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이라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게 더 잘 보이는 느루의 먼지를 털어내고 완전 내려앉은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고 정말 오랜만에 어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요가 관둔지도 두달이 돼가고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랑 씹기 밖에 안한 체력은 처음부터 티가 났다. 빠르면 20분, 늦어도 25분이면 도착하던 한강변까지 결국 다 못가고 중간에 쉬어야 했다. 핑계를 대려면 운동효과를 내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은 데다 맞바람 탓이었다고 둘러댈 순 있겠으나 그래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또 깨달았다.
자전거는 한번 익히면 절대 잊지 않는 종류의 기술이라는데 사람마다 좀 다른지 나는 이렇게 간만에 자전거를 탈 때마다 서툴게 헤맨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밀려드는 공포 때문일까? 페달질 하다 페달을 놓치질 않나, 안경이 흘러내리는데 핸들 한 손으로 잡기가 무서워서 안경도 못 올리질 않나, 스스로도 좀 난감하다 싶었다. 결국은 꾸준한 연습만이 살길이라는 건데 이렇게 몇달만에 한번씩 타가지고 언제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 원.
화창한 날씨에 풀풀 날려 떨어지는 벚꽃이 유혹적이라 나갔던 건데 한강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고 차가워 손이 시렸다. 장갑 안끼고 나간 걸 후회하며 예쁘고 새끈한 장갑을 사야겠군, 하고......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몇번이나 타려고! 다음에 느루 타러 나오기 전에 손시렵지 않은 날씨가 될 확률이 더 높다. ㅋㅋ
아 맞다. 자전거 살 때 받았던 검정색 벨을 조카에게 빼앗기고 계속 벨 없이 다녔는데, 안되겠다. 주말이라 그랬겠지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비롯해 굳이 보행로 놔두고 자전거길로 와글와글 걸어다니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벨을 달아야지. 갑자기 요란한 전자벨 울려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 인간들이 유독 싫어서 난 아예 벨을 잘 안울리는 편이라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었으나, 그냥 띠링띠링 울리는 벨 정도는 필수품임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느루에 어울리는 벨을 그간 계속 검색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꼭 차는 게 없어서 머뭇거렸는데 좀 눈에 덜 차더라도 담번에 타러 나가기 전엔 사야할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엉덩이가 심히 아프다. 흑. 허벅지의 뻐근함이야 어쩐지 지방이 근육화 된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며 흐뭇한 효과를 남긴 반면 멍이라도 들은 것처럼 아픈 엉덩이는 좀 민망하다. 간만에 자전거를 타면 왜 꼭 엉덩이가 아픈지 원! 초보자의 비애일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암튼 앉을 때마다 엉거주춤 자세가 웃긴다. ㅋㅋ
대문사진에 찍어왔던 저 조형물까지 가보려고 했으나 내 기억상 분명 지난 것 같은데 나타나질 않았다. 중간에 공사중이던 공원안쪽에 가려져 있을 가능성도 있고 헉헉대느라 내가 덜 가보고 없다고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요트선착장과 편의점을 지나면 있던 저 조형물과 벤치를 향해 달리다 결국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춥고 손시리고 숨차서 힘든데, 한강엔 아직 쌀쌀한 날씨에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쉬면서 윈드서핑을 배경으로 찍는다고 남긴 사진이다.
동네 개천변 산책로는 거의 꽃길이었다. 개나리와 벛꽃, 이름까먹은 작고 하얀꽃(ㅠ.ㅠ)이 번갈아가며 지천으로 피어 있어 옆을 달리면서도 뿌듯했다. 허나 중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찍을 생각을 못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왕비마마가 전화를 했다. 하는 수 없이 전화 받느라 자전거를 세운 김에 옳다구나 찍어왔다. 개나리에도 벌써 잎이 돋아나 완전히 샛노랗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스럽고 예쁘다. 게다가 금상첨화로 인적도 사라졌고! (개천 좌우에 다 산책로를 닦아놓았는데 이쪽 길은 옛날부터 있던 길이라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잘 안다닌다. 개천 반대편은 바글바글. 나는 길 잘 닦인 것보다 사람들 없는 게 우선이다. -_-;)
음침한 교각에 모네 그림을 코딱지만하게 걸어놓아 흉하다고 포스팅 한게 작년이었나. 내 생각과 달리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거나 구청 직원들의 문화공유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거나,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교각마다 또 이렇게 그림이 매달려 있었다. 이름하여 문화의 거리 르누아르 전. 지난번보다 그림 크기는 훨씬 더 커졌더라. 피아노치는 소녀는 아예 저 멀리 개천 중간에 서 있는 교각에 달려 있었는데 소녀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물비린내 맡으며 뭐하자는 건지.
저런 그림을 걸지 않아도, 조악한 물레방아와 징검다리와 인공폭포가 없어도 원래 이 근방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곳이란 말이다!
사람들이 자꾸 자연을 훼손하며 가꾼다고 생각하는 게 서글프단 생각을 하며 막판엔 팍팍한 다리로 천천히 페달을 밟는데 산책로 거의 끄트머리에서 얘네들을 발견했다. 청둥오리인가? 해마다 이렇게 몇쌍이 날아와 새끼를 낳아 키우다 겨울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올해도 또 나타났다. 둘이 부부인듯 계속 같이 다니며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뭔가 먹을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줌으로 당겨 화질이 형편없지만 어쨌든 얘네들도 그렇고 그냥 자연은 좀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투덜대며 올해 첫 자전거타기를 마쳤다.
몇년전 <꿀벌대소동>이란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지만, 공해가 점점 심해지면서 꿀벌들이 차츰 사라져가는 추세를 걱정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꽤 많이 접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바람에 모든 식물의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먹이사슬의 근간이 무너져 결국 최종 포식자인 인간에게도 대재앙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서 벌 구경한 적이 정말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땐 마당에 피어난 자잘한 꽃들 사이로 벌들이 쉴새없이 날아다녔고, 종종 벌에 쏘이는 사고도 벌어졌는데 말이다. 못생긴 꽃의 대명사로 알려진 호박꽃을 어린 나는 꽤 좋아해서 못생겼다는 세간의 잣대를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꽃잎마저도 통통하고 푹신한 주황색 꽃이 얼마나 탐스러운가. 게다가 가느다란 덩굴손은 또 얼마나 신기한지. 할아버지댁 마당에도, 나중에 우리집 마당에도 한켠엔 꼭 호박덩굴이 몇 그루 자라고 있었고 거기서 딴 애호박으로 할머니도 엄마도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었다. 지금도 애호박으로 만든 온갖 반찬을 좋아하는 건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안이 깊은 호박꽃을 들여다보며 노는 걸 즐겼던 나는 두번이나 크게 벌에 쏘인 뒤 호박꽃 갖고 놀기를 포기했다. 처음엔 손가락을 쏘였지만 두번째는 눈두덩을 쏘이는 바람에 호되게 앓으면서 사실 꽃밭에서 노는 걸 금지당한 셈이었다. 곤충은 거의 다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인데 지금도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면 순식간에 얼어붙는 걸 보면 어린시절의 각인 효과가 퍽이나 큰 모양이다.
어쨌거나(요즘 포스팅의 모든 마지막 문단은 이 말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논리의 부족을 얼버무리는 이런 말--어쨌거나의 친구로는 '아무튼, 여하튼, 암튼, 어쨌든' 등이 있다--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그거야 서울도 그리 삭막해지기 이전 이야기고 최근엔 환경공해 때문에 벌을 구경한 적이 거의 없다고 여겼다. 꽃놀이하러 외출하는 걸 그리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봄꽃 피는 과정에 눈감고 살았듯 꽃을 보아도 벌을 굳이 찾아보지 않은 나의 비뚤어진 시각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나 화창하고 찬란한 날씨에 창밖을 내다보니 집앞 벚꽃은 거의 다 만개해 눈이 부실 정도다. 놀라운 건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수십 수백마리의 벌들이 가지마다 윙윙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보는 꿀벌 뿐만 아니라 날아드는 종류도 다양하다. 어린 시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꿀벌의 두세배쯤 되는 큼지막한 벌을 호박벌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시커멓게 생긴 그 대형 벌에 말벌까지 경쟁적으로 꽃을 탐하고 있다. 벚꽃에도 그렇게 꿀이 많았던가?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내다보고 섰다가 피식 웃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면 늙는 거라던데(그치만 난 어리고 젊었을 때도 꽃을 좋아했다고!), 이젠 꽃에 벌 날아드는 거 보고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다. 굳이 우기자면 꽃에 벌 날아드는 게 좋은 게 아니고 아직 이 도시엔 날아들 꿀벌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반가운 거다. 이왕 날아온 벌들이 옆에 있는 앵두나무도 열심히 수정해주면 더욱 금상첨화겠다.
방사능 성분이 섞였네 마네, 외출을 삼가야 하네 어쩌구 언론에선 호들갑을 떨지만 어쨌든 나는 올해도 봄비가 반갑다. 새벽까지 기다려도 내리지 않더니만 어느새 똑똑 옥상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자동차가 가끔씩 젖은 골목길을 지나며 내는 소리는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지지직 전이 익어가는 소리 같다. 비가 오면 부침개가 떠오르는 이유가 빗소리와 전부치는 소리의 음역대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하는 이야기를 TV에서 본 것 같다. 그 뒤론 비와 부침개와 술한잔을 연결해 생각하는 조건반사가 더욱 심해졌다.
어쨌거나 해마다 하는 나의 봄비 타령은 곧 꽃 타령이다. 어제 나가보니 개나리 목련은 죄다 피었고 올해도 가지치기를 건너뛴 앵두나무에도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어 우리집 베란다까지 손을 뻗은 이웃집 벚나무에도 꽃눈이 다닥다닥 이제 곧 빵 터트릴 태세를 갖췄다. 지금 두 나무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나뭇가지를 분홍색으로 덧칠해야 할 만큼. 봄꽃은 꼭 그렇게 무심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듯이 갑자기 피어나는 느낌이다. 분명 조금씩 조금씩 꽃눈을 키워왔을 텐데도 눈 뜬 장님이었던 내 탓이긴 하지만, 어쩌면 뚯밖의 횡재처럼 반가운 봄꽃을 보려고 일부러 눈감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며칠만 더 눈 질끈 감고 있으면 튀밥 같고 솜사탕 같은 앵두꽃, 벚꽃이 요것봐라 하면서 짠 피어 있을 거다. 오늘 내린 봄비에 그날이 좀 더 당겨지려나?
평년보다 훨씬 따뜻했던 한식 성묘길 나들이. 공원묘지 여기저기 제비꽃이 피어있었다. 인공적인 색채의 요란한 조화가 유일하게 어울리는 공원묘지에서 땅바닥에 잔뜩 수그려핀 보라색 생화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원래 잡초처럼 무더기로 많이 피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가엔 딱 한송이가 피었다. 무더기로 많았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꺾어서 조카들에게 하나씩 반지를 만들어주었겠지만, 그냥 카메라만 들이댔다. 누렇게 마른 잔디 사이에서 잡초들과 함께 제일 먼저 홀로 피어난 제비꽃. 드디어 완연한 봄이 왔다고 인정하련다.
십수년 전만 해도 통일동산과 공원묘지뿐, 허허벌판 아무도 없던 곳에 프로방스, 헤이리 마을이 생겨나고 영어마을이 들어서고 이젠 무슨무슨 아울렛까지, 그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 참 정신 시끄럽겠다 싶게 근방까지 자동차행렬이 엄청나 한숨이 다 나왔다. 대식구라 이젠 인근 식당에서 밥먹기도 어려워 성묘 음복이 진짜로 도시락 싸가는 피크닉이 되어버렸으니 우리에겐 다행인 건가, 불행인 건가.
4월을 넘겨 5월쯤은 돼야 지난 겨울의 잔해를 청산하는 게으름뱅이가 올해는 좀 부지런을 떨었다. 어느날인가 외출한 대낮의 햇볕에서 확실히 봄이 느껴졌고 두툼한 외투가 살짝 버겁기도 했다. 밤엔 다시 싸늘해지는 날씨를 모르는 건 아니므로, 외투를 다 치울 생각은 못하고 우선 두어개 먼저 세탁해 넣어두었다. 간만에 방청소 하는 김에 겨우내 강추위를 견디게 해주었던 소형 난로도 스팀용 물통에 남았던 물을 빼버리고 바싹 말려 걸레로 닦아 두었다. 완전히 치우지 못한 건 순전히 난로를 통째로 넣어둘 큰 비닐봉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선식품은 장바구니를 꼭 챙겨가 담아오고 그도 귀찮으면 아예 인터넷으로 장을 봤더니 집에 그리도 남아돌던 대형비닐이 완전 바닥났다. 이젠 재활용품 넣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간간이 50원 주고 비닐봉투를 사야할 판국이다. 몇년전 3월에도 폭설이 내렸던 게 떠올라 털부츠와 패딩부츠까지 상자에 담아 치우며 잠시 멈칫하긴 했다. 그러면서 다시 꺼내는 사태는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느낌상 올봄엔 그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이 말로 산통이 깨져서 머피의 법칙이 발휘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어쨌거나 얇디 얇은 옷으로 요즘 날씨를 견디는 열혈 젊은이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내 차림은 여전히 겨울옷에 머플러를 칭칭 감고 다니며 쉬 오지 않는 봄타령에 심술을 내고 있다. 급기야 오늘밤엔 기운이 뚝 떨어졌는지 집안 기운이 싸늘하다. 그동안 약간 내려놓고 지내도 멀쩡했던 보일러 온도계를 다시 올렸는데도 으스스한 기운이 가시질 않아 급기야 지금은 곁난로를 다시 켰다. 작업실용 털신도 안 치우고 평소처럼 게으름을 부린 게 장하다. 결론은 내가 경솔했다는 뜻이다. 원래 봄은 해마다 어렵게 찾아왔다. 그렇게 오래오래 기다려서 찾아온 봄은 또 금세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자칭 봄형 인간인 내가 이리도 조바심을 내나보다. 그러니 봄아 봄아, 이젠 그만 어서 와라. 춥다.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아카시아꽃이 다 피었더라. 실로 간만에 엄마 모시고 밤산책 나갔다가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보다 향기를 먼저 느끼고 깜짝 놀랐다. 낮에 외출할 때도 그 아래를 지나쳤는데 왜 몰랐을까. 어쨌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라도 올해의 아카시아는 예년보다 늦게 피었을 거라고 짐작 중. 작년엔 5월 9일에 피었다고 적어놨던데, 확실히 많이 늦긴 했나 보다.
요즘 어딜 가봐도 길을 파헤쳐놓아 짜증이 복받치던데, 지난번 자전거 타러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홍제천변 일부가 폭탄 맞은 꼴로 뒤집혀 있었다. 지방선거용 생색인지, 인계 전에 예산 써버리기 작전인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공사중이고 누덕누덕 기워대는 서울 꼬락서니는 좀 그만 보고 싶다. 해외도주하다 붙잡힌 군수만큼은 아니지만 이 동네 구청장도 엄청난 뇌물수수로 구속된지 오래라 부구청장 체제로 운영중이란다. 다음 구청장은 부디 쓸데 없는 삽질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 뽑히길...
아래층 똥개의 짖기 횡포는 이제 아주 극에 달했고 나의 분노와 앙심도 최대치에 도달하는 중이다. 다른 이웃의 불만도 당연히 고조된 듯 초저녁엔 우리 마당에 면해 있는 바로 옆집 아저씨와 아래층 개주인 사이에 언성이 조금 높아지기까지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는 내가 섣불리 설득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개 문제를 지적하는 옆집 아저씨에게 변명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글쎄, 개가 짖으라고 있는 거지 그럼 안짖는 개를 뭐하러 키우냐고 항변하더라. -_-;; 조금 전 산책 마치고 돌아온 모녀에게 미친듯이 짖어대는 놈을 노려보다, 문득 나는 살의를 느끼고 실질적인 방법까지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상한 음식을 먹여서 병나게 만들까, 아니면 어디서든 독약을 구해 몰래 밥에 타먹일까, 아니면 줄을 끊어 멀리 쫓아보낼까... 나란 인간이 이렇게 악독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지만 나쁜 건 분명 아래층 똥개가 아니라 이런 공간에서 시끄러운 똥개를 키우는 아래층 개주인들이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간 살아온 이 동네에 정이 떨어져서 어디든 살기 좋은 새 동네로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이왕이면 제주도 같은 데로. ㅠ.ㅠ 친구 동생은 제주도가 좋아서 대학원을 제주대학에서 다니고 있다는데, 바보같이 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집 가까운 학교 생각만 했지, 제주도로 공부하러 갈 생각은 꿈조차 꾼 적 없는 내가 한탄스러웠다. 여러가지 이유로 서울을 떠나선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참 오래 했는데, 이젠 여기를 뜰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더 많은 부추김과 용기가 필요한 때!
비바람 속에 첫날을 보내느라 제풀에 지친 모녀는 전날 밤 일본 말도 모르면서 TV를 틀어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일기예보를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일본열도 아래쪽은 죄다 우산 그림이었다. 6시부터 울린 모닝콜에 눈을 떠 커튼을 젖혀보니 당연히 주룩주룩 내리는 비. 아침 먹기 전 온천욕 한판의 욕심은 내리는 비와 함께 꼬리를 감추었다. 비오는 날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에서 뒹굴거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말이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마저 풍겨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4월 12일. 또 다시 길을 떠날 시간은 9시였으므로 우리는 최대한 뭉기적거리며 아침시간을 잠으로 축내다 드디어 아침을 먹으러 로비 식당으로 향했다. 둘쨋날의 첫번째 식사는 부페식. 전날 가이드가 나누어준 식권을 내자 기모노를 입은 아주머니 종업원이 빈 접시와 나무 젓가락이 놓인 쟁반을 내밀었다.
우선 자리부터 잡아놓고 한바퀴 휘 둘러보니, 대부분은 일본식 밑반찬과 각종 생선구이류가 대다수였고 식당에 드글드글한 료칸 숙박객도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인이었다. 내가 먹을 수 있겠구나 싶은 건 약간의 샐러드와 토마토, 빵, 오렌지 주스, 우유 정도. 원래 아침을 안 먹는 인간이지만 강행군 여행을 떠났을 땐 반드시 잘 챙겨먹는 것이 원칙인데, 아침부터 맥이 빠졌다. 그나마 왕비마마는 먹을만 하다며 하얀 밥 한공기에, 샐러드, 생선구이, 미소시루 한 그릇으로 요기를 했다. 쓴 커피까지 대충 먹고난 나는 방에 올라가서 슈크림이 든 빵으로 배를 채웠고...
숙소를 한군데 정해두고 돌아다니는 여행이 더 좋지만 아쉽게도 이번은 명탕 <순례>라 료칸을 하루씩만 묵어야 했으므로 얼른 짐을 꾸려 내려간 나는 왕비마마를 로비에 앉혀놓고 재빨리 료칸 주변을 살폈다. 대나무와 삼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1300년 역사를 간직한 온천 마을에서 그냥 목욕 한 번 한 것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ㅠ.ㅠ 역시 패키지 여행은 내 취향이 아니다.
료칸 앞은 바로 개울이었고 개울을 따라 나무판자가 깔린 산책로 같은 게 조성되어 있었다. 종일 비가 내려 물이 많아진 것인지 찰랑찰랑 흘러가는 개울이 위험해 보이는 듯도 했는데, 못내려가게 하는 표지판도 없는 걸 보면 수심이 깊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나 군데군데 피어있는 벚꽃은 죄다 떨어져 아쉬움을 더했다. 휘날리는 벚꽃 비 대신에 진짜 비를 맞아야 하는 여행이라니 우쒸!
기모노에 노란 우산을 받쳐들고 료칸 앞 다리까지 나와 양쪽에 줄지어 서서 떠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찾아간 우리의 첫 행선지는 시마네현 마쓰에 시에 있는 마쓰에 성. 우리나라로 치면 행주산성쯤 되려나? 벚나무가 8천그루나 있어서 일본 벚꽃 명소 100선에 드는 곳이라던데 뭥미 싶을 정도로 벚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에 이런 엄청난 장수목들이 더 눈에 띄었다. 일본말을 모르니 무슨 나무인줄은 모르겠고 수령이 350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쩐지 뿌리 드러난 모습이랑 생김새가 토토로 같은 데서 많이 봤음직하지 않은가?
이런 나무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비가 꽤 많이 내리는데도 공원 곳곳에서 위아래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쉼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환경미화원들은 비가 와도 서울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공원이나 고궁에선 비오면 아무도 일 안하던데... 주로 갈쿠리 같은 걸로 자잘한 돌이 깔린 성 마당을 고르게 다듬는 사람들이었는데, 계속해서 관람객이 드나들어 발자국이 찍히는 걸 어쩔 수가 없을 텐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갈쿠리질을 해댔다. 우리가 지나가서 또 발자국을 만드는 게 민망해질 정도로...
비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정원수를 관리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얼굴을 확인하면 대부분 할머니이거나 할아버지였다. 다들 날씬하고 자세가 꼿꼿해서 언뜻 보아서는 노인임을 알 수가 없었는데, 정말로 일본에서 지내는 사흘동안 울 엄마처럼 뚱뚱한 할머니는 단 한명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왕비마마는 더욱 민망해하셨던 것 같다. 그들과 비교되어 걸음도 잘 못걷는 뚱뚱한 노인이 무슨 관광이랍시고 일본을 휘젓고 다니느냐고... 휠체어를 타고서도 구경 다니는 일본 노인들과 맞닥뜨린 적도 있으므로 그들을 가리키며 용기를 북돋아드리려 해보았지만, 그들은 일본 사람이니까 괜찮단다. ㅜㅜ
왕비마마 특별출연 ^
암튼 마쓰에성 천수각은 이렇게 생겼고 5, 6층 높이인 제일 꼭대기까지 가려면 저 가운데 검은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어두고, 맨발로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한다. 왕비마마는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계단이라는 경고에, 입구 들어가자 마자 놓여 있는 관리인 의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렸고 한국 같았으면 절대 안올라가봤을지 모를 성 꼭대기에 엄마를 대신해 오르기 시작했다.
왕비마마의 눈빛은 당신도 올라가보고 싶다는 열망과 좌절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과장 안하고 경사가 6, 70도쯤 되는 나무 계단들은 확실히 노인들에게 무리였고, 층마다 무사들의 갑옷이며 투구, 옛날 지도, 무기류, 우물이 전시되어 있는 걸 보는둥마는둥 뛰다시피 가파른 사다리처럼 생긴 계단을 층층이 올라가 증명용 사진을 찍었다.
왕비마마에게 사진으로라도 보여드려야하니까... 멀리 보이는 건 신지코 호수라는 것도 같고.. 어쨌든 마쓰에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기는 하더라. 사진에 보이는 저 분홍자줏빛 나무들이 벚나무라는 얘긴데, 8천그루는 다들 어디에 숨은 건지 사방팔방 둘러봐도 잘 안보이기에 내심 벚꽃이 만개했을 때도 별볼일 없었겠구라며 괜히 심술을 부렸다. ㅋ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마쓰에성 바로 옆에 자리잡은 사무라이들의 고택. 해자로 둘러싸인 성안에는 오로지 성주와 식솔들만 살고, 무사들은 성밖에 따로 집을 마련해 살았단다. 암살당할까봐 그랬겠지 뭐. 사무라이들의 집을 복원한 건지 보존해 놓은 집들은 딱 남산 한옥마을이 떠올랐다. 소박하게 기와를 얹고 나무로 지은 집들이며 우물, 부엌에 놓인 그릇, 대청마루 다다미방 한 가운데 앉혀놓은 사무라이 마네킹까지! ㅎㅎ
수수한 집들은 뭐 그리 예쁘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굵은 모래인지 자잘한 자갈인지 암튼 신발에 닿는 감촉이 좋은 정갈한 마당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구석구석 쏘다니는 대신 툇마루 비슷한 데 앉아 쉬고 있다가 문득 발견한 것은 나무에서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 한마리! 크기가 엄청 컸다. 집에서 쌈채소 씻다가 작은 민달팽이를 더러 발견한 적은 있어도 실제 집 매달고 기어가는 달팽이를 목격한 건 최소한 20년은 넘은 것 같아 더 반가웠다.
일본 달팽이!
무사의 집에서 나오면 길 건너편에 바로 강물 같은 해자가 흐르는데, 우리도 저 배를 타고 해자를 한바퀴 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해자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총 몇개라던가, 그런 설명은 당연히 까먹었는데 암튼 저 배(저래 뵈도 이름은 호리카와 유람선!)를 타고 나즈막한 나무다리를 지나려면 위에 씌운 지붕이 내려와 더욱 납작해지고 안에 탄 승객들은 잔뜩 고개와 상체를 수그려야 한다. 추울 땐 코다츠도 마련되어 있다고 해서 내가 드디어 코다츠를 경험해보는가 기뻐했더니만, 그래도 봄이랍시고 코다츠는 없고 이불만 놓여있었다.
사실 이날은 전날만큼 비바람도 심하지 않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아서 나는 크게 추운 걸 몰랐지만, 왕비마마는 50분간 배를 타는 사이 춥다고 덜덜 떨으셨다. 이불이라도 있으니 어찌나 다행인지!
뱃사공 할머니, 허락받고 사진찍었다. 막판엔 노래도 불러주심^^
이불 뒤집어쓴 왕비마마 또 출현
한국 관광객이 꽤 많이 오는지, 뱃사공 할머니는 지붕이 내려오면 숙이는 연습을 처음에 한두번 시키더니 이내 한국말 안내방송을 틀어주었다. 물가에 서 있는 집들을 보노라니 가보지도 않은 베네치아가 잠깐 떠올라 이 무슨 엉뚱한 비약인가 싶기도 했는데, 아주 낮은 다리를 지나는 동안 네다섯 번 정도 지붕이 내려와 다 함께 찌그러져야 하는 경험이 예상외로 꽤나 재미있었다.
배타고 지나다 보니 좀 전에 가본 사무라이 저택 앞으로 빨간 버스도 지나가고...
저 멀리 천수각도 올려다보이고....
다리마다 난간 조각도 달라서 아주 짧은 다리도 있고 아래쪽은 콘크리트로 된 다리도 있는데, 주로 사람들만 건너다닐 수 있는 좁은 다리들이 훨씬 예쁘더라.
유람선을 끝으로 오전일정은 끝이 났으니 기다리던 점심시간. 시마네현 특선음식인 이즈모 소바정식에다 신지코 호수에서 잡힌 빙어 튀김도 나온다고 해서 살짝 기대를 했는데... 했는데...
메밀 소바는 한 젓가락씩 작은 찬합에 세 단이나 들어 있으되 한국에서 먹는 메밀국수처럼 갈은 무와 파를 듬뿍 넣은 국물에 푹 담가 먹는 게 아니고 그냥 작은 주전자에 든 국물을 살짝 부어 <비벼> 먹어야 하는 수준이다. 국물이 워낙 짜서... 거기다 밥 한그릇이 나왔는데 그냥 쌀밥이면 좋겠구만 버섯과 재첩(역시나 신지코 호수 특산물이란다)을 넣어 간장으로 간을 해 지은 거무스름한 밥이었다. 근데 왜 밥맛이 비리냐고!? 빙어튀김은 새끼손가락 만한 거 딱 두 조각. 그나마도 차갑고...
해서 우리 일행은 다들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얼른 아래로 내려가 핫바 같은 걸로 빈 속을 채웠다. 핫바 값은 한국이랑 비슷하게 200엔. 대신 크기는 훨씬 작더라. ㅠ.ㅠ
다음 행선지는 아다치 미술관. 미술작품보다는 정원으로 더 유명한 곳이란다. 일본식 정원의 최고봉이라나 뭐라나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고.. ㅋㅋ 그래도 정원이며 마당 예쁜 건 좋아라 하니 기대했는데, 나가볼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아래 사진은 다 거대한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정원을 찍은 거다. 미술관의 자랑인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미술관 1, 2층을 돌아다니며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저런 정원 사진을 매번 찍고보니, 죄다 비슷해보였다. 정원마다 이름도 다 다르더구만...
경치 좋은 산자락 아래 같은 데를 일부러 배경으로 골라서 이렇게 인공미 넘치는 정원수로 꾸미는 게 일본식 정원 가운데서도 무슨 형식이라고 하던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글동글 깎아놓은 정원수를 보노라니 나는 어디선가 텔레토비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슬몃 웃음도 났고, 공원묘지에 가면 수없이 볼 수 있는 봉분 생각도 떠올라 그렇게 아름답기만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렇게 숨막히는 정교함으로 꾸며놓고 사람 발길 못닿게 한 채 구경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 흐트러졌더라도 들어가서 거닐고 숨쉬고 어루만지는 쪽이 나는 더 좋단 말이지...
주로 일본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았다는 미술관은 그야말로 <왜색> 짙은 그림과 글씨 투성이라 건성으로 지나다녔다. 얼마 전 동화 원화 전시회에서 본 제비랑 아기
그림이 눈에 띄여서 반갑긴 했어도, 마음에 든 작품은 딱 이거 하나였음. 아저씨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 나도 듣고 싶다고 불현듯 생각...
둘쨋날 여정의 마지막은 역시나 인공미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하나카이로 정원. 나는 식물원 같은데 별로 안 좋아하지만, 흐드러진 꽃구경은 왕비마마가 특히 좋아하시는 거라 상품 검색하면서 은근 기대했고, 역시나 전 일정 가운데 왕비마마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며 흡족해했던 듯하다. 워낙 넓은 곳이고 시간도 촉박해 산책 대신 코끼리열차 비슷하게 생긴 빨간 기차를 타고 한바퀴 휘휘 돌아본 것도 다리를 쉬기에 좋았고.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곳이라는데, 봄이라 주로 보이는 건 튜울립과 히야신스였고, 동산 가득 양귀비가 피어나는 중이기도 했다. 입구부터 꽃향기가 진동하여 눈과 코가 잠시 즐거웠음.
이 정도 튤립이야 에버랜드에도 있지 않나..
돔안으로 들어가면 어지러울 정도의 양란 천국
돔에서 사방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난 꽃보다 이런 조형물이 더 좋다
관광을 모두 마치고 료칸으로 가기 전에 일본의 이마트라는 자스코에 잠시 들르기는 했다. 혹시나 예쁜 장화가 있으면 사오려는 욕심을 품고 갔으므로 확인해보았지만, 지방 소도시 마트에 예쁜 장화가 있을리 없잖아! 해서 슈퍼에 들러 그날 저녁 목을 축일 캔맥주 세 개랑 찝찔한 과자부스러기만 사가지고 나와 버스에서 마냥 일행을 기다렸다.
둘쨋날 간 온천 이름은 카이케 온천이고 일왕이 묵었다고 해서 유명하다는 료칸은 토고엔이었다. 일본 전역에 체인망을 갖고 있는 호시노야 리조트 계열의 료칸이라더라. 전날 묵은 료칸처럼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이 안내하는 곳이 아니라 현대식 호텔처럼 검정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여전한 친절함으로 우릴 맞이했다. 여행 일정을 계속 바꾸고 조정하느라 우리가 제일 마지막에 합류한 탓인지,전날 방배정에서 하필 제일 먼 끝방에 묵느라 왕비마마가 고생하셨기 때문에 미리 가이드에게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방을 부탁하였더니, 료칸에선 다른 일행과 달리 우리만 1층에 방을 내주었다. 그것도 지하에 있는 온천과 2층 식당으로 갈 수 있는 별관 엘리베이터 바로 옆방으로. 그 정도 배려는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는데, 짐을 풀자마자 다시 저녁을 먹으러 올라간 식당에서 우린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가이드는 다리가 불편한 분이 있다는 말로 방 배정에 편의를 부탁한 것뿐인데, 식당에 가보니 울 엄마 자리에만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음식을 차려놓은 것이 아닌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 게 불편하긴 해도 남들이 다 올려다보는 높은 자리에 홀로 앉아 식사를 해야하는 상황에 왕비마마는 난색을 표하며 민망함에 밥도 제대로 못드셨지만 (그래서 고맙지만 담날 아침 식사는 그냥 남들과 똑같이 밥상에 차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로선 료칸 측의 배려가 정말 인상 깊었다.
오른쪽에 살짝 비치는 테이블 다리가 왕비마마의 개인 식탁이다
료칸의 규모도 훨씬 크고 웅장한 데다 울 엄마에 대한 배려로 선입견이 작용한 때문인지 카이세키 요리도 전날보다는 입에 맞는 편이었다. 전날엔 식당에 내려가니 이미 티라이트에 불을 붙여놓아 스키야키와 스테이크가 제멋대로 익어가고 있었지만, 여기선 일일이 사람이 자리에 앉은 뒤에야 불을 붙여주었고, 찹쌀떡이 이상한 국물에 담겨있는 걸 비롯해 밥과 미소시루 이외에도 여기 보이지 않는 코스가 서너 가지 더 나왔다. 물론 오른쪽 위에 있는 소바는 점심에 먹은 소바를 떠올리게 했고, 회접시에 있는 가운데 생선은 방어로 짐작되는데 역시나 비렸다. 그나마 오징어(한치일수도..) 회와 나머지 회는 악착같이 다 먹어주었다. 저기 맨위 왼쪽 뚜껑 덮여 있는
이름하여, 딸기 치즈 무스
스끼야끼 국물이 맛있어서 밥 한공기를 다 먹을 수 있었음. 게다가 마지막에 나온 디저트가 흡족하다보니 전체적으로 꽤 괜찮은 식사를 한 느낌이 들더군. ^^
다시 방에 올라가 배가 좀 꺼지기를 기다리던 모녀는 아마도 잠시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거의 6층이나 되던 마쓰에성 천수각 사다리를 무슨 경주하는 사람처럼 뛰어오르고 내려온 탓에 나도 다리가 욱신거렸고, 여행오기 사나흘 전부터 홍제천변 산책길에서 사전준비를 하긴 했지만 역시나 운동 총량으로 볼 때 무리를 한 셈인 왕비마마도 녹초가 된 터였다.
하지만 뜨거운 몸을 담가 피로를 풀 수 있을 거라며 모녀는 묵직한 몸을 이끌고 다시 온천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온천 료칸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유카타 기념촬영을 하지 않은 것 같아, 얼른 왕비마마를 앉혀놓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피로에 지쳤는지 이미 엄니 표정은 별로 좋지않다.
처음 방으로 안내 받을 때 방에 준비되어 있는 유카타는 두벌 다 s 사이즈라면서, m사이즈를 친히 가져다준 직원의 친절도 왕비마마에겐 민망함이었다. 아 왜 일본 사람들은 그리도 날씬한 거냐고! 쳇...
전날 묵은 마츠노유 료칸 온천은 딱 우리나라 목욕탕 분위기가 강했는데, 그 이유는 대중탕에서 흔히 보는 하얀색 플라스틱 의자와 플라스틱 대야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토고엔 료칸 온천에는 옻칠한 나무 의자와 나무로된 대야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ㅎㅎㅎ
온천탕엔 당연히 디카를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그 생김새를 보여줄 순 없지만, 우리방 욕실에 놓여있던 나무 의자와 대야로 느낌이나마 전하려고 찍어왔다. 둘다 진한 옻칠을 해서 빤질빤질한 느낌을 살리고, 의자 높이를 두배로 높이면 딱 온천탕에 놓여 있던 의자와 대야다. 한국 일식집에 가보니 저런 나무통에다 밥을 섞어서 요리를 만들어주던데.... 설마... 그들이 용도를 헷갈린 게 아니라 저런 나무 용기가 일본에서도 다방면으로 쓰이는 것이겠지?
온천탕엔 8시반쯤 내려갔는데 우리 일행들은 벌써 다 온천욕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고 월요일 밤이라 그런지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어서, 온천은 그야말로 왕비마마와 나의 독탕이었다. 2천엔 쯤 내면 별도로 가족탕을 사용할 수도 있다던데, 2천엔 번 셈이다. 온천 료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기도 하고 (벌써?) 또 언제 와보겠나 싶은 나는 왕비마마를 살살 꼬드겨 노천탕에도 나가보자고 설득했다. 전날밤보다는 확실히 덜 춥기도 하고, 낯선 데 홀로 있는 걸 겁내는 왕비마마를 두고 혼자 나갈 수도 없으니 어쩌겠나. 다행히도 왕비마마는 엉거주춤 나를 따라 노천탕으로 나가주셨고, 일부는 빨간색 뾰족 지붕을 덮어 물이 식는 것을 막았지만 가장자리에선 소나무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진기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별빛이라도 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였겠으나, 새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선 소나무 아래로 가끔씩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로 땀을 식히며 즐기는 노천탕도 꽤나 운치가 있었다.
전날 료칸은 온천 운영시간이 자정이면 끝났지만, 이곳은 24시간 운영이라고 했다. 1시반 부터 2시반 사이에청소를 하고, 새벽 청소가 끝나면 남탕과 여탕이 서로 바뀐단다. 양기와 음기를 섞기 위함이라는 얘기를 진즉에 들었는데 진짜로 그런 료칸 온천엘 왔구나 싶었다. 모녀는 또 다시 새벽에 탕이 바뀐 뒤 한번 더 온천을 하고 가겠다는 말도 안되는 염원을 다지며 방으로 올라왔다.
이번에도 방에 돌아온 우릴 반겨준 건 푹신한 이부자리. 심지어 들어가기 쉽게 이불도 저렇게 젖혀놨더라. ㅎㅎㅎ
몸은 젖은 솜 같았지만 마지막 밤을 좀 더 불태워(?)야 한다는 생각에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캔맥주(산토리, 기린, 예츠비)를 꺼내 왕비마마는 한모금만 따라드리고 혼자서 기분을 냈다. 온천 내려갈 때 싸가지고 가서 노천탕에서 마실 걸, 하는 뒤늦은 회한이 들었지만 다 쓸모없는 짓... '다음번(과연?)엔 기필코!' 라고 생각하며 겨우 캔 하나에 얼굴이 벌게져가지고 잠을 청했다.
여행후기를 더 미루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거라는 조바심에 틈틈이 적어놓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러다 또 발동 걸리면 일 미뤄두고 포스팅에 열을 올리겠지만서도, 사진 크기 일일이 줄이고 올리는 게 번거로워서라도 하루씩 정리하는 게 좋겠다. 겨우 사흘간의 여행이 심리적으로는 일주일 이상 길게 느껴졌으니, 아마 후기도 쓸데없이 투덜투덜 주절주절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만의 여행이었기도 하니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마감중에 여행이라니!) 예상했던 대로 한시간이나 눈을 붙였을까 서둘러 일어나 세면도구를 마저 챙기고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12시반 출발인데 공항 집결 시간은 10시까지. 집에서 공항까지 리무진 버스로 한시간이면 충분하지만, 30분에 가까운 배차시간을 감안하면 아침 일찍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인천공항 고속도로 이용료 7500원이 아까워서 늘 당연히 집앞 정류장에 서는 리무진버스를 이용하는데, 두 사람의 왕복 버스비 3만 6천원을 감안하면 동생 말마따나 차라리 차를 가져가서 주차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편이 왕비마마의 편의를 위해서도 낫겠다는 걸 요번에 처음 깨달았다. 과연 앞으로 또 두 모녀가 해외여행을 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_-;;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하던 지인에게 일본 노선이 제일 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시간 남짓한 비행 시간동안 음료수도 나눠주고 식사도 나눠주고 기내 면세품까지 팔아야해서 번개불에 콩 볶듯 쉴틈없이 서둘러부쳐야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목적지인 돗토리현 요나고까지 예상시간은 겨우 1시간 10분. 당연히 기내식도 간단하고 부실한 도시락이었다. 기내식이 부실하니 미리 공항에서 요기를 해두라는 가이드의 조언을 들었던 터라, 나는 기내식을 먹는둥 마는둥 짧은 시간에 몇 개 안되는 일본말 외우기에 돌입했다. 아는 일본말이라곤 <스미마생>,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밖에 없는데, 왕비마마 간식이라도 사드리려면 <이꾸라데스까-얼마입니까> 같은 정도는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 몇 마디 수첩에 적어간 터였다.
나쁜 머리로 내가 열심히 외운 일본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꾸라데스까? (얼마입니까)
고레오 구다사이 (이것 주세요)
오미즈/오차 구다사이 (찬물/녹차 주세요)
오이시이데스네 (맛있네요)
와까리마시다 (알겠습니다)
~와 도꼬데스까? (~는 어디입니까?)
그밖에도 몇 개 더 적어갔지만 짧은 비행시간 동안 외우는 건 무리였는데, 다 외웠더라면 억울할 뻔했다. 결과적으로 사흘간 저말은 한번도 쓰지 못했으니까. 얼마라고 물어서 대답해 주면 알아는 먹을 거냐고! 게다가 맛있다고 감탄할 만한 음식은 사흘간 6끼니 동안 딱 한번뿐이었으니... ㅠ.ㅠ
여행상품 검색하면서 난생 처음 들어본 요나고는 정말 작은 도시인듯 공항 규모가 정말 작았다. 오래 전에 가본 속초 공항에 비할까. 타고간 비행기도 작은 편이었는데, 외국인은 인솔 가이드 포함하여 우리 일행 14명이 유일했다. ㅋㅋ 덕분에 지문과 사진을 찍어 입력해야 하는 입국수속은 금세 끝났고, 옛날에 주민등록증 만들 때처럼 양손가락에 시커먼 롤러로 잉크를 발라 지문날인을 해야하는 것으로 상상하며 막연히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던 외국인 지문입력은 그냥 손가락 스캐너에 양손 검지를 대는 것으로 끝이라 오히려 좀 의아했다.
예상은 했지만 일본 기상청도 구라청이기를 바랐던 마음도 무상하게 요나고 공항 밖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한국이랑 기온 비슷하다더니만 엄청 더 춥고! .ㅠ.ㅠ 비교적 따뜻하게 처덕처덕 입은 터라 인천공항과 기내에선 겉옷을 벗어 들고다녀야했는데도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하늘이 하는 일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위로를 들으며 버스에 올라탄 뒤 드디어 조촐한 관광이 시작되었다.
첫 행선지는 사카이미나토. 사카이미나토에 조성되어 있다는 미즈키(엥? 미즈키 님?) 시게루의 요괴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 미니버스에서 내려 기차를 타야했다. 만화 주인공들로 꾸며진 요괴기차를 타고 사카이미나토에서 내려 요괴 거리 곳곳에 서 있는 청동상이며 캐릭터를 살려 꾸민 가게를 구경하는 게 관광의 목적이었으니, 비까지 내리는 와중에 울 엄니가 그런 구경을 반길 리 없었고 일행 중 결혼 21주년을 맞아 여행왔다던 중년 부부도 울 왕비마마와 함께 버스를 지켰다. 그나마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만 후다다닥 수박 겉핥기 식으로 구경하고 돌아와야 했는데, 나야 미즈키 시게루도 모르고 주인공 기타로도 모르지만 시간 들여 꼼꼼이 구경하고 싶은 거리여서 좀 안타까웠다.
이름 모를 역의 풍경, 나무가 신기하게 생겼다
마침 기타로 열차가 지나갔다
우리가 탄 열차? 전철?
천장에도 온통 요괴 캐릭터 그림
역 광장 초입에 있는 청동상 - 가운데 할아버지가 미즈키 상일까?
공원 가로등은 물론이고 택시에도 눈알요괴가 달려있더라 ㅋ
미즈키 로드 인증샷 - 미즈키 니의 거리가 있다니!
우산은 포기하고 후드 티 뒤집어 쓰고 돌아본 거리에서 발견한 벛꽃은 죄다 이런 수준이었다. 일주일만 더 일찍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ㅠ.ㅠ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겠나.
어쨌거나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상점과 요괴상을 찾아보는 재미가 뭐 그리 쏠쏠할까 싶었던 처음 생각과 달리, 요괴 캐릭터 모양으로 빵을 구워 파는 빵집이 없나 (3종류 사먹었는데 맛도 좋았다!) 정원 예쁜 찻집이 없나, 캐릭터 상품점이야 별로라고 쳐도 반나절쯤 돌아다녀도 좋겠다 싶은 곳이었다. 만화내용을 알고 왔더라면 더욱 금상첨화였겠지만...
주인공을 안찍을 수야 없지. 얘가 기타로다
젤 귀엽던데 얘 이름은 까먹었다 ㅠ.ㅠ
[#M_요괴 빵?|접기|
우리가 타고갔던 기차 캐릭터 모양의 빵 - 좀 뭉개졌는데..담날 아침에 먹었다 ^^
뭐니뭐니해도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따라가서 제일 싫은 건, 내 마음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가이드가 정해준 시간에 맞춰 헐떡거리며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도 일부러 꾸며놓은 거리 안쪽으로 그냥 동네 구멍가게 같은 잡화 식료품점에서 나 어릴 때 '미깡'이라며 사먹던 옛날식 밀감도 발견했고, 시골스러운 쌀집도 구경하며 신기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다음 코스를 위해 억지로 버스에 올라야 했다. 으휴.
동해에 인접해 일몰이 절경이라는 신지코 호수가 다음 행선지였으나, 비바람치는 오후에 일몰은 무슨 일몰. 가운데 소나무섬을 만들어놓았으니 그거라도 구경하라는 말에 버스에서 내려 한 다섯발자국 가다가 사진 한방 찍고는 그냥 돌아섰다. 그래도 이 사진속의 두 연인은 젊어서 비바람 무릅쓰고 한참이나 다녀오더라마는...
동해바다 내려다보러 올라간 그 다음 전망대도 당연히 나는 시큰둥했고, 어서 온천료칸에 가서 푹 쉬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코스정식 카이세키 요리에 대한 기대도 허기와 함께 부풀어올랐고... 대체로 요번 일행들의 목적은 온천료칸 체험인듯 했으므로, 시답잖은 관광 코스는 한둘 정도 빼고 푹 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혹시라도 불만을 품은 사람이 나중에 여행사에 항의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그 바람을 실천에 옮길 수는 없었다. 괜찮은 온천 료칸 골라서 푹 쉬는 여행을 계획하려면 그저 호텔팩이나 자유여행밖에는 방법이 없는듯.
<명탕순례>랍시고 우리가 첫날 간 곳은 타마즈쿠리 온천. 돗토리현 공항에 내리긴 했어도 이미 어느 시점엔가 시마네현으로 넘어가 그곳 주소는 시마네현이라고 했다. 온천 역사가 1300년이나 된다고 해서 저녁이나 아침에 짬 내서 온천마을 산책도 할 작정을 품고 떠났으나, 여행 가서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어본 역사가 없으니 당연히 패스~. 게다가 반나절 만에 이미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듯한 왕비마마를 모시고선 그저 온천욕이나 할밖에 아무것도 계획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 숙소인 마츠노유 료칸
료칸 안뜰 -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온천욕탕이다
원래 내가 꿈꾸었던 온천료칸 체험은 역사가 몇백년씩 되는 소규모 전통 료칸에서 기모노를 차려입은 오카미상의 깍듯한 시중을 받아보는 것이었으나 ㅠ.ㅠ 그런 곳은 단체손님을 받지 않는 듯, 패키지 상품으론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공권과 숙박 예약만 대행해주는 자유여행 상품은 더러 있었으나, 일본말도 못하면서 왕비마마를 모시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진즉에 포기한 뒤, 그나마 좀 괜찮은 온천료칸 상품을 검색해본 터였다. 숙소 건물에 들어가자 마자 풀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느껴지더니 방에 들어가자 확실히 다다미방의 향취가 느껴졌다. 바로 이거야, 싶은. 온천료칸에 가면 저녁 먹기 전에 먼저 온천욕부터 하는 거라는데, 우리는 체크인 시간이 늦어 곧장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내가 꿈꾸었던 카이세키 요리 또한 다다미방으로 가져와서 차려주는 것이었으나, 식당으로 내려가야 했으니 또 한번 실망...
이것이 카이세키 요리
그렇다고 대규모 식당에서 객실손님 전체가 와글와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을 위해 따로 마련된 소규모 연회실 같은 곳에서 각자 한 상씩 차려진 저녁밥을 먹는 식이었고,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종업원들이 깍듯하게 시중을 들기는 했다. 열심히 외운 오미즈(찬물)이며 오차(녹차)를 달라고 입도 떼기 전에 눈치 빠르게 따라주시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매번 납작 엎드리듯 무릎 꿇고 시중드는 건 어째 영 불편하더라.
암튼 지역특산물인 게요리, 쇠고기 스테이크, 스키야키, 사시미, 소바... 온갖 진미가 나오는 것으로 기대했던 코스정식의 겉모습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맛이!!
우리나라 활어회와 달리 일본 사시미는 약간 숙성한 맛을 최고로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바닷가에 가까워서 특선요리가 생선이란 것쯤은 짐작했음에도, 첫날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나는 허기를 빵과 과일로 달래야했다.
나말고도 열심히 큼지막한 카메라를 가는 데마다 들이대는 여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괜스레 자꾸 사진찍는 게 민망해서 얼른 한장 누르고 마느라 저 사시미 위에 덮인 종이도 걷지 않아 좀 민망하다. 아무려나 네다섯 점 올려 있던 생선회는 비려서 먹다 남겼고, 게다리는 차가웠으며 특히 제일 위 가운데 놓여있는 정체불명의 요리는 생선과 가지, 두부를 연잎 같은 데 싸서 찐 거였는데 어찌나 비린지 단박에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ㅠ.ㅠ 왼쪽 위 뚜껑 덮여 있는 스키야키는 어찌나 짠지 아래 있던 날 달걀을 풀어 넣어도 간이 맞질 않고 나머지 밑반찬은 차거나 비리거나 밍밍해서, 첫날 저녁 제대로 먹은 건 하얀밥과 미소시루와 쇠고기 몇점이 다였다. 카이세키 요리 엄청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곳만 실망스러운 걸까? 우쒸...
식탐녀의 상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준 건 방으로 돌아와 발견한 푹신한 이불 두 채였다. 다녀와서 알아보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료칸도 식당은 별채에 마련해두고, 아침 저녁 밥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 이불을 개고 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듯하다.
이불을 보니 하루만에 너무 피곤해서 온천이고 뭐고 한숨 먼저 자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애써 몸과 마음을 추스려 유카타로 갈아입은 뒤 온천으로 내려갔다. 굳이 목욕탕에 귀중품을 가져갈 이유가 없겠지만, 어쨌든 일본 온천에는 열쇠로 잠그는 라커 없이 그냥 바구니 아니면 나무로 짜놓은 칸막이에 옷을 벗어놓는다. 들어갈 때 자기 번호만 눈여겨 보면 그만이다.
온천 성분 같은 거 전혀 모르긴 하지만, 완전히 말간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대강 씻었는데도 머리칼과 살결이 매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료칸에 딸린 온천탕이므로 규모는 당연히 그리 크지 않고, 탕이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는 일반 목욕탕 정도를 상상하면 될듯하다. 까마득한 옛날에 온양온천이랑 강화도 해수온천에 가본 적 있는데, 거기나 여기나 느낌은 다 비슷했다. 노천탕도 있었지만, 춥고 피곤해서 우린 나가볼 엄두도 내지 못해 그건 좀 아쉬웠다. 물이 다르다고 칭찬을 거듭하며 모녀는 다음날 새벽에도 한번 더 온천욕을 하자고 작심했지만 ㅋㅋㅋ 막상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당연히 온천욕 대신 잠을 더 욕심냈다. 아무렴, 잠이 더 중요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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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날을 잘못잡은 탓이 가장 크고, 일본엔 어딜 가나 벚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을 줄 알았던 내 착각도 일조를 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 사쿠라 구경은 무위로 돌아갔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에 든다는 성에도 가봤지만 벚나무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비에 절반은 꽃이 떨어져 있었으니 내심 얼마나 낙담이 되던지.
그에 반해 일본으로 떠나던 날, 막 따뜻해지기 시작했던 날씨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집앞 벚나무(엄밀히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옆집 벚나무)는 돌아와 보니 완전 만개해 있었다. 열심히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 헤매 다니다가 돌아오니 파랑새가 집에 있었음을 깨달은 치르치르와 미치르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벚꽃놀이는 집에서 하는 게 최고라는 얘긴가? ㅎㅎ 꽃샘추위라고는 해도 창밖을 내다보니 벌들이 열심히 꽃가지를 흔들며 바삐 날아다니고 있다. 봄날씨는 원래 변덕스러운 거라지만 4월 중순에 이렇게 반칙 쓰듯 겨울놀이하지 말고, 제대로 봄이 오면 참 좋겠다.
사흘간의 탈출. 최초의 모녀 여행. 최초의 일본 여행. 온천료칸 체험. 짐을 싼다.
왕비마마 칠순기념으로 흐드러진 벚꽃구경을 목표로 했으되 마감 눈치보느라 어물쩡거리며 자꾸 예약날짜 바꾸는 사이 좋은 날짜 다 놓치고, 3박4일 로망대신 2박3일로 줄어든 일정으로, 과연 벚꽃이 남아있을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계절에 암튼 간다.
전통료칸에서 무조건 편하게 쉬면서 맛난 거 먹고, 쏘다니는 관광은 최소한인 조용한 상품을 찾다보니 이름하여 <명탕순례 미각기행> ㅋㅋ. 지리에 워낙 약해 도쿄 오사카 큐슈 홋카이도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겐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 돗토리현 요나고. 일왕도 묵어갔다는 료칸이라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며 덜컥 정해놓고는, 필요이상으로 들떠 흥분한 왕비마마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며 드디어 짐을 싸고 있다. 나 같은 역마살 인생한테야 여행이란 늘 감당할 만큼의 흥분과 설렘을 주는 놀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특히 노인들에겐 말 설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렘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모험이란다. 여행 뒤끝엔 늘 마음병이 도져 돌아온 울 엄마가 바로 그 케이스. 당신이 가고싶다던 일본 온천 여행이니 과연 이번엔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돌아보니 여행 직전까지 밀린 일에 휘둘리는 건 늘 반복되는 습관이다. 제주도 갔을 때는 아예 일감을 싸가지고 갔었고,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도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는 동안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꾸벅 졸며 모자란 잠을 보충했었지 아마. 이번에도 가서 쉬면 된다면서, 공항가기 몇시간 전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원.
아무튼 이번엔 일감은커녕 책 한권도 안 가져갈 거고 순전히 늘어져서 먹고 쉬다 올 테다. 헌데 현지 날씨를 확인해보니 계속 비가 온다네 젠장. 바람에 휘날리며 지는 벚꽃비를 기대했더니, 참 운도 좋다. 나 혼자라면야 비오는 일본 시골 도시도 고즈넉한게 좋기만 하겠지만, 부디 꽃구경 좋아하는 우리 왕비마마를 위해서 단 하루라도 축축한 비대신 꽃비가 내려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