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9.05.29 봄소풍 5
  2. 2019.05.24 산후 우울증 4
  3. 2019.05.17 유전이면 어쩌나 6
  4. 2019.05.09 엄마의 우울증 4
  5. 2016.12.19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5
  6. 2016.03.07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2
  7. 2015.03.23 필리핀 동전 10
  8. 2014.07.08 종교인이 문제다 10
  9. 2013.09.27 빛치료기 8
  10. 2013.09.24 친절한 옆집 할머니 5

봄소풍

아픈 손가락 2019. 5. 29. 11:04

매달 셋째 주 화요일, 엄마는 고교동창들과 만나는 점심 모임엘 나가신다. 초창기엔 열댓 명쯤 되었다던 모임 인원은 이제 6-7명으로 줄어들었다는데 그래도 80세를 앞두었거나 지난 할머니들이 매달 꼬박꼬박 모인다는 건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건강하시단 뜻이니까.

모교의 첫 글자와 벗友자를 넣어 '신우회'라는 이름도 있는 이 모임은 해마다 봄엔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게 전통이다. 이른바 봄놀이 꽃구경. 벚꽃이나 튤립, 장미가 피는 철에 예쁜 꽃도 보고 미술관 음식점에서 점심을 사드시는 형태였다. 올해는 지난 4월에도 벚꽃보러 가봤으나 음식점에 마땅히 먹을 게 없더라. 그러니 '각자 먹을 것을 간단히 싸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요즘 살짝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임에 내심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엄마는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는 짜증을 냈다. 4월에도 갔는데 대공원엘 왜 또 가? 그리고 사 먹으면 간단할 걸 무겁게 왜 도시락을 싸오라고 그러냐고. 건강할 땐 절에 가야하는 볼일을 제끼고서라도 꼭 모임에 나갈 정도로 엄마에겐 우선순위가 높고 중요한 행사지만, 심신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엄마는 또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신다. 

귀찮아서... 자격이 없어서(무슨 자격?)... 친구들에게 민폐라서... 창피해서... 멀어서... '그것들' 잘난 척 하는 꼴 보기 싫어서.. ㅠ.ㅠ  그런데 요번엔 도시락 핑계를 댈 참이었다. 모임에 빠지고 나면 또 얼마나 아쉬워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하는지 알기에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상태가 아주 심해 불안하면, 내가 먼저 엄마 친구분들께 연락해 양해를 구하기도 하지만 요번엔 기분전환 삼아서라도 나들이를 성공리에 다녀와야 올 봄을 그럭저럭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방에서도 다 들리는 엄마의 통화 내용을 파악한 나는 슬쩍 떡밥을 던졌다. 엄마 도시락 뭘로 싸드릴까? 깁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와, 완전 봄소풍이네. 진짜 부럽다.

정말로 모임에 나가기 싫었다면 엄마는 다 싫다며 거부의 몸짓으로 침대에 드러누우셨겠지만 ㅎㅎ 왕비마마의 선택은 샌드위치였다.  근데 너 귀찮을까봐 미안해서 그러지... 말꼬리를 흐리는 엄마에게 염려 말라고 나는 큰소리를 쳤다. 샌드위치가 제일 쉬워! 에그샌드위치 괜찮지? 재료도 집에 다 있고, 식빵만 사면 돼!

소풍 전날 달걀과 감자를 삶아 다지거나 으깨고, 양파와 오이를 채썰어 소금에 절여 꼭 짠뒤 마요네즈를 넣어 일단 밤에 샌드위치 속을 만들어놓았다. 그러고는 식빵과 초콜릿을 사러나간 내게 어디 갔느냐고 엄마 카톡이 왔다. 노상 툭탁대는 엄마와 나는 말로 잘 못하는 미안해, 고마워 따위의 말을 그나마 카톡으로 주고받는다. 평소 막 반말로 떠들어대는 나도 카톡에선 약간이나마 더 유순해지는 듯.. ㅠ.ㅠ

다음날 아침 마요네즈와 홀머스타드를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꺼내먹기 좋게 유산지에 싸서 도시락을 완성했다(아침에 바삐 서두르느라 인증샷 찍는 걸 까먹음. 아까비;;). 과일도 참외 오렌지 포도 골고루 통에 담고, 평소 금기 음식인 초콜릿도 간식으로 챙겨 물과 함께 베낭에 잘 넣어드렸다. 어린 시절 소풍가는 날 김밥과 과자를 싸주던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뭔가 뭉클하고 뿌듯한 기분. ㅎㅎ 어쩐지 기분이 묘해서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드세요.. 했더니 엄마 왈. 싸우긴 왜 싸워? 각자 자기 꺼 먹으면 되지. ㅋㅋ

친구들에게 민폐라고 염려하는 건 길치인 울 엄마가 곧잘 모임 장소로 가다가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거나 만남 장소를 헷갈려 지각하는 일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 헤매는 울 엄마를 친구들이 데리러 나오시기도... 그런 날이면 엄마는 당신이 길치가 된 건 맨날 내가 차로 모시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너무 편해서 호강에 겨워 요강에 X싸는 셈이라고, 내 탓과 함께 습관처럼 자책을 하신다. 과천 서울대공원 가는 길은 환승 가까운 문 번호까지 하도 메모를 자주해 외울 지경이구만!

째뜬 느릿느릿 행동이 굼뜬 엄마가 한번쯤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는 상황까지 대비해서 요번엔 10시를 넘기자마자 노친네를 집에서 내몰았고, 무사히 대공원역에 도착한 엄마는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 너 때문에 너무 일찍왔어! 12시까지 30분이나 남았잖아! 얘네들 언제 오냐...  

만남의 광장에서 잘 기다려보시라고, 분명히 엄마 친구들 15분 안에 죄다 나타나실 거라고 장담하곤 전화를 끊었는데.. (엄마가 모임에 지각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12시 땡 하면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늬 엄마 집에서 몇시에 나가셨니? 엄마 친구들은 다 일찌감치 나온다는 의미!) 아니나 다를까 10분쯤 지나 카톡이 왔다. 친구들 만났어. 다들 와서 앉아있었네... 그럼 그렇지! 작전 성공. 

미술관 앞에서 도시락부터 까먹은 뒤 수다를 떨다가 장미원을 돌아보고 오셨다는 엄마의 봄소풍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와 근래 드물게 만보도 넘게 걸었다며 허리 아프다고 엄살은 심했지만, 본인도 대장정을 완수한 것이 나름 뿌듯하신 듯 그날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곤하게 주무셨다.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자도 악몽에 시달리기 때문에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는데, 일단 하루라도 푹 자고 나면 바로 어느 정도 컨디션이 회복된다.  나들이 가서 햇빛을 많이 쪼인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됐을 테고...

엄마가 봄소풍을 다녀오신 건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다. 이후 2, 3일은 '너무' 피곤하다며 침대와 물아일체로 보내는 날이 많았고 그러려니 봐드렸는데, 주말까지도 계속 집밖에 나가기 싫다는 핑계로 절에도 안 가시고 각종 수업도 빠지는 터라 순풍이 불던 모녀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자꾸 누워만 있으면 근육 풀려서 더 못움직이신다고요!! 버럭버럭 나는 또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당신의 끼니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외출한 딸에게 시위를 벌이고... 에효... 어렵사리 이렇게 또 5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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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아픈 손가락 2019. 5. 24. 00:33

울 엄만 어쩌다 조울증 환자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딸로서 나의 최대 의문이다. 엄마 본인의 말로도, 외가 친척들의 이야기로도 가족력은 없다는데 엄만 대체 왜?

이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얻게 된다면, 나 역시 조울증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 잠재적 환자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공포도 얼마간은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는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에게 슬며시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가신지 벌써 십수년이 된 외할머니는 엄마가 마음의 병을 얻은 이유를 '너무 착해서'라고 믿으셨다. 울 엄마가 바보같이 너무 착해서 할 말 못하고 참다가 병이 났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외할머니에겐 못되 처먹은 시누이였고 울 엄마에게도 아동학대에 가까운 가사노동을 시켰던 고모할머니는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 탓을 했다. 친정 살땐 그래도 웬만히 살았는데 시집가서 보니 시아버지는 엄하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 맏며느리로서 남편과 함께 12식구를 먹여살리느라 고생한 탓이라나. 그래서 울 엄마가 아프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고모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늬 아버지가 착해 빠져가지고 능력이 없어!) 친가 식구들을 욕했다.

그럴법한 이야기지만 나로선 또 의문이 생겼다. 나의 부모님은 고3때 동네 친구로 처음 만나 햇수로 8년이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1960년대 당시로선 꽤 드문 연애결혼파다. 애인이 대학 입시를 거쳐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는 동안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가 결혼을 결심했을 땐 예비 남편감의 가난과 8남매의 장남이라는 무게도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어려서 내가 아빠의 어떤 점에 반해서 가난한 집 8남매 장남에게 시집을 왔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면, 엄만 장녀라서 그런지 맏며느리란 존재가 좋아보였다고 했다. 물론 막연한 상상과 실체는 엄청 달랐겠지.

하여간 예상 밖에 고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너무도 힘겨웠다면 결혼 직후 발병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검찰청 공무원이었던 엄마는 나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만에 첫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다시 복직했고,  연년생인 남동생을 낳은 뒤에도 곧바로 복직해 별일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문제는 나와 4살 터울인 막내동생을 낳고나서부터였다.

나이 많은 우리 할머니 대신 엄마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쫓아다니며 학부형 노릇을 해주었다는 넷째 고모와 막내 고모의 최근 증언에 따르면 ^^;  울 엄마가 처음 조울증 증상을 보인 건 막내동생을 출산한 다음이었다고 한다. 검찰청 소속 첫번째 타이피스트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엄마는 당시 여직원의 정년이 31살쯤(헉! 겨우 만 30세?)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또한 공교롭게도 최근 정신과 주치의를 만난 자리에서 엄마가 직업병으로 끝이 구부러진 손가락들을 보이며 하신 이야기다.)  그래서 셋째를 낳은 뒤엔 복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출산 이후 엄마의 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온 집안에 난리가 났었다는 고모들의 증언을 듣고 보니 시기가 얼추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전후 관계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엄마는 과연 산후 우울증 때문에 제대로 복직이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강제로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아야하는 인생의 변화를 함께 겪으며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심한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으로 갖고 있는 요란한 굿 장면이 바로 막내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느 즈음의 일인 것 같다. 

요번에 고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또 하나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 정확하게 내가 몇살 때인지 좀 더 역사를 추적해보아야 하겠지만, 부모님은 첫딸인 나만 친가에 맡겨놓고 아들 둘만 데리고 분가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글쎄! 외할머니가 어디 가서 점을 본 결과 '동쪽으로 이사를 가야 병이 낫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장 근처인 광진구로 이사를 했다는 것! 물론 매주말마다 엄마아빠가 할머니댁에 와서 자고가는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분가로 할머니댁에서 한참 살다가 3학년때 비로소 부모님댁으로 합류했다. 

무속인의 점괘가 맞았을리 만무하므로, 물론 엄마는 광진구로 분가를 한 이후에도 계속 심하게 아팠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디 어린 삼십대 부부는 참 많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넷째 고모가 걱정스러워 분가한 집에 가보면 엄마는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자책하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하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늘 애처가였던 아버지는 병든 아내 수발이 괴로워 연일 소주를 마셔댔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엄마의 조울증 발병에 관한 실마리 하나를 푼 셈이다. 가끔 뉴스에도 보도되지만 산후 우울증은 사람에 따라 정말 무서운 병이다. 느즈막히 결혼을 해 마흔살인가 마흔 한 살에 첫 아이를 낳은 나의 친구 역시 출산 후 무서운 우울증을 앓았다. 저절로 모성애가 뿜어 나오기는커녕, 너무도 무기력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는 갓난아기 돌보기가 힘들고 괴로워 나쁜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기의 안전을 위해 친구는 시댁에 아기를 보내 백일까지 떼어놓고 치료를 받았다.  울 엄마가 평생 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그 친구 역시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몇년에 한번씩은 다시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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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아니 조울증 환자 엄마를 어려서부터 지켜보며, 처음엔 아픈 엄마가 낯설고 무서웠고 사춘기땐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상황에 짜증이 났었고, 그다음엔 나도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서 엄마처럼 정신과 환자가 될까봐 더럭 겁이 났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 있을 때도 아니었으니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은 얻기 어려웠다. 시기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나는 결국 엄마의 주치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우울증도 유전이 되나요?

엄마를 10년도 넘게 담당하던 민OO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유전되지 않으니까 염려 말라고 단박에 나를 안심시켰더랬다. 전문가의 확인으로 내심 안도했던 시기가 몇년은 되었던가? 그러나 그 이후 우울증 및 조울증과 신경증에 관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기 시작했고, 저자마다 조금씩 주장은 달랐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유전적 요인에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서 병이 촉발되는 건 모든 질병이 다 똑같단 얘기.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불안증에 시달리는 딸 이야기가 나온다. 지은이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공황장애와 불안증, 우울 인자를 물려받았다지 아마. 토할까바 두려워 유치원 등원하는 게 공포스러웠던 걸 시작으로 저자의 불안증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던데, 울 엄마의 조울증 투병 역사도 만만치 않다. 다만 엄마와 외가 친척들이 아는 한 울 엄마 이전에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는 (옛날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미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부디 엄마의 병은 유전이 아니고, 그러므로 우리 삼남매도 비록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더라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기를 빌고 있다. 하긴 중년까지 잘 버텼으면 앞으로도 괜찮을까?

째뜬 난 엄마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싶진 않아서 어려서부터 방어기재를 작동시켰던 것 같다. 엄마처럼 하고픈 말을 무조건 참지는 말아야지. 남들 시선과 의견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지.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 때면 에라 모르겠다, 다 놓아버리는 연습도 해야지. 화병이 나도록 착한 사람 노릇만 하지는 말아야지. 때로는 사납고 표독스러운 쌈닭이 되어야지. 그리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까발려야지...

어쩌면 남들에게 부담스러운 정보였을지 몰라도 난 누구를 만나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할 전망이 보이는 이들에겐 내가 처한 상황, 특히 엄마의 조울증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던 것 같다. 워낙 자주 앓으셔서 ^^; 아픈 엄마를 온 가족이 번갈아 돌보려면 주변에 티를 안 낼 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거다. 상태가 나빠진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을 땐 약속을 펑크내야 한다든지, 예약해둔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덜했던 시절부터 환자의 가족인 난 아무래도 주변에 좀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의 상태를 발견하는 '촉'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불면과 무기력감, 자학하는 태도까지 보이는 친구나 지인을 보면 열심히 설득해 병원진료를 받게 했다. 우울증 약으로 도움 받는 게 뭐가 어때서? 우울증은 뇌에서 나쁜 물질이 나와서, 혹은 좋은 물질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래! 초기에 빨리 시작하면 약으로 완치 된대! 일단 병원에 가보자...

돌이켜보면 그들 가운데서 부모님이나 조부님 세대에 증상을 앓은 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저 주로 마음 약하고 소심하고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약을 계속 먹고 치료를 받아도 완치는 되지 못해 혈압약이나 당뇨약 먹듯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는 지인도 있고, 말끔히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언제 그랬었냐는 듯 씩씩하게 잘 사는 지인도 있고, 처방된 약을 먹었다 말았다가 치료에 갈팡질팡하는 지인도 있다. 

기비혼을 가리지 않는 나의 우울증 환자 지인들도 혹시나 자식에게 유전될까봐 걱정하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안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확실히 우울감은 전염되기 쉽다는 거다. 점점 와병 기간이 길어지는 엄마 옆에서 시달리다 보면 나 역시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다. 힘들고 슬프고 암울하고...

작년 늦가을부터 겨우내 엄마 상태가 나빠져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내 마감까지 겹쳐 심신이 완전히 피폐해졌을 때 설상가상 다리 통증이 생겼고, 홀로 한밤중에 응급실에 찾아가 덜컥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땐 나의 정신 건강 상태도 정말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계속 정신이 온전치 않아 사사건건 내가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종일 진통제 기운에 누워있다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징징 아파 울면서 끼니를 챙기노라면 어휴... 짐스러운 엄마랑 나랑 둘이 이 세상에서 확 없어져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물론 곧바로 어머 이거 우울증 환자의 반응인데! 반성했지만... 

당연히 조울증의 유전 여부에 대해선 의학전문가도 아닌 내가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다만 내가 현실에서 겪고 느껴왔던 경험상 100% 유전되진 않겠지만 유전인자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정도?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고 무거운 마음은 어디든 털어놓고 주변에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고... 지금껏 노력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헤쳐나가면 되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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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여성 페미니스트'라고 할 때 퍼뜩 떠오르는 몇몇 인물 중 한 사람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을 읽었다. 어느덧 80세가 된 투사 활동가의 이야기 속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독자 입장에선 나와 연결된 듯한 사연이 특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사주관상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딱 '역마살'이라고 표현할 만큼 평생 돌아다니며 산 작가의 인생도 신기했고 (나 역시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뿐 수시로 품는 여행 로망을 역마살 탓이라 여긴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작가 어머니의 우울증이었다.  별 내용도 아닌데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구절은 바로 이것.

"어머니는 슬픈 영화나 상처 입은 동물처럼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우울증이 도질 수 있었다." - <길 위의 인생> 204쪽.

와, 우리 엄마만 그러시는 게 아니구나! 이런 동병상련? 위로받는 느낌? '우울증'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 기복이나 의지박약이 아니라 병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서구에서도 현대사회에 들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전쟁 이후 먹고 살기 바빴던 6, 7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은 당연히 별것 아닌 나약함의 표상이거나 괜한 투정이거나 '귀신의 소행' 쯤으로 생각됐던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이 굿하는 장면이고, 무섭게 생긴 무당이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우리 엄마에게 살아 있는 닭을 던져 푸드득 날아올라 엄청 무서웠던 게 생각난다는 고백을 서른 살 무렵 처음 털어놓았을 때 이모가 엄청 놀라셨던 적이 있다. 그거 너 서너 살 때 일인데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며. 시집살이가 고됐던 게 원인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마음에 병이 든 엄마 상태를 외할머니는 굿을 해서 해결하려 했던 모양이다. ^^ 물론 무당굿은 우울증에 아무런 효험이 없었고, 엄마는 결국 당시 드물게 신경정신과 진료를 했던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 OOO박사의 초창기 환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우울증과 싸워온 역사가 최소 50년 가까이 된다는 뜻이고, 어린 시절부터 몇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엄마의 우울증(조울증)과 투병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수많은 의문에 휩싸였다. 첫번째 의문은 우울증 발병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 외가 쪽에선 '멀쩡했던' 엄마가 시집 가서 애 낳고 살다 우울증에 걸렸으니 호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이유일 거라고 친가 탓을 했었다.  그럴 법한 추론이지만, 정말로 최초의 우울증 발병이 결혼 이후일까 하는 점에 대해선 친척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엄마 본인도 그 점에 대해선 확신이 없으신 것 같고...

하여간 어려서부터 줄곧 지켜보며 나름대로 내가 파악한 우울증 촉발 인자는 대체로 갱년기, 계절 변화, 스트레스였다. 처음 폐쇄병동에 입원까지 해야했을 정도로 엄마의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심해졌던 건 내가 스무살 때였는데, 사십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엄마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지 않았나 짐작된다. 째뜬 과거의 엄마는 몇년에 한번씩 우울증이 재발했을 때만 정신과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으나, 언제부턴가 1년 내내 우울증 치료제를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있는데도 노년이 된 엄마는 이제 일년에도 몇번씩 증상이 오락가락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해 자꾸 약을 바꿔야하는 지경이다.

작년에도 11월부터 상황이 나빠져 정말 힘들었고, 넉 달이 지난 올해 설날 무렵에야 비로소 우울증이 좀 진정세를 보였다. 투약 종류와 양을 조금씩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다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의 정상 상태'가 되었다고 주치의가 안심했던 게 지난 4월 초였는데... 말짱한 기간을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엄마는 지난주부터 다시 불안 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니 대체 왜 또? ㅠ.ㅠ

스타이넘의 어머니처럼, 울 엄마의 우울증이 다시 도지는 이유도 이젠 딱히 꼽을만한 게 없다. 일조량이 달라지는 환절기라든지, 명절의 부담감이나 친척의 중병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라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환절기도 잘 지나갔고 딱히 '이슈'도 없는 요즘 대체 왜 그러시는가 말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어버이날 기념으로 예쁜 손주들과 자식들 만나 맛있는 거 먹고 용돈도 받고 그러시는 행복한 시기에 하필 참나.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그러면 약을 먹어도 잠들지 못하는 불면이 이어지고, 불안이 깊어지면 도리어 흥분 상태가 되거나 무기력증을 보이기도 하는데, 부디 이번엔 너무 길지 않게 살짝만 앓다 지나가면 좋겠다. 가족이 아프면 다른 가족도 덩달아 아프고 맥빠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 엄마의 우울증 때문에 괴로운 마음을 당분간은 블로그에 풀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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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요즘 이 나라를 들끓게 했던 괴물들의 행동도 그러했고 바다 건너 들려오는 테러나 총격 사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닭그네 순siri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했지만, 대체 그들의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궁금함도 분노 못지 않았을 것 같다. 당연히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들에게 그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 진단하는 의뢰도 많았던 모양인데, sns에 올라온 어느 전문가의 글귀가 기억난다. 일단 그들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알아보려는 게 불필요한 호기심이라고 말이다. 법률을 위반했으니 법대로 심판하여 탄핵하고 끌어내리면 된다는 논지였던 것 같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훗날 누구든 연구자나 언론인이 꼭 나타나서--책 팔아먹을 욕심에 헛소리 지껄이는 이들 말고--그들을 제대로 연구해주거나, 최측근의 양심선언이라도 제대로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인간이 되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파헤쳐, 다시는 그런 괴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들을 '미친'X이라고 욕하는 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조울증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서 그렇게 느끼니깐 정말이지 동급으로 취급 안하면 좋겠다. 모든 병증엔 급이 있겠으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우울증 환자와 동등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2016)

아이고 책 후기 하나 쓰려고 시작했는데 웬 잡설이 이리도 긴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사건 직후 아마도 '괴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의 사진 속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서 느껴지듯 아이는 괴물이 아니었다. 곁에서 아이를 평생 지켜본 부모로서도 이젠 도저히 알수 없는 부분이 영영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아픈 아이였던 거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그 학교 학생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두 아이가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들어가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바로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저자는 독자들이 아들인 딜런을 용서하길 바란다거나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당부하려고 책을 쓴 게 아니다. 사고 이후 16년 세월 도저히 대답할 길 없는 의문과 고통, 눈물 속에 살았을 이 어머니는 자신도 죽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하지만 결국 주변인들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그리고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빚을 갚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사고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자살예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아들 딜런이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끊임없이 꿈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이지만 결국 콜럼바인 사고는 지은이에게 아들이 가장 불행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자살 기도였던 거다.

사건 직후 사람들은 당연히 딜런의 부모를 온갖 방법으로 비난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의 일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가 총기를 구입했고 집안에 폭탄을 숨겼었고, 지하실에서 무서운 폭력성을 드러낸 동영상까지 찍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길고 긴 재판으로도 판명났지만 부모들은 정말로 '몰랐다'. 문제아의 부모 뒤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은 흔한 사회적 통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애가 괜히 비뚤어질 리가 있겠냐고. 뉴스에 간혹 나오듯 자식을 학대하거나 심신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문제 부모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란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p8-9)

위에 인용한 문장은 책 맨앞에 실린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몬의 해설 부분이다. 대다수의 짐작과 달리 딜런의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기른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딜런은 십대치고(17살이었다) 부모와 대화도 많은 편이었고, 형과도 사이가 좋았다. 나중에 발견된 딜런의 일기장에서도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믿음, 미안함이 증언된다. 그러니까 부모가 아무리 주의 깊게 지켜보며 사랑을 쏟았어도 딜런에겐 '충분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고로 억울하게 다 큰 자식들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가해자의 엄마가 책을 쓴다고 하면 대체 뭘 잘했다고 책을 쓰냐고 비난부터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짐작했기 때문인지 지은이의 태도는 시종일관 대단히 조심스럽다. 자식을 가능한 한 옹호하려는 태도보다는 부모로서 자기가 뭘 놓쳤는지, 사건의 전후 사정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된 아들의 행동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자기 이야기를 최대한 충분히 들려주어서, 다른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물론 사건 기록의 재구성과 딜런이 남겨둔 흔적들 말고는 가해자 아이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절렀는지 말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더욱 고통스러울 테고. 어쨌든 지은이는 자기 아들이 '자살'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흔히들 자살이 가장 비겁한 선택이라는 말도 하지만, 의사 결정 능력이 비정상일 때 내린 선택을 본인의 굳은 의지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심리학자와 지은이의 의견에 나도 공감한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차라리 그 용기로 살아보라고? 자살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용기 여부와는 상관 없지 않을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의 엄마인 저자의 고통이 느껴져서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지만, 알량한 후기를 쓰는 것도 몇날 며칠 적었다 말았다 한 단락씩 참 쓰기가 어려웠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무서운 진실 앞에, 꼭 읽어보아야할 책이라는 추천사도 들어있지만... 나로선 엄청 아픈 손가락인 큰조카 J의 생각도 많이 나면서 위안도 받고 또 새로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과정이었다. 제도권 교육의 테두리를 힘들어하고 못 견뎌하며 자꾸 엇나가는 아이를 보며 '대체 왜?' 커다란 의문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부모탓을 한 적도 있고, 종종 어려서부터 너무 오냐오냐하며 애 버릇을 망친 할아버지와 고모 탓이라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원칙이 무너져 훈육에 실패한 케이스라나. (심지어 이 말은 위탁학교 관계자에게 직접 내가 들은 말이다.)

이기적인 위안은 아이의 문제가 죄다 문제 부모 탓은 아니라는 전문가의 견해다. 어쩌면 내가 J를 망쳐놓았다는 비난과 자책에서 살짝 놓여날 수 있는 빌미가 생긴 거다. 봐라, 딜런처럼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환경에서도 타고난 기질 탓에 우울증과 폭력 성향에 기울어질 수도 있다. 딜런에 비하면 J가 저지른 갖가지 일탈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도 충분히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나.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은 또 다시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를 면밀히 지켜보아도 놓치는 것이 있고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니, 맙소사. 아이가 숨기려고만 들면 아무리 대화 많은 부모라도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인 경우엔 오죽할까. 

마침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1월에 한겨레신문에 이 책에 대한 정희진씨의 칼럼이 실렸다. ^^; 옴메 기죽어 그러면서 움츠러들어 더 마무리가 괴로웠던 것 같다. 감히 쨉도 안되는 주제에 무슨.. ㅋㅋ 

"이 책은 해설(앤드루 솔로몬!), 추천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명문이다."라는 단락이 칼럼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이다. 당연히 글을 링크해야겠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9947.html#csidx455111f6840324297cd3be3adda51b6 


최소한 모든 교육자들과 부모들이 다 읽고 생각해보아야할 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동체 육아론과도 일맥상통하고, 제 아이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태도에도 일침을 가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추천사(조한혜정)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더욱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p8-9)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병의 증상이고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다. 대부분의 자살은 한순간에 충동적인 결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살은 대부분 고장난 사고와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싸워오다가 마침내 그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기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죽고 싶지는 않더라도,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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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겨우) 올 2번째 완독 책이다. -_-;;

스콧 스토셀/홍한별 옮김/반비/2015


​<애틀랜틱>지의 에디터이자 여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 스콧 스토셀이 30년에 걸친 자신의 불안증 병력을 눈물겹도록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불안'을 속속들이 해부한 책이다. 작가 본인은 '불안에 대한 문화와 지식의 역사'를 집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던데 그 말이 딱 맞다. 

인류가 탄생한 후부터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었을 때는 없었을 테고, 그렇다면 인간의 여러 감정 중에 불안이 언제부터 주목을 받고 병적인 기질로 받아들였는지,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기원전 사상가들의 저서, 성경을 거쳐 최근 심리학자, 정신과의사들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었는지 총망라 되어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책 한권을 끝내는 데 엄청 오래 걸린 것도 다 그럴 만하다. ㅋㅋ 저자 본인의 에피소드와 가족력 부분은 아무래도 재미나게 읽히다가 온갖 이론과 약물과 학계 이야기가 나오면 마구 머리가 복잡해져서리...

그래도 대체로 재미나고 유익한 독서였다. 아마도 50년 넘게 우울증을 친구처럼 달고 계신 환자를 보필하고 있는 관계로, 왕비마마가 과거에 드셨던 약과 현재 드시고 있는 온갖 약이름이 다 언급되고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뭐 물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유전적으로 내가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서도) 계단 공포증이라든지 설치류 공포증,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이런 것들이 다 불안증 환자의 자질이라는 사실도 깊이 실감했다. ㅎㅎㅎ 내가 어딜 가든 길을 잃을 것에 대비해 운전하면서도 미리 표지판을 살펴두고, 산에 갈 때 꼭 나침반 챙겨가고 ^^; 매사에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경우의 수를 미리 꼽아보는 등등... 아이고 참... 그러면서도 이 정도 살면 이 책의 지은이에 비하면 훌륭한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ㅋ


지은이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턴가 구토공포증 때문에 학교 가기가 무서웠고, 비행기도 무서워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도 무섭고...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그 스트레스로 무너져내렸단다. 결혼식 때도 당연히. 암튼 그래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5, 6세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온갖 약물과 술과 상담으로 불안에 맞서 버텨나가는 중이다. ㅠ.ㅠ 안타깝게도 불안증은 지은이의 어머니와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저자의 어린 딸에게도 이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연구한 결과 어릴 때 아주 잠깐 스트레스에 노출되어도 뇌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 시스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병적인 불안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영장류 동물을 지켜보니 그 영향이 손자녀대에까지 미친단다. 으악, 그럼 나의 조카들도 혹시?? ㅠ.ㅠ

아주 오래전 첫조카 ㅈㅁ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가족을 그리고 그 밑에 특징을 써내는 수업을 했는지 나중에 공책을 가져왔는데 딴 사람은 다 까먹었어도 울 엄니 아부지에 대한 묘사는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 돈을 잘 준다 
할머니: 걱정이 많다
ㅠㅠ

인간의 22번 염색체에 있는 COMT 유전자에 데이비드 골드먼이라는 사람이 "걱정꾼-싸움꾼 유전자"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그러니깐 지구상 인구 가운데 25퍼센트(울 엄마랑 나 포함!)가 걱정꾼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지은이가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혹시 그 놀라운 방법이라도 읽게 되기를 몹시 바라며 책장을 넘겼지만, 당연히 그런 건 없다. 이 책을 쓰느라고 또 여러 종류의 불안에 휩싸여 전전긍긍했던 이야기가 더 나올 뿐... 책 제목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서 이미 해답은 없다는 걸 직감했어야 했나? ㅎㅎ 원제는 My Age of Anxiety. 

낙담하는 독자(와 지은이 스스로)를 위한 마지막 위로는 많은 경우 "불안이 예술적, 창의적 재능과 같이 나타난다"(414쪽)는 주장이다. 찰스 다윈, 프로이트, 에밀리 디킨슨, 헨리 제임스, T.S. 엘리엇, 카프카, 프루스트... 우디 앨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휴 그랜트...  병적으로 불안에 시달렸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타인들의 감정과 사회적인 분위기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살피기 때문에 직업적인 성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고... 

어쩌면  "불안은 타인지향적 인간의 숙명이자 천형이다."라고 적은 옮긴이의 말 한 줄에 모든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
옮긴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휴... 교재나 학술서 말고, 인문교양서 치고 주석이 이토록 빽빽하고 양 많은 책은 보다보다 처음이어서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번역하느라 얼마나 빡세게 고생을 했을지 웃음이 나다가 안쓰럽다가 괜히 화도 막 나고 그랬다. (어떻게 이런 책을 인세로!!!!) 




암튼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나의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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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동전

투덜일기 2015. 3. 23. 02:11

엄마가 백원짜리인줄로 알고 받아온 거스름 돈 중에 하나가 알고보니 필리핀 동전이었다. 1페소짜리인데, 얼핏 보기에 크기와 두께, 색깔이 딱 백원짜리였다. 같이 섞어서 건네주면 누구라도 쉽사리 골라내지 못했을 것이다. 검색해보니 1페소의 환율은 대략 25원. 엄마는 75원을 손해본 거다. 그래도 엄마가 동전 분류하다 이상한 걸 알아차렸으니 좀 다르긴 다르다는 얘긴데, 이 사건을 두고 모녀의 반응은 크게 달랐다.


엄마: 생각할수록 괴씸하고 억울하다. 어디서 잘못 줬는지 따져야겠다. 약국인가? 목캔디를 샀던 마트인가? 또 어디를 들렀더라? 300원 거슬러 받은 데가 있었는데? 어디더라? 아이고 치매가 왔나, 왜 생각이 안나냐. 어딘지 확실히 알아야 찾아가서 따질텐데. 바보같이 거스름돈 속이는 것도 모르다니 눈이 삐었다. 시력이 많이 나빠졌나. 안경이 안 맞나. 안과에 가봐야겠다. 백내장 수술해야 되는거 아니니. 속상해죽겠네. 화난다. 근데 이 동전을 어떡하지? 버릴 수도 없고 어디 써먹나? 공항에나 가야 외국 동전 기부통 있던데... 

(참고로.... 엄마의 정신 건강 상태가 요즘 좀 저조하다. 별다른 이슈는 없는데... 그냥 환절기 봄탓일까...) 

= 째뜬 철저한 자책파에 알뜰 이타주의자.  


나: 진짜 비슷하게 생겼네. 거슬러 준 사람도 모르고 줬을지 몰라요. 설마 알고도 손해 안볼라고 얼렁뚱땅 눈나쁜 할머니들한테 넘기는 건가? 그럼 사기꾼인데! 음.. 그냥 잊어버리셔. 100원 내가 줄게! 혹시 옛날에 우리나라 500원짜리 동전이랑 일본 500엔이랑 비슷해서 자판기로 환치기했다던데(해서 일본은 500엔 동전의 재질과 색깔을 아예 바꿔버렸단다) 필리핀에서도 설마 조직적으로 동전 들여와 유통시키는 거 아냐? (막 음모론 꾸며댄다) 써먹긴 뭘.. 그냥 버려요. 외국돈도 동전은 바꿔주는 데도 없고, 어차피 겨우 25원이라니까! (실은 책상 서랍에 일본 동전, 미국동전, 영국동전, 호주 동전, 뉴질랜드 동전.... 등등이 한 뭉치 들어있다. -_-; 근자엔 여행가도 동전까지 악착같이 쓰고 들어오는 편이지만, 과거엔 신기하다고 괜히 종류별로 남겨오던 때가 있었다. 1달러짜리 동전 신기하지? 이러면서 친구가 준 것도 있고... 하지만 책상 속 서랍 외국 동전의 절반 이상은 아버지의 여행 흔적이다...)       

= 어디까지나 철저한 남탓파에 이기적인 귀차니스트.


우울증 탓이겠지만, 자꾸만 백원짜리 동전 하나 때문에 속을 끓이는 엄마를 보다 못해 몹쓸 필리핀 백동전을 빼앗아 10원짜리 통에 치워버렸다. 그러면서 문득 유통의 유혹을 느꼈다. 동전지갑을 따로 쓰다보니, 마트 갈 때 카트 빼는데 필요한 백원짜리를 자꾸 까먹어서 (천원짜리도 없어서 심지어 만원짜리 내고 동전 거스른 적도 있다. 짜증;;) 차에도 몇 개 놓아두고, 테이블 차키 옆에도 1개, 화장대 옆에도 1개 늘 굴러다니고 있는데.... 진짜로 보기만큼 백원짜리랑 혼용가능한지 카트에 넣어볼까 싶은 거다. ^^; 물론 어마어마한 이름의 법에 저촉되는 범죄행위겠지만... 애당초 그놈의 필리핀 돈이 돌고 돌아 하필 우울증환자의 신경을 거스르게 만든 이유도 누군가 호기심에 슬쩍 써먹어봤기 때문이 아닐까나? 


혹시나 진짜로 필리핀에서 환율 4배 장사 하려고 조직적으로 1페소 동전을 들여온 건 아닌가, 비슷한 피해 사례가 있나 검색해보니 전혀 없는 듯. ㅋㅋㅋ 이거 최초 발견이라며 신고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네그려. (물론 귀찮아서 절대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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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미국에서 살인죄로(그것도 노수녀님을 죽였다고;;) 복역하던 가톨릭 신부의 죽음과 그 장례를 놓고 논란이 인다는 해외뉴스를 보았다. 아니 성직자가 어떻게?!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현대에서 종교란 단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성직자 역시 그냥 하나의 직업이란 생각에 점점 동조하게 된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있듯,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의 동기와 이유와 성향도 다양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어려운 곳, 낮은 곳에서 소신껏 봉사하는 성직자들도 물론 많겠지만, 그건 그냥 개인의 성향일 뿐 성직자가 아니면서도 그러는 착한 사람들도 많은 걸 뭐.


어마어마한 재산 규모와 예산을 집행하는 개신교 대형교회들도 그렇고, 괜히 길 막아놓고는 문화재 보호명목으로 절에 안가는 사람들한테까지 입장료 받아 챙기는 불교계 사찰들도 그렇고 그들에겐 종교가 그러니까 그냥 세금포탈에 엄청 이로운 수익사업에 지나지 않는 거다. 전국 어느 절엘 가보아도 '기와불사'라면서 돈 내고 기와에 이름 적어 소원성취하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이 빠지질 않아 눈쌀이 찌푸려진다. 개신교의 십일조 논리도 그렇고, 가톨릭의 성금이나, 불교계의 불전함이나 왜 신을 섬기는 일에는 꼭 돈이 빠지지 않을까. -_-; 


줄곧 심신이 건강했던 엄마는 얼마전부터 약간 흥분과 불안증세를 보였다. 짐작되는 이유도 여럿이었다. 


첫째, 작년 여름에도 그러더니만, 담당자가 공무원 성과주의에 빠진 건지,  암튼 엄마가 다니는 보건소 부설 실버합창단이 무슨 대회엘 나간다고 했다. 작년엔 서울 지역만 참가하는 합창대회엘 나갔고, 거기서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전국대회라서 예선도 거쳐야한다는데, 엄마는 작년 대회준비를 앞두고도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어했다. 자기만 틀려서 민폐 끼치면 어쩌나, 입장순서와 동작 순서를 헤매면 어쩌나 뭐 그런 이유였다. 부모들 기쁘게 하자고 유치원 선생들이 재롱잔치 준비로 애들 잡는 거랑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작년에도 욕심 많은 지휘자 선생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었다. 헌데 올해는 전국대회라니, 노친네의 스트레스는 더욱 높아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집에서 CD를 틀어대고 가사를 외우고... 가사 안외워져 큰일이라고 걱정하고.. 으억~!!! 하마터면 구청 사이트에 민원 넣을 뻔했다. 노친네들 성취감 고취도 좋지만,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도 많으니 괜한 고생 시키지 말고 큰일 벌이지 말라고...  일단은 참고 있다. 


둘째, 12살 조카를 3주 넘게 돌보는 건 나름 평화로운 모녀의 일상에 파격이었고 당연히 노친네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지네 집에선 TV도 안켜는 애가 우리집만 오면 할머니방 TV를 점거하다시피하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맞벌이로 돈 번다고 애 교육 망치는 건 아닌지, 장사는 잘 되는지도 염려했고, 운전수에 보모 노릇하느라 늙은 딸 고생하는 건 또 안쓰러워보였던 모양이다.   


셋째, 엄마가 다니는 절의 신도회장을 지냈던 어떤 아줌마가 지지난주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간 듣자하니 그 '보살님'은 좀 말도 함부로 하고 오지랖이 넓은 수준을 떠나 좀 주책스러워 밉상인 짓을 많이 하는 유형이었다. 고인을 두고 꼬치꼬치 따지기 좀 뭣하지만 이런 식이다. 울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루비반지(결혼 25주년때 아버지가 해주신 것)를 보더니 알이 좀 작지만(!) 예쁘네.. 라면서 대뜸 빼보라고 하더란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루비를 유리에 대고 문지른 뒤, 유리에 안붙는 걸 보니 이거 가짜네! 그랬단다. +_+ 그 일로 엄마는 그 아줌마를 속으로 미워하고 (나라도 엄청 미워했을 거다!) 상종하지 말아야지 마음 먹었다는데, 그분이 덜컥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 거다. 아니 그 아줌마 암 걸려 돌아간 게 왜 자기 탓인가! (물론 노인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부고가 알게 모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어쨌든 1, 2, 3번의 스트레스 원인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차츰 해결이 돼 나갔다. 1번은 내가 민원 넣어서 합창대회 무산 시키면 오히려 울 엄마가 더 괴로워할 것 같아서 열심히 가사 외우기를 거들며, 노친네들은 합창 틀리는 게 묘미라고 세뇌했다. 그래야 관객들이 재미있어서 웃는다고.. -_-; 2번은 올케가 직원을 뽑으면서, 조카가 우리집에 오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됐고, 3번은 일단 그런 찜찜한 마음을 내게라도 털어놓았으니 치유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ㅋ 우울증환자 보필 30년이면 이 정도 심리파악 풍월은 가능해짐을 양해바람)


저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은 2, 3주 지나면 풀리기 마련인데도, 이상하게 노친네의 불안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무언가 신경쓰이는 일이 더 있다는 의미였다. 길가다 이상하게 웃는 여자얘기부터, 누가 재활용품 이상하게 버려놨더라는 얘기까지 시시콜콜 별의별 것을 다 내게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 대체 그게 뭔데 나한테 숨길까. 


안되겠다 싶어서 이틀전 달래는 척 집요하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뭔가 나한테 말 안하고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분명 있다. 그게 뭔지 어서 털어놔라... 그런 거 없다고 발뺌을 하던 엄마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나중에 편지로 쓰겠다;;고 말했다. 엥? 딱 감이 왔다. 왜, 누구한테 돈 빌려줬다가 떼이셨나? 아님 절에다가 돈 갔다주셨나?  답은 후자였다.


사찰마다 교묘한 수익사업이 참 다양하겠지만, 이노무 절의 수익사업 가운데 하나는 '천불' 모시기였다. 나는 가보지도 않아서 모르겠는데 암튼 불화 전시회도 열었다는 유명한 화가(?)가 부처를 손바닥만하게 천 명이나 그린 벽화를 조성(아마도 화가의 그 노역까지 '보시'라는 이름으로 공짜로 재능기부 받았을 거다)하고 그 부처 그림 하나하나를 개개인의 이름으로 분양(?)해 돈을 버는 식이다(그림 아래 이름표라도 달아주려나? -_-;;) 우리 동네 있던 절이 새 절을 지어 서오릉 근처로 이사가면서, 그런 이야기가 있을 때 울 엄니도 당연히 하나쯤 도맡을 줄 알았고, 그러려니 했다. 결국 큰동생 이름으로 알량한 부처그림에 백만원을 쾌척하셨다. (백만원X1000 명이면 10억. 뭐 재산이 몇백억씩 된다는 대형교회완 쨉도 안되는 수준이겠으나, 나는 얘기 듣고 기가찼다.) 


그게 한 1, 2년 전이던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 이후에도 (불교신자도 아닌 딸 잘 되라고;;) 내 이름으로도 부처그림에 또 한번 돈을 냈었대고, 최근엔 노친네 본인 이름으로도 또 하나 부처그림값(?)을 내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원래도 부자 신도들은 한집에서 막 10개씩 척척 맡아서 돈내고 그런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수익사업이 원할하게 마무리가 안되니 마지막 바겐세일이라도 하듯--물론 깎아주는 건 아니지만--남은 그림을 분양했던 모양)  그것도 5개월 할부로. ^^*


어차피 엄마 재산(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지만 그냥 연금 통장 정도 ㅋㅋ)은 본인이 관리하시고,  종교생활에 드는 소소한 비용이며 본인 용돈 쓰시는 것 역시 내가 전혀 상관하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남기신 배우자 연금이 엄마 쓰시기엔 넉넉해서 어찌나 감사한지. 그저 감지덕지할 뿐. 그런데 공교롭게 얼마 전 내가 목돈으로 들어온 원고료 일부를 선심쓰듯 간만에 용돈으로 드리며 토를 달았다. 엄마가 놀러다니고 옷사입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주는 거야, 홀라당 절에 갔다주지는 마셔. 그러면 다시는 용돈 안 줄 거임~


아무래도 복을 받아 편안하게 이 세상 하직하려면 정성스러운 금강경 필사뿐만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도 천불 모시기에 동참해야할 것 같아서, 돈 내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온 바로 그 시점에 하필 내가 저런 말을 하며 돈 봉투를 안겼으니... ㅋㅋㅋ 노친네는 차마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 했던 거다. 딸 속이고 하지 말라는 짓 하자니 제발이 저리셨겠지...


사연을 다 듣고 나니 헛웃음이 나면서도 버럭버럭 화가 났다. 돈독 오른 땡중들에게! 순진한 '보살님'들 꼬드겨서 이런저런 수익사업 챙기는 불교계의 작태에! 설교든 설법이든 성직자라는 양반들이 노친네들 앉혀놓고 복을 짓고 선행을 베풀어야 천당이며 극락 간다고, 그리고 그 선행을 돈과 연결시키는 빤한 술수에! 종교단체에 전재산 홀라당 갖다 바치고 길바닥에 나앉는 노친네들 얘기가 그리 먼 사연이 아닐 수도 있다니! 눈뜰 욕심에 분수도 모르고 공양미 삼백석에 딸 팔아먹은 심봉사 같은 인간을 내가 얼마나 혐오하는데! 


으으으... 째뜬 약속은 약속이고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은 하셔야겠기에 내가 결론을 내렸다. 할부는 무슨 할부, 5달이나 신경쓰는 거 절대 반대이니 내일 당장 송금해주고 끝냅시다.... 송금할 계좌번호나 내놓으시오...


심신이 불안해지면 울 엄만 벌써 얼굴표정부터 달라진다. 행동도 안절부절하지만, 특히 나만 알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눈두덩 부분의 주름 방향이 달라져 위로 약간 치솟는 것. ^^;  내가 호랑이눈 됐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3주 가까이 이상하게 절반쯤 호랑이눈이 되었던 노친네 눈주변 주름이 저 대화 이후 하루만에 평온하게 내려앉았다.... 으휴. 


엄마가 속얘기를 차마 못하고 몇주간 끙끙대다 털어놓은 뒤 맘 편해졌듯이, 나도 여기다 시시콜콜 죄다 하소연을 하고나면 나도 반나절쯤 계속해서 투덜투덜, 종교는 둘째치고 탐욕스런 종교인들이 문제야, 순진한 신자들이 문제야, 으억 내돈은 아니라도 3백만원 아까워! 라며 씨근덕대던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지만...  하여간 이번에 또 한번 깨달은 건 내 맘대로 함부로 일반화한 '일부' 종교인들의 탐욕스런 수익사업과 나의 편협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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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치료기

투덜일기 2013. 9. 27. 17:40

나는야 가을 타는 여자. 겨울 가고 봄이 오면 펄펄 날기라도 할 것같은데, 확실히 가을이 되면 심신이 축 처진다. 추위를 많이 타서 혹독한 겨울이 오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고 나름의 이유를 대보지만, 의학적으로는 일조량의 변화 때문이라고 들었다. 보통 사람들도 그럴진대, 우울증 환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올 여름 유독 길고 긴 장마와 무더위, 열사병의 가능성 등등으로 집밖 운동은 몇달간 할래도 못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날씨 청량해지자 곧 우울증이 도진 엄마는 악순환의 덫에 빠졌다. 운동도 못해, 햇빛도 못 쪼여, 먹던 약도 안 들어, 홀로 외출도 못해...  노친네들의 근력은 며칠만 사용하지 않아도 확 사라지는 게 확실하다. 아 글쎄, 억지로 실내 자전거 좀 타보시라 꼬드겼더니 다리를 못 올려서 자전거에 앉을 수가 없단다. ㅠ.ㅠ  

 

주치의는 싫어도 자꾸 밖으로 나가보시라고 엄마한테 운동을 독려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는 걸 알기에 가을, 겨울 동안 빛치료기를 사용해보라고 권했다. 밤이 지나치게 길어 전국민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북유럽에서 많이 상용하는 거라면서.

 

의료기상에서 파냐고 물으니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라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구글링으로 그럴싸하고 예쁜 걸 찾아내긴 했는데... 한국에서 파는 건 하나같이 이렇게 안 생겼고 훨씬 조악하다. -_-;

 

화롯불 쪼이듯 까칠하고 암울한 두 모녀가 인공 조명 앞에 웅크리고 앉아 나란히 빛을 쪼이고 나서 머릿속에 고여 뭉쳐있던 나쁜 호르몬과 나쁜 생각들이 뾰로롱 사라져버리는 상상을 하니 뭔가 황당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늘 숨쉬고 사는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햇빛에도 엄청난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걸 꼭 이렇게나 해야 깨닫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무기력한 나완 달리 세상엔 참 별걸 다 알아내는 능력자 인간이 많구나 싶다. 과연 얼마나 실제로 효험이 있을지는 몰라도, 일단 울 엄니는 플라시보 효과에 민감한 분이시니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그나저나 가을 겨우내 노상 뻗쳐놓고 살려면 무조건 모양이 예뻐야 되는데... 집요한 검색과 인터넷쇼핑 노하우를 총동원해봐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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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전 만난 후배가 고부갈등의 가능성을 피해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 머리가 시원찮아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진 않는데, 암튼 남아있는 기억으론 시어머니를 자기 남편 예뻐해주는 친절한 옆집 할머니라고 생각하면 그저 매사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라는 거였다. 크핫, 하고 웃으며 대단한 묘안이라 칭찬해주고보니, 내게도 아주 유용한 발상의 전환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다, 우리가 또 피붙이들에겐 뾰족한 말 턱턱 내지르고 짜증과 성질 막 부리면서도, 남들에겐, 특히나 이웃 노친네들에겐 좀 친절하고 관대하게 구는가 말이다.

 

물론 가끔 만나서 잔소리 듣는 시어머니와 24시간 붙어 살아야하는 노년의 엄마를 동급으로 취급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런 태도를 취하는 한은 나 또한 버럭 화도 덜 내고 막말도 덜하고 짜증도 덜 부리지 않을까나. 수년동안 말짱했던 대비마마의 심신이 다시 불안해지면서, 난 왜 그리도 안쓰러운 마음보다 짜증이 더 치미는지 원.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병이 그러는거라는 걸 머리론 아는데 입에선 이미 뾰족한 말이 튀어나가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노처녀 히스테리(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아니면 갱년기 예비증상이 아닐까 하고 주변에서 염려를 할 지경이다.

 

째뜬 한번 시도해보자 싶으면서도 무딘 머리로는 생각전환이 잘 안돼서 계속 명절증후군과 후유증을 호되게 앓는 며느리에 빙의된 딸노릇을 며칠 내내 하다가는 어젯밤 드디어 '상냥한 이웃집 아줌마 코스프레'를 결심했다. 노파심에 잔소리는 좀 심해도 친절하고 마음 약한 이 이웃 할머니는  청력까지 나쁘시니, 같은 말 반복하는 거 싫어서 버럭 화를 내기보다는 측은지심을 더 발휘해야 할 때라고 굳게 결심한 거다.

 

그 결과 비오는 아침 출근시간과 맞물려 엄청 막히는 길을 뚫고 병원 모시고 가면서 오면서는 물론이고(고백하자면 주변 얌체 운전자들과 멍청한 주차장 직원들한테는 미친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저녁이 다 된 지금까지 아직 인상쓸 일은 없었다. 끈기없는 내가 얼마나 더 이 코스프레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상냥한 이웃집 아줌마 빙의 상태에서 빠져나와 못된 딸년의 본색이 드러나면 얼른 심호흡을 한 뒤 세팅을 다시 하면 되겠지... ㅎ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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