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87건

  1. 2008.04.28 자기만의 방과 역마살 17
  2. 2008.04.24 제주도 14
  3. 2008.03.09 나그네 14
  4. 2008.01.28 경주를 가다 11
  5. 2008.01.24 뜬금없는 여행 8
  6. 2007.08.28 Mind the Gap 10
  7. 2007.06.04 바다 8
회사를 때려치우고 번역을 해보겠다고 작심했을 때, 막연한 내 바람과 달리 초보자로선 출판계쪽 번역일을 맡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당연히 겁에 질렸고 과연 잘한 짓인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때 마침 친구가 솔깃한 얘기를 했다. 애송이 띠동갑이랑 결혼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오빠 때문에 걱정스러워서 둘의 사주를 보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가겠냐는 것. 신내린 무당이 치는 <점>과 달리 사주는 <나름> 통계와 과학을 근거로 한 것이라며 꼬드기는 친구의 말에 못이기는 척 따라가며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라고 스스로 핑계를 대긴 했지만 난생처음 내 운명을 점치러 가면서 나는 심장이 꽤나 두근거렸다.

그날 킥킥거리며 귀담아 들었던 나의 사주풀이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은 당연히 그해 독립해서 사업(?)을 시작할 운세라는 것과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얘기였다. 어차피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이니 당분간 백수생활을 이어가며 차츰 살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방향만 잡아놓은 상태에서 누군가 <그게 니 운명이야>라고 힘주어 말해주니, 사주니 점이니 하는 거 다 미신이라고 여기면서도 어찌나 힘이 되던지 한 1년은 자투리 같은 일만 하며 준백수로 살아도 거뜬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사주보는 아저씨에게 또 한 가지 아주 신나는 말을 들었으니, 그것은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는 얘기였다. 다행스럽게도(?) 내 역마살은 계속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오긴 하는데 조금 지나면 또 엉덩이가 들썩거려 떠나고 싶어지는 쪽이라나.

해마다 어느 시점이 되면 꼭 바다가 보고 싶어 몸살이 나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안달을 내는 것도 다 내 운명이라는 훌륭한 핑계를 얻게 된 나는 그 때부터 기회만 되면 떠나는 삶을 꿈꾸며 살았던 듯하다. 적금따위는 평생 들어본 적도 없으니 원고료가 들어와 통장에 조금만 돈이 모이면 어딜 갈까 마음이 설렜고, 다양한 여행지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1, 2년에 한번씩은 <재충전용>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아 여행을 선언했다. 멋진 휴가를 꿈꾸며 일년 내내 열심히 번다는 외국인들의 삶이 곧 진리라고 여기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내 인생의 모토로 삼기도 했다. 통장잔고가 바닥나도록 여행에서 돈을 톡톡 털어 다 쓰고 돌아오면 불안감보다는 "또 열심히 벌어서 여행가야지!"라는 동기부여가 더 컸다. 남들에겐 대책없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나에겐 행복하기 그지없었던 그런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3년 전엔가 엄마가 쓰러져서 오래 병원신세를 지고 그 뒤로 좀처럼 반짝 건강을 회복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작년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이제 크든 작든 여행을 떠나려면 어린아이 맡기듯 엄마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가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에도 내 역마살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질 않고, 다만 짜증스러운 현실에 몸부림을 칠 뿐이다. -_-;; 계획대로 제주도로 떠난 지인들이 보낸 위로용 바다 사진과 메시지를 받은 순간 충동적으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지금 그 터무니 없는 생각으로 마음이 마구 설렌다. 밀린 원고고 뭐고 다 젖혀두고 작업실을 처분해 그 돈으로 유럽으로 날아가 돈 떨어질 때까지 한 달 쯤 편하게 여행다니다 올까보다 하는 생각이다. ㅋㅋㅋ

오래 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연간 5백 파운드의 고정수입이랑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5백 파운드면 꽤나 큰돈이어서 남편이나 가족에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처음 내가 작업실을 마련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5백파운드 대신에 나는 <계약금>과 <원고료>를 받을 수 있으니 가족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생기면, 비록 글을 쓸 능력은 안되더라도 더 열심히 훌륭한 번역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벌써 10개월째 거의 비워두고 있는 작업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망설이는 이유도 처음 내 능력으로 확보한 <자기만의 방>의 의미가 퍽이나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 자유의 공간을 포기하고 한달만에 보증금을 다 까먹을 생각을 겁없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하하.
그런데 생각할수록 유쾌하다. 작업실 재계약일이 지나서 일년은 또 묶여 있어야 하는지 마는지 현실적인 상황도 알아보기 전에 나는 벌써 파리엘 다시 갈까, 이탈리아와 그리스엘 갈까, 아님 프라하나 스페인엘 갈까 뭐 이런 꿈을 꾸며 벌벌 웃음을 흘린다.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만약 작업실을 포기하게 되면 그 돈을 정기예금에 넣어야 하나 위험하게 펀드를 들어야 하나 아니면 기회 닿는 대로 다시 장만해야 되니까 입출금 통장에 그냥 넣어두어야하나, 뭐 그런 경우의 수만 생각했지 홀라당 까먹고 놀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에, 억눌렸던 역마살의 발현은 지금 내게 거의 발상의 전환 수준으로 뿌듯하다.

그런데 남은 문제는...
역시나 가장 어려운 가족의 굴레다. 새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혼자임을 즐기는 인간인지 깨닫게 된다. 이런 내가 어려서 실수로라도 가족을 꾸렸으면 참 큰일냈겠구나 싶다. 지금 내가 꿈꾸는 건 분명 <가족여행>이 아니라 홀로 떠나거나 친구와 떠나는 여행이다. 자기만의 방과 홀로 떠나는 단기 여행을 바꾸려는 나는 과연 제정신인가. 생각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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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투덜일기 2008. 4. 24. 17:24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겨우 이틀 반의 자유쯤은 내게 허락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며칠 부쩍 불안해하며 딸이 자길 버리고 도망갈까봐 겁난다며 컴퓨터 방 문도 못닫게 하는 엄마를 동생네 맡기고 떠나겠다는 심보는 원래부터 욕심이었나보다. 묘한 애정의 더듬이 같은 걸 감추고 있는지, 엄마는 내가 매몰차게 홀로서기 준비를 시키면 즉각 낌새를 알아차리고 마구 흔들린다. 지난 달만 해도 며칠 여행 다녀올 테니 동생네 가 계셔도 되겠냐고 하면 얼마든지 혼자 밥 챙겨 먹으며 있을 수 있다고 장담하더니, 요샌 밖에 나갔다가 집앞에 내 차만 없어도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단다. 내가 엄마를 짐스러워한다는 걸 너무 심히 티냈다는 얘기다. 작년까지는 분명 내가 캥거루족이었는데, 이젠 내가 아주 큼지막한 뱃주머니를 매단 엄마 캥거루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엄마 캥거루가 되어야 하는 역전이 싫어서 냉정하게 주기적으로 홀로서는 준비를 시키려는 못된 딸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매일 슬프고 기운 빠지는 이유는 못마땅한 세상 탓도 있지만, 분명 내 삶의 무게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4월에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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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투덜일기 2008. 3. 9. 17:24
나그네, 참 매력적인 말이다.
사주에 역마'살'이 끼었다는 말을 굳이 듣지 않더라도 떠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물론 집 떠나면 고생이며 제 아무리 멋진 휴양지를 가더라도 편하기로 따지자면 집에서 취하는 휴식이 제일 푸근하고 달콤함을 알지만, 여행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막막함,
그리고 떠난 곳에서만 실감할 수 있는, 떠나온 곳에 대한 뭔지 모를 막연한 그리움과 깊어지는 상념 같은 것 때문에라도 나는 늘 여행을 동경하며 나그네의 삶을 꿈꾼다.
돌아와선,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중얼거리더라도 떠나지 않은 자라면 그 기분을 어찌 알까.
(키드님의 블로그 대문에 그려진 루나파크 그림을 보며, 난 늘 그걸 떠나고 싶은 자의 반어법으로 읽는다.^^ 물론 안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며칠 전 TV 채널을 돌리다 책소개 프로그램에서 또 다시 <산티아고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야고보 길>이라고도 불리는 유서 깊은 그 순례의 길은 이미 다른 다큐멘터리로도 본 적이 있었다.
2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그리 변하지 않은 유럽의 좁은 도로를 수십일간 걸어서 여행하는 나그네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솔깃하고 동시에 의아하다.
프로그램 패널로 나온 이들이 지적하기도 했지만 도보로 실크로드를 완주했다든지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누구나'가 아닌 '특별한' 사람들임에 틀림없기에 범인들의 우러름을 받을만 하다.
하지만 프랑스 어느 도시에서 스페인의 어느 도시까지 '비교적' 짧은 수백킬로미터의 길을
성자의 자취 따라 걷는 순례의 여정은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나'를 찾으려는 사람들 '누구나' 시도해볼 만한 과업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는 듯하다.
그래서 소개된 책 제목도(출판인들은 참 제목도 잘 붙이지!)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였다.

책의 지은이는 꽤나 유명한 독일의 코미디언 이라는 것 같은데(패널의 말을 인용하자면 '유재석' 정도 되는 만능 엔터테이너라나) 책을 읽어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갑자기 모든 것을 떨치고 산티아고 길로 떠났고
처음엔 그저 불평에 휩싸여 후회와 포기 사이를 오갔지만 결국 순례의 길을 마쳐 순례증서(순례 여정 곳곳에 있는 지정 숙소에서 도장을 모두 받아야만 순례 확인증서 같은 것을 받게 된다)를 받았으며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뜻깊은 기회를 누렸음을 구구절절 기록했단다.

물론 고생스러운 여행은 질색팔색하는 나로선 <산티아고 길>의 긴 여정을 애초부터 시도해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나처럼 걷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 무거운 배낭을 매고 수십일 간 걷는 여행이라니!
지인들 가운데선 팔팔한 대학생 때도 아니고 서른 넘어 국토순례도보 여행을 떠났던 이도 있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장하긴 하다만, 나는 누가 돈주고 등 떠밀어도 절대 안간다, 미쳤니?"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럼에도...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한적한 흙길을 유유히 걸으며(이때 반드시 무거운 짐은 없어야 한다 -_-;;)
길가에 핀 민들레나 들꽃도 구경하고 가끔 비라도 만나면 민가에 들러 비를 긋다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길을 떠나는 나그네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어느새 엉덩이에 슬슬 바람이 들고 날개라도 돋치려는 듯 어깻죽지가 간질간질 하여
당장이라도 떠나지 않으면 막 숨이 막힐 것 같다. +_+

물론 현실은 언제나 묵직하게 나를 다시 주저앉힌다.
떠나고 싶어서 여행기를 찾아 읽는 이들도 있다는데
내 경우 여행지를 담은 책이나 여행기를 읽거나, 여행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회를 애써 피하는 이유는
떠나고픈 나의 나그네 본능을 잠재우는 것이 퍽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족쇄처럼 올해 달력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마감일과 돌봐야 할 가족을
생각하면 유유자적한 나그네의 꿈은 여전히 사치다(어떻게 보면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물론 스스로 자초한 게으름의 결과 탓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1년 스케줄러를 휙휙 넘기다 한숨을 쉬며
다시 덮고 나니 서글프다.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더불어 나그네가 되고픈 욕망도 부풀어 오르는데 이걸 어쩌나.
이번엔 그냥 관심목록에 담아둔 책이라도 읽으며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자기최면을 걸어볼까
어쩔까 블로그와 서점 사이트만 들락날락하고 있는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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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가다

여행담 2008. 1. 28. 17:31
방방곡곡 아직 안 가본 곳이 더 많기는 하지만
경주는 내가 제주도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내 여행지다.
제주나 경주나, 그저 눈길 닿는 곳이면 다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느낌이라
갈 때마다 그 감흥이 조금씩 달라지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달까.

고등학생 때 기차를 타고 처음 찾아가 불국사 근처의 형편없는 여관촌에서 먹고자며
둘러본 경주 수학여행은 '경주'보다 '수학여행'에 방점이 찍히는 기억으로 남았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따위의 기억은 죄다 그 앞에서 60명이 빨간 모자를 똑같이 쓰고 찍은
단체사진으로 남았을 뿐이었고, 천년 고도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서의 경주 느낌 보다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기관사 아저씨를 구워삶아 객차 불을 끄고는 선생들에게 밀가루와 생닭발을 던진 일,
여관방에서 단체로 몰래 술마시다 뛰쳐나가 주정 부린 친구때문에 모든 것이 발각돼 단체기합을 받던 일,
토함산 일출을 본다며 깜깜한 새벽에  몽둥이 든 양치기에게 몰린 양떼처럼 바삐 산길을 오르다
숨이 딸려 몰래 뒤쳐진 것 뿐인데, 뒤 따라 오는 남학교 학생들과 모종의 접선(?)을 시도하려는 몹쓸 문제아 취급을 받아 억울했던 일, 모든 반찬이 비리고 짜기만 해서 너무도 맛 없었던 여관 음식 때문에 단식투쟁(?)을
하며 초코파이로 버텼던 일... 등등 주로 사고 치고 즐거워 했던 수학여행의 추억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 후 10년쯤 지나 가을 단풍이 예쁠 때 찾아간 경주는 정말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겼고
똑같은 자리에서도 나는 전혀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운 좋게도 분황사 터에서 만난 어떤 대학원생 덕분이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라던 그는 안내문을 대충 읽고 종알종알 떠들면서 몰려다니는 우리에게
국사책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모전석탑을 제대로 보는 법을 설명해주었고
유적지 한 귀퉁이에 그냥 아무렇게나 놓여 굴러다니는 바위 하나도 예전엔 어느 돌부처의 몸뚱이나 어깨였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말로 어느 마당 한 구석에 절반쯤 파묻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석상과 돌부처를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이번엔 1월이라 무료 문화재 설명 도우미도 없었고 운 좋게 신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냥 아는 만큼, 모르는 만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어설피 구경한 경주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50년만에 다시 경주를 찾은 엄마와
20년 만에 다시 경주에 간 막내, 15년 만인 올케,
10년이 조금 넘은 나, 그리고 난생 처음 경주에 가본 어린 조카의 느낌을 비교하는 묘미가 워낙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여행지에서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건
어쩌면 달라진 내 나이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통점이라면 수학여행 이후 늘 그랬듯 이번 경주여행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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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삶꾸러미 2008. 1. 24. 23:23
한파가 몰아치는 이 엄동설한에 뜬금없이 여행을 간다.
따뜻한 남반구...로 가는 것이면 좋겠지만 ^^
그것은 아니고 최소한 남쪽으로 향하긴 한다.
한가로이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보자는 막내동생네의 의견에 그러마고 대답한 게
꽤 됐는데, 그때 정해진 날짜가 하필 이번 주말이었고 공교롭게도 날씨가 협조를 안하는 것 뿐이다.
지난주말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기에 내게는 뜬금없는 여행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된 여행이기도 하다.

행선지는 경주.
온 가족이 까마득한 수학여행의 추억으로만 간직한 그곳에 나는 어른이 된 뒤에도 두어번 여행을 갔고
수학여행 때 놓쳤던 옛도시의 정취와 놀라운 볼거리에 늘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녀올 때마다 늘어지는 나의 경주 자랑에 부모님 역시 솔깃해 하셨고
고등학교 때 본 느낌과 얼마나 다른지, 불국사와 첨성대, 안압지, 석굴암, 남산의 일출 따위를
다 같이 한번 꼭 보고 오자고 우린 막연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어딜 한 번 가려면 두 동생네가 마음쓰여 그냥 나가서 밥 한 번 먹는 자리에도 결국엔 꼭 죄다 불러들여 거국적인 대사로 만들고 마는 아버지에게 부디 경주 여행은 단출하게 엄마랑 꼭 셋이 떠나자고 해두었는데
그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벛꽃 만발한 봄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경주 모습이 제일이긴 하지만
눈이 쌓였을지 어쩔지는 모르겠으나 한겨울의 경주는 나 역시 처음이라 살짝 가슴이 설렌다.
운동부족에다 체중은 나날이 늘어나 걸음걸이마저 시원찮은 엄마 역시
짐스러울까봐 걱정을 하면서도 소풍 앞둔 아이처럼 퍽 기대하는 눈치다.
엄마랑 조카들이랑 같이 아버지 몫까지 최대한 실컷 보고 먹고 찍고 돌아올 생각이다.

음... 해서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블로그 개점휴업이라고 간단히 알리려던 것인데,
늘 나의 수다는 참 길기도 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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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the Gap

삶꾸러미 2007. 8. 28. 15:47

런던에 다녀오신 해리님은 이 제목을 보시고 퍼뜩 알아차리셨으려나 모르겠다. ^^;;
런던 지하철에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던 저 말은
나중에 알고보니 런던 관광상품 여기저기에서 새겨질 만큼 독특하고 고유한 표현인듯.

처음 영국엘 간건 순전히 출장이라 남쪽 작은 항구도시의 거래처를 방문한 뒤
귀국하던 날 반나절쯤 시내를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돌아본 터라 제대로 런던구경을 하지 못했던 나는 몇년 뒤,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빌미로 파리를 거쳐 친구가 살던 런던으로 놀러갔었다.
처음과 달리 정기권까지 사들고 주로 전철과 지하철로 홀로 시내관광을 하다 저녁이면 친구를 만나 뮤지컬도 보고 저녁도 먹고 그랬는데, 지하철 문이 열릴 때 마다 방송에서 웅웅거리던 "요상한" 말을 나로선 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친구가 가르쳐주는 바람에 비로소 굵직한 아저씨 목소리가 정류장마다 "불친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바로 한국에서 흔히 듣는 "이 역은 승강장과 객차의 간격이 넓사오니 발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얼추 맞나??^^;;)의 뜻인 "Mind the gap"이란 걸 알게된 나는 거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요샌 어쩌려나 모르겠지만 심지어 'please'도 안 붙었다)
아쒸.. 그렇게 간단한 말을 못알아듣다니...
영어로 밥벌어 먹는 거 맞나 싶었던 것. -_-;; 
그러고 보니 모든 관광지의 기념품에서도 "Mind the Gap"이란 문구를 자주 본듯했다.
마지막 두 회사에서 영국 회사와 거래를 하느라 나름 영국식 영어와 발음에 익숙해졌다고는 생각했지만(말랑말랑한 미국영어만 익숙했던 나는 회사를 옮기고 나서 처음엔 거래처에서 전화만 와도 식은땀을 흘렸고, 콧소리 강한 영국식 발음이  내게는 '독일어'처럼 낯설기만 했었다) 며칠 놀러다니면서도 못알아먹은 말들이 너무도 많아 비감에 젖었던 것 같다.

벨로도 언젠가 얘기했지만
격식차린 회의 같은데서 상담하는 것보다, 시시껄렁 밥먹는 자리 같은 데서 나누는 생활영어가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처음 미국출장 가서도 직원들 사이에서 빠르게 오가는 농담들을 못알아먹고 그저 따라 웃느라 개탄하기도 했었는데, 시기적으로 훨씬 전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Mind the gap"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단순한 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I will." ^^;;

미국인들이 낯선이들에게 수시로 말을 걸고 친절하게 대하며 먼저 인사를 하는 건
총기난사와 무시무시한 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난 너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밝히던 수단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암튼 미국인들은 괜히 인사하기를 정말로 즐긴다. -_-'''

건물 로비를 지나든 백화점을 서성이든
꼭 누군가 "Have a nice day."또는 "Enjoy your day." 정도의 인사를 건넨다.
("Hi"나 "Hello"라고 인사를 걸어주면 물론 아주 고맙다. 대꾸도 똑같이 하면 되니까^^)
보통은 OK나 All right, thanks, You too 정도로 답하니 나도 따라하는데
간혹 인간들이 대꾸하는 말을 나로선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웅얼웅얼 얼버무리듯 지껄이고 지나가는 그 짧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느라 나는 참으로 오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뭐 결국엔 동료 직원에게 물어서 그 대답이 "I will."("즐거운 하루 보내라" -- "그럴게" 정도의 대꾸였던 것!)이란 걸 알게됐지만, 그땐 참 심정이 어찌나 참담하던지.
유심히 살펴보면 천편일률적인 대꾸를 싫어하는 영어권 인간들은 단순한 인삿말에도 참 다양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How are you?"에 대하여 "I'm fine, thanks. And you?"라는 판에 박힌 대꾸가 뇌리에 박혀버린 우리네와는 퍽 다르게 말이다. ^^;;

회사일이나 영어수업, 여행 때문에라도 영어를 가끔이나마 씨부리고 살았던 게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 같다.
그나마 정민공주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영어는 매일매일 씨부려줘야 안까먹는 거라고 당부하면서 나는 단순한 말조차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심하게 엉켜 버벅댈지라도 문득 여행이 떠나고프다.
영어가 공식언어라면서도 영어를 쓸 필요가 완전히 없었던 "필리핀" 같은 데 말고 ^^;;
(여행사 따라 간 덕분이기도 했지만, 거기 사람들 한국말 잘도 하더라)
또 다시 언어 때문에 내 뒤통수를 툭 쳐줄만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먼나라로 말이다.

파리에서 작은 호텔이라 종업원조차 영어가 안통해 45가 프랑스어로 무언지 친구 남편에게 전화로 물어 겨우겨우 "실부쁠레 샹브르 꺄트르쌩끄"(나름 "45호실 부탁합니다"라고 한 말이었다 ㅋㅋ)라고 한 담에야 친구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던 진땀나는 기억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와 한동안 프랑스어를 열공하여 제대로 프랑스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둔 기초 프랑스어 책이 어디에 있더라??? +_+  

헉.. 그때가 벌써 9년 전인가 보다.
오 유럽유럽...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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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삶꾸러미 2007. 6. 4. 02:44
바다를 왜 그리워하는지 도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싶어질 때가 있다.
막상 가보면 또 그렇게 물밀듯 감동이 밀려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머릿속에서 아련히 그리움을 피워올리는 바다에 대한 동경은 잊을만 하면 한번씩 옆구리를 쿡쿡 쑤신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 살아서 원래 다들 그런 건지 어쩐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인들 가운데선 정말로 불쑥 바다 보러 가자고 들쑤시는 이들이 꽤 되는데
그 주기가 다행히도 내 바다 지병(?)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5월 마지막날엔 바다를 보러 갔었다.
가끔은 철썩거리는 짙푸른 동해 바다를 '콕' 찝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찝질하고 비릿한 바닷내음과 모래사장과 드넓은 수평선과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에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가까운 서해 바다를 찾을 때도 많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다색도, 모래사장도, 파도의 크기도 거칠고 크고 깊은 동해바다는 늘 도도하게 거기 존재하고 있을 뿐 나를 딱히 반겨주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바라보러만 간 게 아니라 바다에 뛰어들러 간 한 여름에도 동해 바다의 소름끼치는 차가움은 나에게 더 가까이 오지 말라고 등을 떠미는 듯한 쌀쌀맞은 친구 같다.
새로 뚤린 영동 고속도로 덕분에 시간이 빨라지긴 했어도, 역시나 거리면으로도 동해는 내게 쉬운 범접을 거부하고 있질 않겠나.

어린시절부터 서해바다로 여름 피서를 다녔기 때문에 친근하고 아련한 추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암튼 나는 서해 바다가 훨씬 더 정겹고 편해서 어느 계절에 찾아가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친척 할머니 같다. ^^;;
썰물때 운동장처럼 넓게 드러난 서해 바다의 모래사장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신비의 체험장소이고, 또 아무리 바다로 걸어나가도 허벅지 깊이를 넘기기가 어려운 서해 바다에선 물도 워낙 따뜻해서 서툴게나마 수영도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를 넘어 나에겐 일석 오조쯤 되는 듯하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지리적으로 서쪽인 우리집에선 몹시 가깝기도 하니까!

하여간 바다 지병이 도진 지인들과 아침부터 서둘러선
커피와 쿠키, 과일 정도만 조촐하게 싸가지고 영종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의도와 을왕리엘 다녀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배도 타야하는 무의도엔 '하나개' 해수욕장이라는 예쁜 해변이 있다.
대체 왜 이름이 '하나개'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엔 동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곳에 꽤 '위험한' 개울이 하나 바다로 흘러들었단다. 그래서 '하나개' 해수욕장이 됐다는데
우린 좀 더 그럴듯한 전설을 상상했던 터라 조금 실망이었다. ^^
세련되게 가꾸어진 곳도 아니고 (천국의 계단 촬영지로 꽤 알려지긴 했다더라) 편의시설이 많지도 않지만, 돗자리 하나 그늘막 하나 싣고 떠나서 바닷가에 누워 한가로이 수다떨다 보면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든다. (영종도에서 무의도로 건너갈 때 자동차는 뱃삯이 무려 2만원이나 하고 운전수 뺀 나머지 인원도 두당 2천원씩 더 내야 하는데도, 일년 내내 해변 입장료를 두당 2천원씩이나 받아서 좀 얄밉긴 하다;;)

때 이른 피서라기 보다는 그저 바다를 보러 간 것이었는데
멀리까지 빠져나간 썰물에 드넓은 모래사장을 밟으며 바다를 만나러 나가보니 물이 너무 따뜻해서 첨벙 빠져들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로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은빛 비늘 일렁이는 바다를 실컷 보고 돌아오며 '지병'을 다독거린 우리 넷은 행복하게 또 몇달 살아갈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아 참으로 흐뭇했다.
꼭 바다를 보고와야만  충전되는 에너지 저장소가 내 몸안 어딘가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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