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짧아지는 해길이며 으슬으슬 추워지는 날씨까지 가을을 실감하면서 계속 시름시름 맥이 빠졌다. 바삐 마무리해야 하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어 한숨만 푹푹 나오는 습관성 무기력증에 빠졌던 거다. 새콤달콤한 홍옥 사과를 와그작 깨물어 먹어보아도 잠깐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보고싶은 조카들과 통화를 해도 약발은 지속성이 없었다.
그러다 애써 TV에서 찾아낸 요즈음의 소소한 낙. 내가 퍽 단순한 인간임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소일거리라 널리 자랑하여 그 세를 넓히고자 한다. 홍옥의 진가를 널리 알려 더 많은 농가에서 내년에도 홍옥을 많이 재배해 새콤달콤 행복한 10월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사방에 홍옥 타령을 해대고 있는 것처럼. ^^;
1. 지붕뚫고 하이킥
시트콤이라지만, 단순히 웃기는 에피소드 말고 가슴 찡한 이야기들이 참 많다. 이 시대와는 좀체 맞아떨어질 것 같지 않는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신애, 세경 자매의 사연도 기구하고, 만날 빽빽 소리를 쳐대서 짜증스러운 체육선생 오현경도 엄마 대신 동생들 건사하는 마음을 다룬 에피소드를 보노라면 또 가슴이 짠해진다.
다들 여기 나오는 못된 아이 <해리> 때문에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나는 해리로 나오는 이 꼬마가 <연애시대>에 나올 때 마음에 쏙 들었던 터라, 극악을 부리는 꼬마의 모습마저 놀라운 연기력으로만 비쳐 존경스러울 뿐이다. ^^
게다가 신애는 <고맙습니다>에 에이즈 걸린 아이로 나올 때부터 팬이다. 두 꼬마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킬킬대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서글픔을 함께 느끼며 공감하고 있다.
지다님이 눈여겨 보았다는 최다니엘도 볼만하지만 신애 남매의 키다리아저씨 노릇을 도맡은 줄리언도 멋지다. 황정음을 비롯해 그외 찌질함의 극치로 나오는 인물도, 이순재 김자옥 커플의 신세대 뺨치는 연애도 정겨운데, 늘 무시당하고 사는 남편 정보석의 캐릭터는 그 옛날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 만큼이나 웃기면서 안쓰럽다. ㅋㅋ
매일 못챙겨볼 때도 많지만, 재방송으로 찾아보며 엔돌핀과 감수성의 분출을 경험하고 있다.
2. 천하무적 야구단
야구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오래 손놓았던 프로야구에 다시 집중하려니 구단 이름도 아리까리한 마당에 선수들 이름도 잘 모르겠고 골치가 좀 아팠는데, 토요일에 사고뭉치들이 야구를 시작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을 시작했다. 첫방송부터 보진 않았지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만나면 깔깔대며 끝까지 보게 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특히 야구의 o도 모르는 동네 건달들을 모아놓은 듯한 애들한테 야구를 가르치는 과정이 웬만한 다큐프로그램 못지 않게 흥미진진했다. 들짐승 캐릭터로 나오는 마르코 같은 애는 처음엔 정말 짜증났었는데, 동네야구 같은 이들 게임의 야구중계를 맡아 하다가 결국 감독직까지 수락한 김C(중고 시절 야구선수였다는 건 아는 사람은 알듯?)도 좋았고 체계적인 야구를 가르치기 위해 영입한 이경필 코치도 멋지다. 김준, 오지호, 동호 세 사람의 멋지고 잘생긴 얼굴 보는 재미도 있지만, 찌질한 이하늘, 김창렬, 임창정, 한민관 같은 이들이 나날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서도 감탄이 나온다. 최근엔 김성수, 조빈이 합류했는데, 나에겐 둘 다 비호감이었던 (김성수는 느끼하고 조빈은 또라이 같아서 +_+) 두 사람이 천하무적 야구단에 들어와 공 몇번 던지고 안타 몇번 날렸다고 단박에 호감쪽으로 바뀌더라. ㅋ
기본기가 전혀 없어 여전히 말도 안되는 실책을 밥먹듯이 해대며 도저히 야구 스코어라고 볼 수 없는 점수로 콜드게임패를 당하기 일쑤지만 이들이 첫승을 거두었던 날엔 나까지 울먹할 정도로 감동이었고, 하필 코리언시리즈 7차전과 같은 시간에 방송을 했던 지난주말엔 너무 조마조마해서 양쪽 채널을 오가며 야구를 보았는데, 기막히게도 천하무적 야구단과 기아는 둘 다 놀라운 대역전승을 기록했다. 정말 야구는 <모른다>! ^^;
3. 개그콘서트
개콘을 언제부터 열심히 챙겨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막내동생네 조카녀석들이 따라하는 개콘의 유행어를 나도 공부해야되겠다 싶어 보기 시작했을 거다.
그간 개편이 되면서 <분장실의 강선생> 같은 빵 터지는 코너는 이미 사라졌지만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일요일밤을 마무리해야 어쩐지 새로운 일주일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만큼, 요즘 내 삶에 드물게 웃음을 주는 소중한 프로다.
간간이 마음에 안드는 코너도 있기는 하지만 (최근 시작한 <풀 옵션>인가 하는 몸개그는 출연진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보기 안타깝다!) 황현희의 소비자고발 대신 시작한 <남보원> 코너는 요새 내가 제일 깔깔대는 물건이다. 강기갑 의원 분장을 하고 나온 박성호의 말투도 압권이고, <니 생일엔 명품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고 외치거나 <기름값도 내가 낸다, 톨비는 니가 내라!> 따위의 구호를 목청껏 외칠 때면 내가 남성인권보장위원회 회원이 된 기분으로 속이 후련하다. ㅋㅋ
4. 미남이시네요
엄청난 물량과 배우를 투입한 <아이리스>가 승승장구하는 모양인데, 나는 거기 나오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들어서 도저히 볼 마음이 안든다. 그러던 차에 아는 분의 추천으로 보게 된 <미남이시네요>는 중학교때 몰래몰래 학교에서 하이틴 로맨스를 읽던 감질맛을 되살리는 기분이다. 장근석을 몹시 싫어하는 편이긴 하지만 ^^;; 나머지 박신혜, 정용화, 이홍기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후까시황>이라고 부르고픈 장근석 캐릭터는 여전히 마음에 안차지만, 홍자매의 드라마엔 확실히 삶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끔 저렇게 알록달록 파스텔화 마냥 예쁜 화면이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헤벌쭉... 정말로 만화책을 옮겨놓은 듯한 황당한 장면은 물론이고 간간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설정도 피할 수 없지만, 난 이미 <그까이거> 하면서 실실댈 수 있는 팬심을 품게 되었다. 이젠 수목 밤 10시가 기다려진다. 아웅.. 귀여운 고미남!
조기종영의 아픔을 겪은 <탐라는 도다>도 초반부의 닭살스러움을 극복하고 난 뒤엔 마냥 즐거워하며 봤었는데, 부디 <아이리스>의 물량공세 때문에 <미남이시네요>도 조기종영을 결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늙다리 근육남들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극강미모 김태희의 연기가 아무리 늘었다고 해도 난 안볼 거란 말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