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블로그 아닌데'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7.10.24 등갈비 김치찜 4
  2. 2016.10.19 오늘 점심 4
  3. 2015.07.28 접시 자랑 3
  4. 2015.04.23 먹고살기 2
  5. 2015.03.06 쇠고기 무국 11
  6. 2014.02.14 일주일이...
  7. 2014.02.06 AI야 가라, 닭고기는 맛있어~ 4
  8. 2013.09.23 먹는 게 남는 것 11
  9. 2013.04.29 달걀을 먹는 방법 17
  10. 2013.03.21 역전야매요리를 따라하면 10

등갈비 김치찜

투덜일기 2017. 10. 24. 23:05

10월도 다 지나가는데 아직도 4월 여행기를 마무리 못했다니. ㅠ.ㅠ 이러다 쌘이처럼 그냥 방치하다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들어 짬내서 비공개로 이어쓰기를 시도하고는 있으나,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니 그 또한 끝내기가 쉽지 않다.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여행기 마무리 전엔 또 다른 포스팅을 줄줄이 이어쓰기도 기분이 찜찜했다. 예전처럼 블로그 포스팅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생각해서 끼적이는 게 왜 이리 어렵지?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부담감과 거리감을 없애보겠다고 여행기를 열심히 쓰자 결심했었구나. 암튼... 여기저기 sns에 찔끔찔끔 뭐하는 짓인가 싶다. 암튼 원래는 아까 저녁 준비하며 인스타 용으로 희희낙락 사진을 찍었으나 결론적으로는 '분노의' 험담을 길고 길게 달것 같아 결국 블로그로 옮겨왔다.

여행기는 뭐 생각나면 다시 쓰든지... 말든지... ㅋㅋ


아래는 오늘 내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저녁 메뉴로 요리한 '등갈비 김치찜'의 자태다. 그럭저럭 먹어줄만 하게 생기지 않았느냐고!!!! ㅠ.ㅠ 

그 어디도 찾아보지 않고 그냥 내 머릿속으로 상상 혹은 기억을 더듬어 만들었으므로 누구에게도 맛을 장담할 순 없으나 내 입맛엔 흡족했던..<간단 레시피>를 적어보면 이러하다.

1. 큰 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돼지 등갈비(씻으면서 잠시 핏물 빼놨음)를 덩어리째 넣어 살짝 데친다. (돼지 갈비의 누린내와 핏물을 더 빼내는 거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2. 절반쯤 익은 등갈비의 뼈 사이사이를 가위로 쓱쓱 잘라준다.

3. 자른 등갈비를 찬물에 후딱 헹군다.

4. 등갈비를 포기 김치 윗동을 잘라낸 배춧잎으로 하나하나 돌돌 말아 새 찜냄비에 앉힌다.

5. 다시마, 표고버섯, (냉동실에 들어 있던) 저민 생강 몇 조각, 국물용 멸치 3-4마리 투척 후 김치에 만 등갈비가 확실히 잠길 정도로 찬물을 붓고 40분간 끓인다. 처음엔 센불로.. 나중엔 약불로. 

6. 중간쯤에 생강과 멸치를 건져버린 뒤, 설탕 1티스푼 추가 (대충 요리의 달인? 답게 어느 시점이었는지 까먹음).

7. 개인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나 소금을 더 넣어도 좋겠으나 매운 거 싫어하는 고혈압환자 고객님 입맛에 맛추어 아무것도 더 넣지 않았음.​


물론 그릇에 담으면서 아 먹기 불편하겠다 싶긴 했다. 이거 원 사진촬영용이지 막상 먹으려면 김치에 가위질을 해야하지 않겠나 말이다. 처음부터 잘라서 할 걸 에라이...

그치만 또 등갈비 한대랑 김치 한줄기랑 비율 맞춰 먹으라는 깊은 뜻이 있겠거니... 개인접시를 식탁에 놓았다. 요리 중 국물맛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요리 완성도에 자신도 있고 흡족했다. 오.. 깊은 맛이 나! 오.. 돼지 냄새도 거의 안나! 간도 슴슴하니 딱 맞아! 이런 자뻑모드에 돌입했던 것.

그러나 왕비마마가 또 누구신가. 입에 발린 말이라곤 절대 할 줄 모르고, 오로지 '진실과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걸 자랑으로 여기시는 분.

그걸 잘 알기에 맛있다고 칭찬해줄 것을 기대하진 않았으나.... 요번에도 왕비마마의 첫 마디는 "왜 이렇게 매워!"였다. 어윽... 그러더니 내가 일회용 장갑 양손에 끼고 일일이 돌돌 말았던(대체 나 왜 그랬던거니!!) 김치를 단숨에 풀어버리고 알맹이 등갈비만 쏙쏙 뽑아 냠냠 '맛있게' 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갈비라도 맛있다고 여겨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어야 하는 건데 왜 난 분노했을까... 에효. 


그간 나의 요리에 대한 왕비마마의 촌철살인 순위 1, 2, 3위를 이참에 공개한다. ㅋㅋ

1. 요리하는 냄새는 맛있는 것 같던데 막상 먹어보니 별 맛 없구나

2. 생김새만 그럴듯하지(내가 비주얼에 치중한다는 뜻) 먹을 건 별로 없네

3. 엄마 입엔 짜다(혹은 맵다)! 

그러니깐 요번엔 3번 당첨이다... 


거짓을 꾸며낸 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청구가 가능한 것처럼... 정말로 맵거나, 별맛 없거나, 맵고 짠 게 '사실'이더라도 낑낑대며 요리한 사람의 정성을 봐서라도 그런 생각은 좀 속으로 하시거나 나중에 시간 좀 흐른 다음에 넌지시 얘기해달라고, 까칠한 딸에겐 그런 촌철살인 코멘트가 다 괜한 상처로 남는다고(밥순이 노릇 하기 싫어진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만족시키긴 또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 고객님이신지 원. 그러면서 밖에 나가서 사먹자고 그러면 니가 만든 게 더 낫다는 말이나 하시질 말든지! ㅠ.ㅠ

암튼 오늘도 까칠한 딸년은 밥상머리에서 첫술부터 푸르르푸르르 분노에 떨며 저녁을 먹고는 속병이 나 위가 아프다. 이건 아마도 마감 스트레스겠거니, 아니 한달 넘게 이어진 간병 스트레스겠거니.. 그러면서 부디 대나무숲 같은 이곳에 떠벌인 것으로 좀 나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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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놀잇감 2016. 10. 19. 15:33

배가 고프면 남들보다 심히 화가 나는 성격이라고 알고 살았는데, 요샌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화가 나면 폭식 경향도 보이는 것 같다. 원래도 배고플 때 공기에 밥을 담으면 고봉밥, 머슴밥을 퍼놓고 낄낄대지만서도... (배고플 때 장보면 쓸데없는 물건을 마구 계획없이 사기 때문에 빈속에 마트 가선 안된다는 보편적 진리가 있는 걸 보면 다들 비슷할수도 있겠다)

암튼 점심 준비 앞두고 속상한 문자와 통화를 한 탓에 칼질부터 손길이 마구 거칠어지면서 욕심도 양도 대폭발했다. 정신없이 잘라 프라이팬에 던져넣은 채소를 불에 올려 볶으면서, 그제야 2인분으론 너무 많군,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서 사진을 찍어댔다. 이럴 땐 정말 블로그는 나의 힘, 나의 위로다. ㅠ.ㅠ

1. 점점 비어가는 냉장고 파먹기의 일환으로...양파, 새송이버섯, 브로컬리, 통마늘, 단호박을 대~충 잘라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에 볶는다.


2. 냉동실에 있던 닭가슴살도 해동해서 잘라넣고...(1인당 하루에 고기 100그램 먹어야한대서) 좀 더 볶다가


3. 시판 토마토 소스 서너 숟갈, 면수 한국자(소스 병 헹구느라고...), 우유를 좀 부어 바글바글 끓인다.


4. 왕비마마가 딱딱한 국수 딱 질색이라 알텐테는 집어치우고...10분간 푹푹 끓인 스파게티 면을 소스에 건져 넣고 좀 더 뒤적이다 접시에 담으면 완성. 오늘은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나만 스누피 접시에 담아 먹었다. 

5. 포스팅용이라지만 예쁘게 소량으로 담는 연출까지는 귀찮고, 그래도 파슬리 가루랑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뿌리는 정성으로 마무리. +_+


아니 이거슨... 이탈리아 머슴밥인가 싶게 양이 엄청났는데(원래도 늘 채소가 많아 1인분에 국수 80그램 딱 저울에 재서 삶는데 오늘은 부재료가 많아 150그램만 삶았는데도;;) 사진으로 보니 위에서 찍어서 수북한 느낌이 다행히도 잘 안보인다. 

놀라울 정도로 국제적인 입맛을 갖추신데다 국수 종류는 죄다 좋아하는 왕비마마 덕분에 사나흘에 한번은 파스타를 해먹는 것 같다. 점심 때도 맨날 밥 먹기 싫어서 하루 한끼는 노상 떡만두국, 우동, 칼국수 따위 '분식'으로 돌려막기를 하기 때문이다. 큰 마음 먹고 밀가루 반죽 해 수제비 씩이나 해먹은 날도 이건 포스팅 감이야.. 생각은 하지만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된 상태로는 거기까지 정성이 미치지 못한다. 아이폰을 아끼는 건가? ㅋ 

맛은 어땠냐고? ㅠ.ㅠ 그게 문제다. 뭘 만들어도 기본적인 맛이 보장된다는 거. 요리를 못하거나 싫어하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종종 부럽다. 본인이 고생할 이유가 없는 거다!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먹고 행복해하면 끝. 집에서 자주 파스타까지 대령하면서, 웬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선 왕비마마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_+ 바깥 음식은(특히 음식점 파스타는) 짜기만 할 뿐, 가격 대비 양도 너무 적고 내가 만들어 드린 게 더 맛있다는 총평을 매번 내리심. 녜, 녜, 앞으로도 손수 만들어바치겠습니다요... 

식후 세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속이 그득한 걸 보면, 심히 많이 먹은 건 확실하다. 화나서 폭식하고, 그래서 졸음 쏟아져 낮잠 퍼져 자면 아주 완벽하게 식충이다운 삶이겠으나 다행히도 마감에 쫓겨 그 지경까지는 못감. 커피나 찐하게 만들어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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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자랑

놀잇감 2015. 7. 28. 22:45

친구가 도자기 공방하는 친구에게 특별 주문해서 만든 스누피 접시를 선물했다 ^^
아까워서 전시해놓고 구경해야겠다고 했더니 매일 사용하는 막접시로 만들어 달랬다며 당장 쓰라고 종용. 사용 인증샷도 보내라고... 
해서 받아온 날로 당장 샐러드를 담아 먹었고 진짜로 거의 매일 써먹으며 친구에게 보고용 사진을 찍었다 ㅎㅎ

포스팅을 위한 삶을 인증하는 것 같아 좀 민망하니 사진은 접어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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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놀잇감 2015. 4. 23. 00:21

어느날의 밑반찬이다. 

넉넉히 만들어서 멸치볶음이랑 피클까지 4종세트로 막내고모네도 날라다주었다. 그랬더니 고모가 레시피를 달라고 해서 카톡으로 대충 적어보낸 걸 여기도 퍼다놓는다.착한 조카 코스프레. 


새송이버섯 장조림


1. 달걀을 완숙으로 (7-8분) 삶아 까놓는다
2. 새송이버섯을 씻어 통으로 절반만 자른다
3. 냄비에 버섯을 넣고 간장과물 1:1 정도의 비율로 넣고 10분쯤 끓인다. 버섯에서 물 많이 나오니 물 많이 넣을 필요 없음. 
4. 고기장조림처럼 통마늘 생강 풋고추 넣어서 향긋한 맛 추가
5. 끓기 시작하면 작은불로 줄여서 10분쯤 졸이다가 버섯에 간장색이 다 뱄다 싶으면 삶은 달걀 넣고 뒤적이며 같이 좀더 조린다
6. 식은 다음에 버섯을 쪽쪽 찢어서 그릇에 담으면 끝.


브라질식당에서 먹은 비나그래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콩샐러드(?) 


1. 파프리카 빨강, 노랑, 주황, 적양파(없으면 그냥 양파), 오이, 당근, 적채(적양파 들어가면 생략가능), 토마토(좀 단단한 걸로)를 먹기 좋은 크기로 콩알만하게 자른다.

2. 통조림 옥수수 국물 꽉 짜서 넣고 캐슈넛이랑 아몬드, 삶은 병아리콩 넉넉히 넣고 청*원 프렌치발사믹 소스에 버무리면 끝. 

3. 파슬리 가루 좀 뿌려주고....

그밖에 아보카도, 소금 좀 넣고 삶은 울타리콩을 넣어도 된다. (위 사진엔 통조림 옥수수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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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무국

식탐보고서 2015. 3. 6. 01:40

한밤중에 일하다 말고 종종 국을 끓인다. 큰 냄비에 잔뜩 국을 한번 끓이면 꼬박 서너끼는 먹을 수 있는데, 공교롭게 딱 엄마가 홀로 챙겨드실 아침에 먹을 국이 없으면, 괜히 신경이 쓰여서 일도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저녁 설거지 하면서 미리 생각해서 찌개나 국을 만들어놓기도 하는데, 오늘은 냉동실에 얼려놓은 고기 녹이는 걸 너무 늦게했다. 


여름엔 당연히 잘 안 끓이고, 봄과 가을에도 종종 생략하지만, 추운 겨울 동안엔 밥상에 국이나 찌개가 없으면 아무리 반찬을 많이 해놓아도 밥순이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 같은 자격지심에 휩싸인다. 뜨끈한 국물은 고혈압의 적! 아무리 싱겁게 끓인다 해도 국물은 남기시오! 찌개랑 국도 그냥 젓가락으로 건더기 위주로 먹기! 밥상머리에서 온갖 잔소리를 해대면서 또 국물이 없으면 찔리는 건 뭔가. 쳇...


해동한 쇠고기를 덩어리째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그 사이 물을 끓이다가 고기를 풍덩. 통마늘도 대여섯 개 투입. 대파와 표고버섯도 숭숭숭 썰어넣은 뒤, 고기 익는 동안 달큰한 제주도 무를 나박나박 썰었다. 쇠고기 무국은 정말로 겨울에 먹어야 제일 맛있는 듯. 여름무는 종종 쓰고 매워서 똑같이 끓여도 맛이 없다. 30분쯤 끓여서 덩어리 고기가 다 익으면 집게로 붙잡고 가위로 조각조각 먹기 좋게 자른다. 식가위 없을 땐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몰라. 포기 김치도 당연히 가위로 잘라 먹는데, 이젠 아주 제법 가지런히 도마에 자른 것처럼 차곡차곡 잘라 그릇에 담는 신공까지 익혔다. ^^v


물론 명절이나 제사 때 올리는 탕국을 끓일 땐 상스럽게(!) 가위질을 하면 안되니깐 특별히 좋은 양지를 사다가 익혀서 결 따라 찢어 따로 국간장에 참기름에 갖은 양념을 해 놓았다가 고명을 올리듯 다시 탕국에 데워 수북하게 놓는다. 그치만 그냥 두 모녀 먹자고 그런 정성을 들이긴 싫다! 가끔 괜한 정성이 뻗쳐서 얼마 되지도 않는 뜨거운 고기를 건져 양손에 비닐 장갑 끼고 찢고 있노라면 괜히 서러워지는 걸 ㅠ.ㅠ 암튼 그래서 대충 먹는 쇠고기 무국 고기는 그냥 가위질로 낙착. 무는 금방 익으니깐 투입 시간은 고기 자르고 나서.


고기가 더 잘 무르기까지 총 1시간은 족히 끓여야하니 계속 시간을 확인하느라고 어차피 일엔 집중할 수가 없다. 자칫 까먹고 있다가 몇시간 지나 홀라당 국물이 졸아버리면 큰 낭패. 국냄비는 아직 그런 적이 없지만 찻주전자는 물 올려놓고 딴짓하다 하도 많이 태워먹어서리... -_-;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긴다. 요번에 표고버섯이 좋았나? 아니면 무가 특히 달콤한가? 아직 소금도 넣기 전인데 다른 때보다 더 감칠맛 나는 냄새가 풍기는 이유는 뭐지? 쇠고기는 늘 사던건데... 이건 마치 그 옛날 방학때 놀러간 외할머니댁에서 아침 일찍 잠결에 풍겨오던 추억의 냄새 같기도 하고. ㅋㅋ 우리집이나 친할머니 댁에선 특별히 아침밥 준비하는 냄새에 잠을 깬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한옥집의 구조 때문인지 외할머니댁에서 자면 안방에서 자든, 건넌방에서 자든, 뒷채 구석방에서 자든 고소한 나물 볶는 냄새나 구수한 국 냄새에 선잠이 깨곤 했다. 심지어 새까만 가마솥에 짓는 밥냄새도 분간이 되어, 노랗게 일부러 눌렸다가 통째로 들어내는 바삭한 가마솥 누룽지 먹을 생각에 자다말고 침을 삼기키도.


물론 일찌감치 아침밥 먹으라고 할머니가 깨우면 이잉 이불 쓰고 누워 버티다가 느즈막하게 한번 더 차린 아침상을 게으름뱅이들끼리--외삼촌들, 사촌언니, 그리고 나--둘러앉아 먹었었다. 그때 먹은 무국엔 분명 쇠고기는 없고 다시마랑 무랑 표고버섯이랑 유부가 들어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 내가 끓이는 거랑 냄새가 똑같다고 느껴지는지? 내 착각이 틀림없다. 내가 '기억'한다고 우겨대는 수많은 추억들이 상당부분 왜곡되어 실제와 거리가 있듯이, 추억으로 남은 냄새도 내가 막 제멋대로 꾸며댔을지 모르겠다. 


느릿느릿 이 글을 적어대는 사이 1시간 경과. 드디어 소금으로 슴슴하게 간을 하고 가스불을 껐다. 이젠 그만 일할 시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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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투덜일기 2014. 2. 14. 17:35

일주일이 아직 다 가지 않았는데, 직딩 시절 월요일부터 연일 야근에 시달리다 맞은 금요일처럼 축 늘어진 파김치 신세다. 그간은 약간씩 '기운'만 돌다 말았을 뿐 매번 내가 먹어대거나 푹 쉬거나 하는 수법으로 늘 물리쳤던 감기가 드디어 내 면역력을 넘어섰다. 다행히 요즘 유행한다는 독감은 아니고 그냥 지저분한 콧물감기. 요란한 재채기 몇번 이후 코찔찔 흘리느라 목소리가 변했다. 코를 풀다풀다 지쳐 코주변에서 껍질이 벗겨질 때쯤이면 감기가 떨어지겠지.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었다. 삐까번쩍 멋지게 들어선 아트센터 건물에서 거행된 졸업식은 어쩜... 수십년 새 그렇게 하나도 안변했을 수가 있나. 심지어 더 나빠진 것 같다. 예전에도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불렀던가? 어쨌거나 저 아래층의 학생들도 2층 객석의 나도 몸을 배배 틀며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개그콘서트에서 박지선이 늘 "몸이 고생을 기억해요~" 따위의 대사로 웃기는데, 30년 넘게 부를 일 없었던 교가와 졸업식 노래가 다 기억나서 깜짝 놀랐다. 하와이 민요에 붙인 그 졸업노래는 딴 데 가서도 진짜 들을 일 없을 텐데 ㅋ.

 

식이 끝난 후 멀고먼 교실 건물까지 또 낑낑대고 따라가서 보니 여전히 복도는 좁아터져 학부형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고, 저 안에 어떻게 70명이 바글거리고 앉았나 싶게 교실도 작았다. 이제는 학생 수가 그 절반도 안되는 30명이라던가. 왁자지껄한 교실엔 그래도 누군가 풍선도 매달고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종이도 붙여 놓았고 교탁에 케이크도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담임이 뭐라고 하건 말건 지들끼리 수시로 왁왁 괴성을 질러대는 아이들이 나는 조금 무서웠다.

 

모든 게 끝나고, 싫다고 도망치는 조카를 애써 담임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지만 당연히 흔들려 하나도 건질 게 없다. 괜히 찍으라고 그랬나.

 

 

 

돌아오는 길에 봐온 장으로 어젠 또 종일 대보름 먹거리를 준비했다. 여름부터 엄마가 말려놓은 호박, 가지, 시레기, 나물 3종세트에 콩나물과 시금치를 더해 5종 세트 완성. 9가지엔 못미쳐도 그나마 작년보다 한 가지 더 많아졌다. 냉장고가 그득하니 안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지금 배가 부른 건 오곡밥을 하도 많이 먹어서지만...

 

고된 일주일을 씩씩하게 보낸 나에게 장하다고 뭔가 상이라도 줘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날짜를 보니 발렌타인 데이. 옳다구나 냉장고를 열어 친구가 보낸 초콜릿을 한귀퉁이 쪼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달콤쌉싸름한 카카오의 맛이 고단함을 달래 잠시라도 영혼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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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적고보니 뜬금없이 노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폭포가 '나이야가라'라는 관광버스 유머가 생각났다. -_-; 암튼 인간의 탐욕 때문에 좁고 더럽고 스트레스 심한 환경에서 사육된 조류들의 질병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세상이 좀 바뀌면 좋겠다. 읽혀 먹으면 닭고기 오리고기는 아무 문제없다고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마트나 시장에서 일단 닭과 오리를 사기가 힘들어진 것 같고 (특별 할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지 않으면, 아예 매장에서 제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AI가 수도권까지 퍼졌으니 죄다 살처분하고 나면 당분간 닭고기 오리고기 값은 고공행진일듯. 이런 악순환은 좀 어떻게 안되겠니!

 

먹거리 포스팅이 뜸하다는 나무샘의 요청에 힘입어, 그리고 AI가 수그러들기를 바라는 닭고기 애호가의 마음으로 그간 먹어댄 닭고기 음식 사진을 모아보았다. 닭고기는 정말이지 어떻게 요리해도 맛없기가 어려운 재료가 아닐지. 내가 다 애정하는 집들인데, AI 때문에 닭수급에 어려움이나 심히 겪지 않기를 바란다.

 

1. 동대문 원조 닭한마리 칼국수

 

내가 동대문 시장 뒷골목에 자리잡은 양푼 닭한마리 칼국수를 처음 접한 건 90년대 초. 같이 졸업한 학교 선배가 동대문 근방 청계천변에 헌책방을 인수했고, 개업 축하 비슷하게 친구들과 몰려갔던 날 선배가 닭고기의 신천지를 소개했다. ^^;

등에 감자를 꽂은 닭 한마리가 통째로 냄비도 아니고 커다란 양푼에 담겨 나오는데, 시커먼 가위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어설프게 가위질을 할라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어우... 근데 겨자와 간장 식초 따위를 넣은 양념장에 찍어먹는 닭고기 맛이 그야말로 신세계! 인근 시장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술집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자주 갈 기회도 없었는데 회사 생활 때려치우고 번역을 한답시고 준백수처럼 대낮엔 학원다니고 나이 어린 친구들과 몰려다니게 되자,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선생들이 이런 험악한 음식을 더 좋아할줄이야! (국물까지 싹싹 저 양푼을 바닥까지 비우고는 뿌듯해하며 여럿이 양푼 쳐들고 찍은 엽기 관광객 모드 사진도 어딘가 있다) ㅎㅎ 암튼 동대문에 밀리오레, 두타 같은 패션타운이 생겨나면서 야시장 구경을 수시로 다녔던 시기까지 겹쳐, 30대 중반까지 참 많이도 먹으러 다녔다. 그러나 그 뒤로 너무 유명해지고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점점 외국 관광객들을 포함해 찾는 사람들도 많아져 줄을 오래 서야하는 게 싫어 이젠 아주 많이 별러야 가는 정도. 정 먹고 싶으면 집에서도 비슷하게 흉내내서 끓여먹기도 하는데, 맛을 똑같이 낼 순 없다. 그러니 노상 그렇게 사람들이 많겠지. 90년대에도 이미 주인 할머니는 여름 내내 하와이 별장에 가서 쉰다는 둥, 빌딩이 수십채라는 둥 갑부설이 나돌았었다. ^^; 저 사진을 찍어온 날은 울 엄니까지 대동하고서 추위를 뚫고 동생네랑 갔었는데, 노인 동반 대가족 프리미엄 덕분에 줄 서 기다리는 남들보다 금방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이고, 그러고 보니 20년 넘게 다녔다는 얘기다. 중간에 가게에 불도 나고 아들이 분점 내면서 맛이 변했네 어쨌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째뜬 20년 넘게 안 없어지고 건재하는 게 고맙다. 시장통 골목 음식점이라 위생이니 친절이니 꼼꼼하게 따질 순 없지만 묘한 중독성을 지닌 맛인 걸 어쩌겠나. 추릅.... 올 겨울 가기 전에 한번 더 가봐야지. 

 

2. 춘천 우성 닭갈비

 

작년 가을 남이섬에 갔을 때 선착장 근처에서 도저히 닭갈비라고 부르기에 화나는 수준의 닭갈비를 먹고는 춘천 원조 닭갈비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그 다음 달에 다녀왔다. ㅋㅋ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명동 닭갈비 골목 말고 춘천 시민들이 간다는 바로 그 우성 닭갈비! (파피야 고맙다 ^^;)

삽처럼 커다란 뒤집개가 아주 인상적이지 않은가? ㅎㅎㅎ

원래 닭갈비는 숯불에 구워먹는 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닭갈비는 저렇게 철판에 볶아먹어야 제맛인 것 같다. 방산 시장 가서 저런 철판을 사다가 한번 해먹어보면 비슷한 맛이 나려나 늘 궁금한데, 그런 수고를 들이느니 그냥 춘천으로 먹으러 다니는 게 낫지, 그러며 참는다. 알싸하고 시원한 동치미까지 곁들여 먹으려면 암.. 가서 먹어야하고 말고.

이날 꽤 아침 일찍 서둘러 갔기에 내 생각 같아선 소양댐도 올라가고 청평사도 가고 그럴까 싶었으나, 동행의 반대로 소소하게 공지천 산책길만 둘러보고 춘천MBC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고는 휭하니 올라와 좀 아쉬웠다. 순전히 닭갈비 먹으려고 춘천 가는 여자다 나. ㅋㅋ 

 

 

3. 부암동 계열사 치킨

 

부암동 치킨집이 서울 3대 치킨에 든다는 말을 들은 터라, 김환기 미술관 구경갔던 날 꽤나 벼르고 기대해서 찾아간 곳.

요즘 추세처럼 튀김옷에 온갖 양념과 자극적인 맛을 첨가하는 게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담백하게 튀겨낸 치킨이었다. 치맥은 진리~ 라며 생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먹으니 맛은 있었지만, 진짜로 이게 서울 3대 치킨이라고?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음. 물론 치킨과 같이 나오는 큼지막한 감자튀김이 흡족했고 둘이서 배가 터지도록 바구니를 싹 비웠지만, 소문처럼 그렇게 몇시간씩 줄 서서 사먹을 만한 맛인줄은 잘 모르겠다. 다행히 이 날은 춥기도 했고 평일 저녁이라 줄을 서야하는 문제 따윈 없었으나, 우리가 나올 무렵엔 거의 자리가 없었다. 듣자하니 맥주를 제외한 안주메뉴는 추가주문이 안된다고. 골뱅이 세트도 있는데 그런 건 앉자마자 시켜야한다는 뜻. 켁.. 하여간 저 한바구니에 2만원이다.

나중에 부암동 주민께 물어보니, 원주민들은 이집보다 되레 그 골목 안쪽에 있는 다른 치킨 집 맛을 더 쳐준다고... 나중엔 그 집에 가서 한번 먹어보고 비교해야지.

 

 

4. 백숙

 

 

사실 닭고기는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 해먹는 것 같다. 백숙과 안동찜닭을 번갈아 해먹는 중간중간 닭안심을 사다 얼려두고는 스파게티에도 넣으니까. 하지만 토종닭 백숙은 뭐 딱히 요리랄 것도 없어서 사진을 찍어둘 생각도 하지 않는데,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서식 안내서를 들고 낑낑대는 동생들을 불쌍히 여겨 언젠가 찍어둔 사진이 생각났다. ^^;

우리집은 제기 설거지를 최대한 피하고 얼른 우리가 상 차려 먹을 수 있도록 기름기 있는 음식은 죄다 접시에 올려 제기로 받치기만 한다는 사실~!

그러고 보니 요번 설날 차례 때는 단감을 사과 왼쪽에 둔 것 같은데 쩝;;; ㅋㅋㅋ 

하여간 차례나 제사때는 어쩔 수 없이 저렇게 껍질째 통닭을 삶지만, 평소 먹을 땐 끓이기 전에 껍질과 꼬리, 온갖 지방을 완전히 제거한 뒤에 담백하게 삶는다. 차례와 제사 때도 통대파와 통마늘 듬뿍 넣고 푹푹 삶아 건져버림. 순전히 산자들이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이라규~ 

 

 

5. 단호박 치킨 파스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마지막 닭안심을 녹여서 바로 어제 해먹었다.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담았어야 하는데, 가지런히 담았던 엄마 접시는 이미 시식중이셨고, 마침 모짜렐라 치즈 얹은 파스타 해먹는다는 자랑에 친구가 사진 보내보라고 해서 찍은 거라 민망타. 

냉장고에 있는 채소랑 마늘, 닭고기 대충 볶다가 우유 붓는 걸로 화이트소스 끝. 

닭고기는 정말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는 재료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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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준비로 명절 며칠 전부터 꽉꽉 채워놓았던 냉장고 두대가 드디어 거의 다 비었다. 그간 남은 명절음식으로 꽤나 편하게 먹고 지냈는데, 어젠 드디어 먹을 게 없어서 새로이 된장찌개를 끓여야 했다.  빨랑 장을 봐다가 뭐라도 밑반찬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끼니 때마다 까칠녀의 짜증이 폭발할 위험이 있다. 하늘은 왜 내게 오만가지 식탐만 내리고, 김치나 반찬 한 개만 놓고도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착한 식성은 주지 않았는지.... 젠장. 거기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세트로 껴안고 계신 대비마마까지. (왕비마마에서 대비마마로 호칭을 바꿔볼 요량이다. 그럼 내 신분도 올라갈 수 있을지도 ㅋ) 

 

그나마 냉동실에 얼려두고 쓰던 표고버섯이며 닭고기도 동났고, 굴비도 추석때 끝을 보았다. 주기적으로 텅텅 비는 냉동실과 냉장고를 보면서 스스로 꽤나 알뜰하게 살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냉동실에 정체모를 검정비닐과 하얀비닐 덩어리가 그득하게 들어있는 거, 난 너무 싫다. 그렇다고 냉장고 CF에 나오는 것처럼 훌륭히 정리된 건 아니지만, 째뜬 평소에 냉동실은 절반 이상 비어있어야 뿌듯하다. 그래야 냉커피 탈 때 얼음에서 이상한 냄새도 안나고 말이지...

 

어제부턴 냉장고와 냉동실을 아무리 열었다 닫았다 해도 딱히 뭘 해먹을 게 없어서 항상 면식을 추구하는 점심 끼니도 이틀 내리 소면을 삶아 나박김치에 말아먹었다. 파스타도 알리올리오는 가능하겠지만, 같이 먹을 채소거리가 없어서 안되겠다. ㅠ.ㅠ 4분의 1쯤 남은 무토막과 당근 자투리만 나뒹구는 냉장고를 보며 이상스레 먹고싶은 건 많은데, 장보러 나가긴 싫으니 참;; 

 

째뜬 명절 노동의 강도로 깡그리 사라져버린 요리 본능과 의욕을 되살려보고자 그간 찍어놓은 음식 사진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다. 아마 요리할 땐 주로 심술을 부리고 있어서 사진찍고 어쩌고 할 마음이 안들기 때문이리라. 요리에 병원놀이까지, 현대판 장금이가  따로없다고 자화자찬에 킥킥거리면서도 막상 현실에선 표독스런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으니... 헛헛.

 

어쨌거나 날도 더운데 이리도 잘 해먹고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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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먹는 방법

놀잇감 2013. 4. 29. 01:54

먹방계의 빛나는 샛별 윤후(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모르시는 분은 패스~ ㅋㅋ) 덕분에 삶은달걀과 달걀 프라이의 진가를 새삼 알았다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걸로 안다. 집집마다 냉장고에 달걀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도, 그간 달걀은 나쁜 콜레스테롤의 주범 정도로나 인식되다가 다시 오명을 벗고 맛난 간식거리로 재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체질상 콜레스테롤 높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에 달걀 노른자를 비롯해 기름진 육류, 오징어, 갑각류 따위를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달걀을 사랑하며 종종 밤참으로도 애용한다. 달걀이 지금처럼 흔하고 싸지기 전, 퍽이나 고가의 먹거리였던 시절을 내가 아주 잘 아는 세대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어쨌거나 내게 '달걀 프라이'의 이미지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이렇다. 방학 때 놀러간 외할머니 댁. 방바닥에서 만화책 읽으며 오후 내내 뒹굴거리던 막내 외삼촌이 배가 출출하다며 부엌에 얼굴을 들이민다. 계란 부쳐줄까? 이름이 '언년이'였던 식모 언니가 달걀 한두 개를 얼른 들기름에 부치고 소금을 살짝 뿌려 접시에 담아 삼촌에게 안긴다. 젓가락으로 후루룩 쩝쩝쩝 맛있게 달걀 프라이를 먹던 외삼촌은 선심쓰듯 달걀 흰자 한 귀퉁이를 잘라 내 입에도 한번 넣어준다. 그러고는 접시를 마실 듯 나머지 달걀을 통째로 폭풍 흡입. 집에서도 엄마가 밥 반찬으로 부쳐주는 달걀 프라이를 안먹어본 게 아닌데도, 그때 한 입밖에 못 얻어먹은 달걀 프라이의 고소함과 아쉬움이 어찌나 컸던지 어린 마음에 집에 가면 제일 먼저 엄마한테 달걀 프라이 해달라고 해야지 결심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에 집에 가서 간식으로 먹어본 달걀 프라이는 그날처럼 기막히게 맛있지 않았다. 다른 날인가는, 외할머니가 야박하게 외삼촌만 달걀을 부쳐줬다고 식모언니를 나무라며 내 달걀도 새로 하나 부쳐주라고 하셨지만, 당당히 내 접시에 담긴 달걀 프라이를 먹으면서 왜 그날과 맛이 다를까 의아했었다. 따끈하고 고소하고 엄청 맛이 있긴 한데 외삼촌이 한 입 선심썼을 때보다는 맛이 덜한 느낌. 당연히 결핍과 선망 때문이었겠지. ㅎㅎㅎ

 

내가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는 앞뒤로 다 뒤집어서 익히되 노른자가 살짝 덜익은 느낌이 남아있는 반숙 상태다. 노른자가 다 익으면 뻣뻣해서 맛이 없고, 그렇다고 노른자 전체가 다 안익어 출렁거리면 비린내 나는 것 같다. 영어로 '오버 이지(over easy)'와 '오버 하드(over hard)'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이런 달걀 프라이는 '오버 미디엄(over medium). 가리는 것 없이 탐식하는 편이면서도, 난 참 웃기게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그러니 스스로 인생을 볶아댄다고 할밖에. 누가 요리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해먹고 살아야하면서 따지는 게 많으니 원! 만약에 영어권 외국 식당에 가서 내 취향대로 달걀 프라이를 시키려면? I'd like my fried eggs 'over medium'. 정도로 이야기하면 될 듯. 앞뒤 잘라먹고 FRIED EGG OVER MEDIUM, PLEASE! 이라고 외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 (여행 나가보면 영어 좀 한답시고 긴 문장 만드느라 우물쭈물 하는 나 같은 사람보다 핵심 단어만 팍팍 외쳐주시는 분들이 더 잘 먹고 대접받고 다닌다. 예절보단 생존이 더 중요한 거니까...)


 '오버 이지'니 '오버 하드', '오버 미디엄'이니 하는 말이 나온 김에 달걀 먹는 방법이나 총망라해볼까나. 소싯적 10년간 거의 영어는 글로만 배웠고 전공수업때도 외국인 교수 수업은 필수만 수강했던 내가 달달 외운 자기소개와 버벅거리는 인터뷰로 미국회사 서울사무소에 덜컥 들어가게 될 줄이야. 암튼 실수연발의 신입 생활 중 뉴욕 출장까지 가서 배운 서바이벌 잉글리시는 참 오래도록 유용했었다. 특히나 주말에 자기 집에 데려가 재워주고 먹여주며, 에그프라이는 '서니사이드 업'만 있는 줄 알았던 내게, '오버 이지'부터 '오버 하드'까지 실전에서 가르쳐준 지미아저씨에게 축복을... ㅋㅋ

(달걀프라이의 익힌 방법과 정도에 따라 왼쪽부터 sunny side up, over easy, over hard의 순이다. ^^;)

 

 

사실 내가 밤참으로 주로 챙겨먹는 달걀요리는 삶은달걀이다. 오죽하면 내가 일전에 달걀 삶는 법에 대한 포스팅도 했을라고. -_-;; 삶은 달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간식, 소풍 먹거리, 기차여행 먹거리겠지만 나에겐 약간의 문화적, 언어적 충격 비슷한 것과 엮인 또 다른 추억이 있다.  

 

직장 시절 마지막 해, 이미 번역으로 이직을 결심하고 사표까지 던진 마당에 여차저차해서 영국 출장을 가게 됐다. 그것도 전무님 이하 상관 몇명을 '수행'하는 임무. 본인도 버벅거리면서 영어라고는 굿모닝 정도인 사람들을 데리고 참 뭘 하겠다고 거기까지 갔었는지, 나도 참 불쌍한 신세였는데 그 한탄까지 할 건 없고 암튼 4, 50대 아저씨들 셋을 대동하고 다니며 끼니 때마다 메뉴 설명에 요리 대리 주문에 반주로 마실 술 고르기까지, 늘 머리가 지끈거렸다. 온갖 생선 종류를 비롯해 음식 재료 영어는 특히 어려웠다! ㅠ.ㅠ

 

이른바 '브리티시 브렉퍼스트' - 버섯은 없었지만 대체로 이와 비슷했고 대신 달걀프라이가 두개였음

작은 호텔이라 차려진 조식뷔페는 없고, '브리티시 브렉퍼스트'와 '컨티넨털 브렉퍼스트'를 주문할 수 있었는데 한국 아저씨들이야 당연히 묵직한 브리티시 브랙퍼스트 통일. 문제는 둘쨋날인가 아침에 발생했다. 베이컨 기름에 쩔은 '프라이드에그 서니 사이드 업'도 '스크램블드 에그'도  느끼해서 부담스러웠던 터에,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영국 할아버지가 앞두고 있는 달걀의 모습을 발견한 거다. 어라, 어떻게 달걀이 서 있지? 홀로 신문을 읽으며 천천히 토스트에 쨈과 버터를 발라 한입 깨물고 난 영국 할아버지는 나이프를 들어 달걀 머리를 후려쳤다. 후려친 부분의 달걀 껍질을 벗겨내고나서 후추와 소금을 뿌려 티스푼으로 달걀 속살을 맛나게 떠먹는 영국인 할아버지...

 

당장 전무는 우리 일행도 달걀을 '저렇게' 주문하라고 요구했다. 아... 난생 처음 보는 저건 또 뭔가. ㅠ.ㅠ 난 좀 당황했지만 언제나 "땡큐 베리 머치 인디드"라고 말끝마다 방점을 찍는 친절한 웨이트리스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우리도 그 난생 처음보는 달걀요리를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 다시 말해 달걀프라이 대신 따끈하게 삶은 달걀(boild egg)을 먹게 된 것인데,  그게 어찌나 신기했었는지. ㅋㅋ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하드 보일드 소설이 바로 완숙달걀을 뜻하는 '하드 보일드 에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고는 아오... 외국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가 번역을 한답시고 뛰어들어도 되나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날 우리가 얼핏 보기에 달걀이 어떻게 홀로 서 있나 의아했던 이유는 '에그 컵' 때문이었는데, 대체로 오른쪽 사진처럼 생겼다. 우리가 갔던 영국 남부의 그 작은 도시 해변 호텔의 에그컵은 거의 소주잔 반만 한 크기에 하얀색이라 더 분간이 안됐던 것. 그날부터 출장기간 내내 아침 식사 때마다 우린 베이컨과 소시지 외에도 삶은 반숙 계란을 두개씩 깨서 퍼먹는 즐거움에 탐닉했었다. 같은 삶은계란이라도 껍질 까는 거 귀찮아서 마누라가 까줘야 겨우 먹는다는 아저씨들이 집에 가서도 전파해야겠다고 막 흥분해주시고... ㅎㅎㅎ

 

아무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밤참으로 달걀을 삶으면 에그 컵을 어디선가 장만해야하는데 하며 조금 아쉽다. (뜨거운 달걀 쥐고 퍼먹으려면 만만치가 않다규~). 나중에 우리나라 호텔에서도 어디선가 조식 뷔페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일반 그릇 파는데서 에그 컵을 파는 걸  발견하진 못했다. 열심히 안 찾아본 탓도 있겠지만...

 

 

 

 

 

에고 밤참으로 달걀 삶아먹어야지 생각하며 시작한 포스팅이 사진 찾고 어쩌고 하다가 너무 길어졌다. 힝, 오늘은 두개 삶아 먹어야지! 뚜껑 깨먹는 삶은 달걀은 보들보들해서 소금 칠 필요도 없고, 껍질 잘 안까질까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으니 귀차니스트에겐 금상첨화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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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휴재중이라 토요일마다 작은 재미 하나가 사라졌지만, <역전 야매요리>는 내가 열심히 찾아보던 네이버 웹툰이다. 거친 솜씨로 뚝딱 그럴듯한(그러나 맛은 보장할 수 없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면 정말 유쾌하다. 다른 건 따라해보고싶다는 생각이 거의 안드는 편이었는데, 오븐도 없이 전기밥솥이나 전자레인지로 '베이킹'을 시도하는 걸 보면 한번 나도 해봐?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 이눔의 식탐 때문... 그리고 왜 한달에 한번 그 시기가 도래하면 단거 안 좋아하는 나도 달달한 게 땡기는지 원...

그러다 어젯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오늘 새벽 2시쯤 나의 뇌에서 갑자기 '케이크'를 섭취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핫케이크 가루도 있겠다, 굴러다니는 딸기도 있겠다, 빵에 발라먹던 휘핑크림도 있겠다... 당장 실천에 들어갔다. 전기압력밥솥 설명서에 들어있는 생크림 케이크 요리법도 참고하여, 역전 야매요리 크리스마스 케이크 편도 다시 찾아 읽었다.

베이킹은 계량이 생명이라는데 남은 양으로 대충대충, 에라 모르겠다 마구 거품을 내고 뒤섞어 밥솥에 뙇! 넣고 기다렸는데 ㅋㅋㅋ 양이 너무 많았는지 만능찜 40분으로 다 되기는커녕, 20분+25분을 더하여 총 1시간 25분만에 떡같은 빵판이 완성되었다. 그 다음엔 빵칼을 휘둘러 층을 낸 뒤 쨈과 생크림을 바르고 견과류와 저민 딸기를 올리고... 마지막에 다시 생크림으로 뒤덮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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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한참 식힌 다음에 생크림을 발랐어야 하는데 성질 급하고 배고파서(밤참 먹는 시간 지났다규~!) 뜨거울 때 막 발랐더니 금방 크림이 다 꺼져서 막 질척해지고....  ㅋㅋㅋㅋ  다음에 또 한밤중에 케이크가 먹고싶으면 꾹 참았다가 사다먹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오늘 왕비마마께 볼품없는 꼬락서니의 케이크 한 조각을 바치니 "케이크장사 다 망하겠다"는 촌평을 해주시었다.
재미삼아 아래는 비교샷

출처: 역전 야매요리

당연히 역전야매요리, YOU WIN!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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