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보고서'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10.02.22 막요리의 기록 19
  2. 2010.01.06 홍대 조폭 떡볶이 11
  3. 2009.06.04 엄마표 김밥 21
  4. 2009.04.17 음식 단상 13
  5. 2009.03.15 새로운 커피 메뉴 발견 11
  6. 2009.01.13 I ♡ U 약식 21
  7. 2008.12.17 라면 23
  8. 2008.08.26 떡볶이 타령 19
  9. 2008.08.25 커피 메뉴 19
  10. 2008.07.15 커피 유난 2 17

일주일을 주기로 거의 비슷비슷한 집밥 메뉴가 반복되는 데 질린 무수리는 뭔가 색다른 걸 먹고 싶은 욕망과 그 <색다른> 것을 직접 요리해야 한다는 비애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결국 식탐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어제 오늘 만들어본 막요리 몇 가지를 기록한다. 대충 인터넷 레시피를 뒤져 적용했지만 시행착오도 있었고, 어떤 건 그냥 충동적으로 만든 거라 다음에 또 해먹고 싶을 때 참고하려면 어디든 적어놔야 할 것 같다.

<생굴 무침>
늘 식사준비에 들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걸 목표로 삼고 있으므로 생굴을 사와도 그냥 초고추장에 찍어먹기만 했는데, 모나브님의 염장 밥상 포스팅을 본 데다 며칠 밑반찬으로 두고 먹으려면 무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모나브님 레시피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레시피를 참고했다.
재료: 생굴 500g, 무 한토막, 양파 반개, 다진 마늘 한 숟가락, 대파 반뿌리, 청양고추 한 개, 고춧가루 세 숟가락, 멸치액젓 한 숟가락, 천일염 두 숟가락(은 너무 많다, 적당히 조절 필요), 올리고당 한 숟가락, 매실청 한 숟가락, 참기름이랑 통깨 약간.
1. 무와 양파를 나박김치 모드로 납작하게 썰어 소금 한 숟가락(죄다 밥숟가락 기준)을 뿌려 1시간쯤 절인다.
2. 생굴을 소금물에 씻어 체에 건졌다가 역시나 소금 한 숟가락을 뿌려 역시 1시간 절인다.
3. 고춧가루와 다진마늘, 다진파, 송송 썬 청양고추, 멸치액젓, 올리고당, 매실청 양념을 한군데 쏟아 섞어 놓는다. 고춧가루를 불려야 잡스러운 맛이 없어진다고 어디선가 조언하더라.
4. 절인 무를 먹어보니 너무 짠 것 같아서 얼른 씻어 물기를 꼭 짰다. 다음엔 반 숟가락만 넣고 절일 것.
5. 생굴도 너무 짜질까봐 다시 살짝 물로 헹궈 체에 받쳤다.
6. 양념에 물기 뺀 굴과 무, 양파를 넣고 살살 버무린다.
7.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
그럭저럭 맛있어서 뿌듯했다.

<물미역 초고추장 무침>
재료: 물미역, 소금 약간, 고추장, 식초, 다진 마늘, 참기름, 올리고당, 통깨 (분량도 재료도 내맘대로였음)
1. 물미역을 잘 씻어서 뿌리를 잘라버리고 손질한다.
2. 냄비에 물을 끓여 소금 약간 넣고 물미역을 데친다. 갈색 미역이 금세 초록색으로 변하므로 적당히.
3. 데친 미역이 좀 미끌거리는 것 같아 찬물에 한 번 씻은 후 기다란 미역을 먹기 좋은 크기로 가위질 또는 칼질해서 자른 뒤 물기를 꼭 짠다.
4. 고추장 서너 숟가락, 다진 마늘, 참기름, 올리고당, 식초를 적당히 넣어 조물조물 무치며 맛을 봐 완성한다.
새콤달콤 꽤 먹을만한 샐러드 대체 반찬이 탄생됐다.

<달래장 콩나물밥>
재료: 콩나물, 잡곡, 달래, 다진 마늘,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약간, 통깨.
1. 잡곡을 씻어 평소보다 물의 양을 반눈금 정도 적게 압력밥솥에 앉힌다. (콩나물밥은 흰쌀로만 하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집 쌀독엔 이미 백미, 현미, 흑미, 보리쌀, 서리태, 기장쌀이 모두 섞여 담겨 있으니... 솔직히 난 어려서도 콩밥을 좋아했고 잡곡밥에 익숙해져서 흰 쌀밥 싱거워서 싫은데, 왕비마마도 조카들도 흰쌀밥이 좋단다. 나 원참)
2. 콩나물도 깨끗이 씻어서 앉힌 쌀 위에 얹는다.
3. 취사를 눌러 밥이 되는 동안 달래장을 만든다.
달래 뿌리쪽 가운데 들어 있는 딱딱한 껍질 같은 걸 일일이 떼내는 게 귀찮아서 잘 안사다 먹는데, 역시나 그 과정이 제일 싫었다. 암튼 다듬은 달래를 잘 씻어서 체에 받쳐 물기를 뺀 뒤 쑹덩쑹덩 2cm쯤 길이로 잘라서 (개인적으로 너무 잘게 다지는 것보다는 씹히는 게 많은 달래장이 좋다. 거의 달래나물 수준으로 ^^) 간장과 고춧가루 약간, 다진 마늘 한 숟가락, 참기름, 통깨를 넣으면 끝이다. (달래 향이 파랑 비슷해서 나는 달래 무칠 땐 파를 넣지 않는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4. 취사가 끝나면 콩나물과 잡곡밥을 잘 섞어서 푼 뒤 달래 위주로 양념장을 푹 퍼 넣어 비벼 먹는다. 예전엔 달래장에 식초를 좀 넣어 만든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생략.
콩나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면, 콩나물밥은 가끔 먹고 싶어진다. 만날 로망만 품다가 실로 몇년 만에 시도해본 건데 맛있었다!

<달래장 두부조림>
달래장이 너무 많아서 소진용으로 생각해낸 반찬이다.
재료: 두부 한 모, 포도씨유 약간, 위에서 만든 달래장.
1. 두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프라이팬에 포도씨유를 넣고 부친다. 내 경우 두부 한 모를 12등분했다. 
2. 노릇노릇 부쳐진 두부를 냄비에 담고, 달래장을 적당히(?) 위에 얹어 살짝 불에 조린다.
보들보들 고소하고 담백한 두부조림 완성.  

전생에 궁궐 사는 왕족이었든 수랏간 나인이었든 어쨌거나 나는 반찬이 수두룩하게 놓인 밥상이 좋다. 최소한 7첩반상은 돼야 행복을 느끼는 편이고, 반찬이 단촐하면 밥먹기가 싫다. 누군가 해바치는 밥상을 받아먹을 운명이 아니고서야  참 더러운 취향이다. 복잡한 게 싫어서 일품요리 위주로 간단하게 먹는 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난 그렇게 먹으면 밥심이 2시간밖에 가질 않는 느낌이다. ㅠ.ㅠ 이 못말리는 식탐이 슬프다. 어쨌거나 이삼일은 국이랑 생선만 구워 먹어도 밥상이 풍요롭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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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참 먹은 김에 키드님의 홍대 설경 사진을 보고 나서 포스팅해야지 생각했던 조폭 떡볶이 이야기나 해야겠다. 
홍대앞에 자주 다니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홍대앞 주차장 거리의 명물 포장마차 조폭 떡볶이가 글쎄 점포를 냈다고 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도 포장마차는 그대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 옆쪽으로 번듯하게 테이블을 갖춘 점포를 냈으며 상호도 <조폭 떡볶이>로 간판까지 내걸었다고 했다. 드럼통 몇 개 엎어놓은 손바닥 만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만날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장사 잘 되던 가게가 번듯하게 점포를 넓히면 희안하게 맛도 달라지고 서비스도 달라져 결국엔 망하고 마는 이상한 경우를 익히 보아왔던 나는 더럭 걱정이 앞섰다. 일단 포장마차와 점포 두 곳으로 나뉘면 당장 떡볶이 맛부터 달라질 게 아니겠나 말이다!

내가 처음 조폭 떡볶이 포장마차의 존재를 알개 된 것은 무려 15년전이다. 홍대 클럽이 지금처럼 정신 사나워지기 훨씬 이전에 얼떨결에 단체로 춤바람이 들어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 <황금투구> <명월관> <발전소> <조커 레드> <흐지부지> 따위의 클럽에 놀러 다녔던 시절, 신나게 춤을 추고 나온 뒤의 출출한 뱃속을 채우기엔 딱이었던 그곳을 소개한 후배는 당연히 그 유명한 전설을 내게 들려주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주문을 해도 듣는둥 마는둥 대답도  잘 안하고는 기막히게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를 턱턱 내주는 주인 아저씨가 전직 조폭인데 마음 잡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터라 가끔 깍두기 아저씨들도 찾아와 말없이 오뎅과 순대를 먹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잘 살피면 얼굴 어딘가에 사연 깊어 보이는 흉터도 있다는 전설이었다.
 
몇년 계속 들락거리며 들으니 그건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하도 무뚝뚝해서 그런 헛소문이 돌았다는 카더라 통신도 함께 떠돌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건 밤마다 일대 포장마차는 하나같이 파리를 날려도 그 포장마차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조폭 떡볶이>가 그 무시무시한 전설과 함께 그토록 오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맛이었다. 그 집 떡볶이는 내 머릿속에 <이상>으로 자리잡은 떡볶이의 맛에 가장 부합하는 맛이다. 특별히 잡다한 양념 맛 없이 그저 고추장과 물엿으로 맛을 낸 듯한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랄까. 순대와 튀김, 김밥, 오뎅까지 다른 메뉴도 골고루 먹어봤지만 일단 언제나 손님이 많아서 회전율이 높으니 모든 메뉴가 다 신선할 수밖에 없고, 특히 떡볶이는 그 주변 포장마차 떡볶이를 거의 다 먹어봤어도 비슷한 맛조차 내지 못할 만큼 맛이 있었다.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일만큼, 자주는 못가더라도 나 혼자 단골이라 여기던 포장마차였기에 점포확장을 빌미로 행여 맛이 변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다.

다행히 친구 말로는 맛이 변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 했는데,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는 법이어서 마침 죄다 떡볶이 애호가들이 모인 지난주에 칼바람과 빙판길을 무릅쓰고 새로 열었다는 주차장길의 조폭 떡볶이 점포를 찾았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풍선기둥엔 상호와 함께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피식 웃음부터 나왔는데, 과연 조폭 주인아저씨가 점포의 주방을 직접 맡을 것인가 과거처럼 포차에 올라 앉아 있을 것인가 염려했던 내 걱정은 점포 외부에 설치된 높은 주방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본 순간 누그러졌다. 가게가 생기긴 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주방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되는 대로 자리를 잡고 먹는 셀프 시스템이었다. 가게 인테리어는 <조폭 떡볶이>라는 상호와 부조화를 이룰 만큼 뜻밖에도 대단히 여성스러운(?) 느낌에 아늑하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워보일 정도였다. 그뿐인가, 가게 안에 마련된 남녀 분리된 화장실까지 깨끗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제일 중요한 떡볶이 맛은 옛날 맛 그대로였다. 초저녁에 떡볶이를 처음 만들고 있는데 혹시라도 그냥 빨리 먹고 싶어 재촉을 하면, 아저씨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끝까지 양념을 다 졸여 맛이 밴 다음에 퍼주던 바로 그맛. ^^;

신촌에도 포장마차가 꽤 많지만 거긴 떡볶이를 만드는 네모난 판이 하나밖에 없어서 떡볶이가 거의 떨어져 갈 때면 거기다 다시 물을 붓고 흰떡을 넣고 다시 양념을 해 한쪽에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영 재수가 없으면 고추장 물에 빠진 맛대가리 없는 떡볶이를 억지로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조폭 떡볶이집에선 그런 되다만 떡볶이는 팔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최고 인기 품목인 떡볶이가 다 팔려나가기 전에 언제나 옆에서 새로운 떡볶이를 한 판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래서 그토록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명성을 쌓았겠지만...

이번에 연 가게엔 조폭 떡볶이의 역사가 무려 20년이며, 조폭 소문에 대해서도 정말로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받은 오해였다는 해명 내용의 벽걸이가 걸려 있었다. 소화 안된다고 다들 툴툴거렸던 게 무색할 만큼 떡볶이와 순대 오뎅 튀김을 후딱 먹어치우며 생각해보니, 지난 여름에 그 옛날의 춤바람 파트너와 만난 김에 부러 포장마차엘 갔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는 홍대쪽에 갈 일이 있어도 배가 너무 불러 떡볶이엔 생각도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반년간이나 내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도 그간 꾸준히 바글바글 손님이 몰리고 돈을 많이 벌어 번듯한 가게까지 낸 조폭 떡볶이 아저씨들은 어쩐지 점포확장 했다고 맛과 서비스가 달라져 결국 망하고 마는 이상한 음식점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 15년 전엔 주인 아저씨 혼자였던 것 같은데 몇년 지나며 일손을 돕는 아저씨들이 하나둘 늘어갔고 이젠 테이블을 닦아주는 아르바이트생 같은 예쁜 언니에다 설거지용 주방에서 빈 그릇을 닦는 아줌마들까지 갖추었지만, 떡볶이 값은 몇년째 15년 전보다 겨우 500원 오른 2500원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떡볶이 맛이 변함없으니 하는 말이다. 

춤바람은 사라진지 오래여도 홍대앞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동네지만, 15년전의 추억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곳은 조폭떡볶이가 유일한 것 같다. 역시나 춤바람 일행들이 오래도록 열광했던 버섯칼국수집도 자리를 옮기고는 옛날의 영화를 잃고 말았다. 확실히 칼국수며 김치 맛도 그 옛날의 맛이 아니라 나부터 가고싶지 않아졌으니, 조폭떡볶이마저 맛이 변한다면 무척 허무할 거다. 조폭떡볶이 아저씨들이 계속 승승장구 번창해서 아예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날까지 한결같은 맛과 무뚝뚝함을 유지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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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김밥

식탐보고서 2009. 6. 4. 17:57

누구나 오랜 역사와 추억의 양념 때문에라도 자기 엄마표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김밥집이 흔하지도 않았고, 김밥 먹는 날이 일년에 몇번 학교에서나 집에서 소풍 갈때로 국한되어 김밥이 꽤나 <귀한> 음식이었던 나 같은 옛날 세대에겐 더더욱.
나 역시 김밥을 아무리 손수 <싸>먹거나 <사> 먹거나 <얻어> 먹어보아도, 옛날에 울 엄마가 싸주셨던 추억의 김밥만큼 맛있는 건 없었다고 회상하게 된다. 식성에 따라 김밥 내용물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는 하지만, 생김새부터 맛까지 거의 천편일률적인 김밥들 사이에서 울 엄마표 김밥은 정말 조금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당근을 채썰어 볶는 것이 아니라 다져서 볶은 뒤 밥에다 섞는다는 것. 그리고 달걀부침도 지단으로 얇게 부쳐 잘라넣는 대신 스크램블드에그 하듯 마구 뒤적여 잘게 부숴 역시 밥과 함께 볶거나 밥에 섞었다. 나는 우리집 삼남매가 익힌 당근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엄마가 어떻게든 당근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들으니 다른 사연이 있었다.
가난하던 그 시절 우리집은 비싼 일반미 대신 정부미를 주로 사먹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를 정부미는 값이 싼 대신 당연히 일반미보다 질이 떨어졌다. 색깔도 새하얀 일반미보다 당연히 탁하고 거무스름했던 듯. 평소엔 당시 혼식장려 캠페인 때문에 강제로라도 다들 보리를 넣어 도시락을 싸가야 했으므로 정부미밥도 다른 애들 밥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소풍날 혼식 검사를 할 리도 없고, 특별식인 김밥을 쌀때엔 당연히 쌀로만 밥을 짓는 것이 정석이었던 모양이다. 새하얀 쌀밥 한 가운데 정갈하게 속 고명이 들어간 김밥들 사이에서 거무스름한 쌀로 지은 김밥을 비교당하게 만들기 싫었던 울 엄마는 밥에 참기름 말고도 다진 당근과 달걀부침을 부숴 넣어 버무리는 묘안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어린 우리들은 그저 김밥이라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기뻐서 밥 색깔이 조금 다른 것쯤 신경도 안 썼을 것 같은데, 그 옛날부터 울 엄만 참 별 걸 다 신경쓰는 아줌마였다는 얘기다.
아무려나 볶음밥으로 다시 김밥을 싼 것처럼, 약간 노르스름한 밥에 시금치와 소시지(옛날엔 햄 대신 당연히 소시지로 김밥을 쌌다!), 어묵, 단무지를 넣은 울 엄마표 김밥은 소풍 때마다 단연 인기였다. 소풍 가서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끼리 서로 엄마 음식솜씨를 품평하듯 김밥을 하나씩 서로 바꿔먹곤 했는데, 깔끔해 보이진 않지만 전체적인 간도 딱 맞고 전혀 뻑뻑하지 않은 울 엄마표 김밥만큼 맛있는 김밥은 없었다. 부잣집 친구가 싸온, 쇠고기를 볶아넣고 자른 김밥 하나하나마다 정갈하게 한 가운데 깨소금을 얹은 최고급 김밥보다도 나는 정말이지 울 엄마가 싸준 김밥이 더 맛있었다. 단순히 팔이 안으로 굽는 것만은 아니어서, 친구들도 너도나도 내 김밥을 하나 얻어먹으려고 달려들 정도였고, 소풍에 따라오신 친구 엄마들도 울 엄마한테 김밥 만드는 비법을 묻기도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엔 우리도 일반미를 먹을 형편이 되었지만, 우리집 김밥 만드는 법은 바뀌지 않았다. 쌀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맨밥에 참기름과 소금만 버무려서는 절대로 울엄마표 김밥 맛이 나지 않는 걸 어쩌랴.
우리들이 다 자라 학교에서 소풍가는 일이 더는 없게 된 뒤에는 정말로 연중행사처럼 드물게 엄마표 김밥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조르거나, 김밥을 특히 좋아하는 막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해주셨는데, 옆에서 내가 거드느라 엄마의 코치대로 김밥을 말아보면 영낙없이 옆구리가 터지거나 내용물이 한쪽으로 쏠렸다. 요리솜씨 뛰어난 엄마의 유전인자를 어느정도 물려받아 웬만한 음식은 흉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예쁘게 김밥 마는 비법은 도무지 터득할 수가 없었다. 김밥집에서 파는 것처럼 밥을 잔뜩 많이 넣으면야 나도 내용물을 한가운데로 몰리게 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한입크기로 적당히 얇으면서 내용물이 정 가운데 들어가도록 하는 것인데 난 왜 그게 안되는지! 그걸 터득하겠다고 허구한 날 김밥을 싸먹을 순 없는 일이어서, 얼마 전부터 나는 너무도 귀찮은 김밥싸먹기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울 왕비마마는 와병 후 살림에서 손을 뗀지 수년이고, 제대로 된 엄마표 김밥을 마지막으로 먹은 건 아마도 10년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가 아무리 솜씨를 부려도 김밥만은 추억의 그 맛과 모양을 살려낼 수가 없었다. 정 집에서 싼 김밥이 먹고 싶으면, 조카들의 잦은 소풍 뒷바라지에 이젠 김밥달인이 되었다는 올케들에게 살짝 몇 줄 더 싸달라고 부탁하면 되는 일인 걸 뭐. ;-p (이러니깐 시누이 소리 듣는 거라고?? ㅋㅋ)

하지만 또 내가 누구인가. 식탐 앞에선 웬만한 결심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의지력을 바닥내는 단세포 동물.
얼마 전 집에서 싼 김밥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다른 요리는 후다닥 뚝딱 잘도 하겠는데 김밥은 정말로 귀찮아서 다시는 만들어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걸 뒤집을 만큼 욕망이 컸다. 얼른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준비하고 있으려니 아차 싶었다. 집에 흰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다. 엄마의 건강을 위해 매번 항아리에 백미, 현미, 흑미, 서리태, 보리, 율무, 기장쌀까지 모두 적당한 비율로 섞어 넣어놓고 밥을 해먹고 있으니, 흰쌀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영양가야 더 많겠지만 김밥을 시커먼 밥으로 싸야하다니... 속상한 일이었다. 밥도 어지러운데 다진 당근과 달걀을 섞어 넣는 건 곤란할 것 같아 당근은 아예 넣지 않기로 했다. 익힌 당근 싫어!

사진은 그렇게 해서, 아마도 수년만에 내가 싼 깁밥의 몰골이다. 심혈을 기울여 치즈까지 넣었지만 밥이 너무 뜨거워 금세 녹아 더욱 볼품없어졌고, 내용물은 역시나 한쪽으로 밀린데다 크기도 들쭉날쭉 가관이었다.
내용물에 다 따로따로 간을 했어도, 원래 방식대로 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싱거워 30% 이상 부족한 깁밥을 꾸역꾸역 집어 먹으며 나는 또 중얼거렸다.
"내 다시는 집에서 김밥 싸먹나 봐라..."

엄마는 좀 싱겁긴 해도 먹을만하다고(맛있다고는 절대 하지 않으셨다!) 했지만, 들인 품과 기대에 비하면 결과물은 실망스럽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랏간 무수리의 삶을 이어오면서 느끼는 건, 아무렇게나 쉽게 대충 해서 먹을 때 결과물이 더 흡족하다는 사실이다. 괜히 공들여 절차가 복잡한 요리를 하면, 가사노동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 과정에 이미 지치고 화가 나는데다 식탐과 식욕 기대치 또한 높아 웬만해선 만족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왜 또 그렇게 먹고 싶은 건 많은지 원...
벨로와 키드님이 통영 여행에서 먹은 충무김밥 자랑하는 거 보고 식탐이 동해 해먹은 짝퉁 충무김밥도 그랬었다. 역시나 잡곡밥으로 싼 김밥은 보기에도 먹음직하지 않았고, 모나브님의 요리법대로 애써본 오징어무침도 어딘가 심히 부족한 맛이었다.
ㅠ.ㅠ
채썬 무를 미리 절였다가 손아프게 짜서 무쳤는데도, 왕비마마의 촌철살인.
"무가 좀 더 아작아작했어야지."
당연히 나는 그때도 투덜거렸다.
"다시는 해먹나 봐라..."

오늘은 또 무얼 해먹나 오후 내내 무수리의 고민을 잇다보니 문득 엄마표 김밥 생각이 나서 3월과 5월에 찍어둔 사진을 찾아 주절거리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없다. 김밥 싸는 엄마 옆에 앉았다가 김밥 꽁지 낼름낼름 집어먹으며 행복하던 그 때가 그저 그리워질 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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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단상

식탐보고서 2009. 4. 17. 21:43
얼마전 공주님 납시는 날 저녁메뉴를 무얼로 할까 고민하다 연어 스테이크를 구웠다. 거창하게 말해 연어 스테이크지, 소박하게 말하면 그냥 생선구이였다. 다만 멋을 좀 부리느라 연어 살덩이에 소금과 후추, 바질가루를 슬쩍 뿌려 1시간쯤 재놨다가 열량은 그냥 무시하고 버터와 다진마늘을 좀 넣어 구웠고, 어서 본 건 있어가지고 타르타르소스랍시고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뒤 피클 대신 병제품으로 나온 레몬갈릭소스를 조금 섞어 구운 연어에 얹어 먹었다. 당연히 구울 때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훈제 연어 샐러드인줄 알고 인상을 찌푸리던 공주님은 반색을 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제대로 된(?) 연어를 처음 먹어본다면서.
왕족들은 역시 아무리 잘해줘도 끝이 없다. 이번주에 역시나 공주님 납시는 날 장도 보러가기 전에 일찌감치 전화가 왔길래, 오늘은 빨간고기를 해줄까 닭볶음탕을 해줄까 물었더니 공주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둘 다 싫고 내가 안 먹어본 걸로 맛있는 거 만들어주라. 지난번 연어 스테이크처럼." 
버럭 화가 나서 고모가 해주는 거 아무거나 먹으라고 대꾸하곤 또 착한 무수리답게 골똘히 고민해봤는데, 연어 스테이크는 어쩌다 운이 좋았던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12살난 조카가 먹어보지 않았으면서 내가 요리해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란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야흐로 없는 것이 없는, 풍요의 세상에 태어나 거의 모든 걸 누리며 살아온 공주가 아닌가 말이다.

일제 강점기 끄트머리에 태어나 전쟁을 거치고 어마어마한 변화의 역사를 거쳐온 우리 엄마 세대엔 댈 것도 아니겠지만, 먹거리에 관한 한은 나 역시 퍽이나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외식이라고 하면 엄마 곗날 중국집에 쫓아가 짜장면을 먹거나 졸업식 같은 중요한 날 큰맘 먹고 한일관 같은 불고기집엘 가는 게 전부였던 나의 유년과 비교하면 요즘 호화찬란하고 국적까지 다양한 외식문화와 먹거리의 발달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아직도 지방에 따라 취향에 따라 사람들마다 먹어본 음식의 종류가 한정될 터이고, 음식도 유행이라 시대의 흐름을 타 새로 생겨나거나 새삼 유행을 하거나 인기를 잃어 사라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밖엘 나가보면 한집 건너 한집씩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놀라우리만치 방대해진 외식산업은 확실히 옛날과 다른 방식과 빈도로 사람들을 지배한다. 나는 감자탕을 대학시절에나 비로소 구경해보았고 삭힌 홍어 전문점은 사회생활을 한참 하고 난 뒤에나 접할 수 있었으며 누룽지탕 같은 메뉴는 불과 몇년 전에 생겨난 것 같은데, 우리 조카들만 해도 이미 열살 이전에 저런 음식들을 다 거쳤기 때문이다. 다 외식을 즐기기도 하고 맛있는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어른들 탓이고, 또 정 먹고 싶으면 삭힌 홍어 사다가 집에서도 삼합을 만들어 먹거나 오븐에 수제 피자를 구워내는 놀라운 솜씨를 지닌 우리 올케들 덕분이다. 
뷔페에라도 가면 울 엄마는 지금도 무얼 먹어야할지, 뭐가 뭔지 메뉴를 읽어도 잘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시는 터라 우리 아랫것들이 적당히 알아서 음식을 담아다드릴 때가 많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인 어린 조카들은 아무 문제 없이 척척 지들이 먹고 싶은 것들을 담아다가 먹는다. 어쩔 땐 어른들이 되레 그들에게 뭐가 맛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집의 진짜 미식가들은 어린 조카들이어서, 옛날부터 그들이 잘 먹고 맛있다고 하는 걸 먹으면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_+ 파스타가 맛이 없네, 깐소새우가 맛이 있네... 어른스러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은 실소가 나온다.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임을 내가 알게 된건 분명 어른이 되고 난 뒤였다. 아니, 어른이 된 후로도 한참동안 스파게티는 <경양식집>에서 가끔 파는 맛없는 이태리 국수라고 여겼고(그게 첫 만남이었으니까;;) 맛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첫 출장을 갔을 때 본사 직원들이 환영파티랍시고 뉴욕에서 꽤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엘 데려가선 파스타를 먹으라고 권하는데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까지 가서 맛없는 스파게티를 환영파티 음식으로 먹을 순 없다고 여기며 낯선 메뉴에 끙끙거리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시켜 먹은 <토르텔리니>의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태리식 작은 만두인 토르텔리니를 맛있게 하는 곳을 아직도 서울에서 찾아 헤매고 있을 정도. +_+
어쨌거나 나는 <파스타>라는 말을 안 게 얼마 안되는데, 겨우 열살 전후의 조카들이 제 엄마에게 파스타며, 바비큐립, 퀘사디아 같은 어려운 음식이름을 척척 대며 만들어달라고 청하는 걸 보면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다. 그리고 확실히 음식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내 주변엔 덩치만 커다란 어른이었지 감자탕이며 선지해장국, 간장게장을 못먹거나 맛을 모르는 지인들이 꽤 되는데 나의 조카들은 서너살 때 이미 입주변이 새빨갛게 변할 만큼 매워서 낑낑대면서도 감자탕의 맛을 알았고(할아버지의 술안주 기호식품이었으니까;;), 선지 해장국을 시키면 공주는 온 식구들의 선지를 죄다 빼앗아 먹곤 했다. 간장 게장 게딱지를 먼저 차지하고 앉아 거기에 야물딱지게 밥을 비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 집에선 전혀 놀라운 게 아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답게 조카들도 고기를 심히 편애하고 채소를 마지못해 먹기는 하지만 지금 하는 식상활 대로라면 웬만한 나의 지인들보다 빨리 음식 사회화 과정을 마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런 마당에 나더러 안 먹어본 맛있는 요리를 해놓으라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요구였던 셈인데, 난 또 뭐가 없을까 며칠째 틈틈이 고민하며 무수리의 책무에 충실히 살고 있다.

음식은 언제부턴가 식탐 많은 나에게 끝없는 욕망의 대상이자 짜증스러운 노동의 집약체가 되고 말았다. 맛있는 음식 먹는 걸 그 무엇보다 좋아하기에 식도락 흉내내며 이런저런 음식점을 순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확실히 예전보다 외식 요리에 대한 애정이 줄었고 좋지 못한 재료가 남기는 외식 후유증에 더욱 민감해졌다. 복잡한 건 귀찮으니까 당연히 재료의 원맛을 살리는 소박한 요리법을 실천하게 되기도 했고, 온갖 성인병의 징후를 다 갖고 있는 엄마 때문에라도 싱겁고 건강한 집밥을 <손수> 해먹고 살다보니 생겨난 결과다. 아직도 맛있는 걸 먹으면 몹시 행복한데 그걸 만드는 주체가 주로 나여야 한다는 상황은 여전히 뼈저리게 체화되질 않는다. 비길 데 없이 맛있었던 엄마표 탕수육과 엄마표 돈까스, 엄마표 김밥 따위를 이제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거부하고만 싶은 중년의 딸에게, 부엌은 확실히 <맛있는 냄새가 나는 지옥>이다(오래 전 씨네 21 칼럼에서 본 표현인데 바쁘게 부엌에서 콩닥거리다가 땀찬 고무장갑을 서둘러 벗을 때 잘 벗겨지지 않는 짜증스러움 등 공감가는 얘기들이 참 많았으되, 누구의 칼럼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차라리 먹는 걸 뜨악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더라면 정말 대충 해먹으며 덜 불행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문제는 나의 식탐으로 귀결됨을 느끼며 더욱 한숨이 나온다. 요리하는 건 싫은데 반찬 없는 밥상은 더 싫으니 어쩌란 말이냐!

이왕 할 거면 투덜거리지를 말든지, 투덜거리려면 하지를 말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할 텐데, 식탐녀 무수리는 끼니때마다 노상 입이 튀어나온다. 어쨌든 오늘 저녁 다시멸치와 마른 새우를 넣고 감자 한개, 애호박 반개, 양파 한개, 새송이버섯 한개, 맛타리 버섯 한줌, 두부, 다시마가루 조금,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찌개는 <매우> 맛있었고, 소금을 거의 뿌리지 않고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먹은 삼치구이도, 파프리카, 오이, 샐러리, 삶은 달걀에 발사믹 식초와 흑임자소스를 섞어 뿌린 샐러드도 훌륭한 맛이었다. (솜씨 자랑하는 거 맞다;;)
짜증과 투덜거림 속에서 그나마 내가 붙들고 살아갈 기둥은 이것뿐이려니...
<식탐은 나의 힘. 밥심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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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난 이제야 알았을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 보니 웬만한 카페엔 이 메뉴가 다 있더군.
하지만 난 얼마전 이태원에 있는 소르티노스에 갔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먹어보곤 반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는 말에 득달같이 사다가 시도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이름하여 에스프레소 아포가토.

퍼온 사진.. 출처 까먹음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푹 퍼담고 에스프레소 샷을 끼얹으면 그뿐이다.
소르티노스에선 캐러멜 시럽을 좀 얹어주었고, 다른 곳에서도 초콜릿 가루나 시럽을 얹어 주기도 하던데 이시리고(ㅠ.ㅠ) 단것이 별로라 아이스크림을 즐기지 않는 나에겐 그런 것까지 필요도 없다.
그냥 아이스크림 약간 퍼담고 에스프레소만 끼얹어 먹으면 그저 황홀.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뜨겁고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만남이 생각밖으로 잘 어울린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맛있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하겐다즈나 나뚜루 아이스크림으로 해도, 그 절반 가격에 마트에서 산 이름모를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도 해도 최종의 맛은 큰 차이가 없더라. 그저 에스프레소만 잘 뽑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 밤중에 일하다 말고 밤참으로 만들어먹고는 몹시 흐뭇하다. 의무적으로 읽어야하는 책은 좀체로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또 딴짓... 카페인과 칼로리 섭취도 했으니 이제 일 좀 하려나 -_-;; 남들 다 놀고 쉬는 주말에 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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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U 약식

식탐보고서 2009. 1. 13. 14:34

시원찮은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첫 가사실습 시간에 만든 음식이 약식이었다.
그 전까지는 문방구에서 반제품으로 파는 앞치마 재료를 사서 바이어스를 손으로 꿰매고 주머니와 앞부분에 자수를 놓는 실습을 했고, 조리실 실습에 들어가는 날까지 앞치마를 완성해 각자 입고 패션쇼를 하듯 줄지어 서서는 선생님의 채점을 받았다.
국민학교 실과 시간에도 이미 단추달기, 홈질, 똑딱단추 달기의 실습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 탁월한 점수를 받았던 터라, 앞치마 꿰매기 정도는 중학생이 된 나에게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였다. 요새 학생들은 엄마들이 대신 꿰매주거나 수선집 또는 세탁소에 맡겨 드르륵 박아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땐 그런 걸 상상도 못할 만큼 아이들이 순진할 때라 손재주 여부에 따라 아이들이 입은 앞치마의 몰골은 매우 다양했다.
바이어스가 우글쭈글 찌그러졌거나 자수 실밥이 너덜거리는 앞치마를 입은 아이들 틈에서 매끈하고 촘촘한 바느질과 깔끔한 자수가 돋보이는 앞치마를 입은 나는 조리실에서도 조장으로서 꽤나 쓸모가 있었다.
지금이야 나도 오랜 밥순이 경력을 믿고 이것저것 재량을 부려 대충요리를 감행하지만
요리초보가 지켜야할 첫번째 원칙은 건방지게 융통성을 부리지 말고 레시피 대로 하라는 것이므로
모범생 답게 나는 칠판에 적힌 대로 재료의 계량과 조리시간, 불조절을 칼같이 지켰고  결과물은 당연히 훌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의 조리실습은 불려놓은 찹쌀과 온갖 재료를 잘라 들통에 넣고 찌기만 하면 되었던 비교적 간단한 요리였으나 놀랍게도 몇몇 조는 약식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찹쌀죽을 만들어놓기도 했는데, 내가 보기엔 어떻게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는지 그게 더 신기했다.

당시에 조별로 예쁘게 만들어진 약식은 교무실 선생님한테까지 일일이 나눠드려 맛보게 했었는데, 그때 양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내게 할당된 약식을 남겨 집에 가져가 엄마한테 자랑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며칠 뒤 집에서도 학교에서 배운대로 들통에 쪄서 약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수십년간 집에서 다시 약식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 외할머니의 단골 떡집에서 워낙 맛있는 떡과 약식을 수시로 공수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3년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정말로 맛있는 약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끔 사먹게 되는 약식엔 밤과 잣 따위의 내용물이 터무니없게 부실했고 찰진 맛도 덜했다. 그렇다고 약식을 미친듯이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왜 집에서 손수 약식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정확한 동기는 지금도 모르겠다. 조카들이 약식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던가?
어쨌거나 설날을 앞두고 일벌이기 병이 도졌는지, 대충요리의 달인답게 나는 지난주에 드디어 전기 압력밥솥으로 약식만들기에 도전을 했고 역시나 단번에 성공을 거두었다. 중학교 때 했던 가사실습을 떠올리긴 했지만, 레시피까지 생각날 리야 없는 일이고 손쉬운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대강 분량을 예측했는데 살짝 질기는 했어도 맛은 정말로 훌륭했다. 이번에 성공을 하면 설날 차례상에 올릴 약식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나의 야심만만한 목표였는데, 그도 별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문제는 대충 대충 재료를 집어넣은 바람에 과연 설날에도 같은 맛을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지만 까짓 것 덜 달 거나 더 달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실패한다고 해도 두려울 건 없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사실습 점수를 잘 받긴 했어도 그땐 내가 이렇게 요리솜씨가 훌륭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가사노동이 싫어서 (매일 밥하고 청소하기 싫어서 결혼 따위 안 할 거야! 라고 늘 부르짖었음)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내가 싱글로서도 만날 밥순이로 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청소는 여전히 내가 넘지 못할 숙제지만 요리마저 잘한다는 점은 내가 무수리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운명 같아서 속이 좀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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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식탐보고서 2008. 12. 17. 06:20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두번째 밤참(첫번째 밤참은 자정무렵 먹은 우유와 과자와 귤)으로 신라면을 끓여먹어 놓고선 후회막급이다.
라면은 왜 먹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상상하는 맛과 실제 맛과 먹고 난 후의 뒷맛이 이렇게도 다를까.
라면의 조미료맛에 분명 뇌의 어느 부분을 중독시키는 마약성분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 지레짐작은 하고 있지만 하필 그 라면충동이 이 생새벽에 동할 건 뭐람.

어쩌면 그저 일하기 싫고 몇시간째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게 버거워서 궁뎅이 들썩여 보려는 작심이 주 동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만, 신라면 먹고 나면 특히 묘한 속쓰림과 막강한 식곤증에 시달리는 것을 알면서 왜 굳이 마지막 한오라기까지 홀라당 다 건져먹었을까 민망해하는 중이다.
졸리다.
잠시 졸음을 물리쳐보겠다고 블로그질을 선택했지만, 아마도 이 글을 대충 마무리하고 나면 비실비실 이불속으로 파고들기 십상이다.
음식을 먹은 후 몸에 후끈 열이 나고 식곤증이 생기는 이유는 음식물 섭취의 <특이동적 에너지 작용> 때문이란다. 나도 뭔소리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 말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고등학생 때 가정 과목이었던가, 가사 과목이었던가 두 개 다 같은 선생이 가르쳐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교과서엔 들어있지 않았으되 수업중에 선생이 스쳐가듯 한번 언급했던 저 말이 시험에 나왔었다.
그것도 주관식으로.
단기간 지속되는 단순암기에 능했던 나는 암기과목들은 당연히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로 공부했고, 특히 <초치기>라고 하여 수업시간에 적어둔 필기노트를 시험 직전에 재빨리 훑어보고 나서 그 내용이 <식기 전에> 얼른 문제를 푸는 것이 주특기였다. 그런데 수업태도가 좋아 필기 하나는 철저하게 했던 덕분에다 운 좋게 시험 직전에 눈에 들어온 저 글귀를 기억한 바람에 전교에서 유일하게 -_-v 요상한 주관식 문제를 맞힌 괴짜가 되고 말았던 것.
시험을 치고 나서 첫 수업시간에 답안지를 공개하고 점수를 불러주며, 가정가사 선생은 늘 심술맞게 보였던 입술에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무려 600명 가운데 유일하게 그 주관식 문제를 맞힌 나를 칭찬해주었고 반 아이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음은 물론이다.
사실 나는 시험 전에 <초치기>를 할 때 눈에 띄는 요주의 내용들을 중얼중얼 주변 친구들에게도 알려주는 <착한> 친구었고 <음식물 섭취의 특이동적 에너지 작용> 역시 워낙 이상하고 낯선 말이라 혹시 시험에 나올지 모르니깐 외워두라고 분명히 얘기했었건만 친구들은 <절대로> 기억나질 않는다며 혼자 시험 잘 보려고 정작 중요한 건 알려주지 않는 파렴치한 얌체로 나를 매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내가 시험 직전에 찍어줘서 맞은 문제가 몇개라고 기뻐할 땐 언제고... ㅜ.ㅜ

암튼 그런 사연으로 <음식물 섭취의 특이동적 에너지 작용>이라는 길고도 낯선 말은 내 뇌리에 깊이 새겨져 흐려질 줄을 모를 뿐만 아니라, 식곤증을 느낄 때면 가끔 퍼뜩퍼뜩 떠오르곤 한다.
라면 먹고 졸려서 빌빌대는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걸 보면 퍽이나 인상적인 사건임엔 틀림이 없는데,
과연 저 말은 내가 이상스레 기억했다가 맞혔기 때문에 생각이 나는 것일까, 600분의 1이라는 드문 확률 때문에 기억나는 것일까, 아니면 부당한 친구들의 비난 때문에 억울해서 생각나는 것일까?
ㅎㅎㅎ
어쨌든 결론은 졸리다는 것.
남들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시간에 그냥 얌전히 쓰러져 자는 것도 모자라 오늘은 라면 끓여먹고 팅팅부어 잠들 생각을 하니 킥킥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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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타령

식탐보고서 2008. 8. 26. 16:30
내겐 한동안 안 먹으면 점점 욕망이 커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다가 불만과 짜증에 휩싸이게 되는 음식이 있다.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음식들은 아니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떡볶이, 라면, 버거왕표 와퍼 따위.

그 가운데 라면과 와퍼는 언제 어디서나 표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봉지라면이 개발되어 있거나 거의 똑같은 맛을 내는 매장들이 거리에 즐비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멀리하려고 애쓰다가 못 먹는 주기가 길어지면 욕구불만이 쌓일 뿐이므로 문제 해결 방법이 그리 어렵진 않다.
그러나 떡볶이는 다르다.

아마도 국민학생 시절 하굣길 좌판이나 포장마차에서 50원어치씩 사먹던 밀가루 떡볶이가 역사의 시작인 것 같은데 중고등학생 때 들락거리던 분식집 떡볶이(완제 및 즉석 떡볶이)를 거쳐, 나로선 떡볶이로 쳐주지도 않는 신당동 떡볶이와 최근 들어 술집 안주로 볼 수 있는 '고급' 해물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몹시 다양하게 즐겨온 떡볶이는 어느새 내 머릿속에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는 꿈의 맛으로 새겨진 모양이다.
그 어느 떡볶이를 먹어도 나의 떡볶이 욕망이 100퍼센트 채워지질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솜씨를 발휘해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어보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집 근처 마트 앞 좌판에서 꽤나 맛있는 떡볶이를 팔기 때문에 떡볶이 욕망이 솟구치면 쪼르르 달려가서 2천원어치만 사먹어도 흐뭇해지기는 하는데, 수십년째(!) 떡볶이 타령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바로 이거다' 싶은 환상적인 떡볶이를 만난 적은 없다.
맛있는 걸 좋아하긴 해도 맛에 몹시 까탈스럽게 구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조미료 맛이 심히 나지 않으면서 적당히 맵고 달달한 떡볶이는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도, 환상의 맛이라 인정할 수 있는 떡볶이를 찾지 못한 걸 보면 내가 찾는 떡볶이는 아마 괜한 추억의 감상을 버무려 넣어 실제로는 만날 수 없는 허구의 맛이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환상의 떡볶이를 찾는 식탐 여정을 끝냈다는 뜻은 아니며, 앞으로도 떡볶이 욕망이 솟구칠 때 떡볶이 포장마차를 보면 앞뒤 생각 없이 달려가 매운 입을 후후 불어가며 빨간 떡볶이를 먹고 있을 게다.

바로 어제가 그런 떡볶이의 날이어서 좌판에 들러붙어 한 접시 먹어치우고는 그래도 아쉬워 1인분 포장해다 밤참으로 또 먹었는데도 어쩐지 좀 아쉽다. 그러고 보니 나의 떡볶이 타령은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허함의 상징인 것도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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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메뉴

식탐보고서 2008. 8. 25. 17:15

비알레띠 브리카가 생긴 뒤로는 정말로 매일 커피 만들어 마시는 재미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시절 소꿉장난을 별로 좋아하진 않은 것 같은데, 다 커서 그 묘미에 빠진 걸까.
퍽 귀찮은 과정이긴 해도 커피 한잔을 만들면 금세 온 집안에 향기로운 커피향이 가득해지니
후텁지근한 여름 습기와 불쾌지수를 잠시 잊는 데도 꽤 도움이 되었다.
물론 내가 아마추어 바리스타의 기분을 내며 흥미진진해 할 수 있는 건 겨우 한 잔까지. -_-;;
2인용(이라지만 에스프레소가 2잔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에 보통은 한번 끓여서 커피 한 잔 만들 수 있다) 모카포트로 여러명이 마실 커피를 만들려면 매번 물을 담고 커피를 갈고 담고 쏟고 또 카푸치노 같은 경우 우유를 장만하는 과정이 더해져 총 2, 30분 걸리기 때문에 한 사람은 벌써 다 마셔가는 즈음에야 다음 커피가 배달된다.
다행히 아직은 2잔을 넘는 커피 주문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커피 만들다 약간 지치는 수준만 경험해 보았지만, 서너 잔을 줄줄이 만들어야 한다면 꽥~ 짜증을 부릴지도 모르겠다. ㅋ

째뜬 그간 순전히 블로그질을 위해 찍은 사진들을 모아 란다방 커피 메뉴를 소개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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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프레소
비알레띠 브리카에 딸려온 컵의 눈금대로(선보다 5mm낮게) 물을 붓고 커피를 필터에 적당히 채워 끓이면 이런 에스프레소가 2잔 나온다.
가끔 정신이 확 깨고 싶을 때 설탕을 좀 타서 마시기는 하는데 아직 식도가 끈적해지는 느낌의 에스프레소의 진맛을 느끼지는 못하겠다. ^^
이렇게 추출된 에스프레소 두 잔을 모두 큰 잔에 붓고 끓인 물을 추가해 희석하여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며 마실 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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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푸치노
우유를 1/3컵쯤 전자렌지에 데워서 거품기로 거품을 내야 하는데 처음엔 우유를 컵에 너무 많이 따라서 사방으로 막 튕기고 난리를 피웠다.
거품의 밀도가 중요하다는데, 난 뭐 그냥 적당히 거품을 내서 에스프레소를 담은 잔에 부은 뒤 마지막 거품을 스푼으로 떠 얹으면 부드럽고 맛있는 카푸치노가 되더군.
계피가루를 살짝 뿌려 마시면 내가 최고로 치는 콩다방 카푸치노가 부럽지 않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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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으로 잔을 가득 채운 뒤에 에스프레소 두잔을 넣어 쓱쓱 흔들면
이렇게 된다.
헉헉대며 선풍기와 에어컨 사이에서 고민하던 올 여름, 매일 이거 한 잔으로 잠깐이나마 행복을 맛볼 수 있었던 고마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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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 카페라떼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조금 부으면 카페라떼가 된다. ^^*
원래 설탕은 잘 넣지 않으므로 시럽 따위는 없지만, 달달한 카페라떼를 원하는 이에겐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녹여 부어 만들면 됨.
오늘 오후에도 한 잔 마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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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프라프치노?
개인적으로 별다방보다 콩다방을 많이 선호하지만 프라프치노는 역시 별다방 게 제일 맛있다고 인정하는 바인데, 까짓것 얼음 넣고 우유 넣고 드르륵 갈면 되겠지 싶어서 시도해 봤다.
커피와 우유의 양에 따라 색깔과 맛이 들쭉날쭉 매번 달라지며, 달달한 별다방 프라프치노 맛을 내려면 설탕을 '엄청'(최소한 세 스푼 이상)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랄까. 연유를 넣으면 맛이 더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먹는 기쁨에 수반되는 귀찮은 설거지 과정이 가장 복잡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안 먹고 만다! ㅋㅋ

아 참..
이 모든 커피 메뉴에 필요한 도구는 브리카와 그라인더, 카푸치노 만들 때만 필요한 거품기가 전부.
귀찮아서라도 거품기는 잘 안쓰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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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커피 메뉴는 아마도 더는 생겨나지 않을 듯 싶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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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유난 2

식탐보고서 2008. 7. 15. 23:46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도 마시고싶다는 욕망이야 커피 깨나 좋아한다 싶은 이들은 누구나 품는 것일 테고
나 또한 그런 이들을 커피 유난 떤다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내심으론 커피 주변기기를 호시탐탐 노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커피 주변기기를 파는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귀동냥도 하고 실제로 써본 이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여
내가 오래 전부터 흠모해왔던 건 바로 <비알레띠 브리카>.
에스프레소 머신처럼 크기와 가격이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생김새마저 앙증맞고 어여쁜데다 뽀얀 크레마까지 추출된다니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매번 커피콩을 '적당히' 갈고 또 물과 불조절을 잘해야한다는 것인데 뭐,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라면 까짓거 그 정도 어려움쯤이야 감수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적극성이 나의 귀차니즘을 이기기까지 거의 반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

그렇다.
두둥~.
드디어 나도 모카포트의 지존이라고들 칭송하는 <비알레띠 브리카>를 갖게 된 것이다!


대강은 사용법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설명서를 다시 꼼꼼히 숙독한 뒤, 그래도 못 미더워 매 단계마다 설명서를 손에 들고 오늘 드디어 시음을 계획하였으니, 떨리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처음 포트를 사용할 때는 커피를 마실 생각 말고 3회 반복해서 추출해 버린 뒤에 본격적으로 추출해서 마시라고 되어 있는데, 볶은지 열흘밖에 되지 않은 '귀한' 원두커피를 시험삼아 써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커피로 테스트를 해본 뒤에 본격적으로 마실 것만 좋은 원두로 할 것인가 판단도 서질 않았다.
지인의 조언에 따르면 모카포트에 넣을 커피의 굵기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차피 몇번 시행착오를 거쳐야한다고 했는데, 매번 다른 원두콩을 갈아서 과연 내가 가장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처음 두번 포트를 청소하는 의미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는 냉동실에 오래 보관해두었던 원두콩으로,
세번째 청소용과 실제 시음용은 최근에 선물받은 원두콩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실험에 돌입.
아.. 역시 바리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원래 처음 테스트용으로 3번 추출해서 버릴 때는 물과 커피의 양을 평소의 3/4으로 하라고 설명서에 되어 있는데 세번째 테스트 때 욕심을 부려서 그만 계량컵에 표시된 눈금만큼 물을 다 넣었더니, 압력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자마자 폭발하듯 저 작은 주전자 주둥이에서 커피가 튀어 벽에 커피 얼룩을 만들고야 말았다.
게다가 압력추 소리가 나면 재빨리 가스불에서 내려야 뽀얗게 생성된 크레마가  죽지 않는다는데....
으휴, 불을 끄는 순간과 가스불에서 포트를 내리는 순간이 달라짐에 따라 크레마의 양도 매번 차이가 생겼다. ㅠ.ㅠ

그뿐이랴, 커피원두의 입자가 과연 최적의 상태인지, 커피원두의 양은 적절한지 어쩐지도 알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가 최상의 맛인지 그것도 아직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
온 집안에 은은하고 그윽한 커피향이 감돌기는 했지만, 내가 추출한 에스프레소로 탄 아이스커피는 생각만큼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고 최소한 일주일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알량하나마 바리스타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오후 내내 낑낑대며 커피를 추출해보니, 카페에서 사 마시는 맛있는 커피는 리필까지 해주는 경우를 감안할 때 그리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_+

째뜬, 이렇게 해서 드디어 나도 커피 유난 떠는 부류에 합류하였음을 고백함.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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