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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4.29 호의는 전염된다 12
  4. 2009.04.12 초보운전 14
  5. 2009.01.09 악몽 9
  6. 2008.05.11 느루 밤마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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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1.23 사기 주의보 6
  9. 2006.10.15 운전 습관 5

맥가이버 놀이

놀잇감 2010. 1. 12. 02:06

어렸을 땐 조립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공간감각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입체그림이든 평면그림이든 이리저리 작은 조각의 방향을 바꾸어 조립해 맞추는 과정이 내겐 상당히 골치아팠다. 그러고 보니 끈기도 부족했던가 보다.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내긴 했지만 들이는 수고에 비해 조악한 조립장난감의 완성품은 별로 성취감도 안겨주지 못했다. 같은 재능인지는 몰라도 루빅스 큐브는 한참 낑낑거려도 한 면 맞추는 게 고작이었다. 하도 짜증나서 완전 분해했다가 색깔 맞춰 다시 조립한 적은 있었어도...

헌데 언제부턴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생필품의 조립은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다. 널빤지 조각에 간단히 나사 몇개를 조여야 만들어지는 수납함을 시작으로 탁자도 만들었고, 나중엔 책꽂이도 겁없이 사들일 수 있었다. 복잡한 컴퓨터 책상은 도면 놓고 오래 끙끙대는 내 꼬락서니를 안쓰러이 여긴 아버지가 나서주셨지만, 혼자 했어도 결국 제대로 완성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그 컴퓨터 책상을 멀쩡히 내다버려야했을 때 꽤나 고민을 했다. 다시 분해를 해서 중고로 팔순 없을까, 아니 팔지 않더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결국 귀찮아서 그냥 내다버리는 걸로 결론을 내리긴 했다. 지금 그 상황이 온대도 이런 게으름으론 또 그냥 버리는 쪽을 택하기 십상이지만,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이느라 거금까지 들이느니 누구든 쓸 사람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약간 후회스럽다. 

어쨌거나 진짜 맥가이버스러우셨던 아버지엔 못미치지만, 이제 집안 여기저기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내가 나서며 맥가이버 놀이를 하는 것 같아 슬며시 뿌듯하다. 그래봤자 형광등, 백열등 갈기, 헐렁해진 서랍장 손잡이 나사 조이기, 스테플러로 지저분한 전선 벽에 고정시키기, 옷걸이로 화분 지지대 만들기, 벽에 못박기 정도이고, 그보다 힘든 일은 당연히 막내동생이 다니러 올 때를 기다리는 편이다. 요번에 왕비마마의 실내 운동을 위한 헬스싸이클을 장만하면서도, 기사가 방문하여 조립 및 설치 해주기를 원하면 출장비 2만5천원이 추가된다는 말에 내가 시도해보고 못하겠으면 동생녀석을 부르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문제의 헬스싸이클이 그놈의 눈폭탄 때문에 꼬박 일주일만에 배달되어 왔다. 비전문가의 솜씨로도 30분에서 1시간이면 된다는 자전거조립은 얼핏 보기에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았고, 나는 즉각 2만5천원 벌기에 돌입했다. 부품을 확인하고 일일이 비닐과 골판지를 벗겨, 작은 렌치 두 개로 설명서 순서대로 조립을 하고 있으려니, 정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난감 같은 렌치로 나사를 끝까지 조이는 게 만만치 않아 40여분만에 결국 조립을 끝내고 완성품에 앉아 시연까지 보이자, 내내 못미더워 잔소리를 해대던 왕비마마도 그제야 "우리 딸 맥가이버였네."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게다가 출장비는 흔쾌히 팁까지 3만원 주시겠단다. ㅋㅋ

왕비마마의 수시 운동 독려를 위해 자전거를 TV앞으로 놓느라 다시 소파를 베란다쪽으로 돌려놓고 화분을 죄다 옮기는 힘쓰기 작업까지 홀로 마친 뒤, 관짝만한 빈 자전거 포장박스를 한 구석에 치워놓고 뿌듯해 하려니 문득 며칠 전 차력을 시도하다 이가 빠진 지붕뚫고 하이킥의 오현경이 떠올랐다.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뭐든 잘할 수 있다는 걸 신애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사무실 이사 때 여직원들은 <걸레질이나>하라는 잔소리에 걸레질 싫다면서 굳이 번쩍번쩍 책상을 옮기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못하는 게 너무도 많은 인간이지만, 그걸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견엔 늘 동조할 수 없어 나름 악다구니를 쓰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젠 운전하다 타이어가 펑크 나면 나도 당연히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출장서비스를 부르겠지만, 그런 보험 서비스가 없던 10여년 전 나는 강북강변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혼자서 당당히 타이어를 바꿔 끼우고 가던 길을 간 사람이다! ^^v (물론 그 당시엔 몹시 슬펐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전 올림픽대로에서 펑크가 났을 때는 여러 대의 차가 멈춰서서 도움의 손길을 자청했었는데, 2년만에 아무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가 아무래도 심히 쇠퇴한 나의 외모 탓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차 펑크 때는 원피스 차림의 꽃단장 모드였고, 2차 펑크 때는 청바지에 티셔츠, 야구모자 차림이긴 했다.) 

여전히 나는 운동신경이 둔하고 공간감각력과 셈 능력이 떨어지며 몸놀리는 게 귀찮고 무서운 건 죽어도 싫다. 하지만 길눈은 밝고 지도도 볼 줄 알며 완전 기계치는 아니고 못 정도는 거뜬히 박으며 가끔 드라이버와 망치, 렌치 따위를 들고 맥가이버 놀이를 즐긴다. 필요가 만들어낸 적응력일수도 있겠으나, 나도 놀랐던 숨어있는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언젠가 조립주택 같은 것도 손수 만들어보고 싶다면 너무 원대한 꿈이려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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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10년

투덜일기 2009. 12. 15. 21:38

중고차 두 대를 거처 지금 타고 다니는 차를 <새것>으로 갖게 된 해는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처음 새차를 인도 받았을 때 공식 차주이자 물주였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한 5년 타다가 다음 차는 니 돈으로 더 좋은 거 사라." "5년은 무슨! 10년 넘게 탈 거야!"라고 장담하던 나의 말은 어느샌가 "폐차할 때까지 탈 거야!"로 바뀌었고, 연식이 오래 되어 중고값이 팍팍 떨어지고는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차는 아직도 내게 새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간 <미니쿠퍼>에 눈이 멀어 인세로 대박나면 무슨 색으로 살까 실없는 로망을 품기도 했지만, 막상 미니쿠퍼를 살 돈이 생겼더라도 타던 차를 처분하는 게 아까워서 선뜻 저지르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안다.
9년간 꼬박 나홀로 운전해 완전히 나에게 길들여져 있고,  범퍼나 펜더가 살짝 까져서 도색을 다시한 것 말고는 큰 사고도 없었으며 사자마자 공부한답시고 처음 3년 가까이 거의 세워두다시피하는 바람에 9년 넘게 탔건만 마일리지도 놀랍도록 적다. 사실 차는 적당히 몰아줘야지 만날 세워두면 더 쉽게 <썩어> 버린다는 것이 정설인데, 차에 대해서 완전 무지한 덕분에 오히려 수시로 동네 입구에 있는 카센터 아저씨한테 조언을 구했으므로 상태가 별로 나빠지진 않았다고 믿는다.
작년 말 미션오일과 부동액과 뒤쪽 머플러를 갈면서 동네 카센터 아저씨는 이제 슬슬 이것저것 손 볼 데가 많이 생겨날 나이라고 말했다. 연식만 오래 됐지 마일리지가 젊은 덕분이었다. 헌데도 올해 녀석은 멀쩡히 돌아다녔고, 1년 넘게 수리해야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허구한날 오며가며 카센터 아저씨한테 눈인사만 받는 게 민망할 정도로.

헌데 드디어 엔진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되었으므로 1년만에 나는 다시 자동차 점검을 부탁했다. 과거 중고차 몰던 시절엔 아는 사람한테 넘겨받은 차들이라 그리 오래된 게 아닌 데도 강남대로 한 복판이나 한강대교 위에서 차가 퍼져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 10년 사이엔 그런 경험이 없다. 처음부터 내가 길들였기 때문일까? 어쩐지 망가지기 전에 미리 바꾸는 게 아까운 것 같아도, 나 같은 자동차 문외한은 그저 미리미리 전문가에게 점검해서 손봐달라고 하는 게 최고다. 카센터만 정직한 곳으로 만난다면. ^^;
사실 동네 이웃이기도 했던 기존의 카센터 사장님이 노안을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전격적으로 카센터를 넘겼을 때 나는 허거걱 난감했다. 다이어리도 안 쓰는 게으른 내가 차계부 따위를 쓸 리는 없고, 그 아저씨가 내 대신 컴퓨터에 모든 기록을 저장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내 차를 보며 바퀴에 바람 좀 빠진 것 같으면 불러 세워 넣어주고 엔진 오일 갈 때 됐다고 알려주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새로운 카센터 아저씨도 그렇게 나와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물론 예전 사장님이 아직도 동네에 살고 계셔 수시로 드나드는 걸 보면, 모든 고객 기록까지 다 넘겨받은 듯했지만, 웬만해선 그냥 더 타라고 권하던 그 아저씨와 달리 이번 주인은 공격적으로 장사를 하려 들면 어쩌나 염려스러웠던 것.

아니나 다를까 확실히 이번 카센터 아저씨는 이전 분과 스타일이 달랐다. 잔금이 가기 시작한 타이어 두개도 가는 게 좋겠고, 3년 지난 배터리도 가는 게 좋겠고, 쇼바 상태가 어쩌고, 고무로 된 엔진 어쩌고 링크도 금이 갔다며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하고 견적서를 내고.... +_+
물론 당장 바꿀지 좀 더 타다가 바꿀지는 어디까지나 내 결정이었고,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한꺼번에 거금을 들여 10년 다된 차를 손보려니 왜 이리 아까운 기분이 드는지 원. 차를 사자마자 지금껏 아직도 바꿀까 말까 고민 중인 카오디오는 매번 <그냥 말자> 쪽으로 결론이 나는데, 확실히 운전과 직접 관련된 부품의 노후에 대해서는 약간의 고민 끝에 늘 손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처음엔 퍼뜩 '이 아저씨 카센터 인수하고 나서 봉 잡았다 생각하고 확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앞에서 부품가게와 통화를 하며 몇십원짜리 단위까지 부품가격과 자기 공임을 하나하나 다 공개하는데야 (물론 이미 중간에 <야로>가 개입됐을 수도 있겠지만!) 더 의심을 키워봤자 뭐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맘만 먹으면 나도 부품이랑 공임 가격 쯤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어쨌거나 이번에 거금을 들여 일곱군데도 넘게 손을 보았으니 10주년인 내년에도 별탈없이 일년동안 잘 굴러갈 것이라 여기며 그리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는 오래 타면 탈수록 팔 때 손해라는 말도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중고차값 따져가며 자꾸 팔아 새차를 사서 몰 게 아니라면, 남들이 뭐라든 10년, 20년 계속 타는 게 뭐 어떤가. 아주 오래된 차는 사고 나면 수리비 대신 폐차비만 준다고 억울해하는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이 추세라면 난 정말로 이 차를 폐차할 때까지 앞으로도 최소한 10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자동차 10년 타기 아주 쉽구만 다들 왜 그리도 새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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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잘난 척이 심하거나 자의식이 강한 사람의 경우 남들이 베푸는 쓸데없는 호의는 주제넘은 간섭이나 참견으로 여겨져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의는 확실히 전염효과가 있다.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일단 떠오르는 건 경미한 접촉사고.
운전을 하다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고 접촉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양보나 운전예의 문제로 서로 빵빵거리거나 삿대질을 하거나 심지어 차를 세우고 길바닥에서 큰소리로 말다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사고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본의 아니게 사고를 겪는 경우에도 대처법은 참 여러가지다.
차가 크게 파손됐을 경우엔 별 도리가 없다. 현장증빙 사진을 찍어두거나 도로바닥에 표시를 해두고 직접이든 보험사를 통하든 잘잘못을 가려 물어주거나 수리해 받으면 된다. 물론 처음 사고를 당하면 경황이 없고 손발이 벌벌 떨려 필요한 조처를 하지 못하는 수가 많은데, 무조건 버럭버럭 소리부터 지르며 저는 잘못없다고 욕부터 해대는 성급한 진상을 만났더라도 최대한 침착하게 증거확보를 한 후 보험사에 전화하는 게 현명하다. 그냥 서 있는 차를 엉뚱하게 들이받은 경우를 제외하고 요샌 어차피 웬만하면 그냥 쌍방과실이니까.
그런데 정말로 살짝, 범퍼나 사이드미러에 살짝 흠집만 나는 정도의 사고일 경우엔 어떨까?

유난히 차를 아끼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성격상 범퍼에 흠집하나 나도 절대 못 견디고 깨끗이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본성이 고약하고 사악하여 사소한 접촉사고에도 옳다구나 하며 원래부터 부실했던 차를 이곳저곳 고치고 상대에게 수리비를 물리는 물귀신형 악당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간 그리 사고를 많이 겪은 건 아니어도 내가 십수년 간 지켜본 바에 의하면 악당들 보다는 선량한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런 이들이 베푼 호의는 나까지 금세 전염시켰다. 공주가 꽤나 어렸을 때였는데, 왕비와 어린 공주를 뒤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던 날 조카가 고모 옆 앞좌석에 앉겠다고 울고불며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운전하며 달래느라 정신이 쑥 빠진 나는 빨간 신호등을 미처 못보고 쿵, 앞에 서 있던 어떤 자동차를 받았었다. 다행히 도로가 막혀 천천히 가고 있기는 했지만 검정색의 꽤 좋은 차를 받았음을 깨달은 순간 나는 앞이 캄캄해졌다. 아무리 경미한 접촉사고라도 행여 못된 인간을 만나면 범퍼를 몽땅 갈아주어야 함은 물론 최악의 경우 병원 검사비(건강보험 적용이 안돼서 무지 비싸다)와 물리치료비까지 다 물어주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엔 크지 않은 접촉사고를 냈는데도 악덕 운전자나 못된 택시기사를 만나는 바람에 감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뒷처리에 심히 골치를 썪은 지인들이 꽤 됐던 터라 더럭 겁이 났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얼른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50대쯤의 운전자 아저씨는 자기 차를 살피더니 내 차의 페인트가 옮겨묻은 뒷범퍼 부분을 손으로 쓱 문질러보고는 나에게 "아이가 타고 있던데 다친 데는 없죠?"라고 물었다. 옆에 서서 들릴듯 말듯 "죄송합니다..."라고 중얼거리고 있던 나는 뜻밖의 질문에 "네."라고만 대답했는데, 아저씨는 그럼 됐다고, 운전 조심해서 가라고 하고는 얼른 차에 올라타고 사라졌다.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얼른 내 차로 돌아와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래놓고 그 아저씨가 나중에 나를 뺑소니로 신고했더라는 반전 같은 건 없다. ^^ 어찌보면 당연한 듯한 상황에서 크게 호의를 입었다는 느낌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누군가 운전 미숙이나 잠깐의 한눈으로 슬쩍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했을 때, 나 역시 그 아저씨처럼 범퍼에 난 흠집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엔 괜찮다고 흔쾌히 호의를 베풀 수 있었다. 선례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범퍼를 통째로 갈 거나 도색을 다시할 만큼 돈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 절반만 받아야 할 것인가, 보험사에 연락을 해야할 것인가, 흠집에 속 쓰리지만 그냥 보내야 할 것인가 우유부단하게 심히 고민을 했을 게 틀림없다. 물론 그 즈음엔 멀쩡히 세워놓는데 어느 틈에 누군가 긁고 지나간(양심없이 바퀴 위쪽을 찌그러뜨려놓고 도망친 인간들도 있어 그건 내가 생돈 들여 고쳐야 했다! ㅠ.ㅠ) 생채기들이 범퍼에 몇 군데 생겨났기에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경미한 접촉사고로 옴팡 뒤집어쓴 전적이 있는 사람이 똑같은 사고를 당했을 경우엔 복수심에 불타, 다른 사람한테 받은 억울함을 대신 푸는 마음으로 굳이 갈 필요도 없는 범퍼를 새것으로 갈아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단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호의는 호의를 낳는 순환고리가 되풀이된다는 얘기다.

동생들도 올케들도 다 운전을 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해보면 그들도 나와 비슷하다. 큰동생은 꽤 비싼 차를 몰기 때문에 범퍼가 살짝 닿는 사고에도 상대방이 식겁해서 당황한다는데, 범퍼나 거울에 난 사소한 흠집 정도는 괜찮으니 그냥 가라고 하면 오히려 사고 낸 쪽에서 엄청 놀라고 고마워한다나. 센서까지 들어있는 외제차 범퍼 잘못 흠집내면 국산 중고차를 몽땅 팔아도 안될만큼 어마어마한 돈을(과장인지 아닌지 몰라도 고급형 외체차는 범퍼 하나에 천만원이라고 하더군!) 물어줘야 한다는 비정한 도시의 속설을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생들 역시 비슷한 호의를 경험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아마도 운전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해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는 대신 사소한 호의가 사방에 전염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어제도 나는 집앞에서 자동차 궁둥이를 찰싹 때리는 듯한 미묘한 접촉사고를 겪었지만, 그냥 보내주고 돌아왔다. 불법 유턴까지 했던 마당이라 그 자리에서 오래 승강이를 벌여 경찰이라도 개입했으면 범칙금까지 물어야 했을 그랜저 아저씨는 내가 까탈스럽게 굴지 않더라도 까진 범퍼랑 차체  도색하려면 생돈들여야 할 테니까. 그 차는 도색이 벗겨졌는데, 먼지가 많이 쌓였기 때문인지 내 차 범퍼는 검은 페인트만 옮겨 묻었을 뿐 멀쩡한 걸 보며 내심 궁금해졌다. 내가 운전하면서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니깐 차도 알아보는 건가, 하고. ^^
더불어 그 아저씨도 혹시 나중에 비슷한 사고를 당했을 때 범퍼에 살짝 흠집 난 정도는 흔쾌히 감수하고 보내줄 수 있는 호의를 베풀 수 있으면 좋겠다. 무서운 돼지독감 바이러스보다야 전염성이 약하겠지만,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으며 선량하게 베푸는 호의는 전염된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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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놀잇감 2009. 4. 12. 17:20

내가 처음 운전을 시작하며 몰던 차는 <무려> 수동이었다. 그땐 면허증을 딸 때 수동, 자동 구분없이 무조건 수동으로만 따야했고, 지금보다 <스틱>이라고 부르는 수동 변속 자동차가 훨씬 더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자동은 기름값이 많이 든다고 해서 소형차들은 웬만해선 다 수동으로 뽑았으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그때 기름값이 워낙 싸기도 했겠지만, 나의 첫차인 프라이드FS로 나중에 안산까지 출퇴근을 하느라 매일 꼬박 왕복 100km를 달릴 때에도 한달 기름값이 단돈 7만원이었던 걸 기억한다. 지금은 꽉 채워서 기름 한번 넣으려 해도 7만원이 더 드는데. ㅠ.ㅠ
내가 처음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던 때의 직장은 삼성동 코엑스였기 때문에 꽤 먼 거리였고, 시내를 가로지르든, 강변도로나 올림픽대로를 타든 초보운전자인 나에겐 난코스였다. 주말에 사촌동생과 몇번 시험운행을 해봤음에도, 처음 혼자 차를 몰고 출근하는 날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한 나는 하필 강변도로에서 사고를 낸 버스 뒤에서 차마 옆으로 끼어들지 못해 낑낑대며 계속 서 있느라 30분쯤 허비하는 등 온갖 삽질을 거쳐 9시가 다 돼서야 코엑스에 당도했고, 그나마도 양옆에 아무 차도 없는 곳을 찾아 주차를 하느라 드넓은 옥상 주차장(초보시절 코엑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면 사무실 못 찾아갈 것 같았다)을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전날 일요일에 사촌동생과 출근 예행연습을 할 땐 당연히 허허벌판이던 주차장이 출근시간 임박했을 땐 꽉 차있는 게 당연했으니,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머나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헐레벌떡 달려가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총무과장이 얼른 집에 전화부터 하라고 일렀다. 물론 그땐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첫 출근을 무사히 했는지 엄마한테 보고를 하기로 약속했었는데 7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선 내가 9시 다되도록 연락이 없자 식겁한 울 엄마가 여러번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

얘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려고 하는데, 암튼 나는 손수 예쁘게 쓴 <초보운전> 표시를 최소한 6개월은 달고 다닐 작정이었다. 막힌 길에서 조금씩 전진하느라 클러치를 밟은 왼발이 끊어질 듯 아파와도 그럭저럭 잘 나가다 뒤에서 괜히 빵빵거리면 당황해 덜컥 시동을 꺼먹거나 언덕만 나타나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초보시절, 그나마도 초보 딱지를 달고 버벅거리면 베테랑 운전자들이 알아서 피해주거나 더러 착하게 양보를 해주는 일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선 <초보운전> 표시는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매일 출퇴근하니 감각도 금세 익힐 텐데 뭘 6개월까지 다느냐고 놀렸다. 지금 기억으론 아마 4개월 정도 <초보운전> 표시를 달고 다니다, 꽉 막히는 언덕길에서 섰다 가야했을 때 뒤로 밀림의 정도가 내 나름대로 쓸만하다 싶어 흔쾌히 초보 표시를 떼냈던 것 같다. 하지만 표시만 뗐을 뿐이지, 갑자기 옆으로 거대한 트럭이 달려든다든지 어디선가 오토바이가 튀어나온다든지 급정거를 해야할 때 심장이 벌렁거리며 핸들이 흔들리는 초보증상은 그 뒤로도 몇달은 지속되었다.
어제 거의 반년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새삼스레 까마득한 그 시절이 떠올랐다. <초보운전> 표시를 달고 다니던 어리숙한 나의 운전솜씨와 지금의 자전거타기 실력이 비슷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원래도 도로교통법 상 자전거는 이륜차라나 뭐라나 자동차에 해당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하여간 어제 내가 깨달은 자동차와 자전거 초보운전의 공통점은 이렇다.
1)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오거나 진로가 막히거나, 빠르게 옆으로 지나치는 다른 자전거를 만나면 여지없이 당황해 핸들이 흔들린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2) 앞지르기를 할 때 얼만큼의 속도와 여유 거리가 필요한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3) 급회전은 당연히 무리고, 천천히 회전할 때도 얼만큼의 회전각도가 안전한지 자신이 없다.
4) 언덕길과 평지에서 기어변속이 서툴다.
5) 꽤 오래 공백기를 두면 그나마 익혀둔 운전감각이 떨어진다.
6) 베테랑 운전자들의 조롱섞인 위협과 앞지르기를 감내해야 한다.
7) 정신 흐트러질까봐 운전(특히 주차중엔!)하며 음악을 못 듣는다. ㅋㅋ
^^;
그나마 수동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는 당황해도 시동은 안 꺼먹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어젠 정말 조심조심 느루를 몰았다. 어려서부터 탔으니 자전거를 탄 역사는 무려 30년이고, 자동차 운전의 역사 또한 그 절반이 넘는 18년인데 자전거는 중간에 공백기가 너무 길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자전거에도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는데, 운전을 하다보면 굳이 초보 딱지를 붙이지 않았더라도 척 보면 초보 운전인 걸 알 수 있는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오듯 베테랑 자전거족들에겐 나 같은 초보 자전거족이 한눈에 파악될 것도 같다. 사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 옛날 내 눈엔 유독 <초보운전> 표시를 붙인 자동차들이 많이 보여 괜한 동질감을 느꼈듯이 어제도 내가 보기에 초보 자전거족인 사람들은 대강 찝어낼 수 있을 듯했다. 초보 주제에 내가 앞지르기를 해야할 정도로 왕초보인 이들도 더러 있었을 정도!

무슨 일에든 서툴고 긴장되는 처음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참 쉽게 잊는 것 같다. 옛날에 <당신도 한 때는 초보였다>라고 쓴 초보운전 글귀가 유행을 하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초보운전> 표시를 보는 일조차 드물어진 듯하다. 자동 변속기 운전면허가 생겨나고 도로주행까지 시험 과목에 들면서 다들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일지, 괜히 <초보운전> 표시를 붙여 무시당하기 싫은 자존심 강한 초보들이 많아진 때문인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매사에 초심을 무시하는 풍조가 대세인 건 확실한 느낌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나 같은 사람이나 초심을 다잡을 수밖에 없는 초보임을 강조하며 사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반년만에 나는 다시 자전거 초보 인생을 시작했고, 작년의 행태를 봐서는 내년 이맘때도 어리버리한 자전거초보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전거를 타고 느끼는 싱그러운 바람결이야 초보든 베테랑이든 똑같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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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투덜일기 2009. 1. 9. 06:38
이상한 불면이 또 찾아오는 바람에 이틀 꼬박 예민하게 날선 신경으로 지내야 했는데 
어제 저녁엔 고맙게도 밀린 잠의 공격을 받았다.
잠을 몹시 즐기는 사람이지만 며칠만에 빚 독촉 온 채권자처럼 가혹하게 찾아온 잠의 경우엔 사실 별로 편안하질 않아서 이런저런 꿈을 많이 꾸게 된다. 깜짝 놀라 까무룩 깨어났다가 스르르 다시 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꿈을 연속적으로 꾼 것 같은데, 결국엔 확연한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에 소스라치며 깨어나 더는 잠이 오질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끔찍한 꿈도 아니건만, 꿈속의 나는 너무도 괴로웠고 깊은 절망감으로 숨을 헐떡였던 것 같다. 현실에서도 가끔 맞닥뜨리는 주차장의 두려움이 꿈속에서도 나를 괴롭혔는데, 우리나라에선 잘 볼 수도 없는 드넓은 주차빌딩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차를 찾아 헤매도 끝내 내가 세워둔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동차 열쇠를 손에 들고 끊임없이 사방을 향해 자동열림 단추를 누르며 혹시나 비상등을 반짝이는 자동차가 있는지 살피며 층층이 주차빌딩을 돌아다니던 꿈속의 나는 호흡곤란을 느끼며 울부짖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좁고 굽은 통로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내려갈 때마다 아득한 현기증을 느낀다. 건물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폐쇄적인 느낌도 싫지만 드넓은 지하 주차장에 고만고만한 생김새로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제대로 차를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그러니까 차를 세워둔 곳을 까먹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공간지각력이라고 하던가. 평면 도형의 좌우를 바꾸고 회전시켜 놓은 모양을 찾아내거나, 입체 도형 조각을 조립하여 특정한 형태를 만드는 아이들의 놀이를 대할 때도 나는 언제나 막막함을 느낀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능력이 제각각이듯 공간지각력이 크게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어렵사리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본 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이미 미로에 내던져진 실험용 쥐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할 수가 없다.
실제로 주차 위치를 찾지 못해 오래도록 미친듯이 드넓은 주차장을 헤맨 적도 있었다. 실내 놀이공원과 백화점이 연결된 대형 쇼핑몰에 처음 차를 몰고 갔을 때의 일이었다. 차의 위치를 기억해둔답시고 제 나름대로 기둥에 그려진 주황색 동물 모양을 알아두긴 했지만 나중에 지하주차장에서 한 시간 넘게 자동차를 찾아 헤매다 주차장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자 형광색 모자를 쓴 주차요원은 딱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코끼리 주차장 면적만 해도 수백 평이 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입구도 여러 군데라 기둥에 표시된 글자와 숫자를 모두 알아 놓으셔야 합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되풀이 하며 주차요원은 짜증스럽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친구와 미친듯이 지하주차장을 헤매던 그날의 기억은 그 쯤에서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분명 자동차를 찾긴 찾았을 터인데...
그 때의 낭패를 경험삼아 복잡하고 넓은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울 땐 기둥에 적힌 번호와 글자를 어디에든 메모해두지만, 막연한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면 메모해둔 내용도 소용이 없다. 'A동 라06'이라고 적힌 메모를 빤히 보면서도 엉뚱하게 B동 지하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하주차장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자동차와 함께 논리적인 사고도 삼켜버리는 미지의 검은 공간.
자주 다니는 대형 할인매장이나 대학병원의 지하주차장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 출입구가 빤히 보이고 미로 같은 구획도 없어 헤맬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나선형 진입로로 빨려들듯 깊이 뚫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익사자가 된 느낌으로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그나마도 차에 동행이 있을 땐 괜찮지만 혼자 운전할 땐 증세가 더욱 심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 일찍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불러온 꿈인 모양이다. 아무리 자주 다녀도, 본인이 환자가 아니어도 병원과 지하주차장의 결합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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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밤마실

놀잇감 2008. 5. 11. 23:02
열불나는 속을 잠재우러 <느루>를 끌고 밤마실에 나섰다. 마치 느루가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아 조금 미안했지만, 일단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기 시작하면 잡다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머리도 복잡한 김에 떠오르는 대로 세웠던 오늘의 목표는 세가지.
첫째, 인간이나 애완견 장애물이 출몰하더라도 유연하게 우회하여 자전거 급히 세우고 내리지 않기.
둘째, 벨 울리지 않고 속도 조절만으로 장애물 피해가기.
셋째, 홍제천에서 월드컵 공원 가는 길 숙지하기.


결론적으로 말하면 목표달성에 성공한 건 하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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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

삶꾸러미 2007. 5. 18. 16:21

어떤 유전자가 작용하는 건지는 몰라도
길눈이 밝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눈이 어두워 이른바 '길치'로 분류되는 사람이 있다.
한번 간 길은 단박에 찾아가거나, 대강 설명만 듣고도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가는 신공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번 간 길도 매번 헷갈려하며 헤매는 사람이 있는 법.
내 주변엔 길치들이 꽤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 아버지.
과거에 친척들 집에 갈 일이 있어서 퇴근길에 따로 찾아오시게 되면, 아버지는 몇번 가본 곳인데도 늘 엉뚱한 곳에 가서 헤매고 있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전철역까지 다른 곳에서 내려 이상스럽다며 한시간도 넘게 낯익은 골목을 찾아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더랬다.
지금은 아예 내가 늘 모시고 다니지만, 그때마다 두분이 자동차 뒷좌석에서 중얼중얼 염려를 하신다. "나 혼자 여기 두고 가면 집에 못찾아간다..."고.
아버지가 지금도 약속시간보다 최소 30분, 많게는 1시간씩 일찍 가는 버릇이 생긴 것도 아마 하도 길치라 잘 못찾아갈 것을 염려해 시간 여유를 두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듯하다. ㅋㅋ

ER 동호회로 알게된 녀석들도 손꼽히는 길치여서,
9년째 변함없이 모임장소는 종로 탑골공원이다.
몇번 그 주변의 다른 곳으로 만나는 장소를 바꿔봤지만, 워낙 약속시간도 잘 안지키는 인간들이 엉뚱한 데서 헤매기 일쑤라 이젠 장소를 바꿀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종로3가 전철역에서 나와 탑골공원 오겠다고 택시를 타는 놈이 없나
탑골공원 오랬더니 종묘에서 마냥 기다리는 녀석이 없나
일단 만났더라도 인파속에서 서로 헤어지면 방향감각 없는 녀석들이 도무지 찾아올 줄을 몰라 휴대폰 통화를 하며 숨바꼭질을 해야 하니, 그 소문난 길치들을 만나면 어린이집 학생들 소풍 데려나간 선생처럼 늘 두리번거리게 된다. +_+;;

다행히도 나는 공간감각력이나 복합적인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임에도
길눈은 밝다. 한번 갔던 곳은 웬만해선 찾아갈 수 있기도 하고, 대강 지리를 머리에 그려보면 방향감각을 발휘해 좀 헤매더라도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진 않는다.
처음 가는 곳도 네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설명만 잘 들으면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가기 때문에 다들 꽤 신기해하는데, 나는 똑같은 설명을 듣고도 잘 못찾아오는 사람이 오히려 신기하다. *_*

길치의 유전인자나 사고방식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치들은 길을 설명하는 것에도 당연히 둔하다. ^^ 아마도 주요 지표가 될만한 건물이나 표지판 따위를 허투루 보고 지나치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
암튼 만날 다니는 자기 집엘 데려가면서도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갈팡질팡 설명을 헤매는 길치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마지막 회사에 다니던 시절, 누군가에게 전화로 사무실 오는 길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늘 호출을 당해야 했다. 만만한 거래처면 미리 팩스로 약도를 보내주면 끝이지만, 웃기는 상사들은 누군가와 막 통화를 하다가 말고 '미스 ㅂ!"이라고 꽥 소리를 질러 나를 불러선 수화기를 내밀곤 했다. -_-;; "이 사람한테 우리 사무실 오는 길 좀 가르쳐줘라" (나한테 그런 걸 시킬 정도의 상사면 대개 반말이다)
나보다 길을 더 잘 아는 영업부 직원들은 대개 오전부터 온종일 외출중이었고, 사무실에 남는 건 주로 여직원과 간부들이니 그 중에 '구두 약도 설명'을 시키기에 제일 만만한 건 나였다.
내가 운전을 오래 한 탓도 있었지만, 상사들 본인도 운전경력이 나보다 길지만 늘 다니던 길도 막상 설명하는 덴 젬병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표지판을 제대로 안보고 다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운전하기 전에 버스 타고 다닐 때도(내가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선호하는 이유도 방향감각을 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청앞에 횡단보도가 생겨 다행이지만... 예전에 횡단보도 없을 땐 걸핏하면 내가 나가고 싶은 출구로 못나가고 실패해 화가 버럭~ 났었다) 주변 풍경을 열심히 관찰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조차 나중에 길을 찾아갈 때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어딜 가든 길거리와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란 말이지... (뭐 딱히 그런 생각을 품을 만큼 주도면밀하다기 보다는 그냥 세상구경에 관심이 많다 ㅋㅋ)

길눈에 꽤 밝다는 잘난 체 정신 때문에 나는 차에 네비게이션을 달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더라도 주절주절 떠드는 게 시끄러워서 끄고 지내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게다가 운전하며 네비게이션 화면 살피는 거, 운전중 휴대폰 통화보다 더 위험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멀리 여행을 가거나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갈 때, 나는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경우 그대로 메모했다가 안내대로 찾아가고, 그게 아니면 미리 지도를 찾아보고 주요 지표가 되는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지점 따위를 적어둔다. 혹시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곳을 찾아가게 되더라도, 지도를 찾아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물론 우리나라 도로 특성상 표지판이 간혹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사라지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땐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내면 되는 거다.
대부분 길은 어디로든 뚫려있고, 혹시 막다른 곳에 다다르더라도 되돌아오면 되는 거니까!

암튼...
오늘 막내 조카의 돌잔치를 앞두고, 어제부터 줄곧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있다.
장소가 광화문 대로변에 있으니 어려울 것이 없는 데도, 며칠 동안 두 노친네에게 그리도 열심히 교육을 시켜놨건만 못미더워하는 친척분들이 계속 나를 찾아 위치를 다시 묻는다. -_-
제 아무리 네비게이션이 못미덥다지만 오지도 아니고 완전 도심인데  멀쩡히 새로 단 네비게이션을 두고도 길을 되묻는 동생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인간 네비게이션(=바로 나)이 더 훌륭해서"란다. 큭...

하긴 네비게이션 안내는 방향만 지시할 뿐, 방향을 바꿔야 할 지점에서 보이는 건물이 검정색인지 초록색인지, 그 앞에 커다란 조각상이 있는지 없는지, 가로변 공사장 펜스가 몇미터쯤 되는지를 설명해줄 순 없겠지.
아마 이따가도 또 다시 근처에 왔으니 길을 설명하라는 친척들의 전화를 꽤나 여러번 받아야 할 거다. 다 쓸데없이 길눈이 밝은 탓이니 어쩌랴. 친절하게 설명해드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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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주의보

삶꾸러미 2007. 1. 23. 17:19
나 원 참...
살다보니 별별 사기꾼들을 다 만난다.
은행 홈페이지엘 가도, 국세청 홈페이지엘 가도 각각 직원을 사칭한 사기행각이 횡행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공지문이 보이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은 나도 사기꾼과의 접촉이 있었다.

이른바 검찰청 사칭 사기꾼 ㅡ.ㅡ;;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또 다른 사기극이 있다.
나는 걸려들 뻔하다가 다행히 벗어났지만
울 큰올케는 고스란히 걸려들어 홀라당 돈을 날렸던
백화점/농협 하나로마트 직원 사칭 사기극!
특히 운전하는 사람들 주의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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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습관

삶꾸러미 2006. 10. 15. 02:23

드물게도 이번 주엔 두 번이나 고속도로를 탈 일이 있었다.
그리 먼 데는 아니고, 오산과 수원.
서울 시내에선 요즘 그리 멀리까지 다니는 일 없이 기껏해야 엄마 모시고 신촌에 있는
병원에 가거나 그 근처 백화점, 아니면 집에서 10분 이내 거리인 작업실 왕복이 다라
내 운전습관에 대해서 새삼스레 생각해보고자시고 할 일이 없었는데
지난 수요일에 오산엘 다녀오며 죽도록 막히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온몸을 비꼰 이후
며칠 뒤 또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보니
그동안 많이 나아지기도 했고, 아직 변하지 않은 나쁜 버릇까지 내 운전습관에 대한
분석이 되더라.

나아진 점.

1. 욕설이 줄었고, 양보가 늘었다.
원래 나의 언어생활이 좀 과격한 편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악다구니를 치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는데, 운전을 할 때면 아직도 나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리게 된다.
이건 비교적 초창기였던 시절 서울에서 안산까지 왕복 100km를 수인산업도로로 출퇴근하면서 작은 차(프라이드였다)와 여성 운전자를 업수이 여기던  수많은 대형 트럭 운전수들과 쌈박질에 가까운 들이밀기를 하면서 배우게 된 생존전략에서 비롯됐다. 14년 전엔 정말로 여성 운전자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특히 수인산업도로 같은 길을 달려 출퇴근을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고속도로와 달리 군데군데 신호등이 수시로 있는 그 길에서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대부분은 지들이 잘못해놓고-- 대뜸 무시무시한 경적을 울려대며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퍼부었는데, 처음엔 눈물을 쭉 뽑던 나도 나중엔 같이 거나한 욕으로 대작하며 바짝 따라가거나 앞질러서 확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싸움에 응수했더랬다. ㅡ.ㅡ;;
그런데 이젠... 그래.... 너 바쁜 놈이로구나, 먼저 가라.. 그러고 만다. ㅎㅎ
조금 열받을 때는, 그래, 너 평생 길바닥에서 그 짓 해먹고 살아라.. 그런다 ㅡ.ㅜ
물론 아직도 내 입에서 '어라 내가 이런 욕도 알고 있었나?' 싶게  놀라운 욕설이 새나오기도 한다. 끙..

2. 하이빔을 번쩍이거나 경적을 울리는 일이 "거의" 없다.
예의 없게 깜박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기를 하거나, 간선도로 진출입로에서 미리부터 빠져 길게 줄지어 따라오지 않고 중간에 끼며 얄밉게 운전하는 인간들 아직도 참 많지만
예전에 혈기방장할 때는 헤드라이트 상향등으로 번쩍이고 경적 울려대며 신경질 부렸는데
요샌 최대한 차간격을 줄여 안 끼어줄듯 약간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엔 그냥 끼워주고 만다. 그래.. 넌 그렇게 살아라, 얌통머리 없는 인간아.. 그러면서.

3. 과속을 "잘" 안한다.
순전히 과속 범칙금 때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밟을 수 있을 땐 밟아줘야한다며 미친듯이 가속페달을 밟아대는 짓은 잘 안한다. 속도감을 즐길 때쯤 되면 어김없이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나타나기 때문인데, 갑자기 브레이크 밟는 건 또 내가 싫다.
그치만...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잘 없고 길이 좋으면 살짝 속도감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ㅎㅎ

4. 차로를 잘 안 바꾼다.
운동신경 무딘 인간이 허술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내 몸과 달리 제법 날렵하고 속도감 있게 움직여주는 자동차라는 수단의 묘미를 알게 된 뒤로, 그리고 몇번의 접촉사고로 도로와 운전의 철칙을 어느 정도 깨달은 후로는 그저 빨리 가는 게 능사인줄 알고, 성질 급하게 요리조리 차로 바꿔가며 달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공연히 조급증을 내며 서두르는 짓은 안하게 된다. 아무리 재주를 부리고 차로를 변경해봐야, 서울 시내에선 정말 5분이나 빨리 가려나.. 고속도로에선 먼길 운전에 어차피 피곤하니, 졸음 쫓으려고 일부러 왔다갔다 할 때 빼곤 신경질적으로 차로 변경하는 버릇, 정말 완전히 없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다. ^^;;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

1. 1차로를 선호한다.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은 큰 동생 녀석은 웬만해선 1차로로 다니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다른 차로에선 사고가 나도 추돌사고지만, 1차로는 정면충돌 사고라 피해가 크다는 게 이유인데... 나는 다른 차로에서 수시로 드나들고 멈춰대는 버스와 택시를 감당하기가 싫고, 초보 운전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하위 차로가 별로 내키질 않는다.
물론 나도 초보 시절이 있었으므로, 초보 운전자를 우습게 알거나 위협하진 절대로 않지만 워낙 브레이크 밟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라 물 흐르듯 유연하게 운전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1차로가 좋다. 사고가 나는 경우 정면충돌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라도 말이다. ㅡ.ㅡ;;
다행히 이제껏 경미한 접촉사고라면 몰라도, 충돌사고를 내거나 당한 적은 15년 경력에 단 한 번 도 없었다! ㅎㅎ

2. 규정속도보다 심하게 느리게 달리는 차는 절대 참지 못한다.
이건 뭐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 규정속도가 시속 100km인데 하필 1차로에서 느리게 빌빌빌빌 앞차와의 간격을 몹시 넓게 두고 달리는 차들이 꼭 있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조수석에 앉은 사람과 심하게 다정한 대화를 나누거나 ㅡ.ㅡ;; 아주 드물게 초보운전자인 때도 있는데, 초보들은 고속도로에서 1차로엔 잘 들어가지 않으므로 정말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은 딴짓 중인 것 같다.
이럴 때 난 절대로 못참고 앞지르기를 해줘야 한다. 착한 어떤 이는 그 앞차가 볼일 다 볼 때까지 그냥 졸졸졸 따라도 가던데 말이다. 흠...

3. 차간거리가 좁다.
양보운전을 안하는 편은 분명 아닌데 ㅡ.ㅡ;; 예의바르게 깜박이를 켜고 의사표시를 한 뒤에 끼어드는 차의 경우 대부분 양보하는 데 반해,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족을 곱게 보진 않기 때문에 여전히 나 역시 차간거리를 좁게 유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다들 그런 습관 때문인지 대부분 운전자들은 고속도로에서도 차간거리를 규정만큼 길게 유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전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30대가 넘는 차들이 추돌사고를 일으켜 자동차가 불타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도 그 버릇은 여전한듯. 나 또한 오래 전 갑자기 비상등을 켜고 멈추는 차들을 따라 가까스로 멈추는 데 성공은 했으나, 내 뒤의 뒤차가 제동을 못하고 내 앞차까지 모두 한꺼번에 들이받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도... 여전히 앞차와의 간격은 좀 좁은 편.
고속도로에서 달리다 병목현상 따위가 나타나 갑자기 속도를 줄이게 되면 비상등을 켜서 뒤차에게 알리는 제법 쓸만한 신호가 정착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은 방법은 차간 거리를 제대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안지키는 이 심보는 뭔지...
이리저리 차로를 안바꾸기로 한 대신에 남들이 내 앞으로 끼어드는 꼴도 못보게 된 걸까?

아무튼...
새삼스럽게 내 운전습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니
내일부터는 예전에 매일 강남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처럼
아침마다 착하게 운전하고 욕 안하고 양보 많이 하고 교통법규 잘 지키기로
다짐을 한번 해봐야겠다. 그런 다짐을 몇년 되풀이하면서 그간 내 못된 운전습관을 개선하는데 절반이나마 성공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사고 나면 내가 더 손해고, 운전은 오래 할수록 대범해지기보다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요새 계속 착하게 살기 운동원처럼 반성모드가 지속된다. 나답지 않게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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