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어치 보테로

놀잇감 2009. 8. 4. 20:27

신체리듬도 깨뜨리지 않으면서 친구와 약속도 지키고 보테로 전시회를 보는 방법은 의외로 쉬웠다. 친구 일행도 전시를 오후에 보면 되잖아! 어차피 젖혀둔 일감이야 몇 시간 더 논다고 크게 달라질 진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난관은 다른 데 있었다.
다들 휴가 떠났을 줄 알았더니만 그것은 나의 오산.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뙤약볕 아래로 나서 덕수궁으로 향하니 놀랍게도 지난번 유명 전시회 마지막날만큼이나 매표소앞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궁궐만 들어가는 이들도 바글바글. +_+
멀리 경기 외곽에서 날을 잡아 보러 온 친구 일행은 여유롭게 기다려서라도 전시를 볼 요량을 품었지만(방학이라서 그런지 덕수궁 현대미술관 전시는 고맙게도 8시 반까지더라), 계속해서 출판사의 독촉전화마저 날아드는 마당에 나 또한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곧바로 헤어지긴 아쉬워 나는 일단 천원짜리 덕수궁 입장표만 사서 들어갔는데, 의외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테로의 조각품들이 궁궐 마당에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

대한문으로 들어서 조금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건 큼지막한 검정색 고양이 조각상.
보테로의 고양이 조각이 여러개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사진을 퍼오며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들여와 버젓이 실외 궁궐마당에 세워놓은 건 복제품이 확실하다는 것을.
새까맣고 매끄러운 질감이라 혹시 대리석인가 했더니 팻말에 <청동>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모름지기 정말로 청동이라면, 그리고 1999년에 제작한 거라면 당연히 이 사진처럼 칠이 벗겨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말이다. 덕수궁에 서 있는 건 갓 제작한 새것처럼 매끈하기만 하다. 실외 조각품 대여전시에는 언제나 복제품을 보내는 게 정석인지도 모르겠으나, 뭐 나로선 못마땅했다는 이야기.



미술관 양 옆에선 이렇게 통통하고 귀여운 여체 조각상도 두개나 더 볼 수 있었다. ㅎㅎㅎ 9월을 기약하며 전시회 구경을 포기한 나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요염하게 몸을 비틀고 앉은 저 사랑스러운 자태라니!

오늘은 설렁설렁 구경했지만 담엔 조각상들도 더 꼼꼼히 보고 말리라...
나는 까마득히 몰라는데 이번 전시회를 위해 페르난도 보테로 아저씨가 직접 내한도 했었다는군. +_+ 알았더라도 인파를 뚫고 만나러 갈 용기는 내지 못했겠지만 은근히 아쉽다.

사진을 보니 그림속에 담긴 오동통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날렵하고 예리한 예술가의 모습이지만 어쩐지 동글동글하고 순진무구한 표정이 닮았다. 예술가의 생김새 때문에 그림을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멋진 보테로 아저씨의 사진을 보니 그림 구경 열망이 더욱 커진다! 어쩜 이렇게도 만화 주인공 같이 생겼다냐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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