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인 아님'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8.01.12 파랑이 여동생 2
  2. 2017.10.26 미필적 고의 10
  3. 2014.03.03 아래층 남녀와 하얀 개 2
  4. 2012.10.04 추석 맞이 식겁 8
  5. 2012.01.16 결국 개를 쫓아냈다 12
  6. 2012.01.09 동물 생각 13
  7. 2011.05.26 이웃 복도 복 4
  8. 2011.02.21 파랑이의 수난 26
  9. 2010.11.23 개 혐오주의자의 개 관찰 10
  10. 2010.08.22 헉 개가 돌아왔다 6

파랑이 여동생

투덜일기 2018. 1. 12. 21:17

벨로의 반려묘 귄이와 여동생 고양이 쥬비의 소식과 사진을 간간이 접하며 나도 모르게 슬몃 미소를 짓는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고양이는 쳐다보는 것도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귄이 등을 쓰다듬었던 그 감촉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털이 꽤나 빳빳한 느낌이라 의외였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파랑이의)개털이랑 확실히 달라!

암튼.. 큰동생네 개 파랑이에게도 얼마전 여동생이 생겼다. 이름은 라거. 보리 빛깔이라서 맥주가 연상되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귀여운 암컷 강아지에겐 좀 안어울리는 듯도 하지만, 뭐 내가 인간도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하듯 남성적인 이름을 지닌 암컷 골든리트리버를 누군가는 멋지다고 해주기를. ^^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커지는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기로 한 동생네의 결정에 일단 우려를 금치 못했지만 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뒷말을 하겠나. 다만 중성화 수술을 했으되 수술 직전에 딱 한번 짝짓기의 맛(?)을 본 터라 가끔 수컷의 본능인지 인형에게 수상쩍인 부비적거리기를 시전하는 파랑이는 어쩌라고 여동생 강아지를 들여왔나, 파랑이가 좀 불쌍하긴 했다.

다행스럽고 기쁜 건 귀여운 새 반려견이 들어오면서 온 가족이 똘똘뭉쳐 파랑이와 라거를 같이 챙기며 마구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애견 펜션엘 갔다질 않나, 파랑이와 라거를 조카 둘이 서로 자기 새끼라며 각각 데리고 잔다질 않나, 새로운 강아지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편애를 아이들이 나름 알아서 보완해주는 모양이다. 기특한 녀석들. 



Posted by 입때
,

미필적 고의

투덜일기 2017. 10. 26. 04:02

엄마네 집 아래층 101호 아저씨가 우리한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뒷마당에 시커먼 래브라도리트리버를 기른지 1년이 넘었다. 이사 오던날 '맹인 안내견'이라고 울 엄마한테 이야기했다는데, 알고보니 그건 진짜로 그 개가 맹인안내견 역할을 한다는 게 아니고, '맹인 안내견으로 쓰이는 품종'이라는 말이었던 듯, 그 개는 늘 뒷마당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처음 적응기에 동네 길냥이들과 밥그릇 다툼을 하면서 밤중에 컹컹 울어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녀석은 조용히 있는듯 없는듯 시끄러운 소음을 내진 않았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느냐! 그건 물론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덩치로 넓지도 않은 마당 한 귀퉁이에 묶여 노상 오줌을 갈겨대니 그 악취가 ㅠ.ㅠ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바로 옆102호 세입자와 싸움이 나기도 했다. 101호 세입자가 자기네 집 앞쪽도 아니고 왜 남의 집 안방 창문 딱 열면 보이는 뒷마당에 그 큰 개를 묶어놓았느냐고, 악취 때문에 여름에 문도 못 열어놓는다고... 경찰에 신고도 하고 구청에 민원도 넣어 공무원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경우 딱히 무슨 제제 방법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암튼 102호 살던 세입자는 얼마 전 이사를 나갔고, 그집엔 다시 갓난아기와 반려견 한 마리를 키우는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주로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아주 가끔 새벽에 응애응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릴 뿐, 온 동네 개판 느낌의 소음으로 나를 괴롭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월요일 저녁, 왕비마마와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늘 뒷마당에서 고개만 삐죽 내밀고 오가는 우리를 쳐다보던 녀석이(이번 개는 이름도 모른다. 아래층 아저씨가 안 가르쳐줬다;;) 앞마당 계단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주차를 하는 사이 먼저 내려 계단을 오르시며, 개를 무서워하는 왕비마마는 저리가라고... 할머니는 개 싫어해! 그런 얘기를 녀석에게 중얼거렸다.

그간 우리 모녀는 아래층 101호 아저씨를 꽤나 욕했다. 아니 개를 키우려거든 맨날 운동도 시키고, 목욕도 자주 시키고 냄새나는 오줌도 잘 처리해야지 맨날 묶어만 놓고 뭐하는 짓이냐고, 개 키울 자격이 없다고... 말이다. 주인이 혹 사료 주는 걸 잊은 날인지, 한밤중에 스텐 밥그릇을 발로 차 소리를 내며 배고픔의 시위를 벌이는 적도 간혹 있었기 때문에(조카네 개 파랑이가 밥그릇과 물그릇이 비면, 발로 땅~ 차서 소리를 내는 걸 봐서 같은 행동으로 짐작했음;;), 게으른 아저씨가 밥도 잘 안챙겨준다고 우린 굳게 믿고 있었다.  

앞마당에 나와 있는 녀석을 본 순간, 어라 우리가 오해했나? 저녁마다 운동 시키는 시간인가? 아니면 대변을 보게 풀어주는 시간인가? 데리고 나가려고 일부러 풀어준 건가? 주인은 잠깐 집에 들어갔고? 뭐 이런 생각이 차례로 뇌리를 스쳤다.

실제로 맨날 깜깜하게 불이 꺼져있던 아래층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좀 불안했다. 주인이 개를 풀어준 게 아니고, 그냥 끈이 풀려서 녀석이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면 어쩌지? 개끈 풀렸다고 아래층 사람한테 이야기를 해줘야하나? 아니지, 괜한 오지랖이면 민망하잖아! 

시커먼 그림자 같은 녀석은 계속해서 앞마당과 화단을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귀찮아. 나는 아래층 현관을 두들겨 말을 해줄까 말까 약 15초쯤 망설이다, 대인기피증이 도져 그냥 2층으로 올라와버렸다. 

맹인 안내견을 할 만큼 똘똘한 녀석이면 끈이 풀렸더라도 뭐 어딜 가진 않겠지. 가면 또 어때! 맨날 묶여서 제 자리에 똥오줌만 싸고 있느니 자유롭게 떠나서 새 주인 만나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 그럼 드디어 우리도 지독한 개오줌 냄새에서 해방될 거야... 금세 내 머릿속에선 이런 고약한 상상까지 펼쳐졌다.

그러고는 오늘 수요일. 외출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검정 개가 정말로 안보인다고 개 끈 풀렸던 그날 도망간건가? 아니면 주인이 그날 어디 딴 데로 데려다준 건가... 개 끈 풀렸다고 101호에 얘기해줄 걸 그랬나... 중얼중얼했다.

으음. 아마도 이런 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유기? 뭐라고 불러야하지? 내가 주인도 아닌데 유기는 아닌 것 같고? 방치? 아래층 아저씨는 개가 없어진 걸 알고나 있을까, '개를 찾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도 붙이지 않았다는데,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는 건가, 진짜로 없어진 게 아니고 딴 데다 데려다준 걸지도 모르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일말의 책임감과 죄책감이 든다.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간 강아지는 며칠 안에 주인 못 만나면... 으으. 찜찜하다. 가뜩이나 이웃집 개에 물린 뒤 패혈증으로 숨진 사건으로 모든 반려견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 요즘, 진짜로 끈이 풀려 도망 나간 거라면 덩치도 큰 놈이 홀로 돌아니며 위협적으로 보일텐데 싶기도 하고. 아무튼 진실을 모르니 결론은 나지 않는 혼자만의 고민이다.  

그나저나 글도 잘 안올리는 블로근데 여기 조회수 왜 이러지? 티스토리에서 뭔가 야로를 부리나? +_+  

Posted by 입때
,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생각만 하며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리는데 딸깍. 현관 자물쇠 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엄니 벌써 나갔다 들어오시누만. 점심 때나 되서야 일어나는 게 민망해 얼른 이불을 벗어났다. 점심상 차려바치려면 서둘러야겠군. 근데 현관 자물쇠가 열리고도 도무지 노친네 올라오시는 소리가 안들렸다. 뭐지? 꾸물꾸물 우편물 챙기시나? 어랏, 현관문 앞에 보여야할 그림자가 사라졌다. 우편물도 아니고 뭐람? 마당 쓰는 소리도 안들리는데...

 

오랜 정적에 호기심을 못 이기고 베란다 창으로 내다보니 귀가하던 노친네가 다시 집앞 계단 아래 골목에 서서 야쿠르트 아줌마랑 소곤대고 있었다. 뭐래... 또 우유 바꿔먹으라고, 혹은 야채주스 배달해 먹으라고 설득당하시는 중인가? 암튼 왜 안올라오나 알았으니 부리나케 우동을 끓였다. 새벽에 밤참을 대충 먹은 탓인지 일어나 돌아다니자 마자 돌연 허기가 느껴졌다. 설마 우동 다 끓이기 전에는 올라오시겠지...

 

그릇에 우동을 담아 점심상 차리기를 마쳤는데도 노친네 기척이 없어 공복으로 인한 분노가 버럭 치밀려는 찰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올라오느라 숨을 헐떡거리던 노친네는 숨도 채 고르기 전에 방금 들은 정보를 내게 쏟아놓았다. 하도 드나드는 기색이 안 보여, 남자는 밤근무를 하는 사람이고 아마도 여자는 지방에서 오가는 젊은 주말부부일 거라고 나름대로 우리가 상상했던 아래층 남녀에 대한 정보였다. 나는 아직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여자는 '조기 언덕 너머 아랫집'에 사는 아무개네 딸이고, 남자는 그 여자의 남자친구인 모양이다. 안 그래도 말 많고 참견 많은 야쿠르트 아줌마는 동네 창피하게 어떻게 애인을 몰래 이웃에 불러들여 동거를 하느냐고, 잔뜩 흉을 봤다는데(울 노친네도 맞장구를 친 눈치;;), 남자친구 자기네 동네로 이사하게 한 게 뭐 어떻다고 난리?

 

남자친구 집에 드나드는 게 무슨 동거냐, 설사 동거라 쳐도 요샌 살아보고 결혼하는게 추세인 걸 모르냐, 젊은이들 너도나도 세상 팍팍해 결혼 안하는 게 유행인데 동거라도 하면 땡큐지 뭘, 대부분 수십년씩 붙박이로 살고 있는 이웃 사정 너무 잘 안다고 오히려 흉보고 다니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나쁜 거다, 라고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노친네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야쿠르트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방금 여자가 개 안고 들어갔으니 확인해보라고;;) 우편물 핑계로 아래층 여자와 대면을 하고 온 듯, 노친네는 아래층 여자 얼굴이 이상하게 생겼다는 둥, 아니 마당에 매어둔 개도 건사 못하면서 집안에서 개를 또 키우면 어쩌냐는 둥 다시 구시렁거렸다. 엄밀히 아래층 남녀가 울집 노친네에게 미운털이 박힌 건 바로 그 하얀 개 때문이었다. 올케가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귀엽다고 자지러질 만큼 예쁘게 생긴, 삽살개를 닮은 하얀 개가 작년 가을부터 다시 우리집  뒷마당에 터를 잡았는데, 아래층 남자 출퇴근이 일정하질 않은 건지 암튼 울 엄니가 볼 때마다 그 귀여운 개가 똥이 가득 깔려 발 디딜 틈도 없는 펜스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는 것. 며칠 째 사료와 물이 바닥 나 없을 때도 많고! 하지만 서로 얼굴을 봐야 뭐라고 한마디 할 텐데, 통 마주칠 수가 없어 노친네가 전전긍긍하는 걸 (애완견 굶기고 똥 안치워주는 건 학대라고 신고할 수 없는 거니? 냄새나게 개똥은 왜 안치워?! 뒷마당이 지네 혼자 쓰는 건가?)  보다 못해 내가 또 다시 '메모지' 신공을 발휘한 적이 있었다. 악취 문제로 괴로우니 개똥은 제발 수시로 치워주길 바란다고 적어서 문앞에 붙여놓았던 것. (차마 개 밥 잘 챙겨주라는 참견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개는 통 짖는 법도 우는 법도 없이 얌전해서 드나들며 문득 없어졌나 들여다봐야할 정도인데다 축 쳐진 귀가 생긴 건 또 얼마나 귀여운지 큰올케는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자기가 당장 데려다가 기르고 싶다고, 족보 있는 개 같다고 안타까워했었다. 잘 생긴 개를 관리 통 안 해줘서 털은 회색으로 변해 마구 엉키고... 얼마 전 겨울엔 글쎄 아래층 남녀가 직접 개털을 확 깎아놓은 적도 있었다. 깎은 털을 치우지도 않고 마당 한 구석에 수북하게 쌓아놓아 우린 눈이 온 줄 알았음. ㅠ.ㅠ 털을 깎았으면 옷이라도 입혀주지 분홍 살갗 비치게 그냥 놔뒀다고, 엄동설한에 얼어죽으면 어쩌냐고 노친네는 개 근처에 얼씬도 못하면서 나더러 개집에 담요를 더 깔아주라는 둥, 우리라도 강아지 옷을 사다 입혀줘야 되는 거 아니냐는 둥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나더러 어떻게 개 옷을 입히라고? 더구나 그 개 이름도 모르는데... +_+

 

아무려나 계속 그 집 개 때문에 속을 끓였던 터라, 아랫집 여자가 안고 있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엄니는 "어머나, 개가 또 있네요..."라고 말했다나. 그나마 고무적인 정보는 곧 마당의 큰개를 어디론가 보낼 거라는 예고였다. 그나마 다행. 그런 인간들은 개를 키울 자격도 없다고, 개 혐오자를 자처하면서도 노친네는 한동안 또 개 걱정을 했다. 짖지도 않는 똘똘한 개가 주인 잘 못만나 생고생한다고... 그에 비하면 파랑이(조카네 개)는 엄청 호강하는 거라고.  

 

그러고는 개를 마당에 묶어놓고 거의 방치하는 주제에 또 개 훔쳐갈까봐 염려되는지 개집 앞에 CCTV는 달아놓았다고, 아래층 남자가 타고다니는 호피무늬(!) 오토바이(정확히 말하면 스쿠터다)도 그게 뭐냐고 날나리 같다고, 정화조 청소했다고 말한 지가 언제인데 가구당 분담금 만오천원 아직도 안 내놓았다고, 우편물도 왜 꼭 챙겨서 문앞에 꽂아줘야 들여가냐고, 노친네는 끊임없이 아래층 남녀를 흉봤다. 내가 보기엔 다 그들이 하얀 개를 제대로 건사 못한 잘못에서 비롯된 미운털 값이다. 그러니 하얀 개가 없어지고 나면 노친네의 미움도 사그라들겠지.  

Posted by 입때
,

추석 맞이 식겁

삶꾸러미 2012. 10. 4. 09:00

추석 전날, 식탁에서 엄마랑 동생은 밤을 까고 나는 나물을 다듬는 중이었다. 명절은 자기에게도 잔칫날임을 잘 아는 조카네 개 파랑이, 꼬리를 흔들며 여기저기 기웃거려봐도 아직은 먹을 것도 없고 퉁박만 받기 일쑤였다. 자꾸만 다리에 기어올라 아양을 떠는 녀석에게 저리 가라고 이르고는 주방으로 뭘 가지러 갔던가. 우연히 나는 파랑이가 식탁 밑에서 뭔가를 집어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침 개주인인 큰동생 내외는 빠뜨린 물건을 사러 외출 중이었는데, 잠시 뒤 파랑이가 갑자기 컥컥거리기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식탁 밑으로 떨어진 밤껍질을 낼름 주워먹은 듯했다. 개문외한인 나와 막내동생이 보기엔 녀석이 숨을 못쉬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린 조카가 목부분을 어루만지고 입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소용없는 일. 사람이면 뒤에서 껴안고 상복부 마사지라도 한다지만, 개는 그럴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파랑이는 입도 못 벌리고 그릉그릉 캑캑 괴로워했다. 하필 주인도 없는데! 

 

버둥거리는 파랑이를 안고 동생과 나는 다급히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막내동생은 얼마 전 친구 가족들과 놀러갔었는데, 그날따라 아픈 개를 집에 두고 갈 수 없어 함께 데려왔다는 친구네 개가 시름시름 앓다가 새벽에 결국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며 심난해 했다. 입도 못 벌리고 몸부림치던 파랑이는 다행히 차에 타고 가는 도중 입을 벌리고 캑캑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추석연휴라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동물병원은 열려 있었고, 의사에게 파랑이 상태를 이야기하니 그나마 밤껍질이라면 다행이라고 했다. 똥으로 나올 확률이 높은 거라서 외과적인 수술까지는 필요없을 것 같다고.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자면서 석장이나 찍었는데, 밤껍질은 또 엑스레이에 안나오는 이물질이란다. 일단 식도에선 넘어갔으나 이물질에 놀란 위가 약간 뒤틀려 있는 상황이고, 지켜보아야 알 수 있으니 소화를 돕는 주사 2대를 놔주겠다고. 어휴...

 

우린 완전 식겁해서 벌벌 떨었는데 전화로 소식을 전해들은 개주인은 가끔 뭘 잘못 삼켜서 좀 그러다 마는데 뭐하러 병원까지 갔느냐고 천하태평이었다. 우쒸! 우린 진짜로 파랑이 숨넘어가는 줄 알았단 말이다! 명절 앞두고 웬 난리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순간적으로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 쓰고 앉았던 것도 모르고 나 원 참. 원래도 파랑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최대한 불쌍을 짓고 바들바들 떨면서 모두에게 사랑의 손길과 맛있는 것을 갈구하는 놈이다. 해서 바들바들 떠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집에 와서도 약간 몸을 뒤채며 경련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밤껍질이 위와 장의 벽을 긁어대면서 빠져나갈 거라 토할 수도 있으니, 수의사는 문제 생기면 다시 병원에 데려오라고 말했었다. 잔칫날 앞두고 파랑이도 나름 포식의 꿈에 부풀어 있었겠으나, 놀란 위에 인간의 음식이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 요주의 애견인들에게 신신당부를 해두었고, 결국 추석날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나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애완동물은 정말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님이 확실하다. 엄청난 병원비도 그렇고(4만7천원!), 말도 안통하는 애들이 어딘가 모르게 아프면 무서워서 어쩐담.

 

요번 추석엔 노동의 후유증이 어찌나 강렬한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미 몸이 막 늘어지고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바닥난 체력탓 수면부족 탓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아마 본격적인 노동도 하기 전에 파랑이 때문에 식겁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다. 명절 노동의 최소화를 위하여 그나마도 온 친척들이 저녁까지 내리 먹고 버티던 악습을 걷어치우고,  점심 먹고 헤어지기로 결정한 지 수년째. 하도 길이 막혀 15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려 집에 돌아와선 다 저녁 때가 됐거나 말거나 곧장 쓰러져 자버렸는데 열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도 온몸이 결렸다. 머리는 또 왜 지끈지끈 아픈지 좀 서러울만큼 연휴 내내 힘이 들었다. 볕 좋은 가을날씨 즐길 틈도 없이 연휴는 다 가버렸는데, 묵직한 몸은 여전하다. 오늘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 이러면서 기운내려고 용쓰는 중.

 

 

Posted by 입때
,

신경이 끝까지 곤두선 어느 순간에는 확~ 살의를 느낄 정도로 미워하던 개였건만 막상 쫓아내는데 성공을 거두고 나니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어쨌든 주말부터 동네엔 평화가 찾아왔고, 나도 더는 개짖는 소리 때문에 작업의 흐름이 끊겼다는 핑계를 들이댈 수가 없게 되었다. 다 잘 된 일이다... -_-;

사건 해결의 전말은 이러하다. 컹컹 짖어대는 송아지만한 아래층 똥개의 횡포에 대하여 나는 무던히도 참다 참다, 지난 여름부터 진지하게 소음과 위험성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한번은 개끈 쇠사슬이 풀려, 차에서 내리던 나를 향해 정면에서 짖어대는 놈을 발견하고 도로 차에 올라타 몸을 숨긴 적도 있었다.) 이미 개 문제를 제기한 다른 이웃들과의 불화를 지켜보매, 큰소리로 항의하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인간유형임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작전상 나는 아래층 아저씨에게 사정하는 말투로 부탁했다.

1년이 넘었음에도 볼 때마다 하도 짖어대니 무서워서 내 집을 잘 드나들 수도 없고, 물려 죽는 꿈까지 꾸었을 정도며, 가장 중요하게는 번역작업에 심히 방해가 된다고. 주로 아침에 자는 사람이라 안면방해가 된다는 말은 부러 하지 않았지만, 문자 오는 소리에도 잠을 깨는 인간인지라 하루하루가 정말 괴로웠다. ㅠ.ㅠ  내 이야기를 들을 땐 금방 조치를 취해줄 것처럼 말만 앞세우던 아래층 아저씨는 매번 자기네 딸들의 안전을 위한 방법견 목적을 빌미로 약속을 어겼다. 한번은 본가인 이천에 보내겠다고 했었고, 두번째는 전기충격기 목줄을 달겠다더니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12월 초 내가 또 한번 개 문제를 꺼내자, 개주인은 그럼 외부인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건물앞에 철제대문을 만들어 세우자는 의견까지 냈다. 자기네 두 딸 때문에 방범문제에 대한 우려를 버릴 수가 없다나. (이 동네 30년 가까이 살았어도 도둑 한번 없던 동네라니깐! 실수로 현관문 안 잠그고 외출 다녀와도 아무일 없었다고!) 나로서야 일단 개만 없애준다면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동의했다.(물론 속으론 울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아래층 가족 구성원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아침 일찍 나간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집을 비워두기 일쑤고 우편물이며 택배는 노상 오던데, 그럼 그 때마다 나더러 저 아래 계단까지 현관문 대문 차례로 열어주고 우편물 및 택배 관리인까지 하란 말이냐?) 허나 세입자 입장에서 언제까지 살지도 모를 집에 한두푼도 아닌 대문설치 비용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는지, 대문 건은 흐지부지 무산되었다.

그렇게 또 한달여 속만 부글부글 스트레스를 받던 지난주 수요일, 온종일 빈 밥그릇을 발로 차고 팽개치며 미친듯이 짖어대던 아래층 똥개의 횡포는 밤 10시가 다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주말에 집에 주인이 있을 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짖는 빈도수나 시간도 좀 주는데, 온종일 집이 비어있는 날엔 아무 이유없이 길길이 날뛰며 짖어, 나의 살기를 돋우는 녀석이었다. 그날도 내가 두번이나 내려가 호통을 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는 곧장 구청에 민원신고를 할 것인가 한번 더 대화를 해볼 것인가 고민하다--아 일단 개주인을 만나야 이야기를 하지!--편지;;를 썼다.

강력한 경고문을 쓸까 했으나, 아예 얼굴 안보고 살 것도 아니고 일단은 또 한번 인정에 호소해보기로 했다. "정말로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번역작업에 심히 지장이 있으며, 현재도 원고마감에 힘쓰고 있는데 오늘 같아선 정말 일을 하기가 힘들다. 가족 모두 외출 기간이 길어 개를 통제해줄 사람이 없으니, 외출할 때는 입마개를 해놓고 나가는 건 어떠냐. 부디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주시길 빈다." 작년에 출간된 책도 적겠다, 내가 그간 얼마나 일에 지장을 받았는지 실제로 인터넷 서점에 확인해보라며 내 이름이 인쇄된 책 한권(학생과 직장인인 듯한 그 집 딸들도 확실히 알 만한, 제일 잘 팔리고 유명한 '그' 책)도 동봉해 그 집 현관문 앞에 놓아두었다. 
 
인쇄된 이름의 힘을 빌다니(아날로그형 손편지의 힘이 좀 더 컸기를 빈다) 꼼수를 쓰는 것 같아 약간 찔리기는 했지만, 정말 나는 이번 편지와 읍소로도 해결이 안되면 이를 악물고 구청과 파출소에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신고하고, 개 짖는 소리의 소음도를 측정해 주거권 피해 사례로 볼 수 있을지 전문가에게 알아볼 작정이었다. (실제로 똥개의 짖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과 녹음 파일도 갖고 있다 -_-v) 더는 못 참아! 헌데 바로 그 다음날 아침, 개주인이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알겠다고, 주말에 개를 치우겠다고 선선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전날 밤까지 거의 악에 받쳐 있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고맙다, 죄송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돌아서서는, 혹시나 개주인 아저씨가 또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염려와 달리 개는 토요일 오전에 정말로 모습을 감추었다. 다만 찜찜한 것은 마당 한구석을 매일 한강으로 만들며 놈이 싸질러놓은 오줌이 얼어붙은 자국과 함께 개집과 파라솔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_-; 예전에도 본가에 갔다줬다가 다시 데려온 적 있었는데 설마 또 그러려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올해 나의 첫 쾌거는 골칫덩어리 똥개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Posted by 입때
,

동물 생각

투덜일기 2012. 1. 9. 17:20

지난 금요일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황제펭귄 편을 보며 정말 어찌나 울었는지, 머리가 다 지끈거렸고 눈을 자꾸 문질러댄 탓에 다음날 눈이 탱탱 부었다(경험상 눈물을 안닦고 그냥 질질 흘리며 울면 자고 나서도 눈이 덜 붓는다).  그간 동물은 몰라도 인간의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는 것들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사회가 철저히 교육하여 얻어낸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에 심히 동조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영하 60도씩 내려가는 남극의 겨울에 하필 알을 낳아서는(그래야 천적이 없고, 새끼들이 봄에 성장하기 좋기 때문이라나;;), 어렵사리 옮겨받은 알을 발등에 올려 배에 품은 채 두세달씩 꼼짝 않고 알을 부화시키는 아빠 펭귄을 보노라니 경이롭다 못해 눈물이 줄줄 났다. 요즘 인간은 걸핏하면 자식을 아무데나 버리고 도망갔다는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던데... 황제 펭귄은 실수로 놓쳐버린 알이나 새끼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 터지고 딱딱해져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다시 배에 품으려 했다. 심지어는 알과 비슷한 크기의 얼음덩어리라도.

마침 다음날 아침 절에 갔다 돌아오던 엄마는 절집 앞 골목에서 태어난 지 며칠 안된 것 같은 새끼고양이 세 마리를 보았다며, 노란 줄무늬가 있는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추운 길바닥에서 무얼 먹고 한겨울을 날지 걱정이라고 했다. 한 마리 데려다가 키웠으면 싶은 생각도 들었을 정도라고. 엥? 엄마가 애완동물을? 그것도 길고양이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 내다놓으면 죄다 뜯어놓는다고 욕하시더니 새끼에 대한 태도는 다른가 보았다. 그렇지만 엄마나 나나, 집에 함부로 애완동물을 들여 키울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밥 챙겨줘야지, 똥오줌 치워야지, 씻겨야지, 예방접종 시켜야지... 아우 다 귀찮아! 게다가 겁이 많아서 새끼고양이라고 해도 덥썩 집어 안고 올 용기도 없었을 테고. 새끼 고양이들이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날 것인지 그건 안타깝지만, 누군가 데려다가 키워준다면 좋겠지만, 그 책임을 기꺼이 내가 나눌만한 용기는 없다. 정말로 가족처럼 반려동물을 키울 자신과 다짐이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시작도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에게 애완견 한마리를 사주었는데, 태생이 얌전한지 계속 잠만 잔다던 그 강아지가 병이 나서 계속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병원에선 계속 오늘내일이 고비라고 한대고, 부모님 입원했을 때도 매일 안찾아뵙던 병원을 꼬박 며칠째 빠짐없이 들여다보며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중이란다. 짐승도 작고 약한 애들이 더 사랑을 받는다는 건 알지만, 처음 친구가 강아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자랑했을 때부터 나는 심술이 났다. 하필이면 인간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일부러 작고 약한 아이들을 교배하여 컵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든 강아지를 왜 굳이 선택했는지? 수요와 공급 중 어느쪽이 먼저인지, 파는 사람이 잘못인지, 사는 사람이 잘못인지 원론적인 이야기를 파고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강아지들은 핏줄도 너무 약해 어디가 아파 주사를 꽂으려 해도 핏줄이 죄다 터져버릴 정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배에서 태어나도 어쩌다 약한 애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부러 사람 보기 귀엽고 앙증맞으라고 열성인자만 애써 모아 탄생시켜, 수명도 턱없이 짧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강아지를 머그잔에 쏙 들어간다고 한껏 자랑하면서 애완동물로 파는 건 파렴치한 죄악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그저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에 자기가 먹는 음식을 자꾸만 나눠주는 이들도 있다. 특히 우리 큰고모. -_-; 같이 늙고 병들어가는 처지라 불쌍하다면서 고모는 이미 십여년 전부터 그 개에게 온갖 음식을 '지나치게' 싸다 먹였고 결과적으로 현재 그 못생기고 늙은 개는 이미 수술도 몇차례 했대고, 비만에 관절염, 백내장 뿐만 아니라 아직 달고 있는 병명이 수두룩하다. 개들은 땀 배출 능력이 없어서 염분 많은 인간의 음식은 치명적이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팔순 큰고모의 핑계는 늘 같다. 먹을 거 달라고 이렇게 꼬리를 치고 아양을 떠는데 불쌍해서 어떻게 안 주니! 어휴... 고모는 늙으셔서 그렇다 치고, 젊은 사람들 가운데도 심지어 키우는 강아지가 너무 오래 살면 안된다면서(농담인지 진담인지!!) 일부러 간간한 인간의 음식을 먹이는 이도 있다(이 글 읽고 있다면 반성해라. 바로 당신 말이야!! -_-+++). 그러다 나중에 병들어서 아파할 땐 어쩔 거냐고 옆에서 호통을 치면서도, 정말 아무나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참으로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인간들. 하긴 나도 조카네 파랑이한테 먹다 남은 양념 고기 준 적 꽤 있다. 나는 동물혐오자니깐 뭐... -_-aa

한번 장가까지 들러 색시네 집에 다녀왔느나 2세 출산에 실패했던 파랑이는 결국 며칠 전 중성화수술을 했다. 배 밑엔 붕대를 붙이고 목둘레엔 투명한 삿갓 같은 깃을 두르고 있는 파랑이를 보노라니 만화에 나오는 애 같다고 놀리다가 문득 측은했다. 개는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서 가장 교활하게(?) 진화에 성공한 동물이라는 설도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 그렇게 편히 사료를 먹고 재롱을 부리며 같이 사느라 본래의 구실도 못하도록 변형되는 삶은 진정 행복할까. 이웃에 시끄러울까봐 성대수술을 해주는 애완견들도 그렇고, 별 생각없이 들였다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슬쩍 내다버리는 유기견들도 그렇고, 막 기르다 잡아먹히는 잡종견들도 그렇고, 음식쓰레기 봉지 뜯어먹고 살다가 염분 때문에 팅팅 부어 얼마 못살다 가는 길고양이들도 그렇고,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먹이가 없어 가끔은 서울 도심까지 내려오곤 하는 멧돼지들도 그렇고... 인간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인간이 얼마나 치명적인 천적인지 알 도리 없는 펭귄들은 겁도 없이 다가와 사람과 카메라를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부모 펭귄 없는 사이 사냥꾼 새가 공격해오자 아기 펭귄은 도와달라는 듯 촬영진에게 안겨들었다. 300일이나 남극의 혹한에서 고생한 제작진 덕분에 귀한 환경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는 건데도, 한편으론 온난화 영향으로 서식지가 많이 줄은 것 이외에 이미 조류독감까지 돌아 펭귄들이 폐사하고 있다는 남극에 또 무슨 질병 바이러스라도 옮겨놓고 온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물론 문제는 남극이 흘리는 뼈아픈 눈물을 우리에게 알리겠노라고  환경 다큐 찍고 돌아온 제작진이 아니라, 앞다투어 남극개발과 진출에 힘쓰는 (우리나라 포함) 힘깨나 쓰는 나라들이다. 세상에는 그냥 좀 내버려두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많고 많은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왜 그렇게도 꼭 들쑤시고 파헤치며 '개발'하려 하는지 원. 제목을 동물 생각이 아니라 인간 환멸로 바꾸어야 하려나. 으휴.
Posted by 입때
,

이웃 복도 복

투덜일기 2011. 5. 26. 17:01

그동안 시나리오를 거의 수십번은 고쳐썼을 것이다. 다짜고짜 쌈닭형, 비굴 간청형, 도도한 충고형, 험상궂은 협박형, 대면회피 서면통보형, 일방적인 민원신고처리, 반상회 추진... 아래층 똥개 문제를 그 집 사람들에게 어떻게 항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이야기다.

1년도 넘게 고민만 했을 뿐 속 시원히 아래층 사람들과 맞서지 못하고 여기다 애먼 욕만 써대면서 급기야 불만은 부글부글 끓어올라 넘치기 직전이었다. 이젠 날도 더워져 베란다문을 열고 살아야하는데 온집안을 뒤흔들듯 목청껏 짖어대는 놈의 울대를 맨손으로라도 끊어버리고 싶은 심정;;

밤늦게나 집에 들어오는 아랫집 식구들을 언제 찾아가야할 것인지도 난감해서,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현관문에 붙여놓는 방법도 생각할 지경이었는데... 두둥... 어제 얼떨결에 똥개 주인한테 불만을 토로했다. +_+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이 미친개가 깽깽거리며 우는 소리를 막 내기 시작했다. 우렁차게 짖는 소리와는 또 다르게 귀청을 찢을 듯 파고드는 소리에 확 열이 오른 나는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쿵쾅쿵쾅 아래층으로 내려가 놈을 호통쳤다. 조용히 못해! 그랬더니 놈은 나를 잡아먹을 듯 짖어대며 뛰어올라 쇠사슬을 쩔렁거렸고 그 순간 개주인 등장!

그동안 수십번 고쳐썼던 시나리오 덕분인지 안녕하세요, 인사에 이어 주절주절 불평이 터져나왔다. 1년 넘게 고민하다 이제야 이야기를 하는 거라는 푸념으로 시작하여 대체로 비굴 간청형이었던 것 같아(개 짖는 소리 때문에 일을 많이 못해 생계에 지장이 있다는 말도 했다;; 완전 과장은 아니라고 속으로 되뇌임) 내심 좀 부아가 치밀었다. 차근차근 도도하게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져서 굴복시키는 상상을 너무 오래 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개주인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_-v

게다가 이사를 갈 지도 모르는다는 말에 어찌나 반갑던지 이사 전까지는 참아보겠다는 말이 새어나오려는 걸 얼른 혀를 깨물었다. 전세집 구하기 어렵다는데 그러다 이사 안가면 어떻게 하라고! 째뜬 어젯밤에는 전기충격 목줄을 매달았는지 개가 짖다 말고 낑낑대는 양상을 보이더니 계속 조용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 알았으면 진즉 이야기할 걸, 괜히 망설였나 싶을 정도였다. 그놈의 똥개가 전기충격에 죽어나든 말든.. 내 알바 아니었다. 독약 사다먹여 죽일 생각도 했는데 놈이 괴롭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그러나.
오늘 놈은 다시 홀로 남아 마당을 점령한 채 평소처럼 짖어대고 있다. 아우 씨... 골목에 차만 지나다녀도 짖는 놈의 횡포를 하루 종일 기록해 보고서라도 작성해야 하나, 소음측정기로 피해정도를 규명해야 하나, 2차로 또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 암담하다. 앵두가 바알갛게 익어가고 있는데... 놈의 위혐 없이 앵두를 따먹으려면 그전에 해결되야 하는데, 어쩌나 젠장. 이웃 복도 참 지지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몰염치한 아래층 집 사람들은 1년 넘게 신고 한번 안하고 무던히 참아준 이웃들 잘 만난 걸 과연 알기나 할까. 
Posted by 입때
,

파랑이의 수난

투덜일기 2011. 2. 21. 02:54
파랑이네 가족이 파랑이만 남겨두고서 9박10일간 여행을 떠났다. 그럴 때마다 파랑이를 기꺼이 도맡아주는 사람은 유명한 애견인이신 나의 막내고모인데, 주말까지 녀석을 맡을 사정이 되지 않아 일요일 오후부터나 파랑이를 맡아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옵션은 두 가지. 그나마 얼굴을 익혀 친해진 우리집에서 파랑이를 이틀 데리고 있다가 고모네 집에 데려다주는 것. 그게 아니면 파랑이가 겁을 내든 말든 동물병원에 이틀 맡겼다가 역시나 고모네 집으로 데려가는 것. 두 경우 모두 파랑이 픽업은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금요일에 나는 외출할 약속이 있었고 밤열두시에나 들어올 예정이었다. 혹 파랑이를 우리집에 둔다면 처음이라 사방에 영역표시 하느라고 질질 싸댈 똥오줌을 왕비마마가 치우셔야 한다는 얘긴데, 나의 개혐오증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므로 그런 일을 왕비마마가 해봤을 리도 없고 잘 해내실 리도 없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개수발엔 영 자신이 없었다. 다만 파랑이가 낯선 동물병원에서 이틀밤을 보내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심난해할지 그건 좀 걱정스러웠지만, 나 역시 동물병원엘 맡기는 게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어차피 병걸린 강아지들은 입원도 시키잖아, 라고 위로하면서. 물론 애견인인 막내고모는 절대로 동물병원에 보내지 말라고, 병에 걸려올지도 모르고 파랑이가 '트라우마'를 겪게 될 거라며 결사반대하는 쪽이었다. 나도 왕비마마도 마음이 약해져 그럼 그냥 죽이되든 밥이 되든, 아니 개판이 되든말든 집에 파랑이를 데려다놓을까 마음이 흔들려, "그럼 그냥 이틀만 우리가 한번 데리고 있어 볼게..."라고 '자신없이' 말했다. -_-;
 
그런 태도에 선뜻 파랑이를 맡길 순 없었을 거라는 거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결국 파랑이는 난생 처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암튼 새 주인과 산 이후 처음으로 동물병원에서 이틀밤(개주인이 토요일 아침에 출국했으니 하룻밤일 수도 있음)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드디어 일요일 오후,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파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인 사과를 한 조각 잘라 은박지에 싸들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솔직히 동물병원에 들어가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옛날 대한극장으로 영화 보러 다닐 때 밖에서 보이는 애견가게 우리 안에 든 강아지들처럼 파랑이도 그런 요람 같은 데 들어있을 줄 알았더니 나의 착각이었다. -_-;

병원 2층으로 올라가니 얼핏 보기엔 닭장 같기도 하고 개들의 독방 감옥 같기도 한 케이지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그 안에 강아지들이 한마리씩 갇혀 있었다. 예방접종의 차이나 질병의 가능성 때문에라도 당연히 한마리씩 격리수용(?)하는 것이 원칙일 것 같기는 했다. 어쨌거나 좀 크기가 넉넉한 독방 마다 이름표를 매달고 있는 첫번째 방에는 파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문을 하나 열고 들어간 또 다른 방엔 아 글쎄 이름표가 안 달려 있지 않은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안면인식장애로 여러 번 본 사람 얼굴도 잘 몰라보는데 다 똑같이 생긴 말티즈 중에서 파랑이를 어떻게 알아본담! 나는 담당 직원이 당연히 적어둔 파일 같은 걸 찾아보고 개를 인계할 줄 알았더니만, 나더러 찾으란다. ㅠ.ㅠ

다행스럽게도 당황한 내가 방안을 훑어보다가 하얀 개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파랑이 같아 보였다. 내가 파랑아~! 하고 부르니까 녀석도 철창을 마구 긁어댔고, 직원은 얼른 녀석을 꺼내 나에게 안겼다. 헌데 내 품에 안긴 파랑이가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놀러갈 때마다 친한 척 했던 건 다 거짓이었는지, 계속 불안하게 발발 떨면서 품을 벗어나려고 하질 않나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병원 직원은 애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낯설음과 불안감의 표현일 뿐이었다. 주인님들은 어디가고 대체 이사람은 뭔가? 날 또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가?

그때까지만 해도 얘가 정말 파랑이가 맞는지 나 역시 불안했다. 엉뚱한 개를 데려가서 두 집에 혼란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 상상하게 된 거다. 어쨌거나 녀석이 하도 불안해 하니 얼른 차로 데려와서 잘라간 사과를 먹여주었다. 아그작아그작 사각거리는 사과를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녀석이 파랑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파랑이네 식구들도 파랑이가 사과 먹을 때 제일 예뻐할 정도로, 아삭거리는 사과를 씹는 자태가 귀엽기 때문이다. 

사과로 조금 친해지긴 했지만 막내고모 댁까지 가는 40여분간, 파랑이는 계속해서 극도로 불안해하며 조수석에서 덜덜 떨었고 운전하는 내 팔을 자꾸만 툭툭치며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했다. 나를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긴 하지만 일말의 믿음은 있는 모양이었다. 사흘전만 해도 깨끗하게 목욕해서 뽀얀 자태를 자랑하던 녀석이었건만, 케이지에 갇혀서 오줌을 사방에 지렸는지 꼬리와 배, 다리엔 누런 오줌이 묻어 말라뭍어 냄새도 퀴퀴했고 케이지 안이 더러웠는지 전체적으로 꼬질꼬질했다. 내가 그런 더러운  녀석한테 한 팔을 아예 내주고 왼손으로만 운전을 하다니... 역사에 남을 일이었지만, 녀석에 대한 미안함이 더러움에 대한 거부감을 이겼다.

고모댁에 도착할 무렵엔 내 가방을 둥지삼아 드디어 떨기를 멈추고 엎드려 안정세에 점어든 파랑이는, 원래도 자주 가본 곳이고 워낙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인 막내고모를 만나 집안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제 세상을 만난듯 뛰어다녔다. 제 침대와 쿠션, 담요까지 모조리 옮겨다 주었으니 안심할 만도 했다. 그래도 불안한지 오후면 노상 꾸벅꾸벅 졸거나 코를 골며 자던 녀석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엔 내가 벗어놓은 옷위에 달랑 올라가 잠을 청하더니 걸핏하면 깨어나 내 손밑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막내고모 옆으로 가 온기를 나눴다.

파랑이의 크리스마스빔(?) 차림

저녁까지 있다가 다시 녀석을 떼어놓고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해봤더니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막내고모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중이란다. 막내고모가 지난 여름엔 일주일 내내 계속 함께 데리고 다녔다는데(심지어 치과에 갈 때조차!) 요번엔 전시회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더 남은 여드레 동안 사나흘은 또 녀석 혼자 두고 나가야한단다. 과연 파랑이는 애견인이고 완전 낯설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인의 집은 아닌 곳에서 홀로 밤중까지 견디는 시간을 어떻게 버텨낼까. (그렇게 걱정되면 데려다 놓으시지!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지만 나는 정말로 자신없다니까!) 파랑이 주인들에게는 아무 염려말고 여행이나 즐기다 오라고 했어도 은근히 걱정스럽긴 하다. 요번에 받은 스트레스로 나중에 주인들한테 복수한답시고 막 대소변 실수하면 어쩌나. -_-; 이사하면서 가까스로 쫓겨날 위기를 넘긴 녀석인데 과연. 모든 강아지를 상전 모시듯 하는 막내고모의 각별한 애정으로 하루 이틀밤의 충격쯤은 말끔히 치유될 수도 있기를 빌 뿐이다. 지난번 아파트 단지에서 무작정 달아나는 바람에 한번 잃어버려 이틀인가 사흘 만에 찾은 적도 있으니 주인과의 인연은 꽤 진한 편이라고 치고, 부디 파랑이의 수난은 이것으로 끝이기를.
Posted by 입때
,

내가 개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자꾸만 포스팅하는 날이 올 줄은 정녕 몰랐으나 이렇게 되고 말았다. 더욱이 내가 아는 한 지상 최고의 애견인이신 메리제인님의 눈물겨운 동거견 이야기를 엿보기도 했고, 이웃이신 키드님께 훈련소에 간 장금이 사연을 전해 듣고 보니 여전히 나에겐 불가사의이자 골칫거리인 개들 때문에 연일 겪는 괴로움을 고해바치지 않을 수가 없다. 하기야 좀 지나고 보니 '인간'을 한 종으로 일반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개들도 도저히 한 가지 종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구석이 많다. 품종에 따른 차이인지, 그저 녀석들의 두뇌나 성격 차이인지 나로선 영영 오리무중이겠으나 암튼 걔네들을 한꺼번에 '개새끼'라고 싸잡아 부르는 게 내가 보기에도 부당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알면 알수록 모를 개들의 세계.

사례1.
이름: 호야. 품종: 시츄. 숫놈.
친구네 개다. 2007년 8월에 한달된 녀석을 입양해 지금껏 기르고 있으니 3살인가, 4살인가. 암튼 내가 아는 개들 중에 가장 모범견이다. 처음 놀러갔을 때도 전혀 짖지 않았고, 몇번 와서 추근대기는 했으나 우리가 질색하는 걸 알고는 단숨에 물러가더니 이제는 만나도 소 닭보듯 무관심하다. 완전 고맙다.
두 딸을 비롯해 나의 친구가 정성들여 배변훈련을 시켰기 때문인지 실수 따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단다. 어릴 땐 배변판에 쉬야를 하더니 지금은 아침 저녁에 두번 시간 맞춰 밖에 데리고 나갈 때 볼일을 보기 때문에 배변판도 집안에 깔아놓을 필요가 없어졌단다. 저도 데려가는 외출과 두고 가는 외출을 정확히 알아듣고 현관에서 배웅 태세를 취하거나 따라나설 준비를 귀신같이 한다. +_+ 중국 황실에서 키우려고 개발한 품종이라 왕궁에 어울리게 호들갑스럽지 않은 성격을 지니게 됐을 거라는 게 친구의 주장이다. 사실일까? 나는 짖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목소리도 모를 정도다. 친구가 자기 사진 대신 녀석의 사진을 전화번호부에 저장해달라고 해서 감히 아이폰 앨범에 들어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들면 이렇듯 가만히 앉아서 도도하게 포즈를 취해준다.

사례 2.
이름: 파랑이. 품종: 말티즈. 숫놈.
영광스럽게도 내 블로그에 여러번 등장한 바 있는 조카네 개다.
누군가 키우다가 올 봄에 양도한 녀석이라 정확한 나이 잘 모르겠다. 두살이라던가. 간혹 보면 저래서 개 팔자 상팔자로구나 싶을 정도로 푹신한 제 전용 침대에 누워 널브러져 자고 있을 때도 있으나 주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며 쉴새없이 꼬리를 흔들어 아양을 떨다가 큰조카 방 문 앞이나 책상 밑을 지킨다. 특히 과일을 미친듯이 좋아해서, 우리가 과일을 먹을 때면 가엾어 보이려고 목을 쭉~ 빼고 옆을 맴돌다 기필코 얻어먹는다.  
집에 누가 오든 무조건 짖는다. 근데 그게 겁을 줘서 쫓아버리려는 게 아니라 자기 안아달라고 반갑다고 짖는 거다. 애정결핍이냐 뭐냐! 낯선 사람들의 경우 주인이 짖지 말라고 하면 금세 조용해지지만, 나나 왕비마마처럼 제 편이라고 생각하는(아 대체 왜??) 사람들이 집에 오면 쓰다듬어주거나 한참동안 안아주며 아는 척 할때까지 주인한테 혼이 나면서도 계속 짖는다. 친척들이 우글우글 모여드는 명절 같은 날에도 날뛰며 돌아다니더니 추석날엔 급기야 주인장 안방 침대에 떡하니 똥을 싸놓은 웃기는 놈이다. 주인이 있을 때면 낑낑거려서 배변판이 있는 베란다 문 열어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배변판에 볼일을 본 뒤엔 잘난척 짖어대며 간식 먹으려고 미친듯이 달려온다. 그럴땐 아주 멀쩡한데, 가끔가다 혼자 집에 있을 때 방방마다 한번씩은 모든 침대에 볼일을 벌여놓았고 소파와 쿠션에도 여러번 사고를 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었다. 그래서 옛날 난로 주변에 치는 철망 같은 '우리'에 갇혀 지내기도 했는데 요샌 힘과 요령이 생겨서 거기 가둬놔도 머리로 들어올리고 나온단다. 최근엔 외출할 때 베란다에 가둬놔도 혼자 문을 밀고 나와 온 집안을 돌아다닐 만큼 영약하다고...
아무래도 파랑이는 정민이랑 지환이처럼 자기도 내 조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우리 조카들이 좀 엉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내 다리를 베거나 팔짱을 끼거나 옆에 꼭 붙어서 다리라도 올려놓는 편인데, 그러고 있으면 이 녀석도 어느 틈엔가 파고들어 내 발목에라도 턱을 올리고 동참하거나 흉측하게 발라당 드러누워 그윽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쩌라고!)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조카들만 한번씩 안아주고 돌아서면 아주 난리가 난다. 내 무릎까지 뛰어올라 자기한테도 작별인사를 하라고 종용하는 고약한 놈이다. 말티즈가 원래 좀 애정을 갈구하는 성격이라고는 해도, 개라면 뜨악하게 여기는 나나 왕비마마에게까지 매번 달려들어 엉기는 녀석을 보면 정말 모르겠다.

사례 3.
사진은 없다. 이름: 이쁜이. 품종: 말티즈. 암놈.
이모네 개인데 벌써 새끼를 세번이나 낳았다던가, 6살이라고 들은 듯. 몸집은 작은 놈이 엄청 짖어대고 사납다. 이모네는 아들만 둘이라서 딸 하나 키우는 셈 친다고 이모가 얘기하시는데, 정말로 자기가 막내딸이라고 여기는 듯 공주병 증세가 엿보인다. 소파 맨 끝이 자기 자리라서 다른 사람이 앉으면 엄청 짖어대는데, 이모랑 이모부가 말리면 말은 듣지만 냉큼 이모나 이모부의 무릎에 올라 앉아야 제자리를 양보한다. 얘 혼자 오래 놔두는 걸 두 양반 다 못 견뎌해서 서로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다투실 정도다. 영리해서 배변실수 얘긴 들어본 적이 없고, 언젠가 이모가 계단 센서등이 고장나 넘어지는 바람에 다치셨을 때 엄청 울어대며 옆을 지켰다고 효녀 소리를 듣는다. 작년에 사촌동생이 딸을 낳는 바람에 손녀가 생긴 이모랑 이모부가 얘 때문에 아기를 많이 못안아주실 정도라고 들었다. 그나마 사촌동생이 지방에 살기 때문에 늘 같이 사는 건 아니라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은 모양이다.

사례 4.
이름: 곰돌이. 품종: 똥개 (진돗개 잡종으로 의심됨)
온동네의 골칫덩이 아래층 똥개이므로 당연히 사진은 없다. 찍어줄 마음도 절대 없고! 
올해 이천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왔으므로 겨우 한살인데 이미 덩치는 거짓말 좀 보태서 나만해졌다. ㅠ.ㅠ 충성심이 뛰어난 건지 멍청한 건지 개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딸, 세 사람 이외엔 무조건 미친듯이 짖어댄다. 같은 집에 사는 나와 왕비마마, 또 옆쪽 아래층 가족들에겐 짖지 말라고 개주인들이 누누히 혼내고 야단치고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 혹시나 해서 내가 그간 온갖 뼈다귀(일부러 살도 많이 붙여서 가져다 주었었다!)와 비계덩어리로 아부를 떨어 보았으나 개주인이 별 효험 없을 거라고 경고하더니 정말로 그랬다. 동네 사람들의 반발로 잠시 다시 고향 이천으로 내려가 있던 달포 정도엔 원래 개주인인 할머니(아래층 아저씨의 어머니시란다)한테도 그렇게 짖어댔고, 제 아비도 몰라보고 짖어대다가 귀를 물리기도 했단다. 밥주는 사람한테는 개도 안짖는다는 옛말 다 거짓인가보다. 그 한달 동안 원래 주인인 할머니도 이놈의 개가 하도 짖어대는 바람에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해 사료를 줄 때마다 밥그릇을 막대기로 디밀어야 했다고... 나 역시 뼈다귀로 놈의 환심을 사려 할 땐 자칫 물릴 것 같아서 매번 주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골목에 사람만 지나가도 컹컹 짖어대는 놈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괴로운 지경이다. 대부분은 저도 무서워서 짖는지 개집으로 쏙 들어가며 짖어대지만, 나는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으로 마구 달려들어 쇠사슬을 끊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짖기 때문에 무서워죽겠다. 한번은 개줄이 끊어졌는지 집앞에서 얼쩡대다 내가 차고에 차를 대자마자 그악스럽게 짖어댔다. 차문을 열고 내리려다 식겁한 나는 집주인을 불러 개 좀 잡아달라고 한 뒤에 겨우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뒤로 쇠사슬로 개끈을 바꾼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마당을 드나들 때마다 여전히 언젠가 저놈의 '개새끼'한테 물려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ㅠ.ㅠ 아주 가끔 대낮에 집을 나서는 경우엔 나와 왕비마마를 멀끔히 쳐다보기만 하고 안짖을 때도 있으나, 밖에서 들어올 땐 낮이든 밤이든 어김없이 잡아먹을 듯 짖어댄다. 어휴... 그럴 때마다 개주인이 나와서 조용히시키기는 하지만, 그 집이 비었을 때는 후다닥 도망쳐 들어오는 수밖에 없어서 정말 짜증나고 두렵다. 주인을 철썩같이 알아보는 놈이라면 주인 말도 잘 듣고 훈련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만날 보는 사람들한테는 짖지 말라는 꾸지람을 수백번도 더 들었을텐데도 못 알아먹는 멍청한 똥개!

아래층 똥개한테 물려죽기 전에 어서 이 동네를 떠야한다는 결심을 새록새록 다지고는 있지만 또 귀찮은 현실 앞에선 기가 죽는다. 이사는 스트레스 지수가 배우자의 죽음과 맞먹는다던데... 겨울도 다가오고.. 내년 봄에나... 뭐 이러고 앉아서 개소리나 해대고 있다는 얘기다. 으휴...



_M#]
Posted by 입때
,

종일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재활용품 내다 놓으러 방금 나갔더니만 아래층 곰돌이가 돌아와 있었다! 역시나 개집이 계속 그대로 있더라니!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어디선가 낮게 "으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설마 하며 개집 있는 곳을 쳐다봤더니만 개가 줄에 묶여 있었다. 다행이도 전처럼 마구 짖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온종일 내가 몰랐겠지!

따져보니 근 두달 만이다. 그동안 대체 어디에 가 있던 걸까 궁금증이 몰려들면서 혹시 키드님네 장금이처럼 강아지 훈련소엘 다녀온 건 아닐까도 생각해봤는데, 다달이 거금이 든다는 걸로 봐선 또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조카네 개도 계속 대소변 문제로 사고를 치면 훈련소에 보내보라고 조언은 하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면 식구들한테 핀잔만 들을 것 같아서 고민이 앞서기 때문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도 아니고 집밖에 내놓고 막 기르는 잡종견에게도 아래층 식구들이 과연 그런 거금을 들였을까 싶긴 하다. 물론 순전히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아래층 개가 으르렁 소리를 내자마자 1층 아저씨가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온 걸로 봐서는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의미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종일 동네는 조용했다. 그리고 내가 재활용품을 내다놓고 돌아올 때도 살금살금 내가 발소리를 줄이긴 했어도 녀석이 또한 번 낮게 "으르릉..." 소리만 냈을 뿐 짖지는 않았다. 어휴... 어쩐지 살얼음판을 다시 딛는 기분이라 불안하다. 과연 이 동네의 평화는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제발이지 아래층 개가 철들어서 돌아온 것이기를!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