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준비

투덜일기 2012. 12. 2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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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가 들어간 유일한 영어단어라나 뭐라나(이는 확실히 틀린 주장이므로 오해 없도록 미리 밝혀야겠다;; ㅋ), 그래서 누구에게든 선물하기 딱이라는 장갑. 우산이나 스카프처럼 사도사도 욕심이 생겨 겨울마다 기웃거리게 된다. 가죽장갑은 끼나마나 손시려울 것 같아 처박아둔지 오래고, 여러가지 장식 요란한 벙어리장갑은 아무래도 끼고 나서기 민망해진 나이라는 자격지심이 앞서고... 

결국 작년에 회색 털실장갑을 하나 사 끼었다. 또 '스님용' 장갑을 산 거냐고 놀림 좀 받았지만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지 뭐. 게다가 언젠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사두었던 옷핀모양 단추도 직접 달아놓고는 어찌나 뿌듯하게 끼고 다녔는지.

그런데 지난번 영하 십몇도 혹한에 나가보니 안에 부숭부숭 안에 털이 든 이중장갑 끼고 온 사람이 몹시 부러워 올해 또 한 켤레 사들였다. 겨울엔 그저 오리털 패딩이 최고라며 기럭지 넉넉한 깜장 패딩과 함께 월동준비는 완벽하게 끝냈노라고 흐뭇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어젯밤 돌연 평범한 월동장비로는 버틸 수 없는 빙하기가 시작됨을 느꼈다.

그렇다면 답은 결국 상식이 통하는 따뜻한 곳(그런 곳이 정말로 있다면;;; 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지구 다 망가뜨리고 나면 다른 행성 개척해 떠나 살겠다는 허황한 꿈과 뭐가 다른가 싶긴 하다)으로 떠야하는 게 아닐까, 상투적이고 가볍기 짝이 없게도 그것이 제일 먼저 든 생각. 감상적 패배주의에 빠지면 안된다는데 난 꼭 그런 심정이다. 희망이 있나? 5년 전과 똑같은 기시감이 가장 두렵다. 절대로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는 건지도.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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