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의 반려묘 귄이와 여동생 고양이 쥬비의 소식과 사진을 간간이 접하며 나도 모르게 슬몃 미소를 짓는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고양이는 쳐다보는 것도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귄이 등을 쓰다듬었던 그 감촉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털이 꽤나 빳빳한 느낌이라 의외였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파랑이의)개털이랑 확실히 달라!
암튼.. 큰동생네 개 파랑이에게도 얼마전 여동생이 생겼다. 이름은 라거. 보리 빛깔이라서 맥주가 연상되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귀여운 암컷 강아지에겐 좀 안어울리는 듯도 하지만, 뭐 내가 인간도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하듯 남성적인 이름을 지닌 암컷 골든리트리버를 누군가는 멋지다고 해주기를. ^^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커지는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기로 한 동생네의 결정에 일단 우려를 금치 못했지만 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뒷말을 하겠나. 다만 중성화 수술을 했으되 수술 직전에 딱 한번 짝짓기의 맛(?)을 본 터라 가끔 수컷의 본능인지 인형에게 수상쩍인 부비적거리기를 시전하는 파랑이는 어쩌라고 여동생 강아지를 들여왔나, 파랑이가 좀 불쌍하긴 했다.
다행스럽고 기쁜 건 귀여운 새 반려견이 들어오면서 온 가족이 똘똘뭉쳐 파랑이와 라거를 같이 챙기며 마구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애견 펜션엘 갔다질 않나, 파랑이와 라거를 조카 둘이 서로 자기 새끼라며 각각 데리고 잔다질 않나, 새로운 강아지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편애를 아이들이 나름 알아서 보완해주는 모양이다. 기특한 녀석들.
나로선 파랑이랑 친해지는 것도 한참 걸렸는데, 완전 천방지축 새로운 '대형견'이 생겼다니 동생네 가는 일이 사뭇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되게 궁금했다. 조카와 올케가 번갈아가며 프로필 사진에 바꿔 올리는 보송보송한 강아지 사진이 좀 귀여워야지! +_+ 완전히 몸집이 다 자라기 전에 나도 한번 보고 싶다 그럴 정도였다. 애완동물 사진도 확실히 예뻐하는 사람이 애정을 담아 찍은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것 같다. 아래 사진들은 죄다 큰조카 ㅈㅁ이가 찍은 거란다. 아마도 한두달쯤 됐을 때? 이때는 정말 털도 보들보들 아가였다는데;;
9살된 파랑이랑 이때만 해도 덩치 차이가 크게 나질 않았네;;
그러다 마침내 지난달과 요번달에 두 번 파랑이 여동생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왕비마마와 내가 그 집에 가면 원래도 파랑이가 현관까지 달려나와 신도 벗기 전에 매달리고 반기는데, 아니 라거는 언제 우릴 봤다고 온몸으로 달려드는지?! 무서워;;; ㅠ.ㅠ 흐미, 두툼한 갈색 앞발이 사자 같다;; 침은 또 왤케 흘리나.. 악! 막 팔을 물어! 줄줄 흘린 침 어쩔;; 첫 대면의 당혹스러운 순간은 결국 흥분한 라거를 케이지에 잠시 가둬두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가엾지만 할머니랑 고모는 니가 너무 무섭단다...
내가 실물로 만났을 땐 확실히 사진으로만 구경하던 귀엽고 아가스러운 모양새는 다 사라지고, 펄쩔펄쩍 뛰어다니며 애정을 갈구하는 개망나니(?) 같은 모습으로 비쳤다. ㅋ 물론 ㅈㅁ이가 스스로 얼굴과 팔다리 긁혀가며 '뽀뽀'와 '손!' 공집어오기 놀이 따위 교육은 시켜놓아 그 재주가 신기했지만 결국엔 다 간식을 노리는 식탐이었어! (파랑이는 성견으로 인계 받아 딱히 가르친 재주가 없다;;)
그리고 털도 확실히 보들보들하다기 보다는 이제 생각보다 빳빳하고 촘촘해서 말티즈인 파랑이 털을 쓰다듬는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다. 늠름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 어깨 근육 움직이는 모습이 진짜 사자가 아닐까 싶다니깐.
째뜬 라거는 유치가 빠지면서 이가 근질거리는지 화분이란 화분은 죄다 씹어놓고... 시침 뚝떼기 일쑤였다는데... 개엄마는 그마저도 귀엽다며 사진 찍어서 카톡 프로필에 올려주시고.. ㅎㅎㅎ 난 또 좋아라 구경다니고...
(오른쪽 사진의 라거 표정을 보면.. 약간 스누피가 연상되기도 한다. 비글도 아닌 놈이 왜 비글스럽게 말썽을 부리냐;;;)
아래 사진은 12월 중순에 간식을 주어 녀석을 잠시 진정시키고서 가까스로 건진 한 컷이다. 비교대상이 없으니 얼마나 컸는지 잘 안보이는군.. 암튼 저 뭉툭한 앞발을 내 허리에 올리고 매달리면 뒤로 휘청~ 밀린다. ㅎㅎ
12월이니깐 3개월 조금 넘었을 때인듯
이날 내 옷은 온통 개침과 누런 개털로 뒤덮여 돌아와야 했다. +_+ 이 녀석을 집에 들이고 나서 온종일 청소하고 뒤치다꺼리 하느라 ㅈㅁ엄마는 살이 다 쏙 빠졌더란다. 원래도 깔끔하게 청소에 힘쓰시는 분인데 오죽했을라고;;
그러다가 지난 주말에 ㅈㅎ이 생일을 맞아 근 3주만에 다시 녀석을 만났는데 ㅎㅎㅎ 그새 또 자랐어!
4개월 골든리트리버 vs 10살 말티즈
이젠 파랑이가 라거 몸집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많은 오빠답게 라거를 꼼짝도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한다고! ㅋㅋㅋ
둘이 막 짖으며 댓거리하는 거 봤는데 라거가 확실히 밀리더라. 녀석아, 파랑이 오빠가 얼마나 산전수전을 다 겪었는 줄 아느냐... 까불지 마라. ^^
이런 얌전한 스냅사진은 간식으로 유인해 잠시 두놈의 시선을 빼앗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엄포를 놓아야 가능하다. 어휴...
요번에 조카들이랑 다 모였을 때 나의 염원은 가장 어린 막내조카랑 라거를 나란히 앉혀놓고 투샷을 찍는 거였는데, 깡마른 ㅈㅇ와 훌쩍 자란 라거는 이제 덩치가 거의 비슷한데다 ㅈㅇ가 워낙 개를 무서워해서 옆에 오는 것도 못 견뎌했으므로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염원이었다.
게다가 큰 키로 식탁이든 주방 카운터든 척척 매달려서 인간의 음식을 훔쳐먹는 것에 맛을 들인 라거 때문에, 호시탐탐 앞발과 고개를 들이미는 녀석을 막느라 웃기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러나 결국 우리가 방심한 새 라거는 ㅈㅁ 언니의 케이크 접시를 낚아채 크림을 훔쳐먹는 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로도 계속 식탁을 뺑뺑 돌아가며 앞발을 들이밀어 과일접시며 빵 접시를 잡아당기려 했다. 아이고 너 언제 철 들래..
빵접시를 노리고 달려드는 순간이다 ㅎㅎ
계속 과일 접시를 노리는 라거 ㅎㅎ
큰동생 말로는 골든리트리버가 영리하고 순해서 맹인안내견으로 활용될 정도지만, 아기때는 워낙 천방지축 말을 듣지 않아서 키우기 어려운 개라고 한다. 차차 교육을 잘 시켜야한다는 얘긴데 에효... 암튼 파랑이는 파랑이대로, 라거는 라거대로 쓰다듬어달라고 놀아달라고 달려드는 상황에 잘 적응이 안되고 아직은 큰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녀석에게 물릴까봐 덜덜 떨려서 동생네 식구들이 잡고 있지 않는 한은 어떻게 감당을 못하겠지만, 모든 동물의 아기는 어릴수록 귀엽다는 진리 탓인지 그 뭉툭하고 묵직한 앞발의 무게와 마이구미 젤리 같았던 발바닥 촉감이 가끔 떠올라, 수시로 동생네 식구들 프로필을 들여다본다. 또 새 사진 올라온 거 없나.. 그러면서. ㅈㅎ이와 친구들이 식탁에 남겨둔 팬케이크 2장도 시침 뚝 떼고 흔적도 없이 훔쳐먹었다니, 앞으로도 인간의 음식을 탐하는 라거와 가족들의 길들이기 전쟁(?)이 한동안 이어지겠지.
대형견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편견이 만만치 않은데, 아무한테나 반갑다고 달려들어서 잘근잘근 물어대려고 하는 버릇도 얼른 고쳐주면 좋겠다. 내가 가더라도 시크하게 쓱 쳐다보고 제 자리에 앉아 잠만 자는 얌전한 리트리버로 자라렴, 라거야. 고모네 집 뒷마당에서 이 혹한에 낑깅 울어대며 개집과 담요가 있으나마나 거의 한뎃잠을 자는 너의 먼 사촌 래브라도리트리버에 비하면 니가 얼마나 행복한 줄 아니. 무려 ㅈㅁ언니랑 한 침대에서 동침이라니... 그 언니가 이젠 이 고모랑도 동침을 안해주거든! 흥칫...
암튼 집안에 새로운 인간 아기가 탄생한 것처럼 지난번 가족모임에선 파랑이 여동생 때문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집에 들이는 것이겠지. 부디 파랑이도 라거도 더는 사고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