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보고서'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07.11.05 커피 유난 17
  2. 2007.03.19 드디어 바나나빵을 만나다! 24
  3. 2007.01.22 멸치 생각 16
  4. 2007.01.06 밤참은 나의 힘 7
  5. 2006.12.03 김치 부침개 5

커피 유난

식탐보고서 2007. 11. 5. 18:29
무슨 일에든 나는 그리 유난을 떨며 집착하는 유형은 아니다.
'오타쿠'라는 말을 나는 아주 최근에야 알았을 정도.
그렇기 때문에 커피를 꽤 좋아하고, 커피가 맛있는 찻집을 찾으면 퍽이나 기뻐하면서 마시긴 해도
그 오묘한 맛을 집에서도 내보겠다고 용을 쓸 생각은 없었다.

8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장만했다는 어느 지인의 막강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봤을 땐
속으로 참 유난도 떤다...는 생각이 강했다.
집에서도 볶은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원두만을 특별히 사다가 그때그때 갈아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비용을 따져보면, 커피집에서 때로 6, 7천원을 훌쩍 넘기는 돈을 받는 것도 다 옳은 계산법이라는 그 언니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절차가 복잡하고 귀찮아서라도 그렇게 못하겠다고 속으로 툴툴 거렸었다.
그 뒤론 누군가 저렴하게 출시된 19만원짜리 에스프레소 머신을 자랑했고
밖에 나가 마시는 커피값 몇번(실은 몇십번이지만) 절약해서 집에서 마시는 게 훨씬 낫다고 열변을 토하는 걸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꽤 여러 종류로 갖춰 놓은 커피 원두를 갈아서 한두잔씩 내려 마시면 내가 집에서 먹는 커피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귀신에 가까운 주변 지인들은 그 뒤에도 가스렌지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모카포트를
사들인다, 드리퍼를 장만한다, 유기농 커피를 마셔야한다, 생산자에게 이익이 제대로 분배되는 착한 커피를 마셔야한다, 요새도 구형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려마시는 건 원시적인 짓이다.... 계속해서 유난을 떨었다.

그래도 내 생각은 굳건했다.
모카포트다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요란떨며 손수 만들어준 지인들의 커피맛이 생각만큼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역시 서툰 목수가 연장탓 하는 법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나가서 사먹으면 될 것을, 그 맛을 찾아내겠다고 끙끙거리며 수고를 반복하는 건 어쩐지 시간낭비 같았다.
온종일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아도 무사할 정도로 카페인에 강하지 않게 된 탓도 컸다.
암튼 기껏해야 하루 한두 잔 정도 마시는 커피,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나온 거면 어떻고 커피믹스나 자판기 커피면 어떠랴 싶었다.
커피 마시면서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요새 베트남 커피를 스텐레스 드리퍼에 제대로 담아 뽑아마시다 보니
점점 맛있는 커피에 대한 욕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물며 똑같은 커피믹스로 커피를 타도 맛이 조금씩 다른데 (물의 양과 설탕 조절이 관건이다)
같은 드리퍼를 써도 물의 온도와 물 붓는 기법, 원두의 갈린 정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무식하게도 나는 그간 베트남 커피도 머그잔에 여과지를 대강 얹어 뽑아 마실 정도 였는데
'정석'대로 드리퍼를 사용해 커피가루를 약간 뜸들였다가(!) 다시 물을 부어 마셔보니 확실히 깊은 맛이 살아났다.

역시나 커피에 관한 한 무식함을 자랑하듯
우리집 냉장고엔 커피 원두가 아직도 여섯 봉지쯤은 들어있는 듯하다. -_-;;
커피 욕심은 또 많아가지고 여행갈때마다 사오거나 지인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고
커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지인이 선물한 커피도 꽤 됐다.
나름대로 꽁꽁 묶고 포장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 먹긴 했지만
볶은지 1주일이 지나면 원두가 산화되어 맛이 없다는 까다로운 커피광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참 무식하기 그지없는 짓이라고 하겠다.

째뜬 요새는
밤마다 문방구 눈요기에 더불어 커피용품 눈요기를 하느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1, 2인용 카페모카 주전자도 어찌나 예쁜 게 많은지 고가품은 에스프레소 기계 못지 않다. -_-;;
드리퍼도 융에서부터 도자기, 황동, 플라스틱, 종이... 구멍이 하나짜리, 세개짜리, 둥근 모양, 세모 모양...
종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물론 조만간 내가 지금보다 더 심하게 커피 유난을 떨게 될 것 같진 않다.
일단 귀찮음이 가장 큰 이유이고, 하루 한두 잔 마시겠다고 복잡한 커피용품을 사들이기엔 아무래도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단 한 잔의 소중함을 위해 더더욱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돌아보니 중3때부터 나의 커피 애호 역사도 꽤 길다.
선생님 몰래 뽑아 마시던 자판기 커피 아니면, 나중에 도시락 김치병으로 더 많이 사용됐던 손님접대용 '맥스웰 화인' 커피가 처음이었으니 올해로 27년째인가 보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커피 갖고  유난 떠는 대열에 끼는 것도 좀 우습겠지만
하여간에 원두를 갈아 좀 진하다 싶게 뽑은 커피향이 풍기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하고 너그러워진다.
문득 잠잘 걱정 없이 마음껏 커피를 마실 수 있던 때가 그립다.
내가 커피 자체보다 커피 용품들에 더 심취하고 있는 것도 아마 못 마시는 커피에 대한 보상심리나 대리만족 때문일 게다.
에효...
오늘도 한밤중에 커피 마시고 싶으면 단골 사이트에 들어가 그저 모니터 화면이나 쓰다듬어야겠다.

Posted by 입때
,

그간 키드님의 BBM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바나나빵의 열풍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나의 행동반경 안에선 유일하게 바나나빵을 만나볼 수 있는 지역이
홍대앞인데 이상스럽게도 한달에도 두어 번씩은 가게 되던 그곳엘 갈일이 최근엔 참 드물었다.

더욱이 바나나빵의 존재를 알게되기 불과 열흘 전쯤에 그곳에서 100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출판사엘 다녀왔던 나의 아쉬움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는데
드디어 오늘 홍대앞에 갈 일이 있어 벼르고 벼르던 바나나빵 알현을 실천에 옮겼던 것!

물론 그 만남이 아주 쉽진 않았다.
무작정 수노래방과 약국이 있는 네거리를 향해(내 기억으론 분명 이 두 가지가 지표였는데.. 키드님의 바나나빵 관련 글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확인할 도리는 없다 ㅋㅋ)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보니, 약국 앞엔 '미니 잉어빵'과 '호떡'을 파는 좌판과 평범한 떡볶이 포장마차밖에 없었고, 수노래방을 끼고 모퉁이를 도니 거기엔 커다란 말라뮤트를 매달고 뭔가를 파는 노점상과 솜사탕 아저씨밖에 없었던 것.
순간 당황하여 바나나빵 아줌마가 자리를 옮겼나 싶어 '공주 침대 카페'까지 올라갔던 나는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10초쯤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
그러나 바나나빵에 대한 집념은 생각보다 질긴 것이어서
결국 나는 걸음을 되돌려 수노래방 앞 네 거리를 골목골목 다시 뒤지다가
원점부터 시작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주차장길을 내려갔는데...

앗!
바로 미니 잉어빵과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 바로 옆에 아주 작은 포장마차가 덧대어 있었고
좌판 앞엔 자그마한 플래카드 같은 모양으로 노란 바탕에(어쩌면 노란색 글씨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워낙 흥분상태여서 ^^;; )'바나나빵'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순간적으로 나는 또 고민에 휩싸였다.
천원에 3개인데 2천원어치를 사야 하나.. 3천원어치를 사야하나.. -_-''
식구들과 나눠먹으려면 당연히 3천원어치를 사야겠지만
혈당이 300을 향해 치닫고 계신 왕비마마에게 이런 간식은 치명타라는 것을 잘 알기에
결국 나는 '나홀로 몰래 먹고 입샥닦기' 작전을 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줌마, 바나나빵 2천원어치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
따끈한 바나나빵 봉지를 받아든 순간 나도 모르게 흐르는 미소로
얼굴은 온통 헤벌쭉.... ^__________^
곧이어 봉지 안에 손을 넣어 끝을 조금 잘라 입에 넣어보니
키드님이 말씀하신 '부드러운 바삭바삭함'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느껴졌다!

아.. 그 기쁨을 키드님이나 교주님께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분들의 연락처는 알 길이 없어 꿩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벨로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푸하하하...어서 포스팅을"이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답이 이내 날아왔다.

식은 뒤엔 어떤 맛일지 어서 집에 가서 먹어봐야지, 생각했으므로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 맛을 다시 음미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따뜻할 때 먹는 느낌이 더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워 좋은 듯했다.
그렇지만 식은 뒤에도 느끼하거나 뻑뻑하지 않아서 어느 틈에 2개를 슥삭 먹었다는;;

그리고... 여러분들이 포스팅에 사진을 첨부하셨으니 나까지 사진을 찍어올리는
열성을 보이진 않겠으나, 포슬포슬한 뒷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단한
바나나빵 앞면에 BANANA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게 왜 그리도 귀여운지~! ㅋㅋㅋ
(감동이 큰 덕분에 말끝마다 느낌표와 영탄법의 남발임을 널리 양해바랍니다^^;;)

식탐은 많지만 끼니 외에 간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단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예를 들어 크리스피 도넛 오리지널 같은 건 1개가 최대치--그것도 커피와 함께 먹을 때에만-- 그 이상은 치사량이다) 앉은 자리에서 2개를 뚝딱 먹고도 그리 질린 느낌이 없었다는 건 꽤 놀라운 결과다.
붕어빵도 좋아하지만 2개나 먹고 나면 단팥의 단맛 때문에 뒤끝이 개운칠 않고 곧장 물을 찾게 되는데, 바나나빵은 그리 달지 않고 담백해서 지금 2개를 얼른 먹어치우고 곧장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빵집에서 빵을 골라도 모양과 재료가 화려하고 달콤한 빵을 고르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담백하고 찝찔하고 거친 통곡물 빵 종류를 고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맥락에서도 붕어빵이나 호떡, 오방떡, 호도과자보다 바나나빵이 내 취향엔 더 맞는 것 같다.
가령, 인사동에서 사람들이 포장마차를 뱅뱅 둘러 줄줄이 기다려 사먹는 기름기 잔뜩 머금은 호떡은 줘도 싫고 혹시 하나 먹었더라도 봉투에 남은 게 있다면 다음날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릴 텐데, 바나나빵은 절대 못 버리고 다 먹을 것 같다!

아직 3개나 남았는데, 내일 전자렌지에 몰래 살짝 데워먹으면 어떤 맛일지 ^^
그것도 궁금하다. ㅎㅎ

암튼....
바나나빵을 나도 드디어 만나서 기쁘기 그지없다!
다시 한 번 바나나빵의 존재를 알게 해준 키드님께 감사하고
바나나빵 열풍을 불게 했던 최초의 그 글이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며
트랙백은 키드님 못지않게 바나나빵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지다님께 보내기로 작심했다.  ^^;;

아이 뿌듯...
Posted by 입때
,

멸치 생각

식탐보고서 2007. 1. 22. 20:16
도시락 반찬으로 멸치를 싸와서 먹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사람마다 집집마다 기피하는 음식, 먹지 않는 반찬이 있기 마련인데
이제는 거의 몬도가네 수준으로 못 먹는 것이 없는 내가 그닥 즐기지 않는 몇 안되는 반찬엔 원래 '멸치'가 속했다.
그건 워낙 '편식대마왕'이란 별명에 걸맞게 가리는 것도 많고 비린것을 몹시도 싫어하시는 울 아부지의 영향이었다.
온갖 날것은 물론이고, 익힌 등푸른 생선마저도 못 먹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바닷가인 부산에서 고등학교때까지 다니셨다는 분이 쬐끄만 멸치까지 못 먹는 것은 좀 이상하다 싶지 않은가?
하지만, 멸치배가 들어와 덕장에 삶은 멸치를 마구 널어 말리고 있는 동네 입구를 지나다 보면, 마음 좋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집에 가서 반찬 해먹으라고 어린 우리 아버지한테 멸치를 한 보따리씩 싸주셨다는데, 8남매 장남 답게 살림살이를 염려한 아버지는 동생들이라도 먹이려고 그 멸치를 집까지 가져가며 비린내 때문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암튼 멸치와 등푸른 생선의 비린내를 못견뎌하시는 아부지 때문에
우리 엄마는 젊은 시절 아부지가 안 계실 때만 그런 '비린' 반찬을 해먹었는데,
지금이야 아부지의 인내심과 비례하여 엄마와 내 목소리가 무진장 커졌으므로 당당히 등푸른 생선을 굽거나 조려먹기도 하고, 멸치볶음을 상 위에 올려놓지만,
예전엔 아예 울 엄마가 그런 반찬거리를 사들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해먹고 난 뒤의 비린내마저도 못 견뎌,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도 냄새 다 빠질 때까지 온통 방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시위를 벌이는 통에 '차라리 안먹고 만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나.

게다가 YS가 집권한 뒤였던가?
YS 아버지가 거제도에서 멸치 사업을 한다나 어쨌다나 해서 멸치값이 엄청나게 올랐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멸치 한 상자에 십만원도 넘는 가격표가 붙어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며, 우리집은 멸치를 안먹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그렇게 특별한 사정상 자주 안 먹다 보니 멸치는 우리 삼남매 모두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가, 갱년기 이후 여성의 골다공증 문제를 예방하려면 칼슘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방송을 타면서 슬그머니 우리집에도 멸치 반찬이 재등장한 것 같다.

물론 그런 뒤에도 나는 멸치 반찬에 그리 손이 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를 도와  중간 크기 정도의 멸치 내장을 따내면서 꼭 '멸치 똥을 딴다'고 표현했는데, 아버지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여 무조건 손에 배는 그 비린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덩달아 멸치를 싫어했던 남동생들이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아버지가 되고,
나도 덩달아 훌륭한 역할 모델 노릇을 하고 싶은 고모가 되면서
'고모는 아무거나 잘 먹는 어린이가 제일 이뻐!'라고 조카들에게 언제나 큰소리를 치려면
싫어하는 익힌(!) 당근도, 멸치 볶음도 퍽퍽 집어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요즘도 다른 반찬과 달리 멸치 볶음은 '절대로' 내가 손수 만들 수 없는 음식이라고 우기고는 있으며, 조리법을 아무리 똑같이 해도 본질적인 질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보관이 잘못된 때문인지 비린내가 심히 나는 멸치 볶음은 여전히 씩씩하게 먹어줄 수가 없지만 ^^;;
적당한 크기의 잔멸치를 바삭하고 달달하게 볶은 멸치 반찬은 이제 나도 맛을 알고 즐기게 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예전엔 죽어도 못 먹겠다 생각했다가 이제는 탐닉하게 된 음식이 한둘이 아니다.

- 무지막지 뼈다귀가 무서워 보였던 감자탕: 20살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음식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선배들이 감자탕집 끌고가면 이맛살 찌푸리며 '무식한' 음식도 다 있다 여겼는데 ^^;;
이제는 사먹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정육점에서 돼지 등뼈 사다가 내 손으로 집에서도 끓여먹는다! ㅋㅋ

- 는질는질 씹히는 느낌이 소름끼쳐서 못 먹던 생선회: 맨날 회사 회식으로 횟집만 가는데 혼자 곁다리 반찬과 값싼 오징어회만 먹는 게 억울해 조금씩 시도하다  이제는 없어서 못 먹지 아마.

- 꿈툴꿈틀 애벌레처럼 보였던 산낙지: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ㅜ.ㅜ;; 참기름속에서 허우적대며 놈들의 힘이 살짝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맛이란.. 흑..

- 코가 핑 뚫리는 암모니아 냄새의 삭힌 홍어: 사실 지금도 무진장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삭힌 홍어 파는 식당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했던 예전에 비하면 ^^ 지금은 그 오묘한 맛을 좀 알 것 같다.

- 특유의 냄새를 좀체 참을 수 없던 양고기: 양고기 역시 나의 기호식품엔 들지 못하지만, 양고기 굽는 옆에서 애써 욕지기를 참느라 눈물을 흘리던 때도 있었는데;;; ㅋㅋ 지금은 그럭저럭 잘 먹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파피는 콩국수를 못 먹겠다고 하고 ^^;;
지다님과 벨로는 미더덕을 먹어본 적도 없으며
키드님은 미더덕을 싫어한다는 걸 보면

이상한 혐오식품을 제외하곤 못 먹는 음식이 이제 달랑 셋--보신탕, 추어탕, 곱창(보신탕은 그냥 싫고, 추어탕과 곱창은 수차례 노력했음에도 극복할 수 없는 맛이 느껴진다)--밖에 남지 않은 나는 그야말로 엄청난 탐식가인듯.
어른이 된 뒤로 주욱 변화 및 발전(?)해온 나의 식생활을 따져볼 때
결국 식성과 식탐은 개인의 사회화 과정과도 유사하지 않나 싶다.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개개인이 그걸 얼마나 받아들이고 심취하느냐의 정도 차이랄까.

죽도록 싫어하다가 없어서 못먹게 된 음식도 있듯
앞으론 몹시 좋아했는데 죽도록 싫어하게 될 음식도 생기겠지.
내 식탐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새삼 궁금하다. ^^;;
Posted by 입때
,
식탐이 지나쳐 혐오스러울 지경인 벨로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마구 광분하긴 했지만
나 역시 식탐은 누구 못지 않은 인간이다.
간식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끼니를 충실히 먹어주어야 하고
때를 놓쳐 배가 심히 고프거나 먹다가 음식이 모자라면 난폭해지기까지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내가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 두끼만 먹고 산다고 늘 걱정을 입에 달지만
사실 올빼미족인 나는 엄연히 세 끼를 다 먹고 산다는 게 맞다.
남들에겐 점심일 시간에 먹는 하루의 첫번째 끼니는 정확히 말해 나의 아침이고
저녁은 점심, 밤참은 저녁끼니인 셈이다.
원고마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해야 할 정도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 한
나는 또 끼니때마다 제대로 다 갖추어 놓고 먹어야지
반찬 한 두개만 달랑 꺼내놓고 대강 때우는 건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반드시 국이나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모두 꺼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가끔 반찬이 부족하다 여겨지면 계란말이나 계란찜, 돼지고기 김치찌개 따위를 후다닥 만들어서 먹어주곤 한다 ^^;;
요리의 '대가'는 아니어도, 먹어본 음식은 대강 얼추 비슷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솜씨를 갖게 된 데는 수시로 편찮으셨던 울 엄마와 내 질긴 식탐이 반반씩 기여했을 거라고 여겨진다.

암튼...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양또한 만만칠 않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공기밥 정도는 당연히 한 그릇 다 먹는다.
그래서 과거에 나를 잘 모르던 시절, 양 적은 측근들이 셋이서 음식을 두 종류만 시키는 행태를 보이면 나는 버럭 화를 내를 냈었다. 나는 분식점의 경우 셋이서도 늘 네다섯 개는 시켜놓고 먹어야 뿌듯한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

나보다 체중이 두배나 더 나가는 동창녀석은 늘 자기보다 밥을 많이 먹는 내 위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치만 내가 보기엔 나보다 훨씬 덜 먹으면서 그 체중을 유지하는 그 녀석이 더 신기하다. =_=;;

아무려나 밤참도 나에겐 엄연한 한 끼니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먹는 법이 없는데
오늘은 오밤중의 식탐이 극에 달했는지...
백설기 한쪽과 우유 한 잔을 데우고 단감 하나와 귤 세 개를 챙겨 방으로 오려니
냉장고에 든 밤에 눈길이 꽂혔다.
문득 군밤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ㅋㅋㅋ 그래서
칼집을 넣어 몇달 전 홈쇼핑에서 오밤중에 고구마와 함께 충동구매했던 직화 냄비에
구워 시방 냠냠 먹고 있으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듯하다.
나란 인간은 먹는 것 앞에선 어쩜 이리도 단순한지 원...

그치만 배가 고프면 절대로 잠조차 잘 수 없는 올빼미 식탐녀에게
오밤중 밤참은 분명 엄청난 힘의 근원이고 행복이다. ^____^


p.s. '야식'은 일본말에서 유래된 잘못된 표현이란다.
순우리말로는 '밤참'이 맞다고... 나도 앞으로는
'밤참'으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그간 썼던 '야식'이란 말을 죄다 바꿨다.
Posted by 입때
,

김치 부침개

식탐보고서 2006. 12. 3. 01:37
원래는 뜬금없이 만두가 먹고 싶었다.
집에서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다진 김장김치와 두부, 숙주, 갈은 돼지고기를 넉넉하게 넣고빚은 엄마표 김치왕만두 말이다.
그렇지만 돌이켜보건대, 우리 집에서 만두를 빚어본 게 최소한 10년은 넘은 것 같다.
큰 동생이 올해로 결혼 10주년인데, 올케들은 단 한 번도 그 맛을 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삼남매에게 맛있는 영양간식을 해주기로 온 동네 소문난  솜씨 아줌마였던
우리 엄마는 특히 긴긴 겨울에 만두며 맛탕, 떡볶이, 김치부침개, 감자고로께(크로켓이 맞는 표현이지만 느낌이 안 살아서 과거형으로~), 야채빵 따위를 만들어주셨다.

다른 간식과 달리 만두는 삼남매가 모두 달려들어 거들어야 했으므로
처음엔 재미나서 신을 냈지만 나중엔 몹시 지겨워했던 것 같다.
동생들의 어마무시한 식성을 당해내려면 큼지막한 만두를 최소 100개는 만들어야 했는데
만들면서 동시에 옆에서 삶아 건져먹으면서
'나 만두 10개 먹었다. 20개 먹었다'고 자랑하는 묘미는 참으로 뛰어났지만 ㅡ.ㅡ;;
요령피우며 달아나는 남동생들 대신 나 혼자 손목 아프게 만두를 빚어대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엄마가 밀대로 쓱쓱 동그랗게 밀어 내미는 만두피 속도를 미처 내가 맞추지 못하면 엄마가 다시 만두를 빚곤 했는데, 그러면 또 엄마가 대충대충 만든 만두 모양이 안 예뻐 내가 만든 것과 차이가 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놈의 잘난척은 암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던 듯.

하여간 추어진 날씨와 함께 뜬금없이 만두 생각이 간절하긴 했지만
지난 10년 이상 단 한번도 내가 손수 시도해본 적이 없다는 건 그만큼 자신도 없고
몹시 귀찮다는 반증이었으므로, 그나마 간편한 김치부침개를 시도했던 것.

김치를 송송 잘라 미리 설탕과 참기름으로 양념을 하는 것까지
엄마의 비법대로 따라해보지만 늘 맛이 5퍼센트쯤 부족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정말로 맛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부침개를 먹을 때 나는 노릇노릇 바삭바삭하게 부쳐진 가장자리를
뱅둘러 맨 먼저 뜯어 먹고나서 가운데를 먹는다.
본데 있는 집안은 부침개를 넓게 부치면 가지런하게 잘라 상에 올린다지만
부침개란 그저 큼지막하게 부쳐 접시에서 직접 찢어먹어야 맛있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ㅋㅋ

암튼 그래서 넓다랗게 부친 김치부침개 2장을 저녁밥과 함께 해치웠더니
오늘은 나의 평소 밤참 시간인 새벽 1시를 넘기고도 배가 고프질 않다.
하지만 마루에 나갈 때마다 온집안에 진동한 기름냄새 때문에
아.. 오늘 김치부침개를 부쳐 먹었지...
그리고 아직도 부침개 2장이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아무래도 아침이 오기 전에 홀라당 남은 2장을 다 먹어치우지 않을까 싶다.

그저.. 낙이라곤 먹어대는 낙밖에 없다고 주절댔었는데
11월 내내 그 낙마저 시큰둥, 식탐녀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태를 보이더니
깨갱 꼬리를 내리고 오는 겨울을 인정하였더니만
식도락도 다시 제자리를 잡나보다.
다행(정신건강을 위해)인지 불행(체중과 상관없이 늘어나는 뱃살을 위해)인지 원...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