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에서 살인죄로(그것도 노수녀님을 죽였다고;;) 복역하던 가톨릭 신부의 죽음과 그 장례를 놓고 논란이 인다는 해외뉴스를 보았다. 아니 성직자가 어떻게?!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현대에서 종교란 단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성직자 역시 그냥 하나의 직업이란 생각에 점점 동조하게 된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있듯,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의 동기와 이유와 성향도 다양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어려운 곳, 낮은 곳에서 소신껏 봉사하는 성직자들도 물론 많겠지만, 그건 그냥 개인의 성향일 뿐 성직자가 아니면서도 그러는 착한 사람들도 많은 걸 뭐.


어마어마한 재산 규모와 예산을 집행하는 개신교 대형교회들도 그렇고, 괜히 길 막아놓고는 문화재 보호명목으로 절에 안가는 사람들한테까지 입장료 받아 챙기는 불교계 사찰들도 그렇고 그들에겐 종교가 그러니까 그냥 세금포탈에 엄청 이로운 수익사업에 지나지 않는 거다. 전국 어느 절엘 가보아도 '기와불사'라면서 돈 내고 기와에 이름 적어 소원성취하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이 빠지질 않아 눈쌀이 찌푸려진다. 개신교의 십일조 논리도 그렇고, 가톨릭의 성금이나, 불교계의 불전함이나 왜 신을 섬기는 일에는 꼭 돈이 빠지지 않을까. -_-; 


줄곧 심신이 건강했던 엄마는 얼마전부터 약간 흥분과 불안증세를 보였다. 짐작되는 이유도 여럿이었다. 


첫째, 작년 여름에도 그러더니만, 담당자가 공무원 성과주의에 빠진 건지,  암튼 엄마가 다니는 보건소 부설 실버합창단이 무슨 대회엘 나간다고 했다. 작년엔 서울 지역만 참가하는 합창대회엘 나갔고, 거기서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전국대회라서 예선도 거쳐야한다는데, 엄마는 작년 대회준비를 앞두고도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어했다. 자기만 틀려서 민폐 끼치면 어쩌나, 입장순서와 동작 순서를 헤매면 어쩌나 뭐 그런 이유였다. 부모들 기쁘게 하자고 유치원 선생들이 재롱잔치 준비로 애들 잡는 거랑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작년에도 욕심 많은 지휘자 선생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었다. 헌데 올해는 전국대회라니, 노친네의 스트레스는 더욱 높아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집에서 CD를 틀어대고 가사를 외우고... 가사 안외워져 큰일이라고 걱정하고.. 으억~!!! 하마터면 구청 사이트에 민원 넣을 뻔했다. 노친네들 성취감 고취도 좋지만,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도 많으니 괜한 고생 시키지 말고 큰일 벌이지 말라고...  일단은 참고 있다. 


둘째, 12살 조카를 3주 넘게 돌보는 건 나름 평화로운 모녀의 일상에 파격이었고 당연히 노친네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지네 집에선 TV도 안켜는 애가 우리집만 오면 할머니방 TV를 점거하다시피하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맞벌이로 돈 번다고 애 교육 망치는 건 아닌지, 장사는 잘 되는지도 염려했고, 운전수에 보모 노릇하느라 늙은 딸 고생하는 건 또 안쓰러워보였던 모양이다.   


셋째, 엄마가 다니는 절의 신도회장을 지냈던 어떤 아줌마가 지지난주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간 듣자하니 그 '보살님'은 좀 말도 함부로 하고 오지랖이 넓은 수준을 떠나 좀 주책스러워 밉상인 짓을 많이 하는 유형이었다. 고인을 두고 꼬치꼬치 따지기 좀 뭣하지만 이런 식이다. 울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루비반지(결혼 25주년때 아버지가 해주신 것)를 보더니 알이 좀 작지만(!) 예쁘네.. 라면서 대뜸 빼보라고 하더란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루비를 유리에 대고 문지른 뒤, 유리에 안붙는 걸 보니 이거 가짜네! 그랬단다. +_+ 그 일로 엄마는 그 아줌마를 속으로 미워하고 (나라도 엄청 미워했을 거다!) 상종하지 말아야지 마음 먹었다는데, 그분이 덜컥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 거다. 아니 그 아줌마 암 걸려 돌아간 게 왜 자기 탓인가! (물론 노인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부고가 알게 모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어쨌든 1, 2, 3번의 스트레스 원인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차츰 해결이 돼 나갔다. 1번은 내가 민원 넣어서 합창대회 무산 시키면 오히려 울 엄마가 더 괴로워할 것 같아서 열심히 가사 외우기를 거들며, 노친네들은 합창 틀리는 게 묘미라고 세뇌했다. 그래야 관객들이 재미있어서 웃는다고.. -_-; 2번은 올케가 직원을 뽑으면서, 조카가 우리집에 오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됐고, 3번은 일단 그런 찜찜한 마음을 내게라도 털어놓았으니 치유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ㅋ 우울증환자 보필 30년이면 이 정도 심리파악 풍월은 가능해짐을 양해바람)


저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은 2, 3주 지나면 풀리기 마련인데도, 이상하게 노친네의 불안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무언가 신경쓰이는 일이 더 있다는 의미였다. 길가다 이상하게 웃는 여자얘기부터, 누가 재활용품 이상하게 버려놨더라는 얘기까지 시시콜콜 별의별 것을 다 내게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 대체 그게 뭔데 나한테 숨길까. 


안되겠다 싶어서 이틀전 달래는 척 집요하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뭔가 나한테 말 안하고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분명 있다. 그게 뭔지 어서 털어놔라... 그런 거 없다고 발뺌을 하던 엄마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나중에 편지로 쓰겠다;;고 말했다. 엥? 딱 감이 왔다. 왜, 누구한테 돈 빌려줬다가 떼이셨나? 아님 절에다가 돈 갔다주셨나?  답은 후자였다.


사찰마다 교묘한 수익사업이 참 다양하겠지만, 이노무 절의 수익사업 가운데 하나는 '천불' 모시기였다. 나는 가보지도 않아서 모르겠는데 암튼 불화 전시회도 열었다는 유명한 화가(?)가 부처를 손바닥만하게 천 명이나 그린 벽화를 조성(아마도 화가의 그 노역까지 '보시'라는 이름으로 공짜로 재능기부 받았을 거다)하고 그 부처 그림 하나하나를 개개인의 이름으로 분양(?)해 돈을 버는 식이다(그림 아래 이름표라도 달아주려나? -_-;;) 우리 동네 있던 절이 새 절을 지어 서오릉 근처로 이사가면서, 그런 이야기가 있을 때 울 엄니도 당연히 하나쯤 도맡을 줄 알았고, 그러려니 했다. 결국 큰동생 이름으로 알량한 부처그림에 백만원을 쾌척하셨다. (백만원X1000 명이면 10억. 뭐 재산이 몇백억씩 된다는 대형교회완 쨉도 안되는 수준이겠으나, 나는 얘기 듣고 기가찼다.) 


그게 한 1, 2년 전이던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 이후에도 (불교신자도 아닌 딸 잘 되라고;;) 내 이름으로도 부처그림에 또 한번 돈을 냈었대고, 최근엔 노친네 본인 이름으로도 또 하나 부처그림값(?)을 내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원래도 부자 신도들은 한집에서 막 10개씩 척척 맡아서 돈내고 그런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수익사업이 원할하게 마무리가 안되니 마지막 바겐세일이라도 하듯--물론 깎아주는 건 아니지만--남은 그림을 분양했던 모양)  그것도 5개월 할부로. ^^*


어차피 엄마 재산(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지만 그냥 연금 통장 정도 ㅋㅋ)은 본인이 관리하시고,  종교생활에 드는 소소한 비용이며 본인 용돈 쓰시는 것 역시 내가 전혀 상관하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남기신 배우자 연금이 엄마 쓰시기엔 넉넉해서 어찌나 감사한지. 그저 감지덕지할 뿐. 그런데 공교롭게 얼마 전 내가 목돈으로 들어온 원고료 일부를 선심쓰듯 간만에 용돈으로 드리며 토를 달았다. 엄마가 놀러다니고 옷사입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주는 거야, 홀라당 절에 갔다주지는 마셔. 그러면 다시는 용돈 안 줄 거임~


아무래도 복을 받아 편안하게 이 세상 하직하려면 정성스러운 금강경 필사뿐만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도 천불 모시기에 동참해야할 것 같아서, 돈 내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온 바로 그 시점에 하필 내가 저런 말을 하며 돈 봉투를 안겼으니... ㅋㅋㅋ 노친네는 차마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 했던 거다. 딸 속이고 하지 말라는 짓 하자니 제발이 저리셨겠지...


사연을 다 듣고 나니 헛웃음이 나면서도 버럭버럭 화가 났다. 돈독 오른 땡중들에게! 순진한 '보살님'들 꼬드겨서 이런저런 수익사업 챙기는 불교계의 작태에! 설교든 설법이든 성직자라는 양반들이 노친네들 앉혀놓고 복을 짓고 선행을 베풀어야 천당이며 극락 간다고, 그리고 그 선행을 돈과 연결시키는 빤한 술수에! 종교단체에 전재산 홀라당 갖다 바치고 길바닥에 나앉는 노친네들 얘기가 그리 먼 사연이 아닐 수도 있다니! 눈뜰 욕심에 분수도 모르고 공양미 삼백석에 딸 팔아먹은 심봉사 같은 인간을 내가 얼마나 혐오하는데! 


으으으... 째뜬 약속은 약속이고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은 하셔야겠기에 내가 결론을 내렸다. 할부는 무슨 할부, 5달이나 신경쓰는 거 절대 반대이니 내일 당장 송금해주고 끝냅시다.... 송금할 계좌번호나 내놓으시오...


심신이 불안해지면 울 엄만 벌써 얼굴표정부터 달라진다. 행동도 안절부절하지만, 특히 나만 알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눈두덩 부분의 주름 방향이 달라져 위로 약간 치솟는 것. ^^;  내가 호랑이눈 됐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3주 가까이 이상하게 절반쯤 호랑이눈이 되었던 노친네 눈주변 주름이 저 대화 이후 하루만에 평온하게 내려앉았다.... 으휴. 


엄마가 속얘기를 차마 못하고 몇주간 끙끙대다 털어놓은 뒤 맘 편해졌듯이, 나도 여기다 시시콜콜 죄다 하소연을 하고나면 나도 반나절쯤 계속해서 투덜투덜, 종교는 둘째치고 탐욕스런 종교인들이 문제야, 순진한 신자들이 문제야, 으억 내돈은 아니라도 3백만원 아까워! 라며 씨근덕대던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지만...  하여간 이번에 또 한번 깨달은 건 내 맘대로 함부로 일반화한 '일부' 종교인들의 탐욕스런 수익사업과 나의 편협함?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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