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11.04.18 간만에 자전거 11
  2. 2011.04.13 꽃과 벌 1
  3. 2011.04.07 봄비 10
  4. 2011.04.04 제비꽃 6
  5. 2011.02.26 봄아 봄아 4
  6. 2010.05.19 이것저것 19
  7. 2010.04.26 사흘간의 일본 여행 둘쨋날 23
  8. 2010.04.20 사흘간의 일본 여행 첫날 22
  9. 2010.04.15 벚꽃 5
  10. 2010.04.10 짐을 싼다 9

간만에 자전거

놀잇감 2011. 4. 18. 15:09

하얀색이라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게 더 잘 보이는 느루의 먼지를 털어내고 완전 내려앉은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고 정말 오랜만에 어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요가 관둔지도 두달이 돼가고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랑 씹기 밖에 안한 체력은 처음부터 티가 났다. 빠르면 20분, 늦어도 25분이면 도착하던 한강변까지 결국 다 못가고 중간에 쉬어야 했다. 핑계를 대려면 운동효과를 내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은 데다 맞바람 탓이었다고 둘러댈 순 있겠으나 그래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또 깨달았다.

자전거는 한번 익히면 절대 잊지 않는 종류의 기술이라는데 사람마다 좀 다른지 나는 이렇게 간만에 자전거를 탈 때마다 서툴게 헤맨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밀려드는 공포 때문일까? 페달질 하다 페달을 놓치질 않나, 안경이 흘러내리는데 핸들 한 손으로 잡기가 무서워서 안경도 못 올리질 않나, 스스로도 좀 난감하다 싶었다. 결국은 꾸준한 연습만이 살길이라는 건데 이렇게 몇달만에 한번씩 타가지고 언제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 원.

화창한 날씨에 풀풀 날려 떨어지는 벚꽃이 유혹적이라 나갔던 건데 한강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고 차가워 손이 시렸다. 장갑 안끼고 나간 걸 후회하며 예쁘고 새끈한 장갑을 사야겠군, 하고......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몇번이나 타려고! 다음에 느루 타러 나오기 전에 손시렵지 않은 날씨가 될 확률이 더 높다. ㅋㅋ

아 맞다. 자전거 살 때 받았던 검정색 벨을 조카에게 빼앗기고 계속 벨 없이 다녔는데, 안되겠다. 주말이라 그랬겠지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비롯해 굳이 보행로 놔두고 자전거길로 와글와글 걸어다니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벨을 달아야지. 갑자기 요란한 전자벨 울려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 인간들이 유독 싫어서 난 아예 벨을 잘 안울리는 편이라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었으나, 그냥 띠링띠링 울리는 벨 정도는 필수품임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느루에 어울리는 벨을 그간 계속 검색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꼭 차는 게 없어서 머뭇거렸는데 좀 눈에 덜 차더라도 담번에 타러 나가기 전엔 사야할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엉덩이가 심히 아프다. 흑. 허벅지의 뻐근함이야 어쩐지 지방이 근육화 된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며 흐뭇한 효과를 남긴 반면 멍이라도 들은 것처럼 아픈 엉덩이는 좀 민망하다. 간만에 자전거를 타면 왜 꼭 엉덩이가 아픈지 원! 초보자의 비애일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암튼 앉을 때마다 엉거주춤 자세가 웃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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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벌

투덜일기 2011. 4. 13. 14:43

몇년전 <꿀벌대소동>이란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지만, 공해가 점점 심해지면서 꿀벌들이 차츰 사라져가는 추세를 걱정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꽤 많이 접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바람에 모든 식물의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먹이사슬의 근간이 무너져 결국 최종 포식자인 인간에게도 대재앙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서 벌 구경한 적이 정말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땐 마당에 피어난 자잘한 꽃들 사이로 벌들이 쉴새없이 날아다녔고, 종종 벌에 쏘이는 사고도 벌어졌는데 말이다. 못생긴 꽃의 대명사로 알려진 호박꽃을 어린 나는 꽤 좋아해서 못생겼다는 세간의 잣대를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꽃잎마저도 통통하고 푹신한 주황색 꽃이 얼마나 탐스러운가. 게다가 가느다란 덩굴손은 또 얼마나 신기한지. 할아버지댁 마당에도, 나중에 우리집 마당에도 한켠엔 꼭 호박덩굴이 몇 그루 자라고 있었고 거기서 딴 애호박으로 할머니도 엄마도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었다. 지금도 애호박으로 만든 온갖 반찬을 좋아하는 건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안이 깊은 호박꽃을 들여다보며 노는 걸 즐겼던 나는 두번이나 크게 벌에 쏘인 뒤 호박꽃 갖고 놀기를 포기했다. 처음엔 손가락을 쏘였지만 두번째는 눈두덩을 쏘이는 바람에 호되게 앓으면서 사실 꽃밭에서 노는 걸 금지당한 셈이었다. 곤충은 거의 다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인데 지금도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면 순식간에 얼어붙는 걸 보면 어린시절의 각인 효과가 퍽이나 큰 모양이다. 

어쨌거나(요즘 포스팅의 모든 마지막 문단은 이 말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논리의 부족을 얼버무리는 이런 말--어쨌거나의 친구로는 '아무튼, 여하튼, 암튼, 어쨌든' 등이 있다--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그거야 서울도 그리 삭막해지기 이전 이야기고 최근엔 환경공해 때문에 벌을 구경한 적이 거의 없다고 여겼다. 꽃놀이하러 외출하는 걸 그리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봄꽃 피는 과정에 눈감고 살았듯 꽃을 보아도 벌을 굳이 찾아보지 않은 나의 비뚤어진 시각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나 화창하고 찬란한 날씨에 창밖을 내다보니 집앞 벚꽃은 거의 다 만개해 눈이 부실 정도다. 놀라운 건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수십 수백마리의 벌들이 가지마다 윙윙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보는 꿀벌 뿐만 아니라 날아드는 종류도 다양하다. 어린 시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꿀벌의 두세배쯤 되는 큼지막한 벌을 호박벌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시커멓게 생긴 그 대형 벌에 말벌까지 경쟁적으로 꽃을 탐하고 있다. 벚꽃에도 그렇게 꿀이 많았던가?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내다보고 섰다가 피식 웃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면 늙는 거라던데(그치만 난 어리고 젊었을 때도 꽃을 좋아했다고!), 이젠 꽃에 벌 날아드는 거 보고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다. 굳이 우기자면 꽃에 벌 날아드는 게 좋은 게 아니고 아직 이 도시엔 날아들 꿀벌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반가운 거다. 이왕 날아온 벌들이 옆에 있는 앵두나무도 열심히 수정해주면 더욱 금상첨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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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투덜일기 2011. 4. 7. 12:01

방사능 성분이 섞였네 마네, 외출을 삼가야 하네 어쩌구 언론에선 호들갑을 떨지만 어쨌든 나는 올해도 봄비가 반갑다. 새벽까지 기다려도 내리지 않더니만 어느새 똑똑 옥상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자동차가 가끔씩 젖은 골목길을 지나며 내는 소리는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지지직 전이 익어가는 소리 같다. 비가 오면 부침개가 떠오르는 이유가 빗소리와 전부치는 소리의 음역대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하는 이야기를 TV에서 본 것 같다. 그 뒤론 비와 부침개와 술한잔을 연결해 생각하는 조건반사가 더욱 심해졌다.

어쨌거나 해마다 하는 나의 봄비 타령은 곧 꽃 타령이다. 어제 나가보니 개나리 목련은 죄다 피었고 올해도 가지치기를 건너뛴 앵두나무에도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어 우리집 베란다까지 손을 뻗은 이웃집 벚나무에도 꽃눈이 다닥다닥 이제 곧 빵 터트릴 태세를 갖췄다. 지금 두 나무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나뭇가지를 분홍색으로 덧칠해야 할 만큼. 봄꽃은 꼭 그렇게 무심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듯이 갑자기 피어나는 느낌이다. 분명 조금씩 조금씩 꽃눈을 키워왔을 텐데도 눈 뜬 장님이었던 내 탓이긴 하지만, 어쩌면 뚯밖의 횡재처럼 반가운 봄꽃을 보려고 일부러 눈감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며칠만 더 눈 질끈 감고 있으면 튀밥 같고 솜사탕 같은 앵두꽃, 벚꽃이 요것봐라 하면서 짠 피어 있을 거다. 오늘 내린 봄비에 그날이 좀 더 당겨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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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투덜일기 2011. 4. 4. 07:19


평년보다 훨씬 따뜻했던 한식 성묘길 나들이. 공원묘지 여기저기 제비꽃이 피어있었다. 인공적인 색채의 요란한 조화가 유일하게 어울리는 공원묘지에서 땅바닥에 잔뜩 수그려핀 보라색 생화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원래 잡초처럼 무더기로 많이 피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가엔 딱 한송이가 피었다. 무더기로 많았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꺾어서 조카들에게 하나씩 반지를 만들어주었겠지만, 그냥 카메라만 들이댔다. 누렇게 마른 잔디 사이에서 잡초들과 함께 제일 먼저 홀로 피어난 제비꽃. 드디어 완연한 봄이 왔다고 인정하련다. 

십수년 전만 해도 통일동산과 공원묘지뿐, 허허벌판 아무도 없던 곳에 프로방스, 헤이리 마을이 생겨나고 영어마을이 들어서고 이젠 무슨무슨 아울렛까지, 그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 참 정신 시끄럽겠다 싶게 근방까지 자동차행렬이 엄청나 한숨이 다 나왔다. 대식구라 이젠 인근 식당에서 밥먹기도 어려워 성묘 음복이 진짜로 도시락 싸가는 피크닉이 되어버렸으니 우리에겐 다행인 건가, 불행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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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봄아

투덜일기 2011. 2. 26. 04:19

4월을 넘겨 5월쯤은 돼야 지난 겨울의 잔해를 청산하는 게으름뱅이가 올해는 좀 부지런을 떨었다. 어느날인가 외출한 대낮의 햇볕에서 확실히 봄이 느껴졌고 두툼한 외투가 살짝 버겁기도 했다. 밤엔 다시 싸늘해지는 날씨를 모르는 건 아니므로, 외투를 다 치울 생각은 못하고 우선 두어개 먼저 세탁해 넣어두었다. 간만에 방청소 하는 김에 겨우내 강추위를 견디게 해주었던 소형 난로도 스팀용 물통에 남았던 물을 빼버리고 바싹 말려 걸레로 닦아 두었다. 완전히 치우지 못한 건 순전히 난로를 통째로 넣어둘 큰 비닐봉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선식품은 장바구니를 꼭 챙겨가 담아오고 그도 귀찮으면 아예 인터넷으로 장을 봤더니 집에 그리도 남아돌던 대형비닐이 완전 바닥났다. 이젠 재활용품 넣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간간이 50원 주고 비닐봉투를 사야할 판국이다. 몇년전 3월에도 폭설이 내렸던 게 떠올라 털부츠와 패딩부츠까지 상자에 담아 치우며 잠시 멈칫하긴 했다. 그러면서 다시 꺼내는 사태는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느낌상 올봄엔 그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이 말로 산통이 깨져서 머피의 법칙이 발휘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어쨌거나 얇디 얇은 옷으로 요즘 날씨를 견디는 열혈 젊은이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내 차림은 여전히 겨울옷에 머플러를 칭칭 감고 다니며 쉬 오지 않는 봄타령에 심술을 내고 있다. 급기야 오늘밤엔 기운이 뚝 떨어졌는지 집안 기운이 싸늘하다. 그동안 약간 내려놓고 지내도 멀쩡했던 보일러 온도계를 다시 올렸는데도 으스스한 기운이 가시질 않아 급기야 지금은 곁난로를 다시 켰다. 작업실용 털신도 안 치우고 평소처럼 게으름을 부린 게 장하다. 결론은 내가 경솔했다는 뜻이다. 원래 봄은 해마다 어렵게 찾아왔다. 그렇게 오래오래 기다려서 찾아온 봄은 또 금세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자칭 봄형 인간인 내가 이리도 조바심을 내나보다. 그러니 봄아 봄아, 이젠 그만 어서 와라.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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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투덜일기 2010. 5. 19. 21:21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아카시아꽃이 다 피었더라. 실로 간만에 엄마 모시고 밤산책 나갔다가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보다 향기를 먼저 느끼고 깜짝 놀랐다. 낮에 외출할 때도 그 아래를 지나쳤는데 왜 몰랐을까. 어쨌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라도 올해의 아카시아는 예년보다 늦게 피었을 거라고 짐작 중. 작년엔 5월 9일에 피었다고 적어놨던데, 확실히 많이 늦긴 했나 보다.

요즘 어딜 가봐도 길을 파헤쳐놓아 짜증이 복받치던데, 지난번 자전거 타러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홍제천변 일부가 폭탄 맞은 꼴로 뒤집혀 있었다. 지방선거용 생색인지, 인계 전에 예산 써버리기 작전인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공사중이고 누덕누덕 기워대는 서울 꼬락서니는 좀 그만 보고 싶다. 해외도주하다 붙잡힌 군수만큼은 아니지만 이 동네 구청장도 엄청난 뇌물수수로 구속된지 오래라 부구청장 체제로 운영중이란다. 다음 구청장은 부디 쓸데 없는 삽질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 뽑히길...

아래층 똥개의 짖기 횡포는 이제 아주 극에 달했고 나의 분노와 앙심도 최대치에 도달하는 중이다. 다른 이웃의 불만도 당연히 고조된 듯 초저녁엔 우리 마당에 면해 있는 바로 옆집 아저씨와 아래층 개주인 사이에 언성이 조금 높아지기까지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는 내가 섣불리 설득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개 문제를 지적하는 옆집 아저씨에게 변명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글쎄, 개가 짖으라고 있는 거지 그럼 안짖는 개를 뭐하러 키우냐고 항변하더라. -_-;; 조금 전 산책 마치고 돌아온 모녀에게 미친듯이 짖어대는 놈을 노려보다, 문득 나는 살의를 느끼고 실질적인 방법까지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상한 음식을 먹여서 병나게 만들까, 아니면 어디서든 독약을 구해 몰래 밥에 타먹일까, 아니면 줄을 끊어 멀리 쫓아보낼까... 나란 인간이 이렇게 악독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지만 나쁜 건 분명 아래층 똥개가 아니라 이런 공간에서 시끄러운 똥개를 키우는 아래층 개주인들이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간 살아온 이 동네에 정이 떨어져서 어디든 살기 좋은 새 동네로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이왕이면 제주도 같은 데로. ㅠ.ㅠ 친구 동생은 제주도가 좋아서 대학원을 제주대학에서 다니고 있다는데, 바보같이 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집 가까운 학교 생각만 했지, 제주도로 공부하러 갈 생각은 꿈조차 꾼 적 없는 내가 한탄스러웠다. 여러가지 이유로 서울을 떠나선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참 오래 했는데, 이젠 여기를 뜰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더 많은 부추김과 용기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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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때를 연상시키듯 비도 내리고 있겠다, 여행후기나 마저 올려야겠다.

비바람 속에 첫날을 보내느라 제풀에 지친 모녀는 전날 밤 일본 말도 모르면서 TV를 틀어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일기예보를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일본열도 아래쪽은 죄다 우산 그림이었다. 6시부터 울린 모닝콜에 눈을 떠 커튼을 젖혀보니 당연히 주룩주룩 내리는 비. 아침 먹기 전 온천욕 한판의 욕심은 내리는 비와 함께 꼬리를 감추었다. 비오는 날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에서 뒹굴거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말이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마저 풍겨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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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를 더 미루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거라는 조바심에 틈틈이 적어놓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러다 또 발동 걸리면 일 미뤄두고 포스팅에 열을 올리겠지만서도, 사진 크기 일일이 줄이고 올리는 게 번거로워서라도 하루씩 정리하는 게 좋겠다. 겨우 사흘간의 여행이 심리적으로는 일주일 이상 길게 느껴졌으니, 아마 후기도 쓸데없이 투덜투덜 주절주절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만의 여행이었기도 하니까.


뭐니뭐니해도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따라가서 제일 싫은 건, 내 마음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가이드가 정해준 시간에 맞춰 헐떡거리며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도 일부러 꾸며놓은 거리 안쪽으로 그냥 동네 구멍가게 같은 잡화 식료품점에서 나 어릴 때 '미깡'이라며 사먹던 옛날식 밀감도 발견했고, 시골스러운 쌀집도 구경하며 신기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다음 코스를 위해 억지로 버스에 올라야 했다. 으휴.

동해에 인접해 일몰이 절경이라는 신지코 호수가 다음 행선지였으나, 비바람치는 오후에 일몰은 무슨 일몰. 가운데 소나무섬을 만들어놓았으니 그거라도 구경하라는 말에 버스에서 내려 한 다섯발자국 가다가 사진 한방 찍고는 그냥 돌아섰다. 그래도 이 사진속의 두 연인은 젊어서 비바람 무릅쓰고 한참이나 다녀오더라마는...

동해바다 내려다보러 올라간 그 다음 전망대도 당연히 나는 시큰둥했고, 어서 온천료칸에 가서 푹 쉬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코스정식 카이세키 요리에 대한 기대도 허기와 함께 부풀어올랐고... 대체로 요번 일행들의 목적은 온천료칸 체험인듯 했으므로, 시답잖은 관광 코스는 한둘 정도 빼고 푹 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혹시라도 불만을 품은 사람이 나중에 여행사에 항의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그 바람을 실천에 옮길 수는 없었다. 괜찮은 온천 료칸 골라서 푹 쉬는 여행을 계획하려면 그저 호텔팩이나 자유여행밖에는 방법이 없는듯.

<명탕순례>랍시고 우리가 첫날 간 곳은 타마즈쿠리 온천. 돗토리현 공항에 내리긴 했어도 이미 어느 시점엔가 시마네현으로 넘어가 그곳 주소는 시마네현이라고 했다. 온천 역사가 1300년이나 된다고 해서 저녁이나 아침에 짬 내서 온천마을 산책도 할 작정을 품고 떠났으나, 여행 가서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어본 역사가 없으니 당연히 패스~. 게다가 반나절 만에 이미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듯한 왕비마마를 모시고선 그저 온천욕이나 할밖에 아무것도 계획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 숙소인 마츠노유 료칸

료칸 안뜰 -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온천욕탕이다


원래 내가 꿈꾸었던 온천료칸 체험은 역사가 몇백년씩 되는 소규모 전통 료칸에서 기모노를 차려입은 오카미상의 깍듯한 시중을 받아보는 것이었으나 ㅠ.ㅠ 그런 곳은 단체손님을 받지 않는 듯, 패키지 상품으론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공권과 숙박 예약만 대행해주는 자유여행 상품은 더러 있었으나, 일본말도 못하면서 왕비마마를 모시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진즉에 포기한 뒤, 그나마 좀 괜찮은 온천료칸 상품을 검색해본 터였다. 숙소 건물에 들어가자 마자 풀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느껴지더니 방에 들어가자 확실히 다다미방의 향취가 느껴졌다. 바로 이거야, 싶은. 온천료칸에 가면 저녁 먹기 전에 먼저 온천욕부터 하는 거라는데, 우리는 체크인 시간이 늦어 곧장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내가 꿈꾸었던 카이세키 요리 또한 다다미방으로 가져와서 차려주는 것이었으나, 식당으로 내려가야 했으니 또 한번 실망...

이것이 카이세키 요리


그렇다고 대규모 식당에서 객실손님 전체가 와글와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을 위해 따로 마련된 소규모 연회실 같은 곳에서 각자 한 상씩 차려진 저녁밥을 먹는 식이었고,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종업원들이 깍듯하게 시중을 들기는 했다. 열심히 외운 오미즈(찬물)이며 오차(녹차)를 달라고 입도 떼기 전에 눈치 빠르게 따라주시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매번 납작 엎드리듯 무릎 꿇고 시중드는 건 어째 영 불편하더라.
암튼 지역특산물인 게요리, 쇠고기 스테이크, 스키야키, 사시미, 소바... 온갖 진미가 나오는 것으로 기대했던 코스정식의 겉모습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맛이!!

우리나라 활어회와 달리 일본 사시미는 약간 숙성한 맛을 최고로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바닷가에 가까워서 특선요리가 생선이란 것쯤은 짐작했음에도, 첫날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나는 허기를 빵과 과일로 달래야했다.
나말고도 열심히 큼지막한 카메라를 가는 데마다 들이대는 여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괜스레 자꾸 사진찍는 게 민망해서 얼른 한장 누르고 마느라 저 사시미 위에 덮인 종이도 걷지 않아 좀 민망하다. 아무려나 네다섯 점 올려 있던 생선회는 비려서 먹다 남겼고, 게다리는 차가웠으며 특히 제일 위 가운데 놓여있는 정체불명의 요리는 생선과 가지, 두부를 연잎 같은 데 싸서 찐 거였는데 어찌나 비린지 단박에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ㅠ.ㅠ 왼쪽 위 뚜껑 덮여 있는 스키야키는 어찌나 짠지 아래 있던 날 달걀을 풀어 넣어도 간이 맞질 않고 나머지 밑반찬은 차거나 비리거나 밍밍해서, 첫날 저녁 제대로 먹은 건 하얀밥과 미소시루와 쇠고기 몇점이 다였다. 카이세키 요리 엄청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곳만 실망스러운 걸까? 우쒸...

식탐녀의 상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준 건 방으로 돌아와 발견한 푹신한 이불 두 채였다. 다녀와서 알아보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료칸도 식당은 별채에 마련해두고, 아침 저녁 밥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 이불을 개고 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듯하다.
이불을 보니 하루만에 너무 피곤해서 온천이고 뭐고 한숨 먼저 자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애써 몸과 마음을 추스려 유카타로 갈아입은 뒤 온천으로 내려갔다. 굳이 목욕탕에 귀중품을 가져갈 이유가 없겠지만, 어쨌든 일본 온천에는 열쇠로 잠그는 라커 없이 그냥 바구니 아니면 나무로 짜놓은 칸막이에 옷을 벗어놓는다. 들어갈 때 자기 번호만 눈여겨 보면 그만이다.
온천 성분 같은 거 전혀 모르긴 하지만, 완전히 말간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대강 씻었는데도 머리칼과 살결이 매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료칸에 딸린 온천탕이므로 규모는 당연히 그리 크지 않고, 탕이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는 일반 목욕탕 정도를 상상하면 될듯하다. 까마득한 옛날에 온양온천이랑 강화도 해수온천에 가본 적 있는데, 거기나 여기나 느낌은 다 비슷했다. 노천탕도 있었지만, 춥고 피곤해서 우린 나가볼 엄두도 내지 못해 그건 좀 아쉬웠다. 물이 다르다고 칭찬을 거듭하며 모녀는 다음날 새벽에도 한번 더 온천욕을 하자고 작심했지만 ㅋㅋㅋ 막상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당연히 온천욕 대신 잠을 더 욕심냈다. 아무렴, 잠이 더 중요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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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투덜일기 2010. 4. 15. 16:12
내가 날을 잘못잡은 탓이 가장 크고, 일본엔 어딜 가나 벚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을 줄 알았던 내 착각도 일조를 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 사쿠라 구경은 무위로 돌아갔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에 든다는 성에도 가봤지만 벚나무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비에 절반은 꽃이 떨어져 있었으니 내심 얼마나 낙담이 되던지.

그에 반해 일본으로 떠나던 날, 막 따뜻해지기 시작했던 날씨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집앞 벚나무(엄밀히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옆집 벚나무)는 돌아와 보니 완전 만개해 있었다. 열심히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 헤매 다니다가 돌아오니 파랑새가 집에 있었음을 깨달은 치르치르와 미치르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벚꽃놀이는 집에서 하는 게 최고라는 얘긴가? ㅎㅎ 꽃샘추위라고는 해도 창밖을 내다보니 벌들이 열심히 꽃가지를 흔들며 바삐 날아다니고 있다. 봄날씨는 원래 변덕스러운 거라지만 4월 중순에 이렇게 반칙 쓰듯 겨울놀이하지 말고, 제대로 봄이 오면 참 좋겠다.

집앞 벚꽃 - 나가기 귀찮아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을 줌으로 당겼더니 이렇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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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싼다

투덜일기 2010. 4. 10. 02:03

사흘간의 탈출. 최초의 모녀 여행. 최초의 일본 여행. 온천료칸 체험. 짐을 싼다.
왕비마마 칠순기념으로 흐드러진 벚꽃구경을 목표로 했으되 마감 눈치보느라 어물쩡거리며 자꾸 예약날짜 바꾸는 사이 좋은 날짜 다 놓치고, 3박4일 로망대신 2박3일로 줄어든 일정으로, 과연 벚꽃이 남아있을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계절에 암튼 간다.

전통료칸에서 무조건 편하게 쉬면서 맛난 거 먹고, 쏘다니는 관광은 최소한인 조용한 상품을 찾다보니 이름하여 <명탕순례 미각기행> ㅋㅋ. 지리에 워낙 약해 도쿄 오사카 큐슈 홋카이도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겐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 돗토리현 요나고. 일왕도 묵어갔다는 료칸이라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며 덜컥 정해놓고는, 필요이상으로 들떠 흥분한 왕비마마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며 드디어 짐을 싸고 있다. 나 같은 역마살 인생한테야 여행이란 늘 감당할 만큼의 흥분과 설렘을 주는 놀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특히 노인들에겐 말 설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렘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모험이란다. 여행 뒤끝엔 늘 마음병이 도져 돌아온 울 엄마가 바로 그 케이스. 당신이 가고싶다던 일본 온천 여행이니 과연 이번엔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돌아보니 여행 직전까지 밀린 일에 휘둘리는 건 늘 반복되는 습관이다. 제주도 갔을 때는 아예 일감을 싸가지고 갔었고,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도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는 동안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꾸벅 졸며 모자란 잠을 보충했었지 아마. 이번에도 가서 쉬면 된다면서, 공항가기 몇시간 전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원. 

아무튼 이번엔 일감은커녕 책 한권도 안 가져갈 거고 순전히 늘어져서 먹고 쉬다 올 테다. 헌데 현지 날씨를 확인해보니 계속 비가 온다네 젠장. 바람에 휘날리며 지는 벚꽃비를 기대했더니, 참 운도 좋다. 나 혼자라면야 비오는 일본 시골 도시도 고즈넉한게 좋기만 하겠지만, 부디 꽃구경 좋아하는 우리 왕비마마를 위해서 단 하루라도 축축한 비대신 꽃비가 내려주길.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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