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TV

삶꾸러미 2009. 2. 17. 00:45

늙은 엄마는 언제나 TV를 틀어놓고 잠이 든다. 그래서 공식적인 딸의 일과는 늘 엄마 방의 TV를 끄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너무 일찍 확인해서는 곤란하다. 엄마가 선잠이 들었을 때 TV를 끄면 퍼뜩 깨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밤새도록 TV를 틀어놓고 주무시게 내버려둘 수도 없다. 한쪽 귀도 어두워져 여간 큰 소리로 틀어놓는 것이 아닌 소음 때문에 엄마가 반드시 요란한 꿈을 꾸다 깨어나기 때문이다. 잠의 질은 엄마의 우울증세를 좌우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지표이므로 딸은 엄마의 잠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TV를 끄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자정 이후. 당연히 딸이 먼저 잠들어선 안된다. 딸이 올빼미 체질인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다. 간혹 몸이 아프거나 며칠 밤샘 뒤끝이라 시체처럼 늘어져 먼저 잠드는 날이 있더라도 딸은 중간에 본능적으로 깨어나 엄마방으로 건너가 TV를 끈다. 피곤하여 먼저 잠들 터이니 오늘만은 TV를 틀어놓지 말고 주무시라고 신신당부를 해보아도, 엄마는 좀처럼 TV 없이 잠들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기운이라지만 딸이 보기엔 시끄럽게 TV를 틀어놓아야 잠을 자는 엄마가 더 신기하다. 딸은 잠을 자려면 반드시 사방이 조용하고 어두워야 하는데. 반대로 엄마는 너무 조용하고 어두우면 잡생각이 들고 무서움이 밀려와 잠들 수가 없단다. 사실 엄마는 홀로 잠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딸과 매일 동침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남편 사별후 처음 몇달은 엄마를 걱정한 딸이 실제로 같이 자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누가 옆에 있어야 코를 골며 깊은 잠을 자는 엄마와 달리 예민한 딸은 누가 옆에 있으면 결코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결국 잠자리는 예전처럼 각자의 방으로 나뉘었지만, 엄마는 잠자리 친구 TV마저 포기하진 못한다. 
매일 똑같은 필름을 상영하듯, 비슷한 시간에 안방으로 건너가 홀로 떠들어대는 TV를 끄고, 코고는 엄마의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고 나오는 딸의 마음은 언제나 묵직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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