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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5 나박김치 2
  2. 2011.05.13 오이김치 2
  3. 2011.04.05 일사분기 식탐의 흔적 9
  4. 2010.12.22 해먹고 산 것 & 해먹을 것 7
  5. 2010.06.29 우리집 녹두전 6
  6. 2010.06.17 자두 21
  7. 2010.04.07 꿀빵 먹기 힘들다 26
  8. 2010.04.06 개구리 반찬 15
  9. 2010.03.01 밥먹기 싫을 때 6
  10. 2010.02.27 대보름용 막요리 6

나박김치

식탐보고서 2011. 6. 15. 18:22

밥순이로 살더라도 몹시 수고롭고 골치 아픈 김치는 웬만하면 담가먹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결심이나, 예외는 간혹 있다. 지난번엔 식탐 열망을 이기지 못해 오이김치를 두번이나 만들어 먹었고(첫번째가 너무도 맛있어 열흘쯤 뒤엔 더 다량의 오이를 사다가 만들었다 실패하는 바람에 다시는 시도 안하고 있기는 하다;), 제사나 차례를 앞두고 나박김치는 내가 담그지 않으면 안되는 품목이 되고 말았다. 설날 때는 수정과라도 올리니까 제기 중에서 국물 담는 그릇을 하나라도 쓸 수 있는데, 여름엔 나박김치가 없으면 네 개나 되는 우묵한 제기를 전혀 쓰지 못하는 게 좀 민망하다. 누구보다도 나박김치를 좋아하셨던 할머니 제사땐 꼭 올리려고 했었는데 여름이었던 할머니 제사를 겨울 할아버지 제사로 합치고 보니, 이젠 제사 핑계로 담근 나박김치에 국수를 말아먹으려면 아버지 기일과 추석에 맞춰 담그는 수밖에 없다.

대충요리의 선구자로서 대충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찾아내 그간 어깨 너머로 배운 아이디어까지 더하여 대강 뚝딱 만들고 나면 이상하게도 첫 솜씨가 제일 훌륭하다. 나박김치도 몇해 전 처음 만들었을 때 다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통의 나박김치보다는 무와 배추를 조금 작게 썰어, 엄마에겐 소꿉장난 하느냐는 일갈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할머니표 나박김치인 것을 어쩌랴. 말년에 이가 부실해지신 데다 허리까지 굽어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이 쉽지 않았던 할머니는 나박김치의 무와 배추도 앙증맞을 만큼 작게 썰어 만드셨고, 매 끼니마다 나박김치를 한 탕기씩 해치우셨다. 그런데 나도 그 편이 먹기도 좋고 보기에도 예쁘고 맛있었던 기억이 있으니 그대로 따랐던 거다. 또 다시 일년만에 나박김치를 담그느라 어제 몇시간 서 있었더니 종아리에 알이 배겼는데, 깜박깜박하는 나의 기억력으로 볼 때 어딘가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재료를 또 하나 빠뜨릴 것 같아 기록해두기로 했다. 어제는 글쎄 장 볼 때 배를 빠뜨리는 바람에 다 저녁때 나가서 사와야 했다. 나박김치엔 뭐니뭐니 해도 배를 넣어야 국물이 시원해지는 법이거늘.

재료: 무 반 개, 쌈용 배추 한 통, 큼지막한 배 한 개, 쪽파 한 움큼, 미나리 한 움큼, 통마늘, 홍고추, 고춧가루, 천일염, 찹쌀가루, 흰설탕, 멸치액젓 한숟가락. (김치냉장고용 김치통으로 딱 하나 분량임)

1. 찹쌀가루를 두 숟가락 정도 물에 개어 묽게 찹쌀풀을 쑤어 놓는다. 
2. 무를 1.2~1.5cm 두께로 토막내서 정사각형 모양으로 납작납작 잘라 소금을 뿌려 절인다.
3. 나박김치에 들어가는 배추는 노란 속잎만 넣는 게 맛있으므로 나는 아예 쌈용 배추 속고갱이만 사서 넣는다. 배추 역시 무와 비슷한 크기로 잘라 슬쩍 소금에 절인다.
4. 쪽파와 미나리를 다음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적당한 길이로(나는 2.5cm)로 잘라둔다.
5. 홍고추는 절반 갈라 씨를 거의 다 빼낸다.
6. 절인 무와 배추를 물에 씻어 건져 물기를 뺀다.
7. 배 껍질을 깎아 무와 같은 크기로, 대신에 좀 더 도톰하게 잘라놓는다.
8. 통마늘을 저며 채썰어놓는다.
9. 찹쌀풀에 소금, 멸치액젓, 설탕, 생수 약간을 넣어 잘 저어 풀어놓는다. 
10. 김치통에 미나리를 뺀 모든 재료를 다 넣고 양념을 부은 다음 생수를 넉넉히 부어 천일염으로 간을 맞춘다. 설탕을 아예 넣지 않는 집도 있다지만 나는 역시나 할머니 식으로 백설탕을 약간 넣는다. 그래야 나중에 소면 삶아 말아먹을 때도 환상적인 맛이 난다. ^^;
11. 고춧가루를 원래 베 보자기에 싸서 국물에 담가 지저분해지지 않게 발그레한 색을 거라는데 나는 나중에 베 보자기 빠는 게 귀찮아서 -_-; 멸치 다시 국물내는 거름망에 고춧가루를 넣고 그걸 김치통에 담근다. ^^v  가는 고춧가루는 빠져나가지만 뭐 그래도 거의 똑같은 효과가 나므로 흡족하다.  
12. 날씨에 따라서 하루나 이틀 정도 상온에서 익힌 다음에 미나리는 맨 마지막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미나리를 처음부터 넣으면 뭔가 맛이 없어지고 빨리 신다고 할머니한테 들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나박김치가 맛있을지 궁금하다.

아직 미나리는 넣기 전이다. 새콤하니 익은 냄새가 나긴 하는데 좀 덜 익었다. 오늘 밤중이나 내일 새벽에 냉장고에 넣으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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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김치

식탐보고서 2011. 5. 13. 01:53

음식으로 환기하는 기억에 대해서라면 프루스트가 제일 유명하겠지만, 프루스트가 처음 발견 한 건 아니었을 것 같다. 유독 식탐이 강하지 않은 사람도 음식과 연결되어 추억으로 남는 게 어디 드문 일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들에게 옥수수와 동격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옥수수 노점상은 절대 지나치지 못하고 꼭 사먹어야 직성이 풀리는데다가, 굳이 먼지 풀풀 나는 길거리에서 와구와구 뜯어먹으며 행복해했기 때문이라나.

계절따라 제철음식을 찾아먹는 일도 원래는 가난과 필요가 낳은 습관이겠지만, 그 습관이 반복되어 세대를 거듭하다 결국 전통이자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진달래 따다 부쳐먹던 화전이랑 쑥버무리 같은 게 관련 인물들과 같이 떠오르는 식이겠지. 음식이 그리운지 사람이 그리운지 콕 찝어낼 순 없어도 그냥 그 음식을 먹으면 마음 한 구석이 달래지는 기운 같은 게 있다. 그걸 못해 결핍되면 못내 아쉽고 공허해질 테고.

얼마전부터 자꾸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었다. 그냥 흔한 오이소박이가 아니라 우리 외할머니표 오이소박이. 보통 오이소박이라고 하면 오이를 서너토막 잘라 한쪽에 칼집을 내 부추양념 소를 넣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외할머니표 오이소박이는 달랐다. 부추는 지저분해진다고 넣지 않는다. 대신에 조선오이 끝동 부분을 손가락 두어마디 쯤 잘라내 채를 썰어 양념에 버무려 소를 만든다. 오이는 통째로 길게 가운데 칼집을 넣어 소를 넣는둥마는둥하게 넣는다. 어려서 엄마가 만들어준 오이소박이의 경우 부추 소는 죄다 긁어내고 오이만 먹었는데, 할머니표 오이소박이는 양념을 긁어내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 전국방방곡곡 풍광 좋은 사찰로 성지순례와 방생 다니실 때 수십년 간 모아온, 납작하고 큼지막한 돌멩이로 눌러놓았다가 그 돌멩이째 우리집으로 날라오는 할머니표 오이소박이는 어찌나 아작아작 시원하고 깔끔하게 맛있는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말년에 꽤 오래 모시고 살며 병수발을 들었던 막내이모가 젓갈 없이 소금으로만 깔끔하고 슴슴하게 맛을 내는 할머니표 김치는 그럭저럭 전승하는데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이소박이만은 아무리 애써봐도 도저히 그 맛을 낼 수가 없다고 손을 들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입퇴원을 반복하던 마지막 무렵에도 손수 오이소박이를 담가 자식들 집집마다 나눠주셨다. 울 엄마는 칠순에도 이미 입맛이 무뎌져 간을 잘 모르는데 할머니는 여든다섯에도 어떻게 한결같은 김치맛을 내셨는지 불가사의하다. 이모는 할머니 때랑 똑같이 가락동 시장에 가서 늘 사던 그 집에서 오이를 사다가 똑같이 한다고 해봐도 맛이 나질 않는다며 속상해하신다. 그래봐야 어쩌겠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함께 사라져버린 할머니의 그리운 손맛 여러가지 가운데 하나로 아쉬워할 수밖에.

토막썰기를 해서 칼집을 넣은 오이소박이도 밥상에서 잘라 먹으려면 꽤 불편한데, 통째로 길게 오이소박이를 담그면 사실 그릇에 낼 때부터 아예 잘라야 하므로 더욱 성가시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평생 그 방법을 고수하셨던 걸 보면 그래야 제맛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오이가 사시사철 장에 나오긴 하지만, 할머니가 거의 열흘 간격으로 꼭 스무개, 서른개씩만 담가 보내던 오이소박이 행렬이 시작되는 건 확실히 요맘때였던 게 틀림없다.  뜬금없이 눈앞에 할머니표 오이소박이가 어른어른거리면서 먹고 싶어진 걸 보면 말이다.

반찬코너에서 한 그릇 사다먹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고춧가루 범벅에다 내가 싫어하는 당근까지 채썰어 소를 박은 꼬라지를 보니 당최 내키질 않았다.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열정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는 결국 오이 여섯개를 사다가 직접 오이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어차피 외할머니표 오이소박이의 맛을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처음부터 먹기 좋게 오이도 조각조각 잘라 절이고 부추도 넣었다. 오이김치 요리법을 찾아 참고한 대로 멸치액젓도 넣고 매실청도 넣어(둘 다 할머니는 절대 안 넣으셨을 양념이다) 대충 버무렸다. 당연히 할머니표 오이소박이와는 아주 동떨어진 오이김치가 탄생되었다. 버무리자마자 한 보시기 담아 우적우적 밥 한그릇을 다 먹고 나니 그래도 마음 속 결핍이 어느정도 채워진 듯했다.

음력사월이 시작되면서부터 외할머니가 부지런히 오이소박이를 담가 보내신 이유는 물론 잘 알고 있다. 이가 부실한 맏사위가 배추김치보다 오이소박이를 훨씬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매운 것도 잘 먹지 못하는 아버지에겐 양념과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 말간 생김새의 오이소박이가 딱이었다. 그리고 마침 아버지의 생일은 음력 사월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돌아가신 분의 생일은 이제 제삿날이라는데 나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요맘때면 오이소박이를 먹어야 하는 습관이 밴 몸을 지니고 있으니 참 징하고 서글프다. 할머니랑 아버지가 겨우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어서 그리움 타령이냐고 타박하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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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일하기가 싫어지는 건 모든 노동자들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며, 또 딴짓. 화가 나서 점심을 굶은 터라 사진으로라도 요기하려는 속셈이기도 하다. 일종의 심리요법? 과연 사진을 다 올리고 나면 배가 고파지고 식욕이 돌지 궁금하다. 하여간에 시작하는 사진 대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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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인의 입장에선 하루에 맛있는 걸 가능한 한 여러번 먹으며 사는 게 행복할 것도 같지만, 생활인의 입장에선 다 귀찮으니 하루에 한끼만, 아니 사흘에 한끼만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콩닥거리는 하루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는 몸을 위한 섭생의 의미보다 짜증스러운 노동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걸 어쩌랴. 요샌 머리를 심히 한쪽으로 집중해야 하는 기간인 고로 딱히 해먹을 거리들의 메뉴도 떠오르지 않아서, 장보러 갈 때 적은 목록도 노상 똑같아 매주 새로 적을 필요조차 없었다. 영양 면에서 균형잡힌 식단 따위 잊은지 오래라서 그런지 식탐모녀의 겨울 체중은 빠직빠직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 푸성귀 채소의 섭취 부족이 아닐까 싶다. 해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여기다 그간 대강 해먹은 것들 중 대강 요리로 소개하지 않았던 것들을 적어두고, 생각난 김에 예전에 기록하던 신데렐라 키친 요리법 가운데 채소류를 퍼다 놓아 끼니 메뉴의 차별화를 시도함과 동시에 걸핏하면 굶고 사시는 이웃들의 요리 욕구를 충동질해 보려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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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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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조미료 때문에 내가 그 옛날 울 엄마표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녹두전은 아무리 잘 하는 집 것을 사먹어 봐도 우리집표 녹두전이 제일 맛있고 생각하는데, 과거가 되어버린 김밥과는 달리 녹두전은 현재형이다. 할머니부터 울 엄마, 작은어머니들을 거쳐 나와 울 올케들에게 전수된 녹두부침개의 맛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제사음식이 지방마다 다르듯이, 녹두전도 지방마다 재료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내 입맛엔 돼지고기 넣고 투박하고 큼직하게 부쳐낸 이북식이 최고인 것 같다. 원래 이북식은 돼지고기를 큼직큼직 듬성듬성 썰어 넣는 것이라지만 우리집에선 갈아서 넣는 데다 숙주는 물론이고 대파와 김치도 썰어넣기 때문에 느끼할 이유도 없어 바삭바삭 아작아작 하니 그저 최고의 맛이다.

서울경기식 녹두전은 순 녹두만 갈아서 기껏해야 손바닥 반만하게, 더러는 예쁘장하니 한 입 크기로 부쳐 위에 실고추 같은 걸로 모양을 내는 거라고 해서 어찌나 의아하던지. 녹두 본연의 고소한 맛이야 있겠으나, 먹기 심심해서 어찌 그걸 녹두전이라 부를 수 있겠나 말이다. 게다가 차례나 제사땐 다른 전도 종류별로 장만해야 하는데 녹두전을 손바닥 반 만한 크기로 부쳐내면 그걸 언제 다 부치라고! 드넓은 전기 프라이팬 양쪽에 펼쳐놓고 한판에 여러 장씩 부쳐내도 오래 걸리는 게 녹두전인데 말이다.

종류별로 전 부치다 질력나고 꾀가 생기면 녹두전 크기가 마구 커져 가끔은 뒤집다 찢어질 지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찢어진 핑계로 뜨겁고 고소할 때 먼저 먹어볼 수 있어서 반가운 녹두전은 차례 때나 제사가 아니면 내가 평소에 감히 만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 음식이다. 드높은 나의 식탐 열망으로도 넘기 어려운 명절 음식의 지존이랄까. 어쩌면 다른 녹두전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뜨악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최고의 녹두전인 우리집 요리법은 이렇다.

재료: 깐녹두 500g, 쌀 한 줌, 돼지고기 갈은 것 300g 정도, 신김치 반 포기, 숙주나물, 대파, 다진 마늘, 소금, 후추, 참기름, 포도씨유.

1. 전날밤에 깐녹두를 씻어 물에 불려 놓는다. 쌀 한줌도 함께.
2. 다음날 아침에 엄청 불어 생겨난 녹두 껍질을 떠내려보내며 다시 씻는다.
3. 숙주나물을 살짝 데쳐서 길이를 칼로 적당히 잘라준 뒤에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어 밑간해 놓는다.
4. 신김치 반포기도 속만 대강 털어낸 뒤에 잘게 잘라 김칫국물을 꼭 짜낸 다음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린다.
5. 돼지고기 갈은 것도 소금, 후추, 다진 마늘로 미리 양념한다.
6. 대파는 두어뿌리 어슷썰기로 큼직큼직하게 썰어놓는다.
7. 불린 녹두를 간다. 이때 농도가 너무 묽어지지 않도록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 너무 묽으면 전이 찢어진다!
8. 갈은 녹두에 양념해놓은 위 재료를 몽땅 넣고 잘 버무린다. 다들 밑간을 했지만 이 단계에도 역시나 소금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춘다.
9. 양념과 섞어 놓으면 갈은 녹두가 삭기 시작하므로 얼른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노릇노릇 바삭하게 부쳐낸다. 적정 지름은 15센티미터쯤인 것 같은데, 엊그제 내 작품은 얼른 끝낼 요량으로 18센티미터는 되었던 듯.

우리집 녹두전의 특징은 김치를 넣어 색이 좀 붉게 나타난다는 것인데, 돼지고기와 김치, 숙주와 대파가 어우러져서 기름에 부쳤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바삭바삭 아작아작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음식이 다 그렇듯, 방금 부쳐냈을 때가 제일 맛있으므로 녹두전 부치다가 찢어뜨리면 아뿔싸 민망하다가도 나는 신이 난다. ㅋㅋ 명절 음식은 다 전날 부쳐놨다가 데워먹으니 한결 풍미가 떨어지는 듯하지만 녹두전은 냉장고에 한참 넣어놨다가 프라이팬에 데워먹어도 그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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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식탐보고서 2010. 6. 17. 17:23

올여름들어 처음 과일가게에 나온 자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체리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크기 다섯개에 4천원이면 좀 비싸다 싶었지만 자줏빛으로 빛나는 싱그러운 자태를 본 순간 이미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걸 어쩌랴. 커피 한잔 사마시려면 5천원도 훌쩍 넘는 때가 많은데도 과일값엔 매번 놀라 손끝이 망설여진다. 

날씨도 더워졌지만 요즘 내가 계절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과일가게에 드높이 쌓인 수박을 볼 때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수박이 벌써 한참 전부터 나오긴 했지만, 몇통 안되는 수박을 진열해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과일 도매상엔 엄청나게 큰 수박부터 적당한 크기까지 작은 수박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달기만 한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 씨 빼는 게 귀찮아서 수박은 나의 기호품이 아니다. 모름지기 과일은 자두처럼 새콤달콤해야 제맛이라는 게 나의 굳건한 믿음.

올해는 가지치기를 건너뛴 데다 해걸이를 하는지 통 수확이 신통찮은 앵두를 두어번 따먹으며 좀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보들보들 새콤한 맛에 한동한 행복했고, FTA를 반대하는 의미로 수입과일은 '사다' 먹지 않겠노라고 작심했지만 '누가 줘서' 얻어먹은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는 황홀하게 맛있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참외와 사과, 토마토로 근근이 과일 열망을 잠재우고 있었는데 자두를 만난 거다.

앉은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자두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 남은 씨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기야 꽃 맺히고 나서 열린 과일 열매의 생김새가 더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랫부분까지 움푹 들어간 사과나 배와 달리 앵두, 체리, 자두, 복숭아, 살구 같은 건 꼭지가 달린 윗부분만 쏘옥 들어가고 아래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솟은 하트 모양이라는 의미다. 다들 가운데는 단단한 씨가 들어있고 말이다. +_+ 별것도 아닌데 나로선 새삼스러운 발견이라 마치 큰 성취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점점 더운 날씨는 못견딜 노릇이지만 그래도 어서 자두랑 복숭아가 과일가게에 산처럼 쌓여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봐야겠다. 과일은 나의 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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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많은 사람들이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본인이 먹고 싶다고 생각한 걸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 물론이고 나는 누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조차 그냥 허투루 듣지를 않고 담아두었다가 먹게 해주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특히나 왕비마마 및 조카들이 먹고 싶다고 말한 건 왜 그냥 넘길 수가 없는지 원. 물론 건강에 나쁜 먹거리인 경우에는 왕비마마의 지병 걱정에 우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일단 안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비슷한 대체품으로라도 사드리거나 만들어 드리고 후회를 하는 인간인지라 어쩔 땐 저질러 놓고 "내가 미친년이지..."라고 후회할 때가 많다.

3월 24일이었을 거다. 왕비마마의 CT촬영 때문에 꼭두새벽 7시부터 병원엘 가야했고 순차로 이어지는 각종 검사와 진료 때문에 오전 내내 병원에서 살아야했던 날, 아침방송에 문제의 <통영 꿀빵>이 나왔다. 원래 유명한 꿀빵집은 아니었고 최근에 고구마 꿀빵이니 빼때기죽이니 신제품 개발을 해서 차별화를 시켜 월 매출이 2천만원이라는 어느 젊은 아줌마네 꿀빵집 소개였다.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튀긴 것, 단 것, 밀가루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하는 왕비마마는 병원 의자에 앉아 당연히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그 꿀빵을 탐냈다. 오래 전 키드 님과 벨로의 통영 여행 덕분에 한 덩어리 맛을 본 적 있는 나 역시 화면을 보니 새삼 군침이 돌았다. 당시엔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니 한번 시켜먹어봐야겠다 생각했으면서 그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TV에 한번 나오면 난리가 난다는 걸 알기에 머리 좀 쓴답시고 TV에 나온 꿀빵집 대신 원조 꿀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름도 까먹어서 키드님 블로그에 다시 가서 검색해 알아본 <오미사 꿀빵>을 이번엔 기필코 시켜먹기로 마음 먹은 거다. 헌데 그렇게 맘먹은 인간이 나뿐이 아니더라. 그로부터 열흘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오미사 꿀빵은 구경도 못하고 있다. 처음 며칠간은 트래픽 초과로 아예 홈피 접속도 되질 않더니 닷새쯤 지나니깐 접속은 가능하되, 늘 일시품절 상태다. 주문이 밀려들어 어쩔 수가 없단다. 방송의 주인공이었던 <꿀단지> 꿀빵집도 당연히 마찬가지라 나는 공연히 몸이 달았다. 사실 이 정도쯤 되면 왕비마마는 꿀빵을 벌써 잊고 계실 확률이 높다. 그간 꿀빵 대신 꿀떡을 계속 간식으로 먹어서 단것에 대한 열망이 잠재워졌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젠 내가 오기가 났다!

거의 매일 오미사 분점 홈피에 들락거리며 <재고: 일시품절> 글씨가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으려니, 드디어 어제 수요일 9시에 다시 홈피를 열어두겠다는 공고가 보였다. 으으.. 9시면 내가 잠자고 있을 시간인데, 2주 이상 지났으니 요번엔 오후에 접속해도 성공할 수 있으려나 어쩌려나... 꿀빵 열망이 나를 9시 접속으로 이끌 것인지, 혹시라도 또 기회를 놓치면 다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슬글슬금 꿀빵을 탐냈던 사실까지 잊어버릴 것인지 스스로 궁금하다. 2주 가까이 들인 공을 생각하면 꿀빵 먹으러 조만간 통영 놀러갈 계획이라도 세울 기세다. 왕비마마 다이어트 시키려면 내가 쓸데없는 오기를 버리는 게 옳은데. ㅋㅋ 이렇게 열심히 일이나 좀 하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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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반찬

식탐보고서 2010. 4. 6. 14:54
어릴 때 하고 놀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놀이를 기억하는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자~~안다.
잠꾸러어~~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하~~안다.
예쁘~~은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옷입느~~은다.
멋재~~앵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학교가~~안다.
모버~~엄생.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놀러가~~안다.
날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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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가사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지 않은 이 놀이의 마지막은 <밥먹느~~은다 -- 무슨 바~~안찬? -- 개구리 바~~안찬 -- 살았니 죽었니?>에 대한 대답과 함께 술래가 친구들을 잡으러 가거나("살았다!"고 외쳤을 때) 움찔 움직인 친구를 잡아내는 ("죽었다!"가 대답일 때) 것으로 끝이 난다. 운동신경도 둔하고 달음박질 느린 나는 친구들과 밖에서 놀이를 할 땐 별로 즐기질 않았는데, 다 놀고 집에 들어와서 흥얼흥얼 새로운 댓구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했고, 부엌을 들여다보며 할머니나 엄마한테도 놀이를 하듯 장단 맞춰 "무슨 바~~안찬?"이라고 묻는 걸 재밌어했다. 그리고 할머니나 엄마가 "개구리 바~~안찬"이라고 대답할 땐 기쁘게도 뭔가 맛있는 <고기> 반찬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였다.

수십년도 훨씬 지난 오래 전 추억이지만, 가끔 우리집에선 개구리 반찬이 아직도 <맛있는 고기 반찬>의 의미로 쓰일 때가 있다. 대개는 내가 입을 쑥 내민 채로 콩닥콩닥 냉장고와 조리대를 오가며 꽤 오래 부산을 떠는 저녁 무렵이면 왕비마마가 슬쩍 부엌으로 다가오며 묻는다. "무슨 개구리 반찬이라도 만드니?"
그러고 보니 옛날에 엄마가 장보러 가면서 아버지와 내게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으면 가끔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개구리 반찬!"이라고. 

채식이 지구를 살리고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지름길이란 걸 알지만, 우리 가족은 고기를 너무 사랑해서 절대 채식주의자로 살 순 없을 것 같다. 일주일만 고기를 굶으면 손발이 후들후들 떨린다는 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아무리 생선으로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해도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오리고기 따위를 먹어야만 채워지는 육식애호 인자를 확실히 엄마도 나도 보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채소 싫어하는 조카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정말로 개구리 반찬을 만들어 먹는 것 같다. 당연히 일주일에 한번씩 장을 볼 때도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종류별로 거의 빠뜨리는 일이 없다. ㅠ.ㅠ 고기마다 다 맛이 다른 걸 어쩌란 말이냐. ㅎㅎㅎ 봄이 오면 남들은 식욕을 잃는다는데, 왕비마마도 무수리도 입맛을 잃기는커녕 지난주부터는 이상스레 식탐이 동해 고기가 더 먹고 싶어서 이틀이 멀다하고 과식을 거듭하고는 피둥피둥  몸무게를 늘이고 있다. 그러고서도 여전히 또 다른 개구리 반찬을 떠올리는 식탐 모녀를 위해 적어두는 반성의 기록이다. 



적고 보니 아무래도 한우는 비싼 가격 탓에 국으로 끓여먹지 않으면, 장조림 해먹는 게 다인듯. 오리고기는 훈제오리 제품을 사다가 살짝 데워서 무쌈에 싸먹으면 되므로 요리랄 것도 없다. 이렇게 먹고도 어제 왕비마마는 또 삽겹살을 구워먹고 싶다 하셨다.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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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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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밥>이 먹기 싫다는 말은 순수한 의미 그대로의 <밥>이지 <한 끼니>가 아니다. 하루 세끼 꼬박 반찬까지 여러 종류로 챙겨서 밥을 먹기엔 수랏간 무수리로도 좀 지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점심은 주로 간단히 먹는 편이고 대부분 떡만두국, 우동, 칼국수를 번갈아 해먹다가 간간이 떡볶이로 좀 오버하는 때도 있고 아주 가끔은 빵으로 떼운다. 그러나 반찬 없이 밥먹으면 그 밥심이 2시간 밖에 안가는 인간이 빵 조각 간단히 집어먹고서 버젓하게 <끼니>라고 부를 수는 없는 법이라 나름 영양소까지 감안해서 한 끼니를 해결하므로 <떼운다>고 말하기엔 좀 섭한 감이 있을 정도다. 감자수프 한 그릇에 프렌치토스트 2조각, 바나나 한개 정도면 꽤나 배부를 수 있음. ^^; 아무튼 이어지는 식탐녀의 식탐 포스팅.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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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열나흔날부터 보름날까지 나무 아홉 짐 해오고 아홉 가지 나물에 오곡밥을 아홉 번 먹어야 한다는 세시풍습을 나는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다. 보름날 아침에 자고 있으면 엄마가 부럼을 가져와서 어서 깨물으라고 재촉했는데, 부스럼을 비롯해 각종 병을 막아준다는 부럼깨기 풍습도 재미났고, 이름 불러서 더위파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아이들은 대개 나물을 즐기지 않는다지만 나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각종 나물이 맛있다고 생각했고, 특히 대보름 나물은 하나같이 좋아한다. 엄마가 부엌일에서 손을 놓은 다음 한두 해는 귀찮아서 오곡밥과 나물을 얻어다 먹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무모한 도전정신을 발휘해 막요리를 시도하는 쪽을 택했다. 밥이야 어차피 밥솥이 하는 거고, 아홉 가지나 만들 자신과 열정은 없어도 몇 가지 나물쯤이야 몇번의 실패 후 그럭저럭 맛을 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작년에도 대보름 나물을 만들었을 텐데 올해는 왜 그리도 다 새롭던지. 결국 시레기 나물은 실패한 것 같다. 다 기록을 해두지 않은 탓에 요리할 때마다 대충대충 하기 때문인가 싶어, 내년을 위해 또 막요리를 기록한다. 시레기 나물과 취나물이 좀 질겨서 속이 상했지만 다섯 가지 나물을 차려놓고 김에 싸먹는 오곡밥은 행복과 지혜의 맛이 틀림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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