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371건

  1. 2018.05.07 다시 아까시꽃의 계절 4
  2. 2018.04.24 손목 부실 8
  3. 2018.02.21 또 자수 2
  4. 2018.02.21 꽃 아니고 나무 2
  5. 2018.01.31 눈이 왔는데;; 4
  6. 2018.01.30 취미 자수 시작 5
  7. 2018.01.26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 -DDP 4
  8. 2018.01.23 새해에는... 4
  9. 2018.01.14 건초염 4
  10. 2018.01.12 파랑이 여동생 2

주변의 꽃과 나무 전문가샘들께 들으니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가 맞단다. 서양이름 아카시아는 열대 원산지인 다른나무라는 듯. 아무튼.. 어느새 갖가지 나무의 연둣빛 이파리 색이 점점 진해가는 가운데 달콤한 향기가 동네를 진동하는 계절이 왔고... 외출하려고 언덕길을 내려가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꽃송이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해 휴대폰을 꺼냈다. 작년에도 아까시꽃 개화기록을 블로그에 했던가 안했던가. +_+a 아까시꿀 따는 거 딱 하나 용도 이외엔 토양에도 숲의 식생에도 죄다 도움 안되는 '나쁜' 나무라고 하지만 그래도 예쁘고 향기로워 나는 좋아할란다. 동네 축대 위, 시멘트 길 옆에서도 안죽고 씩씩하게 자라면 제 몫은 다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잎줄기 하나 따들고 가위바위보 하면서 누가누가 많이 따나 내기할 친구가 바로 곁에 없는 것이 다만 섭섭할 따름이다.


나름 정사각형으로 자른다고 잘랐는데 똑같이 못 잘랐구만. ㅎㅎ




Posted by 입때
,

손목 부실

투덜일기 2018. 4. 24. 00:00

어렸을 때부터 평생 한번도 키큰 축에 들어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들어갔을 땐 아마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는 것도 같다. 암튼 체구는 늘 작아도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물리적인 힘이 약하고 체력이 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겠지만, 덩치 큰 남자애들이 괜히 힘으로 괴롭히려 들면 울먹거리면서도 입싸움으로 맞서며 지지 않으려고 했다. 남동생들만 둘 있어도 꽤 오래도록 내가 녀석들을 보호(?)하거나 챙겨주는 입장이었지, 내가 보살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집에 바퀴벌레나 돈벌레가 나타나도 두놈은 서로 니가 잡으라고 떠밀기만 할 뿐 재빠르게 행동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꽥~ 비명을 지르며 내가 살생에 나서는 식이었다. 또 벌레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냥 두고는 마음을 놓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으니 어쩌겠나. 

힘이 없어 보여서, 혹은 내가 여자라서 '열외'되는 특권도 때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려해주는 척 하고는 뭔가 다른 걸 요구하기 십상이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하던 시절, 커피 심부름을 하느니 나는 차라리 생수통을 낑낑대며 들어 꽂는다든지, 복사용지 박스 옮기는 쪽을 택했다. 힘 쓰는 일은 우리가 하잖아, 그러니깐 커피 정도는 타줄 수 있지 않겠냐, 책상에 걸레질 좀 죄다 해줘라는 놈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사전에 '연약한 척'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음료수병이나 캔을 못 따서 남자들에게 내밀며 "오빠, 이것 좀 따주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여자들까지 은근히 째려보며 싫어했다. 우웩, 웬 내숭이냐! 쌀자루도 번쩍번쩍 들 수 있게 생겨가지고...


그런데 이제야 드디어 편협했던 나의 태도와 편견을 반성하고 있다. 음료수 병, 커피캔, 맥주캔을 힘 없어서 못 따겠다며 남자들 힘을 빌리던 여자들 중엔 정말로 손가락이나 손에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그 비율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자긴 손톱이 잘 부러진다면서 커피 캔 따는 걸 꼭 날 시키던 친구도 사실 있었다. 하기야 약한 척 내숭이 아니라, 힘자랑을 칭찬 받고 싶어 안달하는 단순한 남자들에게 옛다 일감을 안겨주는 현명한 처사였을 수도 있겠다. 힘에 부쳐도 난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야! 그러면서 끙끙 얼굴 시뻘게져가며 병뚜껑 돌려따는 내가 어쩌면 더 편협한 인간이었을 수도 있으려나.

하여간에 요즘 나는 병뚜껑 열기 분야에서 자신감과 독립심이 아주 바닥이다. 의사의 권고대로 요샌 한달 넘게 정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이런저런 호르몬과 염증수치가 정상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영 효과가 더딘 모양이다. 걸핏하면 손목과 팔이 아파서 ㅠ.ㅠ 무거운 걸 들기도, 양념병을 열기도 힘에 부친다. 바삐 끼니 준비할 때, 무겁고 뜨거운 큰 냄비도 막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들던 순간의 괴력은... 더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에효.

가장 난적은 쨈병과 각종 소스 병이다. 진공상태가 되었거나 냉장고에 들어 있다가 나온 놈들은 특히 더! 다리 사이에 병을 끼우고 온 힘을 다해 낑낑대다가 결국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돌려야 병이 열린다. 후다닥후다닥 바쁘게 요리하다 말고 양손에 고무장갑 끼려면... 아오 짜증나.

나름 꽃무늬;;라고 오려보았다 ㅋ


마침 고무장갑 한쪽이 구멍났길래 묘안이다 싶어 손목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두었다. 작년에 캐나다에 갔을 때였나, 기념품숍에서 병뚜껑 열기 전용 실리콘 덮개를 본 적이 있었다. 꽃무늬가 예쁘게 들어간 녀석이었는데 가격보다는 너무 두꺼워서 사오지 않았다. 쨈병, 소스병 여는데는 쓸모가 있지만 작은 주스병, 소주병 뚜껑을 덮어 열기엔 너무 두툼했기 때문이다. 근데 주방용 고무장갑 두께면 완전 딱이지 않겠나. 요리하다 말고 귀찮게 손 닦고 말려 고무장갑 낄 필요도 없고. ㅎㅎ

이렇게 손바닥만하게 나름 꽃모양으로 오린 고무장갑 조각을 싱크대 걸이 한 구석에 걸쳐놓고 꽤나 요긴하게 써먹었다. 우리집에서 한달 지내다 간 (주로 설거지를 담당한) 친구에게 자랑도 했다. "내 아이디어 죽이지 않냐? 미국이랑 캐나다에선 얼핏 여러 가게에서 본 거 같은데, 한국에선 이런 거 안파나봐. 본 적 없어.." 라고.  

재수없게도 엄청 알뜰하고 지혜로운 주부인 척 했던 거다. 헌데 출국 전 다이소에서 온갖 편리한 살림도구를 장만해가겠다고 나선 친구가 주방도구 코너에서 예리한 눈썰미로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까먹었는데;; 병뚜껑 따개 도우미였던가... ㅋㅋㅋ 당연히 마데인차이나인 이 물건은 단돈 1000원에 이런 게 3장이나 들어있었다.

친구가 고무장갑 오린 거 얼른 버리고 이거 사쓰라며 쇼핑 카트에 넣어주었는데;;; 물론 나는 저 고무장갑 오린 것도 못 버리고 병뚜껑 열 일이 있을 때마다 두 개를 비교해가며 사용한다. ^___^

하긴 뭐 구멍뚤린 고무장갑 손목부분 얅게 잘라서 고무밴드 대신 사용하라는 살림 꿀팁도 본 적 있다. 노란 고무줄보다 튼튼해서 훨씬 요긴하다면서. 

다이소표 병뚜껑 도우미 3장과 저 분홍 고무장갑 조각을 함께 쓰면 앞으로 10년은 쓰지 않을까 싶은데;; 웬 궁색을 떠나 싶어 확 버릴까 하다가도 왠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놔두고 있다. 뭐든 잘 못 버리는 나의 지병 탓도 있겠고.

아무려나 병뚜껑을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매번 아메바스럽게 부실한 손목 상태를 까먹고 일단 무심히 힘을 써보고는 아야! 윽! 통증에 놀란 다음에야 비로소 이 고마운 고무재질 물건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떻게 손이 아프단 걸 매번 까먹을 수가 있는지 원. ㅠ.ㅠ 아마도 나 말고 집안에 힘쓸 사람이 더 있다면 나도 당연히 얼른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예전에 냉장고에 넣어둔 장아찌나 피클 병을 열 때..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온힘을 다 주어도 잘 안 열려 끙끙대고 있거나, 도움을 청하면 아버지가 다가와 이그... 진작에 아빠를 시키지 그랬니. 하셨더랬다. 당신도 손이 작은 편이라 단숨에는 해결 못하고 힘깨나 쓰신 후에 병이 열리면, 별 것 아닌 일에도 퍽 으쓱으쓱 아버지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그게 웃겨서 나도 일부러 거들었었다. 어이구, 울 아빠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몰라... 

집안에 큰 힘 써줄 남자가 없어도, 손목이 부질해져서 소주병 돌려따는 것도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지경이 되었어도 물론 모녀는 잘 살고 있다. 어떻게든 상황이 닥치면 다 살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에는 팔꿈치까지 저릿저릿해서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도 마우스를 클릭해대는 것도 아예 힘겨운 날이 있다. 으음 그럼 손목받침대랑... 뭔가 또 다른 해결 방법이 있겠지? ㅠ.ㅠ

몸도 총체적으로 부실한데;; 밥벌이를 하지 않고도 남은 일생을 편히 사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벼락을 맞는 것 = 복권 당첨밖에 없는 것 같아서 얼마 전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본 복권 5장은 천원짜리 1장 빼고 모두 꽝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으면서도 또 사볼까 하는 마음이 팔랑팔랑 자꾸 드는 건 변덕스런 봄날씨 탓일까. 에잇, 이래저래 속상하다.  




Posted by 입때
,

또 자수

놀잇감 2018. 2. 21. 22:37

새해 들어 또 다시 번역일은 개점휴업 상태다. ^^;

불안감 탓인지 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멍하니 놀기만 하기엔 식충이스럽고... 손목은 아파도 뭔가 생산적인 노닥거림을 하는게 확실히 시끄러운 정신 가다듬기에 도움이 된다. 한땀한땀 수를 세며 샘플 사진이나 도안과 자수를 비교하고 있으면 정말로 잡생각이 들 수가 없다. 혹시라도 잡생각이 삐지고 들어온 순간 바로 틀려 풀어야하는 사태 발생! 귀찮아서 풀지 않고 개성이라 우기겠다 맘먹은 부분도 많지만, 책에 있는 도안이 아니고 인터넷을 뒤져 시도해 본 '작품'들도 이 정도면 됐지 싶어 대체로 흡족하다. 









Posted by 입때
,

꽃 아니고 나무

투덜일기 2018. 2. 21. 22:11


"저는 꽃 아니고 나무거든요!" 그 옛날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쌈닭모드로 돌변해 내가 종종 외쳐대던 말이다.

첫 직장이었던 미국 회사에서 인종차별에 열받아 이직한 한국 회사는 당시 중소기업 분위기가 다 그런 것이었는지 여직원들에게만 임직원 취향에 맞는 투피스 유니폼을 입혀놓고서(여직원회에서 고른 서너벌의 후보작을 실제로 여직원들이 입고 패션쇼 하듯이 임원실을 돌며 최종 낙점을 받았다. 와 지금 생각해도 열받는다;;), <여직원은 사무실의 꽃>이라는 전제 아래 온갖 허드렛일과 잡무를 시키며 꽃처럼, 아니 하녀처럼 묵묵히 지들 시중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92년 즈음의 일이다. 

난감했다. 미국회사에선 그래도 남녀차별은 없었고, 지점장도 커피는 제손으로 타 먹었는데 맙소사. 똥밟았나. 회사를 잘못 선택했나. 고민이 많았다. 그뿐인가, 부서별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기생집에 가서 애첩 끼고 앉듯이 나이 어린 여직원들을 주로 부서장들 옆에 사이사이 끼워 앉히고는 술을 따르게 했다. 술 약한 여직원에게도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들어놓고선 다음 날 킬킬대며 그들의 실수를 농담 삼아 씹어댔다. 

그 옛날엔 회식 때도 2차로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 가는 걸 당연시했고, 여직원들은 부르스를 추자는 놈팽이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으면 억지로 끌려나가 '안겨야'했다. 참 폭력적인 조직 문화와 성희롱, 성추행이 '친선도모'라는 핑계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회사일로도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데다가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회식 자리 불편함까지... 총체적인 불만에 휩싸인 나는 상사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가끔 막 들이받았다. 술 핑계로 니들이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디 니들도 한번 당해봐라 그러면서 야, 김대리! 이부장! 너 진짜 재수없거든! 여직원들 술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억지로 먹여! 나도 욕할 줄 알아, 씨*! 뭐 이런 식이었다. 쌈닭 레벨 최고치에 달했던 당시 '왕언니'로서, 손버릇 나쁘기로 유명한 놈에게는 한두번 경고하다가 얼굴에 술을 뿌린 적도 있었다. 물론 내가 정신줄을 놓을 만큼 취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몇번 그렇게 의도적인 진상을 부리자, 일단 여직원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나름 꽤 중요한 해외 업무를 홀로 도맡아 하고 있는데, 회사 25년 역사상 '유일한 경력직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계속 물을 먹으며 때려치울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라, 부당한 처사라고 느껴지면 상사에게 종종 대들면서 두렵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짤라보시지. 누가 손해인가. 어린 여직원들을 당연히 수족처럼 부리던 놈들에게 나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골칫덩어리였고, 눈엣가시였으나 막상 내가 세게 나가면 비겁한 놈들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여직원은 사무실을 장식하는 꽃도 아니고, 당신들의 하녀는 더더욱 아니라고! 니들 여동생이나 와이프나 애인이 회사 출근해서 이런 대접 받으면 좋겠냐! 

각종 기계 매뉴얼과 계약서, 합작투자계획서 따위를 번역하는 것이 토나오게 싫기도 했지만, 회사생활을 관둬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건 결국 보수적인 조직사회와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계속 왕언니로 여직원 대표로 목청 높여 싸워대는 것도 너무나 피곤했다. 내가 꽃 아니고 나무라고 버럭버럭 외치는 사이, 그래도 자기는 '꽃'이 좋다며 바쁜 업무보다 화장에 더 공을 들이는 어린 여직원들도 있었다. 자긴 사내 연애 성공해서 결혼하는 게 목표라면서. 7년만에 난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사표를 냈고, 진짜로 재미난 번역을 해보겠다고 프리랜서 생활을 선택했다. 사방에서 나 같은 인재를 알아봐줄 것이라고 믿었던, 하늘 높이 치솟았던 자만심은 그러나 금방 꺾였다. 호기롭게 이력서를 들이밀었던 몇몇 출판사에선 내게 습작이 더 필요하다고 권했다. ㅎㅎ 암튼 6개월쯤 뒤 드디어 첫 책의 번역을 맡았고,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단 번역서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게 95년 12월이었다. 

초창기 몇년간 드문드문 일이 들어왔지만, 작업 속도도 느렸고 당연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진 못해 과외로 용돈벌이를 해야했다. 번역가로 자리를 잡으려면 출판계에서도 인맥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아 그렇겠구나. 1년에 한두 권 나왔다 사라지는 번역서로 나를 알아봐주긴 역부족이겠구나. '호의적인' 의도로 출판인들을 소개해주겠다는 이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당시엔 주요 일간지에 '북리뷰'가 실리면 단박에 만부는 휙~ 팔려나가 매출이 오르던 시기였기에, 출판인들이 모이는 자리엔 종종 일간지 도서담당 기자들도 초대되었다. 출판사 사장님들은 그런 기자들에게 준비해 온 돈봉투를 슬며시 쥐여주었다. 신간 나오면 기사 좀 잘 써달라고 미리 관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뇌물이었다. 뇌물 공여자리에 불려나온 나는 뭔가. 혹시 기쁨조? 

나처럼 '인맥을 넓히고자' 불려나온 신참 번역가들과 함께 그런 자리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난 왜 여기 나와 앉아 있는가 의아했다. 글도 얼굴이 예뻐야 잘쓰는 거라면서, 책 날개에 실리는 여성작가 프로필 사진에 신경을 쓰라는 둥, 번역가도 약력 뿐만 아니라 사진도 같이 넣으라는 둥, 내 프로필 사진을 예쁘게 찍어줄 사진 기자를 소개해줄 터이니 언제 한번 신문사로 오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다. 왁짜지껄 웃으며 옆에 있던 누군가 슬그머니 내 어깨에 팔도 둘렀다.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였다면 난 또 상을 들러 엎으며 쌍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며 잠자코 버텼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마지막 회식 자리. 2차로 노래를 부르러 함께 가자던 그들의 손아귀를 세차게 뿌리치며, 그 자리에 나를 부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 저 다시는 부르지 마세요. 어지간히 취한 그 사장님은 저 사람들 알아두면 다 좋은데, 앞으로 도움이 될 텐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난 인상을 팍 쓰며 돌아섰다. 차라리 내가 과외를 한 탕 더 하고 말지. 더러운 놈들. 96-7년 즈음에 겪은 일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로 시작되어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학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며, 과연 이 사회의 썪은 부분들 이번엔 뿌리까지 다 도려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슬그머니 잊혀 괴로운 핍박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염려스럽고 궁금하다.  

아직도
기막히게도... 감히 겁도 없이...
술은 장모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라고 말하거나
음양의 조화를 위해 우리더러 지들 사이사이에 끼어 앉으라든지
당연히 노래방 도우미 취급하려든다거나 (그래서 음주 후엔 아예 노래방에 안 간지 오래)
유머랍시고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이른바 ’어르신들’ ‘선배님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 있다. 
직장 상사들이라면야 사표와 술을 얼굴에 뿌리며 대들고 따지겠지만 (다신 안볼 거니까) 공론화하여 사회적 매장을 시도할지도 모르지만, 대단히 관계가 애매한 친목성 조직의 구성원이라 아직은 정색하고 따지며 반발하고 경고하는 수준에서 대체 앞으로 어디까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지켜 보는 중이다.  

사회생활 회식 자리에서..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에서
성추행 성희롱 한번 안 당하고 이 나라에서 살아온 성인 여성은 단 한명도 없을 거라는데 내 아픈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다. 본인도 모르게 체화된 더러운 습관이 죄악인 줄도 모르는 괴물들과,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동조하고 그저 쉬쉬해서 덮으려고만 한다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파렴치한 이 땅의 시스템은 뿌리가 너무도 깊고 튼튼해서 여간해선 뒤엎기 어려울 것을 안다. 조직의 위상과 명예에 흠이 간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했던가. 

작년이었나...
어느 선배님의 습관적인 성희롱 유머 발언에 발끈해 뛰쳐나가 씩씩대는 나에게 또 다른 선배님이 위로랍시고 말했다. 에이 소녀도 아니고.. 새삼 뭘 그런 거 같고 그렇게 반응하냐고.

소녀가 아니니까요! 어렸을 땐 불편해도 대응법을 몰라 그저 얼굴 붉히며 참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무서울 게 없는 쌈닭 아줌마거든요! 

법조계, 문학계, 연극계, 학계, 예술계... 연이어 터져나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아도 (공무원 사회에서 아직 조용한 건 결국 조직을 떠나겠다는 극한 결정을 해야 성폭력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폐쇄된 분야라는 뜻이라고 본다) 결국 속속들이 썩어문드러졌다는 의미다. 문단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땐 워낙 거대한 이슈였던 촛불에 묻혔던 것 같은데, 이번 움직임이 부디 세계적인 행사인 올림픽 때문에 묻혀버리진 않기를 빈다. 

연극계 괴물이 버젓이 뻔뻔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미 법적으로는 단죄의 방법이 없다는 교활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175년이던가, 죽어서도 다 못 치를 징역형이 내려진 미 체조계 성범죄자 의사의 경우와 어쩌면 이토록 법이 다른가. 시위할 때마다 맨날 성조기까지 펄럭이며 미국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왜 법규 제정은 미국 따라가자는 말을 안하는 건지 원. 이참에 성폭력 관련 법규들이 제대로 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도록 국회차원에서 현실적인 법안들이 마련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수사방법과 제도에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와 사회적 고립이 무서워서라도 다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더러운 욕망과 손길을 휘두르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리우드 미투운동 때처럼 우리나라도 돈 많은 사람들이 턱턱 거액을 기부해 피해자와 실천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가난한 프리랜서인 게 웬수다. 젠장. 일단 국내 최대최강 로펌 중에서 보란듯이 이번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대리인으로 나서 변호하며 성범죄 괴물들을 감방에 보내거나 거액의 피해보상금을 빼앗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중등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유도 모른 채 인터넷에 만연한 여혐 분위기와 비뚤어진 성의식에 물든 아이들을 구제하려면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중학교 교실에서 내가 장애, 인종, 성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던 날, 대뜸 누가 물었다. 선생님도 메갈이에요? +_+ 메갈이 뭔지 나도 모르겠고, 그런 사이트는 사라진지 오래건만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차별에 대한 사고부터 바뀌는 게 시급하다. 아직도 성별 자체가 힘인 경우가 너무도 많으니, 실제로 권력을 쥔 괴물들의 성범죄 수준이 더욱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작년에 실제로 후배들 채용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에서 마지막 면접에 오른 10명 중 여:남 비율이 8:2였을 때, 남자애들 둘이 면접도 보기 전에 서로 얼굴 보며 씩 웃었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네들은 둘 다 뽑혔다 싶었다나. (실제로 최종 합격한 그 둘 중 하나가 나의 후배였으니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역차별이니 뭐니 하고들 앉아 있으니 원. 어느 조직이든 최고권력자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들은 그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를 줄 알며 성폭력도 그 권력의 범위 안에 있다고 당당하게 믿는다. 드물게 여성들 중에도 최고 권력자에 올랐던 박씨와 최씨가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하긴 그들이 꼭두각시였으니 정치인들이 다 알고도 마음대로 하려고 대통령에 앉혀놨을 거다. 이용해먹기 얼마나 좋았을까. 

무서운 말이기는 하지만 '강간'이라는 말보다 범위가 모호하고 순화된 성폭력이라는 말이 공적으로 사용된 이유가 뭘까 궁금한 적이 많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의 구분도 가만 보면 가해자들이 빠져나가기 더 쉬운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강간문화에 대한 미화가 아니고서야 대체 왜? 성폭력 범죄자 주제에 사회적인 비난 앞에서 사과하는 척 하다가 뒤로는 명예훼손 소송으로 겁박하는 뻔뻔한 유형도 기막힐 노릇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피해자들이 범죄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그게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썩어빠진 세상.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는 건 맞지만 사회에 만연된 성폭력 문제에 관한한 좀 더 급격한 변혁이 필요하다. 파렴치한 괴물들은 다 처단하고, 예비 괴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성문화 밑바탕부터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우선 남녀는 꽃과 나비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은 인간이고 나무라고 가르치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싶다. 


Posted by 입때
,

눈이 왔는데;;

투덜일기 2018. 1. 31. 22:26


어제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처음엔 정말로 재가 날리나 싶었던 가는 눈발은 어느틈에 함박눈으로 변했고 두어시간 사이 수북하게 싸였다. 해저문 저녁 왕비마마 등쌀에 또 내려가 아픈 손목으로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다. 이젠 정말 이 건물에 눈 쓰는 사람이 나 아니면 울엄마뿐이다. 아래층 101호 아저씨는 늘 한밤중에 귀가해 오전내내 자는 것 같고 (그래서 종종 밥때를 놓쳐 마당에 묶인 개가 한밤중에 쇠사슬을 쩔그럭거리며 빈 밥그릇을 발로 차는 게 아닐까) 새로 102호 이사온 사람은 얼굴도 본 적 없고 가끔 밤에 불이 켜진 것만 보았는데... 어제 보니 마당 눈을 밟고 망설임없이 집으로 들어갔더라. 하긴 나라도 이런 집에 세들어 살면서 마당 쓸기 의무를 느꼈을 거 같진 않다. ㅋㅋ 그러나 또 착한 나와 엄마는 맨날 아래 두 집 현관 앞과 계단까지 눈을 쓸어준다. 야박하게 계단에서 우리집 현관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만 내는 건 또 좀 아니다 싶어서... 다행히 어제 눈은 별로 수분이 없어 무겁지 않았고 금방 쓸렸다. 다행히도.

째뜬 아마 무릎이 아프지 않았으면 오늘 신이 나서 눈 밟으러 동네 앞산에 올라갔을 텐데 ㅠ.ㅠ 나중을 기약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미끄러운 눈길에 발목과 무릎에 힘주어 걷다보면 멀쩡한 다리도 퍽퍽한데, 괜히 넘어지기나 하면 큰 낭패. 못 간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바닥 울퉁불퉁 안 미끄러운 패딩 부츠 신고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 나무에 쌓인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투덜투덜 커피나 마시자 생각하며 휴대폰에 든 설경 사진을 되돌아보는데, 어랏 맞다, 적년 겨울엔 앞산에 눈 구경 가서 동영상도 찍었었지! 하는 깨달음. 그리고 마침 어제 여기 동영상을 직접 올리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겠다, 곧바로 활용해야지.

휴대폰 스피커로 듣는 바람 소리랑 컴퓨터 스피커 바람소리는 확실히 다르다. 그간 계속 욕만 했는데 ㅋㅋ 새삼 쓸만한 티스토리.

그치만 동영상 초보라 가만히 못 들고 있고 이리저리 휘둘러대서 좀 어지럽다고 미리 고백함. ^^;; 





Posted by 입때
,

취미 자수 시작

놀잇감 2018. 1. 30. 01:00

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Posted by 입때
,


2018년에 본 첫 그림전시는 뜻밖에도 신윤복과 정선 그림이었다. 2017년 마지막 본 전시가 고궁박물관 희정당 벽화 총석정 그림이더라니.. ㅎㅎ 뭔가 절묘한 인연의 연장선? 

동대문 DDP에서 몇년전부터 계속 간송미술관의 수장고에 첩첩이 쌓여있던 미술품들을 교체전시하고 있는데, 혜원의 전신첩과 정선 그림을 야금야금 나눠 보여주는 바람에 꽤 여러번 갔었지만, 요번처럼 혜원 전신첩을 대거 한꺼번에 구경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영하 18도 예보가 있던 날 하필 이 전시를 보러 가자고 그랬을 때는 에이... 이왕 혹한을 떨치고 나간 거, 바로 직전 포스팅에 적어두었던 기대전시 중 하나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으나, 막상 가서 보니 그저 좋았다. 

혜원과 겸재의 그림만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옛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나 나의 편견으로 괜히 꽁해가지고는 나는 원본이 좋더라, 특히나 디지털로 되살린 현대 미술품 나는 원래 안 좋아해! 라며 궁시렁거렸었는데 ㅋㅋ 그 또한 막상 보니 좋았고 으아~ 감탄한 작품도 있었다. 아이고 민망하여라. 앞으로는 '나는 원래 어쩌고 저쩌고...' 이런 말 함부로 안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했다. 절대고, 원래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좀 변하기도 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말이야...  간송도 요즘 트렌드에 어쩔 수 없이 기개를 꺾었는지, 휴대폰으로 플래시 안 터뜨리면 원본 사진도 찍게 해주더라. 물론 작품 보호를 위해 조명을 하도 컴컴하게 해놔서 잘 나오지는 않지만서도..

해서.. 원본 대신 입구에 진열된 혜원 전신첩 설명을 찍어왔다. 어차피 그림 제목도 혜원이 정한 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편의상 붙인 것인데, 그 아래 요즘 유행하는 언어로 붙여놓은 태그 글귀들도 기발하고 재미났다. #BGM빵빵 #알콜뽀샵 #사대부스웩.. 막 이래! ㅋ

2018년 5월까지 넉넉하게 계속 전시한대고, 입장료는 입장료는 10,000원이다. 


혜원전신첩이 총 30점인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ㅎㅎ


혜원 전신첩에서 특히 유명한 <단오풍정> <쌍검대무> 같은 그림 속 의상을 고급지게 만들어 마네킹에 입혀 전시해놓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좀 섬뜩하지만 ㅋㅋ 실제로 볼 땐 캬... 한복이며 옷감 예쁘다고 그 앞에서 침을 흘렸다. 

신윤복의 그림 속 주인공들을 모두 모아 한편의 애니메이션처럼(고흐의 작품들로 만든 <러빙 벤센트>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야기를 꾸몄고, 쌍검대무의 무희들은 특별히 따로 춤추는 장면이 나타났다. 혜원 전신첩 중에서 <쌍검대무>를 특히 좋아하는 편이고 그림에서 바람이 슝슝 나오는 것 같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그 느낌을 동영상으로 보니 또 나름 좋더라. 

단점이라면... 영상 화면이 나오는 벽이 너무 길어서 한눈에 볼 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ㅠ.ㅠ 당연히 내 실력 탓이지만 동영상도 잘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저나 나 여기 동영상 직접 올리는 건 처음인가 보다! 이런 기능 있는줄 왜 몰랐지? ㅋ)


겸재 정선은 서른여섯 살엔가 처음 근처 현감으로 부임한 친구 이병연의 초청으로 금강산 구경을 하고는 그때부터 70대가 될 때까지 여러번 금강산 그림을 그렸는데, 연도별로 점점 더 호방하고 세련되게 숙련된 필치로 발전해나가는 그림체의 느낌이 확연히 보인다. 초심자땐 누구나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만, 원본에 집착하게 되는데 나중에 노련해지면 최선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느라 생략의 묘미도 막 부리고 그런 거지...

암튼 금강산 그림들이 담긴 겸재의 전신첩도 멋드러졌으나 사진엔 그 맛이 하나도 담기지 않아 죄다 삭제해버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한 점 선보이자면...

<해악전신첩>에 든 '내금강산도'일 거다


이 금강산 봉우리 사이사이에 현대적인 도시를 접목시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디지털 작품은 이런 느낌이다.

위 그림에선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아래 그림에선 잘 찾아보면 남산타워, 에펠타워도 있으며 9분인가 7분인가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불꽃놀이도 벌어지고 그런다. 

금강산의 4계절의 변화 모습도 있던데 그건 좀 너무 속도가 드려서 답답한 느낌이라 빨리감기 버튼이 어디 있으면 막 누르고 싶었었다. ㅎㅎ

금강산 <총석정>은 금강산 앞바다에 있는 주상절리 '총석' 꼭대기에 세워진 정자 이름이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도 궁금한 총석정 그림을 희정당 벽화로도 보고 겸재 그림으로도 보고... 평창 올림픽엔 북한 선수들이 오고... 언젠가는 정말 금강산 총석정 구경을 나도 할 수 있을까? ㅎ 

둘의 느낌이 비슷한가? ^^;; 


아래는 맨 마지막 전시실 디지털 작품인데... 기다란 벽 화면에 화려한 꽃들과 풍경이 눈부시게 연이어 펼쳐진다. 한참을 구경하며 핸드폰으로 찍으려고 이리저리 애를 써도 색감이 죄다 날아가버려 포기하고 아쉬워하며 뒤를 돌았더니 뒤쪽 거울에 비친 화면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옳타구나 찍어오긴 했는데 이제보니 내 실루엣을 확 오려버리고 싶다. +_+


말도 안되는 혹한에 며칠째 두문불출하다 게으름 떨치고 나간 외출이라 특히 보람있고 좋았다. 이날 동대문에 간 바람에 드디어 자수실과 브로치 재료도 사왔다. (곧 자수 포스팅이 이어진다는 예고다. ㅋ)





Posted by 입때
,

새해에는...

놀잇감 2018. 1. 23. 21:12

해마다 거의 그렇지만 2018년이라는 말이 제대로 입에 붙으려면 설날은 지나야하는 것 같다. 기분상으로도 아직은 새해가 아니고 '헌 해'인 것 같달까. 1월 1일에 떡국은 끓여먹었지만 어거지로 더 먹은 나이도 아직은 인정 못하겠고... 

암튼 그래서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내야 행복할까 고민하며, 부질없든 말든 이런저런 소망들을 적어본다. 여기저기 소문내고 기록해두어서 그 '말의 힘'으로라도 많이 이루어지면 좋지 아니할까. 자꾸만 맥떨어져선 쓸데없는 회상에 젖어 미련이나 떨고 그러지 말고 이제 좀 앞으로 전진...하고 싶다.  

1. 베트남에 나가 있는 친구네 놀러가기 (마음 같아선 한 2, 3주 가서 얹혀 지내며 놀고 싶지만 에효.. 불가능하겠지. 북쪽 지방 트레킹도 가려면 현재로선 너무 더워지기 전인 4월을 노리고 있으나 과연;; )

2. 무릎 잘 고쳐서 등산 열심히 다니기 (그러려면 남들 잘 때 자는 생활습관부터 길들여야할 듯;; ㅠ.ㅠ) & 서울 둘레길 남은 스탬프 다 찍고 완주 배지 받기 

3. 공포감을 극복하고 치과 & 피부과 가기 (그러나 무시무시한 비용 어쩔!)

4. 작년에 시들해진 취미생활 5분 스케치 & 색연필 스케치 (일단 프리즈마컬러 색연필 150색부터 지르자! ㅋㅋ)

5. 새 취미생활 시작 - 프랑스 자수 (자수책과 자수틀과 천 구입 완료. 실과 바늘, 브로치 재료만 사면 됨 ^^;)

6. 전시회 많이 다니기 (작년엔 기대 전시 적어놓고도 거의 다 놓쳤음)

7. 휴대폰 개비? (액정이 깨지고 배터리게이트 탓에 느무느무 속터지게 느려진 아이폰6를 바꾸긴 바꿔야할텐데 애플은 밉상이고 삼성은 더 밉상이고 LG는 안예쁜데다 요번에 엄마 핸드폰 보니 기본앱들이 너무 흉하다. 아이튠즈에 들어 있는 음악 때문에라도 또 아이폰을 사게 되려나... 아 몰랑)


하여 일단 2018 기대 전시목록부터 적어놓으련다. 12월부터 적어놓은 목록 중엔 벌써 끝난 것들도 있다.ㅜ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 아라아트센터 ~2/4까지

소화:짤막한 이야기 - 서울미술관 ~2/7까지

님을 위한 바다: K현대미술관 ~2/11까지

퀸틴 블레이크 일러스트 원화전: 상상마당 ~2/20까지

지브리 대박람회: 세종문화회관 ~3/2까지

플라스틱 판타스틱: D뮤지엄 ~3/4까지

자코메티 특별전: 한가람미술관 ~3/11까지

마리로랑생 전: 한가람 ~3/11까지

신여성 도착하다: 덕수궁 현대미술관 ~4/1까지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대림미술관 ~5/27까지

강요배: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덕수궁 현대미술관 5-10월 예정

조선지도 500년 공간, 시간, 인간의 위대한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6/19~9/2

니키 드 생팔: 한가람 6/30~9/25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5~8/26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궁중회화 - 덕수궁미술관 11/7~2019 2월

마르셀 뒤샹: 국밉현대미술관 서울관 12월~2019 4월

전시목록을 열심히 적다보니 책도 좀 읽으시지.. 하는 마음이 드네그려. 책은 결심 같은 거 안하고도 좀 많이 읽으면 안되겠니. 흠.


Posted by 입때
,

건초염

투덜일기 2018. 1. 14. 14:11

처음 아팠던 게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설날이었던가 어느해 명절에 힘든 노동을 다 견디고 난 다음날, 스트레스 풀러 약속을 잡았는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 갑자기 고통스러웠다. 발을 디딜 때 아픈 게 아니고, 다리를 접을 때 무릎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던 거다. 그날 하루 종일 절뚝이며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명절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그랬나보다 막연히 생각했었다. 푹 자면 낫겠지.

당시에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통증이 반복되기를 여러 달. 문득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겁을 내다 결국 정형외과에 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관절도 연골도 이상은 없다면서, 의사는 다리 근육강화 운동을 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소염진통제를 한 이틀 받아왔던가. 언제 그랬었나 싶게 무릎은 곧 멀쩡해졌다. 스트레스성 상상통이었나 싶을 정도로. ㅎㅎ

그러고는 또 몇년. 그 사이 나는 놀랍게도 '등산인'이 되었다. ^^; 2016, 17년엔 하루 20km가까이 걷는 것도 예사인 서울 둘레길도 걸어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만 했을 때는 무릎 통증이 재발되지 않았었는데, 아스팔트 걷는 길도 많은 둘레길이 문제였던가? ㅠ.ㅠ 암튼 작년부턴 등산을 3시간 이상 하면 꼭 내려올 때 무릎이 아팠다. 왼쪽 다리가 아플 때도 있고 오른쪽 무릎이 아플 때도 있어 통증이 왔다리갔다리 했었는데, 12월부턴 계속 오른쪽 무릎만 아팠다. 그리 많이 걷지도 않는 날이었는데, 산에 올랐다가 간식 먹으며 좀 쉬다보면 일어날 때부터 다리가 뻣뻣하고 무릎을 접을 때마다 아팠다. 젠장..

1월 첫 등산인 북한산 백운대를 갔던 날도 내려오면서 퍽 고생을 했다. 많이 아파서 오른쪽 무릎을 세게 짚을 수가 없으니 왼쪽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결국 다음날엔 양쪽 다리가 모두 아팠다. 왼쪽은 근육통, 오른쪽은 원인 모를 통증. 하루 푹 자고 나면 증상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젠 며칠 지나야 멀쩡해졌다.

올해 결심 중 하나는 등산을 다시 열심히 다니는 거여서, 엊그제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사실은 오른쪽 손목도 아픈지 꽤 된 상황이었다. 영화 번역 작업을 하면 장면 시간 맞춰 일일이 자막을 넣어 자막 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우스를 엄청 많이 써야 하고 그런 날은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갔었다. 멀쩡한 것 같다가도 병뚜껑을 열어야 할 때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든지, 손목을 아래로 꺾으면 아픈 정도. 직업병이려니 하면서도 째뜬 이참에 다 물어보았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은 뒤 건초염 진단을 받았다.

관절과 연골엔 여전히 이상이 없고 힘줄에 염증이 생긴 거란다. 무릎과 손목이 아파서 왔다는 내 말에, 의사는 통증 부위에 무리가 가는 일을 했느냐는 질문보다도 먼저 평소 몇시에 자느냐고 물었다. ㅠ.ㅠ 어... 좀 늦게 자는데요. 주로 밤에 일을 해야 해서...  불면증도 좀 있고... 대번에 그게 원인이란다. ㅎㅎㅎ 잠을 제때 안 자면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그래서 염증이 쉬 발생한다고. 에고. 

바닥에 양반다리하고 앉지 말것, 관절을 심하게 꺽는 자세는 피할 것, 가능하면 일찍 잘 것, 내리막길은 피할 것.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잘 낫지 않는 병이라며 소염진통제 처방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자는데, 내가 다시 물었다. 실은 내일 등산을 가거든요. 가면 안되나요. ㅠ.ㅠ 의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등산은 관절을 희생해서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어느 기관을 튼튼하게 할지는 본인이 선택해야겠죠. 건초염에 안 좋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셨네요. 잠도 제때 안자고, 등산 다니고... 헐. 

나는 숲에 가야 불면증이 낫는다고 변명했고, 의사는 정 좋으면 어쩔 수 없다면서 등산을 가야겠거든 스틱을 꼭 쓰라고 조언했다. 고주파 치료, 자기장 치료, 찜질 등등의 물리치료를 받고 났더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말짱해졌다. 아싸... 좀 불안했지만 소염진통제도 먹었겠다 다음날인 어제 아침 압박밴드로 오른 무릎을 단단히 감싼 채 괜찮겠거니 싶어 꾸역꾸역 등산을 따라갔다.

올라갈 때는 정말로 아픈 줄도 모르겠고 멀쩡했는데 2시간이 넘어가고 하산길이 이어지자 점점 무릎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절룩거리는 나를 보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어우 씨 짜증나고 창피해서 원. 신년산행이고 이후 행사가 있어서 7km정도로 산행이 짧아 다행이지 더 높고 긴 산행이었으면 큰고생했을 것 같다. 통증은 내 문제이지만, 단체 산행에서 홀로 행동이 느려지는 건 남들에게도 민폐가 되는 짓이라 앞으로도 걱정이다. 과연 완전히 다 나아서 산에 계속 열심히 다닐 수 있을까? 

어제 송송송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기분 정말 좋았는데 ㅠ.ㅠ 벌써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런 내 마음이 무식한 고집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 

Posted by 입때
,

파랑이 여동생

투덜일기 2018. 1. 12. 21:17

벨로의 반려묘 귄이와 여동생 고양이 쥬비의 소식과 사진을 간간이 접하며 나도 모르게 슬몃 미소를 짓는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고양이는 쳐다보는 것도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귄이 등을 쓰다듬었던 그 감촉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털이 꽤나 빳빳한 느낌이라 의외였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파랑이의)개털이랑 확실히 달라!

암튼.. 큰동생네 개 파랑이에게도 얼마전 여동생이 생겼다. 이름은 라거. 보리 빛깔이라서 맥주가 연상되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귀여운 암컷 강아지에겐 좀 안어울리는 듯도 하지만, 뭐 내가 인간도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하듯 남성적인 이름을 지닌 암컷 골든리트리버를 누군가는 멋지다고 해주기를. ^^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커지는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기로 한 동생네의 결정에 일단 우려를 금치 못했지만 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뒷말을 하겠나. 다만 중성화 수술을 했으되 수술 직전에 딱 한번 짝짓기의 맛(?)을 본 터라 가끔 수컷의 본능인지 인형에게 수상쩍인 부비적거리기를 시전하는 파랑이는 어쩌라고 여동생 강아지를 들여왔나, 파랑이가 좀 불쌍하긴 했다.

다행스럽고 기쁜 건 귀여운 새 반려견이 들어오면서 온 가족이 똘똘뭉쳐 파랑이와 라거를 같이 챙기며 마구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애견 펜션엘 갔다질 않나, 파랑이와 라거를 조카 둘이 서로 자기 새끼라며 각각 데리고 잔다질 않나, 새로운 강아지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편애를 아이들이 나름 알아서 보완해주는 모양이다. 기특한 녀석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