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더운데 으으으 열 뻗칠 일을 방금 또 겪었다.
조금 전 서너집 건너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하얀 봉투를 하나 들고서. 엄마에게 서명을 받으러 왔단다. 아까운 세금으로 왜 쓸데없이 돈 있는 집 애들까지 무상급식을 줘야하느냐며, 그걸 반대하는 서명이란다. 헛...

모른 척 내방으로 건너와 그냥 앉아있으려니 속이 시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간 엄마에게 무상급식 반대하는 오세훈 일당과 강남 부자들에 대한 욕을 실컷 해대며 왜 무상급식이 평등교육권인지 설명해드리긴 했지만, 엄마는 옆집 아줌마가 10분 이상 떠들어대면 그냥 쫓아버릴 욕심에 내용파악도 없이 그냥 서명을 해줄 사람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서야 했다.

일단 우리 모녀는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사람이고 오세훈, 이명박 일당의 이상한 돈지랄이 더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포문을 열고 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해 언성이 높아졌다.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라고 적혀 있는 하얀 서류 봉투의 정체도 의심스러웠다. 대체 무슨 관계로 오세훈 일당 꼬봉 노릇을 하시는 거냐고 아주머니에게 따져묻기도 했다. 쌈닭기질이 제대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아주머니 왈, 남편이 한국전쟁참전 유공자라 무슨 위원회에 한 자리 차지하고 계신단다. 영문도 없이 거기서 그 봉투가 날아와 서명을 받으라는 지령이 떨어져 그 임무를 하는 수 없이 아주머니가 떠맡았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하도 서슬이 퍼렇게 언성을 높이며 이명박 오세훈 욕을 해대니까 말문이 막혔을 뿐이지, 처음 오자마자 살금살금 무상급식의 문제점을 들어 울 엄마를 설득한 논조를 보면 무비판적인 딴나라당 지지자임이 틀림없었다.

어휴...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한나라당의 주민투표 청원 서명운동이 강남서초구 주민들과 보수 노인층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손길이 우리집까지 뻗치고 보니 화가 치민다. 하기야 보수 우익단체들은 늘 한나라당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이렇게 그 조직을 이용해 민심인 척 억지로 세를 모으고 있다니. 복지 포퓰리즘 추방이라고? 참 이름 하나는 잘도 갖다 붙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을 카드로 뽑았던데, 재원마련에 대한 계획도 없이 일단 지지율 떨어지는 거 막으려고 시작한 일이니 그것도 엄연히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면 어쩔 셈인가?
 
정신나간 놈들.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90퍼센트를 넘겼으니 일부 부유계층 이외엔 어느집이나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이 큰 부담이므로  반값 등록금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일이다. 대학등록금 문제가 복지 포퓰리즘이니 뭐니 해서 당략으로 싸울 일이 아니듯이 전면무상급식 문제도 아까운 국민의 세금 운운하며 눈가리고 아웅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국민 세금이 아까우면 쓸데없는 삽질이나 저지르지 말란 말이다!

오세훈파 아주머니가 아직도 가지 않았다. -_-; 오래 눌러앉아 지치게 만들어 서명을 받으려는 전략인가? 한판 붙고 후퇴했으니 다시 가서 서명 파일 열어보자고 할 수도 없고 으으으... 얼음물이나 벌컥벌컥 마시며 참는 수밖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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