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6.12.21 예매 실패 꿈 2
  2. 2015.12.08 친구딸 4
  3. 2015.10.07 번역가란... 3
  4. 2014.04.09 좌절된 꿈 8
  5. 2010.05.27 눈뜬 자들의 도시 2
  6. 2010.01.15 변화 8
  7. 2010.01.12 맥가이버 놀이 17
  8. 2009.09.09 꿈에 22
  9. 2009.01.09 악몽 9
  10. 2008.11.12 토룡마을 꿈 19

예매 실패 꿈

투덜일기 2016. 12. 21. 15:37

오늘 아침 퍼뜩 꿈에서 깨어나며, 이건 불길한 꿈일까, 아니면 꿈이 현실과 반대라는 속설의 증명이 될까 궁금했다. 오늘 낮12시, 콜드플레이 추가공연 선예매 시간을 앞두고 어제 몇번이나 알람을 맞춰놓고도 뭔가 좀 불안했던 마음이 반영된 꿈이겠지. 어쨌든 꿈속에서 나는 뜬금없이 신화의 두 멤버(김동완과 앤디... +_+ 아 왜 에릭이 아니고! 난 어차피 신화 팬도 아닌데;;;)와 한 방에 앉아서 각자 노트북 아니면 핸드폰으로 콜드플레이 공연을 예매하고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12시를 기다렸으나, 예매 창에서 계속 쭉쭉 남은 자리가 빠져나가 순식간에 좌석수가 0으로 변해 으악 비명을 지르며 셋다 멘붕에 휩싸였다. 나는 괜히 신화의 두 멤버를 째려봤던 것 같다. 정신 시끄럽게 한 니들 때문이야! 라면서...

깨어나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화 팬도 아니고 멤버 이름도 잘 몰라서 꿈속에선 김동완을 김동욱, 앤디는 앤서니라고 불렀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방금 전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와 진짜 웃긴다. 생전 생각도 없던 연예인이 왜 콜드플레이 예매 꿈에 나왔을까. 

암튼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예스24와 인터파크 중에서 어느 사이트가 더 잘 견딜까 고민하다 (1차 예매때 예스24가 성공율 높았다고 해서;;) 포인트도 쌓을 겸 예스24로 로그인했는데 제기랄! 서너번의 좌석점유 실패 후 안전하게 뒷자리로 선점한 것까진 좋았는데 계속 결제창 에러... 열번도 넘게 취소 후 재도전...그러다가 가까스로 카드번호 입력하고 진행이 되는 것 같더니 또 에러.. 와.. 진짜 인내심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시간은 12시 반이 막 넘어가고... ㅠ.ㅠ 마지막엔 드디어 결제용 비밀번호까지 잘 입력했다 싶었는데 계속 돌아가기만... 띠리링 휴대폰으로 승인확인 문자가 날아오길 얼마나 염원하며 기다렸는지. ㅠ.ㅠ 엄마 명의로 간신히 발급받은 카드라서 동짓날 절에 가시는 엄마한테 일부러 휴대폰도 두고 가시라고 했구만!!!

1시간 반이 넘도록 결제창은 그저 돌아가고만 있고... 30분 지나면 결제 취소된다는 벨로의 말을 듣고도 도무지 포기가 안됐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건 남은 티켓 한장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공연을 아주 못보는 건 아니다. 으허허헉.. 기쁘기도 하면서 속도 상하고 아주 미묘한 기분이다. 꿈땜이냐 뭐냐... 스팅 공연 땐 매번 성공율 높았었는데, 아쒸, 콜드플레이의 벽이 참 높다.

콜드플레이 내한한다고 주변에 알려봤으나 다들 시큰둥 아니면 그게 뭔데? 라고 묻는 친구들 지인들이 대부분이라 (처음부터 벨로네 한테 데려가달라고 할걸! 선예매 후파트너 수배를 꿈꾸었지 뭔가) 무조건 2장 예매하고 억지로라도 누굴 끌고가려 그랬는데 그것도 그들에겐 못할 노릇이어서 뭔가 '우주의 힘'이 예매실패를 이끌었나싶기도 하고 ㅋㅋ

빙글빙글 속절없이 돌아가는 결제창을 보며 무슨 마법사처럼 온 몸의 기운을 모아 양손을 뿌리쳐 얍! 기합을 넣어보기도 하고 징징징 우는 소리로 제발제발 성공해라 주문도 외워보았으니 죄다 효험은 없었다. ㅎㅎ 당연하겠지. 하긴 내가 무신론자라고 뻥뻥 큰소리치면서 그게 될 턱이 있나.  

혹시 취소표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해 틈틈히 예스24와 인터파크에 들어가보니, 미친 인터파크는 스탠딩좌석이 33석이나 남았다고 나오질 않나, 예스24도 한두자리씩 자리가 떴다가 금세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다. ㅠ.ㅠ 혼자서라도 콘서트 보러가게 됐으니 좋은데 왜 미련을 못버리니... 에효. 내일 마감이라규~!!! 미련 좀 그만 떨어야한다는 다짐으로 꿈 얘기와 함께 포스팅으로 마무리하련다. 그만하면 됐다, 고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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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딸

투덜일기 2015. 12. 8. 20:53

아마도 나에게 자식이 있다면 종종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들먹여 애들 기죽이기에 아주 딱인 친구 딸이 하나 있다. 물론 그집은 딸 둘 모두 너무도 모범적이서 노상 칭찬하기 바쁘지만, 두 딸 중에서도 특히 첫째는 지금 스물세살인데 내가 생각해도 존경스러운 아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벌써 오래전이지만 고등학교 입시 때, 특목고에 충분히 갈 실력임에도 일반고를 선택했다. 친구 부부는 다행히도 자식의 장래에 대한 계획을 본인에게 맡기는 편. 부모로서 조언은 해도 최종 결정은 아이가 한다. (그래서 나중에 속을 푹푹 끓일망정, 강요는 하지 않는 친구 부부도 물론 훌륭하다)  특목고 아이들만의 괜한 특권의식과 잘난 분위기가 싫다는 것이 아이가 일반고를 선태한 이유. 

그러더니 고등학교때 견문을 넓히겠다며 미국으로 '불쑥' 1년간 교환학생을 떠났다(나중에 듣자하니 수능 준비엔 엄청난 손실이라나 뭐라나...) .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보니 분위기며 전망이며, 미국에서 대학을 진학하는 게 이롭겠다는 주변의 조언과 압력(?)이 많았단다. SAT를 준비한다기에 모두들 당연히 미국 대학으로 입학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이 아이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고3으로 복학했다. 이유? 미국 대학에서 막상 입학허가를 받고보니 외국인 학생이라 등록금이 어마어마하더란다.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자기네 아버지 회사에서 등록금을 다 대주는데(!), 등록금에다 체류비까지 괜한 돈 들이며 부모 등골 파먹기 싫다는 것이 아이가 귀국을 선택한 이유였다. (정작 부모는 생활비 아껴 유학 비용 대줄 용의가 있었는데도! 친구는 오히려 불리하게 고3 직전에 귀국해 복학한 딸을 내심 원망했었다. 남들은 일부러 유학도 가는데.. 그러면서)

특목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수시에선 실패하고, 정시로 엄청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In Seoul에 성공한 아이는 동아리 활동이며 성적이며 아르바이트며,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열심히 산다고 했다. 대기업 다니는 아버지네 회사에서 등록금을 전액 대주는데도 굳이 종종 장학금도 받아주시고 ^^; 용돈벌이를 위해 과외는 기본, 아이스크림 푸고 빵 파는 아르바이트도 두개씩 막 해대는 강철 체력과 정열... 어휴... 

나는 ㅇㅈ이가 장차 유엔총장이 될 거라고 장담하는 걸 즐기는데, 여기저기 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나 통 큰 생각으로보나 실력으로 보나 못할 것도 없다! (영어도 잘하지만 심지어 수학, 물리 이딴 거 좋아하는 이과생!)

하여간에 요즘 웬만한 대학생들은 그놈의 '스펙' 때문에 어학 연수나 교환 학생 다녀오는 게 필수란다. 어차피 요새는 대학도 돈이 있어야, 사교육비를 펑펑 써야 갈 수 있는 시대이고, 간신히 입시에 성공해도 제손으로 등록금을 벌어야하는 학자금 융자파 아이들은 그런 스펙 쌓기 경쟁에서도 당연히 밀려난다. 으휴, 알수록 썩은 세상.

암튼 친구는 2학년 마치고 덜컥 휴학을 결정한 큰딸이 그 필수 코스를 밟는다고 할 줄 알았단다. 그러나 이 아이는 무조건적인 스펙 쌓기보다는 차라리 배낭여행을 떠나겠다며 돈 모으기에 돌입했다. (아 물론, 대학시절 배낭 여행도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다채롭게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이란 말도 있다 ㅠ.ㅠ) 과외 말고도 시간제 알바를 두세 탕씩 뛰면서... (동시에 연애도 하면서!) 

친구 말로는 ㅇㅈ이가 그렇게 악착같이 9개월간 매일매일 알바로 번 돈이 무려 1600만원. 결국 ㅇㅈ이는 부모에게 단돈 한푼도 손 벌리지 않은 채 자력으로 지난 10월 4개월 여정으로 남미 여행을 떠났다. 그보다 먼저 초여름엔 유럽 한바퀴 돌아주시었고... (테러 발생 이전에 다녀온 것도 어찌나 선견지명이 있는지 원..)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아래 사진들은 얼마 전 ㅇㅈ이가 쿠바 아바나에서 찍어보낸 사진들이다. 

멕시코는 어딜 가나 프리다 칼로로, 쿠바는 체 게바라로 먹고사는 것 같다고... ㅎㅎ

남미가 대체로 인터넷 환경이 좋질 않아서 친구 부부는 벌써 두달째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무사하다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아오... 가끔 친구가 전달해주는 남미의 그림 같은 사진들에 감탄하고 반색하며 부럽다, 멋지다, 훌륭하다... 칭찬하기에만 바쁜 나는 가끔 너무 심하다 싶은 친구의 걱정을 위로하다말고 종종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 실감하는 건... 아... 역시 나는 엄마 입장이 아니고 딸 입장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싶다. 길 미끄러운 데 울 엄니가 나돌아댕기면 나도 괜한 걱정과 망상에 휩쓸린다. 나의 조카가 나중에 커서 배낭여행을 떠난다면 나 역시 전전긍긍 염려하고 앉아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재난이라든지 테러에 휩쓸리는 게 아닌 한, 믿을만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 헤치고 나가는 길이라면 그냥 지켜보며 박수쳐주기만 해도 되는 게 아닐까? 아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고!!?? 경솔하게 일부러 위험 지역으로 찾아들어갈 아이도 아니고, 듣자하니 놀라운 친화력으로 가는 곳마다 친구들을 만드는 것 같던데... 나 원 참.. 

​가끔 넌 자식이 없어서 절대 부모 마음 모른다는 둥, 본인이 닥쳐보지 않으면 짐작도 못한다는 둥 내 기를 팍팍 죽이는 말을 듣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영 철이 안들어 어른 취급을 해줄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그 사람이랑은 관계를 끊어버렸지만... 암튼 글쎄... 꼭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4대강은 반드시 국토를 죽이는 사업이라든지, 아라뱃길은 괜한 돈지랄이라든지...

과연 내가 어떤 엄마가 됐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결코 알 수도 없는 일지만, 어쨌든 내가 잘 아는 '딸의 입장'에서 볼 때 엄마들이란 그저 걱정하는 것이 본능이고 직업이겠으나 앞가림 잘 하는 딸이라면 괜한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이토록 시스템이 엉망진창인 한국에서 살아가는 게 더 걱정이구만 뭘... 


​친구가 마지막으로 전달해준 ㅇㅈ이의 여행지 사진은 갈라파고스였다. ㅠ.ㅠ 바닷가에서 이렇게 물개들이랑 거북이랑 같이 헤엄치며 노신다고... 아.. 난 그저 ㅇㅈ이의 용기와 젊음과 열정과 추진력이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2월에 돌아오면 늙은 이모들이랑 팬미팅하자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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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란...

놀잇감 2015. 10. 7. 14:02

​오래 전에 돌아다니던 사진이다.
어딘가 올려놓고 글도 쓴 것 같은데 블로그는 아니었나보다.
며칠 전 번역을 하는 친구 셋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다 이 사진이 다시 떠올라 돌려보며 깔깔댔다.
공감 백퍼~라면서.
​그나마 우리말은 번역가/통역가를 확실하게 나눠쓰지만 영어로는 둘 다 translator라서 더욱 이런 오해를 사겠지.


친구들이 번역가인 우리를 생각하는 모습과
엄마가 상상하는 모습과 (물론 울 엄니는 이제 내 실체를 아시지만)
세상의 통념과...
셰익스피어를 꿈꾸는 우리들의 야망에 이어 현실까지.... 볼수록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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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꿈

투덜일기 2014. 4. 9. 15:08

보름도 넘게 정신만 들면 중얼거리고 있다. 지금쯤 터키에 있었어야 하는 건데... ㅠ.ㅠ 예정대로 27일에 떠났다 해도, 계획했던 귀국일이 벌써 내일. 이젠 정말 깨버린 꿈을 놓을 때도 되었다. 작년 내 별렀고, 올해들어 드디어 세부 계획을 잡아 여행사 예약까지 마치고도 못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에효...

 

완전 자유여행으로 가기엔 경비도 이동도 부담스러워, 패키지 상품에 4, 5일쯤 자유일정을 덧붙이려는 게 우리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무조전 국적기 상품을 찾아야했는데, 치사하게도 여행사마다 막연히 문의할 땐 300달러만 더 내면 귀국일정 변경 가능하다고 해놓고 막상 예약하려고 들면 항공사 사정따라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마뜩찮아했다. 니들, 그냥 귀찮은 거였지!

 

암튼 프리랜서이면서도 매달 고정 일이 있는 파트너의 스케줄에 따라 가까스로 잡은 날짜가 3월말 4월초였는데, 왜 하필 내가 예약한 상품만 모객이 안되냐규~!!! (20명 넘어야 출발하는데 8명밖에 안모였다) 꽃보다 누나 때문에 터키 여행상품 죄다 대박이라더니 웬걸... ㅠ.ㅠ 조금도 미안한 기색 없이 당당하게 예약금 돌려주겠다는 여행사 담당자의 전화를 받고도 어떻게든 다른 여행사 통합 상품이나 출발 확정된 팀에 꼽사리 껴서, 갈 수 없을까 애걸복걸했으나 결론은 '노'. 단체발권이라 귀국 일정 변경할 수 있는 티켓이 현재는 없으십니다, 고갱님...아우 쒸...

 

4월말 5월초는 황금연휴라 몇달전 부터 비행기 티켓 구하는 것도 어렵대고

5월말 6월초는 집안 행사로 내가 안되고

6월말 7월초는 파트너가 또 안되는데다 한 여름엔 더워서 가기 싫대고...

9월초엔 추석 들었고... 으억.. ㅠ.ㅠ

 

언냐, 미리 예약해서 10월에나 갈까... 라는 파트너 말에 대실망. 과연 나는 터키를 갈 수 있을까? 작업실 보증금 뺀 걸로 유럽 가겠다던 계획도 결국 차일피일 실천 못했는데! 안 돼~~~~ 놀러갈라고 퍼뜩퍼뜩 일하려던 작심은 이미 예약금 돌려받은 순간 때려치우고 공연히 아픈 배만 쓸어잡고 심술 부리다 여행도 못가고 일도 못하고 끙끙 속앓이만 했다. 그러면서 쓰지도 않은 여행 경비만큼 자꾸 이것저것 사들이고 싶은 이 욕구는 뭔가! 으휴... 암튼 내일부턴 다시 깨져버린 터키의 꿈을 모아모아모아서 다시 덕지덕지 엮어봐야겠다. 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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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많이들 읽으셨겠지만, 그래도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 거의 며칠 만에 읽어 재꼈던 반면 <눈뜬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해냄)는 좀처럼 이어 읽지를 못했다. 아마도 읽기 시작한 건 작년이었던 것도 같다. 그만큼 끝마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내 정신사나움 때문이 팔할이요, 나머지 이할은 숨막히도록 절망적인 그 도시 상황이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현실도피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내기라도 시켜야 할 것처럼 한심스러운 소설 속 정부와 이 나라 정부가 겹쳐지면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어쨌든 띠지를 책갈피 삼아 꽂아두었다가 조금 읽다 말기를 거듭하던 책은 일 핑계로 먼지를 뽀얗게 입었다가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책의 3분의 2선을 넘어섰었다. 허둥지둥 사건에 대처하는 정부의 꼬락서니가 정말로 딱이다 싶었고, 눈뜬 자들의 도시에선 과연 어떤 방향으로 사건이 풀려나갈지 궁금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남들보다 뒤늦게 읽으며 신종플루 때문에 더욱 공포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백지투표 사건을 처리하는 도시 권력자들의 모습이 연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뉴스에 나와 천안함 사건 진척사항을 보고하는 현실에 투영됐다. 그러다간 또 원고마감과 간병무수리의 삶에 밀려 독서는 다시 뒷전이었다.

여전히 삶은 팍팍하지만 얼마 안 남은 책을 다시 잡게 한 건 <눈뜬 자들의 도시>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이 나라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확실한 '물증'으로 제시한 녹슨 철판에 적힌 '1번'이라는 매직 글씨였다. 세.상.에.나.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하라던 진상조사의 결과 발표에 나는 또 "야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고 헛웃음까지 킬킬 나왔다. 정부의 진상 발표를 듣고 얻은 결론은, 나도 북한산 매직 한번 써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한국산' 매직과 네임펜으로 낙서질해댄 티셔츠는 세탁 한번으로 다 지워져 '일제' 패브릭 전용 마커까지 사들였지만, 그것으로 그린 그림 역시 나날이 지워져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강철을 녹슬게 만드는 짜디짠 바닷물 속에서도 성분이 유지되는 훌륭한 품질이라면, 티셔츠 낙서질용으로도 딱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도 아직은 북한산 표고버섯, 고사리 따위를 쉽게 살 수 있으며 통일전망대에 가면 (키드님 포스팅 참조) 북한산 맥주도 살 수 있다지만 연일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전쟁 준비설에다 개성공단 폐쇄 운운하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으니 조만간 북한산 매직이 내 손에 들어올 일은 어째 요원할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다. 

아무려나 현실이 너무 암담해지자 책 속의 도시는 되레 나에게 위안이었고, 희망의 빛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애당초 선거에서 백지투표를 가능하게 했던 시민들의 존재부터, 얕은 술수와 음모로 정부가 아무리 대중을 현혹시키려 해도 끄덕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데다 정부의 하수인인 경찰이면서도 결국엔 인간적인 양심대로 행동한 경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와 각료들은 또 얼마나 경멸과 조롱의 대상인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배운 바로는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말도 안된다고 판단하는 것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외려 그런 말도 안되는 것을 이용해서 양심을 무디게 하고 이성을 파괴하오." (377)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오려는지 몰라도 확실한 건 실명 바이러스 공포를 겪었던 눈먼 자, 눈뜬 자들의 정부와 정치인들 만큼이나 이 나라 꼬라지도 무능력하고 환멸스럽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그 도시민들만큼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연일 전쟁 위기, 간첩 암약, 한반도 긴장 첨예, 대북 심리전, 도발 응징, 주가 폭락 따위의 소식들이 오르내리며 3, 40년전에 써먹던 국민들 겁주기 수법이 똑같이 통용되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 5, 6월이면 나는 늘 악몽을 꾸며 울다 깨어나곤 했는데, 그 악몽의 주제는 모두가 전쟁이었다.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와 반공 표어를 만들었고, TV에선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에서 북한 소년병이 다리를 쇠사슬에 묶인 탓에(퇴각하는 북한군이 해놓은 짓이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죽는 순간까지 '따발총'을 쏘아대거나 북한군이 '드르르륵'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이 거듭 등장하는 전쟁영화가 흘러나왔다. 저다마 보따리 이고 동생 들처업고서 피난 내려갔던 추억담을 품고 있는 부모님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악몽 속에서 나는 전쟁터에 홀로 버려지거나 북한군이 쏟아붓는 대포 공격을 피해 숨어 있거나 폐허가 된 동네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곤 했다.

엄마는 키 크려고 꾸는 꿈이라고 나를 달랬지만 어린 나에게 세뇌된 전쟁 공포와 빨갱이 공포는 엄청났다. 정권마다 하도 그 수법을 오래도 써먹는 걸 지켜본 까닭에 이제 난 시큰둥 코웃음치게 되었는데, 큰일 있을 때마다 '북풍'이 여전히 만만찮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걸 보면 다들 내 생각 같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전쟁위험 국가 1위로 손꼽혀서 정말로 얻어지는 게 뭔지 나로선 정말 의문이다. 무모한 애들 힘겨루기도 하니고 원...

의사 부인과 눈물 핥아주는 개를 처리하는 어리석은 정권의 방식은 뒤떨어진 나라들에선 어디나 현재 진행형이고,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불확실한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아야하는 선거로 뭘 바꿀 수 있겠나 한심스럽지만 온 국민의 '한심도'를 또 한번 확인할 계기가 될 이번 선거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별로 기대할 건 없더라도, 선거 결과를 보면 선거 직전에 터뜨린 일련의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또 앞으로 몇십년간 우스꽝스러운 역사가 반복될지 아닐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요즘은 하려던 이야기에 필요한 낱말도 잘 떠오르질 않는 것뿐만 아니라, 글도 처음 생각했던 대로 쓰여지질 않는다. 원래부터 수다를 떨다가도 곁다리로 잘 빠지는 인간인데다, 글이란 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저절로 방향을 잡는 성질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거 좀 문제가 아닌가 싶다. 드물게 올리는 책 리뷰로 시작한 포스팅은 그냥 또 푸념일기로 끝나고 말았다. 내 역량이 요만큼인 탓이겠지. 암튼 성균관, 규장각 시리즈 이후 처음 끝낸 책이다. 이러다간 작년 대비 절반도 못 읽을 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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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투덜일기 2010. 1. 15. 00:23
건강과 관련해서 특별히 신경쓰는 것도 없고 운동과는 담 쌓은 인간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랑으로 삼았던 것 하나는 고3 이후 체중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명절 연휴에 옴팡지게 많이 먹어 2킬로그램쯤 늘어났다가도 좀 지나면 원래 체중으로 되돌아왔고, 여름보다는 아무래도 겨울에 좀 더 토실토실 살집이 붙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봤자 그러려니 할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살이 좀 내리는 일이 있어도 당연히 조금 지나면 어려움 없이 복구되었다. 10년, 15년이나 지나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옷을 아직도 안 버리고 갖고 있다가(헤져야 버리지!) 가끔 입을 수 있는 이유도 크게 몸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라 내심 뿌듯해 했었는데, 올 겨울은 좀 다르다.

딱 요가를 하면서부터 체중이 늘어나는 걸 느꼈는데, 그땐 당연히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몸이 체지방을 축적중이겠거니 했었고 20년 넘게 초과해본 적 없는 몸무게의 마지노선을 넘어서 계속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고서도 요가 때문에 근육량이 늘어나나 보다 여겼다. 특별히 먹는 양이 늘어나거나 위가 늘어나도록 과식을 거듭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나도 안하고 만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그나마 일주일에 세번은 꼬박 외출도 하고 운동도 하니 살이 빠져야 하겠지만 오히려 계속 체중이 느는 건, 요가가 워낙 에너지 소모량이 적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만날 왕비마마 체중만 확인했지 정작 본인 체중은 한 열흘 무심히 살았는데, 오늘 마침 사우나에 간 김에 확인해 보니 불과 두어달 전보다 무려 4.5kg이 많아졌다. +_+ 20대 후반 직딩 시절,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사다리를 타서 간식을 사다 먹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하고 회식하고 3차까지 술과 안주에 쩔어 살 때의 사진을 보면 정말 턱이 두개이고 뺨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 때 최고치를 기록했던 몸무게도 평균치에서 기껏해야 2.5kg정도 초과한 정도였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기야 지난 연말모임에서 본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외치긴 했다. "언니! 왜 이렇게 똥그래져서 나타났어?!" 나는 그게 내 머리모양과 얼굴살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라고 내 맘대로 해석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평소에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는 이들이야 4, 5kg쯤 에게게... 코웃음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성년 이후 20년 넘게 큰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서서히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이유가 뭘까 겁이 다 더럭 날 정도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_+ 울 왕비마마는 처녀시절 워낙 깡 말라서 별명이 <와리바시>였고 아이 셋을 다 낳고 난 뒤에도 원래 몸무게인 45kg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자 조금씩 체중이 늘었고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팍팍 몸이 불어 금세 60kg을 넘어섰다. 내가 중학생 때였나, 동네 양장점에서 맞춘 실크원피스를 입어보며 몸이 불어 안 예쁘다고 속상해 하던 엄마의 몸무게가 57kg였던 걸 기억한다. 동네 목욕탕 저울에 올라간 엄마 몸무게가 어느새 나랑 무려 20kg이나 차이 난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57kg도 버거워했던 왕비마마는 노년에 접어들어 70kg도 우스운 정도다. 65kg까지만 빼면 당뇨약은 안 먹어도 될 거라며 아무리 쥐어짜도 살이 빠지기는커녕, 왕비마마는 내가 조금만 감시(?)를 게을리 하면 일주일 만에도 2, 3kg이 확 늘어난다. 그건 순전히 고열량 간식 때문이니 이유가 확실한데, 간식도 즐기지 않는 나는 대체 왜???

자꾸만 모든 화살은 중년이라는 나의 나이로 귀결되는 듯해 서글프다. 왕비마마는 그나마 옛날 분치고 키나 크시지, 난쟁이 똥자루만한 키로 마냥 옆으로 늘어나 데굴데굴 굴러다닐 듯한 노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숨이 탁 막힌다! 절대 그렇게 되진 않겠어, 라고 전의를 불태우며 왕비마마 전용으로 사다놓은 실내용 자전거에 올라 씨근덕거리고 있으려니 어찌나 한심스러운지 화가 치밀었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몸은 왜 변하고 지랄! 차라리 어디까지 가나 두고보자며 확 밤참을 두 배로 먹어버릴까 별별생각이 다 들더라. 가능하다면 최대한 건강하게 몸에도 큰 변화 없이, 지금 마음에 꼭 드는 옷 몇벌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한번씩 입어주며 나는 몸도 마음도 젊게 사노라고 큰소리치는 것이 꿈이건만 내 머리와 몸은 아직 중년에도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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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이버 놀이

놀잇감 2010. 1. 12. 02:06

어렸을 땐 조립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공간감각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입체그림이든 평면그림이든 이리저리 작은 조각의 방향을 바꾸어 조립해 맞추는 과정이 내겐 상당히 골치아팠다. 그러고 보니 끈기도 부족했던가 보다.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내긴 했지만 들이는 수고에 비해 조악한 조립장난감의 완성품은 별로 성취감도 안겨주지 못했다. 같은 재능인지는 몰라도 루빅스 큐브는 한참 낑낑거려도 한 면 맞추는 게 고작이었다. 하도 짜증나서 완전 분해했다가 색깔 맞춰 다시 조립한 적은 있었어도...

헌데 언제부턴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생필품의 조립은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다. 널빤지 조각에 간단히 나사 몇개를 조여야 만들어지는 수납함을 시작으로 탁자도 만들었고, 나중엔 책꽂이도 겁없이 사들일 수 있었다. 복잡한 컴퓨터 책상은 도면 놓고 오래 끙끙대는 내 꼬락서니를 안쓰러이 여긴 아버지가 나서주셨지만, 혼자 했어도 결국 제대로 완성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그 컴퓨터 책상을 멀쩡히 내다버려야했을 때 꽤나 고민을 했다. 다시 분해를 해서 중고로 팔순 없을까, 아니 팔지 않더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결국 귀찮아서 그냥 내다버리는 걸로 결론을 내리긴 했다. 지금 그 상황이 온대도 이런 게으름으론 또 그냥 버리는 쪽을 택하기 십상이지만,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이느라 거금까지 들이느니 누구든 쓸 사람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약간 후회스럽다. 

어쨌거나 진짜 맥가이버스러우셨던 아버지엔 못미치지만, 이제 집안 여기저기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내가 나서며 맥가이버 놀이를 하는 것 같아 슬며시 뿌듯하다. 그래봤자 형광등, 백열등 갈기, 헐렁해진 서랍장 손잡이 나사 조이기, 스테플러로 지저분한 전선 벽에 고정시키기, 옷걸이로 화분 지지대 만들기, 벽에 못박기 정도이고, 그보다 힘든 일은 당연히 막내동생이 다니러 올 때를 기다리는 편이다. 요번에 왕비마마의 실내 운동을 위한 헬스싸이클을 장만하면서도, 기사가 방문하여 조립 및 설치 해주기를 원하면 출장비 2만5천원이 추가된다는 말에 내가 시도해보고 못하겠으면 동생녀석을 부르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문제의 헬스싸이클이 그놈의 눈폭탄 때문에 꼬박 일주일만에 배달되어 왔다. 비전문가의 솜씨로도 30분에서 1시간이면 된다는 자전거조립은 얼핏 보기에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았고, 나는 즉각 2만5천원 벌기에 돌입했다. 부품을 확인하고 일일이 비닐과 골판지를 벗겨, 작은 렌치 두 개로 설명서 순서대로 조립을 하고 있으려니, 정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난감 같은 렌치로 나사를 끝까지 조이는 게 만만치 않아 40여분만에 결국 조립을 끝내고 완성품에 앉아 시연까지 보이자, 내내 못미더워 잔소리를 해대던 왕비마마도 그제야 "우리 딸 맥가이버였네."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게다가 출장비는 흔쾌히 팁까지 3만원 주시겠단다. ㅋㅋ

왕비마마의 수시 운동 독려를 위해 자전거를 TV앞으로 놓느라 다시 소파를 베란다쪽으로 돌려놓고 화분을 죄다 옮기는 힘쓰기 작업까지 홀로 마친 뒤, 관짝만한 빈 자전거 포장박스를 한 구석에 치워놓고 뿌듯해 하려니 문득 며칠 전 차력을 시도하다 이가 빠진 지붕뚫고 하이킥의 오현경이 떠올랐다.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뭐든 잘할 수 있다는 걸 신애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사무실 이사 때 여직원들은 <걸레질이나>하라는 잔소리에 걸레질 싫다면서 굳이 번쩍번쩍 책상을 옮기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못하는 게 너무도 많은 인간이지만, 그걸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견엔 늘 동조할 수 없어 나름 악다구니를 쓰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젠 운전하다 타이어가 펑크 나면 나도 당연히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출장서비스를 부르겠지만, 그런 보험 서비스가 없던 10여년 전 나는 강북강변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혼자서 당당히 타이어를 바꿔 끼우고 가던 길을 간 사람이다! ^^v (물론 그 당시엔 몹시 슬펐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전 올림픽대로에서 펑크가 났을 때는 여러 대의 차가 멈춰서서 도움의 손길을 자청했었는데, 2년만에 아무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가 아무래도 심히 쇠퇴한 나의 외모 탓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차 펑크 때는 원피스 차림의 꽃단장 모드였고, 2차 펑크 때는 청바지에 티셔츠, 야구모자 차림이긴 했다.) 

여전히 나는 운동신경이 둔하고 공간감각력과 셈 능력이 떨어지며 몸놀리는 게 귀찮고 무서운 건 죽어도 싫다. 하지만 길눈은 밝고 지도도 볼 줄 알며 완전 기계치는 아니고 못 정도는 거뜬히 박으며 가끔 드라이버와 망치, 렌치 따위를 들고 맥가이버 놀이를 즐긴다. 필요가 만들어낸 적응력일수도 있겠으나, 나도 놀랐던 숨어있는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언젠가 조립주택 같은 것도 손수 만들어보고 싶다면 너무 원대한 꿈이려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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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투덜일기 2009. 9. 9. 17:43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라는 걸 인식하는 꿈이 있는가 하면, 너무 생생하고 자세하여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며 전전긍긍하는 꿈이 있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인가, 암튼 오늘 일어나기 전에 꾼 꿈은 너무도 생생하고 오래 이어져 정말인 줄 알고 한참 놀랐다.

매일 정오 무렵 동네를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채소 트럭의 방송 때문에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잠에서 깨고 보니 목이 잔뜩 부어 침 삼키기가 어려웠다. SS501의 김현중도 신종플루에 걸렸다는데 혹시나.. 하면서 내 이마를 만져보니 꽤 뜨끈뜨끈했다. 신종플루로 염려하는 체온이 몇도라더라.. 궁금해하면서 얼른 일어나 엄마 몰래 엄마방에 가서 체온계를 가져왔다. 39도에 육박하는 체온을 확인하고 보니 온몸에서 기운이 탁 풀리며 어느 병원엘 가야하는지 걱정부터 앞섰다. 나흘째 외출도 안했는데 어디에서 감염된 거지? 그렇다면 요 며칠 계속 바삐 외출건수를 늘려온 왕비마마한테 옮은 것은 아닌가? 일단 마스크부터 하고 엄마를 찾으니 온가간다 얘기도 없이 엄마는 집에 없고, 나는 얼른 온 집안을 환기시키고 청소를 하고 엄마한테 옮기기 전에 병원엘 가야한다고 집을 나섰다. 일단 집 근처의 내과엘 들어가니 내 마스크를 쓴 꼬락서니를 보자마자 입구부터 내쫓으며, 큰 병원엘 가란다.
신종플루로 입원하게 되면 자동차를 집에 두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택시를 잡는데, 마스크 때문인지 아무리 기다려봐도 빈 택시들은 쏜살같이 달아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자 거기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버스 운전기사도 엄청난 전염병 환자 대하듯 피하며 버스에 태워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어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걸어가는 중인데, 일부러 지름길로 가려고 대학교 후문으로 들어섰더니 가도가도 산속이다. 엄마 모시고 수백번도 더 가던 길을 왜 못찾는 것인지. 열에 들뜨고 마스크 때문에 호흡도 가빠진 나는 그만 길바닥에 주저 앉아 징징 울고만 있는데,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나를 보자 보란듯이 자동차 문을 철커덕 잠그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휴대폰으로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고, 동생들한테 연락을 하면 혹시 조카들한테 신종플루를 옮길 수 있으니 안된다고 결심한 나는 그냥 혼자 숲속에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는데,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S병원으로 가는 오솔길이 아니라 내방 이불속이었다. 휴우.. 다 꿈이었구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는데 역시나 목이 잔뜩 부어 침도 못삼킬 상황이고, 거울을 보니 열에 들뜬 얼굴이 벌그레 했다. 엄마가 얼른 체온계를 가져와 체온을 재보더니 큰일났다며 전전긍긍하셨다. 신종플루인 것 같다고. 그치만 엄마는 멀쩡하시다고... 얼른 나는 엄마를 바깥으로 내쫓고는 신종플루 거점병원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데, 도통 접속이 되질 않았다. S병원에 가면 되겠지, 생각하며 꿈속에서 대중교통수단을 잡는 데 실패했던 기억을 떠올려 에라 모르겠다 차를 갖고 병원으로 출발을 했으나, 자기도 마스크를 하고 있던 주제에 마스크를 한 내 모습을 본 대학 후문 주차요원이 차단기를 열어주질 않네그려! 차에서 내려 그 여자와 마구 목청 높여 말싸움을 하던 나는 맥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져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킬킬.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역시나 이불 속. 나는 꿈속에서처럼 얼른 누운 채로 침을 삼켜보았으나 멀쩡했고 이마도 서늘했다. 신종플루 걸려서 한 보름 격리되고 싶다더니만, 내 무의식은 실제로 그럴까봐 덜덜 떨고 있었나보다. 어쨌거나 두 모녀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 후다닥 6년근 홍삼정을 주문했다. 자발적으로 건강식품 챙겨먹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니 문득 서글프다. 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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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투덜일기 2009. 1. 9. 06:38
이상한 불면이 또 찾아오는 바람에 이틀 꼬박 예민하게 날선 신경으로 지내야 했는데 
어제 저녁엔 고맙게도 밀린 잠의 공격을 받았다.
잠을 몹시 즐기는 사람이지만 며칠만에 빚 독촉 온 채권자처럼 가혹하게 찾아온 잠의 경우엔 사실 별로 편안하질 않아서 이런저런 꿈을 많이 꾸게 된다. 깜짝 놀라 까무룩 깨어났다가 스르르 다시 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꿈을 연속적으로 꾼 것 같은데, 결국엔 확연한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에 소스라치며 깨어나 더는 잠이 오질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끔찍한 꿈도 아니건만, 꿈속의 나는 너무도 괴로웠고 깊은 절망감으로 숨을 헐떡였던 것 같다. 현실에서도 가끔 맞닥뜨리는 주차장의 두려움이 꿈속에서도 나를 괴롭혔는데, 우리나라에선 잘 볼 수도 없는 드넓은 주차빌딩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차를 찾아 헤매도 끝내 내가 세워둔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동차 열쇠를 손에 들고 끊임없이 사방을 향해 자동열림 단추를 누르며 혹시나 비상등을 반짝이는 자동차가 있는지 살피며 층층이 주차빌딩을 돌아다니던 꿈속의 나는 호흡곤란을 느끼며 울부짖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좁고 굽은 통로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내려갈 때마다 아득한 현기증을 느낀다. 건물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폐쇄적인 느낌도 싫지만 드넓은 지하 주차장에 고만고만한 생김새로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제대로 차를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그러니까 차를 세워둔 곳을 까먹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공간지각력이라고 하던가. 평면 도형의 좌우를 바꾸고 회전시켜 놓은 모양을 찾아내거나, 입체 도형 조각을 조립하여 특정한 형태를 만드는 아이들의 놀이를 대할 때도 나는 언제나 막막함을 느낀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능력이 제각각이듯 공간지각력이 크게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어렵사리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본 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이미 미로에 내던져진 실험용 쥐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할 수가 없다.
실제로 주차 위치를 찾지 못해 오래도록 미친듯이 드넓은 주차장을 헤맨 적도 있었다. 실내 놀이공원과 백화점이 연결된 대형 쇼핑몰에 처음 차를 몰고 갔을 때의 일이었다. 차의 위치를 기억해둔답시고 제 나름대로 기둥에 그려진 주황색 동물 모양을 알아두긴 했지만 나중에 지하주차장에서 한 시간 넘게 자동차를 찾아 헤매다 주차장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자 형광색 모자를 쓴 주차요원은 딱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코끼리 주차장 면적만 해도 수백 평이 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입구도 여러 군데라 기둥에 표시된 글자와 숫자를 모두 알아 놓으셔야 합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되풀이 하며 주차요원은 짜증스럽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친구와 미친듯이 지하주차장을 헤매던 그날의 기억은 그 쯤에서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분명 자동차를 찾긴 찾았을 터인데...
그 때의 낭패를 경험삼아 복잡하고 넓은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울 땐 기둥에 적힌 번호와 글자를 어디에든 메모해두지만, 막연한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면 메모해둔 내용도 소용이 없다. 'A동 라06'이라고 적힌 메모를 빤히 보면서도 엉뚱하게 B동 지하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하주차장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자동차와 함께 논리적인 사고도 삼켜버리는 미지의 검은 공간.
자주 다니는 대형 할인매장이나 대학병원의 지하주차장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 출입구가 빤히 보이고 미로 같은 구획도 없어 헤맬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나선형 진입로로 빨려들듯 깊이 뚫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익사자가 된 느낌으로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그나마도 차에 동행이 있을 땐 괜찮지만 혼자 운전할 땐 증세가 더욱 심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 일찍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불러온 꿈인 모양이다. 아무리 자주 다녀도, 본인이 환자가 아니어도 병원과 지하주차장의 결합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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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룡마을 꿈

투덜일기 2008. 11. 12. 17:01

정확히 어딘지는 몰라도 토룡마을은 외국이었다.
벨로와 나는 커다란 마트에서 초콜릿을 마구 골라 카트에 담고 있었다. (아마도 빼빼로데이 전날 정민공주와 마트에서 초콜릿 과자를 골랐던 장면의 흔적인듯 하다)
산타의 자루만큼 커다란 하얀 비닐 주머니의 바닥에 깔릴 정도로만 담긴 초콜릿을 들고 희희낙락 마트를 나서자 밖엔 키드님이 길쭉한 하늘색 올드모빌(몹시 낡았지만 지붕 없는 차였다!) 앞에서 인상을 잔뜩 쓴 채 기다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초콜릿을 많이 샀다는 타박을 들으며 우리는 얌전히 자동차 뒷좌석에 벌서는 이들처럼 앉아 어디론가 향했다. (현실과 달리 벨로와 나는 운전을 못하는 모양이고, 자동차 주인도 키드님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키드님의 집.
대저택이나 왕궁은 아니고, 그냥 널찍한 아파트 같은 곳이었는데 군데군데 놓인 여러개의 소파에 앉아 있던 토룡마을 주민들(열명도 넘었는데 다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은 모두 키드님 편을 들며, 벨로와 나의 초콜릿 쇼핑을 비난했다.
더욱이 우리가 쓸데없이 돈이나 쓰러 다니는 동안 그들은 각자 책을 한권씩 들고 앉아 읽고 있었는데
지다님은 표지가 새까만, 제목 글자도 안보이는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우리에게 혼 좀 더 나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벨로와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다른 때는 이거보다 초콜릿을 훨씬 더 많이 사도 아무 일 없었다고 구시렁거렸고 여긴 재미 없으니 또 밖에 나가자고 모의했다.
그러나 밖에 나가려면 키드님의 자동차와 운전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키드님은 우리가 또 외출을 하겠다고 하자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또 밖에 가면 아예 내쫓을 거라고 말했다. ^^

그런데 결국 나는 탈출을 감행한 모양으로 다음 순간 홀로 중고 자동차 매장에서 자동차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옛날 미니쿠퍼를 사고 싶다는데, 거기 있는 자동차들은 죄다 5, 60년대 미국에서 생산된 낡은 픽업트럭이나 뚜껑없는 기다란 차 뿐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동물 털이 열쇠고리에 달린 차키를 받아든 나는 시운전을 해보라는 세일즈맨의 말에 마구 당황했다.
대리운전기사를 불러달라는 내 말에 세일즈맨은 멍한 얼굴을 지었고, 나는 우리나라엔 전화만 하면 대리운전기사가 득달같이 달려온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자꾸 말이 꼬여서 (영어였던 것도 같다) 진땀이 났다.

어쨌든 나는 빨리 차를 구해 달아나야 했다. 아니 뭔가 중요한 걸 사러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딘지 기억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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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커피를 너무 늦게 마셨던 모양인지 오늘 아침엔 동이 트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집 전화벨 소리에 깨어나기 직전에 꾼 꿈이다. 잠결에도 너무 재미가 있어서 잊어먹지 말고 기억했다가 블로그에 써야지 마음먹고는 방금 꾸었던 꿈을 한번 죽 돌이켜 본 다음 이어 꿈을 꾸게 되길 바라며 다시 잠을 청했다.
또 한번 전화벨 소리에 선잠을 깨기는 했지만 토룡마을 꿈은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어디론가 홀로 여행을 떠난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구 헤매고 있었다.


해몽을 해보자면...
토룡마을 회동에 대한 기대심리, 해리님과 이요님이 함께 떠났던 뉴욕 여행에 대한 동경,
다른 주민들에 비해 떨어지는 독서량에 대한 자격지심, 토룡왕국 통치자 키드님에 대한 두려움(?), 초콜릿과 미니쿠퍼에 대한 열망 따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것이 아닐까.
꿈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기다란 하늘색 올드모빌 앞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기다리던 키드님의 표정은 분명 얼굴에 흉터 난 베어브릭과 똑 같았다. ㅎ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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