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찼던 콜드플레이 공연후기부터 써야 블로그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뭐든 후기를 잘 못쓰겠다. 알량했던 1/4분기 독서후기도 그렇고, 영화 얘기도 그렇고... 두뇌가 수시로 딱 먹추는 느낌이랄까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건 확실한듯.
암튼 그러는 가운데 또 정신없이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갔다가(거슬러 간 게 맞나? 질러간 건가?) 왔더니만 가서도 계속 빌빌, 와서도 빌빌 도무지 '적응'이라는 게 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게 속일 수 없는 내 나이 탓이려니 단념해야 하나? 심지어 어제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두 정거장이나 가다 내려 바꿔타야했고, 결국엔 집에 오는 길에 현금 5천원과 후불교통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어쩌면 이건 정말로 시차 부적응 탓이 아니라 그냥 중년건망증이 심해진 걸지도.
아무튼 주변에 무엇하나 마음 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괴로운 집안사는 집안사대로, 밀린 일은 일대로, 인간관계는 또 그대로... 근데 왜 또 무리까지 해서 여행은 떠났는지. 참 내. 물론 오래 망설였지만 확 저질러서 좋았고 조마조마하던 몇달을 거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해서 좋았고, 2주간은 그야말로 꿈결처럼 행복했다. 어제 트위터에서 <호텔>이야말로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는 말을 보았다. 아침밥 주지, 청소해주지, 매일 보송한시트 갈아주지, 전화하면 새 타월 갖다주지... 거기다 침구류는 또 최고급아닌가. 친구네 집을 베이스로 주변을 돌아다닌 게 아니라, 아예 계속 차로 도시를 바꿔가며 10박11일을.. 그것도 친구 언니가 회원인 덕분에'메리엇 호텔'로만 돌아다니다 내 여행 인생에서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다.
패키지 여행 못지 않게, 잘 곳, 볼 곳, 놀 곳, 먹을 곳... 거의 모든 걸 다 결정해놓았거나 알아서 결정해주는 주동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되고 째지게 편하든지! 친구 언니가 세운 계획에 맞춰 친구와 나는 그냥 녜녜, 좋습니다, 좋아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3킬로그램쯤 늘어 얼굴 주름이 다 펴지도록 빵빵한 풍선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마저도 좋다고 생각됐다. 그래 난 원래 호빵같은 얼굴이 캐릭터니깐 뭐...
그럼에도 일은 놓지 못하고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 처음 며칠은 밤중에 홀로 청승을 떨었고, 차로 움직이는 이동시간이 길 때는 데이터 로밍을 해갔어도 틈틈이 잘 터지지도 않는 인터넷을 찾아헤매며 국내 뉴스와 SNS를 기웃거렸다. 내가 겨우 이럴라고 촛불 들고 그 추위에 떤 게 아닌데 싶은 실망감에서 오는 불안과 조바심? 그래도 지난 대선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했지만--물론 그렇다고 ㅂㄱㅎ가 대통령 되는 걸 막진 못했었지--이번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투표할 여건이 된다는 것을 기뻐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점이 많은 대선후보였지만 와.. 아무리 표가 급해도 반대할 게 따로있지.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사람일세. 싫다싫다하니깐 ㅁㅈㅇ, ㅇㅊㅅ 둘 다 이젠 표정도 싫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 싫다! 대선 토론에서든, 공약에서든, sns 홍보전에서도 역시 심블리 상정언니가 쵝오~! 두자리수 꼭 넘겨서 반드시 선거비용 보전시켜드리리.
수시로 졸리고 잠들었다가 엉뚱한 시간에 깨어나기를 닷새째 하고 있는데, 머리가 멍해서 일도 독서도 불가능하고 그저 최대치로 늘어난 위장에 먹을 거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새벽 5시에 잠이 깨 빈둥대다 배고픈 걸 참고 참다 계란찜과 두부부침으로 나름 거하게 아침상을 차려 엄마와 함께 먹었다. 보름간 냉장고에 붙여두고 간 국과 밑반찬 계획표에 따라 성실히 살았노라고 자랑하시는 왕비마마 보필은 오히려 돌아와서 빌빌대느라 더 못했다. 내일 어버이날 디너 먹는 걸로 퉁치기엔 좀 그러니 또 당일엔 장봐다가 무슨 요릴 해드려야 고객님이 흡족해 하실까나.
어느새 5월이 이렇게 막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아카시야향이 그윽한데 빌어먹을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열고 이래저래 제기랄 대한민국.
인생이 특히나 무의미한 나이대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여전히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 사회와 시국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들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듯 주변에서 자주 묻는다. 넌 요즘 무슨 낙으로 사니?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게 되지 않나? 정말 친한 친구에겐 혼자 있을 때와 똑같은 맨 얼굴을 드러낼 때도 있고 또 못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사람들 앞에선 아주 두툼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도무지 사는 낙이 없는 것 같다는 친구들 눈에 그래도 나는 뭔가 되게 분주하고 희희낙락 꽤나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넌 그래도 신나게 살잖아, 그런다. 아차 싶었다. 내가 행복한 가면을 너무 들이대고 살았던가? SNS가 종종 나 이렇게 바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과시와 자랑의 장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름 조심한다고는 하나, 솔직히 가끔은 그런 의도적인 과시가 오히려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길가에 피어난 봄꽃, 어쩌다 맛있게 만들어진 국수, 간만에 기분 전환이 되었던 외식 사진을 자랑질하는 이유는 그 순간 느꼈던 소소한 기쁨을 나만 누릴 게 아니라 막연한 공간 어딘가에 박제시켜 두고 호응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관음증 환자처럼 다른 사람들의 그런 순간들 역시 자꾸만 구경다니면 그들의 행복에 나도 전염되는 느낌이 든다. 아주 찰나적인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하여간에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카톡 창을 이리저리 괜히 두드리다 과도하게 씩 웃는 이모티콘을 먼저 쏘아보내고는, "글쎄... 나도 사실 사는 낙이 별로 없어. 요즘들어 특히 삶이 엄청 구차하다."라는 솔직한 대답은 차마 적지 못하고 (우울한 친구의 기분을 북돋우려는 쪽이었는지, 또 다시 가면 증후군이 도졌는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꼴 같잖은 잘난 척을 좀 했다.
나야 요새 포켓몬 잡는 재미로 살지! 은둔형 인간이 맨날 포켓몬 잡느라고 괜히 막 나가서 걸어다닌다. 훌륭한 게임이야! (사실은 두달이 넘어가면서 포켓몬 수집욕도 좀 시들해졌다 ㅠ.ㅠ) 음.. 또 5분 스케치도 하잖아... 그림이 안 늘어서 좌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어!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낙은 여행이 아닐까...?
친구는 약간 한심스러운 듯 (그냥 내 자격지심일수도;;) 계속 'ㅋㅋ'라는 반응을 보이다 여행 이야기에 그제야 맞다고, 이제 궁극의 낙은 여행 하나 남은 것 같다고, 근데 그걸 자주 떠나지 못하니 더 암울하다고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낙이면서 로망이어서,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한줄기 희망이자 고문 같은 게 아닐까나? 여행 가고 싶단 생각 들 때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휴가 한달 신나게 놀려고 1년 꼬박 직장 다닌다는 선진국 국민이 아니고서야 원...
게다가 걱정대마왕이자 불안증환자로서 나는 어디서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그만큼 사전준비도 쉽지가 않다. 말로는 훌쩍~ 이라고 하면서도 대체로 여행지부터 예산까지 미리 한참 고민고민하다 떠나는 편이다. ^^ 그나마 아버지가 계실 땐 그래도 기회 봐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후다닥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젠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도 떠나는 날 직전까지 과연 이 여행이 가능한가 너무도 불안하다. 이래서 가족은 울타리면서 동시에 역시나 멍에였어! 라며 짜증부리게 되는 거다. 물론 요즘 가족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사정이지만. ㅠ.ㅠ (버는 것도 변변찮은 니가 지금 여행이나 다닐 때냐!)
암튼... 사는 낙도 없고 애들 뒷바라지도 지겹고 밥먹는 것도 구차하고 억울해서 식욕이 없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나까지 한숨이 나면서 맥이 빠졌다. 천고마비의 계절도 아닌데 막 식욕이 돋아서 먹고 싶은 거 생각날 때마다 꾸역꾸역 찾아 먹어대는 내가 식충이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 *_*
카르페 디엠, 하쿠나마타타, YOLO...이렇게 맥빠질 땐 별별 주문을 다 외워도 소용이 없다. 젠장.
아 부끄럽게도 달랑 10권이다. 그것도 그림책 포함해서... 나부터 이렇게 책을 안 읽는데 출판업계가 망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매년 점점 더 책을 안 읽지? 올해는 사들인 책의 수도 예년에 비해 적었다. 여혐 범죄사건들을 접하면서 뭔가 나도 세상과 계속 싸우려면(?) 이론적인 재무장이 필요한 것 같아서 페미니즘 책을 읽고 정희진 책까지 세 권을 엮어 감상문을 쓰려고 했었는데 ㅠ.ㅠ 결국 안했다. 수다 떨 때도 종종 말문이 막히듯이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도 버벅버벅 버퍼링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며 좌절했다. 그래서 또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유명인의 촌철살인 조언과 함께 이런저런 글쓰기 에피소드를 담은 <쓰기의 말들>은 막상 읽을 땐 뭐 이런 걸 책으로 다 만들었나 싶었으나, 다 읽고나선 포스트잇 붙여둔 글귀를 다시 들춰보며 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유려한 번역으로 이름 높은 고 장영희 선생의 <슬픈 카페의 노래>도 말맛, 글맛을 따져보느라 원문을 상상하며 다시 읽은 책이다.
옛그림을 보는 법 - 허균 지음/돌베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지음/노지양 옮김/사이행성
정희진처럼 읽기 - 정희진 지음/교양인
빨래하는 페미니즘 - 스테퍼니 스탈 지음/고빛샘 옮김/민음사
쓰기의 말들 - 은유 지음/유유출판사
슬픈 카페의 노래 - 카슨 매컬러스 지음/장영희 옮김/열림원
앵무새죽이기 - 하퍼 리 지음/김욱동 옮김/열린책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5분 스케치 - 김충원 지음/진선아트북
베스트 3권 뽑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서 1권만 뽑는다면 단연 리뷰도 올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2. 2016년에 본 영화
셜록: 유령신부
캐롤
바닷마을 다이어리
굿바이 싱글
제이슨 본
국가대표 2
거울나라의 앨리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잭 리처: 네버 고 백
내부자들
귀향
나의 소녀시대
계춘할망
족구왕
의궤, 8일간의 축제
뷰티 인사이드
베테랑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위쪽 9편. 혼자 보러간 건 내 취향대로 골랐으나, 이제보니 누가 보러 가자고 그래서 얼결에 본 영화도 많다. 암튼 2016년 최고의 영화를 뽑는다면 역시나 영화관에서 2번이나 본 <캐롤> ^^; 근데 베스트 세 편도 어렵지 않게 고를 수 있겠다. 귀여운 자매들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좋았고,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흐뭇하게 봤다. '걸크러시'라는 말이 유행하듯 나 역시 '언니들'이 활약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당연한가? ㅎㅎ
2016년엔 하반기부터 밥벌이로 다시 영화 일을 시작해서 옛날 영화들도 많이 볼 기회가 있었다. 담당 PD가 나름 내 취향에 맞게 골라준 덕분인지 (조니 뎁, 키이라 나이틀리, 베네딕트 컴버배치 팬이라고 미리 알렸음) 좋아라 고마워라.. 그러면서 작업했다. 번역가로서는 어쩐지 퇴물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스스로 칭찬용, 펌프질용으로 포스터를 모아 편집했다. 방영일 아니고 작업일 기준으로 2016년엔 12편. 그 중에 무려 베니의 <이미테이션 게임>을 작업했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번역 작업 영화 중 Best 역시 팬심으로 일한 <이미테이션 게임>인데, <칠드런 오브 맨>도 좋았다.
기묘한 건 과거 국내 개봉 않고 dvd로 출시되었다던 <칠드런 오브 맨>이 공중파 방영일 즈음에 국내최초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는 사실. 이게 뭐람? 영화관과 방송 쪽은 어차피 저작권 관리 및 배급 루트도 다르고 수요자도 다른 듯, 상관없다나. 영화관 재개봉 자막은 누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라도 보러가고 싶었는데 당연히 게을러서 확인 못했다. 혹시 누가 둘 다 보고 자막 번역 비교한 사람 있나 나름 유심히 살펴봤는데 못 찾음. ㅎㅎ
3. 전시/공연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 국립고궁박물관
창경궁을 보듬다 - 국립고궁박물관
윤동주문학관
Color Your Life - 대림미술관
변월룡 회고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호안 미로 특별전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로이터 사진전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 - 가나아트센터
임태경: 그대의 계절
One Love Concert: 임태경 외 ㅋㅋ
위 두 전시는 포스팅을 했으니, 세번째 베스트로 뽑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전시도 포스팅을 할 계획이다. 사진도 엄청 찍어왔으니 자랑 삼아서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입장료 3천원에 완전 눈호강한 느낌이었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상생활 공예품인데 구석구석 예쁘고 사랑스럽더라.
공연은 임태경 광팬인 미쿡 친구의 소망 대리충족용으로 다닌 것. 체력 딸려서 공연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에 공연장의 빵빵한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으로 거의 기절할 뻔 ㅠ.ㅠ
한달에 2번씩 한번도 안빠지고 개근을 했으니 그만큼 많은 산을 다녔고, 스스로 뿌듯하다. 친구들과는 2월부터 주로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서울 근교산을 돌아다녔는데 주변에 갈데가 그토록 많다는 것에 감사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 남산 둘레길도 고즈넉하고 예뻤다. 조금 멀리 가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산이 도처에... +_+ 내가 이렇게 열심히 등산 다닐 줄 진정 몰랐는데 ㅋㅋ 이 열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것도 궁금하다. 모녀 가을 여행에서 작년과 확 다르게 좀처럼 운신을 못하시던 왕비마마 왈, 너라도 다리 성하고 건강할 때 많이 다니라고.. ㅠ.ㅠ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베스트 산 셋을 꼽는다면
원없이 상고대와 설경을 본 계방산, 홀릴 듯 철쭉이 아름다웠던 축령산, 울산바위를 뒤쪽에서 볼 기회가 있었던 금강산.
5. 기타
그밖에 올해 사들인 음반은 노장 투혼으로 새 앨범을 낸 스팅의 <57th & 9th>와 미리 김칫국 마시며 떼창 연습하겠다고 산 콜드플레이의 <A Head Full of Dreams> 딱 2장이다. 콜드플레이는 음원으로 몇곡만 사서 듣다가 내한 소식에 팬심 발휘해 CD도 샀는데 첫 공연에 예매 실패하고 완전 광분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추가공연 가게 되서 다시 애정하며 듣는 중. 스팅은 지난 앨범이 완전 뮤지컬 ost 여서 실망하고 옛날 노래만 듣다가 2016년에 그나마 신뢰와 애정을 회복했다. ㅎㅎ
드라마는 방에 있던 배불뚝이 TV가 완전 사망하는 바람에 잘 챙겨보지 못하고 있어서 기억나는 게 치즈인더트랩, 굿 와이프, 또 오해영, 닥터스, W, 역도요정 김복주, 도깨비 정도다. 주로 배우 선호도로 찾아보는 고로 공중파 드라마도 더러 보긴 하지만 손발 오글오글거리거나 전개가 마음에 안들어서 중간에 끊었다 다시 보고 그랬었다. 단막극 <페이지 터너>가 의외로 좋아서 탁상달력에 메모해둔 기억이 있는데, 그래도 대체로 열광하며 신나게 즐겼던 드라마를 한 편 꼽으라면 <또 오해영>!(<굿 와이프>로 했다가 방금 마음 바꿈 ㅋㅋ) <굿 와이프>는 전도연의 약간 비뚤어진 입매와 자연스러운 주름 덕분에 연기가 더 좋게 느껴졌던 것 같고, 나나의 연기도 유지태도 다 괜찮았다. 제발 중년 배우들 얼굴에 티나게 이상한 짓좀 하지 말면 좋겠다. 서현진 연기 좋고 사랑스러운 건 알지만 에릭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또 오해영>은 재방송까지 막 다시 찾아보며 헤벌쭉 했던 기억이 이제야 새록새록 떠오른다. 에릭이 음향 엔지니어로 나오는데 그 직업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제대로 보여주었던 점도 신선했고, 조연으로 나왔던 해영의 부모님이나, 예지원, 김지석 커플의 이야기도, 에릭의 이복동생 커플 이야기도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다루지 않아 좋았다!
그밖에 tv 프로그램에 상을 준다면 단연코 JTBC 손석희의 <뉴스룸>(뉴스룸 맨 마지막 노래 선곡까지 손석희가 직접 한다는 것 같다. 아아 이분은 정말... +_+ 기막힌 뉴스에 광분하고 허탈해 하다 마지막 흘러나오는 노래에 위로받고 그런 순간이 참 많았다), 그리고 에셰프의 활약이 놀라웠던 <삼시세끼 어촌편3>(에릭이 느릿느릿 신중하게 요리 할 거 다하면서 말도 별로 없는 거 진짜 마음에 들었다. 겸손하기까지 한 듯!), 일요일 밤에 생각나면 찾아봤던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방에 TV 없어서 잘 안 봤다더니 테순이같다. ㅠ.ㅠ)
2016년을 되게 빌빌거리며 암울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반백수치고는 잘 먹고 잘 놀러다니며 꽤 잘 살았던 것도 같다. 2017년에도 야금야금 재미난 일 찾아다니며 행복하게 지내봐야지!
본격 겨울을 앞둔 11월은 1년중에 내가 가장 넘기기 힘들어하는 달이어서, 괜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리는데 올핸 그럴 겨를이 아예 없었다. 뭔가 대단히 분주한 일들이 많았고, 토요일이면 광화문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의 11월 우울증을 날려버린 공은 파렴치한 닭그네에게도 일부 지분이 있다. 수십년만에 국민대통합을 이룬 공이 그치에게 있듯이 말이다. 하여간 시국이 시국인지라 후다닥 일감 처리할 때 아니면 진득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끼적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홧병으로 가슴이 콩닥거리면 머리가 텅 비거나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블로그형 인간성은 버릴 수가 없어서 짧은 여행기며 그날그날 단상들을 적어놓지 않고 계속 쌓이니 숙제 안한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연말 베스트 집계 하려면 기록해둬야하는데! 뭐 이런 심정? ㅎㅎ 해서 간단하게 사진위주로 뭐 하고 지냈나 근황 정리 시작.
2014년 가을에 법주사(부모님의 신혼여행지였다)에 함께 다녀온 이후로, 엄마는 가을만 되면 모녀 여행을 바라신다. 작년엔 그래서 부산엘 다녀왔는데, 올해는 전주와 담양을 여행지로 정했다. 엄마가 전주 학인당에 묵어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왕비마마의 로망은 실현했으되, 결과적으로 한옥 민박은 노년의 엄마에게 맞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다. ㅠ.ㅠ 댓돌 위로 툇마루로, 높은 문지방 넘어 화장실로 오르락내리락해야하는 구조가 관절 부실한 노인에겐 부적절. 게다가 1년만에 왕비마마의 기력은 너무도 약해져, 좀체 걷질 못하셨다. 진짜 나이든 할머니구나 하는 걸 실감한 여행이어서 덩달아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넌 안 늙었겠냐!)
가을 학인당 마당에도 꽃이 있더라
학인당에서 하룻밤 자고 비교적 가까운 담양 소쇄원으로 향했다. 첫날은 정말 날씨가 화창했는데 담날은 우중충 비가 종종 뿌렸고, 상경길엔 억수로 비가 쏟아지더니 평택 즈음해서 날이 개며 무지개를 만났다. 운전하며 무지개를 본 건 난생처음이지 싶다. ㅎㅎ
뒷짐지고 소쇄원을 거니는 할머니 ㅠ.ㅠ
한달에 두번 등산다니는 것 말고도 여차저차해서 '서울둘레길'이란 걸 걷기 시작했다. 서울시 경계를 크게 한 바퀴, 산자락도 걷고 한강 둔치도 걷고 더러 도로를 따라 걷기도 하는건데,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스탬프'를 찍는 것이다. 빨간 우체통처럼 생긴 코스 시작과 끝지점에서 스탬프 용지에 구간 완주 기념 스탬프를 스스로 찍어 앞뒤로 다 채우면 서울시에서 완주증을 준다는 것 같다. 완주증서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암튼 앞뒤로 꽉꽉 귀엽고 예쁜 스탬프를 채우고 싶은 욕망은 활활 불타오른다. 웬만하면 하루에 막 5, 6시간씩 국토대장정 하는 느낌으로 걸어서 현재 1, 3코스를 완주했다. 마감 때문에 빠진 2코스를 올해 안에 얼른 채워넣어야지.. 하고 있다. 당분간은 추워서 중간에 점심 먹기 어려우니 나머지 코스는 따뜻한 봄으로 미뤄두었다.
소중히 접어 간직하고 있는 스탬프용지 ^^
둘레길 3코스는 총 26.1km 9시간 거리인데 그 중 17.6km를 6시간 동안 걷고나서 기진맥진했으나 바로 다음날 또 천마산엘 오르며 스스로도 내 체력에 놀랐다. ㅎㅎ 왕비마마가 뭐 찾아먹을 게 있다고 그렇게 빨빨거리고 다니냐고 핀잔하실 만도 하다. 그러나 스트레스 탓인지 혈압은 전혀 관리가 안된다는 게 함정. ㅠ.ㅠ
째뜬 올 가을엔 정말 원없이 단풍구경을 하러다닌 것 같다. 동네 은행나무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는데 이젠 잎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으니... 확실히 겨울이다.
그 사이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소식에 한껏 설렜으나, 현대카드에서 발급을 거절당해 1차 좌절하고(나보다 연봉이 4-5배나 되는 프리랜서 편집자 후배도 카드 발급 거절당했다고 해서 또 한번 분노했다. 프리랜서는 곧 백수였던 거다;;), 엄마이름으로 간신히 발급받은 카드는 사전 예매 당일 오후에나 도착해 2분만에 매진됐다는 기사만 확인했을 뿐이고.. 다음날 일반 예매도 역시나 예매 실패. 짜증이 하늘을 찔렀다. 콜드플레이 팬들이 한국에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암표가 막 100만원씩에 나돈다는데 그걸 사서 갈 만큼 광팬은 아닌 게지... 가난하기도 하고. ㅠ.ㅠ 4월 15일에 난 술 마실테닷!!! 흥.
토요일마다 이번은 마지막이길, 이번은 마지막이길... 그런 마음으로 광화문에 나갔는데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에 버럭버럭 홧병이 솟다가도 막상 현장에 가면 뭔가 울컥거리는 심정이 들면서, 그래도 민초들을 믿어보자는 희망이 다시 일어나는 것 같다. 정치판엔 도저히 믿을 놈이 없으니 촛불로라도 압력을 자꾸 행사하는 수밖에... 에효.. 지치지만 그래도 우리가 먼저 떨어져나가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촛불 하나 보태야지. 그러고 있다. 요번주 토요일엔 도저히 나갈 형편이 안되는데 흠... 부디 9일에 온국민이 바라는 대로 일단 결판이 나길!
매주마다 촛불을 자체 제작해나갔더니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첫날은 무늬 있는 종이컵에 흰 스티커를 붙여 글씨를 썼더니만 촛불빛에 무늬가 다 비쳐서 망했고, 두번째부터는 무늬없는 카페 커피컵을 재활용하거나 민무늬 컵을 사서 글씨를 썼다. 위 사진은 지난 토요일에 출동하겠다는 동생네 가족을 위해 할아버지 제삿날 준비하다 말고 만들어준 거다. 오른쪽 사진은 11월 26일에 청와대 200미터 전방까지 행진이 허가된 날, 경복궁 옆으로 정말 코앞까지 진출했던 기념으로 찍어온 것. 엊그제는 감기기운으로 덜덜 떨려서, 416개의 횃불 따라 청운동까지 행진하다 죄송한 마음으로 조퇴했다.
어서 끌어내리고 이젠 주말에 좀 쉬고싶다. 다들 그런 마음이겠거니... 하지만 헌재 결정에 또 압박을 하려면 한 겨울에도 촛불 들고 있어야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토요일 한영애의 노래 '조율' 가사처럼 정말로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다면, 이제 그만 좀 염원을 들어주시지... (나는 무신론자라지만 절실히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많지 않냐고요!!) 근데 뭐 또 그런 존재가 없어도 모든 이들의 의지와 뜻으로 해내면 되지 않겠나.
2006년에 만들었던 10년짜리 여권 만기일이 9월 중순이었다. 예전엔 만기일 이전에 갱신하는 비용이, 날짜 지나고 나서 새로 만드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했던 기억이 있어서 괜히 마음이 바빠졌으나 결국 만기일 이전에 여권을 만들진 못했다. 9월 중순이면 딱 추석연휴때가 아닌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심신이 좀 지치고 바빴어야지... 째뜬 요샌 뭐 전자여권이라 갱신이든 신규든 재발급 비용은 다 똑같다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군, 했다.
어차피 해외여행 계획이 당장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여권을 만들어둘 필요는 사실 없다. 그런데도 컴퓨터 모니터 아래 노란 포스트잇에 적힌 "9월 전에 여권 갱신!!!"이라는 글귀가 계속 시선을 끈다. (느낌표를 세 개나 붙여놓다니 어떤 심정이었던 거지? ㅋㅋ) 그 옆 포스트잇에 적힌 원고 마감 날짜는 일부러 게슴츠레 눈감고 잘 안보면서 참 나도 웃긴다.
하여간에 여행계획도 없으면서, 언제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이용권도 아닌, '일개' 유효 여권이 없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찜찜하고 불안한가 말이다. 더 웃기는 건 이미 충동적으로 여권사진도 찍어두었다는 사실. ㅋㅋ
앞으로 또 10년 쓸 여권이니깐 이왕이면 꽃단장 하고 예쁘게 찍어야지.. 했던 평소 마음과 달리, 지난달 말 외출에서 돌아오다 ATM 머신에 볼 일이 있어서 걸어가는데 동네 사진관이 눈에 확 들어오는게 아닌가. 충동적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ㅠ.ㅠ 그날따라 화장품 파우치도 안 가지고 나간 걸 깨달은 건 좀 슬펐다. 아파 보이거나 말거나 그래도 당부했다. 전번에 운전면허증 사진 찍은 거 너무 심하게 손대서 얼굴 너무 뽀얗고 입술도 엄청 크고 뻔떡거려서 마음에 안들었으니 보정 심하게 하지 말라고...
해서 사진사가 앙심을 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생긴대로 찍힌 여권사진은 나의 현재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눈썹과 귀가 나와야하고 뿔테안경도 쓸 수 없고 배경은 하얀색인 악조건에서 뭘 더 바라냐 싶지만, 지난 여권 사진에서 정말로 확~ 10년 세월을 뛰어넘은 아줌마가 지그시 미소를 짓고 있다. ㅠ.ㅠ 아우쒸...
다시 좀 더 진하게 풀메이크업을 하고서, 동네 말고 신촌이나 이대 쪽에 프로필 사진에 준하는 여권사진을 찍어준다는 사진관을 검색해 다시 사진을 찍어 말어, 뭐 그런 허섭쓰레기같은 생각을 잠깐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게으름을 감안할 때 그건 어림없는 짓이겠고, 구청에 여권신청하러 가는 게 과연 언제일지 그게 궁금하다.
아무데도 떠날 계획이 없으면서도 여권이 없는 상태가 불안하고 괜히 속상하고 심지어 여행자의 삶에서 완전히 낙오된 것 같은 심정마저 드는 것과는 별도로, 포스트잇 메모를 보며 여권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하면서 막상 또 신청하러 몸을 움직이는 건 선뜻 하지 못하는 이 게으름이랄지 귀차니즘은 참 고질병이다. 어쩌면 여권만 미리 만들면 뭐하나... 갈 데도 없으면서, 하는 패배의식이 밑자락에 깔려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이 포스팅은 수일내로 여권을 만들고야 말겠노라는 다짐이다. ㅎㅎ 사실은 어디서 분실했는지도 모르게 운전면허증도 사라져 다시 만들어야하는데 이 또한 차일피일... 가끔 운전할 때마다 찜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두 개 다 얼른 만들란 말이닷! 그나마도 운전면허증은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 미리 재발급 신청하면 면허시험장 가서 오래 안 기다리고 바로 찾아올 수 있다는 팁을 얻었다. 좀 전에 퍼뜩 그 생각이 나서 이 새벽에 낑낑거리며 익스플로러 보안프로그램 다 깔았더니 +_+ 신청가능 시간이 아니란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럼 그렇지..
으음. 암튼 바람이라면 일단 새 여권을 만들어서, 어물쩡 새 여권에 어서 출입국 도장 하나쯤 찍어줘야한다는 핑계로 짧든 길든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면 좋겠다. ㅎㅎㅎ
공주에 아주 예쁜 밥집과 찻집이 있다는 얘길 듣고 친구 탄신파티하러 다녀왔다. 사람들은 대체 그 외진 곳에 있는 밥집, 찻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나니는지!
아침엔 약간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더니만 충청도로 넘어가면서는 해가 비쳤다. 남쪽엔 태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는데;; 참 새삼 넓은 나라임을 실감.
저 멀리 계룡산을 배경으로 들판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단풍 들기 이전인데도 눈으로 콧바람으로 가을이구나 느껴졌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약선요리 밥집 <신야춘추>의 1층은 차 마시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통유리창으로 멋진 풍경이 내다보이는 방에 통나무 테이블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다
우리가 갔을 땐 이미 다른 팀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진찍기 민망한 상황이었다. 해서 친구가 예전에 찍어온 사진 퍼왔음. 아주 튼튼해보이는 나무 탁자와 자수, 퀼트 소품들도 인상적이지만, 통창으로 보이는 배경이 더 근사하다. 새빨갛게 단풍이라도 들면 정말 더 장관이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먹은 연잎밥 정식(아마도;;)의 모습이다. +_+ 반찬이 너무 과하지도 않고 딱 먹을 것들로만 소박하면서도 알차게 차려진 밥상이 아닌지. 텃밭에서 직접 길렀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샐러드에 든 채소도 하나같이 고소하고 달큰했다. 연잎을 형상화한 오이 냉국(?)은 특별히 클로즈업... +_+ 오이는 그냥 보기 좋으라고 띄운 것이고 진짜는 효소를 넣어 담근 냉국 국물이란다. 역시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법?
2층 밥상에 앉아서도 커피를 청해 마실 수 있지만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다시 티타임을 누렸다. 커피메이커로 드립한 커피를 앙증맞은 수제 코스터 깔고 각기 다른 찻잔에 따라 마시며 또 한번 행복했다. ㅎㅎㅎ
건물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마당 잔디가 다 패이는 게 속상해서 쪼르륵 물확을 놓아두었단다. 아이고 예쁘다.. 집 주변엔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마구마구 피어나 있고... '보리'라는 이름의 골든리트리버 강아지도 한 마리 뒤뜰에 살고 있었다.
곧이어 밥집 인근의 꽃마당 예쁜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 엄마 차화연씨가 살던 집으로 나온 찻집이라나 뭐라나. 계절마다 마당에 흐드러지게 예쁜 꽃을 가꾸는 걸로 유명한 <담꽃>. 좋은 차를 파는지 찻값은 비싸다 싶었으나 평일에도 손님이 드글드글! ㅋ
제일 바깥쪽 방에 앉아서 마당을 내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군데군데 놓인 물확엔 어김없이 수생식물이나 꽃을 띄워놓는 정성을 보이고.
현지 주민들보다는 어쩐지 '돈많은'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공들여 지은 별장 같은 집들이 곳곳에 서 있는 공주 하신리 마을을 한가롭게 걸어다니며 집구경을 하다가 또 다시 마지막 코스~ 아산 현충사 앞 은행나무길로 향했다. 아직 노랗게 물들기 전이지만 옛날 박통 때 현충사 다니는 권력자를 위해 심고 조성했다는 그 길을 이제는 차가 못다니게 공원으로 가꿔놓았더라. 그러나 떨어져 뒹구는 은행 열매의 향기롭지 못한 냄새 어쩔...!
한강 둔치의 벤치마킹인지 어쩐지 요샌 어느 도시를 가든 하천 변에 산책로와 자전거길, 공원을 예쁘게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좋다는 얘기. 이름 까먹은 하천 옆 한쪽엔 국화밭이, 맞은 편엔 코스모스 밭이 이제 막 피어나 사람들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꽃밭은 한철 장사(?)겠거니, 인공적이라 흉하다 그러면서 내려갔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옹기종기 예뻐! ㅋㅋ 온종일 친구 덕분에 눈호강 입호강 한 날이었다. 여유롭게 맨날 놀러다니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더욱 깊어졌던 하루.
합정역 메세나폴리스에 가면 상가 중심부 하늘에 우산이 매달려 있다. 몇년 전 처음 오픈했을 때 우산이 있었는데 중간에 한번 없애고 다른 걸 장식했었다가 다들 우산이 더 낫다고 해서 다시 설치했다나 뭐라나... 암튼 며칠 전 확인 결과로도 아직 우산은 건재하다. 이렇게...
한동안 우산 장식이 유행이었는지 서울시청 시민청 입구쪽에도 그림 우산들이 매달려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 어쩐지.. 안가본지 오래 됐지만. 애들이 그린 그림 같은 얼굴도 있고 사진도 있고.. 흉물스러운 쓰나미 같은 시청 유리건물 안보여 좋네.. 그랬었다. 2013년 여름에 찍은 사진.
어쩌면 쇼핑몰에 우산 장식 거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였는지.. 2014년 11월 터키 안탈리아에 갔을 때도 발견.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우리 현지 가이드. ㅋㅋ 한 가운데 검정색 우산이 찌그러져 있는데 그것마저도 좋아라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돌연 궁금해져 찾아보니 알록달록한 우산장식은 포르투갈 어느 도시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듯. 역시.. 원조가 가장 멋진 것도 같다. ^^ 위 셋은 내가 직접 찍은 거고.. 아래는 빛 좋은 시간에 전문가가 찍은 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서도.
올 봄엔 특히 비도 자주 내리겠다... 며칠전 합정동 갔다가 다시 본 우산 덕분에 우산 사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랐고 더불어 여행이 가고싶어졌다. 으으으...
2015년을 깔끔하게 끝낼 생각으로 best 목록 뽑기를 시작했는데 에효... 난데없는 감기기운으로 계속 빌빌대느라 새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도록 마무리를 못했다. 나름 건강관리를 한 덕분인지 이놈의 감기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진 못하고 묵직한 두통과 약간의 콧물로 깔짝깔짝 괴롭히고 있는데, 그게 아주 성가시다. 가을에 일찌감치 독감예방주사를 맞고도 감기몸살로 2주 넘게 끙끙 앓고 계신 왕비마마와 한 공간에 사는 사람치곤 그래도 이만한게 장하다 싶지만... 빌빌대려니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째뜬 2015년 정리와 함께 감기도 말끔히 떨어지기를!!
2015 책 best 3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 1,2>는 읽으면서도 이건 무조건 올해의 베스트야.. 라고 생각했었다. 아서 코난 도일 경과 사무변호사 조지 에들지의 실화를 재구성했다는데 그야말로 치밀하고 흥미진진하다. 추리소설이면서 회고록 같기도 하고, 전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 깊은 주제의식과 반전이 있었다. 소설은 통 못 읽고 빌빌대다가 두권짜리 소설을 홀라당 밤새가며 읽게 만든 점 또한 수훈 갑.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책을 사놓고도 차마 용기가 안나서 반년 가까이 못읽고 밀어두고 있다가... 기막힌 청문회 뉴스에 다시 분개하며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들었다. 당연히 많이 울었고, 다시 반성했다. 잊지 않겠다고 다들 다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무심함과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고 관계자들,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라도 올해의 책으로 여기저기 투표하고 다녔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유말고도 절절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폭삭 속았수다>는 11월에 다녀온 제주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선망으로 별점을 좀 과하게 준 면이 없지 않다. ^^; 제주 올레길 소개 이외에도 제주 지역 구석구석에 깃든 주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나도 몇 코스는 꼭 가봐야지 적어두긴 했는데.. 3쇄나 찍은 책치고는 만듦새가 부실한 느낌이 있었다. 오탈자가 꽤 눈에 띄었음. 그래도 제주는 무조건 옳으니까.. ㅠ.ㅠ
2015 영화 best 3
다 개봉작이 아니라 뒷북으로 본 게 많아서 2015년 베스트 영화 셋으로 꼽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고민고민하다 엄선했다. ^^;
<스파이>는 이토록 유쾌 통쾌한 여성 원탑 스파이영화가 또 있을까 싶어서 미련없이 골랐고
<월플라워>는 너무 좋아서 눈물 흘리며 연달아 두번이나 봤으므로,
<아메리칸 셰프>는 엄청 좋았던 건 아니지만 나의 식탐과 요리 본능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데다가 아들 퍼시 역할로 나온 아역배우가 너무 귀여워서!! ㅋㅋ 이 영화 역시 두번 봤다. (마침 케이블에서 또 해주길래...)
p.s. 으악.. 내 정신머리하고는...
본 영화 목록에서부터 <인사이드 아웃>을 홀라당 빠뜨렸다는 걸 좀 전에 컴퓨터 사진 정리하다 깨달았다. ㅠ.ㅠ
나중에 연말에 베스트 뽑을 때 쓰려고 사진도 미리 다운받아놨으면서... ㅠ.ㅠ
아효... 그래서 번외편으로 추가. ^^;
슬퍼할 일이 종종 생겨도 이젠 눈물대신 욕부터 튀어나오는 사나운 아줌마가 되어간다. 그도 아니면 무작정 참거나.. 슬픔과 눈물의 중요성을 애니메이션 한편 보고 다시 깨닫다니 참 나도 단순하지. 째뜬 디즈니와 픽사의 특징이 어우러진 작품이라 좋았음.
2015 드라마 베스트 3
올 상반기에 <풍문으로 들었소>는 거의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열심히 봤던 드라마다. 유준상 특유의 약간 과장된 연기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지는 듯 했고, 유호정, 고아성, 이준 이외에도 봄이 부모님들, 집사 부부, 비서들, 하다못해 백지연, 장호일까지 정말 허투루 연기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판타지요, 한계도 느껴졌지만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허상을 블랙코미디로 비꼰 시도 또한 좋았음.
<오 나의 귀신님>은 노상 똑같은 역할로만 나오는 것 같아 별로라 느껴졌던 조정석이 좀 쳐져서 그렇지 박보영과 김슬기의 깜찍하고 발랄한 연기랑, 뻔할 것 같은 '빙의' 소재를 미스터리 추리로 풀어나가는 전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쿡방에 아직 내가 넌덜머리 내기 전이라서 요리하며 벌어지는 로맨스라는 점도 싫진 않았던 듯. 맨날 여자 꼬시려고 남자들이 하는 응큼하고 뻔한 대사가 깜찍한 박보영 입에서 주절주절 나올 땐 어찌나 귀엽던지 ㅋㅋㅋ
나머지 한편은 <응답하라 1988>이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은 좋아라 봤고 연말에 베스트 드라마로 꼽기도 했지만 그 다음<1994> 시리즈는 통 재미가 없었다. 유연석 말고는 배우들도 마음에 안들고... 보다말다 막판엔 최종회를 안보기도 했을 걸. 쓸데없이 호흡이 질질 늘어지고 장면이며 대사며 괜히 길게 멍하니 정지된 듯한 부분이 너무 많고, 뻔한 남편찾기 놀이에 치중하는 게 싫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엔 아예 안 보리라.. 그러고 있었는데 ^^
뜻밖에도 동생네(동생이 88학번이고, 올케가 덕선이 또래니깐)와 조카들이 열혈 시청자가 되더니만. 울집에 와서 하도 드라마 이야기를 하길래 ㅋㅋ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간부터 보다가 아예 첨부터 정주행에 돌입했다.
덕선이, 정팔이. 택이 같은 애들도 귀엽고 별 대사 없이 그냥 눈을 깜박깜박하는 얼굴이 화면에 비추기만 해도 헤벌쭉 웃음이 나는 진주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난 이 아줌마들 3인방이 너무 웃기다! 특히 치타여사 라미란 최고! ㅋㅋㅋ 신파스러운 가족 이야기인데도 또 그 묘미가 넘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그런 추억돋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물론 내가 마당에 수돗가 있는 집에서 뜨신 물 데워 머리 감고, 이웃집에 반찬이랑 밥 나르며 지내던 시절은 80년대 초였지만...)
하여간에 그닥 본 드라마도 없거니와 이만큼 열심히 등장인물에 애정하며 보는 드라마도 별로 없겠다 싶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냥 베스트 드라마 3에 넣어버렸다. 미친 스케줄로 결방까지 하고, 종영까지 겨우 4회 남았는데... 어차피 덕선이 남편감은 빤한 거고... 라미란 여사의 활약이 계속 기대될 뿐이다. ^^
링크한 대로 전시 구경 다닌 후기는 비교적 매번 소상히 포스팅했지만, 베스트 셋을 뽑는데 한참 걸렸다. 리움미술관의 세밀가귀말고는 다들 조금씩아쉬운 점들이 있어놔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점을 다시한번 느꼈다. 이젠 무조건 기대를 버리고 보러가야겠다. ㅎㅎ
2015 등산 best 3
사진 왼쪽부터...
남양주 운길산(3월)
대구 비슬산(5월)
인제 방태산(10월)
매달 둘째주 토요일마다 단체산행에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개근을 하진 못했다. 북한산 2번, 북악산, 청계산, 수락산, 대모산, 구룡산, 운길산 같은 근교 산행도 좋았지만 역시 인상적인 건 멀리 대절버스 타고 가야하는 높은 산들이었다. 언제고 눈덮인 한라산과, 아무 계절이든 지리산에 갈 날이 있으려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15 지름 best 3
아이폰6
숏커트
북해도 여행
3가지 지름이 이 한장의 사진에 다 담겼다. 삿포로 공원의 가을을 배경으로 숏커트 머리 그림자를 아이폰6로 찍다. ^^;
새로나온 아이폰6s의 성능이 몇 가지 탐나긴 하지만 4년만에 고민고민 개비한 새 휴대폰으로 뭐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아무케나 찍어도 사진도 잘 나오는 것 같고, 시리 기능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
지름에 숏커트를 넣은 이유는 아마도 수년간 또 이 머리를 고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주 미용실에 가야하는 건 좀 귀찮지만... 지루하게 단발머리를 왜 그렇게 오래 하고 다녔나 의아할 만큼 짧은 머리가 가뿐하고 아주 좋으다. ㅎㅎ
얼결에 친구따라 떠난 여행이긴 해도, 허리까지 높이로 쌓인다는 삿포로의 눈을 못보긴 했어도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11월은 여행의 달이었다. 어쩐지 만만해서 자주 가게 되는 일본은 이제 오사카랑 오키나와만 가면 저 북쪽부터 남쪽까지 얼추 다 일본을 섭렵하는 듯한 느낌. 2016년에는 또 좀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2015 Worst 3
수락산 낙오. 포스팅도 했다시피 나 혼자만의 실수는 아니지만 우길 땐 우겨야한다는 것,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때 당황해서 길 같지도 않은 길로 숲을 헤치고 걷다가 나뭇가지에 찔린 팔엔 영구히 흉터가 남았다.... ㅠ.ㅠ
신사동에서 길을 잃다. 11월에 한국 다니러 온 친구와 언니들의 서울 숙소가 강남 신사역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주로 국내외 여행을 다니느라 며칠 묵진 않았지만 암튼... 서울 관광이 좀 일찍 끝난 어느날 저녁, 부른 배도 꺼뜨릴 겸 한강 둔치로 밤산책을 나갔었다. 마음 같아선 한강변 야경을 보며 세빛둥둥섬까지 쭉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너무 멀다 그러면 올 땐 택시타지 뭐.. 그럼서) ㅋㅋ 노상 차만 타고 다니시는 LA 사모님들은 신사동에서 한강 둔치까지 걸어간 것만으로도 버거워했다. 갈 땐 누구한테 묻지도 않고 요리조리 굴다리를 지나 잘만 찾아갔는데... 돌아올 땐 방향감각 뛰어나다고 믿고 아파트 단지로 질러가려다가... 신사동 잠원동을 뺑뺑 돌며 헤매다... 주민들에게 신사역 방향이 어딘가요.. 몇번이나 물은 끝에 겨우 엉뚱한 반대 길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산속도 아니고 서울 한폭판에서... 개망신. 다시는 어디가서 방향감각 자랑하지 않겠다!
토지 소송. 어찌저찌해서 토지 분할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집에 소송이 걸렸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을 지어 팔면서 땅주인이 나중에 재건축을 예상하고 토지 일부를 분할 소유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럼 불법 알박기 아닌가?) 몇년 전 대규모 재건축 가능성이 완전 사라지자 뜬금없이 그 땅을 우리 더러 구매하라는 내용증명이 왔었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그래서 그냥 개무시하고 말았는데.. 어느날 문득 법원 소송장이 날아왔다. 젠장... 그마저도 난 이리저리 좀 알아보고 법원에 온라인으로 몇가지 서류제출하면 당연히 (상식적으로) 우리가 유리하고 가뿐하게 판사의 조정을 거쳐 승소할 거라 믿었는데... ㅋㅋ 법은 역시 어려운 것. 놀랍게도 무조건 우리가 지는 소송이란다. ㅠ.ㅠ 결국 부동산 전문 변호사 소개받고 상담받은 결과, 형식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지만 내용상으로 이기는(?) 전술을 펼쳐야한다고...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피같은 쌩돈 입금하고서도 소송끝날 때까지 몇년은(빨라야 1년?) 집 팔기 글렀다. 내 잘못도 아니고 뜻밖의 재앙이긴 하지만, 웃기는 건 변호사가 소송서류 제출한 다음주엔가 몇년 째 아무 소식 없던 부동산에서 돌연 집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오 정말 인생은 아니러니하다!
2015년은...
나의 번역인생 20주년이라는 이유로 뭔가 자꾸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미래를 계획해두어야할 것만 같은 한해였다. 그러나 그건 괜히 조바심만 쳤다는 뜻일뿐 실제로는 그냥 다른 해와 똑같이 방만하게 보냈고, 드디어 실질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정확히 첫 번역서가 나온지 만 20년만인 12월 10일 현재, 완전 허당 백수가 아니었을 기뻐해야하겠으나 2016년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에 실제론 이미 벌벌 떨고 있다.
홀로 꿈꾸던 프리랜서 근속파티(?)는 25주년에나 하기로... 5년이란 유예기간을 정했지만, 당장 올 한해도 불투명한 마당에 2020년의 내 모습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버텨보는 수밖에. 다만 부디 다시 좀 성실해져야겠다! 아쉬운 소리도 좀 하고.. ㅠ.ㅠ 그러니깐 2016년의 목표는, 한해 정리 포스팅에 반성, 한심해 따위의 태그 없이 약간이나마 희망의 서광 같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으로 정해야겠다. 일단 코앞의 일에 집중하면서.
아마도 나에게 자식이 있다면 종종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들먹여 애들 기죽이기에 아주 딱인 친구 딸이 하나 있다. 물론 그집은 딸 둘 모두 너무도 모범적이서 노상 칭찬하기 바쁘지만, 두 딸 중에서도 특히 첫째는 지금 스물세살인데 내가 생각해도 존경스러운 아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벌써 오래전이지만 고등학교 입시 때, 특목고에 충분히 갈 실력임에도 일반고를 선택했다. 친구 부부는 다행히도 자식의 장래에 대한 계획을 본인에게 맡기는 편. 부모로서 조언은 해도 최종 결정은 아이가 한다. (그래서 나중에 속을 푹푹 끓일망정, 강요는 하지 않는 친구 부부도 물론 훌륭하다) 특목고 아이들만의 괜한 특권의식과 잘난 분위기가 싫다는 것이 아이가 일반고를 선태한 이유.
그러더니 고등학교때 견문을 넓히겠다며 미국으로 '불쑥' 1년간 교환학생을 떠났다(나중에 듣자하니 수능 준비엔 엄청난 손실이라나 뭐라나...) .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보니 분위기며 전망이며, 미국에서 대학을 진학하는 게 이롭겠다는 주변의 조언과 압력(?)이 많았단다. SAT를 준비한다기에 모두들 당연히 미국 대학으로 입학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이 아이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고3으로 복학했다. 이유? 미국 대학에서 막상 입학허가를 받고보니 외국인 학생이라 등록금이 어마어마하더란다.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자기네 아버지 회사에서 등록금을 다 대주는데(!), 등록금에다 체류비까지 괜한 돈 들이며 부모 등골 파먹기 싫다는 것이 아이가 귀국을 선택한 이유였다. (정작 부모는 생활비 아껴 유학 비용 대줄 용의가 있었는데도! 친구는 오히려 불리하게 고3 직전에 귀국해 복학한 딸을 내심 원망했었다. 남들은 일부러 유학도 가는데.. 그러면서)
특목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수시에선 실패하고, 정시로 엄청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In Seoul에 성공한 아이는 동아리 활동이며 성적이며 아르바이트며,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열심히 산다고 했다. 대기업 다니는 아버지네 회사에서 등록금을 전액 대주는데도 굳이 종종 장학금도 받아주시고 ^^; 용돈벌이를 위해 과외는 기본, 아이스크림 푸고 빵 파는 아르바이트도 두개씩 막 해대는 강철 체력과 정열... 어휴...
나는 ㅇㅈ이가 장차 유엔총장이 될 거라고 장담하는 걸 즐기는데, 여기저기 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나 통 큰 생각으로보나 실력으로 보나 못할 것도 없다! (영어도 잘하지만 심지어 수학, 물리 이딴 거 좋아하는 이과생!)
하여간에 요즘 웬만한 대학생들은 그놈의 '스펙' 때문에 어학 연수나 교환 학생 다녀오는 게 필수란다. 어차피 요새는 대학도 돈이 있어야, 사교육비를 펑펑 써야 갈 수 있는 시대이고, 간신히 입시에 성공해도 제손으로 등록금을 벌어야하는 학자금 융자파 아이들은 그런 스펙 쌓기 경쟁에서도 당연히 밀려난다. 으휴, 알수록 썩은 세상.
암튼 친구는 2학년 마치고 덜컥 휴학을 결정한 큰딸이 그 필수 코스를 밟는다고 할 줄 알았단다. 그러나 이 아이는 무조건적인 스펙 쌓기보다는 차라리 배낭여행을 떠나겠다며 돈 모으기에 돌입했다. (아 물론, 대학시절 배낭 여행도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다채롭게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이란 말도 있다 ㅠ.ㅠ) 과외 말고도 시간제 알바를 두세 탕씩 뛰면서... (동시에 연애도 하면서!)
친구 말로는 ㅇㅈ이가 그렇게 악착같이 9개월간 매일매일 알바로 번 돈이 무려 1600만원. 결국 ㅇㅈ이는 부모에게 단돈 한푼도 손 벌리지 않은 채 자력으로 지난 10월 4개월 여정으로 남미 여행을 떠났다. 그보다 먼저 초여름엔 유럽 한바퀴 돌아주시었고... (테러 발생 이전에 다녀온 것도 어찌나 선견지명이 있는지 원..)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아래 사진들은 얼마 전 ㅇㅈ이가 쿠바 아바나에서 찍어보낸 사진들이다.
멕시코는 어딜 가나 프리다 칼로로, 쿠바는 체 게바라로 먹고사는 것 같다고... ㅎㅎ
남미가 대체로 인터넷 환경이 좋질 않아서 친구 부부는 벌써 두달째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무사하다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아오... 가끔 친구가 전달해주는 남미의 그림 같은 사진들에 감탄하고 반색하며 부럽다, 멋지다, 훌륭하다... 칭찬하기에만 바쁜 나는 가끔 너무 심하다 싶은 친구의 걱정을 위로하다말고 종종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 실감하는 건... 아... 역시 나는 엄마 입장이 아니고 딸 입장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싶다. 길 미끄러운 데 울 엄니가 나돌아댕기면 나도 괜한 걱정과 망상에 휩쓸린다. 나의 조카가 나중에 커서 배낭여행을 떠난다면 나 역시 전전긍긍 염려하고 앉아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재난이라든지 테러에 휩쓸리는 게 아닌 한, 믿을만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 헤치고 나가는 길이라면 그냥 지켜보며 박수쳐주기만 해도 되는 게 아닐까? 아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고!!?? 경솔하게 일부러 위험 지역으로 찾아들어갈 아이도 아니고, 듣자하니 놀라운 친화력으로 가는 곳마다 친구들을 만드는 것 같던데... 나 원 참..
가끔 넌 자식이 없어서 절대 부모 마음 모른다는 둥, 본인이 닥쳐보지 않으면 짐작도 못한다는 둥 내 기를 팍팍 죽이는 말을 듣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영 철이 안들어 어른 취급을 해줄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그 사람이랑은 관계를 끊어버렸지만... 암튼 글쎄... 꼭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4대강은 반드시 국토를 죽이는 사업이라든지, 아라뱃길은 괜한 돈지랄이라든지...
과연 내가 어떤 엄마가 됐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결코 알 수도 없는 일지만, 어쨌든 내가 잘 아는 '딸의 입장'에서 볼 때 엄마들이란 그저 걱정하는 것이 본능이고 직업이겠으나 앞가림 잘 하는 딸이라면 괜한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이토록 시스템이 엉망진창인 한국에서 살아가는 게 더 걱정이구만 뭘...
친구가 마지막으로 전달해준 ㅇㅈ이의 여행지 사진은 갈라파고스였다. ㅠ.ㅠ 바닷가에서 이렇게 물개들이랑 거북이랑 같이 헤엄치며 노신다고... 아.. 난 그저 ㅇㅈ이의 용기와 젊음과 열정과 추진력이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2월에 돌아오면 늙은 이모들이랑 팬미팅하자고 해야지..
북해도에 여행을 간다면 당연히 눈 엄청 쌓인 겨울에 가게 되리라, 눈밭에서 킬킬대며 오겡끼데스까.. 한판 외쳐주리라 상상했지만.. 인생은 역시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11월로 친구의 휴가가 잡히고선 제일 먼저 제주 여행을 계획했고, 그 다음은 북해도 3박4일 패키지를 눈빠지게 뒤졌다. 친구 일행의 국내일주 패키지 여행이 월요일에 부산에서 끝나는 일정이라 무조건 부산 출발 상품을 찾아야했는데... 당연히 인천이나 김포 출발 상품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째뜬 모객 안돼서 취소될까봐 조마조마 애태우다 결국 부산에서 삿포로로 출발!
2시간쯤 날아가 내린 삿포로 공항에서 처음 마주한 유리창 밖 북해도 풍경
2시 비행기로 부산을 떠났는데 2시간 만에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보니 벌써 어둑어둑... 아 놔;; 11월의 북해도는 5시면 해가 진단다. 게다가 날씨도 꾸물꾸물...
몇미터나 쌓인 눈구경은커녕, 처음 이틀은 우산 펼쳐들고 차가운 빗속을 쏘다녀야했다. 뿌연 구름과 빗속에 내려다본 삿포로시내 전경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고, 곧장 오타루로 이동.
놀이공원처럼 꾸며놓은 무슨 과자공장이다. 우린 대체로 시큰둥 본체만체했으나.. 중국관광객들은 열광하며 쇼핑열을 올렸다
오타루 운하 주변에 시멘트벽돌로 지은 이런 건물들이 다 공방이고 기념품 가게다. 100년 넘은 건물이라 나름 문화재라는듯.. 유리공예가 유명하다는데 수제품이다보니 가격이 당연히 사악하고 ^^; 내눈엔 별로 이쁜 줄도 모르겠더라.차라리 건물 뒤쪽의 좁은 골목이 더 흥미로웠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문연데가 별로 없었다. 오전이라 이제 겨우 점심장사 준비중... 운하를 따라서 바다까지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후쿠오카 갔을 때도 그랬지만 '운하'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된다. 옛날 배가 워낙 작았으려니... ㅋㅋ
그러고는 오타루 오르골 박물관 차례.
오른쪽 사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드넓은 실내가 나온다. 건물 앞에 있는 시계는 매시간마다(매 30분마다던가) 뿌뿌 수증기를 뿜으며 울어댄다. 이 주변 골목이 죄다 기념품가게 거리. 쇼핑하라고 자유시간을 꽤 많이 줬는데(1시간 반이었던가), 우린 얼른 오르골 한개씩 고르고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죽때리다 ^^; 시간 맞춰 나왔다.
비가 와서 더더욱 해가 일찍 지기도 했지만, 가이드는 지가 빨랑 쉬고 싶은 건지 빡시게 일정을 소화하곤 매일같이 4시쯤이면 얼른얼른 온천호텔에 들여보냈다. 식사하기 전에 온천 한판 하라나... 어딜 가나 설명은 제대로 안하고 (차라리 가만히 입이나 다물고 계시든지!) 계속 본인 개인사만 주절저줄 풀어놓는 가이드가 엄청 미워서, 돌아오면 여행사 홈페이지에 바가지로 욕을 써주마 하며 휴대폰 메모장에 빼곡하게 적어왔었는데... 다 부질없다 싶어서 관뒀다. ^^;
밤새 내린 비는 다행히 사흘째아침부터 쨍하니 갰고, 도야호수를 보러 산을 넘어가다 드디어 설경을 만났다. 멀리 만년설 쌓인 산구경만 해도 좋겠다 생각했다가 눈구경을 하다니, 그나마 운이 좋았다.
도야호수에서 탄 '성 모양'의 유람선은.. 으음.. 안습이라고할 밖에...
다만 풍경사진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와 찍힌 갈매기 모습이 좀 신기했다. 물론.. 언니들이 일본 새우깡으로 한참 배를 불린 다음이긴 하지만..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시라오이에 있는 아이누족 민속촌과 유황냄새 풀풀나는 화산 아래 조잔케이 지옥(?)계곡. 후대에 만들어놓은 민속촌은 세계 어딜 가나 그 박제된 느낌이 좀 유치하고 서글프고 짠한 구석이 있다. 그나마 요즘 용인 민속촌은 기발한 알바생 연기자들 때문에 인기가 높아졌다는데... 전통복장으로 옛모습 재현하며 돈벌이를 한다는 건 유의미한 일이라도 좀 처연하다(고 나는 생각).
곰을 신으로 숭상한다는데 마을 입구에 곰을 가둬놓은 우리가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든 걸지도...
마지막날 다시 삿포로 시내구경.
옛날 도청건물이라나 뭐라나... 빨간 벽돌건물 주변 공원에서 다시 가을을 만끽했다.
마침.. 무슨 일인지 기모노 입고 단체로 촬영나오신 아주머니(?)들을 몰래몰래 구경하다 도촬에 성공.. (죄송합니다;;) 여기가 일본이구나 하는 걸 가장 실감했던 순간이랄까.. ㅋㅋ
아마도 오오도리 공원이라고 했던가.. 은행나무가 참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북해도엘 간건지.. 그냥 일본의 어느 온천 유람을 다닌건지 별로 다른 느낌이 없었다. ㅠ.ㅠ 그나마 눈구경을 한 걸로 위안을 삼으려해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 째뜬 원래 LA에서도 사우나와 찜질방을 즐긴다는 친구는 지난번에 이어 요번 일본여행에서 날마다 즐긴 온천이 제일 좋았다는 것 같고... 사우나도 싫고 온천은 난생처음 경험한다는 세 언니들도 온천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했다. 첫날 빼고 두밤은 계속 호텔도 다다미방으로 배정받아서 저녁먹으러 다녀온 사이 이불 깔아주는 우렁각시 서비스도 좋아들 했다.
마지막으로 재미난 이야기 하나. ^^; 북해도 여행일행은 6명이었는데, 친구네 세자매와 나, 그리고 큰언니의 친구가 딸을 동반했다(올케가 빠진 대신에;;). 부산 출발이다보니 대부분 그 지역주민일 수밖에 없고 다들 구수한 사투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인원수로 보나 구성원으로 보나 우리만 좀 튀는 듯했다. 버스 1대 일행이 모두 25명이었는데 (혼자 온 젊은 청년도 있었음), 다들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엄청 궁금해하셨던 모양이다.
이전에도 몇몇분이 슬쩍 물어서 대충 이야기를 했다는데... (3자매는 미국 LA에서 왔구요, 첫째랑 셋째가 친구들 한명씩 데려온 거예요. 어린 아가씨는 친구 딸이구요...)
문제는 과잉친절인지 쓸데없는 오지랖인지 가이드가 매일밤마다 호텔 방배정표를 복사해서 열쇠와 함께 나눠줬다는 것! 거기엔 여행자들의 이름이 죄다 적혀 있었다!(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 가이드의 그 행위도 진짜 마음에 안들었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건 도대체 누구누구가 자매인가 하는 것 때문이이었다. 나의 친구와 둘째언니는 종종 쌍둥이로 오인될 정도로 닮았으니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문제는 '성' 때문이었다.
6명 여자들이 성이 다 다른 것! ^^ 아니 자매라면서 왜?? 이OO, 권OO, 정OO, 박OOO, 조OO, ㅂOO. 성이 같은 여자들이 아무도 없어! 아니 그렇다면 죄다 아버지가 다른 동복자매??? ㅋㅋㅋ 다들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
드디어 마지막날 비행기를 타기 직전 들른 면세점 쇼핑 때, 살 것 없어 빈둥거리는 나의 친구에게 일행중 가장 연장자이신 70대 할아버지가 물어봤단다. 자매라면서... 대체 누가 언니동생인가? 노상 혼자 다니는 사람(모험심파 작은 언니!)은 왜? 친구는 열심히 설명을 했드렸다는데, 그래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듣던 할아버지가 한 마디... 아 근데 왜 성이 다 다른가...
크하하하...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세자매가 누군지 나름 설명을 했다는데 (아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 어디서든 신상 파악하는 병좀 고쳤으면..) 도무지 입력이 안됐던 이유가 각기 다른 '성' 때문이었다. 미국 아줌마들은 결혼하면 다 남편 성으로 바꾼다고.. 결혼하기 전 성은 '조'씨라고 (큰언니만 유지하고 있음 ㅋㅋ) 설명함으로써 미스터리를 풀어드렸으나, 할아버지는 딱히 납득한 표정이 아니더란다.
아마 다른 일행들은 끝까지 어머니가 3혼을 해서 각기 성 다른 딸을 셋 낳아 기른 집에서 친구들 데리고 여행온 줄 알았을 듯.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