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삶꾸러미 2007. 3. 1. 17:52

언제고 이 블로그의 주소가 왜 ynot(와이낫)인지 사연을 적어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그날이 오늘이 되고 말았다.
물론 몹시 심오한 뜻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혹 아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 밴드 가운데 '와이낫 ynot'이라는 밴드가 있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유학중인 J양의 추천으로 함께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간만에 락카페 간 기분으로 스탠딩 공연에서 맥주 한 캔 손에 들고 어슬렁어슬렁 춤도 따라 출 수 있었던 분위기도 좋았고, 국악과 크로스오버 한 것 같은 음악도 섞여 있는 레퍼토리가 제법 괜찮았다.
그래서 다음 카페 가입도 하고 공연소식이며 신곡 소식에 한동안 귀를 기울이기도 했었는데
늘 그러듯 나야 음악에 관한 한 문외한이고 오타쿠적인 면도 전혀 없는 인간이다 보니
어느 순간 멀어졌다.

그런데 ynot이라는 밴드 이름을 들은 순간 낯익고 정겹게 느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번역을 처음 시작할 때 이른바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를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출판사와 일을 하게 되어 주야장천 몇년간 로맨스 소설만 번역한 적이 있었다. ^^;;
사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면 중학교 시절 하이틴 로맨스, 할리퀸 로맨스를 열심히 읽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천편일률적인 갈등 구도와 인물묘사에 식상해져 집어치웠던 전적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로맨스 소설을 사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다.
전에도 살짝 이야기했지만, 원서 내용이 제 아무리 부실하고 짜증나더라도 일단 정성을 들여 번역을 하려면 (다른 번역가들은 어떨런지 모르겠다만...) 내 경우 무조건 애정을 가지려고 자기최면을 걸어야한다. 

그러다보니 또 로맨스 소설을 읽는 재미도 새삼 불타올랐다.
남성우월적인 마초이기 십상이지만 '몹시 잘생기고 훤칠하고 돈 많고 대개 목소리까지 멋진' 남자 주인공과 짜증스러운 감정의 기복을 보이며 까탈을 부리지만 매우 예쁘고 몸매도 훌륭한 여주인공에 대한 불만을 어지간히 잠재우고 나면, 그들의 밀고 당기는 사랑놀음과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농염한 러브신(!), 그리고 성격파탄자 남녀 주인공을 서로 잘 길들여 어김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적인 해피엔딩이 주는 재미가 또 쓸만하기 때문이었다. ^^;;

암튼 세부묘사가 장황한 로맨스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상투적인 표현 가운데
여주인공의 성격을 묘사할 때 현대물의 경우 흔히 들어가는 말이
"Why?"라는 말보다 "Why Not?"이라고 되묻는 때가 더 많은 유형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삐딱투덜이 기질을 뼛속까지 지닌 나에겐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으면 오히려 한 번 꼭 들어가고 싶은 반항의 기질을
한마디로 표현한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어린시절 꼭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 주변에서 보란듯이 찍은 사진들이 참 많다 ㅎㅎ)

'여자가 어딜 감히...'라는 편견이라든지
'술 많이 마시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늦게 들어오지 마라', '노처녀는 안된다' 따위의 당부에 난 걸핏하면 속으로 '왜 안되는데?'라고 되뇌었고, 웬만한 건 몸소 부딪쳐 깨지고 다치고 겪어본 다음에야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carpe diem과 함께 why not?(줄여서 y_not)은 이제 거의 내 삶의 잣대쯤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더 정겨운 ynot이라는 블로그 주소.

3월 첫날을 맞아 심기일전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다짐하고 나왔는데
자꾸만 엉겨붙는 짜증과 여건의 압박 때문에 오늘은 온종일
"대체 왜 안된다는 건데?"
"왜 못하게 하는 거야?"
"왜 가지 말라는 거야?"
.
.
.
따위의 why not?을 조금 전까지도 연발했다.
속이 좀 상하지만, 결국엔 내 뜻대로 밀고 나가리라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까짓거 못할 건 또 뭐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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