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요즘 세상이 너무 쓰디써 달콤함이 몹시 필요하다.

언제고 내가 꼭 내려가 살고 싶은 제주도에 난데없는 해군기지 건설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강정마을엔 결국 오늘 공사강행이 시작된 모양이고,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축출됐던 강용석의 국회의원 제명은 똑같은 놈들의 비호로 부결되었으며, 6년이나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 친구를 집단 성추행했던 고대 의대생들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수위는 쉬쉬 하는 분위기 속에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몇해 전 운동권 학생들은 2주만에 전격 출교(재입학이 불가한 최고 수준의 징계란다)시킨 고대가 돈많고 빽 든든한 의대생들은 퇴학(한학기만 지나면 재입학할 수 있다고)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니, 하는 꼬라지가 성희롱, 성추행을 일삼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랑 수준이 딱 맞다. 에이 더러운 것들. 성폭력 피해자에게 꼭 니들이 짧은 치마 야한 옷 입고서 먼저 범죄를 유발했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기막힌 논리가 언제까지 통하려는지 원!

아, 이렇게 더럽고 쓴 세상 때문에 달달한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자꾸 딴길로 빠진다. 모두에게 유쾌하고 즐거운 유머와 자랑질로만 블로그를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은 온통 분노할 일 뿐이다. 잠깐 릴랙스, 릴랙스...

요리에 대해서 별 두려움은 없지만 내가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한 것이 바로 베이킹의 세계다. 집에서 척척 스콘 굽고 초코칩 쿠키 만들고 심지어 새우깡까지 홈메이드로 만들어 간간이 맛을 보여주는 친구를 보노라면 완전 요술쟁이 같아 자꾸만 관심이 쏠린다. 집에 오븐이 없기에망정이지 있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내가 '원래' 그리 단것과 간식을 즐기지 않는데다 베이킹은 곧 탄수화물 및 고밀도 과당 섭취의 지름길이므로 (왕비마마의!) 건강상 애써 멀리해왔다.

그런데 아뿔싸. 요즘엔 물부어 대충 반죽한뒤 전자렌지에 띵~ 돌리면 베이킹이 끝나는 온갖 '믹스'들이 마트에 깔려 저마다 손짓을 보낸다. 게다가 TV에선 잘생긴 고수가 너도 한번 해보라고, 엄청 쉽다고 유혹까지... ㅠ.ㅠ

결국 유혹에 넘어가 <흰눈표 브라우니 믹스>를 사다가 시도해봤다. 오, 놀랍게도 정말 단번에 '거의' 성공. 덜 식혀서 잘라 먹는 바람에 모양이 좀 흩어지긴 했으되 촉촉하고 달달한 데다 초코칩 덩어리까지 막 씹히는 것이 꽤 훌륭했다. 비록 달랑 320g에 1440칼로리라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씩 나눠먹으면 되지 뭐 이럼서 벌써 세번째 시도. 두번째 작품(?)을 먹어본 조카들도 진짜 산 것처럼 맛있다며 열화와 같은 칭찬을 안겨주었다.

자랑스러워 찍어놓은 세번째 브라우니의 자태는 이러하다.


설명서엔 평평한 네모 그릇에 담아 전자렌지 용량에 따라 3분 30초에서 4분 돌리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4분 10초 돌렸다. 직사각형 그릇이라 그런지 처음 가운데가 푹 꺼져 거기만 잘 안익어 시간을 연장해야했기 때문. 오른쪽 사진은 6등분해서 자른 것. 한 조각당 무려 240 칼로리지만, 커피와 함께 치명적인 달콤함에 빠지는 순간에는 더러운 세상따위 잠깐 잊을 수 있다. 그런데... 입맛이 유독 써서 어느 날보다 달콤함이 필요한 오늘은 남은 게 없다. 어제 밤참으로 마지막 조각을 홀랑 다 먹어버려서. 뚫어져라 쳐다보며 사진으로라도 달콤함을 불러일으켜야겠다.  

단 거 별로 안좋아하는 나도 자꾸 단것을 찾게 만드는 팍팍한 세상. 어째야 하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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