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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7.29 전주 한옥마을(7/21-22) 13
  3. 2012.11.16 그리고 부산 6
  4. 2012.11.16 안동 하회마을 8
  5. 2012.11.14 드디어 안동 9
  6. 2012.11.07 일본 북큐슈 셋쨋날 14
  7. 2012.11.06 일본 북큐슈 둘쨋날 12
  8. 2010.04.29 일본여행 마지막날 17
  9. 2010.04.26 사흘간의 일본 여행 둘쨋날 23
  10. 2010.04.20 사흘간의 일본 여행 첫날 22

청양

여행담 2013. 8. 5. 03:07

같은 곳에 여행을 가도 뭘 좀 아는 현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확실히 더 재미가 있는 건 당연.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거나 미리 공부를 해서 답사처럼 여행을 떠나는 게 유행인가보다. 나 역시 '답사'라는 이름으로 난생처음 청양엘 다녀왔다. 코스는 면암 최익현의 사당인 모덕사, 정산 서정리 9층석탑, 장승공원, 칠갑산 장곡사, 그리고 올라오다가 들른 아산 평촌리 약사여래불.

 

최익현은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퇴출을 이끌어낸 상소를 올린 인물이자 의병장. 국사책에서 들어본 이름이긴 해도 당연히 다 까먹었는데,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하다가 잡혀 대마도로 끌려간 뒤 적의 음식을 거부해 굶어죽기를 자처했단다. 이후 곳곳에 추종자들이 사당을 지었다는데 청양 모덕사는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키기 전 몇 해 지내던 고택과 장서각도 함께 있는 곳.

 

가랑비 속에 오래된 한옥을 둘러보니 더욱 운치가 있었다.

 

집 한쪽으로 난간 두른 누마루를 내어짓고 아래는 아궁이를 둔 독특한 구조를 보라. +_+ 상당히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 아래 왼쪽은 4천권(이랬던 것 같음;;)이나 되는 옛 서책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장서각이다. 오래 묵은 종이와 묵향에다 최근 넣어둔 좀약냄새가 뒤섞여 아주 오묘한 냄새가 났다. ㅋㅋ

 

 

내부는 이런 모습;;

 

뒷마당의 장독대도 정겹고, 흙과 기와를 쌓아올린 여러가지 모양의 굴뚝도 예뻤다.

 

나는 뒤쳐져서 한옥 구경하느라 정작 사당은 관심없었다. 확실히 옛날에 지은 한옥과 현대에 얼렁뚱땅 지은 한옥은 척 봐도 차이가 있다. 한옥 짓는 기술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암튼 나도 언감생심 나중에 한옥을 짓고 살 일이 있다면 어디서든 고택 부재를 몽땅 옮겨다가 지어야지 마음먹었다;; ㅎㅎ

 

 

 

 

 

 

 

 

 

 

 

 

 

 

 

다음 행선지는 정선 서정리 9층석탑. 드물게 고려시대 초기 석탑이라는데, 절터는 온데간데없고 길가에 뜬금없이 홀로 초라하게 서 있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를 듯...

 

 

 

이때만 해도 7월 초라 연꽃이 하나도 안보인다.

이날 논 옆의 연꽃밭(아마도 연근 수확을 위함인듯;;)을 보며 반색해서 사진 엄청 찍어왔는데.. ㅋㅋ 덕진공원 다녀와서 보니 그야말로 새발의 피.

 

금세 탑을 돌아보고나서 향한 곳은 예정에도 없던 천장호 출렁다리였다. 1박2일에도 나온 곳이라며 해설사와 청양군 관계자가 꼭 가보라 했다는데 ㅋㅋㅋㅋ 우리는 이런 인공조형물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라규! 게다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흠흠... 저 빨간 고추모양 있는데 까지는 나무다리라서 나도 걸어가보았으나, 국내 최장(정말??)이라는 출렁다리엔 발도 올리지 않았다. 왜 괜히 사서 고생을 하겠나...  무섭다면서도 롤러코스터 타고 왁왁 소리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유형이다. 정말 무서우면 소리도 안나오는데... 흥. 사진 같이 구색 맞추느라 옆에 올린 건 밥집 옆에 있던 장승공원.

 

 

원래 옛날부터 전해지던 장승들은 어쩌고 새로 만든 장승들을(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조형물 포함;;) 세워놓았는데 이런 데도 난 싫다. 그나마 산채정식이 맛있어서 다 용서되는 느낌.. ㅎㅎ (어르신들 틈에서 허겁지겁 밥먹느라 밥상 사진 찍는 건 까먹었다. ㅎㅎ 이름이 '맛집'이라고;;)

 

인위적인 느낌 풀풀나게 줄지어 세어놓은 장승들은 어딘가 처량맞아 보였지만, 그래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유독 푸르러 보이는 신록과 산새에 눈이 다 시원해졌다.

 

 

 

점심 먹고 간 곳은 칠갑산 장곡사.

한낮인데도 비구름이 코앞까지 내려와 깊은 산중의 느낌이 났다. 나로선 이름도 처음 들어본 절인데, 꽤나 역사도 깊고(신라시대 때 처음 창건되었다고) 국보급 불상과 오래 된 보물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특이한 점은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으로 나뉘어 대웅전이 둘이나 된다는 사실.

 

역시나 설명은 건성으로 듣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기웃대느라 어쩌다 대웅전이 둘이나 생겼는지 그건 모르겠다. ㅋㅋ

암튼 상대웅전의 경우 고려시대에 처음 지었고 이후 조선 말기에 고쳐지어 주춧돌 같은 건 고려시대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시대별 건축양식이 뒤섞여 있다는 것 같다. 자연석을 특별히 많이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덤벙주초'라고 하는데, 내가 찍어온 주춧돌이 바로 고려시대 것이 아닐까싶다. ^^;

 

 

 

 

 

 

 

 

 

 

 

 

 

 

일주문 대신 오른쪽 누각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가는 독특한 구조. 누각 위엔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오래 된 북과 스님들이 탁발한 밥을 담았다는 거대한 구유가 놓여 있다.  상대웅전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절집 기와지붕도 (내 눈엔) 드물게 보는 절경이다.  

이것이 바로 밥통으로 썼다는 여물통 ^^ 코끼리 가죽 북이라니... 헐..

 

하대웅전 앞에서부터 어슬렁거리던 누런 고양이 한마리는 사람들을 꺼리지도 않더니 어느틈에 상대웅전 앞마당까지 따라왔다. 꼬리까지 높이 치켜들고 아무래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소원을 들어주었다. ;-p 

 

오른쪽 사진이 아마도 국보라는 비로자나불? 대웅전 안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소심한 나는 밖에서 한장 건졌는데 다른 분들  막 가운데 문으로 드나들고 사진찍다가 스님한테 다들 엄청 혼났다. 켁;; 사진에선 잘 안보이지만 대웅전 바닥엔 연꽃문양의 '전돌'이 깔려 있다. 전돌은 기와처럼 구워서 만든 일종의 타일로, 전통적인 바닥장식재다. (근정전 바닥에도 깔려있음!) 안쪽 부분 전돌은 고려시대의 것 그대로고 바깥부분만 모조품이라는 것 같다. 확실히 현대 들어 모방한 전돌과는 질적으로도 차이가 있어보였다. 돌 자체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연꽃 문양이 좀 더 오묘하고 섬세해!

 

혼날까봐 못찍어온 불상 사진은 다른 용감한 분의 작품으로 대체.. ㅋ

어린시절부터 외할머니와 엄마 따라서 절 구경을 참 많이도 다녀봤지만 이런 불상과 석조대좌는 처음 보는 듯... 신기했다.  광배라고 해서 나무판때기로 만들어 세운 후광무늬도 엄청 섬세하다.

 

옆에 있는 약사여래상도 같이 보물인가 국보랬으나 그건 사진 없음.

 

 

 

국보급 불상과 오래된 대웅전의 건축양식을 확인한 것도 좋았지만 나는 산속에 들어앉은 절 구경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누구는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경치 좋은 곳은 죄다 절이 차지하고 있으니 그 또한 특혜이자 비리가 아니겠느냐고 하던데, 박해를 피해 어쩔 수 없이 절이 산속으로 숨어든 것이든 아니든 암튼 구경다니는 사람으로선 풍광 좋은 곳에 오래된 한옥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참 좋다. 부디 자꾸만 넓혀짓고 높여짓고 으리으리하게 '현대화'하지나 말았으면...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오다보니, 한쪽에 남은 기와로 얕은 담장 쌓아놓은 것도 탐이 났다. 빗속에 더욱 싱그럽게 보이는 초록잎들...

 

 

 

 

 

뭔가 불상을 하나 더 볼 계획이었는데 공사중이라는 소식에 청양을 떠나 올라오다 아산엘 들렀다. 이름하여 평촌리 약사여래불.

멀리서 볼 땐 사진처럼 저렇게 얼굴을 약간 찡그리고 있는 듯 하더니 가까이서 보니 인상이 달라져 평온한 얼굴이었다. 옆에서 보면 납작한 돌인데 저걸 어떻게 균형맞춰 세워놓았는지 그또 한 신기... 

아마도 땅밑으로 한참 더 파묻어놓았을 것이라지만 겉보기엔 파묻힌 것 같지 않고 고임돌도 시원찮다.

 

암튼 잘은 몰라도 섬세한 옷의 주름과 빼어난 생김새가 비례에 맞춰 아름답게 표현된 석불은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의 보물이라고 들었다. 조선시대엔 아무래도 불교미술의 쇠퇴기니까...

이것도 고려시대 불상이라는 듯...

고려시대 석탑과 불상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쪽만 찾아보러 다녀도 흥미롭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일 답사인데도 온종일 아주 알차게 여러군데 돌아다닌 하루여서 이렇게 뒤늦게라도 줄줄이 적고보니 2박3일은 되는 것 같다. ㅎㅎㅎ

 

2013년 7월 5일 청양 & 아산

 

 

 

 

 

 

 

 

 

 

 

 

Posted by 입때
,

청양 갔다 온 후기도 마저 다 써야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전주 다녀온 후기부터 마무리할 작정이다. 청양은 남이 정한 행선지엘 반강제로 따라 간 거고, 전주는 내가 가고싶어서 간 데라 확실히 만족도와 감상이 다르다. 1박2일이라지만 엄밀히 따지면 전주에 딱 24시간 머물렀던 여행은 한마디로 참 좋았다. 날씨가 너무 뜨거웠던 점만 빼고. ^^;

떠나는 날 서울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했고, 다음날부터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신발이며 옷을 '우천용'으로 준비했으나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전주 터미널에 내리니 햇빛은 쨍쨍 한낮 기온은 32도. 숨이 턱 막히고 조금 걸으면 맨살 드러난 발등이 따끔따뜸거릴 정도였으니 체감온도는 훨씬 높았을 듯. 반바지를 싸갔어야 했는데!

터미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러 가면서 제일 먼저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이것.

터미널 입구 인도에 네모난 얼음을 세워놓았다. 내가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자 지나던 아저씨 한분이 시원하게 얼음을 만지고 가야 복받는다고 한 마디 던지셨다. ㅋㅋㅋㅋ 난데없는 얼음덩이 하나로 전주의 첫인상이 정해졌다. 뭔가 소박하고 꾸밈없는 느낌?

전주 한옥마을을 손바닥처럼 훤히 꿰고 있는 일행을 따라간 거라 난 그저 가자는 대로 가고 먹자는 대로 먹기만 하면 되었던 이번 여행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 내가 온갖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검색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했었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필요없으니 진짜로 놀고먹는 편안한 인생!

첫 행선지는 60년 전통의 풍년제과였다. 그 유명한 수제 초코파이와 전병을 먹어줘야 하기 때문. 안동 여행 때 맘모스 제과엘 못 가본 것이 천추의 한이었던 나는 희색이 만면했다. 네거리에서 택시를 내려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정말로 관광객들이 줄줄이 택시에서 내리거나 걸어와서 풍년제과 안으로 들어갔다.

네 종류의 전병이 있다는데 일행이 추천하는 대로 생강전병과 땅콩전병을 고르고 초코파이를 집어들어 계산대로 갔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웬만한 건 셀프란다. 종이백에 전병과 빵을 담는 것도, 계산 후 튀어나온 영수증을 집어가는 것도... 주인도 손님도 그런 걸 쿨하게 이해해주는 분위기.

풍년제과에서 한옥마을까지는 한 블록 정도. 슬슬 걸어가면 된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동  성당, 풍남문, 청연루, 경기전, 남부시장... 내가 대강이나마 가볼만한 곳으로 꼽아두었던 곳은 다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이 좋아라. 게다가 전주는 좁아서 택시로 그 어디를 가도 만원이 넘지 않는단다. 택시도 많아서 쉬 잡히고 우리가 다닌 웬만한 데는 요금이 3-5천원 사이. 시내버스 노선까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수제 초코파이와 전병을 맛볼 생각에 흐뭇해하며 일단은 한옥마을 고택에 잡아둔 숙소로 향했다. 그곳 역시 일행이 대여섯 번 이상 묵어보아 검증된 한옥. <학인당>이란 곳인데, 내 마음에도 꼭 들었다!

 

왼쪽 사진은 솟을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광경이고, 오른쪽은 별채 앞 마당에서 보이는 안채의 옆모습. 한달전에도 학인당에서 묵었던 일행은 쪽문을 들어서자마자 비명처럼 외쳤다. 아니, 잔디는 언제 깔았지? 전통적으로 잔디는 무덤에나 입히는 것이고, 한옥마당과는 좀 안어울리는 것이 사실. 게다가 '겨우' 2주전에 심었다는 잔디는 모발 이식해놓은 것마냥 좀 흉측했다. ㅠ.ㅠ 어쨌거나 나는 안채, 사랑채, 별채 한옥건물이 모두 다 예뻐서 그저 헤벌레. 

방과 화장실 모두 깔끔했고 마련되어 있는 이부자리도 정갈했다. 오른쪽 사진이 우리가 묵은 별채의 모습인데 문이 열려있는 맨 끝방에서 우리가 묵었다. 두명이 자면 딱 맞을 한칸짜리 방이다.

뙤약볕 속에서도 한옥마당엔 선들선들 바람이 일었지만 그래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좀 쉬며 풍년제과표 전병과 초코파이를 시식했다. 전병이야 옛날부터 '센베이'라고 알고 있던 양과자 맛이라 크게 새로울 게 없었는데, 초코파이는 견과류도 씹히는 것이 정말 맛있었다. 단 거 안좋아하는데도 입가에 초콜릿 묻혀가며 순식간에 흡입했음.

다음 코스는 태조의 어진이 있다던 경기전. 입장료 천원 내고 들어가야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패스~ 했을 곳이었지만 궁궐 공부에 필요할 것 같아 내가 가고 싶다 했었다. ㅋ 조선의 왕 가운데 어진이 남아있는 사람은 딱 셋뿐이다. 태조, 영조, 철종. 그나마 철종은 불에 타다가 일부만 남았다지. 나머지 어진은 죄다 후대에 상상하여 그린 것들이라는데도 떡하니 '어진박물관'에 여러 왕들의 어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오로지 경기전 정전에 봉안된 태조의 어진. ^^; 드물게 푸른색 곤룡포를 입고 있다잖은가. ㅎㅎ

그밖에도 담장 안에 전주이씨 시조의 사당과 예종의 태실이 어디엔가 있다는데 거기까진 가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다던 전주사고에 올라가본 걸로 만족. (그러나 옛 건물인 줄 알았더니 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 ㅋㅋ)

 

 

 

전주사고 제기고

전주사고도 그렇고 제기 창고도 그렇고 물건을 오래 보관하려면 바람 잘 통하게 전각을 이층으로 지어야하나보다.

 

경기전을 나서는데 저 멀리 전동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기는 했지만 일단은 너무 덥기도 하고 일요일이라 미사 중일 것 같아 다음날 가보기로 했다. 서울엔 배롱나무가 이제 조금씩 피기 시작하던데 전주엔 가는 곳마다 배롱나무 꽃이 색색깔로 만발해 정말 예뻤다.

 

 

 

 

 

 

일행이 계획한 다음 행선지는 한방체험관(우석대에서 운영하는 것 같았음) 족욕. ^^; 아토피 조카를 위하여 수제 비누도 사야한다는데(비누도 하나에 5천원, 족욕 체험료도 5천원. 족욕하는 물에 뭔지 모를 한약봉지를 하나 풀어준다) 월요일엔 문을 닫는다고. 더위에 헉헉대다 시원한 에어컨 켜진 실내에 들어가 다시 또 따뜻하게 족욕을 20분쯤 하고 나자 피로가 확 풀렸다. 초코파이도 먹은 데다 더워서 입맛이고 뭐고 다 달아났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좀 쉬었다고 다시 전투적으로 저녁밥 먹을 생각이 들지 뭔가. 

아래 오른쪽은 무엇보다도 밑반찬이 맛있어서 꼭 가야한다는 '나들벌'의 동태찌개 상차림이다. 반찬 종류가 더 많은데 왼쪽으론 좀 짤렸다. 찌개가 8천원, 한정식은 만원이던데 한정식을 시켰으면 어떤 반찬이 더 나왔을지 궁금했다. 최명희 문학관 바로 뒤에 있는 식당인데, 이미 문을 닫은 최명희 문학관은 다음날 가보든지  하자고 했으나 결국 담너머로 보는 걸로 그쳤다.  

최명희 문학관 8천원짜리 동태찌개의 위용 ^^

땀흘리며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밤거리 구경이고 뭐고 일단 쉬고 싶은 마음 뿐. 캔맥주 하나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시원하게 기네스 한잔 하면서 첫날 일정 끝. ^^;

돌아다녀 본 바에 따르면 전주 한옥마을엔 고택을 숙소로 개조한 곳이 꽤 여러곳 있었고 규모도 다양했다. 나야 뭐 처음 가보는 곳이니 비교가 불가능하고, 전주 고택에선 다 아침밥을 주는지 어쩐지도 모르겠는데 학인당의 장점은 종부가 직접 아침상을 차려준다는 점이라고 했다. 8시 반쯤 행랑채를 개조한 듯한 공간으로 밥먹으러 오라고 종부께서 직접 방마다 부르러 다닌다. ㅎㅎㅎ 우리가 간 날은 세 팀밖에 없어서 단촐하고 좋았는데, 성수기에 방이 다 차면 몇 차례로 나누어 순서대로 먹어야한다고. 

솟을대문과 안마당 학인당 아침상

둘쨋날 하늘은 더욱 맑아 아침부터 공기가 뜨끈뜨끈했다. 그런데 이날 서울경기지방엔 물폭탄이 쏟아지고 있었다는;; 우리나라 땅 참 넓다니깐! ㅋㅋㅋ 오른쪽 밥상이 바로 종가집에서 받은 아침상인데, 아직 쑥된장국이 나오기 전이다. 밥 먹기 전에 사진 찍는다며 수선 떠는 거 민망하여 앉기 직전에 얼른 한장 건졌다. 전주가 고향인 후배한테 오래 전 들은 풍월을 상기해 보자면, 전주엔 조선시대부터 한양에서 낙향한 양반들이 많아 궁중음식이며 한양 반가의 음식이 많이 전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맛이나 간도 경기 음식과 비슷하게 담백하다더니만 정말 그런 듯했다. 남도쪽의 진한 맛과는 완전 다른 느낌. 깔끔하고 담백하니 내 입에도 딱이었다. 전날밤 과음이라도 해서 아침 건너뛰고 늦잠이나 자겠다고 했으면 크게 후회할 뻔;; ㅋ

슬금슬금 뙤약볕으로 나가 다시 한옥마을 구경에 나서 처음 찾아간 곳은 전동성당. 정조 때 최초로 순교자를 처형한 장소에 세워진 성당이라고.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성당 셋 중 하나라는 것 같다. 고색창연하고 아담한 것이 명동성당보다도 예쁘고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론 남부시장의 청년몰에 가서 커피를 마실까 생각했지만 더우니까 신호등 기다려 횡단보도 건너기도 싫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적어둔 전주의 가볼 곳 중 남부시장에 있다는 <조정례 남문 피순대> 역시 이번엔 경험할 수 없었다. 파트너가 순대국을 못먹는 사람이라... <전주 왱이 콩나물국밥>도 먹어보고 싶었으나, 역시나 일행이 콩나물국밥을 싫어했다.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술국으로 유명한 음식과는 친할 수 없나보다는 것이 요번에 깨달은 나의 가설. ^^;  

풍남문 청연루

<호남제일도성>이라는 편액도 함께 걸려있는 풍남문은 동대문처럼 뒤쪽에(앞쪽인가?) 궁장이 남아있고 주변이 로터리였는데, 문 바로 코앞까지 사람들이 주차를 해놓았다. 그래서 어디서 찍어도 자동차 없이 문만 사진에 담기가 어려웠음. 오른쪽 청연루는 대로변 다리 위에 뜬금없이 서 있는 누각인데, 한시간 정도 걷고 이미 지쳐서 가까이 가보지도 않았다. 저렇게 긴 누각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먹거리 목록에 있던 <외할머니 솜씨 흑임자 팥빙수>도 요번엔 못 먹었다. 뙤약볕에 줄 서서 기다렸다 먹을 만큼 내가 빙

사랑나무 카페

수를 좋아하지 않으니 뭐;; 대신 그 건너편에 있는 한옥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는데... 우와 정말 맛있었다. 한옥마을 곳곳에 커피를 직접 볶는 커피집이 보였고, 깨끗하게 정비된 길가쪽 한옥들은 대부분 상점이나 음식점, 카페였다. 삼청동과 북촌을 평지에 뒤섞어 놓은 느낌이랄까.

이름은 같은 한옥마을이라도 안동 하회마을은 한옥집들의 규모가 대부분 다 크고 안채를 제외한 공간은 거의 관람객들에게 공개해 놓았지만(입장료를 받으니 그렇겠지;;), 전주 한옥마을은 집들이 대개 다 규모가 작은 편이고 길가 영업장을 제외하곤 숙박용 고택들도 죄다 꽁꽁 대문을 닫아놓았다. 사유지이니 고택체험 하러 온 사람들에게만 개방한다는 문구가 대문마다 걸려 있음. 뒷골목엔 정말로 그냥 다 오래 된 살림집들이었고, 군데군데 한옥을 개조하는 공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시절 한강변에 있던 외할머니댁 동네에서도 본 적 있는 근대 한옥들이 여전히 그대로 명맥을 잇고 있고,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를 부딪힐 것 같은 좁은 골목도 많았다.

왼쪽 사진은 숙소였던 학인당 옆쪽에 있는 한약방인데 원래 아흔아홉칸으로 지은 학인당에 속했던 것을 가세가 기울며 떼어 판 집이란다. 전주 시내를 돌아보며 느낀 건 곳곳에 한의원과 한약재상이 참 많다는 사실. 좀 과장하면 남부시장 근처엔 세집 거너 하나꼴로 한의원이 있었다. ^^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오목대엘 올라가는 것이 상책. 일행이 계단 엄청 많다고 경고해서 올라갈 생각이 없었는데 전주향교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코앞에 오목대가 있었다. 사실 그리 높지도 않음. ^^ 

이것이 바로 오목대

이성계의 할아버지가 살던 집터에 누각을 지었다는 것 같다. (더워서 안내판을 읽어도 머리에 안 들어가는 단계;; ㅎㅎ)

암튼 이곳에서 한옥마을 곳곳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길이 대여섯 군데나 사방으로 뚫려있었다.

<선비의 길>을 걸어보라며 유명한 고택 위주로 탐방로를 표시한 지도를 들고 다녔으나, 유명한 고택은 죄다 겉에서 담장 너머로 구경하는 수밖에 없어서 뭔가 야박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라도 살림집에 아무나 드나드는 건 싫겠지...

우리 숙소도 솟을대문은 항상 굳게 잠겨있고, 드나드는 건 한사람이 겨우 통행할만한 크기로 난 쪽문으로 해야했다. 집앞에서 전화를 걸면 대문을 다 열어주는지도 모르겠으나, 암튼 그집에 익숙한 일행 덕분에 우리는 밖에서도 손가락이나 접은 종이를 틈새에 넣어 쪽문 가로쇠를 돌려 드나들었다. 나름 재미있는 경험.

학인당 쪽문

 

12시쯤 체크아웃을 해야했으므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싸들고 아쉬운 별당아씨 놀이를 마감했다.

집안이 하도 고요하여, 여긴 잘 가라는 인사도 안하나보다고 종알거렸더니 그 말을 들었는지 금세 안주인이 나오셔서 배웅을 했다. 에고 민망하여라.

이번에도 우산은 싸들고 갔으되, 툇마루에 앉아 한옥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구경은 하지 못했다. 장마철에도 장마전선이 나를 배신하다니... ㅋ

학인당 쪽문을 나와 다시한번 담벼락을 돌아보며 눈도장을 찍고는 풍남문으로 향했다. 풍년제과 초코파이도 유명하지만, 일행 말로는 풍남문 근처에 있는 <원제과>의 초코파이가 더 쫄깃하고 맛있으며 바나나빵이 일미라고. (그러나 막상 먹어보니 내 입에는 풍년제과표 초코파이가 더 맛있다고 느껴졌고, 바나나우유 맛--우어 난 바나나우유 못먹는데--이라는 바나나모양 카스테라는 아예 사고싶지가 않았;;다 ㅋ)

풍남문을 향해 길을 건너자 또 다시 나타난 얼음덩어리. ㅋㅋㅋ 전주에선 구청별로 곳곳에 얼음 갖다 놓는 게 유행인가보다. 좀 귀여운 발상인듯;;

학인당 담벼락 저 멀리 풍남문

전주에서 마지막으로 돌아보기로 한 곳은 덕진공원이었다. 원래는 예정에 없던 코스인데, 전날 택시에서 덕진공원에 연꽃이 한창이며(사실 여부는 몰라도 국내 최대 규모라고 기사님 자랑하심;;) 방금 울산에서 일부러 연꽃 보러 오신 어느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오는 길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못이라니까 향원정이나 경회루 정도의 규모를 상상했다가 완전 깜짝 놀랐다. 꽤 큰 호수의 절반 가득 연꽃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많은 연꽃과 연잎을 본 건 내 평생 처음이었다. 우왕;;;  

그러나 난점은 호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현수교를 건너야 했다는 것. 멋모르고 따라들어가긴 했는데 ㅠ.ㅠ 철판으로 된 바닥이 약간 꿀렁거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난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중간중간 시멘트 기둥이 나올 때마다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종종걸음으로 직진... 어찌나 긴지 나중에는 토하기 직전이었다. 흑... 일행은 엉거주춤 징징대며 다리를 건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며 낄낄대고... 나도 내 꼬라지가 우스운 건 알겠는데 무서운 걸 어쩌라고... 흑..

나중에 알고보니  정자와 연결된 튼튼한 나무다리도 있는데 왜 굳이 그 위험한 다리를 건넜는지 (내가 고소공포증 있는 걸 일행이 모른 건 아니었으나, 그 정도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원.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드넓은 연꽃밭을 한번에 담아낼 순 없음이 아쉬웠다. 현수교 중간에선 찍을 수 있었으려나? ㅎㅎ

정자에서 보면 저 멀리 내가 징징 울며 건넌 현수교가 보인다. 정말 길지 않은가? ㅋ

덕진공원을 끝으로 2시반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고속버스를 타려면 늘 강남이나 남부터미널로 가야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요번에 화정 터미널에서 타고 가보니 엄청 더 편리하다. 우리집에서도 전철로 불과 30분 거리. 앞으로도 강북 주민 친구들과는 애용해볼 작정이다. 안동 다녀와서도 그랬지만 전주에도 조만간 또 가고 싶다. 대구못지 않게 덥다는 여름보다는 가을쯤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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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산

여행담 2012. 11. 16. 20:29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두시간 반. 푹신하고 넓은 우등고속 좌석은 곤한 다리를 쉬기에 딱이었고 우린 터미널 카페에서 드디어 반갑게 상봉한 쓴 커피를 '원샷'한 뒤에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심야가 아닌데도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는 버스 안 조명을 깜깜하게 꺼두었다가 부산 노포 톨게이트에 접어들고나서야 실내등을 켜 승객들을 깨웠다.

 

안동 여행을 계획하며 잠깐이라도 부산까지 찍고 오자 결심했던 이유는 처음 일본에 가려 했을 때 부산에 내려가 하루쯤 놀다가 배를 타고 일본에 다녀오면 더 재미있겠다는 사전 모의가 무산되면서 뭔가 대단히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친구 핑계대고 이왕 나선 김에 부산에 이어 통영, 해남, 순천만 생태공원까지(여름부터 친구랑 휴가 계획 짜며 모두 언급되었던 여행지들이다 ㅋ) 죄다 둘러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2주라고 해도 S는 금요일 출국인데다 수요일엔 또 LA에서 같이 휴가나온 동료도 만나야했다. 은행장이 특별히 임무를 부여했다나 뭐라나 -_-;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올라갈 KTX도 이미 2시반에 예약해둔 터라 부산에서 보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숙소 예약하지 말고 우리도 <바다 보이는 찜질방>에서 한번 자보자고 별렀다. 하룻밤은 우아하게 별당아씨 노릇을 했으니 또 하룻밤쯤은 행랑아범처럼 쭈그려 자도 재밌겠다고. LA교포들의 정보력이란 암튼 놀랍기 그지없다. (심지어 친구의 언니는 한인 아침방송에서 봤다며 다이어트에 좋다는 '빼빼목'을 사오라고 부탁했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을 뿐이고!) 찜질방도 퍽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잠을 잔다는 것이 가능할지 두려웠으나 까짓것 하루쯤 잠 못자면 어떠랴, 내가 LA 놀러갔을 때도 뜬금없이 코리아타운 사우나엘 데려갔을 정도로 친구는 대중목욕탕 애용자인 것을. 그리하여 만 하루가 못되는 부산일정 역시 먹는 것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광안대교 야경보며 시원소주에 회 먹기, 다음날 아침은 속풀이로 금수복국, 점심은 밀면! 부산 오뎅과 자갈치시장 씨앗 호떡은 간식 옵션이었다. ^^;

 

안동에선 시내버스비 1200원을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야 했으나 부산에선 선후불 교통카드 사용에 불편이 없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갔을 때 사고 남은 티머니 카드가 그래서 서울과 부산에서 아주 요긴했는데, 친구가 갖고가 버렸다. 좀 남았을 텐데 ㅋㅋㅋ 인상적인 기념품이 되었으려나. 째뜬 노포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곧장 향한 곳은 광안역.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이면 된다더니, 우리 걸음으론 역시나 15분쯤 걸린 듯하고 인도에 나다니는 사람들 별로 없는 아파트촌 옆을 지나면서는 친구가 미국시민 답게 좀 두려워했다. 한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중고딩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와 마주쳤을 땐 나도 좀 간이 오그라들었음. ㅋ 다행히 곧 나타난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은 평일임에도 휘황찬란 해변 카페, 술집마다 사람들이 드글드글, 바닷가엔 저녁 산책 및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해변에서 군데군데 영업중인 점 보는 파라솔! (광안대교 사진 오른쪽에도 살짝 걸쳐 나왔다 ㅋ) 대체 누가 저런 걸 보나 싶은데도, 파라솔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사주궁합 안좋다 그러면 헤어질 건가???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음. 오른쪽 사진은 민락 회타운인가 하는 건물 꼭대기층 횟집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다. 일부러 광안대교 보이는 집으로 골라간 건데 다리쪽 방엔 자리가 다 찼다. ㅠ.ㅠ

 

그래도... 요즘 제철이라며 전어회도 따로 좀 챙겨주시고 맛과 서비스는 흡족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집어먹다가 매번 아차, 그러면서 찍은 사진들. (휴대폰에 먹고팠던 갖가지 한국 음식 사진을 넣어가는 것이 친구의 소망이라면 소망인지라;;)

 

부산에 왔으면 시원소주를 마셔줘야지 암, 그러면서 술꾼인척 소주를 시켰으나 결국엔 사이다와 소주를 3:1의 비율로 섞어 먹다 배부르다는 핑계로 반병 남기고 왔다. 소맥을 할 걸 그랬나보다. ;=p

 

 

밤이 깊어가고 있었으나, 찜질방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어 내가 짜낸 아이디어는 심야영화를 보는 것. CJ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은 LA에서도 볼 수 있다며 친구는 이왕이면 다른 걸 보고 싶어했으나 마침 볼만한 다른 한국영화가 없으니 선택은 결국 <광해>였는데, 나는 또 묘한 인연 같은 걸 느꼈다. 영화 장면장면마다 우리가 최근에 갔던 창덕궁 구석구석이 막 나오는 게 아닌가! 쓰러진 광해가 숨어있던 집 역시 안동 하회마을일 리 없는데도 낮에 본 한옥들과 겹쳐져 더욱 실감이 났다. 그토록 뜸들이다 부산에까지 와서 <광해>를 보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미루고 미루다 새벽 2시가 다 돼 택시타고 찾아간 달맞이 언덕 베*타 찜질방은 상상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꽤 훌륭했다. 그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별로 없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드넓은 방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큰 방엔 거의 누을 자리가 없을 정도! 여성용 수면실이 따로 있긴 하던데 좁은데다 온도가 너무 높아 숨이 막힐 정도이고 코고는 소리도 요란하여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들 덮고 자는 담요는 과연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 이리저리 구경다니며 탐색하던 우리도 드디어 담요와 목침을 하나씩 구해들고 제일 덜 더운 방에 몸을 눕혔다... 근데 거기도 너무 더워 ㅠ.ㅠ 나는 잠든 친구를 남겨두고 찬바람을 쏘이러 베란다 앞으로 갔다가 식당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친구 옆으로. 에구구 여행에서 잠자리는 역시 편해야 제맛임을 실감.

 

 

그렇긴 해도 또 눈을 뜨자마자 이런 광경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곳에서 만나보는 묘미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전날 밤 그저 깜깜한 유리창으로만 보였던 목욕탕 전면도 죄다 저렇게 바다로 향해 있어 탕에 들어앉아서도 바다감상이 가능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참 찜질방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ㅎㅎ

 

아래는 노천탕이 있다는 옥상구경하러 올라가서 찍어온 해운대 앞바다 사진. 아침을 먹고 나서 친구에게 해운대 모래사장을 좀 걸어보겠냐고 했더니 바다구경은 충분하단다. 맞다, LA에서도 바다는 금방이었지... 

 

 

 

간단하게 때밀이(!) 목욕을 마치고 나서 행선지는 계획대로 금수복국 해운대점. 오래 전 부산에 갔을 때 택시타고 가자했더니 교묘하게 곧장 2층 입구에 내려주어 얼결에 수만원짜리 '정식'을 먹어야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조심해야지 했는데, 웬걸. 택시 아저씨가 쿨하게 큰길가에 내려주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

 

그래서 시켜먹은 것이 은복 지리와 복주머니 만두. 

LA 한식당에 비해서 다들 음식이 왜 이리도 양이 적으냐고 투덜거리던 친구는 처음으로 1인분다운 뚝배기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서울에도 이미 분점이 있지만, 말간 국물의 복국은 어쩐지 부산에서 먹어야 제맛인 느낌. 해장할 필요도 없이 속은 멀쩡했지만 어김없이 시원했다.

 

 

마침 복국집 바로 앞에 원두커피집도 있겠다, 이날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순히 풀려주는 기분이었다. 이후 부산관광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태종대, 자갈치시장 쪽을 돌아 기점인 부산역으로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것이었다. 해운대 코스를 타면 광안대교도 건너간다잖아! (버스비는 만원. 하루 종일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내리며 계속 관광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간 동안 역시나 부산여행을 한 울 엄니가 가르쳐 주심. 후쿠오카 시티투어버스에 비해 훨씬 유용한데 우린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 

 

 

진짜로 광안대교를 건너가며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해운대 인근의 스카이라인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엔 정말로 뚜껑없는 이층 투어버스가 다닌다는 듯;;

 

 

 

 

 

 

 

 

 

부산역 앞에서 은행구경과 서비스 체험도 좀 하고(얼마나 친절하고 편리한지 친구가 미국은행과 비교를 원했다), 다시 태종대행 시티투어버스를 타긴 했으나, 2시반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자갈치시장은 아예 갈 수도 없을 듯했고 태종대도 제대로 볼 여유는 없었다.  잘 기억도 나진 않지만 예전엔 택시를 타고 등대앞까지 갔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입구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거기선 다시 코끼리 열차 같은 걸 타고 올라가야 한단다. 게다가 시티'투어'버스다 보니 어찌나 해안으로만 돌고돌아 구석구석 다녀주시는지, 도심에서 태종대까지 시간도 꽤 많이 걸렸다. (나중에 택시타고 와보니깐 부산역까지 15분도 안 걸리더만!)  

 

 

말이 태종대지 솔숲길로 조금 걸어내려가 우묵하게 파인 만과 전망대 앞 바닷가를 본 것으로 이날의 관광 끝. 점심으로 별렀던 밀면을 먹을 시간조차없었다. ㅠ.ㅠ

 

 

결국 우린 회먹으러 부산 온 거였네, 라고 자조하며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할 정도였다. 헉헉대며 자리에 앉아, 또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서울역.

 

 

곧장 전철로 이동하여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의 동료들과 합류, 쌈지길과 청계천을 쏘다닌 뒤론 다시 홍대앞(주차장길 네일샵→액세서리 가게→조폭 떡볶이→커피집)을 휩쓸다 이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온 우리는 장렬히 쓰러지고야 말았다. ㅋㅋㅋ

전국이 일일생활권임을 몸소 실천한 좋은 예.

 

(20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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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여행담 2012. 11. 16. 15:01

겉은 고택이되 안은 새로이 단장한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곤하게 자고 일어난 아침,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침을 뭐라도 먹고 움직여야 하나, 일단 나가서 움직이며 배를 채워야 하나... 하룻밤 잠만 자고 나가기엔 너무 아깝다. ㅠ.ㅠ 갖고 있는 먹거리라곤 귤 몇 알과 티백 커피, 차뿐임을 잘 알기에, 우유부단하게 고민만 하고 있는 내게 친구가 일단 나가보자고 말했다.

 

꾸물럭꾸물럭 짐을 싸 아쉬운 마음으로 치암고택을 나서며 전날밤 깜깜해서 제대로 보지 못한 집주변을 먼저 감상했다. 이 또한 참 잘생긴 한옥일세.  

 

왼쪽으로 살짝 낮고 검게 보이는 것이 주인의 살림공간인 듯한 안채. 사랑채에도 객실이 두 개 있는 듯하던데 6명까지 묵을 수 있는 큰 방에 고가라 예약할 때 아예 염두에 두질 않았으나 실물로 보니 탐이 났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럿이서 사랑채에 묵어보리라! 

 

오른쪽 방문 열린 곳이 바로 우리가 묵었던 별채 계명재. 안채, 사랑채와 동떨어져 있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독립적인 느낌은 좋았으나, 방문 밖이 바로 주차장이고 엄밀히 말해 대문 '밖'이라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문고리를 보며 약간 걱정스럽기는 했다. 

 

별당아씨 놀이를 기대했던 친구는 섬돌 바로 코앞까지 대놓은 자동차들을 보며 별채가 아니고 행랑채 같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몰러~ ㅋㅋ

 

전날 친구 M이 별나게 무섭다고 했던 이유가 따로 있긴 했다. 방 옆으로 난 문을 여니 아 글쎄 담너머 딴집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이렇게... ^^; 

술 잔뜩 먹고 엉뚱하게 문 잘못 열고 나가면 그대로 허공으로뚝 떨어지며 낙상이다.

저렇게 내려다보이는 집에도 사람이 사는 것 같던데 윗집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은근히 신경쓰일 것 같았다.

 

이 문으론 허공이라 누가 들어올 리도 없는데 M은 상상력이 뛰어난 건지 전설의 고향 운운하며그래서 더 무섭다고... ㅋㅋ

 

 

 

 

 

 

암튼 안채 마당과 사랑채를 머뭇머뭇 구경하고 있자니 아주머니가 벌써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셨고, 하회마을엘 가려면 택시타고 안동역으로 가서 버스를 타는 게 낫겠다는 아주머니의 조언 대로 우린 길을 나섰다. 버스 시간표도 미리 다 검색해서 적어갔으나 생각보다 하회마을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그리 자주다니지 않았다. 한번 놓치면 막 두시간씩 기다려야 해! 해서, 안동역 근처 간잽이 아저씨 식당에서 아점으로 고등어조림을 먹고야 말겠다는 나의 열망은 또다시 물건너가야했다. 10시 반인가 45분 버스를 못타면 2시간 뒤에나 하회마을행 버스가 있었다. ㅠ.ㅠ  그럼 찐한 커피라도 마셔 카페인 파워로 돌아다녀보겠다는 바람도 실천이 어려웠다.  역 주변인데도 그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안 보이고 원두커피를 파는 편의점은 없었다. 너무 연해서 마시기 싫다고 했던 티백 커피라도 마시고 나올 것을, 아니, 고택 툇마루에 있던 자판기 커피라도 마시고 올 것을... 후회 막급이었다. ㅠ.ㅠ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까지는 한 40분쯤 걸렸나, 꽤 먼거리였던 느낌이다. 하회마을 입구엔 토속장터와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었고, 일단 거기서 우리도 아침을 먹었어야 했다. 하지만 오전이라 가게들은 아직 문도 열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라 쭈뼛거리던 우리는 일단 짐을 매표소 옆 사물함에 넣어두고 마을 안까지 들어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거기도 입구에 밥집 있겠지 뭐;;;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 예전에 이웃주민 포스팅에서 본 마을 입구 음식점은 그러니까 장터 입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듯, 마을에 들어서니 가게라곤 기념품과 음료수를 파는 간이매점 같은 곳 뿐이었다. 아이고 배고파라... ㅠ.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배가 고프면 손발이 후덜거리고 분노조절이 안되는 인간형이다. 그나마 배낭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다니길 잘했지...)

 

잘 생긴 한옥들과 황토색 토담의 정갈함도 내 눈엔 잘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엔 온통 밥먹을 생각뿐! 미숫가루라도 먹으랴 물으니 친구는 빈속에 차가운 미숫가루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집 할머니께 어디서 밥 좀 먹을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몇 군데 주소를 가르쳐주며 가보라고 했다. 밥을 해달라면 해주는 집이 있긴 한데, 문을 안열었으면 주인이 없는 거라는 하나마나한 설명과 함께... 흑... 정 밥집이 없으면 다시 돌아와 뜨거운 미숫가루라도 마시게 해달라고 부탁하곤 밥집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허나 미숫가루 집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소는 둘 다 대문이 닫혀있을 뿐이고 ㅠ.ㅠ 하는 수 없이 우린 간이매점에서 강냉이를 한 봉지 사서 한움큼씩 집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주린 배를 바삭한 강냉이로 좀 달래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한옥 구경에 돌입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도 본 적 있는, 유명한 양진당에 들어서니 아저씨 한분이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계셨다. 원래도 공개된 공간 안쪽은 살림공간이고 사유지이니 출입을 금한다고 팻말에 적혀 있는데, 이날은  매우 중요한 제사가 거행되고 있으니 특히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잘 보면 집안에서 쟁반 들고 바삐 오가시는 종부 어르신의 그림자도 찍혔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음력 9월 9일 중양절의 의미도 설명해주셨다. 본디 음력 8월 15일에 추석차례를 지내지만 그때는 시기가 일러 제대로 곡식이 다 익지 않았을 경우가 많고 음력 9월 9일에는 제대로 추수가 끝난 데다 음양이 조화롭고 더 길한 날이라 안동에선 제일 큰 제사가 있다나. 배를 타고 나갔거나 객사를 하여 정확한 제삿날을 모르는 모든 조상들을 위한 합동 제삿날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더욱 동하여 중문 안쪽을 기웃거리니, 정말로 도포자락 휘날리는 차림새의 어르신들이 여기저기 모여 계셨다.  

 

 

전날엔 왜 우리가 움직이는데 하필 비오고 날 추워져서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으면서, 바로 담날엔 중양절에 때 맞춰 잘 놀러왔구나 싶어져 키득거리다니 참 변덕스럽기도 하여라.

 

왼쪽은 양진당 행랑채에 딸린 마굿간. 여물통이 진짜 오래 되어 보인다.

 

 

 

 

 

 

 

평일인데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관광객이 많지 않아 아무래도 밥집 찾기는 글렀나보다 포기했을 무렵, 민박 팻말을 내건 어느 한옥에 유독 사람들이 드글거렸다. 알고보니 인근 공사중인 한옥 인부들이 매일 대놓고 밥을 먹는 듯했다. 어쨌거나 체면불구하고 들어가 할머니께 내가 물었다. 저희도 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굶주림은 얼굴을 두껍게 만든다는 진리!) 당연히 가능하나, 고등어구이와 안동찜닭 두 가지 메뉴만 된다는 기쁜 대답이 돌아왔다. 찜닭은 어제 먹었으니 무조건 고등어구이 백반!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달린 단칸방에 들어가 앉은 우리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날의 첫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 간잽이 아저씨네 식당의 고등어구이와는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우린 허겁지겁 맛나게 밥공기를 깨끗하게 비웠고, 칼칼한 된장찌개와 고들빼기 김치, 더덕 무침은 평범하게 느껴졌던 고등어구이의 맛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진짜로 맛깔스러웠던 반찬이었다고 인정. 들어갈 땐 몰랐는데 나와서 보니 <작전고택>이라고 팻말도 서 있었다. 잘 몰라서 그렇지 하회마을에서 고유한 이름 없는 한옥은 하나도 없는 듯;

 

 

 

 

 

 

 

 

 

속이 든든해지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더 새파란 것 같고, 토담 안에 줄지어 서 있는 기와집과 초가집들이며 텃밭에서 줄지어 자라는 배추들까지 죄다 한층 더 정겨워보였다. ^^;    

 

들어가지 말라는 곳엔 왜 더 들어가보고 싶은지;; 저 멀리 안채 처마에 매달린 곶감은 또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굴뚝 하나도 그냥 쌓아올리지 않은 정성과 예술감각을 보라!

 

 

걸어가면 왕복 한 시간도 넘게 걸릴 거라는 병산서원 가는 길.

하회마을에서 나가는 시내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우리 걸음으론 무리라는 결론으로 포기하며 바라보니 어찌나 아쉽고 오솔길이 더 예뻐 보이던지. 도산서원도 못보고 병산서원도 못보고 이것 참... 반쪽짜리 안동여행일세.

(알고 보니 도산서원은 안동시내를 중심으로 하회마을과 완전 반대편에 있었고, 시내에서 그쪽으로 가는 버스편도 하루에 몇번 되지 않았다. ㅠ.ㅠ)

 

 

 

 

 

 

 

 

공터에 나타난 그네도 한번 타주시고, 친구가  대뜸"시소다!"라고 외친 널뛰기 널에도 한번 올라가주며, 마을을 거의 다 한바퀴 돌고 나니 보이는 것은 부용대 절벽과 솔숲.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뻗어있는 예쁜 오솔길. 저 길을 우리도 하염없이 걸어가고 싶었으나...

버스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

양쪽 나무가 머리를 맞댄 이 길 역시 좀 걷다가 돌아서야 했다.

 

관광철이 아니라선지 부용대 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나룻배도 없고, 그렇다면 이젠 미숫가루나 먹으며 다리를 쉬어야 할 때. ^^;

 

 

 

 

 

 

 

 

미숫가루를 먹으러 들어간 방에서, 자기도 이런 예쁜 찻상 갖고 싶다며 친구는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마침 친구S의 남편은 목공예가 취미인 사람. 생일선물로 만들어준 화장대겸 원목 책상을 나도 익히 본 적 있었다. 아마 다음번에 친구네 놀러갔을 땐 거실에 이런 야트막한 찻상이 놓여 있을지도...

 

 

한여름에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얼음 동동 띠운 미숫가루의 위용. ^^;

 

여행일정은 우리가 세운 계획이 아니라 전부 다 버스 시간표에 달려있음을 그제야 깨달은 우리는 5시쯤 하회마을을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괜스레 하회탈 박물관에 들어가 별로 볼 것 없는 구경도 하고, 그곳 매점에서 드디어 그날의 첫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우다 안동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하회마을은 원없이 구석구석 돌아보았으나 병산서원, 도산서원 못 본 것을 안타까워 하며...

(2012. 10. 23)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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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동

여행담 2012. 11. 14. 16:18

드디어 안동 얘기까지 왔으니 여행자의 삶 후기도 얼마 안남았다. 쓰고 보니 많이 다니지도 않았구만 왜 그렇게 노상 쏘다닌 것처럼 느껴졌는지 원. 아무튼... 이웃 주민들 영향으로 통영과 함께 선망의 여행지였던 안동에 결국 다녀왔다.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짰던 시간표와 동선은 완전히 무너져 허망했고, 얼마 다니지도 못했음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마구 찍어댄 풍경사진을 '소장'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뿌듯하며, 그곳을 30년지기와 함께 거닐었다는데 의미가 있으니 됐구나 싶다.

 

그래도 왠지 억울해서 적어보자면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고속버스편으로 아침 일찍 출발.

안동에 도착해 점심으론 <헛제삿밥>을 먹는다.

오후에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돌아본 뒤 저녁은 안동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안동찜닭>을 먹어줘야지.

숙소인 고택으로 가기 전에 필히 맘모스 제과에 들러 안동사과를 넣어 구웠다는 30년 전통의<사과파이>와 <맘모스빵>을 산다.

이걸로 다음날 아침 커피와 함께 요기.

이틑날 오전에는 도산서원을 돌아본 뒤 다시 안동시내로 돌아와 역앞에 있다는 간재비 아저씨네 식당에서 고등어조림과 구이로 거하게 점심. 

커피 한잔 마시며 여유 부리다 오후 늦게 부산으로 출발.

 

그러나... ㅠ.ㅠ 야무진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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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쨋날은 호텔서 아침먹고 나서 오후까지 그야말로 자유로이 돌아다니다 공항가기 전에 일행과 만나면 끝. 일본 호텔의 뷔페식 아침밥은 맛이 없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나는 열심히 미니 오븐에 빵을 데워 테이블로 갔더니 친구는 미소시루에 밥, 시사모 구이와 명란젓을 듬뿍 담아와 희색이 만면했다. LA에서 명란젓 얼마나 비싼 줄 아냐고, 시뻘겋고 짜디짠 것도 비싸서 못 사먹는다고, 이렇게 말갛게 신선한 명란젓 처음 본다고, 넘 맛있다고 흥분일색이었다. 나도 먹어보라고 권했으나 다시 일어나 밥푸고 자시고 하기 귀찮아.... 그러고 보니 이날 아침밥은 사진도 안남겼다. 원래도 먹거리 보면 숟가락질부터 하지, 사진부터 찍는 인간이 아니라 셋쨋날 쯤 되니 원래 하던대로 돌아간 듯.

 

전날밤부터 이날 하루 뭘하고 놀 것인가 지도와 안내책자를 보며 아침까지도 고민이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베르메르 때문

이었다. ㅜ,.ㅠ

첫날 다자이후시에 갔을 때 이미 포스터를 발견하고 희희낙락 자유일정 때 보러가야겠노라고 결심했으나 가이드에게 물으니 후쿠오카에서 다시 가려면 거리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도 뭣하고 택시로 가면 2, 3만엔은 나올 거라고...(택시비가 3,40만원이란 말이냐!)

 

왔다갔다 왕복시간도 정확히 알수 없는데다 기껏 박물관에 찾아갔다 해도 허겁지겁 그림을 보고 나오려면 내내 불안에 떨어야할 것 같았다. 나 혼자였다면 몰라도 그림에 별 관심없는 친구를 이끌고 모험을 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해서 결국 포기.

그런 나를 놀리듯 시내 곳곳엔 베르메르 그림 포스터가 저렇게 떡하니 붙어있었다. 흥! 나중에 네덜란드로 보러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포스터 영문사이트 주소를 보니 베를린 어쩌고 되어 있다. 저 그림은 베를린 박물관에 있나? +_+ 암튼... 아쉬운 베르메르와의 인연.

 

자유일정에서 여행사가 추천하는 장소는 대부분 캐널시티 쇼핑몰과 도심 백화점 주변, 하카타 역 쇼핑몰 따위였으나 나와 친구는 둘 다 쇼핑을 별로 안좋아하는 인종. 쇼핑이라면 이미 전날 밤 드넓은 무지 매장을 실컷 구경한 걸로 족했다. (아직도 무지 매장에서 본 검정색 통짜 원피스가 눈에 아른아른.. 그러나 칠부소매의 겨울 원피스를 내가 언제 어디에서 입으리! 안 사길 잘했지) 게다가 이미 마냥 걸어다니는 데는 질력이 나기도 한 상태.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유람선이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휘휘 구경을 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이었다. 허나 유람선은 야경 위주라 낮엔 탈 수도 없었는데다 시간도 몇번 되지 않았고 (어쩐지 전날 강에 배가 하나도 안 돌아다니더라;;) 시티투어도 하루에 딱 네번. 지정 정류장 아무데서나 타고 내릴 수는 있지만 표를 사려면 시청 로비까지 가야했다.  

 

지도를 보니 하핫, 우리가 전날 벤치에 앉아있던 공원이 바로 시청 뒤에 있는 텐진 중앙공원이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게야...

(이러면서 전날 사진 재활용. 공원 잔디에서 놀이기구 같은 걸로 연습하던 남녀 학생이 인상적이었다)

 

 

목표는 11시에 출발하여 항구와 해변, 도시 외곽을 도는 파란색 노선의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것이었는데 아뿔싸, 내 앞에서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묻던 일본 아주머니가 단체 가이드였던 듯, 남은 표를 몽땅 사가버렸다. 로비에 먼저 도착한 건 우리였는데! 잠깐 안내판 보며 남은 표 열두장이라고 희희낙락 확인하는 사이에 흑... ㅠ.ㅠ 매표원이 안내판 11시 시간표에 매진 팻말을 붙여놓았다. 결국 우린 12시에 출발하는 빨간색 도심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또 다시 두 시간이나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의미. 에효.  여러 설문과 인증 끝에 한번에 15분간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시청 건물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 너무도 날씨 화창한 밖으로 나섰다.

 

 

 

요즘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박스 모양이 대세인 일반 자동차들과 대단히 클래식한 느낌의 택시도 한 장 찍고...

(정말로 운전수가 차문 자동으로 열고 닫아주는지, 일본 택시 한번 타보고 싶어서 별로 멀지 않은 나중 집결지까지 타고 가자고 했더니 친구가 결사반대했다.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냐고,  멀지도 않은데... 그치만 얼마나 비싼가 한번 타보고 싶긴 하던데;; ㅋ)

 

도심이라 주변에 백화점들이 대거 몰려있다는 건 알지만 굳이 들어가보고 싶진 않았으나 걷다보니 다이마루 백화점 앞이었다.

 

역시나 깔끔한 건물 앞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든 의미 모를 곰돌이도 구경하고, 귀여운 하마 모자(혹은 부녀?)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큐슈 날씨는 제주도와 비슷하려니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어찌나 덥고 햇살이 뜨거운지 외투는 계속 벗어서 들고다녀야 했다.  

 

이날 돌아다니며 제일 예뻤던 꽃집 앞 화분들.

 

공연히 억울하게 시간을 허비하다 드디어 시티투어 버스에 오를 시간. 지정석인데 그나마 일찍 표를 끊은 터라 앞에서 둘쨋줄, 자리는 좋았다. 햇살이 뜨거워 그렇지 ^^;

 

그래도 관광용이니 가끔씩 영어 안내라도 해줄 줄 알았으나 그건 헛된 기대였다. 계속 일본말로만 뭐라뭐라 방송이 나왔으니, 우린 그저 지도를 보며 위치를 짐작하는 수밖에. 처음에 항구쪽 고가도로를 잠깐 달려 바다를 뵈준 다음엔 그나마 대부분 도심을 도는 거라 돌아다녀 본 곳이 많았다. ㅋ

 

겨우 50분 보는데 2천엔이나 하고, 배차간격이 너무 멀어 다시 탈 수도 없으니(그날 하루는 비슷한 노선의 다른 버스도 계속 이용할 수 있다는듯;;) 그다지 추천할만한 느낌은 아니었다. 항구와 해변쪽을 도는 노선을 탔더라면 볼 게 더 많았을까? 그야 모를 일.

 

어쨌거나 우리와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는 일본에서 길쭉한 버스가 좌회전을 할 때마다 왼쪽 끝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야트막한 가로수에 부딪칠 것 같다고 기겁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음. 

2층 버스에 앉아 선글라스와 외투로 햇빛을 가리다가 가끔씩 사진기를 들어올리고 난사한 사진 중에 그나마 두 장. ^^;  

저것은 분명 야자수렸다? 제주와 비슷한 위도임이 분명하다고 나 혼자 우겼음. 그리고 가끔씩 도로 모퉁이에 서 있는 저 동그란 시계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는 시계탑에도 이제 다 디지털 시계로 숫자만 나오지 않던가?

 

암튼 후쿠오카 도심에서 내게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물은 바로 이것. 

용적률을 엄청 포기하고 옥상을 계단식으로 한 뒤 나무와 화초를 심었다. 나는 그냥 휴식공간이려니 했는데 버스 타고 돌다보니 저 옥상 중앙쯤에 난 계단으로 걸어내려오는 사람 발견!

 

경사면 쪽에서 보면 이렇게 생긴 건물이다. 버스투어 하며 지나다 찍은 사진이라 좀 멀다...

무슨 건물인지 나중에 지도 찾아봐야지 작정했었는데;; 아 글쎄 챙겨왔던 지도를 벌써 내다버렸지 뭔가.

사무실 건물이라면 공간을 거의 절반이나 포기하고 저렇게 꾸몄다는 건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첨부: 저 건물 이름은 아크로스 후쿠오카. 후쿠오카현 국제회관이 자리잡은 13층 건물이란다. 저 경사면은 텐진 중앙공원과 마주하고 있으며, 항시 개방되어 있는 계단 산책로와 에코 빌딩으로 유명하다고...) 

 

 

 

 

 

 

 

 

 

 

 

 

 

 

 

 

다시 시청앞으로 돌아가 빨간 2층버스에서 내려 해야할 일은 점심을 챙겨먹는 것. 일본에 왔으니 초밥을 먹을 것인가, 일본 카레를 먹을 것인가... 눈에 띄는 음식점마다 기웃거리다, 사람 많은 곳엘 가야 맛있다는 지론을 철썩같이 믿고 찾아다녀보았으나 도심에서 직장인들이 1시 넘어서까지 우글우글 밥을 먹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ㅋㅋㅋ

그러다 발견한 곳이 이 작은 우동집. 허름하고 작은데 뭔가 포스가 느껴진다고 자위하며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영어메뉴도 있음! 메뉴판과 그릇에서 '원조' 글씨를 발견하고 몹시 뿌듯해하며 메뉴 맨 위에 있는 우동을 시켰다. 좀 짜긴 했어도 퍽 맛있었음. 그러나 다시한번 말하지만 왜 이리도 양이 적은 것이냐! 눈치를 보니 다른 남자들은 거의 다 사리를 덤으로 시켜먹더군. 그럼 그렇지. 이것만 먹고 어찌 한 끼라고 할 수 있으리.

 

(물병만 크게 나왔다고 친구한테 잔소리 들은 카운터 정면 사진. 우동은 아직 한 젓가락도 안 먹은 상태. 입 큰 사람은 두 젓가락으로 끝낼 수도 있겠다. ㅋ)

 

이왕이면 다른 다리로 강을 건너겠다며 좀 멀리 돌아 다시 캐널시티 쪽으로 돌아오다 다리 위에서 찍은 강의 합류지점. 별로 안 넓은데 사진엔 퍽이나 넓게 나왔다. 이러니 한강은 찍어놓으면 바다처럼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가운데가 뻥 뚤린 캐널시티 쇼핑몰 건물은 한장도 안 찍어왔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각 시간대별로 있다는 음악분수도 꽤나 기대했다가 어찌나 미미하여 놀랐던지. ㅋㅋㅋ 그에 비하면 우리 동네 개천변에 있는 분수쇼가 더 장관이더라.

 

아래는 항구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인데, 처음 여행 계획할 때 염두에 두었던 카멜리아호가 부두에 정박해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부산에서 그 배타고 타고 9시간이나 와야했더라면 배안에서 아마 몸서리를 쳤을 듯.  전망대 올라가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유리창 격자무늬가 선명하게 나온 이 사진 괜스레 마음에 든다.

 

이후 시간 때우기는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지친 다리를 쉬러 카페에 들어가서 계속 개겼던가... 일본 슈크림은 달지 않다며 그래도 한번 먹어보자고 해서 슈크림 빵도 같이 사먹었던 건 기억 나고, 사흘만에 부쩍 늘어난 뱃살에 한숨 지었던 것도 생각난다. 많이 걸어다니면 뭐하나, 고열량 간식을 좀 많이 먹었어야지.. 밤마다 맥주에... ㅎㅎㅎ

 

 

애당초 2박3일은 너무 짧지 않겠느냐고 나흘짜리 여행상품을 알아보라던 친구에게 아쉬우냐고 물었더니 이미 일주일 이상 놀러다닌 느낌이라 흡족하다고 했으나,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나는 마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3박4일짜리 홋카이도 여행을 갈 걸 그랬나... -_-;

 

 

암튼 티웨이 항공은 처음 타보는 경험이었는데 퍽 흡족했다. 그래서 다들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겠지. 갈 때는 오렌지주스에 크라상 빵 하나 달랑 주기에 쳇, 외면하다 주스만 마셨는데 돌아올 때는 참치주먹밥이 나왔다. 배 안 고파서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내게 친구가 외쳤다. 맛있어! 까불지 말고 먹어둬. (집에 와서 신라면 끓여먹을 생각에 좀 버텨보다 결국 나도

다 먹었는데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는지... 공항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치는 바람에 집에 9시도 훨씬 넘어 도착했다. ㅠ.ㅠ 물론 그 밤중에도 라면 두개 끓여 김치 한 포기와 함께 폭풍흡입을 안 한 건 아니지만서도).

 

여행 다녀오면 그 어느 때보다 튼실해진다는 진리는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세끼 다 찾아먹고 사이사이 간식까지 챙겨먹는 습관에 길들여진 위는 거의 한달이 다 된 요즘에야 원래로 돌아왔다. 여행자로 산다는 건 참... 심신이 즐거운 일이다.

 

 

(2012. 10. 16)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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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한번 더 온천욕을 즐길 사람을 위해 6시반부터 울린 모닝콜을 무시하고 우린 8시까지 내쳐 잤던 것 같다. 8시반에 아침 먹고 10시까지 모이라고 했던가... 암튼 아침형 인간인 친구 덕분에 상당히 여유롭게 아침 먹기 전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있었다.

 

 

이곳이 우리가 묵은 하나미즈키 료칸. 방 열쇠 나눠줄 때 보니깐 3층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앞에서 보니 2층이다. 뒤와 옆쪽으로 애매하게 건물이 더 연장되어 있는 듯.

 

일행 중에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온 모녀커플이 있었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어르신에겐 좀 고역이었겠으나 젊은 사람들은 이 정도 규모의 저렴한 료칸에 묵어도 정말 아무 문제 없겠다. 늙은이처럼 난 왜 점점 온천 료칸이 좋아지는 걸까나 ㅠ.ㅠ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골목엔 이따금씩 옛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다녔다. 남학생들은 진짜로 7, 80년대 우리가 입었던 깜장교복이고 여학생들은 세일러복.

대체 왜 죄다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한 온천 사진을 찍고 다니다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내가 자기들 사진을 찍는 줄 알았는지(사진기 방향으로 볼 때 절대로 카메라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비켜있는 게 아니었음;;) 그 자리에서 배시시 웃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뒤늦게라도 내가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담아왔다. 나 같으면 얼른 도망가고 말았을 텐데, 착하기도 하여라. 

 

 

 

 

 

 

 

 

 

 

 

 

한국인 관광객이 엄청 오는 곳인 듯.. 글씨체는 좀 이상할망정 표지판마다 한글이 있다. 이런 거 찍어오는 거 웃기다면서도 결국 찍어오고야 말았다는;;; 일본은 어디나 기복신앙의 공간이 정말 많은 듯. 온천 골목에도 떡하니 이런 집이 있었다. 절 같지도 않고 규모도 엄청 작던데;;; <연애성취> 글자만은 대번에 알아본 나는 이웃주민 지다니를 떠올렸다. 종이 하나 매다는 데 100엔(대략 천오백원)이라는데 저걸 매달아 걸면 정말 연애가 성취될까? ^^;;

 

 

료칸에서 먹은 이날의 아침식사. 먹을 거 별로 없는 호텔식 뷔페가 아니라서 좋았다. 저 뚜껑을 열면 달걀 프라이와 베이컨 한 조각이 지글지글 익고 있고, 하얀 스티로폼 통엔 낫또가 들었다. 청국장은 좋아하여도 내 낫또는 못 먹는 사람이건만, 친구가 화장실 성공을 기원하며 먹어야한다고 해서 꾸역꾸역 삼켰다. 김이 딱딱하고 창호지 같긴 했지만 그럭저럭 가벼운 조찬으로 딱이었다. 이래야 부담없이 간식을 사먹을 수 있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아침을 먹고 나서 가방을 싸가지고 내려온 우리는 근처 가마토 지옥을 둘러봤다. 분출되는 성분에 따라서 같은 집인데도 군데군데 온천 색깔이 막 다르고 온도가 800도라나 어쩧다나... 정말 지옥이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부글부글 끓는 온천수 나오는 샘을 한바퀴 돌아 구경한 뒤 온천 수증기로 찐 달걀 사먹고 족욕 한판하고 나왔다. 그런 온천 지옥 자산 가치가  엄청나다는데(몇백억이라고;;), 귀엽게 생긴 사장 아들이 담뱃불 붙여서 재 떨어뜨려가며 수증기 많이 나오는 모습 시연하고 있는 걸 보며, 우리가 중얼거렸다. 한국 같았으면 부자 사장 아들이 저런 시답잖은 안내 하고 있겠냐. 일본이니까 가능한 거지....  

두 사진이 같은 집이라는 것이 신기...

 

다음은 벳부의 마지막 코스 유노하나. 유황재배지라는데 아마 한 10분쯤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ㅋㅋㅋ

움집 같은데서 수분과 햇빛을 막아 유황결정을 오래오래 키우는 걸 '재배'라고 표현한 듯. 움막이 선사시대 움집같이 생긴 건 약간 관심을 끌었으나 꼬리꼬리한 유황냄새는 좀체 좋아할 수가 없다.  

흐리고 침침했던 전날 날씨와 달리 화창하고 푸르른 하늘과 눈부신 햇빛. 이런 가을날에야 어디를 데려가서 풀어놓아도 좋아라 했을 듯. ㅋ

 

이어지는 행선지는 유후인. 아기자기한 기념품점과 민예품 상점 늘어서 있는 거리라며 익히 들어본 적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뭐 내 생각엔 인사동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싶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민예품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낼 수 없고 싸구려 기념품은 조잡해! ㅋㅋㅋ

차라리 유후인 공부를 미리 했더라면 호숫가에 있다는 샤갈 박물관엘 가볼 것을.. 사진 찍으며 샤갈이라고 적힌 건물이 보이길래 카페인가보다 했더니만,나중에 여행책자를 보니 샤갈 작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물이 엄청 맑아서 뛰노는 물고기 비늘이 보인다는 호수는 전날 내린 비로 혼탁... 전날 비와서 혼탁하다는데 물은 또 왜 저리 적어보이는가? 

그래도 단풍 들었으면 호들갑 떨며 예뻐라 했겠다 중얼거리며 뒤돌아섰다. 호수로 이어지는 개울은 문득 선운사 올라가는 길을 연상시켰음. 여기도 단풍 들었으면 더 아름다웠겠지...

 

 

유후인의 특산 먹거리는 일본 전지역 출품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했다는 코로케. 역시나 가이드는 '너무' 맛있을 것을 기

대하지 말라고 귀띔했고,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였으나.... ㅋㅋㅋ 역시나 튀긴음식을 안좋아하는 우리에겐 심히 느끼했다. 고로케가 당연히 그렇지 뭘! 생선을 넣은 듯한 금상 고로케보다는 차라리 감자고로케가 난 더 나았던 듯.

 

사진은 금상 고로케였는지 감자 고로케였는지 모르겠다. 금방 튀겨내어 바삭바삭 따끈하긴 했는데;; 우린 이후 상점들은 보는둥 마는둥 '진한' 커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


유후인에서 내가 제일 신기하게 느꼈던 건 어느 집 담장에 철사로 만들어 세워놓은 자그마한 조형물들이었다. 아무렇게나 철사를 구부려놓은 것 같지만 죄다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새의 형상은 분명 예술가의 솜씨!

 

 

 

어렵사리 찾아낸 커피집에서 산 쓴 커피로 느글느글한 목구멍을 씻어내리며 버스에 오르고 보니 또 점심시간.

휴게소 같은 데 있는 대형 음식점에 주르륵 준비되어 있던 솥밥 우동정식을 먹었다.

튀김과 연어구이가 차갑기는 했으나 맛은 대체로 훌륭. 고로께는 언제 먹었냐 싶게 밥과 우동을 흡입했다. 앙증맞게 나온 사과랑 귤도 맛있었음.

 

이후 스케줄은 내가 전체 일정 중에서 가장 관심이 없었던 아소산, 활화산 분화구 구경이었다. 그런데 아싸~! 날씨는 쾌청해도 바람이 거세 '로프웨이'(케이블카를 이렇게 부르는 듯;) 운행이 중단되었단다. 처음 나눠준 일정 안내에도 날씨에 따라 분화구를 못 보게 되면 화산 박물관으로 대체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가이드 말이 말이 화산박물관이지 사진 몇장 보고 오래 된 영상물 보는 게 전부이니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 말이! 해서 화산 사진은 로프웨이 승강장 건물에서 대강 보고, 그곳 특산물이라는 요구르트 한 병씩 마신 뒤 후쿠오카로 향했다. 심지어 점심 때 먹은 것 같은 저녁을 또 단체로 먹느니 박물관 입장료랑 저녁값이랑 챙겨서 각자 돌려줄 터이니 자유로이 사먹으라는 가이드의 제안. 우리야 당연히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별 불만이 없었던 이유는 가이드가 융통성을 많이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버스 타고 이동거리를 최소로 하려고 일정 순서도 좀 바꾸고 보나마나 한 전망대 관람 같은 건 하나 쯤 슬쩍 빼먹고...  워낙에도 마지막날은 자유여행이었지만 사흘 간 절반쯤이 자유롭고 보니 우리에겐 더욱 금상첨화였다. 

 

결국 우리는 늦은 오후에 후쿠오카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나서부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애당초 셋이 가려던 여행이라 숙소 때문에 여행사 직원과 여러번 통화를 해야했는데, 우린 방이 좁아도 당연히 셋이 묵겠다고 우겼으나 매번 불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었다. 트윈이 아니라 세미더블이 어떻고 저떻고....

암튼 결국 둘이 갔으니 문제는 해결됐지만, 호텔방에 올라가 본 우리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비즈니스호텔이라 방이 정말 비좁아서 트윈 침대를 들여놓을 데가 아예 없어! ㅋㅋㅋ

 

치산호텔 방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등뒤에 출입문이 있고 침대 발치에 벽처럼 있는 곳이 화장실. 욕조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야할 정도로 귀여운 크기에 변기에 앉으면 거의 문에 무릎이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엄청 깨끗해서 하룻밤 자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음.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고 우리는 또 한 번 중얼거렸다. 다만...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 호텔임이 좀;; ㅋ

그러고 보니 일본은 대체로 와이파이에 인색했다. 로밍은 해갔어도 데이터는 차단해뒀던 터라 와이파이 되는 데서만 신문물 검색이 가능했는데 도심 호텔에서도 와이파이가 안될 줄이야! 벳부 료칸에서도 와이파이 패스워드 알려주던데 쳇!

그래도 나에겐 제법 실한 눈썰미와 방향감각이 있겠다. 두려움에 떠는 친구를 호기롭게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포장마차촌에서 본토 오뎅도 먹게해주마.

 

강을 따라 저녁때만 나타난다는 포장마차촌을 향해 곧장 강을 건너니 벌써 어스름. 

 

 서서히 장사를 시작하려는 포장마차가 보이긴 했으나 본격 영업은 해가 져야 할 모양이라 우린 계속 강을 따라 걷다가 월요일이라 문을 닫은 뭔가 문화재스러운 건물도 만나기도 하고, 다리를 두어번 건너 공원 벤치에 한참 앉았다가 돌아섰다.

 

 

 

 

 

호텔 바로 옆부터 '캐널시티'라고 어마어마한 쇼핑몰이 있던데 후쿠오카는 운하의 도시인 듯했다. 넓지 않은 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세 갈래였던가?) 도심에서 다리를 건너 조금 가면 또 다시 강줄기가 나왔다. 차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사람들만 건너다니는 다리가 있고... 다음날까지 다리를 몇개나 건너다녔는지 셀 수도 없다.

 

엄청 큰 물고기가 가끔 펄쩍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는 후쿠오카의 강에선 그런데 한강처럼 낚시질 하는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다. 낚시는 금지인가? 하기야 한강에서도 낚시는 원래 금지됐는데 사람들이 몰래몰래 하는 거라고 들은 것도 같다. ^^;

 

강변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오다 드디어 일본에선 드물다는 포장마차 촌에서 오뎅을 사먹기는 했는데, 맛은 뭐 그저 그랬다. 내 입맛이 워낙 서민적이다보니 오뎅도 좀 구수하고 팅팅 불은 걸 선호하는데 (반면에 친구는 쫄깃한 걸 선호;;) 국물이 너무 짜고 달아서 새삼 일본이구나 싶었음.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포장마차 안주는 비싸니까 조심하라는 가이드 말은 이번에도 틀렸어! 고기 꼬치 파는 집은 비싼 집도 있었지만 우리가 먹은 오뎅집은 둘이 먹고 450엔. 한국 떡볶이 포장마차랑 비슷하구만 뭘;; 겁을 주고 그러시는지.

 

암튼 요기를 하긴 했어도 저녁식사로는 제대로 된 일본 라멘을 먹기로 결심했던 터라 캐널 시티에 모여 있다는 유명한 라면집을 찾아 올라갔다. 입구에서 자동 주문기로 먼저 돈을 내고 주문서를 뽑아야하는 데 그걸 몰라 어리바리 테이블에 앉았다가 다시 나와 시킨 라면은 그나마 제일 맵다는 것이었으나... ㅋㅋ 친구는 라면 면발이 아무리 생면이라도 꼬불거리지 않는 건 반칙이라며 느끼함에 괴로워했다. 돼지뼈 국물 라멘에 뭘 기대하셨나요 ㅎㅎㅎ

 

교자랑 세트로 나오는 걸 시켰으니 망정이지 양이 하도 적어 미리 오뎅 안 먹었으면 배고파서 화났을지도...

 

 

암튼 시내 거리를 쏘다니다 엄청 비싼 과일집에서 발견한 네모난 수박  구경과 편의점에서 일본맥주 쇼핑을 끝으로 둘쨋날도 끝이 났다. 

 

나야 가끔씩 버스타고 나다니기나 하지, 새벽부터 종일 12시간(동부와의 시차 때문에 6시에 출근한단다 헐;;;) 근무에 시달리는 은행 간부인 친구는 여행 이틀만에 고백했다. 석달치 걸을 거 여기 와서 다 걸은 것 같다고. 12센티미터나 되는 통굽 슬리퍼를 용감하게 신고 일본 여행 오겠다는 걸(인천공항엔 맨발에 그걸 신고 내렸었다)  내가 극구 말려 운동화를 신게 했었는데  운동화 안 신었음 어쩔 뻔 했누 ㅎㅎㅎ

 

(2012. 10. 15)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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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6시 모닝콜로 눈을 뜬 아침. 평소엔 늘 새벽 6시쯤 잠드는 올빼미가 6시 모닝콜에 잠을 깨는 생활은 아무리 여행지라도 적응하기 참 어렵더라. 그래도 다른 날보나 창밖이 훤한 듯하여 몸을 일으켜보려 했더니 말을 듣질 않았다. 까마득히 오래 전 부실한 몸으로 체력장을 치른 다음날처럼, 허벅지와 장단지, 무릎과 허리가 죄다 쑤셨다. 왕비마마가 이렇게 아파서 걸음을 제대로 못걸으시는 건가 어렴풋이 실감될 만큼 심각한 근육통. 혹시나 해서 새벽 온천 한번 더 하시겠느냐고 엄니에게 물으니 니 맘대로 하란다. 나야 물으나마나, 온천물이 아무리 좋아도 잠보다 좋을소냐 당연히 잠을 택했다. 
그래도 출국날이라 훨씬 더 서둘러야 하기에 조금 더 미적거리다 억지로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한발 한발 뗄 때마다 앞다리 뒷다리가 다 땡겼다. 사다리 같은 계단으로 30미터 높이 천수각에 뛰어 올라갔다 내려온 15분도 안되는 사이에 중년의 몸은 그렇게 망가지고 말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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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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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때를 연상시키듯 비도 내리고 있겠다, 여행후기나 마저 올려야겠다.

비바람 속에 첫날을 보내느라 제풀에 지친 모녀는 전날 밤 일본 말도 모르면서 TV를 틀어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일기예보를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일본열도 아래쪽은 죄다 우산 그림이었다. 6시부터 울린 모닝콜에 눈을 떠 커튼을 젖혀보니 당연히 주룩주룩 내리는 비. 아침 먹기 전 온천욕 한판의 욕심은 내리는 비와 함께 꼬리를 감추었다. 비오는 날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에서 뒹굴거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말이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마저 풍겨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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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를 더 미루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거라는 조바심에 틈틈이 적어놓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러다 또 발동 걸리면 일 미뤄두고 포스팅에 열을 올리겠지만서도, 사진 크기 일일이 줄이고 올리는 게 번거로워서라도 하루씩 정리하는 게 좋겠다. 겨우 사흘간의 여행이 심리적으로는 일주일 이상 길게 느껴졌으니, 아마 후기도 쓸데없이 투덜투덜 주절주절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만의 여행이었기도 하니까.


뭐니뭐니해도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따라가서 제일 싫은 건, 내 마음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가이드가 정해준 시간에 맞춰 헐떡거리며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도 일부러 꾸며놓은 거리 안쪽으로 그냥 동네 구멍가게 같은 잡화 식료품점에서 나 어릴 때 '미깡'이라며 사먹던 옛날식 밀감도 발견했고, 시골스러운 쌀집도 구경하며 신기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다음 코스를 위해 억지로 버스에 올라야 했다. 으휴.

동해에 인접해 일몰이 절경이라는 신지코 호수가 다음 행선지였으나, 비바람치는 오후에 일몰은 무슨 일몰. 가운데 소나무섬을 만들어놓았으니 그거라도 구경하라는 말에 버스에서 내려 한 다섯발자국 가다가 사진 한방 찍고는 그냥 돌아섰다. 그래도 이 사진속의 두 연인은 젊어서 비바람 무릅쓰고 한참이나 다녀오더라마는...

동해바다 내려다보러 올라간 그 다음 전망대도 당연히 나는 시큰둥했고, 어서 온천료칸에 가서 푹 쉬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코스정식 카이세키 요리에 대한 기대도 허기와 함께 부풀어올랐고... 대체로 요번 일행들의 목적은 온천료칸 체험인듯 했으므로, 시답잖은 관광 코스는 한둘 정도 빼고 푹 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혹시라도 불만을 품은 사람이 나중에 여행사에 항의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그 바람을 실천에 옮길 수는 없었다. 괜찮은 온천 료칸 골라서 푹 쉬는 여행을 계획하려면 그저 호텔팩이나 자유여행밖에는 방법이 없는듯.

<명탕순례>랍시고 우리가 첫날 간 곳은 타마즈쿠리 온천. 돗토리현 공항에 내리긴 했어도 이미 어느 시점엔가 시마네현으로 넘어가 그곳 주소는 시마네현이라고 했다. 온천 역사가 1300년이나 된다고 해서 저녁이나 아침에 짬 내서 온천마을 산책도 할 작정을 품고 떠났으나, 여행 가서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어본 역사가 없으니 당연히 패스~. 게다가 반나절 만에 이미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듯한 왕비마마를 모시고선 그저 온천욕이나 할밖에 아무것도 계획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 숙소인 마츠노유 료칸

료칸 안뜰 -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온천욕탕이다


원래 내가 꿈꾸었던 온천료칸 체험은 역사가 몇백년씩 되는 소규모 전통 료칸에서 기모노를 차려입은 오카미상의 깍듯한 시중을 받아보는 것이었으나 ㅠ.ㅠ 그런 곳은 단체손님을 받지 않는 듯, 패키지 상품으론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공권과 숙박 예약만 대행해주는 자유여행 상품은 더러 있었으나, 일본말도 못하면서 왕비마마를 모시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진즉에 포기한 뒤, 그나마 좀 괜찮은 온천료칸 상품을 검색해본 터였다. 숙소 건물에 들어가자 마자 풀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느껴지더니 방에 들어가자 확실히 다다미방의 향취가 느껴졌다. 바로 이거야, 싶은. 온천료칸에 가면 저녁 먹기 전에 먼저 온천욕부터 하는 거라는데, 우리는 체크인 시간이 늦어 곧장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내가 꿈꾸었던 카이세키 요리 또한 다다미방으로 가져와서 차려주는 것이었으나, 식당으로 내려가야 했으니 또 한번 실망...

이것이 카이세키 요리


그렇다고 대규모 식당에서 객실손님 전체가 와글와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을 위해 따로 마련된 소규모 연회실 같은 곳에서 각자 한 상씩 차려진 저녁밥을 먹는 식이었고,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종업원들이 깍듯하게 시중을 들기는 했다. 열심히 외운 오미즈(찬물)이며 오차(녹차)를 달라고 입도 떼기 전에 눈치 빠르게 따라주시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매번 납작 엎드리듯 무릎 꿇고 시중드는 건 어째 영 불편하더라.
암튼 지역특산물인 게요리, 쇠고기 스테이크, 스키야키, 사시미, 소바... 온갖 진미가 나오는 것으로 기대했던 코스정식의 겉모습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맛이!!

우리나라 활어회와 달리 일본 사시미는 약간 숙성한 맛을 최고로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바닷가에 가까워서 특선요리가 생선이란 것쯤은 짐작했음에도, 첫날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나는 허기를 빵과 과일로 달래야했다.
나말고도 열심히 큼지막한 카메라를 가는 데마다 들이대는 여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괜스레 자꾸 사진찍는 게 민망해서 얼른 한장 누르고 마느라 저 사시미 위에 덮인 종이도 걷지 않아 좀 민망하다. 아무려나 네다섯 점 올려 있던 생선회는 비려서 먹다 남겼고, 게다리는 차가웠으며 특히 제일 위 가운데 놓여있는 정체불명의 요리는 생선과 가지, 두부를 연잎 같은 데 싸서 찐 거였는데 어찌나 비린지 단박에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ㅠ.ㅠ 왼쪽 위 뚜껑 덮여 있는 스키야키는 어찌나 짠지 아래 있던 날 달걀을 풀어 넣어도 간이 맞질 않고 나머지 밑반찬은 차거나 비리거나 밍밍해서, 첫날 저녁 제대로 먹은 건 하얀밥과 미소시루와 쇠고기 몇점이 다였다. 카이세키 요리 엄청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곳만 실망스러운 걸까? 우쒸...

식탐녀의 상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준 건 방으로 돌아와 발견한 푹신한 이불 두 채였다. 다녀와서 알아보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료칸도 식당은 별채에 마련해두고, 아침 저녁 밥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 이불을 개고 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듯하다.
이불을 보니 하루만에 너무 피곤해서 온천이고 뭐고 한숨 먼저 자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애써 몸과 마음을 추스려 유카타로 갈아입은 뒤 온천으로 내려갔다. 굳이 목욕탕에 귀중품을 가져갈 이유가 없겠지만, 어쨌든 일본 온천에는 열쇠로 잠그는 라커 없이 그냥 바구니 아니면 나무로 짜놓은 칸막이에 옷을 벗어놓는다. 들어갈 때 자기 번호만 눈여겨 보면 그만이다.
온천 성분 같은 거 전혀 모르긴 하지만, 완전히 말간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대강 씻었는데도 머리칼과 살결이 매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료칸에 딸린 온천탕이므로 규모는 당연히 그리 크지 않고, 탕이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는 일반 목욕탕 정도를 상상하면 될듯하다. 까마득한 옛날에 온양온천이랑 강화도 해수온천에 가본 적 있는데, 거기나 여기나 느낌은 다 비슷했다. 노천탕도 있었지만, 춥고 피곤해서 우린 나가볼 엄두도 내지 못해 그건 좀 아쉬웠다. 물이 다르다고 칭찬을 거듭하며 모녀는 다음날 새벽에도 한번 더 온천욕을 하자고 작심했지만 ㅋㅋㅋ 막상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당연히 온천욕 대신 잠을 더 욕심냈다. 아무렴, 잠이 더 중요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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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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