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1.09.04 엄마들은 왜 그럴까 1 1
  2. 2012.01.26 빗질 13
  3. 2011.09.22 오래된 물건 12
  4. 2011.08.18 까탈의 궁극? 15
  5. 2011.07.21 새주소 10
  6. 2009.08.03 고질병 10
  7. 2009.05.15 띠지 27

몇년 전부터 비혼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노모를 봉양하며, 혹은 여전히 노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살고 있다. 독립해서 20년도 넘게 홀로 잘 살던 친구는 엄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자의가 3할, 타의가 7할의 비율로 집에 다시 들어갔고 무급 가사도우미로 구박 받으며 살고 있다고 종종 푸념을 한다. 

암튼 뭐 그건 각자 집안의 사정이 있을테고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는 것 같으니 그저 셋이 모였을 때 서로 어쩜 그리 똑같냐고 놀라워했던 공통점을 적어본다. 

엄마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양념 간장을 너무나도 아끼신다. 예를 들어서 두부 부침이라든지 부추전이라든지 뭔가 부침개라도 만들어 먹는 날  양념 간장을 만들어 찍어 먹고 나면 기름도 둥둥 뜨고 당연히 버려야 맞지 않나? 근데 노모들께선 그걸 절대 못 버리게 한다. 랩으로 씌워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담에 또 찍어먹어야한다고. 아깝다고. 버리겠다고 하면 펄펄 뛰신단다.

해서 어느 날은 대여섯 개 쯤 되는 간장종지가 그릇장에서 한개도 보이지 않는 사태가 생겨난다. 찾아보면 다 냉장고에 들어 있고, 어떤 건 간장이 다 말라붙어 소금기만 남아 있기도 한다. 고추장 양념은 검게 굳어 언제부터 냉장고 구석에서 굴러다녔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친구들의 어머니는 친구와 함께 살림살이를 분담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집은 내가 거의 전담하기 때문에 간장종지가 몽땅 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울 왕비마마께서는 랩을 씌워 반찬을 치운다든지 하는 가사일을 절대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 내가 바빠서 설거지라도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식탁에서 미리 벗어나 외출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식탁에 양념장 간장종지만 고대로 놓여 있다. 반찬 뚜껑을 대충 덮은 채로...

궁상 떨지 말고 양념장 좀 버리시라고 버럭 소리치면, 엄마의 반응은 똑같다. "아깝잖아." 

나름 추측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1) 전쟁을 겪으신 세대라서 엄마들의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2)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죄받는다, 나중에 죽어서 지옥에 가 버린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는 믿음. (울 엄마와 H의 어머니는 불교신자이시지만, Y의 어머니는 아닌데?)

3) 메주를 쑤어 간장 된장을 만들어 먹던 세대 분들이라 간장 한 종지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저렴한 양조간장 사먹는 우리와는 시각부터 다른 거다. (그러나 말라붙은 종지에 든 간장은 분명 양조간장이라는 점)

간장종지뿐만 아니라 울 엄마는 김치 탕기에 담긴 김칫국물도 못 버리신다. 간편하게 사느라 자른 포기 김치를 밀폐용기에 담아두고 매 끼니마다 꺼내먹고 또 넣어놓고 반복하는데 김치는 다 먹고 국물만 남아도 당연히 뚜껑을 덮어 고스란히 냉장고 행이다. 아 대체 왜??? 엄만 그릇을 씻지 말고 거기다 다시 또 김치를 잘라 넣으면 되지 않냐고 하신다. 김치국물 아깝잖아... 

어휴. 난 지옥 같은 거 믿지도 않아! 실제로 있다면 나중에 지옥에 가서 내가 다 먹을 게요. 제발 버립시다! 엄마 몰래 오늘도 나는 남은 김치국물과 두부 찍어먹은 참기름 간장을 설거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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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질

투덜일기 2012. 1. 26. 17:54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꽤 오래 전부터 나는 빗질을 하지 않는다. 곰곰이 돌이켜 보아도 대체 언제 시작된 습관인지 모르겠다. 머리를 보글보글 볶고 나서부터인가?(파마를 하고 나서는 '컬'이 망가지지 않도록 '도끼빗'이라고 하여 빗살이 아주 성긴 거대한 빗을 사용해야 한다고 들었고, 과거 그런 도끼빗이 우리집에도 있었다.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하지만 요샌 줄곧 생머리인데. 암튼 내방엔 아예 납작한 빗(일명 comb)이 없다. 대신에 헤어드라이 할 때 쓰는 둥근 롤브러시와, 일반 브러시가 하나씩 있기는 하다. 그나마 머리를 말릴 때 롤브러시를 앞머리와 옆머리에 대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쓱쓱 빗어내리기는 하므로, '빗질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받을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그 행위는 내게 '빗질'로 여겨지지 않는다. 빗질이라 함은 납작한 빗이든 브러시든 손에 들고서 머리칼 전체를 쓱쓱 빗어내려야하는 거 아닌가? 난 그런 거 안한지 정말 오래됐단 말이지.

차르르 윤기나는 머릿결을 위해서는 열심히 빗질을 해주어야 한다는데, 오래도록 빗질을 생략하고 대충 털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쓱쓱 정돈한 다음 헤어드라이어로 말릴 때도 롤브러시 대신 손가락으로 말거나 빗는 것이 나는 더 편하다. 물론 그 때문인지 머릿결도 엉망이다. 가뜩이나 숱도 적고 얇은 머리칼엔 점점 히마리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나이들면서 죄다 보글보글 아줌마 파마들을 해대는 이유도 생머리로 버틸만큼 숱과 결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이든 친구들이 귀띔을 해준다. 너도 얼마 안 남았어, 얘. 원래도 숱이 적어 속알머리가 들여다보이던 머리칼은 더욱 부실해졌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머리칼이 빠져서 브러시에 마구 끼어있는 걸 빼내는 것도 고역이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도, 브러시에 끼어 엉킨 머리칼도 나는 잘 못보겠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머리 길이가 계속 짧은 편이었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으나(실제로 30대의 대부분은 숏커트로 살았던듯) 최소 10년은 넘게 '제대로' 빗질을 안하고 지냈음을 새삼 깨닫고 보니 스스로도 퍽 신기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까? 게으른 나만 그런가? 빗질 안하기를 처음 내게 조언했던 건 분명 미용실이었다. 젖은 머리를 빗으로 빗으면 상하니깐 빗지 말고 수건으로 탁탁 털어 말린 후 손가락으로 슥슥 어루만지며 말리라고 말이다. 그러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미용실에서 그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지 않을까? 물론 나처럼  그말을 십수년째 별 생각 없이 고수하란 법은 없겠지만.

하여간에 머리 길이와 상관없이 빗질 안하는 습관이 뿌리깊게 박힌 나머지, 요즘처럼 머리칼을 마구 방치하여 꽤나 길어지고 나면 이놈의 머리칼이 마구 엉킬 때가 있다. 특히 머리감고 나서 잘 안말린 채 비비고 잠을 잔 뒤엔 어김이 없다. 대개는 빗 대신 손가락으로 슥슥 빗어 넘기면 걸리는 것이 전혀 없는데, 가끔 뒷머리가 쇠수세미 뭉치처럼 바글바글 엉켜있는 거다. -_-; 그러면 또 행여나 소중한 머리칼 빠질세라 끊어질 세라 한올한올 엉킨 실 풀듯 손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오늘도 한참 엉킨 머리칼을 풀고 앉았다가 킬킬 웃었다. 애당초 머리를 참하게 빗어놓았더라면 엉킬 일도 없었을 텐데 참 나. 성격도 이상하여라.

예전에 엄마가 뜨개질 고수였던 시절, 술술 뽑아쓰기 좋게 하느라 털실을 미리 풀어 바구니 같은데 담아놓았는데 동생들이 뒤집어 엎는 바람에 실이 엉키면 엄만 엉킨 실을 푸는 임무를 내게 맡겼다. 아주 드물게는 도저히 풀리지 않아 끊고 다시 실을 이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대개는 내가 기필코 엉킨 실을 다 풀어내고야 말았고 그 성취감을 퍽이나 즐겼던 것 같다. 오늘도 엉킨 머리칼을 한올한올 잡아당겨 죄다 풀어 다시 매끈하게 만들어놓고는 별난인간도 다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번쯤은 잘못될 것을 알면서도 즐기는 짜릿한 모험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그렇다고 새삼 내일부터 열심히 빗질을 시작할 위인도 아니고 이 게으름의 끝은 어디일지 그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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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

추억주머니 2011. 9. 22. 17:07

어제 만난 친구에게 이사를 가긴 가야겠는데 집을 팔고 사는 문제도 두렵지만 일단은 30년 가까이 된 두집 살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또 다시 푸념을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몰래몰래 버리란다. 노친네들이야 워낙 오래된 물건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못버리게 하는 게 당연하므로 엄마 안 계실 적에 스리살짝. 그래야 하는 것이었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자신은 없다. 오래된 물건 못버리는 '지병'은 (이웃 주민 '쌘'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좀 심각한 걸 알기 때문이다.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산 책 <나의 고릿젓 몽블랑 만년필>은 막상 읽어보니 내가 워낙 클래식 음악에 무지한 탓에 3분의 1 이상은 뭔소린지도 몰라 뒷머리를 긁적여야 했고,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젠체하는 느낌이 드는 시인의 글이라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럼에도 지은이가 찍은 오래된 독일물건들 사진을 보는 건 참 좋았다. 런던에서 수학선생님을 하고 계시는 런던아줌마님은 물건 함부로 안 버리고 죄다 껴안고 사는 습관을 '영국병'이라고 칭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래된 물건 절대 안버리고 소중히 간직하는 태도는 유럽인들의 공통적인 특색인 듯하다. 그러니까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치르고도 변함없이 간직된 수많은 골동품들이 유통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심지어 몇백년 전의 식료품 거래 영수증이나, 사적인 편지까지도. 유럽치고 벼룩시장 유명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나 말이다. 하다못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야드 세일'이나 '거라지 세일'을 하는 판국에...
 
오래된 물건을 못/안버리는 습관은 어쩌면 근대의 정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새로운 것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 확확 세상이 바뀌던 때라 과거에 대한 향수가 특히나 진했던 게 아닐까. 신문지도 함부로 안버리시던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세대를 거쳐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나까지 그런 성향이 이어진 이유는 역시 알쏭달쏭하다. 내 경우는 단지 좀 우유부단하고 청승맞아서 과거에 얽매이는 듯도 하고. 

하여튼 독일 벼룩시장에서 지은이가 득템한 골동품들 사진을 보며 희희낙락하다가 제일 정겨웠던 건 몽당 연필과 색연필이 든 파버카스텔 필
통이었다. 같은 브랜드는 아니지만 나도 최소 30년 된 스테들러 색연필 갖고 있다규!
전에도 어딘가 쓴 것 같은데 중학교 때 고모부가 사다주신 '독일제' 색연필을 나는 아끼느라 1, 2년간은 계속 구경만 했었고 드디어 사용한 계기는 손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기 위함이었던 듯하다. 
고등학교 올라가선 친구들과 워낙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으므로 색연필로 편지지를 꾸미기도 했고, 예쁜 편지지에 좋은 글귀 적어서 코팅해 선물하는 유행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 색을 달리해 시를 베껴적는 정성을 들인 기억도 있다. 그렇게 드문드문 십수년간 사용했어도 좀체 닳을 일이 없었던 색연필을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된 건 역시나 조카의 탄생 이후의 일이었다. 벽지 낙서를 거쳐 드디어 스케치북과 이면지에 작품을 그려주기 시작한 정민공주의 그림활동에 흐뭇해, 색연필이 막 부러져 하루에도 몇번번씩 깎는 일이 생겨나도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그렇게 조카들 넷을 겪고도 아직 꽤 건재(라기엔 좀 민망하지만;;)한 스테들러 색연필의 현재 몰골은 이렇다. ㅋㅋㅋ


녹이 슨 철제 케이스 위엔 정민이가 서너살 때 붙인 방귀대장 뿡뿡이 스티커가 어지럽기 이를데 없고(잘 떼지지 않아 뗄 수도 없다;;), 내용물은 중간에 없어지고 사라져버린 색깔이 많아 다른 색연필로 대체하는 바람에 마구 뒤섞였지만 아직도 그림놀이 할 때는 없어선 안될 소품이다. 문방구 가면 파버카스텔이든 스테들러든 48색, 64색 색연필이 번드르르 종류별로 진열되어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30년 넘은 이 색연필을 못 버리고 갖고 있는 내가 확실히 청승은 청승이라고 인정할밖에. (그나마 핑계는 요즘 같은 브랜드라도 나뭇결이 거칠고 칼을 대면 뚝뚝 쪼개지는 색연필과 달리 연필 나무가 정말 연하고 부드럽다는 것. 똑같이 집어던져도 대체된 잡종 색연필보다 잘 부러지지도 않는다. ㅠ.ㅠ) 애지중지 써온 30년 역사와 색연필 하나하나에 깃든 추억을 생각하면 어떻게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얼마전엔 엄마가 난데없이 장농 서랍 정리를 하며, 시집올 때 함에 들었던 혼서지와 사주단자를 버리겠다고 내놓으셨다. 아예 쓰레기통에 넣어둔 걸 나는 다시 꺼내며 왜 이런 걸 함부로 버리느냐고 막 화를 냈다. 엄마는 우리 할아버지가 손수 쓰신 글씨체도 아니고 당시 혼서지랑 사주단자 써주는 대서소에 가서 써온 거라 별로 보관할 가치가 없는 거라 항변했지만, 왠지 나는 그냥 버릴 수 없는 물건이라고 느꼈다. -_-;

40여년이 지났어도 비단 색실이 하나도 안 바랬다. 벌써 버렸으면 모르겠으나 엄마는 입때 갖고 있다가 왜 이제와서 새삼 버리시겠다고 하는지 원...

물론 나도 좀 지나면 아무 미련없이 버리자는데 동의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마음으론 한참 더 갖고 있어야할 것만 같다. 엄마방 장농 서랍 안쪽에 든 우리 부모님의 연애편지 묶음도 마찬가지고... -_-;

옛날에 대학생 때였나, 할아버지가 다락방 한 가득 갖고 계시던 오래된 물건들을 비웃으며 대체 왜 그렇게 끼고 도시느냐고 투덜거렸는데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으니 어쩌면 좋으냐. 오래된 물건 못 버려 전전긍긍하는 모습 때문에 머지않아 다 큰 조카들에게 고리타분한 노친네 취급받는 모습이 막 눈에 선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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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의 궁극?

투덜일기 2011. 8. 18. 02:47

나이와 상관이 있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예민함이 점점 극에 달해 옷에 달린 라벨을 못견디는 인간이 되었다고 잘 다니는 동호회 게시판에 고백을 했다. 예전엔 가끔 여름 티셔츠 중에 목덜미를 간질이는 것들만 선별해 라벨을 떼고 입는 수준이었다면, 요즘엔 살갗에 닿는 위치에 달린 라벨이 두툼한 새틴을 접어 붙인(옷이 고급일수록 라벨도 고급화되어 금은실로 글씨를 새겨넣거나 말끔히 접어 다림질까지 한 두툼한 라벨이 달리기 마련;) 경우나 봉제에 쓰인 실이 뻣뻣한 경우 예외없이 떼어내야만 마음 편히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옷 안쪽 옆솔기에 달린 케어라벨(섬유 혼용율과 세탁방법이 적혀있으며 가끔은 여벌 단추까지 매달려있기도 하다)도 영 거슬려서 잘라내고야 마는 사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들의 내의엔 상표와 솔기가 바깥쪽에 달려 있는 게 많은데, 내 피부의 연약함이 갓난아기에 필적할 리는 없고 그저 예민함과 까탈스러움이 극에 달했다고밖엔 생각할 수가 없다고.

그랬더니 용기를 북돋아주는(?) 댓글 가운데 누군가는 양말도 뒤집어 신고 다닌다며 피부 민감성은 얼마든지 개인차가 있으니 개의치 말라는 의견이 있었다. 자기만 편하면 됐지 양말 봉제선을 굳이 안쪽으로 감추고 발등에 걸리적거리는 걸 참을 이유가 없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처음엔 그럼 속옷도 뒤집어 입고 다닐 테냐고 비웃었는데, 막상 따라해보니 엄청 편하다나. 이후 그도 계속 양말을 뒤집어 신고 있단다. 오옷 이것이야말로 발상의 전환! 여름들어 몇달째 맨발족이라 최근엔 양말을 신어본 기억이 없으나, 나도 운동화를 신을 땐 양말 솔기 때문에 발등이 불편한 걸 느낀 적이 많다. 양말 안쪽의 솔기 마무리를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스포츠양말처럼 두툼한 면양말은 안쪽으로 꿰맨 솔기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양말을 뒤집어 신을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데! 앞으로 양말 신고 다니는 계절이 오면 나도 시도해볼 작정이다.

사실 라벨은 오려내고 잘라낸 다음 편히 입을 수나 있지 최근엔 속옷의 솔기도 영 거슬려 괴로워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비싼 속옷도 왜 솔기가 아예 없는 팬티는 못 만드는 건지?! (설마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건 아니겠지?) 요즘처럼 까탈의 궁극을 떨다간 조만간 속옷도 뒤집어입고 살게 생겼다고 한탄했었는데, 어찌 보면 이게 한탄할 일이 아니라 익숙한 습관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입기의 결과로 내가 바보같이 불편을 참아왔다는 의미라는 걸 새삼 느낀다. 속옷을 뒤집어 입으려면 일단 모든 팬티를 면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난점과 함께 밀착되는 얇은 겉옷의 경우 솔기가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지금 퍼뜩 떠오르기는 한다. 하지만 그럼 또 어때? 누가 나만 보는 것도 아니고... -_-; 이참에 사회 곳곳에서 남몰래 괴로워하고 있던 수많은 까탈족을 위하여 당당하게 양말 뒤집어 신기와 속옷 뒤집어 입기 운동을 널리 퍼뜨려볼까나.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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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주소

투덜일기 2011. 7. 21. 21:29

서울시 @@@구 □□로 37길 XX-X
정부가 우리집에 부과한 새주소다. (원래 주소는 서울시 @@@구 OO2동 XXX-XXX)
지번 찾기 쉬우라고 길마다 정했다는 새주소의 편리함 여부는 내 상관할 바 아니고, 그냥 마음에 안든다. 익숙한 것을 버리기가 원래 힘든 법이지만, 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취향도 갖고 있는 터라 단순히 낯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따져보면 나는 이 동네에서 35년을 훨씬 넘겨 살았다. 20년 넘게 산 이 집 이전에도 우리집 주소는 번지만 달랐지 늘 OO동이었다. 전월세 계약 기간이 2년으로 정해진 지 꽤 됐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막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녔다. 아이가 셋이라 시끄럽다고 집주인이 계약연장대신 계속 쫓아냈다고 들었던 듯하다. 해서 우리는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길 하나를 마주하고 반대편 주택가로, 주소상으로는 OO2동에서 OO4동으로, 다시 OO3동으로  하도 이사를 다녀 옛날 손글씨로 적던 주민등록 등본을 떼면 주소 적는 난이 빽빽하다못해 넘쳐날 정도였다. 같은 구를 벗어나지 않은 건 할아버지댁과 가까이 있기 위함이라고 해도 부모님은 대체 이 동네가 뭐 그리 좋다고 고수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전셋값이 다른 동네보다 쌌을까?

어쨌든 밤늦게 택시 잡기 어렵고 집값은 저렴해도 워낙 오래 터를 잡고 산 동네라 OO동이라는 주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이상하다. 명목상 번지수가 바뀌었대도 물론 너 어디사니, 하는 질문엔 다들 원래 동네 이름을 대겠지만 당최 새 주소는 써먹고 싶은 느낌이 안든다. 그나마 이 동네에선 새주소명 의의신청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다. □□로에 붙은 □□동 이름이 우리 동네보다 더 부자 동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초동 방배동 사람들은 '우면로'라는 새주소를 못마땅히 여겨 결사반대를 했다고 들었다. 원래는 다 평창동이었는데  새주소명이 '세검정길'과 '평창길'로 나뉘어 근거 없이 차별받는다고 단체 이의신청을 했다는 아파트 단지 이야기도 들렸다. 다 집값과 상관 있기 때문이란다. -_-;

이재에 어두워 집값 같은 건 전혀 모르겠고 30년 넘은 우리집이야 주소명 바뀌었다고 값을 더 쳐줄 리도 없다. 나는 다만 발음도 착하고 정겨운 OO동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더는 못쓰게 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새주소는 당연히 아직 외지 못했다. 요번에 날아온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는 당연히 원래 주소를 적었다.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내년부터는 다 바뀌 주소를 사용해야 한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원래 주소를 고집할 수 있을까?

한 동네에 너무 오래 살아서 너무 많은 이웃과 서로 알고 있기에 인사하기도 귀찮고 민망해 확 이사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내가 선택해서 새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것과 원래 오래도록 산 동네에서 동네 이름을 빼앗기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다르다. 현정부가 하는 일마다 족족 마음에 안들어 무조건 닥치고 싫다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새주소가 필요했던 건지 잘 납득하기가 어렵다. 전화도 안걸고, 심지어 초인종도 안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올라와 물건을 전해주고 가는 수많은 택배기사님들은 새주소를 사용해도 그렇게 귀신같이 찾아와줄까? 아마도 내겐 그게 제일 큰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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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

투덜일기 2009. 8. 3. 16:21

고질병이 한두가지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래도 가장 큰 고질병은 게으름과 우우부단함, 미루기, 바쁠때 딴짓하기가 아닌가 싶다. 코앞 마감일을 앞두고 <7월까지만 놀자>고 했던 다짐도 당연히 물거품. 8월이 열린지 사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심신은 심각한 초절정 모드로 진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마감전에 딱 한번의 예외를 두자며 정한 내일의 약속을 앞두고 고민하느라 또 다시 일손이 안잡히는 상황.
어차피 약속은 정한 것이니 나가면 될 터이나, 나의 고민은 딴 데 있다.
바로 보테로 전시회를 오전에 보러 갈 것이나 말 것이냐 하는 것.
친구 일행은 그 전시를 본 뒤 나와 만나기로 정했는데, 나도 부지런을 떨어 전시회를 같이 보고 나서 점심을 먹고 놀 것인가, 아니면 마감모드에 충실(?)하여 그냥 점심약속에만 나갈 것인가, 그것이 고민의 요지다. ㅠ.ㅠ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9월 17일까지 전시예정인 페르나도 보테로의 전시는 6월말 개관 이후 줄곧 별러오던 건데, 이번에 기회 될 때 그냥 확 같이 보는 것이 나을까 아닐까. 우유부단함 또한 극심한 나로선 결정을 못 내리겠다. 방학이니 당연히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아 개학 이후로 관람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어영부영 게으름 부리다 아예 전시회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든다.
어차피 약속을 잡았으니 반나절쯤 더 노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이들도 있겠지만, 초절정마감모드의 작업능률을 지키기 위해선 생활리듬이 깨지면 안되는 법이다. 왕비마마의 심신회복률이 거의 95%에 도달해 드디어 아침 노동(식전약+아침밥+식후약 챙기기)에서 벗어나 심야작업과 오전취침 리듬을 회복한지 얼마 안되는데, 내일 오전에 무리해서 전시회를 보러 나가면 게으른 몸을 재정비하는데 며칠 걸리까봐 염려가 된다는 얘기다. ㅠ.ㅠ 그럼 이번엔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보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려니 지난번 라틴아메리카 전시회 때 맛만 본 보테로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려 호기심이 불끈 동한다.

이리보면 우유부단함의 요체는 쓸데없이 미리 생각을 너무 많이하고 고민한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숨에 결정을 내리면 될 일을 나는 매번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만일의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리고 가능성을 점친다. 확실히 고질적인 지병이 아닐 수 없다. <우유부단>병에다 <미루기>병, <바쁠때 딴짓하기>병까지 고질병이 삼중으로 겹친 이 상황은 더더욱 고민스럽다. 아 어떡하지. +_+ 전시 포스터를 오려붙이고 나니 그림이 더 보고 싶다. 젠장. 참 싫은 나의 고질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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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

책보따리 2009. 5. 15. 15:23

요즘 나오는 책들의 거의 절반은 표지 아래쪽에 띠지를 두르고 있는 듯하다. 주로 주절주절 표지에 인쇄해 넣기엔 민망한 책의 광고문안을 새기기도 하고, 드물게는 <눈먼자들의 도시>처럼 영화 장면을 아주 넓게  인쇄해 양장본 껍질인지 띠지인지 모를 어중간한 형태로 두르기도 한다. 책 아래쪽에만 둘러놓은 띠지는 사실 관리면에선 꽤나 골칫덩어리다. 책을 쌓거나 꽂거나 옮길 때 쉽게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띠지를 두르고 나오는 책들이 많은 걸 보면 추가 비용과 관리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페이퍼백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예로부터 책을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풍습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옛날엔 전 세계적으로 워낙 종이가 귀하고 책이 귀했을 텐데 유독 우리나라만 지금껏 책이라면 무조건 내용과 상관없이 좋은 질의 <아트지> 같은 걸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은 이유를 나로선 알 수가 없지만, 최근 나온 핸디북 크기의 작은 책들도 글씨와 판형만 약간 작아졌지 종이는 여전히 눈부신 수입지라 책 무게는 별로 줄지 않은 걸 보면, 정말 책을 숭상하는 민족이 맞는 것 같긴 하다. 아예 안보면 안봤지 만듦새가 시답잖고 <싼티>나는 책은 안사본다는 뜻 아니겠나.
하기야 습관적으로 책을 소중히 다루고 아끼는 습관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남들은 별 생각없이 버린다는 띠지도 나는 차마 버리지를 못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는데, 새삼스레 동생들한테 책을 빌려주며 한 소리를 듣고나서야 아니란 걸 알았다. 띠지 없는 책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동생들에겐 띠지의 존재여부가 독서의 여부를 알려주는 표시일 정도란다. 책을 읽게 되면 거추장스러운 띠지를 제일 먼저 버린다나.
물론 나도 책을 읽을 땐 당연히 띠지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먼저 빼긴 한다. 그러고는 곧장 버리는 게 아니라 이미 접혀 있는 모양대로 약간 양쪽 길이가 다르게 접어선 책갈피로 사용한 다음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띠지를 곱게 둘러 책꽂이에 꽂아둔다. 그러다가 보면 책을 이리저리 빼고 꽂다 가끔 띠지를 찢어뜨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근엔 그냥 책사이에 꽂아둘 때도 많아졌기는 하지만, 띠지를 함부로 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띠지를 안버리고 계속 보관하는 모습이 꽤나 이상해 보였는지 며칠 전엔 정민공주가 물었다. "고모는 왜 저런 책 종이를 안 버리고 계속 갖고 있어?"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잠시 대답이 궁해졌던 나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주절주절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저런 종이 조각 하나도 생각 많이 하고 머리 써서 만든 거고, 종이는 원료를 다 수입해서 만들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면 아깝기도 하고, 접어서 책갈피로 쓰면 아주 요긴하고....

어쩌면 내가 출판업계에 발을 담그고 생계를 잇고 있기 때문에 책을 더 존중할지 모른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띠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책에 대한 애정이 많다기 보다는 최대한 새것인 채로 보관하고 싶은 겉치레 욕심에 불과한 듯하다. 띠지를 안 버리고 책을 읽은 다음 다시 둘러 두는 짓은 번역 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반복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하다. 나보다 훨씬 더 책을 많이 읽으시는 블로그 이웃들은 띠지를 어떻게들 처리하시는지. 정말로 띠지에 대한 집착은 나만의 기벽인지. 나말고도 그러는 분들이 또 있는지.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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