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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25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2
  2. 2017.05.06 멍하다 2
  3. 2017.04.10 2017 벚꽃일기 4
  4. 2017.03.27 글쎄... 8
  5. 2017.03.15 열쇠 10
  6. 2017.03.12 드디어 봄인가 5
  7. 2017.03.07 너의 이름은 & 라라랜드 5
  8. 2017.03.06 그래도 커피 4
  9. 2017.03.01 르누아르의 여인展 3
  10. 2017.02.24 방금 웃긴 일 6

벌써 한달도 더 지난 공연 후기를 쓰려니 민망하지만... 연말 집계할 때 보나마나 최고의 공연으로 꼽고 링크해두려면 포스팅을 해야하느니라.. 속으로 계속 되뇌고 있었다. 그날의 감동은 이미 다 식어 아련하지만, 휴대폰에 든 사진과 동영상을 가끔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해서 미소가 벌벌 흐른다. 내 평생 드디어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았구나...​

작년에 현대카드에서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소식을 알렸을 때, 부리나케 현대카드를 신청했으나 발급을 거절당하고 (나홀로 프리랜서는 수입 있는 남편이 보증서주면 카드 발급되는 가정주부보다도 못하다는 걸 또 한번 알게 되었다), 그럼 사학연금 수령자인 울 엄니는 어떤가 신청해보았더니 떡 하니 카드가 날아왔다. 비참처참민망x1. 

엄마카드라도 어디냐 감지덕지... 하지만 4월 15일 공연은 사전예매도, 본 예매도 모두 결과는 실패. ㅠ.ㅠ 비참처참민망x2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4월 16일 추가공연이 잡힌 뒤 또 다시 예매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역시나 카드 소지자와 예매자 이름이 달라서 그런 건지 나는 결제에러로 실패... 비참처참민망x3. 다행히 벨로와 지다님이 여분으로 예매한 표를 넘겨받아 드디어 역사적인 공연 구경에 나서게 되었던 것. 

내 인생은 나 혼자만의 운으로는 도무지 잘 풀리질 않는 건가 싶은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결국 나의 불운은 해가 바뀌어 실제 공연날에도 또 한번 입증된다. ㅋ 그건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오프닝 공연에서 괜히 힘빼지 말자며 느긋하게 저녁먹고 커피마시고 노닥거리다 본 공연 시작 직전에 공연장으로 들어가선, 전날 공연을 본 파피 따라 맥주 사들고 인증샷부터 찍었다. 화장실 문제가 살짝 고민되었지만 공연장에서 술마시는 거 신났다! 까마득한 옛날 헐리웃볼에서 공연을 보며 와인을 마셨던 생각도 나고... 야구장에서 치맥하던 생각도 나고... 암튼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첫곡 A head full of dreams가 흐르면서, 입장 때 나누어준 손목밴드가 자동으로 작동이 시작되어 잠실주경기장 전체가 신기한 불빛으로 물들어가는데 하필 내 건 불량이었다. 흑흑흑... 불이 안 들어와! 불운한 인간은 어디서든 티가 나는구나.. 에효.  비참처참민망x4

지나던 진행요원에게 하소연하니 간혹 불량품이 있다며 직접 입구로 내려가 바꿔와야 한단다. 아...그냥 포기하고 공연에만 집중해야하나 우유부단하게 마구 고민하고 있는데 내 오른쪽 옆옆 사람도 마침 불량이라, 자기 친구는 바꾸러 내려갔다며 내 바로 옆에 앉은 이십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 관객이 그래도 바꾸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 공연 내내 속상해하느니, 한곡은 귀로만 듣자 싶어 얼른 뛰어내려갔다. 다행히 출구와 통로에서 멀지 않은 자리라 두번째 곡이 끝나기 전에 후다닥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길 잘했지...

자이로밴드?라나 뭐라나 이렇게 조명따라 음악따라 색깔이 변하는 신박한 물건을 나도 함께 누리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싶다. A sky full of Stars 노래 나올 때 잠실주경기장이 온통 영롱한 별빛으로 뒤덮인 듯한 광경이 펼쳐진 순간 너무 좋아서 살짝 눈물이 솟았었다. 가사처럼 Such a heavenly view 가 아니고 뭔가! ㅠ.ㅠ


예매를 하고보니 4월 16일이 마침 세월호 참사 3주기라 신나게 방방 뜨며 놀긴 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노래 제목도 공교로운 <Yellow>가 흐르다말고 공연사고인듯 음악이 뚝 끊기더니 노란 리본이 화면에 떠올랐다. 아 이 짜식들... 뭘 좀 아는구나. 화면엔 세월호 노란 리본, 관객석엔 노란불빛들... 다시 광화문 촛불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나름 셋트리스트 찾아 미리 예습한다고했는데도 처음 듣는 듯한 노래도 있어서 난 아직 멀었구나 했었고, 나라마다 크리스 마틴이 따로 작곡해 불러준다는 노래는 너무 아마추어스러워서 별로였다. ^^; 그치만 1, 2, 3집에 들어 있는 어쿠스틱한 노래들도 꽤 많이 불러주어 어찌나 기쁘던지... <Fix you>도 <In My Place>도 라이브로 듣다니.. ㅠ.ㅠ 기념으로 소장할라고 <In my place>는 쬐끔 동영상도 촬영했다. ㅎㅎ  

점점 더 상업적인 음악만 추구하고 대형공연장에 적합한 빵빵 울리는 EDM 쪽으로 가는 게 영 마뜩찮지만 막상 들어보면 중독성이 정말 엄청나다. 처음 음반 나오면, 에이 별로야 그러다가 어느새 중독되서 흥얼흥얼 따라부르고 찾아듣게 되는 묘미?가 있는 듯. 그러니깐 이틀간의 공연에 팬들이 이토록 열광하고 매진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닐까.  요즘 애들이 듣기엔 당연히 더 최근 음반들이 더 매력있을 거 같다.

게다가 대형공연장 공연 노하우가 쌓이고 쌓였을테니 볼거리도 풍부하겠다, 팬서비스 훌륭하겠다(스탠딩석 한가운데 런웨이같은 무대말고도 갑자기 중앙 조명탑 아래쪽에서 나타나 노래불러주는 거 완전 좋더라. 물론 나는 맨눈으로 얼굴 확인하기 어려운 2층 좌석이었지만;; 거리는 가까워질수록 좋은법!), 크리스 마틴 가창력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뛰어다니며 노래하는데도 헐떡거림 없이 그 정도면 진짜 훌륭하다 싶었고, 형광봉 역할 대신하는 자이로밴드 활용도 좋았지만 조명도 예쁘고, 중간에 공굴리기? 같은 퍼포먼스도 즐겁고 맨 마지막 불꽃놀이ㅠ.ㅠ로 마무리하는 것도 다 좋았다. 사진에 실제 색감이 잘 안나타나는데도 ​이 정도로 예쁘니 뭐;; 

크리스 마틴이 17년만에 와서 미안하다며 또 오겠다고 하던데, 과연 언제나 오려는지? 지정석에서 간간히 일어나 열광하기에도 힘든 나이인지라 이왕이면 빨리 오너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 과연 재공연이 잡히면 난 또 미련없이 예매전쟁에 뛰어들것인지 그건 또 모를 일이다. 표만 구할 수 있다면야 이번엔 혼자 앉는 자리도 감지덕지였으나, 다음에 또 혼자 뚝 떨어져 앉아 관람하라면 싫을 것 같다. 영화든 공연이든 감흥을 즉각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더 즐거운데 말이지... 

소음 민원문제라는 듯, 공연이 매몰차고 냉정하게 앵콜곡 하나 없이 끝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셋트리스트 마지막인 <Up & Up)이 흐르자 아쉬운 마음에 또 동영상을 잠깐 촬영하고는 마음을 달랬다. 아 근데 내게 자이로밴드 바꿔오라고 조언했던 여자애들 둘은 마지막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후다닥 공연장을 빠져나가더라. +_+ 공연 내내 미친듯이 춤을 추어대더니만 니들은 편한 귀가가 더 중요했구나 싶어 좀 놀랐음.

마지막 인사와 함께 관객석에 조명이 들어오고... 아쉽지만 빠이~

주경기장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밀리듯 지하철역으로 걸어가 집으로 돌아오며 계속 다시 콜드플레이 음악을 복습하는데 어찌나 흐뭇하던지. ㅎㅎㅎ 이날 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곧장 다음날 LA로 날아가기 위해 짐을 싸야했다. 약간은 미친짓이라고 여기면서도 내 생전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은 또 없으리 짐작하며 그래서 더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콜드플레이는 미국으로 향하는 11시간 비행 동안에도 중간중간 나를 위로해주었다. 아 글쎄, vod에 콜드플레이 공연실황도 있더라니깐! ㅎㅎㅎ   


티스토리에도 동영상 곧장 올리기가 있는줄 몰랐다 ^^; 알게 된 기념으로 하나 자랑;; 마지막곡 Up&U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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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다

투덜일기 2017. 5. 6. 15:17

가슴 벅찼던 콜드플레이 공연후기부터 써야 블로그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뭐든 후기를 잘 못쓰겠다. 알량했던 1/4분기 독서후기도 그렇고, 영화 얘기도 그렇고... 두뇌가 수시로 딱 먹추는 느낌이랄까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건 확실한듯.

암튼 그러는 가운데 또 정신없이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갔다가(거슬러 간 게 맞나? 질러간 건가?) 왔더니만 가서도 계속 빌빌, 와서도 빌빌 도무지 '적응'이라는 게 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게 속일 수 없는 내 나이 탓이려니 단념해야 하나? 심지어 어제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두 정거장이나 가다 내려 바꿔타야했고, 결국엔 집에 오는 길에 현금 5천원과 후불교통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어쩌면 이건 정말로 시차 부적응 탓이 아니라 그냥 중년건망증이 심해진 걸지도. 

아무튼 주변에 무엇하나 마음 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괴로운 집안사는 집안사대로, 밀린 일은 일대로, 인간관계는 또 그대로... 근데 왜 또 무리까지 해서 여행은 떠났는지. 참 내. 물론 오래 망설였지만 확 저질러서 좋았고 조마조마하던 몇달을 거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해서 좋았고, 2주간은 그야말로 꿈결처럼 행복했다. 어제 트위터에서 <호텔>이야말로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는 말을 보았다. 아침밥 주지, 청소해주지, 매일 보송한시트 갈아주지, 전화하면 새 타월 갖다주지... 거기다 침구류는 또 최고급아닌가. 친구네 집을 베이스로 주변을 돌아다닌 게 아니라, 아예 계속 차로 도시를 바꿔가며 10박11일을.. 그것도 친구 언니가 회원인 덕분에'메리엇 호텔'로만 돌아다니다 내 여행 인생에서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다.   

패키지 여행 못지 않게, 잘 곳, 볼 곳, 놀 곳, 먹을 곳... 거의 모든 걸 다 결정해놓았거나 알아서 결정해주는 주동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되고 째지게 편하든지! 친구 언니가 세운 계획에 맞춰 친구와 나는 그냥 녜녜, 좋습니다, 좋아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3킬로그램쯤 늘어 얼굴 주름이 다 펴지도록 빵빵한 풍선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마저도 좋다고 생각됐다. 그래 난 원래 호빵같은 얼굴이 캐릭터니깐 뭐...

그럼에도 일은 놓지 못하고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 처음 며칠은 밤중에 홀로 청승을 떨었고, 차로 움직이는 이동시간이 길 때는 데이터 로밍을 해갔어도 틈틈이 잘 터지지도 않는 인터넷을 찾아헤매며 국내 뉴스와 SNS를 기웃거렸다. 내가 겨우 이럴라고 촛불 들고 그 추위에 떤 게 아닌데 싶은 실망감에서 오는 불안과 조바심? 그래도 지난 대선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했지만--물론 그렇다고 ㅂㄱㅎ가 대통령 되는 걸 막진 못했었지--이번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투표할 여건이 된다는 것을 기뻐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점이 많은 대선후보였지만 와.. 아무리 표가 급해도 반대할 게 따로있지.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사람일세. 싫다싫다하니깐 ㅁㅈㅇ, ㅇㅊㅅ 둘 다 이젠 표정도 싫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 싫다! 대선 토론에서든, 공약에서든, sns 홍보전에서도 역시 심블리 상정언니가 쵝오~! 두자리수 꼭 넘겨서 반드시 선거비용 보전시켜드리리. 

수시로 졸리고 잠들었다가 엉뚱한 시간에 깨어나기를 닷새째 하고 있는데, 머리가 멍해서 일도 독서도 불가능하고 그저 최대치로 늘어난 위장에 먹을 거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새벽 5시에 잠이 깨 빈둥대다 배고픈 걸 참고 참다 계란찜과 두부부침으로 나름 거하게 아침상을 차려 엄마와 함께 먹었다. 보름간 냉장고에 붙여두고 간 국과 밑반찬 계획표에 따라 성실히 살았노라고 자랑하시는 왕비마마 보필은 오히려 돌아와서 빌빌대느라 더 못했다. 내일 어버이날 디너 먹는 걸로 퉁치기엔 좀 그러니 또 당일엔 장봐다가 무슨 요릴 해드려야 고객님이 흡족해 하실까나. 

어느새 5월이 이렇게 막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아카시야향이 그윽한데 빌어먹을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열고 이래저래 제기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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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벚꽃일기

투덜일기 2017. 4. 10. 12:40

벚꽃타령을 거의 해마다 빠지지 않고 하고 있는 건 매번 고백하지만 올해로 벌써 10주기가 되는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 테고, 어쨌거나 올해도 집앞에 벚꽃이 만발했다. 동네 안산 벚꽃길도 지난 주말이 축제기간이었는데,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개화일 예측이 어긋나 망해버렸듯이, 이 동네도 엊그제 주말엔 꽃봉오리만 분홍색으로 열렸을뿐 3분의 1도 피지 않았다고 한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주말에 잠깐 엄마 모시고 작년처럼 앞산으로 봄소풍 갈까 했었는데 날도 흐려지고 꽃도 없다니 일단 패스~. 그치만 엄마도 나도 하루하루 팝콘처럼 터져가는 집앞 살구나무와 벚나무 꽃을 매일 베란다에 나가 사진에 담으며 좋아라했다. 꽃놀이가 따로 있니, 이런게 꽃놀이지, 밖에 나가면 시끄럽고 정신만 사납다, 라고 엄마가 말해주어 일단 안심했다.

블로그에 자랑할 만개일을 며칠로 해야하나 분홍분홍하게 꽃눈이 올라올 때부터 관찰하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늘 그래왔듯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봄비가 한번 내렸다. 요즘 미세먼지가 좀 독한가. 혹시 올해 벚꽃은 누렇게 미세먼지에 뒤덮여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으나 결국 그건 기우였다.

나무 심으라고 하늘에서 일부러 비를 내린 건지,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던 4월5일 식목일에 담은 살구꽃과 벚꽃이다. 한 10분의 1쯤 피었다고 해야하나. 

4월5일 살구꽃4월 5일 벚꽃


비가 내리고 나서 미세먼지가 물러가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던 4월 7일 금요일. (사진을 매일 찍은 게 아니었나보다. 켁..) 살구꽃은 이미 꽃잎이 막 떨어지기 시작했다. ​​

4월 7일 살구꽃 

이 살구꽃 사진 찍어 놓고 들여다 보며 혼자 우와 이거 고흐의 아몬드꽃 필 나는데! 라며 혼자 좋아했었는데 이제보니 하나도 안 그렇다. ㅠ.ㅠ ​

햇살이 찬란해서 오히려 벚꽃이 잘 안나오는 것 같이 필터를 사용했더니만 또 너무 밝다. 

4월 7일 금요일

이미 난 이날로 벚꽃 만개선언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벌도 엄청 날아들어서 베란다 나가기 좀 무섭고... 살구꽃은 꿀이 많은지 이상하게 생긴 새들이 날아와서 막 꽃을 쪼아먹기도 했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우왕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게 꽃이 더 풍성해졌다. 드디어 다 피었군 싶은 느낌. 탐스러웠다. 

4월 8일 역시나 필터 사용

​필터 없이 그냥 좀 당겨서 찍었더니 이런 색감이 나왔다. 흠.. 이것도 예쁘다. 근데 나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ㅋ ​

4월 8일 토요일

그리고는 드디어 오늘... 살구꽃은 절반 이상 다 떨어져 마당에 나뒹굴고, 벚꽃도 한잎 두잎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앞산 벚꽃길엔 아직 절반도 다 안피었다는데... 우리집도 언덕이건만, 산밑이라 공기가 더 차가운 건지 높이 몇십미터 차이로 같은 동네라도 개화시기가 그렇게 다르다.  

햇살도 예쁘고, 미세먼지 없는 하늘도 파랗고 예쁘다. 

4월 10일

하여... 올해 벚꽃 만개일은 4월 10일인걸로! ㅎㅎ 이것으로 2017 벚꽃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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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투덜일기 2017. 3. 27. 23:31

인생이 특히나 무의미한 나이대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여전히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 사회와 시국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들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듯 주변에서 자주 묻는다. 넌 요즘 무슨 낙으로 사니?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게 되지 않나? 정말 친한 친구에겐 혼자 있을 때와 똑같은 맨 얼굴을 드러낼 때도 있고 또 못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사람들 앞에선 아주 두툼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도무지 사는 낙이 없는 것 같다는 친구들 눈에 그래도 나는 뭔가 되게 분주하고 희희낙락 꽤나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넌 그래도 신나게 살잖아, 그런다. 아차 싶었다. 내가 행복한 가면을 너무 들이대고 살았던가? SNS가 종종 나 이렇게 바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과시와 자랑의 장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름 조심한다고는 하나, 솔직히 가끔은 그런 의도적인 과시가 오히려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길가에 피어난 봄꽃, 어쩌다 맛있게 만들어진 국수, 간만에 기분 전환이 되었던 외식 사진을 자랑질하는 이유는 그 순간 느꼈던 소소한 기쁨을 나만 누릴 게 아니라 막연한 공간 어딘가에 박제시켜 두고 호응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관음증 환자처럼 다른 사람들의 그런 순간들 역시 자꾸만 구경다니면 그들의 행복에 나도 전염되는 느낌이 든다. 아주 찰나적인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하여간에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카톡 창을 이리저리 괜히 두드리다 과도하게 씩 웃는 이모티콘을 먼저 쏘아보내고는, "글쎄... 나도 사실 사는 낙이 별로 없어. 요즘들어 특히 삶이 엄청 구차하다."라는 솔직한 대답은 차마 적지 못하고 (우울한 친구의 기분을 북돋우려는 쪽이었는지, 또 다시 가면 증후군이 도졌는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꼴 같잖은 잘난 척을 좀 했다.

나야 요새 포켓몬 잡는 재미로 살지! 은둔형 인간이 맨날 포켓몬 잡느라고 괜히 막 나가서 걸어다닌다. 훌륭한 게임이야! (사실은 두달이 넘어가면서 포켓몬 수집욕도 좀 시들해졌다 ㅠ.ㅠ) 음.. 또 5분 스케치도 하잖아... 그림이 안 늘어서 좌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어!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낙은 여행이 아닐까...?

친구는 약간 한심스러운 듯 (그냥 내 자격지심일수도;;) 계속 'ㅋㅋ'라는 반응을 보이다 여행 이야기에 그제야 맞다고, 이제 궁극의 낙은 여행 하나 남은 것 같다고, 근데 그걸 자주 떠나지 못하니 더 암울하다고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낙이면서 로망이어서,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한줄기 희망이자 고문 같은 게 아닐까나? 여행 가고 싶단 생각 들 때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휴가 한달 신나게 놀려고 1년 꼬박 직장 다닌다는 선진국 국민이 아니고서야 원...

게다가 걱정대마왕이자 불안증환자로서 나는 어디서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그만큼 사전준비도 쉽지가 않다. 말로는 훌쩍~ 이라고 하면서도 대체로 여행지부터 예산까지 미리 한참 고민고민하다 떠나는 편이다. ^^ 그나마 아버지가 계실 땐 그래도 기회 봐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후다닥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젠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도 떠나는 날 직전까지 과연 이 여행이 가능한가 너무도 불안하다. 이래서 가족은 울타리면서 동시에 역시나 멍에였어! 라며 짜증부리게 되는 거다. 물론 요즘 가족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사정이지만. ㅠ.ㅠ (버는 것도 변변찮은 니가 지금 여행이나 다닐 때냐!)

암튼... 사는 낙도 없고 애들 뒷바라지도 지겹고 밥먹는 것도 구차하고 억울해서 식욕이 없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나까지 한숨이 나면서 맥이 빠졌다. 천고마비의 계절도 아닌데 막 식욕이 돋아서 먹고 싶은 거 생각날 때마다 꾸역꾸역 찾아 먹어대는 내가 식충이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 *_* 

카르페 디엠, 하쿠나마타타, YOLO...이렇게 맥빠질 땐 별별 주문을 다 외워도 소용이 없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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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투덜일기 2017. 3. 15. 14:56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요즘에도, 수십년간 꿋꿋하게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벗어나지 못하고 눌러앉아 살고 있는 우리는 여러모로 옛날 사람이란 걸 사방에 자랑하고 다닌다. 그 중 첫째가 묵직한 쇠로 된 '열쇠'가 아닌가 싶은데, 그나마도 자물쇠 하나가 고장나서 하나만 들고 다닌 건 최근 몇년이고 옛날엔 위아래 열쇠 두 개를 열쇠고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었다. 난 자동차 열쇠까지 열쇠 3개를 매달고 다니며 무거워서 투털투덜하던 적도 있다.

오래된 철제 현관문의 자물쇠는 당연하게도 몇년에 한번씩 고장이 나 말썽을 부렸고, 십년쯤 전부터는 자물쇠를 교체해야할 때마다 우리도 편하게 번호키 좀 달자고 내가 아무리 징징거려도 엄마가 단칼에 '싫다'고 하셨더랬다. 이유도 다양했다.

첫째, 몇만원이면 되는 일반 자물쇠에 비해 번호키는 너무 비싸다. 헌 집에 비싼 거 뭐하러 다냐. (수십년 째 우리는 집이 팔려 이사가는 상상을 늘 하고 산다. ㅠ.ㅠ)

둘째, 손떨려서 번호 잘못 누르면 어쩌냐. 계속 잘못 누르면 아예 잠겨 버려 못 들어온다더라. ㅠ.ㅠ

셋째, 안그래도 깜박깜박하는데 비밀번호 까먹으면 어떡하냐. ㅠ.ㅠ

핑계없는 무덤 없다지만, 엄마가 무조건 싫다고 하시는 건 '변화'를 괜히 두려워하고 겁내는 노인 특유의 고집 때문이란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도 독단적으로 마구 우길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정신 건강이 안 좋아질 때마다 손도 괜히 더 떨리고 불안해지고 익숙하지 않은 걸 불편해하는 심정을 왜 모르겠나. 

그래도 나는 꾸준히 번호키의 편리함을 설파했다. 요즘 번호키 많이 싸졌다. 비밀번호 까먹어도 카드 키만 슥 대면 문 열리는데 무슨 걱정이냐. 설사 카드 키 없이 번호 까먹어도 나한테 전화 걸어서 물어보면 되고, 아니면 수첩 어디에 적어가지고 다니면 되지! 스마트폰 놀이에 심취하면서 손떨림은 이제 거의 없어진 것 같던데! 열쇠 깜빡 잊고 나간 엄마를 위해, 외출하며 열쇠는 우유 주머니에 넣어뒀다고 문자 보내놓고 혹시나 불안해할 이유도 없고 좀 좋냐고요!

그러던 차에 요번에 또 현관 자물쇠가 고장났다. 안에선 고리를 돌리면 잠기는데, 밖에선 열쇠로 암만 돌려봐도 꿈쩍도 하질 않는다. 내부 스프링이나 부품이 또 고장났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번엔 손잡이도 고장나서 보조 자물쇠와 손잡이 모두 바꿔야하는 상황.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데 웬일로 엄마가 먼저 이번엔 우리도 번호키를 달까? 물으셨다. 오예~!

어제 엄마 마음 바뀌기 전에 현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 번호로 득달같이 전화를 걸었더니, 30분 안에 온다던 양반이 10분만에 오토바이타고 나타나심. ㅋㅋ 드드륵드르륵 드릴로 현관 자물쇠를 교체하고 금세 뚝딱 번호키가 달렸다. 우리 현관문에도 드디어 '띠리릭' 경쾌한 디지털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스마트한 세상이 열렸도다! 무거운 쇳덩어리 열쇠는 얼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가장 쉽게 익숙한 번호 네자리로 비밀번호를 설정한 뒤, 엄마 손에 카드 키를 쥐여주곤 연습을 하러 내려갔다. 역시나.. 익숙한 번호 네 자리와 별표시는 아무 무리 없이 한번에 성공! 그래도 번호 누르는 거 귀찮아서 카드키를 들고 다니시겠다고. ㅋㅋㅋ

오늘 아침 일찍 한방진료실에 가느라 외출에서 돌아오신 왕비마마가 띠리릭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와선 한 말씀하신다. 어두울 땐 열쇠 구멍 잘 안보여서 찔러넣기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편한 걸 진작 바꿀 걸 그랬다고. 아이고 오마니... 편한게 좋은 거라니까요. 여러가지 면에서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하나하나 취향이 무너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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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봄인가

투덜일기 2017. 3. 12. 22:02

뻔뻔하고 찌질하고 치졸하게 버티던 안하무인이 드디어 제집으로 돌아갔다는 뉴스를 보았다. 지난 금요일에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듣고 감격해 낮술을 마시며 축배를 들면서도, 아직 갈 길은 멀었음을 알고 있었다. 청산해야할 적폐와 비리가 어디 한두 가지라야 말이지. 아무리 역사는 반복되는 거라지만,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세상이 달라질 거라며 감격의 축배를 든 순간이 있었다. 물론 달라진 부분도 있었으나, 변화의 추진력이 꺾여 과거로 회귀한 것도 많았고 최근 10년은 확실히 삶이 더 팍팍해졌다. 게다가 감히 그 파렴치한 입으로 또 다시 진실 운운하는 헛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과연 그 여자가 정신 차릴 순간이 오긴 할 것인가 의심스럽다. 원래부터 정신 차리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괴물일 수도 있겠고. 

암튼 어제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는 광화문에는 선약이 있어 나가지 못했다. 마지막 촛불집회이길 바라며 3월 4일에 광화문광장으로 나간 이유도, 실제로 촛불을 들 마지막 기회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어제 저녁, 거의 매번 광화문에 동행했던 후배 하나가 사진을 보내왔다. 

하하하하... 재기발랄하기도 하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사먹진 않았지만 우리도 호떡은 사먹었고 주로 배낭에 빵과 과자, 뜨거운 커피와 차, 과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 구호 외치는 틈틈이 우걱우걱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머릿수 채우러 나갔던 것도 맞고.. ㅎㅎ

노발평화상장은 탐나지 않는데 촛불 배지는 너무 예쁘잖아! +_+ 아이고 갖고 싶어라...

집회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고 나면 어느새 해방구처럼 변한 청진동 서촌 앞길과 세종로, 종로 일대에서 딱 한사람만 없으면 정말 축제로구나~ 느꼈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분노도 분노려니와 그런 행복한 추동력이 다섯달에 이르는 긴 촛불 역사를 가능하게 했겠지 싶다. 

미국 대선에서 저들은 저급하게 굴어도 우린 고급지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고 했던 미셸 오바마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태극기 부대가 아무리 지저분하고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며 죽창과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대도, 촛불집회는 괜한 꼬투리 하나 안잡히겠단 신중함으로 어찌나 품위를 잘 지켜냈는지. 

집회 중간에 한장한장 빨간 종이 나눠주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새삼 존경합니다..

당장 퇴진, 퇴장하라는 의미로 연출한 레드 카드 퍼포먼스마저도 왤케 아름답기만 했던지, 분노조절이 잘 안되서불끈불끈 수시로 뒷골을 잡던 나와 후배들은 너무 감상적인 거 아니냐고, 촛불이 더 이상 예쁘기만 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궁시렁궁시렁거렸었다. 

물론 분노와 슬픔마저도 아름답고 우아해서 더 감동적이고, 간간이 유머와 센스가 하늘을 찔러서 더 유쾌했던 건 사실이다. 

노발평화상을 준 주체로 적혀 있는 '앞으로 태어날 후손 드림'이란 글귀를 보니 휴대폰에 든 사진이 또 한 장 떠올랐다. 역시 3월 4일 집회에서 머릿수 채우는 역할은 다 했으니 헌재쪽으로 행진은 생략하고 슬슬 고픈 배나 채우러 가자며 인사동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귀여운 후손님의 사진이다. 

초상권을 우려해 뒤에서 몰래 한 장 찍었더니만 앞에서 찍어도 된다고... 흔쾌히 v도 그려주신 호피 패션의 아기! 

다들 사진을 찍으며 이런 아이가 행복하게 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촛불을 들어야하느니라..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꽃샘추위는 아직 한참 남았겠지만 나가보면 확실히 햇볕도 바람도 달라졌다. 봄 기운이 반가운 것과는 별개로 걱정은 계속 이어진다. 대선 정국에 휘말려 이제 겨우 진행되고 있는 비리 수사가 덮이면 안되는데, 세월호 인양도 진상조사도 더 늦어지면 안되는데, 끝까지 파헤쳐서 그네를 구속시켜야하는데... 또 두눈 부릅뜨고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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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쁘면 늘 도지는 지병 탓에 일하기 싫어져 뒤늦은 영화 후기를 써야겠다. ㅎㅎ

* 스포일러는 당연히 있겠지요? 


일단 영화 본 순서대로 <너의 이름은>

장면 장면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는 맛은 있었으나 뭔가 초현실적인 이유로 남녀가 서로 몸이 바뀌는 설정은 익히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도, 영화 <체인지>에서도 겪었던 터라 약간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기야 이제는 타임슬립도 그렇고 몸이 바뀌는 것도 그렇고 어느것도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없는 듯.

게다가 소녀와 소년의 몸이 바뀔 때마다 쓸데없이 반복해서 가슴을 만져대며(!) 신기해하는 장면은 심히 불편했다. 소녀는 남자가 된 자신의 아랫도리를 부끄러워하며 확인하는데, 소년은 왜 그렇게 함부로 주물러대는지?! 남자는 다 그래.. 라는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째뜬 과도하게 반복되는 것 같아 거북했음. +_+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보고 또 보는 재관람 관객이 그렇게도 많았다지만 난 굳이 또 보고 싶은 생각은 안들던데... 만나야할 사람은 결국 만나고야 만다는 운명론과 해피엔딩엔 애니메이션이 그렇지 뭐 하며 그러려니 흡족하면서도 감동의 도가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사라져가는 일본 시골 마을의 전통에 대한 접근과 그리움은 마음에 들었고, 어쩜... 번역이 그리도 시적인지. 감탄하며 봤다. 그래서 나의 별점은 다섯개 만점에 셋. ㅎㅎ ★★★☆☆

이 영화를 보고 돌아오니 마침 올레모바일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죄다 올려주어 옳다구나 다 챙겨봤다. <초속 5센티미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언어의 정원>까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 그나마 내용이 기억날 뿐, 나머지 2개는 벌써 어떤 내용이었는지 완전 깜깜 서로 헷갈린다. +_+ 영상미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셋 다 확실히 <너의 이름은>만 못했다. 


<라라랜드>

'이 영화는 마법이다'라는 카피를 하도 많이 보기도 했고, 작년부터 그렇게들 재미있다고 주변에서 난리여서 정말 궁금했다. 나도 감동하며 볼 수 있을까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나면 어쩐지 시큰둥해지거나 괜히 시의에 편승하는 느낌이 들어 무조건 외면하는 못된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전에 봐야겠다 싶어 얼른 보러 갔었다. 어린 시절 주말마다 밤늦게 TV에서 보던 할리우드의 온갖 뮤지컬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든지 <사랑은 비를 타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같은--는 참으로 미국적이라 거부감이 들면서도 묘하게 매력이 있었다.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떼거지로 탭댄스나 왈츠를 추거나 군무를 추는 장면에서 크핫 오글거리면서 뭔가 신나는 느낌?

<라라랜드>는 그래서 내겐 '마법'이 아니라 '추억'이었던 것 같다. 단칸방 시절부터 나중에 따로 공부방이 생기고 나서도, 주말에는 TV 영화 핑계로 늦도록 자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이불 속에 누워 영화를 보다 잠들던, 정겨운 느낌과 참으로 미쿡스러웠던 영화의 이질감이 낳은 묘한 기분을 환기시키는 영화였던 것.

특히나 어려서도 나는 탭댄스 추는 배우들 모습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웠는데... 그들의 발재간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눈엔 이상해! <라라랜드>에서도 피아노 치는 라이언 고슬링의 멋진 목소리엔 홀딱 반하겠던데 에이, 탭댄스는 추지 말지 그랬어. ㅠ.ㅠ 왈츠 추다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도 난 두 사람 몸에 피아노 줄 매달았겠지.. 그런 상상이나 하고 앉았고 말이지. ㅋ

어쨌거나 LA 사는 친구 덕분에 아마도 두 주인공이 아침 노을을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나도 야경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밤하늘 색깔이 확실히 한국과는 다르구나 생각했을 뿐, 그땐 그리 예뻐보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는데, 새삼 다시 가면 또 감흥이 다르려나? 

현실적인 관계와 엔딩도 그렇고, 만약에... 그러면서 상상한 장면들까지 누군가는 폭풍 눈물을 흘렸다던데 메마른 난 그냥 그러려니 하며 봤던 것 같다. 다만 중독성 있는 영화음악은 한참 뒤까지도 흥얼흥얼...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아 저음으로 부르는 라이언 고슬링 목소리 참 좋다. 게다가 그 피아노 치는 장면도 직접 다 연습해서 한 거라고! 

남녀 주인공이 사랑스럽고 특히나 LA 친구가 제발 놀러오라고 하루가 멀다하고 부추기는 상황이 더해져서 별점은 역시나 셋. ★★★☆☆ 트럼프는 꼴보기 싫지만.. LALA LAND에 나도 다시 가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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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커피

투덜일기 2017. 3. 6. 02:41

밤참과 함께, 혹은 그냥 따로 한밤중에 따끈한 차를 한잔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 동안 사소한 고민을 한다. 밤이니깐 원두 커피는 안되고 캐모마일? 둥글레차? 메밀차? 디카페인 커피? 그냥 뜨거운 물?

디카페인 커피가 두 종류나 있지만, 말이 디카페인이지 카페인 성분이 0퍼센트는 아닌듯, 좋아라 신나게 여러잔을 마시면 커피 많이 마신날처럼 똑같이 잠이 안온다. 그냥 잠의 질이 형편없어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암튼 사랑해마지않는 깨잠을 커피 때문에 망치고 싶진 않다. 잠과 커피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난 역시 잠. ㅋㅋ

해서 조금 전에도 잠시 고민을 했으나, 에라이 모르겠다, 디카페인 커피를 집어들었다. 오늘은 겨우 두잔째이니깐 괜찮겠거니...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역시 나는 커피파다. 평생 녹차를 물처럼 마시고 살았다는 차애호가 후배 하나는 도무지 커피 맛을 모르겠다면서 그저 쓴맛밖에 안나는 커피를 다들 왜 그리 좋아하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나로선 아무리 노력해봐도 풀 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적응 못하겠는 차를 좋아라 마시는 니가 이해 안된다!  

볶은지 얼마 안되는 원두를 핸드밀로 갈아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뜨거운 물 부어 마시는, 하루 딱 한두번의 호사를 누릴 때만큼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씁쓸하고 고소하고 은은한 커피의 향과 맛에 이제 좀 일할 맛이 나는군 싶어진다. 커피와 잠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고 큰소리치며,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의 본질을 거세당했으니 커피도 아니라고 마구 무시할 때가 있었는데, 한치 앞도 모르고 막말했던 그 시절의 악담이 부끄럽다. 커피는 그래도 커피인것을. 이나마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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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 26일까지 전시중인 르누아르 전시.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상설 전시중인 천경자 전시실이 어떻게 바뀌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시립미술관 건물 자체를 좋아하니깐 뭐 그냥 보러가자 결심했었는데,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 반액할인 받지 않았더라면 본전 아까워했을 것 같다. +_+

어떻게 그나마 내 눈에도 좀 익고 좋아라하는 르누아르 그림은 단 한점도 없는지 원. ㅋㅋ

물론 르누아르가 그린 어여쁜 소녀들의 아름다움과 화사함을 보는 기쁨은 더러 있었지만, 마지막에 한 방에 몰아놓은 여체 그림들도 그저 그랬고 (모델 몸매를 너무 심히 보정해놓은 광고 사진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나;;) 전체적으로 우와.. 그림 실컷 봤다.. 싶은 충족감이 덜했던 것 같다. 

입장료는 13000원. 입장료만 놓고 보면 꽤나 야심찬 기획전인데 글쎄. +_+

그래도 전시 보러 갈 때마다 혼자 끙끙대는 놀이, 그림 한 점 가져간다면 뭘 가져가야하나 2, 3층 전시실을 유심히 2바퀴 돌며 괜한 고민에 빠졌고 두 작품 중 고민하다 어렵사리 하나를 골랐다. ㅋ


르누아르, 장미꽃을 꽃은 금발 여인르누아르,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나의 선택은 왼쪽! 이유는? 오른쪽 그림도 예뻐서 좋았으나 고양이가 좀 무서워서.. ㅋ 

그래도 요번 전시를 보며 르누아르와 내가 멋진 미술작품에 대한 관점이 똑같단 걸 알게 됐다. 사진 촬영이 금지여서 벽에 적혀 있던 글귀를 기억하진 못하겠는데, 암튼 예술은 무조건 아름다워야한다는 게 요지였다(고 기억한다).  역시.. 르누아르가 모공 하나 안 보이는 말간 피부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셀수없이 많이 그렸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군! 

다른 때 같으면 집어온 브로셔를 책상에 세워놓고 몇달은 지켜보며 흐뭇해하는데, 색감이 하도 구려서 요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_-; 포스터에 나온 저 그림의 해맑은 소녀 얼굴을 어찌나 우중충하게 만들어놓았던지. 아트숍에 깔려있는 전시 기념품들의 색감도 하나같이 원작과는 동떨어진 게 많았다. 이왕이면 장미꽃 금발여인의 모습이 담긴 걸로 뭐든 하나 골라보고 싶었으나 어우 숭해... 해서 결국 요번 전시에 포함되지도 않은 엉뚱한 뜨개질 소녀 그림이 우울하게 담긴 저렴한 비닐파일 하나 집어오는 걸로 쇼핑을 끝냈다. 

오후부터 눈발이 날려서 미술관 가는 발걸음이 괜스레 설렜는데 금방 비로 바뀌더니만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고 뭔가 공연을 한다던 것도 아무 말 없이 취소되고, 전시는 약간 성에 안 차고, 뭔가 마구 아쉬워서 뒤풀이 치맥에 괜히 욕심 부리다 속병이 도졌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 허세는 당분간 좀 참아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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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웃긴 일

놀잇감 2017. 2. 24. 12:35

방금 낯선 번호로 문자가 쏟아졌다... 엄마 전화좀?????
의아해할 새도 없이, 곧바로 독촉의 ㅇ 세례가 이어졌다.


답장을 안하면 계속 문자가 올 것 같아서 나도 답을 했고... 혜림양은 결국 실수를 눈치챘다. 난 괜히 즐거워서 깔깔 눈물나게 웃다가 이건 포스팅 감이야! 했다 ㅎㅎㅎ


좀 저렴한 십대 특별 요금제를 쓰는 아이들은 월말이 되면 알(?)이 떨어져서 종종 전화를 못 걸고 받기만 한다. 그나마 아이메시지는 아이폰끼리 무료니깐 뭐;;

근데 여기서 재미 있는 건 애당초 이 아이가 내게 문자를 잘못 보낼 수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다. 번호를 잘못 눌러서 나에게 문자가 왔다는 건... 자기 엄마 폰 번호를 저장해놓지 않았단 뜻이잖아!!! ㅋㅋㅋ

시크하고 쿨한 척하는 나의 조카들도 휴대폰 사고나서 한참 동안이나 제 엄마아빠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 그러니 고모나 할머니 번호를 저장하지 않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자식들이나 손수들에게 시시때때로 안부 문자를 날리던 왕비마마는 당연히 손주들에게 오래도록 답 문자를 받지 못했다. 나중에 만났을 때 내가 조카 ㅈㅎ이에게 왜 할머니 문자를 씹느냐고 물으니...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 자꾸 문자를 보내서 잘 읽지도 않았다고 대답을 했었다. 

애들이라 휴대폰을 잘도 잃어버리고 망가뜨리곤 해서 새 폰으로 개비를 할 때마다 나 역시 굽실굽실 제발 고모 번호 좀 저장해놓으라고 간청을 한다. 나쁜 놈들이라고 괴씸해하면서도, 이젠 '고모'라는 이름으로 번호가 저장된 걸 알면 은근 기쁘다. 근데 또 한 가지 생각지 못한 일도 발생했다. 

며칠 전엔 아 글쎄 대뜸 조카 하나가 전화를 걸더니, "고모 이름이 뭐였지?" 묻는다. ㅠ.ㅠ 깜박 까먹었다나........ 웃프다는 심정이 뭔지 순간적으로 실감하며 이름을 알려줬다. 야! 고모 이름은 독특해서 까먹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 너무한다! 그러면서 @.,@

암튼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혜림 양의 실수 문자로 조카들에 대한 괜한 섭한 마음이 누그러지다니, 완전 아전인수격 해석임을 아는데도 은근히 위로가 된다. 요즘 애들 다 그렇지 뭐 하는 마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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