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비혼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노모를 봉양하며, 혹은 여전히 노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살고 있다. 독립해서 20년도 넘게 홀로 잘 살던 친구는 엄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자의가 3할, 타의가 7할의 비율로 집에 다시 들어갔고 무급 가사도우미로 구박 받으며 살고 있다고 종종 푸념을 한다. 

암튼 뭐 그건 각자 집안의 사정이 있을테고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는 것 같으니 그저 셋이 모였을 때 서로 어쩜 그리 똑같냐고 놀라워했던 공통점을 적어본다. 

엄마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양념 간장을 너무나도 아끼신다. 예를 들어서 두부 부침이라든지 부추전이라든지 뭔가 부침개라도 만들어 먹는 날  양념 간장을 만들어 찍어 먹고 나면 기름도 둥둥 뜨고 당연히 버려야 맞지 않나? 근데 노모들께선 그걸 절대 못 버리게 한다. 랩으로 씌워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담에 또 찍어먹어야한다고. 아깝다고. 버리겠다고 하면 펄펄 뛰신단다.

해서 어느 날은 대여섯 개 쯤 되는 간장종지가 그릇장에서 한개도 보이지 않는 사태가 생겨난다. 찾아보면 다 냉장고에 들어 있고, 어떤 건 간장이 다 말라붙어 소금기만 남아 있기도 한다. 고추장 양념은 검게 굳어 언제부터 냉장고 구석에서 굴러다녔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친구들의 어머니는 친구와 함께 살림살이를 분담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집은 내가 거의 전담하기 때문에 간장종지가 몽땅 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울 왕비마마께서는 랩을 씌워 반찬을 치운다든지 하는 가사일을 절대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 내가 바빠서 설거지라도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식탁에서 미리 벗어나 외출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식탁에 양념장 간장종지만 고대로 놓여 있다. 반찬 뚜껑을 대충 덮은 채로...

궁상 떨지 말고 양념장 좀 버리시라고 버럭 소리치면, 엄마의 반응은 똑같다. "아깝잖아." 

나름 추측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1) 전쟁을 겪으신 세대라서 엄마들의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2)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죄받는다, 나중에 죽어서 지옥에 가 버린 음식을 다 먹어야 한다는 믿음. (울 엄마와 H의 어머니는 불교신자이시지만, Y의 어머니는 아닌데?)

3) 메주를 쑤어 간장 된장을 만들어 먹던 세대 분들이라 간장 한 종지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저렴한 양조간장 사먹는 우리와는 시각부터 다른 거다. (그러나 말라붙은 종지에 든 간장은 분명 양조간장이라는 점)

간장종지뿐만 아니라 울 엄마는 김치 탕기에 담긴 김칫국물도 못 버리신다. 간편하게 사느라 자른 포기 김치를 밀폐용기에 담아두고 매 끼니마다 꺼내먹고 또 넣어놓고 반복하는데 김치는 다 먹고 국물만 남아도 당연히 뚜껑을 덮어 고스란히 냉장고 행이다. 아 대체 왜??? 엄만 그릇을 씻지 말고 거기다 다시 또 김치를 잘라 넣으면 되지 않냐고 하신다. 김치국물 아깝잖아... 

어휴. 난 지옥 같은 거 믿지도 않아! 실제로 있다면 나중에 지옥에 가서 내가 다 먹을 게요. 제발 버립시다! 엄마 몰래 오늘도 나는 남은 김치국물과 두부 찍어먹은 참기름 간장을 설거지해버렸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