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최근엔 본 게 없고, 작금의 현실에 딱 맞는 영화구나 생각난 건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아웃브레이크>다. 찾아보니 95년작. 무려 20년이나 된 영화라는 얘기다. 나 같은 중년 말고는 다들 존재조차 모르는 영화일 것 같다. 암튼 그 영화를 나는 에볼라 바이러스 얘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찾아보니 모타바 바이러스라는 것도 같다.  에볼라든 모타바든, 제3세계에서 생겨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미국에 전해져 떼죽음을 일으키는 이야기인데 그 전파 경로로 북한의 배가 등장한다. 할리우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20년전 이 영화에서는 바이러스의 숙주였던 아프리카 원숭이를 밀수해 동물원에 팔아먹는 비위생적인 배와 선원의 국적이 북한이었다. 위생이나 방역에 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무지와 더러움과 응징의 대상으로 나오는 영화속 북한 선원들이 그 옛날에도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포스팅 후 북한 배와 선원이 아니고 그냥 한국인이었다는 제보 입수. 내 기억이 틀린 것 같다. 맞다.. 북한 배가 어떻게 미국 항구에 정박을 한다고 나 원참;;;)  


세월이 흘러 20년 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사들은 한국이 주요 시장이라면서 다른 세계 주요도시보다 영화개봉을 먼저 하기도 하고, 그들이 서울을 배경으로 영화촬영을 한다고 그러면 유례없이 정부까지 나서서 교통을 통제해주고 기꺼이 장소를 '무료' 제공하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하는 서울과 한국의 모습은 듣자하니 별로 매력적이지도 우호적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국가 홍보에 신경을 쓴다해도 대다수 외국인들에게 '코리아'는 '사우스'인지 '노스'인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뭉뚱그려지기 십상이다. 기껏해야 전쟁에 준하는 심각한 군사대치 상황 국가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평창올림픽도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그렇게 유치하려고 애썼지만 '평양'이랑 알파벳 철자가 너무 비슷해서 선수들이 죄다 평창 대신 평양으로 날아가 북한에 억류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지리에 젬병인 나도 한반도에서 정확히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평창보다야 '평양'이 외국인들에게도 워낙 더 유명할 것 같다. 최소한 북한의 수도인걸.  


째뜬 무능력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 국가와 국민들의 후진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이번 메르스 상황을 보며, 조만간 또 재미난 한국 배경 할리우드 시나리오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개인 문자와 카톡으로는 어디선가 하루에도 몇번씩 메르스 환자가 접촉했다는 병원 명단과 예방법이 날아오고, 심지어 1번부터 30번까지(?? 기막혀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_-;) 확진 판정 환자들 명단이라면서 그들의 신상명세까지 떠도는데 -- 병원 관계자로부터 받아 전한다는둥, 담당 공무원이 최측근 지인들에게만 공개한 거라는 둥 -- 정부는 제대로 사태파악도 못한 채 우왕좌왕, 그러면서 문제의 병원 명단을 공개할 의미는 없다고 계속 한심스럽게 눙치고... 유언비어라면서 퍼뜨린 사람이나 잡아들이려 하고...  자가격리 대상이라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관리랍시고 한다는 게 하루 두 번 전화로 위치 확인하는 게 전부란다. 그러니 일반인, 의료진 할 것 없이 암 생각없이 골프치러 지방 가고, 환자들 진료하고... 하하하.


어제 끝난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제도가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나서서 약자를 감싸줄 수밖에 없다는 봄이 대사가 인상 깊었는데, 이 나라는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도 제도도 아무런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개개인이 각자 제 살길을 찾아보거나 그냥 무기력하게 죽어나가야한다는 얘기다. 물론 개인이 노력해서 정말로 각자 제 살 길을 찾을 수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함정. 암담한 나라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희망이 없는 곳이란 걸 어쩜 이렇게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 어떻게 이렇게도 자주 생겨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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