로로 빨려들듯 깊이 뚫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익사자가 된 느낌으로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그나마도 차에 동행이 있을 땐 괜찮지만 혼자 운전할 땐 증세가 더욱 심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 일찍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불러온 꿈인 모양이다. 아무리 자주 다녀도, 본인이 환자가 아니어도 병원과 지하주차장의 결합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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