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4.01.12 목격자 4
  2. 2012.09.20 의문 11
  3. 2011.06.29 펑크 5
  4. 2011.04.26 그냥 좀 두지 20
  5. 2011.01.26 눈길 11
  6. 2011.01.04 인지상정 14
  7. 2010.08.31 자동차 보험 5
  8. 2010.07.21 방향감각의 한계 9
  9. 2010.07.12 안전거리 6
  10. 2010.02.04 부적 20

목격자

투덜일기 2014. 1. 12. 00:30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은 뾰족한ㅅ자 모양으로 각도가 좀 묘한데다 언덕이고 또 꽤 좁기도 해서 모퉁이에 누군가 차를 세워놓으면 곧장 방향을 틀 수가 없어 다음 골목에서 차를 돌려서 들어와야한다. 낮엔 몰라도 밤늦게 귀가하면 어김없이 그래야하는데, 10시를 조금 넘긴 오늘도 그랬다. 경사 급한 다음번 골목길로 후진으로 들어가 방향을 바꾸려는 찰나 저 앞 커브 심한 언덕길에서 차 한대가 미친듯이 달려내려왔다. 속도방지턱을 그냥 내달려서 영화처럼 차가 붕 떴다가 앞 범퍼를 요란하게 바닥에 부딪힐 정도였고 그 여파로 옆에 세워둔 다른 차와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빨리 안비키면 금세 내차와 정면충돌이라도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차도 속도를 좀 늦추는 사이 으악 놀랐던 나는 얼른 후진으로 길을 터주고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내가 그 차 뒤로 방향을 틀려는 순간 곧이어 같은 방향에서 경찰차가 나타났고, 나는 또 다시 후다닥 후진으로 길을 터주었다.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차였나? 그렇다면 내가 도주로를 잠시나마 막아섰던 셈! 그런데, 그 운전자가 우리 동네를 잘 알지는 못하는 듯 ㅋㅋㅋ 하필이면 한쪽편에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 우리집 골목으로 들어갔고 (바보, 막다른 골목인데!) 속력을 내서 지나갈 순 절대 없는 좁은 골목인지라 도망치기를 제풀에 포기한 듯, 입구에서 조금 가다 멈추고 말았다. 조수석에 탔던 경찰이 뛰어내리자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운전자도 차에서 내려 뭐라뭐라 변명을 했다. 음주운전단속을 피하려고 도망친 게 틀림없어보였다.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그 골목으로 들어가야한다는 표시로 깜박이를 켜보였더니만 두대 모두 후진으로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언덕을 내려갔다. 통행에 지장이 없는 큰길에 가서 나머지 절차를 밟으려는 듯... 

 

생각해보니 얼떨결에 나는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낸 경미한 접촉사고까지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이 된 거였다! 뒤 따라 오던 경찰이 음주단속이야 했겠지만 그 문제의 차가 골목에 세워둔 차와 부딪힌 것까지 보지는 못했을 테니, 그 책임까지 물을 것 같지는 않고.... 누군지 모르지만 골목에 세워뒀다 괜히 차만 찌그러진 자동차 주인이 불쌍하다. 소리로 봐선 꽤 심하게 찌그러졌겠다 싶던데 흐이구... 혹시 내일아침 찌그러진 차를 발견한 동네 주민이 목격자를 찾는다는 쪽지나 플래카드(?)라도 붙여놓으면 나는 아는 척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어쩐지 도시의 무용담 같아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 째뜬 오늘의 교훈은 음주운전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것. 커브길 끝에 속도방지턱 없었으면 나랑 정면충돌했을지도 모르잖아!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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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삶꾸러미 2012. 9. 20. 21:18

어느덧 또 2년이 흘러 얼마전 자동차 검사 안내장이 날아왔다. 느낌으론 작년에 한 것 같은데 벌써 2년이라니, 귀찮음보다 놀라움이 먼저였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나는 동네 카센터에 검사 대행을 맡겼다. 검사 안내장엔 대행 의뢰하지 말고 직접 검사소로 예약하고 찾아오라고 적혀 있었지만 흥, 안속는다 안속아.

 

처음 자동차가 생기고 종합검사 안내장이 나왔을 땐 당연히 차를 맡겨 대신 검사를 맡게할 수밖에 없었다. 차 유리에 선팅을 했었는데 당시엔 그게 불법 개조에 속하는 금지품목이었다(요샌 너무 심하게 깜깜한 것만 아니면 법적으로도 선팅이 허용되므로 벗겨낼 필요가 없다). 그러니 카센터에서 선팅을 다 벗겨내고 검사를 받은 뒤 다시 선팅을 해주어야 했던 것.

 

그렇게 2년에 한번씩 검사 안내장이 나오면 당연하게 카센터에 대행을 의뢰했던 나는 문득 대행비가 아까워졌다. 두번째 자동차로 갖게된 하얀색 세피아를 몰 때였다. 아는 분에게 중고로 넘겨받긴 했어도 워낙 마일리지도 높지 않은 새차에 가까웠고, 얼마 전 엔진오일이며 웬만한 점검도 했겠다 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15년쯤 전이라 당시 검사비가 얼마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나 요새나 검사 대행을 맡기려면 암튼 거기다 3만원쯤을 더 얹어주어야 한다. 물론 미리 차를 점검해 보완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수리비는 당연히 별도. 허나 그때까진 수년째 자동차 검사 대행을 맡기면서 문제 있어서 추가로 수리 비용 지불해 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만만하게 여겨질 수밖에.

 

어차피 선팅 필름은 떼어내고 갔다가 다시 맡겨야 했지만, 밥벌이 시원찮은 초보 번역가 시절이라 몇만원이라도 절약하려는 마음이었다. 선팅 필름은 스티커 잡아떼듯 죽 잡아당기면 쉽게 떨어진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별 문제 없었고, 죄다 아저씨들 투성이인 검사장으로 당당히 들어가 서류를 접수하고 검사를 받는 것까진 좋았는데... +_+

 

문제 없이 검사를 통과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내 차는 배출가스 불량 및 전조등 각도 불량(?!!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유였다;;)이라며 결격사유가 두 가지나 되어 재검에 걸렸다. 헐...  진땀이 삐질삐질 났다. 이런 걸 긁어 부스럼이라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결국 인근 공업사를 찾아가 불합격 항목을 알리고 쌩돈을 들여 수리를 받은 뒤, 다음날 다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자동차 검사따위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며,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가 기가 팍 죽어 돌아온 나에게 당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주변에 자동차 검사 받으러 직접 갔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들어봤다. 다 대행시킨다더라. 마일리지 10만 킬로미터 넘은 똥차도 대행시키면 그냥 통과라더라. 다들 돈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 카센터와 검사소 사이에 모종의 야로가 있다는 뜻이다, 이 헛똑똑아.

 

해서 그 이후 나는 자동차 정기검사에 관한 한 잘난 척을 관두고 매번 동네 카센터에 가져다준다. 대행료 몇만원 더 내는 거? 하나도 안 아깝다. -_-; 혼자서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망신당했던 그해로부터 딱 2년 뒤, 나는 카센터 아저씨한테 다시 차를 맡기고 연락을 기다렸다. 2년 전에도 배출가스로 걸린 승용차라면, 마일리지도 더 늘어나고 2년 더 노후된 차라서 또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재검 판결이 나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하지만 차는 불과 한두 시간 만에 종합검사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새차도 직접 검사 받으러 가면 어딘가 걸릴 수 있지만, 검사대행 맡기면 헌차도 전혀 문제없다는 불패의 진리를 믿을 수밖에. 흥!

 

정규 검사소보다 몇몇 지정 공업사에서 하는 출장 검사소가 융통성을 더 발휘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고, 검사를 의뢰하는 거래 카센터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느라 모종의 눈감아주기가 자행되는지 어쩐지도 나로선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운이 없었든 아니든, 직접 자동차 검사받으러 갔다가 퇴짜맞은 전적이 있는 나로서는 한번의 경험으로도 <뭔가 야로 있음>을 굳게 믿으며, 앞으로도 주욱 검사 대행 쪽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마일리지는 청년이되 연식은 12년이나 묵은 내 차는 요번 검사를 받기 전에 여기저기 손볼 데가 많아 돈을 꽤나 잡아먹고 검사에 임했으니 당연히 무사통과했다. 하지만 카센터에서 다 점검 받은 차를 가지고 내가 직접 검사소에 갔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는 장담 못하겠다. 오래 전 단 한번의 경험으로 불신이 너무 깊은가? 누가 좀 반박 사례를 알려준다면 감사하겠음. 설마... 일정한 불합격률을 유지하기 위한 무작위 복불복에서 나만 재수없게 걸렸던 건 아니....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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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투덜일기 2011. 6. 29. 17:49

지난 월요일 조카네 집에 가다가 오른쪽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문방구에 들러 굳이 스테이플러 침을 사오라는 공주의 명령에 투덜투덜 낯선 동네에 차를 세우려니 삼거리에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피해보겠다고 만만한 인도에 슬쩍 걸쳐놓으려던 것이 연석 모서리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기는 했으나 내려서 살피니 차체가 멀쩡했다. 해서 얼른 문방구에 들어가 침을 사가지고 나와 차에 올랐는데 차가 오른쪽으로 폭삭 가라앉아 있었다. -_-; 차체는 멀쩡했으나 바퀴가 찢어진 것.

난감하긴 했지만, 내 이름으로 자동차보험을 든지 4년째 단 한번도 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해마다 생돈만 날렸는데 드디어 나도 써먹을 때가 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득의양양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보험카드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보험사 자동응답 내용에 아예 <타이어교체> 항목이 있더군. 상담원과는 한 마디도 할 필요 없이 (심지어 내 정체를 밝히는 주민번호나 보험카드 번호 확인도 필요없이 OOO 고객님이 맞으면 1번을 누르라고 하더라!) 계속 해당 번호를 누르고 나니 편의를 위해 고객의 현재 위치 통보에 동의하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오호라, 휴대폰 GPS로 바로 내 위치가 보험사에 날아가는 모양이었다. 좀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당연히 동의하고 전화를 끊었다. 1분만에 출동 기사의 전화가 와 구체적인 위치를 묻더니 10분 만에 서비스차량이 나타났다. 오 놀라운 IT 서비스천국의 혜택이여!

한시간쯤 늦어질 거라 예상했었는데 결국 모든 상황은 30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따위는 있지도 않던 까마득한 옛날, 강변북로에서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갓길에서 혼자 낑낑대며 기구를 꺼내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렌치로 나사를 풀고 양손이 온통 새까매지며 낑낑 타이어를 손수 갈았던 기억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나 타이어도 혼자 갈아본 사람이야!) 문제의 타이어는 단순 구멍 정도가 아니라 찢어진 거라 바꿔야할 거라고 기사님이 말했다. 비가 와서 타이어 고무가 말랑해졌나? 그 정도로 찢어지다니 나 원참 의외였다.

째뜬 임시로 타이어를 갈았으니 카센터에 내려가야 하는데 연일 비는 계속 내리고(어제 날 갰을 때 행동했어야 하거늘) 은둔본능에 휩싸여 좀체 외출하기는 싫고 심지어 냉장고가 텅텅 비었는데도 장보러 가는 게 꺼려져 웅크리고만 있다. 온갖 종류의 서비스가 다양해져 세상이 편해질수록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더욱 더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듯하다. 자동차 수리도 집에 가만히 앉아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사람 만나 설명할 필요 없이 척 차를 가져다가 척 고쳐서 다시 집앞에 세워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쯧쯧쯧...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은 마트 가서 장도 보고 카센터 들러 타이어도 교체해야지 하며 오늘도 할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6월도 내일이면 쫑. 바쁜 마음과 달리 몸은 좀체 빠릿빠릿 움직여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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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는 동안 틀어놓은 뉴스에서 언뜻 듣기는 했어도 뭥미 하고 말았는데, 실제로 목도하니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투덜거려야겠다. 삼색 신호등 이야기다. 적황녹색에 초록색 화살표까지 신호가 네 개 달린 현재의 신호등을 '글로벌 스탠더드'인 삼색 신호등으로 바꾸고 화살표는 따로 그 옆에 신호등을 달아 자동차의 좌회전 방향을 정확하게 유도하겠다는 것이 경찰청 발표의 요지다. 신호등 왼쪽에 별도로 매달린 빨간색 화살표 등이 들어오면 좌회전을 해서는 안된다는 표시란다. 문제의 화살표 신호등은 이렇게 생겼다. 진짜로 이게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많은 나라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교차로마다 신호등이 가로로 매달려 있는지 세로로 매달려 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저런 삼색 화살표 신호등은 본 기억이 없건만, 도대체 언제부터 저런 신호등이 세계 표준이 되었는지? 설사 세계 표준이라는 게 있어서 최근 절반 이상의 국가들이 신호체계를 '통일'했다 치자. 우리는 왜 꼭 굳이 그걸 따라가야 하는 걸까? 그것도 국민이 내는 피같은 생돈을 처들여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신호체계를 재정비해야,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별 혼동 없이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리던데,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운전 못하는 이유가 순전히 신호체계 때문이라고 그들은 정말로 착각하는 걸까? +_+ 의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경찰청에선 홍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험운행에 들어간 바람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뿐이며, 원래 모든 변화는 얼마간의 불편과 적응기간을 필요로하므로 계속 강행하겠다는 듯하다. 어제 저놈의 삼색 신호등 때문에 사고날 뻔한 순간을 겪은 순간, 운전석에만 앉으면 욕쟁이 아줌마가 되는 내 입에서는 "미친 놈들 돈지랄 삽질하고 앉았네!"라고 거침없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우리 동네 앞길은 가뜩이나 오래된 구불구불 도로인 데다 머리 위로 간선도로까지 지나가는 바람에 초행길인 사람은 교차로에서 진행방향 차로도 헷갈리는 곳이다. 그리고 근처 재래시장 주변의 삼거리는 각도가 워낙 오묘하여 원래 있던 신호등에도 헷갈림 방지를 위해 초록색 화살표 두개가(좌회전과 직진용이라지만 좌회전 표시는 각도가 10시 방향으로, 직진용도 1시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친절한 화살표 신호등 대신에 광화문 일대에서만 시험운행 한다고 들은 그 문제의 삼색등으로 어느 틈에 바뀐 거다.

신호에 걸려 멈춰있다가 내가 직진 신호를 받고 맨앞에서 출발한 순간, 문제의 삼거리에서 저 삼색 화살표 신호등의 빨간 화살표를 본 운전자도 동시에 앞으로 들이닥쳤다. (人자 형태의 삼거리라 반대쪽 신호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상대방 운전자는 좌회전 화살표가 켜지면 그게 무슨 색깔이든 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음에 틀림없다. 빨간 화살표가 '멈춤'의 뜻이라는 건 교육이나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전제의 오류 아닐까? 물론 모든 신호는 정하기 나름임을 안다. 빨간색은 멈춤이고 초록색은 진행이고 노란색은 경고의 뜻이라는 게 '세계 공통'이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화살표는?? 빨간색이든 초록색이든 신호가 켜지는 순간 나도 본능적으로 액셀레이터를 밟을 것 같다.

얼마 전 좌회전 신호와 직진 신호의 순서가 바뀌는 바람에 한동안 운전자들이 혼란을 겪기는 했고, 좌회전 신호 다음에 직진 신호에 익숙해 있던 나 역시 그에 맞춰 습관적으로 엑셀에 발을 올리는 시기가 있었으나 곧 적응했다. 교차로마다 현수막을 내걸어 이제는 직진 후에 좌회전 신호가 들어온다는 것을 꽤 오래 홍보했기 때문이고, 짧게 좌회전 신호를 주다가 이내 직진 신호로 바뀌는 체계보다는 바뀐 현 체계가 차량흐름에도 도움이 된다는 다수의 합의도 이루어진 듯하다. 물론 신호 순서만 바꿔 입력하면 되는 것이었을 테니,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신호등을 교체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신호등을 세개짜리로 죄다 바꿔다는 건 정말이지 그럴 필요가 있는지,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정말로 안전한지 심사숙고를 더 해봐야할 일이다. 

듣자하니 미쿡 따라하기 좋아하는 윗대가리들이 세계의 중심 '뉴욕 맨해튼 체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같다. 그럼 그렇지... 10여년 전이었을 거다. 서울에선 거리정비가 한창이었고, 팻말만 멀뚱히 서 있던 버스정류장에도 벤치를 놓고 ㄴ자로 유리 가림막을 세워올리는 '기특한' 공사가 사방에서 진행되었다. 버스정류장의 유리벽엔 상업광고판을 넣어 시의 재정도 올릴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LA 친구네 놀러갔던 나는 새로 생겨난 서울시내의 버스정류장이 LA 시내의 버스정류장과 모양도 크기도 형태도 똑같다는 걸 발견하고 실소했다. 그 디자인이 좋아보여서 로열티를 주고 사온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식하게 모방한 건지, 이른바 '벤치마킹'을 한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단지 영 매력없는 도시 LA를 무작정 따라하고 있는 서울시의 행정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엔 뉴욕이냐? 미친 것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호등 체계는 이미 국제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빨간 신호등을 보고 직진하는 자동차나 보행자는 없지 않을까? 궁금해서 신호등의 역사를 위키피디아로 뒤지다 웃기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산당 혁명 이후 잠시 중국에서는 '빨간색 신호등'을 직진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었단다. 빨간색이 혁명과 진보의 색이라는 취지였을 거다. 중국인들이 워낙 빨간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나 속옷도 양말도 빨간색을 선호하는 중국인들 역시 빨간색은 정지 신호이며 초록색이 진행신호임을 인정하고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신호 색깔을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서 그저 색깔 화살표등 하나 더 달자는 것인데 왜 난리냐고 경찰청장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굳이 짜장면 아니면 김치찌개로 통일하라고 부하직원을 닥달하는 못되 처먹은 상사도 아니고, 대체 왜 새삼 신호등을 '선진화'하고 '국제표준'(찾아보니 현재의 네개짜리 신호등이 국제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근거도 없다!)에 맞춰서 '통일'해야 하는지 나는 그걸 도무지 더 모르겠다. 그냥 좀 내버려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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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투덜일기 2011. 1. 26. 11:24

설날 전에 두번 남은 주말 가운데 큰작은아버지의 일정에 맞춰 잡은 성묘일은 마침 대폭설이 내린 지난 일요일이었다. 집에서 출발할 즈음 눈길을 걱정스러워하는 전화를 받기는 했으나, 정말이지 그땐 눈발이 우스워보였고 공주보필에 힘쓰느라 나는 뉴스니 일기예보니 하는 것에도 무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강행한 파주 성묘길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여기저기 눈길에 서너대씩 차들이 뒤엉켜 있는 도로를 엉금엉금 달려, 작은 언덕도 못올라 빌빌 미끄러지는 차를 산소 입구에 세워두고 모두들 함박눈을 맞으며 버적버적 걸어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였다. 제일 먼저 출발한 나는 빌빌 기어갔어도 한시간도 안 되어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공원묘지에 당도했지만, 모두 다섯대가 다 모인 시간은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그간 쌓인 눈이 엄청나 발이 푹푹 빠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엔 접근도 못했고, 아버지 계신 납골당에 들어가 급히 이면지에 적은 조부모님 지방과 아이폰에 담긴 아버지 사진을 나란히 제단에 놓고 절을 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손을 호호 불며 (부츠는 신고 갔으되 왜 장갑을 빼먹었던고!) 한참이나 눈길을 걷고나서 돌아온 다음날까지 뒷다리와 허리가 뻐근했다. 생각해 보니 뜻밖의 눈사태로 나는 울음바람도 잊었더라. 지난 추석 성묘땐 비가 철철 오더니, 설날 성묘땐 대설이라... 다 자손들 잘 되라는 뜻이라는 큰작은아버지 말씀에 비싯 웃으며 동감했다. 눈길 운전은 솔직히 겁났지만, 1킬로 미터에 한번 꼴로 여기 저기 구석에 차가 처박혀 있던 자유로를 달렸어도 열여섯 명이나 되는 가족들 모두 별 탈없이 무사히 귀가하였으니 그냥 눈구경 한번 잘했다 싶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너무 춥고 장갑이 없어서 조카들이랑 눈싸움 한번 못한 건 두고두고 한이 되겠다.

그나마 돌아올 무렵엔 거의 눈이 그쳤다. 저런 길을 내가 다녀왔구나.... 사진으로 다시 봐도 놀랍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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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상정

삶꾸러미 2011. 1. 4. 22:16

늦깎이로 다시 공부하던 시절 '인지상정'이 별명이었던 황당한 인물이 하나 있었던 터라, 미안하게도 한동안 '인지상정'이라는 말은 내게 본래의 의미('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와는 상관없는 비아냥거림의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탈식민 담론이 오가던 이론수업에서 발표를 하며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인종차별이 인지상정이라고 했던가, 암튼 앞뒤가 맞지 않는 짜깁기 발제문을 설명하며 터무니 없이 사용한 '인지상정'이란 말이 던진 파문과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는 시선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벌써 그 시절도 까마득한 추억이 돼가고 있다보니, 나는 또 내 나름대로 그 의미를 변용해서 쓰고 있는 듯하다. 누구나 가지는 건 아니겠지만 나로선 이러저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식으로. 택시 기사분에게 오히려 커피값을 받았다는 파피의 포스팅을 읽고 생각난 건데, 여전히 우유부단함과는 별도로 '불의'라고 여기는 점에 대해서는 까칠한 쌈닭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반면에 나와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직업군의 사람들에게는 질끈 눈을 감아주는 너그러움이 생겨났음을 실감한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오늘 오후에도 겪은 일인데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의 경우, 범퍼에 살짝 흠집만 난 정도는 그냥 너그러이 보내준다. 아까 병원 갔다가 갈림길에서 막무가내로 후진하던 BMW에게 앞범퍼를 받혔다. 자기가 받은 줄도 모르고 그냥 가려던 어리바리 운전자를 빵 소리로 일단 잡아 세운 다음 "우쒸..."하면서 기세 좋게 차에서 내렸다. 마침 주차안내요원 코앞이라 확실한 목격자도 있었다. 콩 하고 받힌 거라 페인트가 살짝 묻어나긴 했던데, 상대 운전자가 따라 내리자마자 "죄송합니다"하는 순간, 그냥 보내주자 싶었다. 전에도 그렇게 보내준 적 많지만 평소 외제차 모는 인간들의 고압적인 태도에 열받을 때가 많았던 터라 얼굴부터 찌푸리고 내렸다가, 범퍼가 망가진 건 아님을 확인하기도 했으니 금세 마음이 풀렸다. 나의 선의(물론 나도 비슷한 선의를 받은 적 있다)가 내 주변의 모든 운전자들에게 퍼져나가 혜택을 비는 마음이랄까.

음식점도 그렇다. 작은아버지들을 비롯해 친구, 후배들 중에서도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주변인들이 점점 많아지다보니 위생에 심히 문제가 있다거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음식점에서 웬만해선 까탈을 부리며 불평을 터뜨리지 못한다. 내가 쓸데없이 음식점에서 진상을 떠는 유형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분들은 물론 친절이든 위생이든 맛이든 어느 면에서나 훌륭히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겠지만, 일부 음식점에서 몇몇 종업원의 무개념 행동에 벌컥 화가 났다가도 예전처럼 전투적인 태세로 항의하질 못하겠다. 내 아무리 소심하고 우유부단해도 불의는 참지 못했거늘! 요번 통큰 치킨 사태 때도, @@치킨에 입사한 사촌동생을 떠올리며 통큰 치킨 판매 중단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프랜차이즈 치킨이 다 비싼 건 아니다>라고 애써 주장했다. ^^; 

비행기를 타도 승무원을 수시로 불러대 괴롭히지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항공승무원이 얼마나 고된 직업인지 지인들에게 익히 듣기도 했지만, 사무장으로 승진했다던 선배가 상당한 거구로 좁은 통로를 왔다갔다 오가며 양손에 적, 백포도주를 나눠들고 따라주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어이쿠 찔렸다. 장거리 여행땐 초반에 술 팍 마시고 잠드는 게 최고라면서 한때 꽤나 성가시게 땅콩 달라, 치즈 있냐며 호출버튼을 눌러대거나 치솔 내놔라 베개 달라 슬리퍼 없냐 진상떨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_- 물론 이젠 승무원들 쉬는 시간엔 절대 귀찮게 하지 않는, 아주 착하고 얌전한 승객이 되었다. (설마 승무원 안 괴롭히려고 최근 몇년 간 장거리 여행을 못떠나는 건 아니겠지;; ㅠㅠ)

버스 운전하는 친구 생각해서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들한테 꾸벅 인사도 잘하고, 택시 운전하시는 지인 떠올리며 우수리는 미리 동전으로 챙겨 거슬러받기 좋게 돈을 내거나 3백원 미만은 거스름돈 안받는 원칙을 세웠으며, 은행다니는 지인 생각해서 창구업무는 웬만해선 회피하고 현금지급기만 상대하며, 스님된 친구 목사된 친구 생각해서 땡중이란 말도 사기꾼 목사라는 말도 삼가는 중이다(워낙 타락한 종교인이 많아서 그쪽 욕은 '아예 중단'할 수가 없다;;). 까먹어서 그렇지 내가 각별히 신경쓰게 된 직업군이 또 있을텐데.... 물론 한두번의 나쁜 경험으로 무작정 싫은 눈으로 짜증스레 바라보는 편견의 직업군도 어마어마하겠지만서도.

제발이 저려서 책을 읽으며 남의 번역에 대해서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범주에 드는 느낌인데 그건 나만의 인지상정이 아니라 동병상련에 더 가까운건가, 아님 혹시 제 밥그릇 감싸기? 암튼 세월이 흐르면서 몇가지 면에서는 유해진 것인지 통이 커진것인지 확실히 너그러워졌다. 다만 이런 태도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어물쩡 타협이나 비리 옹호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도 게을리해선 안될 것이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어려서 내가 혐오했던 '중장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건 절대 안될 일이다. 그러려면 계속 까탈스러움을 잃지 말아야하는 건가... -_-a 
흐이구 왜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마무리가 안 되누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이러다 내 별명도 조롱의 뜻을 지닌 인지상정이 되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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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보험

투덜일기 2010. 8. 31. 17:43

어느덧 후딱 1년이 지나가서 또 자동차 보험 갱신일이 다가오는 바람에 요 근래 전화가 시끄러웠다. 보험 만기일은 또 다들 어떻게 알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보험회사까지 전화질에 문자질인지 원! 두어 군데 보험사는 작년에 내가 온라인으로 견적을 받아보며 정보가 노출되었을 거라 짐작하지만, 다른 데는 또 뭐냐고!! IT강국이네 뭐네 하지만 그 이면엔 이런저런 경로로 개인신상에 관한 모든 정보가 여기저기 떠돌고 있으니 벌거벗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종종 핸드폰이 꺼져 있는 바람에 못받은 전화들은 상당수 보험 마케터 전화일 거라는 짐작에 고소하기까지 하다. 

제아무리 보험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거라지만, 최근 몇년 동안엔 접촉 사고 나서 혜택 받은 적도 없고 하다못해 어디 갔다가 시동이 꺼졌다거나 타이어를 갈아달라고 응급조치 부탁도 한 적 없이 지낸 터라 내 경우 자동차 보험은 특히 그냥 쌩돈을 날리는 셈이다. 그나마도 십수년째 아버지한테 묻어 지내느라 보험료 한푼 안내고 살다가 아버지 돌아가시는 바람에 내 이름으로 처음 보험을 들던 해엔 기막히게도 보험료가 백만원이 넘었었다. 바로 직전까지 아버지는 삼십만원쯤 내셨던 것 같은데, 나는 보험료가 그 세배라니... 눈이 튀어나올 정도였지만, 처음 자동차 보험계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러는 모양이니 어쩌랴. 어쨌거나 무사고로 보험료만 쌩으로 날리는 해가 거듭되면서 올해는 드디어 보험료가 첫해의 절반에 도달했다. 보험료 저렴한 '다이렉트' 보험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매달 내고 있는 건강보험료는 따져보면 1년치를 한꺼번에 내는 자동차보험보다 훨씬 많은데도, 아까움이랄까 억울함이 훨씬 덜하다. 내가 낸 의료보험료로 울 엄마처럼 평균 한달에 대여섯번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타다먹는 노인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강보험료는 그나마 공기업인 의료보험 '공단'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말이다. 재정이 바닥나네 마네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공공시스템이라고 믿는다. 울 왕비마마는 또 장남인 동생 보험카드에 올라 계신데(얼마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만 아쉽게도 이젠;;;) 동생이 보험료를 얼마나 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워낙 병원을 많이 다닌 탓에 최근 3개월에 한번씩 계속 통지서가 날아오고 있다. 3개월씩 정산하는 본인 부담금 총액이 정해진 한도를 넘어섰다면서 추가분을 환급해주겠다는 통지서다. 벌써 두번이나 이십 몇만원씩 환급금을 받았다. 물론 온몸이 종합병원 수준이신 왕비마마의 병원 진료비에 비하면야 얼마 안되는 돈이랄 수 있지만, 정해진 비율의 본인 부담금 한도를 넘으면 환자에게 진료비를 돌려주기까지 하는 공단의 시스템이 퍽이나 기특하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은 어디까지나 사기업의 영역이고, 환급금 따위는 전혀 없다. 그래서 어떤 자동차보험회사에서 혜택을 돌려준다는 식으로 광고를 하고 있긴 하지만, 견적을 받아보니 다른 다이렉트 보험사보다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비싸더라. -_-' 결국 혜택을 주려고 보험료를 비싸게 받는다는 뜻 아닌가. 자동차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필요와 선택에 의한 기호품이고 의료혜택은 모든 국민이 누려야하는 공적인 서비스 영역이긴 하지만, 내가 낸 보험료로 누군가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는 집단책임의 시스템은 똑같은데 자동차보험 회사는 수십년째 엄청난 이익을 늘려 승승장구하는 반면에 건강보험공단은 만날 적자에 허덕이는 걸 보면 결론은 뚜렷하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 자동차보험회사의 시스템에 더 많은 '야로'가 있다는 것.

어쨌거나 아무리 몇년 새 아무런 사고가 없었다고 해도 무보험 차량으로 돌아다닐 배짱은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또 다시 자동차보험을 갱신했다. 작년엔 상대 차 배상액 한도를 1억으로 했는데 요새는 고가의 차가 많으니 6천원 더 내고 3억으로 높이라는 상담원의 꼬드김에 잠결에 넘어가 그러마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또 막 억울하다. 앞으로 1년동안 3억짜리 자동차를 내가 받아버릴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_-;; 괜스레 더욱 아까비 아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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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에 갈 일이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딱 1시간 10분(과거 경험으로 나름 예상한 시간이었다) 먼저 집을 나서며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겠군 싶었다. 퇴근시간을 교묘히 피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오산이었다.
늘 가던 대로 내부순환도로 - 강북강변도로 - 반포대교 - 반포로로 이어지는 길을 택할 작정이었는데
강변도로가 주차장이었다. 반포대교까지 전광판에 뜬 예상시간(지체 돼서 28분)대로라면 10분쯤 되레 지각을 하게 생긴 반면 한강 건너 올림픽 대로를 보니 거긴 그나마 좀 차가 움직이는 추세였다.

그야말로 삽질의 시작.
강을 건너 여의도에서 올림픽대로로 접어들려고 했지만, 노들길 진입로로 얌체 끼어들기를 하려던 걸 실패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요리조리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머리를 최대한 굴려 이리저리 차를 돌려봤지만 결국엔 미친듯이 막히는 남부순환도로에서 약속시간을 맞고 말았다. +_+ (대체 얼마나 돌아간 것이냐!)
하필 약속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했던 친구를 50분이나 기다리게 한 끝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자책을 했는지 모른다. 그냥 가던 대로 갔으면 10분 지각할 길을 휘발유 없애가며 돌고돌아 (안막히는 길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착각했는데, 5시반 전후로 서울시내에 안 막히는 길이 어디 있다고!) 조바심에 자꾸 차선바꾸느라 욕이란 욕은 죄다 먹어가며 뭐하는 짓이었는지.

늦은 밤이라 30분만에 주파한 귀가길로도 도저히 만회가 되지 않는 오늘 삽질의 교훈은 이렇다.
잠깐잠깐 더워도 러시아워땐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더웠다고! ㅠ.ㅠ)
이왕 차를 몰고 나섰으면 그냥 아는 길로나 가라. 내비게이션도 없이 방향감각만 믿고 모르는 길 개척하지 말고. (아니 그냥 뒷북으로라도 내비게이션을 살까? -_-;;)
약속시간에 딱 맞춰서 가려고 꼼지락거리는 버릇을 없애자. 좀 일찍가서 기다리면 어떠리. 
진짜로 명심해라. 오늘 보니 니 방향감각은 별로 훌륭하지 않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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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거리

하나마나 푸념 2010. 7. 12. 02:42

얼마전 인천대교 부근에서 난 버스 교통사고 뉴스를 보며 너무 참혹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가끔 고속도로에 나가는 일이 있어도 나 역시 안전거리따위는 무시하고 다들 그러듯 앞차에 바짝 따라붙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간혹 미적미적 느리게 가면서 차간 간격을 쓸데없이 넓게 둔 차를 만나면 신경질을 확 부리면서 차선을 바꿔 앞지르기 일쑤고...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초보때도 시내운전보다 고속도로 운전이 훨씬 쉽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초보시절 고속도로에 감히 진출하기까지 시일이 꽤 걸렸다. 처음 한달은 올림픽대로에서 고집스레 시속 60km로 달리며 사방에서 빵빵거리는 차들의 욕을 먹기도 했으니, 시속 100km까지 밟을 자신은 정말로 없었던 거다. 당시엔 수동 자동차를 운전했는데, 기어를 4단까지만 넣겠다고 다짐하고 다녔었다. 5단은 고속도로 용이야 이러면서;; 시내에서야 기껏 사고가 나도 경미한 접촉사고겠지만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어느틈에 나는 꽤 난폭한 운전자가 되어 있었고 초보운전 딱지를 뗀지 1년쯤 뒤엔 경인고속도로에서 나를 무시하고 욕설을 해대는 대형 트럭과 추월해서 브레이크 밟기 싸움을 할 정도로 무모해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철이 좀 들었는지 운전 방식은 퍽 얌전해지고 있어도 안전거리만은 잘 못지켰던 게 사실이다. 원칙대로 100미터쯤 안전거리를 두고 달리면 수시로 끼어드는 옆차선의 차들을 못견디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차간 거리를 너무 띄우면 오히려 함부로 끼어드는 차들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핑계를 대면서...

그래도 뭔가 큰 사고가 났을 때만 반짝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는 성격답게 간만에 오늘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정말로 안전거리를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시속 100km일 땐 안전거리 100미터가 원칙이라지 않은가. 100미터가 얼만큼인지는 몰라도 시내에서 달릴 때처럼 바짝 따라가는 짓거리는 최대한 삼가며 안전운전에 힘써보았는데, 역시나 사람들은 변함이 없었다. 다른 차선 자동차들에 비해 내가 좀 넓은 간격을 유지하는 걸 보아넘기질 못하고 다들 추월해가질 않나, 마구 끼어들질 않나, 카레이스하듯 미친듯이 달리는 자동차들이 요리조리 옮겨다니는 통로로 이용되기 일쑤였다.

이런 사고가 날때마나 지겹게 나오는 말이 '안전 불감증'이라는 짜증스러운 표현인데, 이 나라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아예 안전과 담 쌓고 사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트렁크에 삼각대랑 사고났을 때 표시할 하얀 페인트는 있어도 필수품이라는 휴대용 소화기는 없으니 하는 말이다. 아마 나 또한 기억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또 안전거리에 신경쓰고 다닐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버릇이 도져 앞차와의 거리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운전할 게 뻔하다. 어쩌면 안전거리는 운전대와 나의 거리를 최대한 띄울 때나 확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애먼 사람들한테까지 피해를 입히는 사고뭉치는 되지 말아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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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삶꾸러미 2010. 2. 4. 21:31

나에게 동짓날이 팥죽먹는 날이라면 입춘은 부적의 날이다. 예전 마당 있는 집에 살 땐 골목길을 지나치며 더러 대문에 <입춘대길>이라고 쓰인 입춘첩을 붙여놓은 집도 더러 볼 수 있었지만 요샌 통 구경할 수가 없으니, 그저 조용히 엄마가 절에서 얻어다준 새로운 부적을 지갑에 넣고 오래된 부적을 내놓고는, 집안화평을 비는 기다란 부적을 현관 문설주에 붙이는 것으로 간단한 입춘날 행사가 끝난다.

사실 모든 종교가 이승과 내생의 행복을 바라는 기복종교이긴 하지만 불교는 전래되면서 토속신앙과 특히 많이 접목된 탓에 원래 불교의식과는 상관없는 오묘한 미신이 참 많이도 스며들었다. 그래서 더욱 돈을 노리는 사이비 신앙행위가 판을 치기도 하며, 일부 탐욕스런 절에서는 다량으로 인쇄된 기복 부적을 사다가 신도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도 하는 상황이니 혀를 찰 노릇이다. 면죄부를 팔아 치부했던 중세 기독교인의 환생도 아니고 뭐하자는 짓인지 원.

어쨌든 지니고 다니면 화를 면하고 복을 부른다는 부적에 대한 불교신자들의 믿음이 워낙 확고한 탓에 입춘날엔 대부분의 절에서 공짜로 부적을 나눠주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법회에 참석하는 신도들의 수가 많단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외할머니와 엄마 영향으로 불교와 친숙했던 내가 지켜봐온 바에 따르면, 입춘 부적에도 변화가 있었다. 처음엔 삼재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그냥 부적과 삼재 부적만 식구들 수대로 나눠주더니, 운전하는 가족들이 있는 신도들의 특별 부탁 때문인지 어느해 부턴가 나는 입춘마다 일반 부적 말고도 자동차에 두고 다니라는 <운전용> 부적을 따로 받았다. 그나마 자동차 부적은 해마다 안바꿔도 되는지 몇해 전부터는 그냥 같은 부적을 햇빛 가리개 안쪽 주머니에 찔러넣어둔 채 잊고 지내는 중이다.

난생 처음 차가 생겨 운전을 하게 되던 날은 더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사촌형부가 몰던 차를 물려받은 그날, 엄마는 미리 절에서 특별히 주지스님이 챙겨주었다는 자동차 사고를 막아준다는 부적을 받아와서는 후드를 열고 떡하니 엔진 위에 견고하게 붙여주었고, 막걸리를 사다가 차 바퀴 네 군데에 나눠 부으며 무사고를 빌었다. ^^; 우리 동네 카센터 아저씨는 기독교인이었는데, 처음 엔진오일을 갈러 갔던 날 그 부적을 보더니 빙그레 웃으면서도 부적이 떨어지지 않게 더 꽉 붙여주었다. 불교신자들 뿐만 아니라 천주교신자 가운데서도 차안에 걸고 다니는 염주나 묵주 외에 그렇게 자동차 엔진에까지 뭔가를 붙이고 다니며 무사고를 비는 어머니들이 꽤 있다나.  

사실 내 자동차에는 엄마가 넣어주신 부적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무사고를 기원하며 사다주신 예쁜 조각 염주도 있고, 역시나 외할머니가 주동하신 부처님 금불사(절에 모신 부처님한테 새로이 순금을 다시 입히는 행사를 <금불사>라고 한다) 때 쓰인 오색실과 팥알이 들어 있는 작은 향낭도 걸려 있다. 물론 나는 그런 물건들의 <영험한> 효험을 전혀 믿지 않는다. 바퀴에 막걸리 뿌리고 엔진에 부적까지 붙였던 나의 첫차로 두어달 만에 나는 그렌저 문짝 두개를 보란듯이 우그러뜨려 거금을 물어줘야 했고, 운전연습을 시작한 큰동생은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찌그러뜨린 뒤 몰래 도망치는 사고를 저질렀으며, 수동이라 엔진 꺼뜨리지 않고 언덕길 운전연습 한답시고 동네 약수터의 벤치를 들이받질 않나 골목길에 주차한 자동차들의 사이드미러에 죄다 흠짐을 내놓지를 않나, 큰 사고만 없었다뿐 자질구레한 사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부적에 대한 울 엄니와 외할머니의 믿음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거봐라! 큰 사고 아니라서 사람도 안다치고 그 정도니 얼마나 다행이니!" 

자동차에 주렁주렁 매달린 염주와 향낭, 햇빛 가리개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부적을 내가 굳이 치우지 않는 이유는 그 물건의 효험을 믿어서가 아니라 외할머니와 울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더욱이 외할머니는 돌아가신지 5년이 다 돼가는데도, 룸미러에 매달아둔 염주만 보면 성지순례 다녀오신 할머니가 한복 저고리 주머니에서 <옴>자가 양각으로 새겨진 그 염주를 꺼내 주시며 꼭 차에 매달고 다니라고 했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에겐 기복용 부적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회상용 유품이 된 셈이다. 팔순 노모가 육순 자식에게 길조심을 당부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처럼, 공식적으로 무사고 10년이 넘은 베테랑인데도 울 엄마가 여전히 내 운전을 염려하는 걸 알기에 날 못 믿겠으면 부적이라도 믿으시라고 군말없이 오늘도 엄마가 가져다준 부적을 지갑에 소중히 간직했다. 어쩌면 이제껏 큰 사고 없이 잘 지내온 건 나를 염려하는 어르신들의 걱정을 덜어드리려는 조심 노력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부적에 효험이 있다는 말인가 아닌가. ㅋㅋㅋ 하기야 전우치 같은 도사님 부적을 백장이나 붙인들 본인이 조심하지 않으면 말짱 꽝일 터, 결국 부적의 힘은 자중의 힘인가 보다.

아무려나 입춘대길. 얼마 안남은 진짜 새해엔 정말 크게 좋은 일만 빵빵 터져주길 무신론자인 내가 아무데나 빌어도 이루어지려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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