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삶기

식탐보고서 2012. 9. 8. 22:26

찬물에 열심히 헹궈 식히지 않아도 껍질이 잘 까지는 달걀 삶기 비법을 쌘이 블로그에서 전수받아 오늘 시도해봤는데

정말이었다! 완전 신기하여라. 방법은 물의 양을 한 국자, 75ml 정도만 냄비에 넣고 달걀을 중불에 뚜껑 닫고 6-7분 삶다가, 뚜껑을 덮은 채로 반숙은 3-4분, 완숙은 다시 6-7분 놓아두는 것. 물을 그렇게 조금 바닥에 깔릴 만큼만 넣고 달걀을 삶는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으나, 결과물은 정말로 신기했다.

 

달걀 삶아서 껍질을 매끈하게 잘 까려면, 갑자기 찬물에 담가서 껍질의 부피를 확 줄여 중간에 공기층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왕이면 얼음물에 담그라고 하는 조언을 오래 전 요리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어 나름 찬물에 헹궜다가 찬물 틀어놓은 수도꼭지 아래서 까보아도 성질 급한 나는 종종 우툴두툴 살점이 떨어지게 만들곤 했다. 그뿐인가, 냉장고에서 달걀을 바로 꺼내 냄비에 넣고 삶으면 왜 꼭 터져서 내용물이 질질 새어나오는지! 냉면 먹을 때야 옆구리 좀 터진 삶은 달걀을 얹어도 상관없지만, 장조림 같은 거 하려고 여러 개 삶을 때 터져버리면 참 난감했다. 삶을 때 터지지 않아도 껍질 까면서 우툴두툴 살점 떨어진 달걀은 장조림을 해놓아도 당연히 볼품 사납다.

 

달걀을 삶는 도중 껍질이 터져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나름 찾아보니 몇 가지가 있었다.

- 물에 소금을 넣고 삶을 것. 소금 성분이 단백질을 응고시킨다고.

- 불을 너무 세게 하지 말 것. 약불로 시작해 중불로 불 조절 필요. 냉장고에서 나온 차가운 달걀이 급격한 온도변화를 견디지 못해 급팽창하는 것이라나.

- 달걀이 완전히 물에 푹 잠기지 않도록 약간 숨구멍을 허락할 정도로만 물 양을 조절할 것. 뜨거워진 공기가 새어나올 구멍이 필요하다고.

- 삶는 도중 냄비를 흔들어 안에 든 달걀을 몇 번 굴려줄 것. 온도를 골고루 퍼지게 함과 동시에 노른자 위치도 정중앙에 놓이는 이점이 있음. 

 

그리하여 달걀을 터지지 않게 삶는 경지에는 오를 수 있었으나 살점 안 떨어지게 껍질 까는 것은 최근까지도 나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웬만한 요리는 어깨너머로 보고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삶은 달걀 하나 매끈하게 못 깐다는 게 때로는 자존심이 상할 정도. ㅠ.ㅠ 찬물에 여러번 헹구면야 물론 나도 매끈하게 깔 수 있지만, 후닥닥 30분 미만으로 점심 준비하면서 냉면 사리와 달걀을 동시에 삶고, 오이채 준비하고 상차림까지 완비하려면 일사천리로 쉴 새 없이 과정이 진행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대개는 앗 뜨거라 하면서도 수도꼭지 아래서 후딱후딱 삶은 달걀 껍질을 까다보니...

 

째뜬 쌘이의 비법대로 오늘 삶은 달걀은 찬물에 한번만 헹구고 뜨거운 채로 막 까도 확실히 껍질이 잘 벗겨졌다. 물에 담가 끓이는 편보다 온도변화가 더 빨라서 내용물의 부피가 확 주는 모양인지, 톡톡 깨뜨려보니 공기구멍이 보통 물에 푹 담가 삶을 때보다 훨씬 컸다. 알고 보면 달걀 삶는 것뿐만 아니라 요리의 모든 과정에도 이토록 놀라운 과학의 비밀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염장 음식은 삼투압 현상을 이용해 재료의 수분 양을 줄이는 원리일 것이고, 밥만 해도 쌀의 녹말 형태를 변형시켜 부드럽게 만드는 화학작용이 아니겠나. 대대로 내려오는 손맛과 전통 같은 것이야 과학 따위가 끼어들 틈도 없이 그저 정성과 세월의 힘이라고 믿지만, 나 같은 식탐형 얼치기 요리사는 확실히 요리법과 함께 원리를 깨쳐야 납득을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손으로 꿈쩍여 먹고 살려면 배워야할 게 또 얼마나 많을까. 어차피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살아야한다지만, 껍질 매끈하게 벗겨지는 달걀 삶기 비법을 사십대 중반에 비로소 깨닫고 좋아라 흥분했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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