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08.04.02 어느새 11
  2. 2008.02.21 귤과 겨울 4
  3. 2007.05.25 5월의 밤 2
  4. 2007.05.15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7
  5. 2007.04.15 밤벚꽃놀이 4
  6. 2007.03.17 봄날 7

어느새

삶꾸러미 2008. 4. 2. 17:29

4월이 열린 건 알았지만 어느새 목련과 개나리가 다 피었다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지낸지 꽤 되긴 했지만 간간이 잠깐씩 나갈 일은 있었음에도
관심이 없었거나 관찰력이 부족해 꽃눈이 나온 것도 모르고 지났는데
오늘 보니 몽롱하게 지내는 내 머리통에 알밤을 쥐어박듯이
황사비를 맞고서도 우아하게 새하얀 꽃을 벌린 목련과 다닥다닥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가
집주변에 가득했다.

심지어 좁은 마당에 서 있는 앵두나무도 곧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나는 아직도 털 달린 겨울옷을 못 벗어났건만...

헐레벌떡 성급히 꽃을 피웠다가 금세 후두둑 꽃잎을 떨어뜨리는 봄꽃을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 공연히 숨이 가쁘다.
올해는 꼭 조금 멀리 꽃구경 가서 상춘곡이라도 부르려고 했는데 이러다 망연히 5월을 맞을까봐
가슴이 두근구근.

해마다 4월은 잔인했노라고 징징거렸지만
부디 올 4월은 퍽 보람있었다고 회상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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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과 겨울

삶꾸러미 2008. 2. 21. 21:37

재주소년의 노래도 있지만
귤은 내게 곧 겨울을 의미한다.
찬바람이 불고 거리 과일가게와 리어카에 귤이 쌓여 있으면 겨울이 왔다는 뜻이고
또 겨우내 맛있게 먹었던 귤이 어느 순간 싱겁고 텁텁하여 맛이 없게 느껴지면 봄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맛있는 과일이란 달기만 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새콤한 맛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에 귤은 내가 몹시 좋아하는 과일이어서 겨우내 집에 귤을 떨어뜨리는 일은
거의 없다.
요즘엔 보관성 때문에 딸기도 겨울 과일이 된 터라 귤과 경쟁을 벌이고는 있지만
반드시 씻어 먹어야 하는 딸기와 달리 겉껍질에 농약이 묻었든 말든 맨손으로 슥슥 까 알맹이만 입에
넣을 수 있는 귤은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헌데 이상하게도 며칠째 계속 먹고 있던 귤이 어제부터 어쩐지 탱탱함을 잃은 듯하더니 맛도 밍밍하고
텁텁하여 새콤달콤 싱그러운 제 맛을 잃은 것 같다.
바야흐로 봄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라 여기며 슬며시 흐뭇해졌다.
제대로 봄이 오면 또 하우스에서 재배하여 껍질이 얇고 속살이 보드라운 '조생귤'이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지겨운 겨울은 어서 가버리고 따뜻한 봄아, 맑고 싱그러운 얼굴로 빨리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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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밤

삶꾸러미 2007. 5. 25. 18:41
계절 중엔 봄을 제일 좋아하고
달 중에선 5월을 제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따뜻한 날씨와 싱그러운 신록.
나무에 연두 잎들이 돋아나 어느새 빽빽하게 가지를 뒤덮으며 커나가는 모습은 웬만한 꽃들보다도 아름답다.
그리고 또 하나 5월이 좋은 건 밤풍경도 예뻐지기 때문.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온 거리가 예쁜 알전구와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되듯
5월이 되면 온 거리에 연등이 매달린다.
사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연등이 달려 밤거리가 예뻐지긴 했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망스럽기 일쑤였다. 새카맣게 때가 끼어 찌들은 연등도 처량맞거니와 중간중간 등이 찢어져 나갔거나 이빠지듯 꺼져버린 등도 자주 눈에 띄어 을씨년스런 느낌도 전했으니까.
조계사나 봉은사처럼 엄청나게 큰 사찰 근처면 또 모를까 동네의 작은 절에서 내다걸었겠지 싶은 길거리 연등은 약간 눈에서 시력을 빼고 어슴프레하게만 바라봐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유심히 보아도 길거리에 장식된 등이 꽤 예쁘다.
몇년씩 쓰곤 하던 길거리 장식 등이 너무 낡아 드디어 새로 장만할 때가 되었던 걸까? ^^
'연등'이라기 보다는 일식술집이나 요새 유행인 중국식 선술집 앞에 매달린 홍등과 너무도 비슷하게 보이던 동그란 주름등 외에도 풍경을 매단 종모양도 있고, 가끔 길죽한 진짜 주름등과 함께 날렵한 팔각등도 보인다.

하필 부처님오신날이었던 어제는 온종일 비가 내려 절마다 행사 치르기가 쉽진 않았겠지만
정민이 등살에 못이겨 간만에 다 저녁때 올라간 절 마당에 빼곡하게 줄을 매달고 걸어놓은 등을 보니 빗속에서도 너무 예뻐서 기분이 좋아졌다.

5월도 며칠 안남았고
석탄일도 지났으니 이제 5월의 밤거리를 예쁘게 장식했던 연등들도 자취를 감추겠지.
아등바등 하느라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5월이 벌써 가버리는 게
너무 아쉽다.
오늘은 저녁 먹고 나서 밤산책이라도 나가보든지...
5월의 밤마실. 그거 괜찮겠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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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지만 내가 어렸을 땐 아카시아꽃을 한송이씩 따서 먹고 놀았다. -_-;;
하얀 꽃잎을 하나씩 입에 집어넣으면 달콤한 꿀맛이 입안으로 퍼졌는데
성급한 남자애들은 포도송이처럼 달린 꽃을 몽땅 입에 넣고 주르륵 줄기를 잡아당기기도 했더랬다.
그 추억 때문인지 나는 아카시아꽃이 참 좋아서
5월만 되면 이제나 저제나 아카시아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이제 공해 때문에 더는 꽃을 따먹을 순 없지만
온 동네를 휘감는 달콤한 꽃향기는 옛날과 다르지 않다.
어젯밤 처음으로 깨달은 아카시아꽃 향기 때문에 우리 동네 공기가 새삼 맑아진 것도 같다. ^^;
며칠 또 밤마다 온 창문 다 열어놓고 꽃잔치 기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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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벚꽃놀이

삶꾸러미 2007. 4. 15. 23:56

벚꽃 축제로 유명하다는 진해나 여의도 윤중로엔 일부러 행사기간에 맞춰 가 본 적이 단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가고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득시글 거리는 데도 싫지만, 벚꽃의 흐드러진 아름다움보다
음식냄새 진동하는 포장마차들이 더 즐비한 그런 곳... 제 아무리 축제엔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가 정말 싫다.

그런데 우리 동네 근처에도 꽤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이 늘어선 벚꽃길이 있다.
해마다 봄이면 구청에서 벚꽃길 걷기 축제도 하고 그러는데 요즘이 만개철인지
며칠 전부터 엄마가 벚꽃 구경하러 가자고 성화였다.
그치만 나는 완전히 초절정 마감모드였던 지라 (하도 열심히 블로그질을 해대서 티는 안났겠지만 ㅋㅋ) 계속 모른 척 했는데,
오늘은 급기야 엄마가 동네 친구 아줌마랑 둘이 먹을 것까지 싸들고
구청 뒷산에 있는 벚꽃길로 놀러가시더니, 너무 좋으니 어서 아부지 모시고 구경오라고 전화까지 해댔다.
아버지는 어제 오랜 산행 끝에 발목이 아픈 상태고
나는 아침까지 원고와 씨름하다 간신히 잠든 상황이라 몹시 쌀쌀맞게 엄마나 많이 보고 오시라고 마다하며 전화를 끊고는 조금 찔렸더랬다.

그런데 역시 나보다 효자인 큰동생과 올케가 엄마 전화를 받고선 벚꽃도 볼겸 저녁 먹으러 들이닥친 것.
결국 우린 저녁을 먹고 나서 단체로 밤벚꽃놀이에 나섰다.
청사초롱이 길게 매달린 벚꽃길은 제법 그럴듯했고, 시끄러운 스피커를 매단 장사치들도 하나 없는 오솔길은 몇년 전에 낮에 와봤던 때보다 쾌적했다.
알록달록 촌스러운 색깔의 조명을 비춰 노랑, 분홍, 초록, 하늘색으로 보이는 벚꽃을 보며 울 정민공주를 비롯해 거기 나온 사람들은 마구 감탄했지만, 나는 조명이 좀 덜 인공적인 색깔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시큰둥하게 오솔길을 걸었다.

벚꽃놀이를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나는 벚꽃이 만개해 있는 것 자체보다, 하얀 꽃들이 눈송이처럼 후두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그야말로 꽃비가 마구 날리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환성을 지르며 좋아하자 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당신은 벚꽃이 한창 예쁘게 핀 걸 보는 건 좋은데, 휘날려 떨어지는 걸 보면 서글퍼서 싫으시단다.
너희야 앞으로 예쁜 꽃 볼 날이 많지만, 당신은 그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얼마 안 남긴, 무슨 소리냐고... 앞으로 10년 동안 매해 꽃놀이 모시고 오겠다고 큰소리 치며 대충 순간을 얼버무렸지만 가슴이 짠했다.
같은 꽃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나도 평균수명 운운하며 이젠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짧을 거라고
늘 엄살을 떠는데, 아버지 말씀에 문득 그런 내 촐싹거림이 부끄러웠다.
울 엄만 서울태생이면서도 아직 한강 유람선도 안 타봤고, 남산 타워에도 신혼여행 가기 직전에 택시타고 둘러 본 게 마지막이고, 그 새 수없이 생겨난 서울의 여러 공원--하늘 공원, 서울 숲 따위--에도 안 가봤다면서 가끔씩 한탄하는 걸 보며, 여유 좀 있을 때마다 모시고 가리라 마음먹지만, 재작년에 선유도 공원으로 소풍 간 걸 마지막으론 또 만날 바쁘다 바쁘다 짜증만 부리며 살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더는 어떻게 잘해드릴 수도 없는 순간이 온 다음에
눈물로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잘해드려야 하는데, 왜 늘 깨달음은 뒤늦게나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참으로 무서운 진리인데
내 머리가 참 나쁜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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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삶꾸러미 2007. 3. 17. 00:30
아침부터 봄볕이 좋았다.

제법 훌륭한 주택가를 지나 들어가야 하는 대학과 대학병원의 북문에서
화려뻔쩍한 새병원이 서 있는 곳까지 들어가는 길은
잦은 요철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만 참으면 구불구불 오솔길과 주변의 나무와 숲이 철철이 참 아름답다. 
멀고먼 기숙사에서 교정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구경하는 것도 때로는 흥겨운데, 오늘은 눈부신 봄볕 아래 개나리에 노란 꽃눈이 매달려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강사인지 어학당 학생인지 모를 어떤 외국인은 아예 맨다리에 반바지까지 입었더군.

종합병원의 외래 진료시간은 늘 그렇듯
30분 이상 마냥 기다려 주치의와 고작 1분쯤 면담으로 끝이라 허망하지만
1주일만에 다시 찾은 병원 로비를 걸으며, 불과 지난주만 해도 환자복을 입고
어정어정 비칠비칠 걷던 왕비마마가 하늘하늘 시폰 스카프를 두르고 빨간 립스틱까지 바른 모습으로 내 팔짱을 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집에 들어가 꾸역꾸역 점심상 차리기 싫어서 굳이 점심을 사 내라고 고집을 부려
엄마한테 얻어먹은 회덮밥도 맛있었고. ^^

오후들어선 봄볕보다 바람이 더 힘을 자랑했지만
내친김에 강행군을 시켜야한다는 팥쥐엄마다운 마음으로
엄살부리는 콩쥐 왕비마마를 끌다시피 데려간 동네 산책로에도 어김없이 개나리는 꽃눈을 내밀었고 썬캡을 쓴 아줌마들이 씩씩하게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러고는 또 실로 간만의 외출.
전철을 타고 강을 건너 책방에서 친구와 만나
조카에게 줄 책 한권을 사고, 빼곡하게 쌓인 수많은 신간들을 건성건성 훑어보고 친구 딸들에게 선물할 예쁜 스티커와 지우개를 고르고 저녁을 먹고 긴긴 수다와 함께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까지.

운동부족의 극치를 달리는 온몸에선 여기저기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며 뻐근함을 토로하지만
몹시 푸근하고 뿌듯한 봄날이었다.

그래서 유치한 일기 슬쩍 펼쳐 놓듯 자랑 한 번 해봤음.
아.. 나는 정말 봄이 제일 좋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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