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세상'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2.12.22 엄마가 희망이다 16
  2. 2012.12.20 월동준비 10
  3. 2012.04.26 못 미더운 사회 2
  4. 2011.09.02 달콤함이 필요하다 13
  5. 2011.05.28 세상이 쌈닭을 기른다 8
  6. 2011.04.14 무명 4
  7. 2011.03.11 30년 11
  8. 2011.03.02 개학/개강 5

그간 안하무인 MB 정권의 처단을 위해서라도 새누리당 후보는 절대 대통령 되면 안된다고 열심히 세뇌교육에 힘썼더니, 왕비마마는 그럼 강지원 변호사를 뽑겠다고 했었다. 자기가 '아는데' 정말로 청소년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나. 나는 ㅂㄱㅎ만 안 찍으시면 된다고 반색했다가 나중엔 또 다시 유치하게 이민 카드를 휘두르며(MB 대선 때도 익히 써먹은 수법이다 ㅠ.ㅠ) 정말이지 ㅂㄱㅎ가 대통령 되는 사태는 저지해야하므로  이왕이면 야권단일화 후보를 밀어주는 게 어떠냐고 엄마를 꼬드겼었다. 왕비마마는 대선 후보자 토론을 두어번 보고 나선(특히 이정희가 활약한 1차는 전편을 다 보시곤 그 여자 말 한번 시원시원 조리있게 잘하네, 했다) 2번을 찍겠다고 동의해주었다. 사람 순하게 생긴 게 박력은 없지만 꼼꼼하게 일 잘하겠다면서. 그러나 과반의 국민들은 우리와 의견이 달랐고, 모녀는 낙담했다.

 

어제 동짓날 절에 가서도 왕비마마는 대다수 ㅂㄱㅎ(어윽...이름도 쓰기 싫다!) 지지자 할마시들의 설레발에 적잖이 마음을 상하고 돌아온 듯했는데, 오늘은 또 열혈 ㅂㄱㅎ 지지자인 고모 한분과 안부  통화를 하다 정치 얘기로 화제가 넘어갔는지 논쟁이 좀 길어졌다. 멀리서 듣자하니 대화가 흥미진진하여 깔대기처럼 귓바퀴를 늘이고 통화를 엿들었다. 오, 울 왕비마마 조리있게 잘 받아치시는군!

 

ㅂㄱㅎ 당선에 할렐루야를 외쳤다는 60대 고모는 이를테면 부유한 강남 할머니의 전형. 온 종일 기분이 너무 좋아 콧노래를 불렀다고 한 모양인데, 열살쯤 손위인 엄마는 그게 콧노래 부를 일이냐, 표 차이도 얼마 안났다고(엄마, 백만표 차이래요 ㅠ.ㅠ) 문재인이 아깝게 떨어졌다고 응수했다. 고모는 무엇보다도 '예쁘고' 불쌍한 데다(부모 잃은 고아라고;;) 똑똑해서 정치를 잘하니까 ㅂㄱㅎ를 지지한다고 했다는데, 왕비마마는 부모 다 총 맞아서 불행하게 죽었으니 불쌍한 건 맞지만 토론 보니까 똑똑한 건 모르겠다고(울 엄마 화이팅!), 중요한 일 있을 때마다 쏙쏙 빠져나가면서 정치 잘 한 게 뭐 있느냐고 반박했다. 30년 넘게 똑같이 육영수 여사 흉내내는 머리 모양 하는 것도 그만큼 생각이 꽉 막혔다는 뜻이라고도 했다. (오, 내가 해준 말인데, 울 엄마 기억력 짱!!)

 

논리적으로 밀린다 싶었던 고모는 이정희를 들먹이며 종북좌파 이야기를 꺼낸 모양이었다. 아마도 민주당까지 싸잡아서 다 종북좌파라고 했겠지. 이 대목에서 엄마는 우아하게 웃으며 요즘 북한이 얼마나 못사는지 다 아는데, 북한 좋아서 추종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인정상 도와주자는 거지... 그리고 이정희 말도 들어보면 일리가 있더라나... ^^; 저쪽에선 또 '퍼주기' 비판을 시작한 모양이었고, 엄마는 4대강에 쓸데없이 돈 처들이고 파헤치는  것보다는 굶어죽는 사람들한테 쌀 퍼주는 게 더 나은 게 아니냐고 대꾸했다. 오오.. 존경스러운 왕비마마. 뉴스 볼 때마다 내가 추임새로 넣었던 말들을 다 귀담아 두셨었군요... ㅠ.ㅠ 그러고선 추가 공격하듯, 자기는 유니세프에 다달이 기부도 하고 있다고, 굶어죽고 병든 애들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정점을 찍으심! (이후로 대화는 유니세프에서 산 6만원짜리 천가방이 얼마나 가볍고 쓰기 편한가 하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수백만원짜리 명품백이 여럿인 고모는 과연 왕비마마의 자랑을 어떤 표정으로 들었을지 몹시 궁금타.) 으음, 어느 대목에선가 정수장학회, 박정희, 전두환 비판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까먹었다. ^^;

 

심신이 건강해진 울 왕비마마는 최근 어딜가나 '사람이 또릿또릿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자기가 옛날에 얼마나 멍청하고 흐릿해보였으면 그랬겠느냐고 속상해하는 적이 더러 있다. 우울증을 거의 떨쳐버려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우와 말 많고 잘난 시누이와 정치토론도 거뜬히 해내시는 걸 보니 내가 밖에서 활동하는 엄마의 모습을 못봐서 그렇지 매사에 정말로 똑똑해지고 자신감도 넘치는 게 분명했다. (하긴, 얼마전 실버합창단의 제2회 송년음악회에서 잘난 척 대장인 젊은 할머니와 왕비마마가 무대 위에서 살짝 '한 판 붙는' 장면도 내가 찍은 동영상에 담겨 있다. ^^; 알토 파트는 입다물고 기다리는 도입 부분에서 왕비마마는 단지 리듬을 타며 고개만 살짝살짝 움직이고 있었는데, 뒤에서 기분나쁘게 콱 찌르며 노래 부르지 말라고 혼냈단다. 울 엄마는 홱 고개를 돌려 왜 엉뚱한 사람 잡느냐고, 당신이나 잘하라고 대꾸하셨다고... 그 순간 입다물고 있었다는 증거 동영상도 있으니, 담주에 개강하면 정식으로 한판 붙으시라고 내가 부추겨놓았다. ^^ 울 엄마 화이팅! ㅋㅋ)   

 

전화통화를 끝낸 왕비마마는 "@@동 고모가 우리더러 좌파세력이란다"라며 씩 웃었다. 나는 70대 할머니 중에서 좌파 흔치 않을 텐데 멋지다고 대꾸했다. 물론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울 엄마도 덩달아 보수파에 깊이 세뇌되어 ㅂㄱㅎ를 찍어주었을 확률이 높다는 건 잘 알지만, 투덜이 딸이 옳다니까 귀기울여 들어주고 지지해주고 촛불시위에까지 따라나서는 울 엄마. 5년 그 개고생을 하고도 또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이 나라 국민들은 도대체가 가망이 없어, 라고만 할 게 아니라, 연로한 울 엄마가 바로 내가 찾는 희망이구나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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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준비

투덜일기 2012. 12. 2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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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가 들어간 유일한 영어단어라나 뭐라나(이는 확실히 틀린 주장이므로 오해 없도록 미리 밝혀야겠다;; ㅋ), 그래서 누구에게든 선물하기 딱이라는 장갑. 우산이나 스카프처럼 사도사도 욕심이 생겨 겨울마다 기웃거리게 된다. 가죽장갑은 끼나마나 손시려울 것 같아 처박아둔지 오래고, 여러가지 장식 요란한 벙어리장갑은 아무래도 끼고 나서기 민망해진 나이라는 자격지심이 앞서고... 

결국 작년에 회색 털실장갑을 하나 사 끼었다. 또 '스님용' 장갑을 산 거냐고 놀림 좀 받았지만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지 뭐. 게다가 언젠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사두었던 옷핀모양 단추도 직접 달아놓고는 어찌나 뿌듯하게 끼고 다녔는지.

그런데 지난번 영하 십몇도 혹한에 나가보니 안에 부숭부숭 안에 털이 든 이중장갑 끼고 온 사람이 몹시 부러워 올해 또 한 켤레 사들였다. 겨울엔 그저 오리털 패딩이 최고라며 기럭지 넉넉한 깜장 패딩과 함께 월동준비는 완벽하게 끝냈노라고 흐뭇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어젯밤 돌연 평범한 월동장비로는 버틸 수 없는 빙하기가 시작됨을 느꼈다.

그렇다면 답은 결국 상식이 통하는 따뜻한 곳(그런 곳이 정말로 있다면;;; 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지구 다 망가뜨리고 나면 다른 행성 개척해 떠나 살겠다는 허황한 꿈과 뭐가 다른가 싶긴 하다)으로 떠야하는 게 아닐까, 상투적이고 가볍기 짝이 없게도 그것이 제일 먼저 든 생각. 감상적 패배주의에 빠지면 안된다는데 난 꼭 그런 심정이다. 희망이 있나? 5년 전과 똑같은 기시감이 가장 두렵다. 절대로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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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엘 나가보니 인근 파출소에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코팅까지 된 채 매달려 있었다.  

택배기사를 가장하여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접근해,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그런다며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한 뒤 그대로 달아나는 사건이 빈번하므로 택배기사 복장을 한 사람이 그런 부탁을 하더라도 절대 빌려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더라도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낯선 사람, 특히 청소년은 경계하라고도 적혀 있었다.

 

고가의 스마트폰을 중국에 다량 팔아넘긴 사람들이 잡혔느니, 택시에 두고 내린 휴대폰은 이제 절대로 찾을 수가 없다느니 하는 소리는 들어본 것 같은데 요샌 휴대폰 날치기도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어휴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요즘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서 휴대폰을 놓고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워낙에도 숫기 없어서 남들에게 휴대폰 빌려달라고 하는 대신 나야 길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공중전화를 찾아헤맬 확률이 100퍼센트지만 (그나마도 귀찮아서 그냥 전화를 안하고 만다;;) 얼마 전까지 나는 아주 가끔씩 휴대폰을 남에게 빌려준 적이 있었다. 주로 청소년과 아이들, 착해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었고, 남자가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역시나 정신 없는 친구가 남의 휴대폰을 빌려 약속장소를 다시 묻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휴대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도 듣자하니 수법이 정말 다양하다. 후배 하나는 엄마에게 길에서 넘어져 크게 다쳤다며 병원 검사비 30만원을 급히 계좌로 송금하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문제는 송금 계좌가 낯선 사람의 것이라는 점. 길에서 자기를 부축해 데려온 고마운 사람의 계좌라나. 후배는 놀란 마음에 얼른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 받질 않았다. 곧이어 언니가 놀란 목소리로 엄마 문자 받았느냐고 전화를 했더란다. 엄마에게 똑같은 문자를 받았던 것. 놀란 마음을 달래고 보니 아무래도 수상쩍다 여긴 두 사람은 의논 끝에 의문의 계좌 대신 엄마 은행계좌로 각자 30만원씩 송금을 하고는 문자로 그 내용을 알렸단다. 이후 상황을 몰라 전전긍긍 엄마 휴대폰으로 마냥 전화만 걸던 자매는 오후 늦게야 집 전화로 엄마랑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엄마는 다친 데 없이 멀쩡하셨고 휴대폰을 어디에서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고 있었단다. 그 사연을 듣고 내가 말했다. 울 엄마는 문자 못 보내는 할머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_-;

 

얼마 전엔 엄마가 절에 갔다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목격했다고도 했다. 마침 예불이 끝나 점심을 먹으려고 다들 식당방으로 이동하려는데, 띠리리리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고 그 보살님이 통화를 하더니 허둥지둥 울먹이며 우리 아들 교통사고 났다는데 어쩌느냐고 부들부들 떨더라나. "엄마! 접촉사고 나서 지금 경찰서 왔는데 당장 합의금 필요하니깐 @@만원 보내주세요. 계좌번호 문자로 찍어보낼게."라는 식으로 다급하게 말을 했다는데, 목소리가 딱 자기 아들이었다고. 하지만 누군가 보이스피싱 같으니 아들한테 먼저 확인해보라고 했고, 하필 점심시간이라 자리를 비운 아들과 연결이 안 돼 한참 피를 말리던 그 아주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단다. 만약 집에 혼자 있다가 그런 전화를 받았다면 대뜸 은행으로 달려갔겠으나, 주변에서 사람들이 안심 시키고 혹시 정말 사고가 난 거라면 좀 있다 은행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스님의 다짐에 힘입어 아주머니는 차분히 계속 아들과 통화를 시도했고, 결국 사기극 전화였음이 판명됐다고. 울 엄마도 우체국 사칭, 경찰청 사칭, 법원 사칭, 카드회사 사칭 보이스 피싱의 존재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교통사고  핑계대는 자식 노릇까지 하는 사기꾼들의 대담성에 퍽 놀란 눈치였다.

 

지난 번 인사동에 나갔을 때는 돌아오는 길에 종로2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두 여자가 내게 접근해 물었다. 종로3가 전철역이 어느쪽이냐고. 나는 이쪽으로 쭉 직진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머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잘난척 그리 멀지 않다고 (왜냐하면 나도 나갈 땐 전철타고 종로3가 역에서 내렸기에 잘 아니까;;) 5, 600미터만 가면 된다고 콕 찝어 말해주었다. 두 여자는 고맙다고 말을 하면서도 금방 안 가고 미적미적 뭔가 더 말을 붙이려는 눈치였다. 거기서 전철을 타면... 어쩌구 그들이 또 뭔가를 묻고 있는 가운데 문득 의심이 치솟았다. 이 사람들 '도를 아십니까' 아냐?! 십수년전 종로통에 매일 다닐 때도 그 구역은 '도를 아십니까' 집단의 잦은 출몰지였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인상을 팍 쓰며 뒷말을 듣지도 않고 홱 돌아서서 내 갈길을 갔다. 애당초 그들의 질문엔 분명 친절히 대답해 줬으니 내 소임은 다 한 거라규!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내내 궁금했다. 그들은 실제로 길을 더 물으려는 것이었을까, 정말로 '도를 아십니까'였을까.

 

세상이 하도 험악해지다보니 요즘엔 택배 왔다고 소리쳐 문을 열게 해놓고 강도로 돌변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에, 택배상자 받기를 취미삼아 하는 나로선 '택배입니다'라고 하는 외침에 마냥 반가워만 해선 안되는 게 아닌가 자책이 든다. 다행히 택배업체에서도 그런 점을 잘 아는지 "택배 왔습니다!"라고 외치는 대신 수신인 이름을 먼저 외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또한 주소와 전화번호 때문에 택배상자를 함부로 버리면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보도에 이젠 택배상자 주소 택에도 전화번호는 가상 번호로 적혀  오거나 뒷번호가 ****으로 가려져 있다. 진화화는 범죄에 대응책도 자꾸 변화하고는 있지만 과연 비상한 범죄 두뇌를 우리가 따라갈 순 있는 걸까. 방송도 언론도 못 믿겠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도 못 믿겠고, 법도 못 믿겠고, 국내산이니 한우니 유기농이니 적어놓은 표기도 못 믿겠고, 도대체 믿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옛날부터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쓰시던 농담 중에 <뙤놈 빤스를 빌려 입었나? 왜 그렇게 의심이 많아?>라는 말이 있었다. 주로 조롱하는 말투로 쓰였으므로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반면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신중한 태도가 크게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절대로 믿지 않는 불신의 병에 걸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못 미더운 사회를 살아가려면 무턱대고 믿다 큰 코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포장하고 거짓말을 서로 맞추고,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진실이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좀 많이 보았는가. 요즘 고등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권력과 경제력이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90%라는 보도를 보고, 그들의 현실감각에 씁쓸했다. <법대로 하라>는 말은 변호사를 대고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고등학생 쯤 되면 다들 아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와는 별도로 중고등학생들이 골목 같은데 서넛 이상 모여 있으면 지나며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겁부터 난다. 어느 틈엔가 제일 무서운 범죄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한 그 아이들을 그 지경으로 몰고 간 원인을 생각해보면 또 다 어른들의 잘못, 사회 탓이다. 사회의 투명성이며 공정성 평가에서 늘 OECD 국가중 꼴찌에 가깝네 마네 하는 말이 괜히 나올 리 없다. 앞으로 점점 나아져야 할 텐데 별로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뙤놈 빤스' 운운하며 자조하는 나의 의심도 계속될 것이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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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요즘 세상이 너무 쓰디써 달콤함이 몹시 필요하다.

언제고 내가 꼭 내려가 살고 싶은 제주도에 난데없는 해군기지 건설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강정마을엔 결국 오늘 공사강행이 시작된 모양이고,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축출됐던 강용석의 국회의원 제명은 똑같은 놈들의 비호로 부결되었으며, 6년이나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 친구를 집단 성추행했던 고대 의대생들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수위는 쉬쉬 하는 분위기 속에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몇해 전 운동권 학생들은 2주만에 전격 출교(재입학이 불가한 최고 수준의 징계란다)시킨 고대가 돈많고 빽 든든한 의대생들은 퇴학(한학기만 지나면 재입학할 수 있다고)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니, 하는 꼬라지가 성희롱, 성추행을 일삼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랑 수준이 딱 맞다. 에이 더러운 것들. 성폭력 피해자에게 꼭 니들이 짧은 치마 야한 옷 입고서 먼저 범죄를 유발했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기막힌 논리가 언제까지 통하려는지 원!

아, 이렇게 더럽고 쓴 세상 때문에 달달한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자꾸 딴길로 빠진다. 모두에게 유쾌하고 즐거운 유머와 자랑질로만 블로그를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은 온통 분노할 일 뿐이다. 잠깐 릴랙스, 릴랙스...

요리에 대해서 별 두려움은 없지만 내가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한 것이 바로 베이킹의 세계다. 집에서 척척 스콘 굽고 초코칩 쿠키 만들고 심지어 새우깡까지 홈메이드로 만들어 간간이 맛을 보여주는 친구를 보노라면 완전 요술쟁이 같아 자꾸만 관심이 쏠린다. 집에 오븐이 없기에망정이지 있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내가 '원래' 그리 단것과 간식을 즐기지 않는데다 베이킹은 곧 탄수화물 및 고밀도 과당 섭취의 지름길이므로 (왕비마마의!) 건강상 애써 멀리해왔다.

그런데 아뿔싸. 요즘엔 물부어 대충 반죽한뒤 전자렌지에 띵~ 돌리면 베이킹이 끝나는 온갖 '믹스'들이 마트에 깔려 저마다 손짓을 보낸다. 게다가 TV에선 잘생긴 고수가 너도 한번 해보라고, 엄청 쉽다고 유혹까지... ㅠ.ㅠ

결국 유혹에 넘어가 <흰눈표 브라우니 믹스>를 사다가 시도해봤다. 오, 놀랍게도 정말 단번에 '거의' 성공. 덜 식혀서 잘라 먹는 바람에 모양이 좀 흩어지긴 했으되 촉촉하고 달달한 데다 초코칩 덩어리까지 막 씹히는 것이 꽤 훌륭했다. 비록 달랑 320g에 1440칼로리라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씩 나눠먹으면 되지 뭐 이럼서 벌써 세번째 시도. 두번째 작품(?)을 먹어본 조카들도 진짜 산 것처럼 맛있다며 열화와 같은 칭찬을 안겨주었다.

자랑스러워 찍어놓은 세번째 브라우니의 자태는 이러하다.


설명서엔 평평한 네모 그릇에 담아 전자렌지 용량에 따라 3분 30초에서 4분 돌리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4분 10초 돌렸다. 직사각형 그릇이라 그런지 처음 가운데가 푹 꺼져 거기만 잘 안익어 시간을 연장해야했기 때문. 오른쪽 사진은 6등분해서 자른 것. 한 조각당 무려 240 칼로리지만, 커피와 함께 치명적인 달콤함에 빠지는 순간에는 더러운 세상따위 잠깐 잊을 수 있다. 그런데... 입맛이 유독 써서 어느 날보다 달콤함이 필요한 오늘은 남은 게 없다. 어제 밤참으로 마지막 조각을 홀랑 다 먹어버려서. 뚫어져라 쳐다보며 사진으로라도 달콤함을 불러일으켜야겠다.  

단 거 별로 안좋아하는 나도 자꾸 단것을 찾게 만드는 팍팍한 세상. 어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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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더운데 으으으 열 뻗칠 일을 방금 또 겪었다.
조금 전 서너집 건너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하얀 봉투를 하나 들고서. 엄마에게 서명을 받으러 왔단다. 아까운 세금으로 왜 쓸데없이 돈 있는 집 애들까지 무상급식을 줘야하느냐며, 그걸 반대하는 서명이란다. 헛...

모른 척 내방으로 건너와 그냥 앉아있으려니 속이 시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간 엄마에게 무상급식 반대하는 오세훈 일당과 강남 부자들에 대한 욕을 실컷 해대며 왜 무상급식이 평등교육권인지 설명해드리긴 했지만, 엄마는 옆집 아줌마가 10분 이상 떠들어대면 그냥 쫓아버릴 욕심에 내용파악도 없이 그냥 서명을 해줄 사람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서야 했다.

일단 우리 모녀는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사람이고 오세훈, 이명박 일당의 이상한 돈지랄이 더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포문을 열고 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해 언성이 높아졌다.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라고 적혀 있는 하얀 서류 봉투의 정체도 의심스러웠다. 대체 무슨 관계로 오세훈 일당 꼬봉 노릇을 하시는 거냐고 아주머니에게 따져묻기도 했다. 쌈닭기질이 제대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아주머니 왈, 남편이 한국전쟁참전 유공자라 무슨 위원회에 한 자리 차지하고 계신단다. 영문도 없이 거기서 그 봉투가 날아와 서명을 받으라는 지령이 떨어져 그 임무를 하는 수 없이 아주머니가 떠맡았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하도 서슬이 퍼렇게 언성을 높이며 이명박 오세훈 욕을 해대니까 말문이 막혔을 뿐이지, 처음 오자마자 살금살금 무상급식의 문제점을 들어 울 엄마를 설득한 논조를 보면 무비판적인 딴나라당 지지자임이 틀림없었다.

어휴...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한나라당의 주민투표 청원 서명운동이 강남서초구 주민들과 보수 노인층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손길이 우리집까지 뻗치고 보니 화가 치민다. 하기야 보수 우익단체들은 늘 한나라당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이렇게 그 조직을 이용해 민심인 척 억지로 세를 모으고 있다니. 복지 포퓰리즘 추방이라고? 참 이름 하나는 잘도 갖다 붙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을 카드로 뽑았던데, 재원마련에 대한 계획도 없이 일단 지지율 떨어지는 거 막으려고 시작한 일이니 그것도 엄연히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면 어쩔 셈인가?
 
정신나간 놈들.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90퍼센트를 넘겼으니 일부 부유계층 이외엔 어느집이나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이 큰 부담이므로  반값 등록금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일이다. 대학등록금 문제가 복지 포퓰리즘이니 뭐니 해서 당략으로 싸울 일이 아니듯이 전면무상급식 문제도 아까운 국민의 세금 운운하며 눈가리고 아웅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국민 세금이 아까우면 쓸데없는 삽질이나 저지르지 말란 말이다!

오세훈파 아주머니가 아직도 가지 않았다. -_-; 오래 눌러앉아 지치게 만들어 서명을 받으려는 전략인가? 한판 붙고 후퇴했으니 다시 가서 서명 파일 열어보자고 할 수도 없고 으으으... 얼음물이나 벌컥벌컥 마시며 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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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하나마나 푸념 2011. 4. 14. 16:06

가뜩이나 시끄럽게 온 사회가 떠들어대는 문제에 흥분한 입 하나 더 얹는 거 별로 좋은 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이니 몇자 적어두는 것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유명 한복 디자이너가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어 '드레스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절당했다. 폭 넓은 한복이 거추장스러워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란다.(도무지 말이 안된다. 외할머니 산수연을 그 호텔 영빈관에서 했을 때, 당연히 음식은 뷔페식이었고 한복입고 참여한 친지들은 수십 명에 달했다. 한복입고 밥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다했어도 사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실화니까 믿어도 좋다). 신라호텔 측은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사장이 직접 그 한복 디자이너를 찾아 사과했지만(이 소식을 나는 어제 밥먹다 뉴스에서 보았다) 논란은 계속되는 모양이다. 한복 디자이너의 인터뷰 영상까지 나오는 뉴스를 보며 나는 문득 카이스트 논란을 떠올렸다. 이 나라엔 자살공화국의 오명이 붙은지 오래고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와 취업난에 이중으로 시달린 대학생들은 해마다 이미 수백명씩 목숨을 끊어왔음에도 이토록 대학생 자살과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된 건 역시 단기간에 되풀이된 비극적인 자살의 장본인이 카이스트 대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물론 우수한 과학 인재를 국가적으로 지원 양성하겠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설립된 카이스트의 징벌적 차별 등록금제는 사라져야 마땅하고, 학계에도 가차없이 적용되는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은 타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명 국립대라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과 비판과 대안을 촉구하는 계기가 된 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신라호텔 뷔페에서 한복 입었다고 쫓겨난 사람이 힘없고 이름없는 어느 개인이 아니라 청담동에 번듯한 한복숍을 소유하고 있는 유명 디자이너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만약에 내가 한복입은 울 엄마를 모시고 그 식당을 찾았다가 쫓겨났더라면 똑같이 트위터와 블로그에 불만을 토로했더라도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가의 3세 사장이 찾아와 직접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테고.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1위가 암이라는 건 온갖 민영 건강보험 광고에서 귀에 못이박히도록 떠들어대지만, 그건 연령대를 통합했을 때의 일이다. 10대와 2, 30대의 경우엔 압도적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이는 통계상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해도, 작년 한해에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리나라 '대학생'이 3백명에 가깝다는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일년 내내 거의 하루에 한명꼴로 젊은이들이 희망이 없어 생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닌가. 도무지 희망이 없어서 안타까운 생각을 하는 건 이 나라 10대도 마찬가지다.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는 중고생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뉴스에서 흘러나와도, 사람들은 다들 치러내는 그깟 부담감과 경쟁을 못 이겨낸 패배자로 치부하고 금세 잊는 분위기다. 기껏해야 만연된 우울증을 잠시 조명하면 다행이고.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데 많은이들이 공감하는데도 해마다 수백명씩 죽어나가는 이들의 자살이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무명의 힘없는 개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제도를 변경하기는 해도 절대 물러나지는 않겠다고 버티는 카이스트 총장은 외국 명문대에도 학과 부담을 못 이겨 자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더 많다고 했던가? 까먹었다) 항변했다. 얼추 맞는 말이다. 먼 옛날 나의 대학 친구 하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이런저런 추측만 나돌았을 뿐이었다. 찾아보면 대학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한 학생들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그 동기가 '살인적인 등록금', "무한경쟁 스펙 쌓기',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난'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었다.

신라호텔 한복 사건과 카이스트 논란이 내게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언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변화의 움직임을 촉발하려면 다수의 무명인들보다는 소수의 유명인이 앞장서 행동하는 게 빠르다는 너무도 뻔한 진실 때문이다. 특급호텔이 저마다 매출저조를 이유로 한식당을 없애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몇년전에도 지적됐던 점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수십억의 예산을 영부인한테 쏟아부으며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선답시고 떠들어내는 판국이다. 특급호텔이 한식의 세계화를 외면하는 건 이명박 정부로선 당연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식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없애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나. 하지만 이번 한복사건과 더불어 한복에 대한 이 사회의 전반적인 홀대 문제는 특급호텔 업계의 한식 외면 문제에까지 불똥이 튄듯하다.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고 정부에 촉구하는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된 것과 마찬가지다. 해마다 등록금 투쟁 때문에 언론 앞에서 삭발하는 총학생회장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최근 학내 집회와 수업거부, 거리 시위에 그토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걸 본 적은 정말 드문 것 같다. 신자유주의식 경쟁논리에 물들어 자기 스펙 쌓기에만 바빴던 학생들도 드디어 무명의 힘이 뭉치면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일까. 과연 그들은 정말로 죽음으로 항변할 만큼 힘든 현실을 뒤집어놓을 때까지 뚝심있게 버텨줄까 자못 기대된다.

아무튼 이름 높은 한복연구가 덕분에 앞으로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무명인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참 다행이다. 학비 부담 없이 마음껏 과학을 연구해볼 욕심에 카이스트 입학을 꿈꿨을 텐데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크나큰 부담을 느꼈을 상당수 학생들이 학점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은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더불어 말도 안되는 전과목 영어강의 같은 제도도 바뀔 모양이니 정말 다행스럽다. 영문학 박사 따느라 유학생활만 10년 하고 돌아온 교수 친구도 영어강의 전날은 수업준비 때문에 술도 안마신다. 우리말 수업 때는 유머와 농담으로 재미있는 강의를 한다고 점수가 높지만 영어강의 때는 통 재미가 없다고 학생들도 아우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물며 영어전공 강의도 그런데, 어렵기 짝이 없을 심도 깊은 과학논리를 영어로 강의하고 수업듣는 교수와 학생들은 얼마나 죽을 맛이었을까. 이참에 모든 대학의 영어강박증도 좀 사라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려면 또 어느 유명인의 놀라운 에피소드가 필요할까? 역시 이름값이 가진 권력 때문에 사람들이 다 성공하고 유명해지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라는 걸 또 한번 깨닫기는 했지만, 이젠 좀 무명인들의 힘없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는데 행여나... 그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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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추억주머니 2011. 3. 11. 23:12

이번에 중학생이 된 조카가 배정된 학교는 공교롭게도 나의 모교다. 무려 30년도 더 차이나는 동문이 된 셈이다. 아무리 같은 학교라도 30년이 더 흘렀으니 내가 아는 선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 놀라워라. 내가 중3때 막 대학을 졸업하고 솜털인지 수염인지 보송보송한 얼굴로 부임했던 한문 선생이 요번 조카네 담임이란다. 담임들 이름도 얼굴도 다 까먹은 내가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면 몹시 치 떨리게 싫어했거나 퍽 괜찮게 생각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행히도 후자쪽이다. 어눌하고 착하고 순박한데다 어리바리 부임 첫 해라 중3인 우리들에겐 간혹 '밥'이 되기는 했지만, 한문을 정말로 유려한 필체로 잘 썼고 서예반 담당이라 미술반에서 힘 쓸 일이 있을 땐 자주 일꾼으로 불려다녔다. 환경미화나 채점 도우미 같은 일로 늦게 집에 가게 됐을 때 하굣길에 만나면 혼자 집에 가서 밥해먹기 싫다면서 우리들과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 김밥, 우동 같은 걸 사주기도 했다. 출석부로 머리통을 찍는 선생이 없나,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퍽퍽 때리는 선생이 없나, 조각분필 담아놓은 플라스틱 통으로 뒤통수를 쳐 깨뜨리는 선생이 없나, 여학생에게도 살벌한 체벌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선생도 기다란 나무 막대를 꼭 가지고 다니긴 했지만(그 학교 교사들 사이에선 일종의 패션이었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칠판 가리키기 용이었을뿐 체벌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친개, 똥싼바지, 변태, 복부인, 입걸레, 싸롱화, 손버릇 따위의 부정적인 별명이 대세인 학교에서 그 선생의 별명은 상당히 우호적이고 귀여운 구석마저 있는 '도날드덕'이 되었다. 단지 입술이 좀 투툼하고 튀어나왔다는 이유로. (조카가 대번에 지네 담임 별명 뭐였냐고 묻기에 안 가르쳐줬다. 저절로 알게 되면 모를까.. 30여년 전 별명으로 아직도 불리는 거 싫을지도 모르잖아;;) 애들이 막 장난치고 떠들어도 그냥 담임이 허허 웃는다는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별로 안 변하신 것 같기는 한데, 진실이야 알 수 없어도 어쨌든 다행이다 싶다.   

재단이 부유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거느리고 있는 그 사립학교는 원래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에선 언감생심 절대 배정되는 일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졸업하던 해 처음으로 우리 동네 아이들을 꽤 많이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몇몇 선생들이 가끔가다 한 마디씩 학생들 들으라고 가시돋친 소리를 해댔다. 출신학교 성분이 과거와 달라져서 학교 '질'이 떨어졌다나. 가뜩이나 산꼭대기에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학교에 정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건 되먹지 않은 일부 선생들 때문이었다. 인근 구와 달리 아무래도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OOO구' 출신 아이들이 많아져 자기네 '부수입'이 줄어드는 걸 안타까워했으리라는 건 나중에야 알 수 있었지만, 당시에도 선생들 가운데 누구누구가 돈봉투를 특히 밝히는지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같은 재단의 사립 국민학교 출신들을 드러나게 예뻐하는 분위기였다. 사립 국민학교 학비를 댈 정도면 퍽 부유한 집안이니 '당연히' 때마다 상당 금액의 촌지 봉투를 상납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고등학교까지 그 재단 학교로 진학하고 말았는데, 거긴 더 심했다. 그 학교 고3 담임을 연이어 3년만 하면 집 한채를 거뜬히 살 수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들으니, 사업가 아버지를 뒀던 친구 하나는 고3때 담임(나도 같은 반이었다 -_-;;)이 진학조언을 핑계로 한달에 한번씩 집으로 찾아와 '정기수금'을 했다고 고백하며 치를 떨었다. 내가 졸업 후 완전히 학교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도, 교생실습을 모교로 정해 나가는 애들을 보며 '미친 거 아닌가' 생각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비록 그런 학교지만 더러 의롭고 '착한' 선생들이 없지는 않았다.(학교 축제 때 액자 값도 안 낸 나의 그림을 걸어준 미술반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 주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풋풋한 신참 선생들이었다. 스승의날 두당 정해진 돈을 내서 담임에게 고가의 전기밥솥을 선물했는데(선물 품목도 학급 서기를 통해 넌지시 지시된 사항이었다) 색깔과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다시 바꾸러 다니게 만들었던 닳고 닳은 아줌마 선생이 있는가 하면(자기가 바꾸지! 지금 생각해도 화난다;), 꽃과 편지만 받고 선물은(스카프였던가 그랬다;;) 굳이 돌려주며 나무라던(너희들이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 비싼 걸 사느냐고)  해맑은 풋내기 담임 선생도 있었다. 세속에 찌들지 않은 그런 선생들을 반기긴 했지만, 이미 시니컬해진 우리는 그들도 지금 젊어서 그렇지 몇년 더 지나면 탐욕스러운 다른 선생들이랑 똑같아질지 모른다고 씁쓸해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총각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사춘기 여학생 특유의 무대포 감수성으로 짝사랑을 불태우는 아이들은 없었다. 의도적으로 성적을 올려보겠다고 선생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영악한 학생은 있었을망정.  

모교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어서 통 모르고 살다가, 악연 때문인지 학교와의 고리를 끊지 못해 지금까지도 끌려다니는 친구의 말을 듣자니 탐욕스럽기로 유명했던 선생들은 하던 가락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벌써 오래 전에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있고, 정년 이전에 관두고 음식점 같은 걸 차린 선생도 있는데 불쌍한 그 친구는 개업식에 화분을 보낸 것도 모자라서 간간이 그 집에서 모이는 퇴물 남녀 선생들 모임(역시나 유유상종이다)에 불려나가 음식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30년전 제자를 여전히 봉으로나 여기는 선생들이라니 에잇! 전화번호를 확 바꾸고 다시는 이용당하지 말라는 나의 충고에, 친구는 하필 퇴물 선생 하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공교롭게 동네 마트에서 만났을 때 예의상 장본 비용을 한번 내줬더니만, 그 담에 만났을 땐 잘 나가는 제자(친구는 전업주부라고!!!) 덕을 수십년째 본다고 마트 점원에게 마구 자랑하면서 또 내달라는 식으로 뻔뻔함을 보이더란다. 아니 왜?!?! 게다가 만나는 동창들 있으면 다음번 모임에 어디 한번 데려와보라고도 하더라나. 정말로 애정을 쏟으며 사제지간을 다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촌지로 얽힌 악연을 그들은 왜 계속 누리려고 하는지 원! 나는 거의 게거품을 물다시피 흥분하며 욕을 하다가, 앞으로 또 그런 속물퇴물들한테 연락오면 시댁이든 친정이든 우환이 생겨 지방에 내려갔다고 거짓말 하라고 시켰다. -_-"
 
교수에 대한 나의 인상이 나쁘듯, 안타깝게도 교사에 대한 나의 인상도 그리 좋지 않다. 간혹 정말로 아이들의 인성교육과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전해듣기는 하지만, 내가 겪어보고 주변에서 전해들은 교사의 모습은 교육자가 아니라 그냥 월급쟁이 조직원에 가깝다.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교사가 무능하다고 무시하고, 선생들은 선생들대로 학생들이 걸핏하면 교육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협박이나 한다며 교권이 땅에 떨어졌느니, 말세니 운운한다. 나도 한때 잠깐 교사가 천직이 아닐까 상상한 적이 있지만, 역시 그 길을 안 가길 잘했다 싶다.

내가 교생실습을 나갔던 모 중학교엔 마침 엄마와 이래저래 아는 분이 영어과 주임 선생님이었다. 교생실습을 하던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던 건 아니라서, 실습 점수에 부당한 이득을 누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실습이 끝나고 나서 세상 참 좁다며 웃어 넘긴지 몇달 후, 나에겐 그분과 엄마를 통해 모종의 교직 협상안이 들어왔다. 교생실습을 나간 그 학교에 영어교사 충원 계획이 있는데, 이미 서로 안면도 있고 시범수업도 해보았고 하니 '천만원'의 기부금을 내면 나를 곧장 취직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형편에 상당히 큰 돈이었는데도 엄마는 그분의 설득에 약간 넘어가서 (빚을 내서라도 일단 취직을 하고 나면 평생 '우량 직업'이 생기는 거고, 그 정도 돈은 금세 만회할 수 있다고 했다나;) 아버지까지 포섭할 기세였다. 그러나 당시가 어느 때인가, '압제와 굴종'을 깨치고 나아가 투쟁해야 한다고 노상 나라와 대학가가 들썩이고 있었다. 불의와 타협하면 큰일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말로만 듣던 교직비리라며 당장 고발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물론 엄마의 지인의 안위까지 걸린 사안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내가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한 뒤에도 엄마는 교직에 대한 미련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다. 졸업한 다음해였던가, 걸핏하면 철야에 야근에 시달리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엄마는 심지어 나와 상의도 하지 않고 덜컥 임용고사 시험에 접수를 해놓고 아무 준비도 없이 내게 "혹시 아니? 한번 시험이나 봐  봐라."고 종용했다. 서울/경기 지역에 영어교사를 세 명인가 뽑는 그 시험에 내가 합격할 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 ^^; 암튼 그 이후 직장을 옮겨다니면서 간혹 나도 가지않은 길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교직비리에 응해 그때 천만원을 내고 영어교사 자리를 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긴 했다. 설마 그 천만원을 단기간에 벌어들이느라고 부임 첫해부터 부잣집 애들 학부모 면담하며 노골적으로 촌지를 달라고 하진 않았겠지? 라고 킥킥거리면서.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아닌지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국민소득이 아니라 사회의 투명성과 아이들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우하는 시스템을 보면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학교 체벌도 사라지고 촌지도 불법이고 교직비리도 없는 사회가 된 것 같지만, 주변의 학부형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여전히 백화점 상품권을 스리살짝 담임교사에게 건네고 티 안나게 집으로 택배선물을 부친다. 작년 배추파동 때는 몇몇 엄마들이 아예 담임선생의 김장김치까지 책임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 자기 자식을 잘 보이기 위한 극성 엄마들의 몸부림 같아서 씁쓸하지만, 30년 전에도 촌지 수금하러 다녔던 선생이 존재했듯 지금도 여전히 백화점 상품권 수십장 들고 다니며 바리바리 쇼핑하는 '일부' 교사 목격담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더러 오가는 걸 보면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어디나 썩은 구석은 있다지만, 그런 몰상식한 교사들이 존재하는 한 학교 현장에서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고, 학부모 교육열은 어디에 내놔도 최고라는 이 나라 교육의 현실은 확실히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이제 궁금한 건 딱 하나다. 30년 넘게 한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쳐온, 젊은 시절 청렴하고 곧아 보였던 조카네 담임 선생님의 현재 성품은 어떠할까. 사람은 좀체 안변한다는 게 진실이듯, 사람은 세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는 사실도 진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한낱 인간이 30년간 어떻게 안 변하겠나. 너덜너덜해져서 버릴까말까 하다가 못 버리고 그냥 서랍장에 들어있던 중학교 졸업앨범을 새삼 꺼내 '도날드 덕'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간절히 빌었다. 휙휙 갈겨쓰듯 칠판에 적어도 멋드러졌던 선생의 한문 필체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듯이, 착했던 선생님의 인품은 안변했기를. 그리고 이젠 최고참 교사에 속할 그분의 조용조용한 카리스마로 촌지 밝히던 속물 선생들이 끼리끼리 목청 높이던 학교 분위기는 확 바꾸어 놓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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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이 되는 걸 두려워했던, 아니 두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괴로워했던 이들이 주변에 꽤 된다. 배우는 쪽이든 가르치는 쪽이든 학교와 새학기는 기피의 대상이 아닐까. 봄 방학을 끝으로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 그런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뿌듯한 축배를 들어야할 것 같다.

이른바 보따리 장수를 하고 있는 지인 하나는 지난 방학동안 생병을 앓다가 개강을 앞둔 며칠 전까지 감기몸살이 낫지 않아 큰 걱정이었다. 사단은 새학기 교양영어 강의에서 이유 없이 떨려났던 일이었다. 연말까지만 해도 강의일정 조정안에 대한 연락을 주고받았던 대학에서 1월이 다 지나도록 강의 계획서 내라는 통보가 없더란다. 15년째 그 대학에서 교양영어를 맡아온 지인은 순진하게 학사일정이 늦어지는 줄로만 알았단다. 헌데 그게 아니라,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영어과 교수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강사들 여덟 명을 그야말로 단칼에 잘라버렸더란다. 나의 지인은 자기가 나이도 많고 박사학위 미소지자라서 짤렸나보다 했더니, 박사학위도 소지한 젊은 여자 강사도, 박사학위 소지한 적당한 경력의 남자 강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나 원칙도 없는 독단적인 인사행정이었던 셈이다.

일언반구 언질도 없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 교수는 그렇게 지시해놓고 방학동안 가족이 있는 호주로 날아가버렸다나. 분노한 나의 지인은 결국 구구절절 설득하는 메일에 이어(읽지도 않더란다) 강경한 메일을 계속해서 그 담당교수에게 보냈고, 메일이 계속 씹히자 담당 조교를 통해 대신 연락을 취해 거의 협박에 가까운--인권위원회와 교과부에 청원함은 물론 학교앞 일인시위도  불사하겠다고--내용을 통보하는 '단독투쟁' 끝에 교무과장의 개입으로 잘렸던 강사들 모두 늦게나마 한 과목씩 강의를 재배당 받을 수 있었단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마무리가 되자 덜컥 병이 났던 것인데, 심성 약하고 소녀같기만 하던 그 지인이 그런 싸움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내가 못믿어하자 재미삼아 보라며 증거 메일까지 보내주었다. 

이번 학기야 그럭저럭 다시 강의를 맡기는 했지만, 담당 교수와 정면대결을 했던 자신은 15년 역사를 뒤로 하고 다음학기엔 그 대학을 떠나야할 것 같다고 말하는 지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대학 강사의 자살소식이 들려오는 이유가 딴 게 아니라고. 그리고 하루이틀 겪은 건 아니지만 잘난 전임교수라는 사람들이 더러 부리는 포악이 상상 이상이라고. 그 인간과 학교에서 마주칠 생각을 하면 오금이 저리다고.

제자를 폭행하고 온갖 권력형 교내 비리를 저지른 유명 국립대 교수가 최근 파면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대단히 존경받는 직업으로 생각되는 교수는 사실 내가 보기에 그리 멋진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내가 좋아해마지않는 선생님이 자조적으로 원래 교수란 '사회성 부족하고 어딘가 좀 이상하고 외골수인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좀 이상한' 성품 부분이 종종 이기심이나 독단으로 발현되는 교수들을 꽤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 유형에서 벗어나는 교수들은 또 지나치게 정치적이라 그 조직내에서도 최고자리로의 승진을 꿈꾸거나 최대한 약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거나, 아예 폴리페서가 되어 정계로 진출하는 식이다.

실제로 겪어본 은사님들 가운데 유능하고 존경스러운 교수 유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익히 소문으로 듣고 눈으로 보아온 교수들은 절반 이상 부패하고 무능하고 이기적인 군상이었다. 교수 임용때부터 실력보다는 인맥 학맥 동원해 '룸살롱 접대'로 점수를 따는 인간이 없나, 각종 연구비는 그냥 일종의 공짜 보너스로 여기며 논문 한편 가지고 이리저리 제목만 바꿔 돌려 싣기를 하질 않나, 산학협동이라도 해서 대형 프로젝트라도 진행할라치면 제자들 종 부리듯 주무르며 사리사욕을 채우질 않나. 도제식 수업이 이루어지는 예술대학 뿐만 아니라 막대한 연구비가 오가는 공대나 이과대 쪽에서도 교수 비리는 늘 있어왔고, 진로나 눈앞의 이익(매달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연구비나 공연, 수상 기회 따위) 때문에 제자들은 함부로 교수에게 대들 입장이 아니었다.

소문으로 듣자니 어느 교수는 자신의 부친상에 대학원생들을 '조'별로 짜서 장례식장 도우미로 보내달라고 당당하게 과사무실에 요구했단다. 지도교수의 부친상에 문상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제자 입장에서 막상 문상을 가고보니 일손이 모자라는 것 같아 자진해서 도울 마음이 생길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절대 그런 생각 안하겠지만!) 그러나 노동 분담제도 아니고, 몇시간씩 육개장 쟁반을 나르며 학생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걸 당연시하는 교수의 구태가 놀랍다. 하기야 그러니까 문제의 그 음대교수도 팔순 노모의 산수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제자들을 대거 동원해 합동 공연을 했겠지. 아니, 본인이 굳이 학생들을 동원하지 않았더라도 학생들이 먼저 눈치로 알아차리고 축하공연을 하겠다고 자청했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랬다간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르니까.

아직도 진심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을 훌륭한 교사/교수가 많다고 믿고 싶지만,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권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다.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평가해서 분류하는 행정기관으로 점점 자리잡고 있고, 대학마저도 하는 짓거리를 보면 그냥 고수익사업이지 '배움의 전당' 느낌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교사도 교수도 '스승'이 아니라 그저 한낱 조직원으로서 학생들에게 또는 상대적 약자인 강사들에게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닐까. 

수년간 보따리 장수를 전전하다 어렵사리 전임자리를 꿰차고 드디어 '교수님' 칭호를 듣게 된 친구 하나는 암암리에 학연지연으로 나뉜 교수패거리들 속에서 현명하게 운신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강의평가제로 학생들 눈치도 봐야하니 교수직이 철밥그릇이라는 얘기는 다 옛말이라고 불평한다. 열심히 수업준비해서 깊이 있는 강의를 이어가면 대번에 어렵다고, 취직해야하는데 학점 짜게 준다고 싫어한다나.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머리 나쁜 나로서는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서 개선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그런 부패한 조직에 연루되어 개강을 두려워하는 상황이 아니란 것만을 기뻐하기엔 찜찜하다. 그래도 길은 그것밖에 없다며 교수를 꿈꾸는 수많은 친구들, 후배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뭔가 크게 바뀌긴 바뀌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여튼 날씨도 쌀쌀한데 개학과 개강을 맞은 가엾은 모든 이들 씩씩하게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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