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관

삶꾸러미 2016. 12. 14. 22:40

판관이라고 쓰니 퍼뜩 판관 포청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ㅎㅎ 제목을 판사라고 쓸까, 재판관이라고 쓸까 아님 '편견'이라고 쓸까 나름 고민하다 정했다. 내가 생애 최초 직접 목격한 판사는 정말 무능하고 한심해보였다. 1986년 이른바 '건대사태'라고 불렸던 건대점거농성 시위로 친구들이 대거 잡혀들어갔었고, 대부분 반성문을 쓰고서 기소유예로 나와 곧장 군대에 끌려가거나 복학한 친구들과 달리 한 친구는 고집스레 반성문 쓰기를 거부하다 시국사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응원차 동부지법에 가서 본 그 친구의 뒷모습 뒤로 저 멀리 높은 곳에 앉아 있던 판사는 얼마나 딴세상 사람 같던지. 가끔씩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법률용어를 지껄이는 검사, 변호사도 판사와 함께 세트로 그저 막연한 불신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가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웅변술을 자랑하는 변론이나 검사의 예리한 질문 따위는 없었다. 그저 사건번호와 증거서류의 나열, 사실 인정 확인 여부 정도? 당시 재판에서 가장 귀담아 들을만했고 또 친구와 부모들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건, 파란색(이었던 것으로 기억) 죄수복을 입고 나와 나란히 피고석에 앉아 있다가 최후 진술을 하라는 판사의 말에 조금도 굽히지 않고 독재타도를 위한 자신들의 행동이 무죄라며 본인의 주장을 펼쳤던 대학생 피고들이었다. 

한미한 집안이라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 중에서도 잘 나가는 '사'자 붙은 직업군이 거의 없다 보니 그들에 대한 편견도 심하다. 물론 순전히 여우의 신포도 이론일 수도 있다.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패스하면 뭐하나 노상 범죄자들만 상대하는데. 공부 잘해서 의대 나와 의사 되면 뭐하나, 노상 병든 환자들만 상대하는데. 그런 식이다. (그러나 막상 주변에 누가 아프면, 아이고 유명한 대학병원에 아는 의사 한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발을 동동 구른 적 많음을 고백한다.) 그들도 당연히 나 같은 사람을 한심해하겠지. 인문학 전공하면 뭐하나, 결국 백수인데... ㅋ

암튼 따져보니 거의 삼십년 만에 오늘 판사를 코앞에서 볼 일이 있었다. 변호사는 음... 몇년 전 친구 결혼식에서 대거 만나본 이후로, 작년에 또 집 문제로 사건을 의뢰하며 만났으니 희소가치가 아무래도 덜하다. 그런데다 놀라운 건 우리 집 토지분할 소송 건을 맡은 판사가 직접 토지측량팀과 함께 현장 검증을 나왔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원고, 피고, 피고측 변호인... 그런 말을 우리집 마당에서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듣고 있자니 뭔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_+ 게다가 오늘 또 날은 얼마나 추웠는지.

나름 중무장을 하고 나갔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다들 모이기 30분 전부터 나가서 줄자로 다시 여기저기 재고 표시하고 그간 집의 역사를 돌이키고 했던 터라  계속 밖에서 장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측량과정을 지켜보려니 덜덜 몸이 떨려왔다. 추우니 굳이 나오지 마시라고 했던 왕비마마까지 결국엔 내려와 모든 사건 당사자들과 재판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 지루하게 원고의 말도 안되는 주장(옛날에 이 집을 지어 팔면서 재건축을 예견해 알박기 해놨던 땅 20평쯤을 분할 받아서 거기다 건물을 짓겠단다. 공동주택의 분할 토지를 대체 어떻게 잘라가겠다는 건지? 우린 그럼 앞마당과 뒷마당에서 일부씩 나눠 가져가라 그렇게 주장했었다. ㅋㅋ)을 듣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나는 집으로 올라와 얼른 차를 끓였다. 

덩달아 덜덜 떨고 계신 울 엄마한테 뜨끈한 둥글레차를 먹여야겠다 그런 생각이었으나 또 어떻게 우리만 마시나... 촛불시위용으로 사둔 종이컵을 죄다 꺼내 대충 열두 잔을 만들어가지고 내려갔다. 우선 제일 연장자인 울 엄마부터... 그 담엔 누구한테 권하지? 연장자 순이면 내가 알기로 101호 주인 아저씨가 그담 차례였다. 그러고는 레이디퍼스트니깐 판사의 비서인 듯한 여자분... 

그랬더니 그 여자분이 저 멀찍이 서 있던 판사님한테 먼저 권하란다. 어 그런가요? 그러나 오... 판사는 됐다고 손사레. 순간 아 이거 나의 실수인가 싶었다. 누군가 김영란법에 이것도 걸리나요? 허허 웃으며 말했다. 흥칫뿡이다. 그럼 드시지 말라고 냉큼 돌아서서 얄밉지만 소송을 걸어온 옛 이웃, 원고측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도, 함께 온 그쪽 일행한테도 다 차를 돌렸다. 토지공사인지 지적공사인지... 측량을 하러 온 팀에게 마저 차를 돌리고 딱 한잔이 남자 그제야 판사도 못이기는 척 종이컵을 받았다. 우리측 변호사도 그렇고 다들 손시려웠는지 뜨거운 차가 담긴 종이컵을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별거 아니라도 뜨거운 차 몇 모금에 나 역시 속이 풀리는 듯. 

원고측이 원하는 대로 측량 한번, 판사가 지정하는 대로 측량 한번. 현장검증이 끝나고(이런 민사상의 확인도 현장 검증이라고 하는 줄 처음 알았다!) 관계자들은 모두 돌아갔다. 결과는 아직도 오리무중. 변호사 말로는 원고가 또 어떻게 나올지, 판사도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묵묵히 지켜보아야 한단다. 암튼 오늘의 깨달음은 내가 낸 세금으로 나라에서 월급 주는 판사에 대한 막연한 나의 불신과 거부감이 단 한번의 대면으로 약간 흔들렸다는 점이다. 아, 일 열심히 하는 판사도 있겠구나. 다 권력과 결탁해 버티다가 전관예우를 노리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가끔 소신있는 판결과 양심 깃든 판결문으로 뉴스에 나오는 판사가 희귀종처럼 생각됐었는데, 우리 엄마와 나에겐 너무도 대단한 사건이되 밖에서 보기엔 돈도 얼마 결부되지 않은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런 사건으로 추위에 덜덜 떨며 몇시간이나 현장검증을 하는 판사도 있구나 신기했다. 

법조계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깊은 편견에 사로잡혔으면 이런 걸 다 신기해하나 싶다가도, 보수, 진보 성향에 따라서 전혀 다른 법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있자니 불신은 당연한 것도 같다. 아무리 인간이 만든 법률이고 언어라는 것이 미묘한 차이가 있다지만, 그래도 '법'인데 어떻게 해석과 적용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 나로선 정말 모르겠다. 판관, 편견, 판결. 이상하게도 초성 게임이라도 하듯 조합이 비슷한 이 세 단어를 오늘 종일 생각하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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