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국민?

책보따리 2006. 12. 19. 03:26

(처음 블로그 폴더를 나누면서 여기라도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좀 많이 해야지
마음 먹었는데 기막히게도 만날 신변잡기 타령만 하다보니 정작 책 이야기 폴더엔
그간 글이 달랑 하나밖에 없었음을 반성하며... 약간 쥐어짜듯 적어보는
별 쓸모 없는 푸념임을 미리 밝혀둠 ^^;;)

며칠전 인터넷 뉴스를 휘적휘적 뒤지다 보니
<성인 넷 가운데 하나, 책? 안 봐>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출판 관련 기사는 유독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지난 9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예년보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율과 독서량은 76%, 12권으로 좀 오른 반면
(각각 1년에 책을 1권이라도 읽은 사람들의 비율, 1년에 읽은 권수라는 얘기)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은 날로 심화되어, 성인 넷 가운데 한 명은 1년 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단다.
여기 집계된 책에는 만화는 물론 잡지도 포함된다고...

솔직히 나는 저 집계 결과가 상당히 놀라웠다.
표본조사이니 물론 오차범위가 있겠지만...
1년에 책을 단 한권도 안 읽는 성인이 '겨우' 25%밖에 안되며
게다가 75%나 되는 사람들은 책을 1년에 12권이나 읽는다고???
책으로 벌어먹고 사는 나도
일과 관련되지 않은 순수 책읽기는 열손가락 안쪽이 될 것이 유력하고 ㅜ.ㅜ
내 주변의 수많은 측근들과 가족들 가운데서도 공부와 상관없이 책과 친하게 지내는 이들은 참으로 드문데!

언젠가 드물게 번역료를 인세로 계약한 친구가 주변 지인들에게
이번엔 책이 많이 팔리면 자기에게 득이 되니 책 좀 사보라고 권했더니만
책 사보겠다는 이는 없고
인세 로열티를 묻고는 선심쓰는 체하며 다들 천원짜리를 내밀더라는 얘기에
나를 비롯한 출판계 친구들이 씁쓸하게 웃은 기억이 있을 만큼
정말로 주변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내가 번역하는 책들이 정말로 마음의 양식이 되고 정신을 살찌우는 '양서'라기 보다는 출판사에서 장사해보려고 만들어내는 대중서가 대부분이고 보니
나 역시 민망해서 주변에 권하지도 않게 된다.
게다가 또 열악한 출판계 사정상 잘 팔릴 것 같은 책은 절대로 인세 계약으로 안 해주고 (물론 정지영 아나운서 같은 경우엔 얼굴마담 격이었으니 예외겠지만), 대부분은 '매절'이라는 매정한(?) 원고료 지불 방식을 선호하며, 그나마 두어번에 나눠주는 원고료도 부담이 되는 아주 작은 출판사나 소신있는 마케팅을 위해 무조건 인세계약을 원칙으로 하는 출판사들만 드물게 책 판매량에 따라 번역료를 챙겨주는 인세계약을 원하기 때문에, 초베스트셀러가 되어도 나한테 떨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 굳이 나까지 나서 책 팔기를 거들긴 싫다. -.-;;

번역인생 11년 동안 40여권을 우리말로 옮겼지만
그간 인세계약을 한 건 앞으로 나올 책 2권을 포함해 단 3번 뿐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지난번 <마시멜로 이야기> 파동으로 이름 빌려준 아나운서가 인세로 벌어들인 돈이
자그마치 8천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뒤
준백수로 지내던 몇몇 지인들한테서 연락이 왔더랬다.
나 또한 번역으로 그리 떼돈을 버는 줄 알았는지, 새삼 자기들도 번역을 해보고 싶으니
어떻게 시작하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하는 그들의 순진무구함에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또 냉정할 땐 면도날처럼 차가운 인간인지라
출판계와 번역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현실을 일러주고
영어보다는 우리말 글솜씨가 훨씬 더 중요하니, 지금 당장 원서 한권 습작해서
번역된 책과 비교해 본 뒤
그래도 하고 싶으면 5년간 손가락 빨며 완전 가난하게 지낼 자신 있을 때 
덤비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짐작컨대, 그때 전화했던 지인들 가운데 지금 열심히 습작중인 이는 아무도 없을 거다.

어쩌면 그들은 내 이야기를 제 밥그릇 지키려는 앙탈로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번역'이라고 하면 영어깨나 접해봤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전천후 아르바이트' 쯤으로 여기는 세상에서(심지어 출판계에서조차 돈독 오른 사장들은 실제 원고를 매만지는 편집자들의 고충은 나몰라라 한 채, "값싼" 번역만 찾는 지경이다),
번역깨나 한다고 이름 난, 이른바 '중견 번역가' 선생들은 새끼작가인지 문하생인지 알 수 없는 '하청업자' 아이들에게 원서를 찢어 맡겨 일을 시키거나, 번역아카데미 같은 걸 차려
'수업교재'로 쓰다가 거지 발싸개 같은 그들의 원고를 취합해, 떡하니 자기 이름을 걸고 출판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며,
섣불리 초보 번역가에게 일의 기회를 주고 차츰 '인재를 키워보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넓은 출판사는 더는 없거나, 있더라도 대형 출판사들의 공세에 밀려 곧 망할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는 마당에,
들이는 품과 시간과 열정에 비해선 아직도 턱없이 낮은 번역료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마음 먹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내년이면 이 길로 접어든지 12년째인 나도
이 나라 출판계가 과연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 불안하게 고민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염려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올해까진 거의 한달도 쉬지않고 일하고 있음에도
출간되는 책의 수가 들쭉날쭉한 걸 보면 (작년엔 달랑 2권, 올해는 무려 9권)
결국 나의 미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독서 수준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복지부동을 실천하듯, 몇년 전 다들 숨죽여 시장을 관망하던 때와 달리 확실히
작년부터 출판계는 발악하듯 요동치고 있는데, 나는 이럴 때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
내년 번역 스케줄이 절반쯤은 짜였을 만큼 바쁘니 일단은 다행이지만
이렇게 우르르 몸부림치다 또 출판시장이 와장창 사그라들면
일감 역시 줄어들 것이 뻔하니 말이다.

그러니 독서인구의 연평균 독서량이 작년보다 늘어 12권이란 말이 놀랍고도 감사할밖에.
잡지라도, 만화라도, 요즘 유행하는 시답잖은 자기개발서나 '칙릿'이라도 많이많이 읽으라고
새해엔 사방에 강권이라도 해볼까... ^____^

당신이 읽는 한권이
대한민국의 출판계
라니의 생계와 미래를 살립니다!

이런 팻말이라도 등뒤에 써붙이고 다니든지 ㅋㅋㅋ

(아이쿠.. 글이 어째 용두사미..  애당초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 까먹고 곁다리로 빠진 느낌..
에라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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