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봤다

놀잇감 2009. 8. 17. 20:28

괜한 베스트셀러 기피증과 마찬가지로 요란하게 멀티플렉스를 휩쓸며 천만관객 운운하는 영화 보는 거 별로 안좋아하고 재난영화도 즐기지 않는데, 동행이 꼭 보고싶은 영화라고 해서 그냥 봤다.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그러나 궁금하기도 했고.
소문처럼 스토리도 괜찮고 만듦새도 그만하면 짱짱하더라. 너무 티나서 눈물겨운 CG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검게 넘실거려 무서운 바다 장면들은 조지 클루니가 나왔던 <퍼펙트스톰> 연상될 정도로 훌륭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거나 가보고 싶어하는 장소이자 TV 뉴스에서도 여름 피서지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운대를 배경으로 삼은 건 참 영리한 선택이었다. 나 역시 몇년 전 놀러가 묵었던 동백섬 근처의 콘도 주변과 광안대교, 달맞이 언덕, 유람선 선착장앞 횟집, 방파제를 보며 반색하게 되더라.  

간간이 손발 오그라드는 부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 마지막 부분은 어째 좀 너무 성의없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감탄스러운 장면들이 꽤 됐고,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로 좋았다.
난 정말 하지원 이쁜 줄을 모르겠다가 드라마 <황진이> 보면서 탤런트가 아니라 배우로구나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 새삼 예쁘게 보이더라. 부산 사투리 때문인가? +_+ 부산 언니들의 <오빠야~> 한 마디에 남자들이 녹아버린다더니만, 하지원은 잘하면 나도 녹이겠다.
개인적인 악연들 때문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남자들 무작정 별로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설경구라는 배우도 싫어하는데, 여기서는 설경구도 그리 밉상이 아니었고 이민기는 완전 새로운 발견이었다. <굳세어라 금순아>랑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이미 귀여움은 발견했어도 연기력이 좀 딸린다 생각했건만 짜식 마이~ 늘었구나 싶어 괜스레 흐뭇했다.  

유머와 감동을 다 잡아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무겁지 않게 간간이 웃겨줘서 좋았고, 진부한 영웅놀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눈물이 찔끔찔끔 나는 걸 보니 현실이 그렇다고 나도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재난 앞에선 늘 둘째가라면 서운하다는 듯 열악하고 무식한 대처법으로 일관하며 아깝게 수많은 목숨을 잃고 나서 <예견된 人災>였다고 욕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암튼 천만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이 영화에 나도 관객 숫자를 올렸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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