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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28 까탈스럽다, 주책이다 2
  2. 2016.12.25 간만에 동네 산책 5
  3. 2016.12.21 예매 실패 꿈 2
  4. 2016.12.19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5
  5. 2016.12.14 판관 4
  6. 2016.12.05 나도 근황 8
  7. 2016.10.31 욕이 모자란다 3
  8. 2016.10.21 일단 탈출 7
  9. 2016.10.19 오늘 점심 4
  10. 2016.10.16 편견 3


'짜장면', '삐지다'의 승리에 이어 ^^ 언어의 변화에 승복한 표준어가 내년에 또 늘어난단다. 너도 나도 흔히 쓰는 '까탈스럽다'와 '주책이다'가 아직도 표준어가 아니었단 얘기는 앞으로도 우리말이 갈길이 얼마나 먼지 알려주는 것 같다. 이제껏 맞는 표기는 '까다롭다'와 '주책없다'만 인정됐었다.

요번에 새로 표준어로 인정된 어휘 4개는 '까탈스럽다', '걸판지다', '겉울음', '실뭉치'.
'까탈스럽다'와 '걸판지다'는 표준어가 아니든 말든 나도 번역할 때 가끔 고집스레 써먹었는데, 실뭉치가 표준어 아닌 건 요번에 첨 알았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빨간줄 그어지는 게 워낙 많고, 우리말배움터 같은 맞춤법 확인 사이트에 돌려봐도 영 미심쩍으면 복합어 인정 안되서 그러니 떼어쓰면 되겠군  했었다. 

원래는 각각 '까다롭다', '거방지다', '건울음', '실몽당이'라는 표준어가 있었단다. 거방지다??? 누가 알아먹는다고!! 쳇.. 실뭉치의 표준어가 '실몽당이'였단 것도 당근 몰랐다. 실몽당이는 뭉치가 훨씬 작은 느낌인데... 실뭉치는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 말고도 그냥 대충 뭉쳐놓은 더미까지 포함된 느낌이라 확실히 의미 범위가 넓은 것 같다. 주책없다/주책이다 둘 다 인정된 걸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 뜻으로 알고 있는 '칠칠맞지 못하다/칠칠맞다'도  머잖아 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2017년 1월부터 국립국어원 대사전에도 올라간다니 또 여기다 퍼다놓는다. 출판 종사자도 맨날 사전 찾아봐야하는 표준어 업데이트... 뭔 의미가 있나 싶다. TV고 신문이고 인터넷이고 죄다 비속어에 영어 남발, 엉터리 맞춤법과 용례들이 차고 넘친다. 기자와 방송작가는 점점 맞춤법에 게으르고 무식해지는 것 같던데!!! 


<아래 출처: 국립국어원>

붙임

2016년 추가 표준어·표준형 목록

ㅇ 추가 표준어(4항목)

추가

표준어

현재

표준어

뜻 차이

걸판지다

거방지다

걸판지다 [형용사] ① 매우 푸지다. ¶ 술상이 걸판지다 / 마침 눈먼 돈이 생긴 것도 있으니 오늘 저녁은 내가 걸판지게 사지.

② 동작이나 모양이 크고 어수선하다. ¶ 싸움판은 자못 걸판져서 구경거리였다. / 소리판은 옛날이 걸판지고 소리할 맛이 났었지.

거방지다 [형용사] ① 몸집이 크다.

② 하는 짓이 점잖고 무게가 있다.

③ =걸판지다①.

겉울음

건울음

겉울음 [명사] ① 드러내 놓고 우는 울음. ¶ 꼭꼭 참고만 있다 보면 간혹 속울음이 겉울음으로 터질 때가 있다.

② 마음에도 없이 겉으로만 우는 울음. ¶ 눈물도 안 나면서 슬픈 척 겉울음 울지 마.

건울음 [명사] =강울음.

강울음 [명사] 눈물 없이 우는 울음, 또는 억지로 우는 울음.

까탈스럽다

까다롭다

까탈스럽다 [형용사] ① 조건, 규정 따위가 복잡하고 엄격하여 적응하거나 적용하기에 어려운 데가 있다. ‘가탈스럽다①’보다 센 느낌을 준다. ¶ 까탈스러운 공정을 거치다 / 규정을 까탈스럽게 정하다 / 가스레인지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지루하고 까탈스러운 숯 굽기 작업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비칠 수도 있겠다.

② 성미나 취향 따위가 원만하지 않고 별스러워 맞춰 주기에 어려운 데가 있다. ‘가탈스럽다②’보다 센 느낌을 준다. ¶ 까탈스러운 입맛 / 성격이 까탈스럽다 / 딸아이는 사 준 옷이 맘에 안 든다고 까탈스럽게 굴었다.

※ 같은 계열의 ‘가탈스럽다’도 표준어로 인정함.

까다롭다 [형용사] ① 조건 따위가 복잡하거나 엄격하여 다루기에 순탄하지 않다.

② 성미나 취향 따위가 원만하지 않고 별스럽게 까탈이 많다.

실뭉치

실몽당이

실뭉치 [명사] 실을 한데 뭉치거나 감은 덩이. ¶ 뒤엉킨 실뭉치 / 실뭉치를 풀다 / 그의 머릿속은 엉클어진 실뭉치같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실몽당이 [명사] 실을 풀기 좋게 공 모양으로 감은 뭉치.

ㅇ 추가 표준형(2항목)

추가

표준형

현재

표준형

비고

엘랑

에는

ㅇ 표준어 규정 제25항에서 ‘에는’의 비표준형으로 규정해 온 ‘엘랑’을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엘랑’ 외에도 ‘ㄹ랑’에 조사 또는 어미가 결합한 ‘에설랑, 설랑, -고설랑, -어설랑, -질랑’도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엘랑, -고설랑’ 등은 단순한 조사/어미 결합형이므로 사전 표제어로는 다루지 않음.

(예문)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교실에설랑 떠들지 마라.

나를 앞에 앉혀놓고설랑 자기 아들 자랑만 하더라.

주책이다

주책없다

ㅇ 표준어 규정 제25항에 따라 ‘주책없다’의 비표준형으로 규정해 온 ‘주책이다’를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주책이다’는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을 뜻하는 ‘주책’에 서술격조사 ‘이다’가 붙은 말로 봄.

ㅇ ‘주책이다’는 단순한 명사+조사 결합형이므로 사전 표제어로는 다루지 않음.

(예문) 이제 와서 오래 전에 헤어진 그녀를 떠올리는 나 자신을 보며 ‘나도 참 주책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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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동네 산책

놀잇감 2016. 12. 25. 17:37

한달에 두번 정기적으로 가는 등산 이외엔 통 운동을 못했다. 집에서 매일하던 스트레칭도 때려치고, 연일 동면하고 시프다 징징거리지 않으면 마감에 쪼이거나 가끔 나가서 송년회 빌미로 술 퍼마시고 고기 먹고... 몸이 디룩디룩해지는 느낌이 대번에 들었다. 12월은 뭐 어쩔 수 없지 그러며 포기했는데, 문제는 또 다시 불면.. ㅠ.ㅠ

이틀 내내 딱 2시간밖에 눈을 못붙이고 간신히 그저께 오전에 마감을 쫑낸 건 좋았는데, 곧장 궁궐봉사 갔다가 왔으면 장렬히 쓰러져 시체처럼 자야 정상이건만... 와... 눈이 새빨개지도록 잠이 안오는 거라. 새벽에 간신히 까무룩 잠들었다 비몽사몽 온종일 뒹굴거리면서 아 낮잠 자기 딱 좋은 날이다 했는데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특단의 조치로 한밤중에 맥주캔 두개를 마셨다. 설마 술김엔 자겠지! 그러나 그것도 나의 오산. +_+ 알딸딸하니 기분좋게 취해 천장이 살짝 오르락내리락하는데도 날이 훤하게 밝도록 잠이 안와! 미친다 정말... 

해서 오늘은 피톤치드의 힘을 빌러 물 한 병 들고 동네 산을 올랐다. 다행히 미세먼지는 보통수준. 하긴 뭐 나쁨이라고 했어도 마스크 쓰고 나갈 판이었다. 내가 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걸 못하다니! 으헉... 깊은 잠을 자고 싶단 욕심에 헐떡헐떡 숨이 턱에 차도록 걸음을 빨리해 안산 정상까지 올랐다가는 일부러 빙 돌아 잣나무 숲, 메타세콰이어 숲, 잡목 숲을 일부러 다 통과했다. 희뿌연 오후 햇살 아래 나무 사이로 한강도 보이고...​

​메타세콰이어 숲으로 들어서니 오옷 이건 북유럽필? ㅋㅋ 혼자 찧고 까불면서 괜히 즐거웠다. 

인적 드문 숲길에선 이어폰 꽂고 혼자 걷기가 무서워진 지 오래다. 우리 동네엔 아직 그런 플래카드 못봤지만 남한산성에도 아차산에도 북한산 입구에도 여성 등산객 홀로 등산 자제하라고 적혀 있는 걸 좀 많이 봤어야지. ㅠ.ㅠ 그치만 날씨는 꿀꿀했으되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등산로에도 자락길에도 가족 단위로, 친구들끼리 걷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계속 안심하고 음악 감상해도 괜찮은 분위기라 더 좋았다. 

늦은 오후에 죄다 역광 사진이라 해가 곧 질 것처럼 나왔군. 그래서 겨울나무의 앙상함과 스산함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잎이 없어도 나뭇가지만으로도 참 이렇게 예쁘다니. +_+ 얼른 스케치 실력 좋아져서 막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몇달만에 산책에 나선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그간 눈이 삐어서 보질 못했던 건지 설마 그새 구청에서 새로 심은 건지(나무 굵기로 봐선 그럴 리 없을 듯 ㅋㅋ 길가 주변 나무를 정리했으면 또 모를까)... 못 보던 자작나무도 발견!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떠오르면서, 인제 자작나무 숲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이거 자작나무 맞겠지? 오늘밤엔 부디 잠이 잘 오기를.. 주문이라도 외워볼까보닷. 야발라바히기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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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실패 꿈

투덜일기 2016. 12. 21. 15:37

오늘 아침 퍼뜩 꿈에서 깨어나며, 이건 불길한 꿈일까, 아니면 꿈이 현실과 반대라는 속설의 증명이 될까 궁금했다. 오늘 낮12시, 콜드플레이 추가공연 선예매 시간을 앞두고 어제 몇번이나 알람을 맞춰놓고도 뭔가 좀 불안했던 마음이 반영된 꿈이겠지. 어쨌든 꿈속에서 나는 뜬금없이 신화의 두 멤버(김동완과 앤디... +_+ 아 왜 에릭이 아니고! 난 어차피 신화 팬도 아닌데;;;)와 한 방에 앉아서 각자 노트북 아니면 핸드폰으로 콜드플레이 공연을 예매하고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12시를 기다렸으나, 예매 창에서 계속 쭉쭉 남은 자리가 빠져나가 순식간에 좌석수가 0으로 변해 으악 비명을 지르며 셋다 멘붕에 휩싸였다. 나는 괜히 신화의 두 멤버를 째려봤던 것 같다. 정신 시끄럽게 한 니들 때문이야! 라면서...

깨어나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화 팬도 아니고 멤버 이름도 잘 몰라서 꿈속에선 김동완을 김동욱, 앤디는 앤서니라고 불렀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방금 전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와 진짜 웃긴다. 생전 생각도 없던 연예인이 왜 콜드플레이 예매 꿈에 나왔을까. 

암튼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예스24와 인터파크 중에서 어느 사이트가 더 잘 견딜까 고민하다 (1차 예매때 예스24가 성공율 높았다고 해서;;) 포인트도 쌓을 겸 예스24로 로그인했는데 제기랄! 서너번의 좌석점유 실패 후 안전하게 뒷자리로 선점한 것까진 좋았는데 계속 결제창 에러... 열번도 넘게 취소 후 재도전...그러다가 가까스로 카드번호 입력하고 진행이 되는 것 같더니 또 에러.. 와.. 진짜 인내심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시간은 12시 반이 막 넘어가고... ㅠ.ㅠ 마지막엔 드디어 결제용 비밀번호까지 잘 입력했다 싶었는데 계속 돌아가기만... 띠리링 휴대폰으로 승인확인 문자가 날아오길 얼마나 염원하며 기다렸는지. ㅠ.ㅠ 엄마 명의로 간신히 발급받은 카드라서 동짓날 절에 가시는 엄마한테 일부러 휴대폰도 두고 가시라고 했구만!!!

1시간 반이 넘도록 결제창은 그저 돌아가고만 있고... 30분 지나면 결제 취소된다는 벨로의 말을 듣고도 도무지 포기가 안됐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건 남은 티켓 한장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공연을 아주 못보는 건 아니다. 으허허헉.. 기쁘기도 하면서 속도 상하고 아주 미묘한 기분이다. 꿈땜이냐 뭐냐... 스팅 공연 땐 매번 성공율 높았었는데, 아쒸, 콜드플레이의 벽이 참 높다.

콜드플레이 내한한다고 주변에 알려봤으나 다들 시큰둥 아니면 그게 뭔데? 라고 묻는 친구들 지인들이 대부분이라 (처음부터 벨로네 한테 데려가달라고 할걸! 선예매 후파트너 수배를 꿈꾸었지 뭔가) 무조건 2장 예매하고 억지로라도 누굴 끌고가려 그랬는데 그것도 그들에겐 못할 노릇이어서 뭔가 '우주의 힘'이 예매실패를 이끌었나싶기도 하고 ㅋㅋ

빙글빙글 속절없이 돌아가는 결제창을 보며 무슨 마법사처럼 온 몸의 기운을 모아 양손을 뿌리쳐 얍! 기합을 넣어보기도 하고 징징징 우는 소리로 제발제발 성공해라 주문도 외워보았으니 죄다 효험은 없었다. ㅎㅎ 당연하겠지. 하긴 내가 무신론자라고 뻥뻥 큰소리치면서 그게 될 턱이 있나.  

혹시 취소표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해 틈틈히 예스24와 인터파크에 들어가보니, 미친 인터파크는 스탠딩좌석이 33석이나 남았다고 나오질 않나, 예스24도 한두자리씩 자리가 떴다가 금세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다. ㅠ.ㅠ 혼자서라도 콘서트 보러가게 됐으니 좋은데 왜 미련을 못버리니... 에효. 내일 마감이라규~!!! 미련 좀 그만 떨어야한다는 다짐으로 꿈 얘기와 함께 포스팅으로 마무리하련다. 그만하면 됐다, 고민 끝!!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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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요즘 이 나라를 들끓게 했던 괴물들의 행동도 그러했고 바다 건너 들려오는 테러나 총격 사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닭그네 순siri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했지만, 대체 그들의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궁금함도 분노 못지 않았을 것 같다. 당연히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들에게 그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 진단하는 의뢰도 많았던 모양인데, sns에 올라온 어느 전문가의 글귀가 기억난다. 일단 그들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알아보려는 게 불필요한 호기심이라고 말이다. 법률을 위반했으니 법대로 심판하여 탄핵하고 끌어내리면 된다는 논지였던 것 같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훗날 누구든 연구자나 언론인이 꼭 나타나서--책 팔아먹을 욕심에 헛소리 지껄이는 이들 말고--그들을 제대로 연구해주거나, 최측근의 양심선언이라도 제대로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인간이 되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파헤쳐, 다시는 그런 괴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들을 '미친'X이라고 욕하는 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조울증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서 그렇게 느끼니깐 정말이지 동급으로 취급 안하면 좋겠다. 모든 병증엔 급이 있겠으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우울증 환자와 동등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2016)

아이고 책 후기 하나 쓰려고 시작했는데 웬 잡설이 이리도 긴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사건 직후 아마도 '괴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의 사진 속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서 느껴지듯 아이는 괴물이 아니었다. 곁에서 아이를 평생 지켜본 부모로서도 이젠 도저히 알수 없는 부분이 영영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아픈 아이였던 거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그 학교 학생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두 아이가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들어가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바로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저자는 독자들이 아들인 딜런을 용서하길 바란다거나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당부하려고 책을 쓴 게 아니다. 사고 이후 16년 세월 도저히 대답할 길 없는 의문과 고통, 눈물 속에 살았을 이 어머니는 자신도 죽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하지만 결국 주변인들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그리고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빚을 갚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사고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자살예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아들 딜런이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끊임없이 꿈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이지만 결국 콜럼바인 사고는 지은이에게 아들이 가장 불행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자살 기도였던 거다.

사건 직후 사람들은 당연히 딜런의 부모를 온갖 방법으로 비난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의 일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가 총기를 구입했고 집안에 폭탄을 숨겼었고, 지하실에서 무서운 폭력성을 드러낸 동영상까지 찍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길고 긴 재판으로도 판명났지만 부모들은 정말로 '몰랐다'. 문제아의 부모 뒤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은 흔한 사회적 통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애가 괜히 비뚤어질 리가 있겠냐고. 뉴스에 간혹 나오듯 자식을 학대하거나 심신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문제 부모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란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p8-9)

위에 인용한 문장은 책 맨앞에 실린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몬의 해설 부분이다. 대다수의 짐작과 달리 딜런의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기른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딜런은 십대치고(17살이었다) 부모와 대화도 많은 편이었고, 형과도 사이가 좋았다. 나중에 발견된 딜런의 일기장에서도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믿음, 미안함이 증언된다. 그러니까 부모가 아무리 주의 깊게 지켜보며 사랑을 쏟았어도 딜런에겐 '충분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고로 억울하게 다 큰 자식들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가해자의 엄마가 책을 쓴다고 하면 대체 뭘 잘했다고 책을 쓰냐고 비난부터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짐작했기 때문인지 지은이의 태도는 시종일관 대단히 조심스럽다. 자식을 가능한 한 옹호하려는 태도보다는 부모로서 자기가 뭘 놓쳤는지, 사건의 전후 사정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된 아들의 행동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자기 이야기를 최대한 충분히 들려주어서, 다른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물론 사건 기록의 재구성과 딜런이 남겨둔 흔적들 말고는 가해자 아이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절렀는지 말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더욱 고통스러울 테고. 어쨌든 지은이는 자기 아들이 '자살'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흔히들 자살이 가장 비겁한 선택이라는 말도 하지만, 의사 결정 능력이 비정상일 때 내린 선택을 본인의 굳은 의지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심리학자와 지은이의 의견에 나도 공감한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차라리 그 용기로 살아보라고? 자살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용기 여부와는 상관 없지 않을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의 엄마인 저자의 고통이 느껴져서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지만, 알량한 후기를 쓰는 것도 몇날 며칠 적었다 말았다 한 단락씩 참 쓰기가 어려웠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무서운 진실 앞에, 꼭 읽어보아야할 책이라는 추천사도 들어있지만... 나로선 엄청 아픈 손가락인 큰조카 J의 생각도 많이 나면서 위안도 받고 또 새로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과정이었다. 제도권 교육의 테두리를 힘들어하고 못 견뎌하며 자꾸 엇나가는 아이를 보며 '대체 왜?' 커다란 의문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부모탓을 한 적도 있고, 종종 어려서부터 너무 오냐오냐하며 애 버릇을 망친 할아버지와 고모 탓이라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원칙이 무너져 훈육에 실패한 케이스라나. (심지어 이 말은 위탁학교 관계자에게 직접 내가 들은 말이다.)

이기적인 위안은 아이의 문제가 죄다 문제 부모 탓은 아니라는 전문가의 견해다. 어쩌면 내가 J를 망쳐놓았다는 비난과 자책에서 살짝 놓여날 수 있는 빌미가 생긴 거다. 봐라, 딜런처럼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환경에서도 타고난 기질 탓에 우울증과 폭력 성향에 기울어질 수도 있다. 딜런에 비하면 J가 저지른 갖가지 일탈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도 충분히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나.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은 또 다시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를 면밀히 지켜보아도 놓치는 것이 있고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니, 맙소사. 아이가 숨기려고만 들면 아무리 대화 많은 부모라도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인 경우엔 오죽할까. 

마침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1월에 한겨레신문에 이 책에 대한 정희진씨의 칼럼이 실렸다. ^^; 옴메 기죽어 그러면서 움츠러들어 더 마무리가 괴로웠던 것 같다. 감히 쨉도 안되는 주제에 무슨.. ㅋㅋ 

"이 책은 해설(앤드루 솔로몬!), 추천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명문이다."라는 단락이 칼럼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이다. 당연히 글을 링크해야겠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9947.html#csidx455111f6840324297cd3be3adda51b6 


최소한 모든 교육자들과 부모들이 다 읽고 생각해보아야할 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동체 육아론과도 일맥상통하고, 제 아이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태도에도 일침을 가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추천사(조한혜정)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더욱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p8-9)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병의 증상이고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다. 대부분의 자살은 한순간에 충동적인 결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살은 대부분 고장난 사고와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싸워오다가 마침내 그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기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죽고 싶지는 않더라도,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다." (p257)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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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삶꾸러미 2016. 12. 14. 22:40

판관이라고 쓰니 퍼뜩 판관 포청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ㅎㅎ 제목을 판사라고 쓸까, 재판관이라고 쓸까 아님 '편견'이라고 쓸까 나름 고민하다 정했다. 내가 생애 최초 직접 목격한 판사는 정말 무능하고 한심해보였다. 1986년 이른바 '건대사태'라고 불렸던 건대점거농성 시위로 친구들이 대거 잡혀들어갔었고, 대부분 반성문을 쓰고서 기소유예로 나와 곧장 군대에 끌려가거나 복학한 친구들과 달리 한 친구는 고집스레 반성문 쓰기를 거부하다 시국사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응원차 동부지법에 가서 본 그 친구의 뒷모습 뒤로 저 멀리 높은 곳에 앉아 있던 판사는 얼마나 딴세상 사람 같던지. 가끔씩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법률용어를 지껄이는 검사, 변호사도 판사와 함께 세트로 그저 막연한 불신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가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웅변술을 자랑하는 변론이나 검사의 예리한 질문 따위는 없었다. 그저 사건번호와 증거서류의 나열, 사실 인정 확인 여부 정도? 당시 재판에서 가장 귀담아 들을만했고 또 친구와 부모들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건, 파란색(이었던 것으로 기억) 죄수복을 입고 나와 나란히 피고석에 앉아 있다가 최후 진술을 하라는 판사의 말에 조금도 굽히지 않고 독재타도를 위한 자신들의 행동이 무죄라며 본인의 주장을 펼쳤던 대학생 피고들이었다. 

한미한 집안이라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 중에서도 잘 나가는 '사'자 붙은 직업군이 거의 없다 보니 그들에 대한 편견도 심하다. 물론 순전히 여우의 신포도 이론일 수도 있다.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패스하면 뭐하나 노상 범죄자들만 상대하는데. 공부 잘해서 의대 나와 의사 되면 뭐하나, 노상 병든 환자들만 상대하는데. 그런 식이다. (그러나 막상 주변에 누가 아프면, 아이고 유명한 대학병원에 아는 의사 한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발을 동동 구른 적 많음을 고백한다.) 그들도 당연히 나 같은 사람을 한심해하겠지. 인문학 전공하면 뭐하나, 결국 백수인데... ㅋ

암튼 따져보니 거의 삼십년 만에 오늘 판사를 코앞에서 볼 일이 있었다. 변호사는 음... 몇년 전 친구 결혼식에서 대거 만나본 이후로, 작년에 또 집 문제로 사건을 의뢰하며 만났으니 희소가치가 아무래도 덜하다. 그런데다 놀라운 건 우리 집 토지분할 소송 건을 맡은 판사가 직접 토지측량팀과 함께 현장 검증을 나왔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원고, 피고, 피고측 변호인... 그런 말을 우리집 마당에서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듣고 있자니 뭔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_+ 게다가 오늘 또 날은 얼마나 추웠는지.

나름 중무장을 하고 나갔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다들 모이기 30분 전부터 나가서 줄자로 다시 여기저기 재고 표시하고 그간 집의 역사를 돌이키고 했던 터라  계속 밖에서 장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측량과정을 지켜보려니 덜덜 몸이 떨려왔다. 추우니 굳이 나오지 마시라고 했던 왕비마마까지 결국엔 내려와 모든 사건 당사자들과 재판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 지루하게 원고의 말도 안되는 주장(옛날에 이 집을 지어 팔면서 재건축을 예견해 알박기 해놨던 땅 20평쯤을 분할 받아서 거기다 건물을 짓겠단다. 공동주택의 분할 토지를 대체 어떻게 잘라가겠다는 건지? 우린 그럼 앞마당과 뒷마당에서 일부씩 나눠 가져가라 그렇게 주장했었다. ㅋㅋ)을 듣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나는 집으로 올라와 얼른 차를 끓였다. 

덩달아 덜덜 떨고 계신 울 엄마한테 뜨끈한 둥글레차를 먹여야겠다 그런 생각이었으나 또 어떻게 우리만 마시나... 촛불시위용으로 사둔 종이컵을 죄다 꺼내 대충 열두 잔을 만들어가지고 내려갔다. 우선 제일 연장자인 울 엄마부터... 그 담엔 누구한테 권하지? 연장자 순이면 내가 알기로 101호 주인 아저씨가 그담 차례였다. 그러고는 레이디퍼스트니깐 판사의 비서인 듯한 여자분... 

그랬더니 그 여자분이 저 멀찍이 서 있던 판사님한테 먼저 권하란다. 어 그런가요? 그러나 오... 판사는 됐다고 손사레. 순간 아 이거 나의 실수인가 싶었다. 누군가 김영란법에 이것도 걸리나요? 허허 웃으며 말했다. 흥칫뿡이다. 그럼 드시지 말라고 냉큼 돌아서서 얄밉지만 소송을 걸어온 옛 이웃, 원고측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도, 함께 온 그쪽 일행한테도 다 차를 돌렸다. 토지공사인지 지적공사인지... 측량을 하러 온 팀에게 마저 차를 돌리고 딱 한잔이 남자 그제야 판사도 못이기는 척 종이컵을 받았다. 우리측 변호사도 그렇고 다들 손시려웠는지 뜨거운 차가 담긴 종이컵을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별거 아니라도 뜨거운 차 몇 모금에 나 역시 속이 풀리는 듯. 

원고측이 원하는 대로 측량 한번, 판사가 지정하는 대로 측량 한번. 현장검증이 끝나고(이런 민사상의 확인도 현장 검증이라고 하는 줄 처음 알았다!) 관계자들은 모두 돌아갔다. 결과는 아직도 오리무중. 변호사 말로는 원고가 또 어떻게 나올지, 판사도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묵묵히 지켜보아야 한단다. 암튼 오늘의 깨달음은 내가 낸 세금으로 나라에서 월급 주는 판사에 대한 막연한 나의 불신과 거부감이 단 한번의 대면으로 약간 흔들렸다는 점이다. 아, 일 열심히 하는 판사도 있겠구나. 다 권력과 결탁해 버티다가 전관예우를 노리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가끔 소신있는 판결과 양심 깃든 판결문으로 뉴스에 나오는 판사가 희귀종처럼 생각됐었는데, 우리 엄마와 나에겐 너무도 대단한 사건이되 밖에서 보기엔 돈도 얼마 결부되지 않은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런 사건으로 추위에 덜덜 떨며 몇시간이나 현장검증을 하는 판사도 있구나 신기했다. 

법조계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깊은 편견에 사로잡혔으면 이런 걸 다 신기해하나 싶다가도, 보수, 진보 성향에 따라서 전혀 다른 법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있자니 불신은 당연한 것도 같다. 아무리 인간이 만든 법률이고 언어라는 것이 미묘한 차이가 있다지만, 그래도 '법'인데 어떻게 해석과 적용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 나로선 정말 모르겠다. 판관, 편견, 판결. 이상하게도 초성 게임이라도 하듯 조합이 비슷한 이 세 단어를 오늘 종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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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근황

삶꾸러미 2016. 12. 5. 22:56


본격 겨울을 앞둔 11월은 1년중에 내가 가장 넘기기 힘들어하는 달이어서, 괜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리는데 올핸 그럴 겨를이 아예 없었다. 뭔가 대단히 분주한 일들이 많았고, 토요일이면 광화문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의 11월 우울증을 날려버린 공은 파렴치한 닭그네에게도 일부 지분이 있다. 수십년만에 국민대통합을 이룬 공이 그치에게 있듯이 말이다. 하여간 시국이 시국인지라 후다닥 일감 처리할 때 아니면 진득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끼적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홧병으로 가슴이 콩닥거리면 머리가 텅 비거나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블로그형 인간성은 버릴 수가 없어서 짧은 여행기며 그날그날 단상들을 적어놓지 않고 계속 쌓이니 숙제 안한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연말 베스트 집계 하려면 기록해둬야하는데! 뭐 이런 심정? ㅎㅎ 해서 간단하게 사진위주로 뭐 하고 지냈나 근황 정리 시작.

2014년 가을에 법주사(부모님의 신혼여행지였다)에 함께 다녀온 이후로, 엄마는 가을만 되면 모녀 여행을 바라신다. 작년엔 그래서 부산엘 다녀왔는데, 올해는 전주와 담양을 여행지로 정했다. 엄마가 전주 학인당에 묵어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왕비마마의 로망은 실현했으되, 결과적으로 한옥 민박은 노년의 엄마에게 맞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다. ㅠ.ㅠ 댓돌 위로 툇마루로, 높은 문지방 넘어 화장실로 오르락내리락해야하는 구조가 관절 부실한 노인에겐 부적절. 게다가 1년만에 왕비마마의 기력은 너무도 약해져, 좀체 걷질 못하셨다. 진짜 나이든 할머니구나 하는 걸 실감한 여행이어서 덩달아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넌 안 늙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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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모자란다

투덜일기 2016. 10. 31. 13:53

반려견을 키우는 개엄마, 개아빠들이 주변에 많다. 당연히 '개'와 관련된 욕을 들으면 펄펄 뛰며 화를 낸다. 개가 얼마나 충성도 높고 성실하고 영리한데 어떻게 '개 같다'느니 '개만도 못하다'느니 하는 것이 욕이냐, 오히려 칭찬이면 칭찬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조카네 개를 가끔 보아도 맞는 말이다. '개새끼'나 '개자식'은 이제 더는 욕이 아니고 많은 인간들에게 칭찬이다. 충직한 개 정도만 살아도 훌륭한 인간이므로, 앞으로는 점점 더 개와 관련된 새로운 표현이 탄생하지 않을까. 

근데 내가 가끔 입이 거칠어지는 인간이어서 욕을 아예 끊고 살 순 없어, 종종 하는 말이 '미친X, 미친O'이었다. 특히 4년 전부터 그 욕을 가장 많이 들어온 인간이 하나 있었는데... 요즘 하나하나 드러나는 추한 진실을 들여다보면 '미친O'이라는 욕도 오히려 칭찬이다. 어쩔 수 없이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긴 환자에 대한 폄하 발언이므로 미쳤다는 말 역시 옳바른 용어가 아니다. 제정신으로 살기엔 이미 무리인 이 나라에서 미치는 게 뭐 어때서?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인간은 그저 사악하고 또 사악하고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생각이라곤 아예 할 줄 모르는 존재다. '--충'이라는 욕 또한 널리 쓰이고 있지만 그 인간에겐 곤충이라 욕하기도 벌레들이 아깝다. 촌충, 십이지장충 같은 기생충 정도라면 모를까.

그 인간 지지율이 17%니 14%니 하는데, 아직도 그만큼이나 지지하는 무뇌 인간들이 남아있다는 게 더 절망스러운 것 같다. 하긴 여론조사의 정확성도 믿을 수 없으니 훨씬 더 낮은 수치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마감 핑계로 지난 토요일에 촛불집회에 못나가고는 계속 찜찜하다. 과연 모든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까, 손석희와 JTBC를 믿고 기다려봐야지 싶다가도 검찰 하는 꼬라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 나라는 정말 어디까지 얼마나 속속들이 썩은 걸까.

통째로 썩어빠져 무기력한 검찰과 나라꼴과는 달리 저들은 벌써 무섭게 상황을 은폐할 준비를 마친 것 같다. 전직 대통령도 데려다가 모욕적인 검찰조사로 자살로 몰아넣은 인간들이 공항에서 곧장 긴급체포도 모자랄 범죄자는 충분히 쉬며 거짓말 짜맞출 시간까지 배려해 모셔가는 상황은 정말 무섭다. 그들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로 읍소한 뒤 모르쇠로 버티는 작전을 시전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휴, 파렴치한들. 제발이지 다들 빨랑 잊지 말고 이 분노의 불길이 계속 타올라 끝장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전 6월에도 그랬고, 결국 이 나라에서 믿을 건 그래도 국민들이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때보다 윗대가리들이 더 철저하게 썩고 부패시스템이 견고해졌다는 것이겠지. 순siri가 빼돌린 돈만 국고에 환수해도 많은 분야에서 뿌리 깊은 불황이 얼마나 해소될까, 뭐 그런 핑크빛 전망과 이상이나 떠올리고 있는 내가 돌연 한심스럽지만 암튼... 불끈 주먹쥐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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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탈출

투덜일기 2016. 10. 21. 16:47

출판쪽 일 끊겨서 백수 됐다고 징징거리는 포스팅으로 여러 이웃의 위로를 받았으니 좋은 소식도 제일 먼저 여기에다 알려야 예의일 것 같다. ^^; 넉달 반만에 드디어 (책 번역 의뢰로 치면 거의 1년만의 희소식인듯) 책을 번역하기로 계약을 마쳤다. 휴우. 일단 안도의 한숨.

업계 지인들이 그간 내게 많은 조언을 했었다. 일단 몸값을 낮춰! 거래하던 출판사 담당자들이나 아는 출판사 사장님들한테 일 달라고 전화를 돌려! 아마존을 뒤져서 쓸만한 책 찾아 기획번역을 해! 등등... 하지만 겁쟁이인 나는 마냥 자괴감에 빠져 적극적인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그나마 옛날 영화 번역이라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감사한 일이다, 겸허하게 마음 먹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길로 망하면 과연 다른 직업으론 뭐가 좋을까 막연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편이었다. 주변에 1년씩 멍하니 기다려봐도 일감이 없어 부업하는 번역자들이 좀 많아야지. ㅠ.ㅠ 

이 업계도 빈익빈부익부여서, 출판사 편집자들도 번역가들의 최신 프로필을 온라인으로 살펴서 어떤 책을 작업했었나 최근엔 무슨 책이 나오나 근황을 확인하고 일감을 의뢰하기 때문에 만약 몇년 일 없이 논 사람으로 찍히면, 실력이 없든 성실함이 떨어지든 개인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 일을 못하든 사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쉽다. 그럼 완전히 도태되는 수밖에. 나 역시 그럴까봐 겁이 났던 거다. 그나마 올 상반기에 번역해서 넘긴 책은 뿌리 깊은 불황으로 출간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니... 결과론적으로 난 올해 지금까지 딱 두 권의 책 밖에 못 낸 사람이다. 뭔가 퇴물 일보 직전의 느낌이 아닌가!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불황도 불황이려니와 최근 몇년간 마감일을 엄청 넘기며 불성실하게 굴었던 나의 게으름 탓이 다분할 것이다. 뭐든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문제가 발생하진 않으니까. +_+ 그러나 글줄로 밥먹는 사람들, 아니 인문학 관련 종사자 전체를 통틀어 마감 잘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으려나? 라는 핑계를 대며 단기 작업을 해야하는 요새도 며칠씩 마감을 어기고 담당자에게 늘 죄송하고 민망해한다. 아주 고질병이다. 다들 그런다고 해서 그게 옳은 건 절대 아닌데... 매번 애 먹이는 번역자에게 또 일을 맡겨준 분들에게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료는 고집 안부렸음. ㅎㅎ

재미 있는 건 이번에 맡은 소설도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외국이든 한국이든 요즘 웬만한 재미있는 책들은 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추세이니, 소설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원작을 번역해본 경험이 대부분 있지 않을까나. 사실 나는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영화로 만들어진 번역서가 엄청 많은 게 아닌데도 은근히 영화 원작 소설 번역 전문(?)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도 같다. 워낙 영화와 책으로 둘 다 대박 난 경우가 딱 하나 있어서 그럴지도... 암튼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더 유명한 작품을 번역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여겨주면 나로선 그저 감지덕지 영광이다. 이번엔 제발 담당자 속썩이지 말고 잘해봐야지 ㅠ.ㅠ 마침 마감을 절대 어기면 안될 중대 이유도 생겼으니 굳게 마음을 다잡고 있다. 석달치 스케줄표를 아주 면밀하게 작성해 일일분량 달성기록을 적기라도 해야하려나... 아무튼... 아자아자 화이팅이다. 흥해라, 출판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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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놀잇감 2016. 10. 19. 15:33

배가 고프면 남들보다 심히 화가 나는 성격이라고 알고 살았는데, 요샌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화가 나면 폭식 경향도 보이는 것 같다. 원래도 배고플 때 공기에 밥을 담으면 고봉밥, 머슴밥을 퍼놓고 낄낄대지만서도... (배고플 때 장보면 쓸데없는 물건을 마구 계획없이 사기 때문에 빈속에 마트 가선 안된다는 보편적 진리가 있는 걸 보면 다들 비슷할수도 있겠다)

암튼 점심 준비 앞두고 속상한 문자와 통화를 한 탓에 칼질부터 손길이 마구 거칠어지면서 욕심도 양도 대폭발했다. 정신없이 잘라 프라이팬에 던져넣은 채소를 불에 올려 볶으면서, 그제야 2인분으론 너무 많군,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서 사진을 찍어댔다. 이럴 땐 정말 블로그는 나의 힘, 나의 위로다. ㅠ.ㅠ

1. 점점 비어가는 냉장고 파먹기의 일환으로...양파, 새송이버섯, 브로컬리, 통마늘, 단호박을 대~충 잘라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에 볶는다.


2. 냉동실에 있던 닭가슴살도 해동해서 잘라넣고...(1인당 하루에 고기 100그램 먹어야한대서) 좀 더 볶다가


3. 시판 토마토 소스 서너 숟갈, 면수 한국자(소스 병 헹구느라고...), 우유를 좀 부어 바글바글 끓인다.


4. 왕비마마가 딱딱한 국수 딱 질색이라 알텐테는 집어치우고...10분간 푹푹 끓인 스파게티 면을 소스에 건져 넣고 좀 더 뒤적이다 접시에 담으면 완성. 오늘은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나만 스누피 접시에 담아 먹었다. 

5. 포스팅용이라지만 예쁘게 소량으로 담는 연출까지는 귀찮고, 그래도 파슬리 가루랑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뿌리는 정성으로 마무리. +_+


아니 이거슨... 이탈리아 머슴밥인가 싶게 양이 엄청났는데(원래도 늘 채소가 많아 1인분에 국수 80그램 딱 저울에 재서 삶는데 오늘은 부재료가 많아 150그램만 삶았는데도;;) 사진으로 보니 위에서 찍어서 수북한 느낌이 다행히도 잘 안보인다. 

놀라울 정도로 국제적인 입맛을 갖추신데다 국수 종류는 죄다 좋아하는 왕비마마 덕분에 사나흘에 한번은 파스타를 해먹는 것 같다. 점심 때도 맨날 밥 먹기 싫어서 하루 한끼는 노상 떡만두국, 우동, 칼국수 따위 '분식'으로 돌려막기를 하기 때문이다. 큰 마음 먹고 밀가루 반죽 해 수제비 씩이나 해먹은 날도 이건 포스팅 감이야.. 생각은 하지만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된 상태로는 거기까지 정성이 미치지 못한다. 아이폰을 아끼는 건가? ㅋ 

맛은 어땠냐고? ㅠ.ㅠ 그게 문제다. 뭘 만들어도 기본적인 맛이 보장된다는 거. 요리를 못하거나 싫어하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종종 부럽다. 본인이 고생할 이유가 없는 거다!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먹고 행복해하면 끝. 집에서 자주 파스타까지 대령하면서, 웬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선 왕비마마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_+ 바깥 음식은(특히 음식점 파스타는) 짜기만 할 뿐, 가격 대비 양도 너무 적고 내가 만들어 드린 게 더 맛있다는 총평을 매번 내리심. 녜, 녜, 앞으로도 손수 만들어바치겠습니다요... 

식후 세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속이 그득한 걸 보면, 심히 많이 먹은 건 확실하다. 화나서 폭식하고, 그래서 졸음 쏟아져 낮잠 퍼져 자면 아주 완벽하게 식충이다운 삶이겠으나 다행히도 마감에 쫓겨 그 지경까지는 못감. 커피나 찐하게 만들어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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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투덜일기 2016. 10. 16. 14:33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잘은 모르겠다만, 헐겁기는 해도 나름 '조직'이라는 곳에 새삼 여럿 소속되어 있다보니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자꾸 부대낀다. 내가 선택하라고 하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둥글둥글 지내야한다는 얘기다. 조직이 싫어서 직장생활을 관두고 홀로 일한지가 20년도 넘었는데, 괜히 왜 이러고 있나 회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인간관계로 인해 종종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일단 좀 두고보자 참고 있다.

하려던 이야기는 그런 푸념이 아니고... 

하여간에 내가 일부러 좀 거리를 두려고 애쓰던, 나와는 정말 코드가 안맞는구나 싶었던 어느분에게 엊그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약간 생각이 깊어졌다. 결론적으로 내가 너무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나쁜 인간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분이 나를 붙잡고 뭔가 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눈치인 걸 감 잡았으면서도 처음엔 굳이 알고 싶지가 않아서 아예 좀 슬슬 피해다녔다. ㅋ 물론 결국엔 붙들려서 이야기를 듣고 말았지만... (여기서 의문 잠깐, 내가 그렇게 맘 편하게 속을 막 털어놓고 싶게 생겼나? 아 진짜 반평생 '들어주는 사람' 역할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이젠 졸업하고 싶은데;;)

사연은 이렇다. 그분이 '살짝 나에게만' 들려주고 싶다던 이야기는, 얼마 전 제대한 24살된 아들을 결혼시키게 됐다는 거였다. 그분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고, 나이도 나와 별 차이가 없는 분이라 속으로 좀 놀라면서도 대번에 짐작했다. 오호라, 속도위반인가? 일단 기계적인 축하인사를 건네며 또 속으로 딴 생각이 들었다. 아오, 몰랐으면 모를까 결혼식 얘기를 들었는데(바로 다음날 지방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축의금을 챙겨드려야 하나? +_+

쌀쌀맞고 계산적인 나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분은 구구절절 그간 마음 아팠던 사연을 털어놓으며 간간이 눈물까지 비쳤다. 철원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던 그분의 아들은 상급자들의 폭언과 괴롭힘을 못 이겨 자살을 기도했고, 의식불명으로 응급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오는 사태가 벌어졌었단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매일같이 면회다니며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도해도 일주일째 차도가 없었는데, 지방에 있는 여자친구가 면회를 다녀간 날 기막히게도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더란다. 엄마의 통곡은 안들려도, 여자친구의 통곡은 아들의 영혼에 가 닿았던가 보더라나. 

암튼 엄마가 잠시 배신감에 사로잡히든 말든, 아들은 눈을 뜨자마자 첫 마디가 "OO이는?"이라며 여자친구를 찾았고, 면회를 끝내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이던 여자친구는 기차에서 그 소식을 듣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왔고... 아들의 부모는 둘이 그렇게 사랑하면 같이 있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방에서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사정해 자기 아들 좀 살려달라고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청년이 종종 실어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곁에 있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참 그 여자친구도 착하지, 부탁 대로 직장 관두고 서울에 올라와 남자친구가 회복될 때까지 돌봤다는 것 같다.

서로 깊이 의지하고 사랑하는 두 연인을 차마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 결혼을 시키기로 했는데, 신부감 집안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일을 해서 친정 생계를 얼마간 도와야하는 입장이라 신혼집도 지방에 친정 근처에 잡아주었고, 집장만이며 세간살이, 결혼비용까지 전부 다 대출받아서 자기네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빚지고 아들 장가보내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 며느리 행복한 게 제일이라면서, 그분은 예쁘게 웃고 있는 둘의 사진을 여러장 내게 보여주었다. 미리 유럽으로 신혼여행 겸 셀프 웨딩촬영도 다녀왔다나. 

그러면서 속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씩 던지는 게 상처가 된다고도 털어놓았다. 늦둥이 중학생 아들도 있는 오십대 초반 엄마가 큰아들 장가보낸다고 하면 다들 첫 마디가, 속도위반이구나! 한다는 것. 속으로 나 역시 뜨끔했다. ㅠ.ㅠ 사고친 게 아니고서야 요새 누가 24살에 아들 결혼을 시키냐는 둥, 왜 좀 더 두고보며 좋은 사람 골라보지 그러냐는 둥, 쓸데없는 간섭을 하더라는 것이다. 아으...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놓고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인생마다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말고 그 속엔 얼마나 더 깊은 사연과 아픔이 있는지 함부로 판단하면 안되는데 왜 다들 섣불리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지. 나를 포함해 인간들 참 못됐다.

민망함과 미안함 때문에 더 호들갑스럽게 축하인사와 위로를 전하고 돌아와 씁쓸한 반성 시간을 가지고도 뭔가 심히 빚진 기분이다. 요새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란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같다. 미국 학교내 총기사고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콜럼바인고등학교 사건의 가해자 엄마가 쓴 참회록이랄 수 있는 이 책은 나중에 따로 리뷰를 써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암튼 부모나 절친조차.. '아무도 몰랐던' 아이의 고통과 분노가 만들어냈을 엄청난 사건을 복기하며 함부로 타인을, 자식을, 현실을 속단하지 말라고 당부한다(책을 절반쯤 읽은 바로는 그렇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편협하고 속좁게 살아갈 나는 문제의 그분과 더욱 친해진다거나 코드를 맞추려는 노력 따위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젠 그분이 어떤 돌출 행동이나 좀 과한 발언을 하더라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뭔가 다른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지레 눈쌀 찌푸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만 보아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은 생겨나지 않을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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