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6시 모닝콜로 눈을 뜬 아침. 평소엔 늘 새벽 6시쯤 잠드는 올빼미가 6시 모닝콜에 잠을 깨는 생활은 아무리 여행지라도 적응하기 참 어렵더라. 그래도 다른 날보나 창밖이 훤한 듯하여 몸을 일으켜보려 했더니 말을 듣질 않았다. 까마득히 오래 전 부실한 몸으로 체력장을 치른 다음날처럼, 허벅지와 장단지, 무릎과 허리가 죄다 쑤셨다. 왕비마마가 이렇게 아파서 걸음을 제대로 못걸으시는 건가 어렴풋이 실감될 만큼 심각한 근육통. 혹시나 해서 새벽 온천 한번 더 하시겠느냐고 엄니에게 물으니 니 맘대로 하란다. 나야 물으나마나, 온천물이 아무리 좋아도 잠보다 좋을소냐 당연히 잠을 택했다.
그래도 출국날이라 훨씬 더 서둘러야 하기에 조금 더 미적거리다 억지로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한발 한발 뗄 때마다 앞다리 뒷다리가 다 땡겼다. 사다리 같은 계단으로 30미터 높이 천수각에 뛰어 올라갔다 내려온 15분도 안되는 사이에 중년의 몸은 그렇게 망가지고 말더라. ㅎㅎ
그래도 출국날이라 훨씬 더 서둘러야 하기에 조금 더 미적거리다 억지로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한발 한발 뗄 때마다 앞다리 뒷다리가 다 땡겼다. 사다리 같은 계단으로 30미터 높이 천수각에 뛰어 올라갔다 내려온 15분도 안되는 사이에 중년의 몸은 그렇게 망가지고 말더라. ㅎㅎ
료칸 건물은 전날 묵은 데보다 더 현대적인데 실내장식은 이쪽이 더 고풍스러웠다. (전날 묵은 료칸 창엔 두툼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음) 우리나라 한옥의 아기자기 예쁜 창살과는 느낌이 다르지만, 창호지 바른 저 창문 무늬도 깔끔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ㅋㅋ 설정사진 티나게 맨 왼쪽 문이 덜 닫혔다.
생각해보니 일본료칸온천 체험 못지 않게 한옥고택체험도 열망하며 살았는데 일본엘 먼저 가 본 셈이다. 언제고 꼭 행랑아범 냄새 안나는 깨끗한 고택을 골라 한옥체험도 해보고 말리라!
수공예품을 전시도 하고 팔고 있는 가게 몇군데를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엄청난 가격대에 비해 물건은 어찌나 조악한 느낌인지... 사고싶은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러더라. 이런 데 비하면 우리나라 인사동이나 삼청동은 정말 세련되고 멋진 곳이라고. ㅋㅋ
모든 일정의 마지막은 이 거리 한 구석에 있는 떡 샤브샤브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사흘간 하도 음식에 실망을 했던 터라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맛있어서 감탄하며 먹었다. 열심히 외웠던 <오이시이데스네>를 쓸 수 있었던 유일한 음식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쓸 기회가 없었다. ㅋㅋ
랩이나 좀 벗겨내고 찍을 것을... 본디 음식 앞에두고 유별나게 사진찍어대는 인간들을 혐오해왔던 터라 민망하여 얼른 슬쩍 한장 찍고는 먹기에 바빴는데, 거의 다 먹고 나니 샤브샤브에 찹쌀떡을 넣어 끓여먹는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기록해둘만한 가치가 있을만큼 맛있어서 딱 하나 남았던 떡을 찍었다. 끓는 육수에 10초 정도만 넣으면 말랑말랑해지는데, 너무 오래 두면 흐물흐물 집을 수도 없게 녹아버린다.
우린 공항가느라 영업시작하자마자인 듯 미리 세팅된 자리에서 11시반부터 먹어댔는데, 꽤 유명한 집인 모양으로 12시가 넘자 일본인들이 바글바글 모여들더니 급기야 문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렸다. 식당 이름이나 알아올 것을... 잠든 도시인 것처럼 우리 일행 말고는 거의 사람도 보이지 않던 거리에서 유독 그 음식점만 사람들로 들끓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오찬이 흡족해서 그랬는지 검게 변한 하늘에선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떠나는 발걸음이 여유로워졌다. 이미 우산은 짐가방에 넣고 싸버려서 다시 꺼낼 수도 없는 일이고...
빗길을 달려 요나고 공항까지 한시간 반쯤 걸렸던가 모녀는 처음에만 아쉬운 마음에 창밖 풍경에 시선을 돌렸을 뿐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공항 규모가 하도 작아서 수속하는 승객들도 딱 우리가 탈 비행기 인원밖에 없었는데도 줄은 참 엄청 오래 섰던 것 같다. 그 시간에 비하면 돌아오는 비행시간 1시간 20분은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올 때와 똑같이 성의 없는 기내식을 물리치고 간만에 종이 신문 하나를 다 훑었더니 벌써 착륙준비를 하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던 파아란 한국 하늘. ^^*
그러나 저 구름을 뚫고 내려오니 이 땅도 잔뜩 흐렸었다.
그러고 보니 2주 전 일인데 두어달은 된 일처럼 아득하다. 그래도 전혀 짧지 않은 사흘이었다. 요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 두 가지.
1. 앞으로 또 모녀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냥 국내 여행지만 실실 다니는 게 낫겠다. 물론 그마저도 섣불리 떠날 마음은 먹기 어려울 것 같다. ㅠㅠ
2. 내 일본어 발음이 꽤 괜찮은가보다! 다음 일본여행을 위해 (행여나?!) 일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볼까나? ㅋㅋ 답례 인사 따위로 내가 쓴 말은 딱 두 가지, <오하이오 고자이마스>랑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였는데 내가 저 말을 하면 일본인인줄 착각하거나 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막 말을 더 붙였다. 예를 들어, 토장군 거리에서 앙증맞은 검정콩 붕어빵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을 보자 우리말로 "검정콩 드세요. 맛있어요!"라고 하면서 시식용 빵을 내밀었다. 계속 "검정콩!"을 외치는 아저씨에게 나는 예의상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하면서 하나 집었는데 그 아저씨가 막 당황하면서 "아하, 스미마생... 어쩌고 저쩌고... " 그러면서 빠르게 다시 일어로 지껄이는 거다. 놀라고 당황한 나는 고개만 꾸벅하고 얼른 도망쳤다. +_+
외국인이 우리말로 하는 "감사합니다"는 어쩐지 어색해서 금방 알지 않나? 흠...
아시아나 승무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내게 일어로 말을 걸지 않나... 하여간 이상하다!
_M#]ㅋㅋ 설정사진 티나게 맨 왼쪽 문이 덜 닫혔다.
생각해보니 일본료칸온천 체험 못지 않게 한옥고택체험도 열망하며 살았는데 일본엘 먼저 가 본 셈이다. 언제고 꼭 행랑아범 냄새 안나는 깨끗한 고택을 골라 한옥체험도 해보고 말리라!
창문을 여니, 짠하고 사흘만에 햇살이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일본을 떠나는 날 반나절이라도 비와 우산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왕비마마의 불편한 다리를 감안해 방배정을 1층으로 받는 바람에 전망이 나빠진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나무 사이로 조만큼이라도 바다가 보이는 게 감사할 지경이었다. 저게 바로 동해바다 아닌가. 료칸에선 <대정원>이라고 이름붙여 자랑하는 안뜰과 바닷가 산책로를 권했었는데, 우린 이렇게 창밖으로 내다보는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아침식사도 부페식이 아니라 저녁 먹은 그 자리에 정갈하게 개인별로 마련된 간소한 정식이었으나, 카메라질에 익숙하질 않아 몸만 덜렁 내려간 탓에 증거사진이 없다. 미소된장을 각자 풀어서 즉석 국을 끓여 밥과 함께 먹는 식이었다. 달걀찜과 샐러드도 있었고, 알록달록하게 튀긴 감자 고로께 같은 반찬도 있어서 난 전날 카이세키 코스요리보다 아침 정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자마자 곧장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해야했으므로, 전날 아침 방에 준비된 다기로 차를 끓여서 잠시 음미하며 부렸던 여유도 생략했다. 그 대신 료칸 방과 아쉬운 작별의 의미로 사진 몇 장.
우리가 묵은 128호 방 한가운데 벽엔 저렇게 약간은 조악한 정물화가 매달려 있고 그 아래 수수한 꽃꽂이 수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호텔 로비는 물론이고 복도 곳곳에 작고 앙증맞은 수반과 꽃꽂이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별 거 아니라도 이런 세부적인 데 신경쓰는 마음씀씀이가 나는 참 좋다. 며칠 전 잡지 기사를 보니, 교토 쪽엔 호시노야 리조트 계열 료칸 가운데 정말 역사가 오래된, 각각 별채로만 이루어진 전통료칸도 있다더라. 혹시라도 또 한번 온천료칸 여행을 꿈꾼다면 참고해야겠다.
아 맞다, 로비 커피하우스에서 무료로 커피도 마실 수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포기해야했다. 아까비...
방열쇠에 저렇게 꽤 큼지막한 나뭇조각이 달려있었다.
열쇠가 두개인 이유는 하나가 금고열쇠이기 때문인데, 옷장 아래쪽에 작은 철제 금고가 자리잡고 있더라. 나는 열어볼 생각도 안했다.
어쨌든 저 열쇠 덕분에 료칸이름 토코엔을 한자로 東光園(동광원)이라고 표기한다는 걸 알게됐음.
아침햇살에 빛나는 대정원은 그야말로 3초쯤 얼굴만 내밀어 보고 돌아섰다. 박석 같은 저 돌 위로 걷는 기분도 꽤나 괜찮았겠다...고 짐작.
마지막 날 첫 행선지는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유형의 관광지인 배 박물관이었다. 내가 일본 배 박물관엘 뭣하러 가서 홍보영상물까지 봐야한담... 여러 종류의 배를 실컷 시식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나마 좀 참았다. ㅋㅋ
20세기 배라나 뭐라나가 돗토리현 특산품이라는데 색깔이 우리나라 배처럼 노란 갈색이 아니라 연두색인 게 특징이래고, 좀 아삭한 품종은 시큼하고 그나마 좀 단 놈은 푸석거렸다. 시식이 끝난 후엔 왕비와 곧장 로비 의자에 앉아 빈둥거리며 박 물관에 대한 무관심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시간을 죽였다.
그나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배 박물관 건물의 뼈대... 얼핏 봤을 땐 대나무이거나 최소한 나무 소재인 줄 알고 허걱 놀라 한참 올려다봤다. 다니는 곳마다 산에 대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대나무 쪼개서 만든 부채살처럼 곡선으로 배 형상을 본떠 만든 건물이 밖에서 볼 땐 좀 우스꽝스러운데 안에서 볼 땐 꽤 근사했다.
건물 골조가 뼈처럼 드러나는 저런 구조를 내가 선호하는 건가?
어슬렁 거리며 건물을 나와 주차장에서 맞닥뜨린 건 어딜 가나 보이는 일본의 경차들.
경차는 노란 번호판을 단다는데 브랜드도 모양도 정말 다양하게 많더라. 일본 자동차는 각진 게 유행인지 경차든 아니든 각진 모양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저런 차 한번 운전해보고 싶었다. +_+ 그치만 차선이 반대라 사고내기 딱 좋겠지...
마지막 행선지는 쿠라요시? 에도시대 옛거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전통 건축물 보존지구였다. 이른바 아카가와라(적와, 빨간 기와라는 뜻이랜다) 시카라베 토장군 거리. 맷돌로 커피 갈아주는 데가 있다고 그래서 지도 들고 찾아가보려고 했으나(규모가 인사동 만큼도 안 되는 듯;;) ㅠㅠ 날씨도 다시 껌껌해지고 빗방울도 뿌리기 시작하는데다 왕비마마의 다리가 비협조적이어서 그냥 눈에 띄는 데만 돌아다녔다.
작은 시가지 중심에 실개천 같은 저런 개울이 흐르고 골목골목 더 좁은 수로가 이어지는 곳도 있는데 야트막한 물속에 팔뚝보다 더 굵은 색색깔의 잉어가 돌아다닌다. 나는 인공색소로 물들인 것 같은 잉어를 좀 징그러워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신기해서 사진 찍으려다가 매번 놓쳤는데, 이 사진엔 운 좋게 난간 사이로 한 마리 보인다. ㅋㅋㅋ
무슨 환경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징그러워 보여도 저 잉어들이 생활오수에 포함되어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먹어치워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던데, 여기도 그러는 걸까 궁금해도 어디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했다.
맷돌로 갈아주는 커피집은 포기했어도 지도를 보니 일본 절이 눈에 띄어 얼른 왕비마마 모시고 찾아갔다. 대
대로 세습되는 직업이라는 일본 승려와 절은 낯설기도 하고 솔직히 좀 비호감으로 느껴진다. 일본 스님들의 염불소리도 심히 꾸미는 것 같고 말이지.... ;-p
그러거나 말거나 왕비마마는 일본 절 부처님 앞에 백엔짜리 몇개 보시하고 싶어하셨는데, 드디어 원풀이했다. 온 동네가 그렇듯 여기도 꽤 오래된 느낌이던데 유독 절마당 한구석에 마련된 납골묘만 화려번쩍 으리으리했다.
지도에 표시된 걸 보니 절 앞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에 <대련사 대로>(절 이름 맞다고 치고) 적혀 있었다. 일본 사람도 뻥이 참 심하다는 걸 느껴야 했으니...
[#M_더보기|접기| ㅋㅋㅋㅋ 이런 골목에다 <대로>를 붙이다니...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딱 편할 정도의 폭이다.
아침식사도 부페식이 아니라 저녁 먹은 그 자리에 정갈하게 개인별로 마련된 간소한 정식이었으나, 카메라질에 익숙하질 않아 몸만 덜렁 내려간 탓에 증거사진이 없다. 미소된장을 각자 풀어서 즉석 국을 끓여 밥과 함께 먹는 식이었다. 달걀찜과 샐러드도 있었고, 알록달록하게 튀긴 감자 고로께 같은 반찬도 있어서 난 전날 카이세키 코스요리보다 아침 정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자마자 곧장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해야했으므로, 전날 아침 방에 준비된 다기로 차를 끓여서 잠시 음미하며 부렸던 여유도 생략했다. 그 대신 료칸 방과 아쉬운 작별의 의미로 사진 몇 장.
우리가 묵은 128호 방 한가운데 벽엔 저렇게 약간은 조악한 정물화가 매달려 있고 그 아래 수수한 꽃꽂이 수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호텔 로비는 물론이고 복도 곳곳에 작고 앙증맞은 수반과 꽃꽂이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별 거 아니라도 이런 세부적인 데 신경쓰는 마음씀씀이가 나는 참 좋다. 며칠 전 잡지 기사를 보니, 교토 쪽엔 호시노야 리조트 계열 료칸 가운데 정말 역사가 오래된, 각각 별채로만 이루어진 전통료칸도 있다더라. 혹시라도 또 한번 온천료칸 여행을 꿈꾼다면 참고해야겠다.
아 맞다, 로비 커피하우스에서 무료로 커피도 마실 수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포기해야했다. 아까비...
방열쇠에 저렇게 꽤 큼지막한 나뭇조각이 달려있었다.
열쇠가 두개인 이유는 하나가 금고열쇠이기 때문인데, 옷장 아래쪽에 작은 철제 금고가 자리잡고 있더라. 나는 열어볼 생각도 안했다.
어쨌든 저 열쇠 덕분에 료칸이름 토코엔을 한자로 東光園(동광원)이라고 표기한다는 걸 알게됐음.
아침햇살에 빛나는 대정원은 그야말로 3초쯤 얼굴만 내밀어 보고 돌아섰다. 박석 같은 저 돌 위로 걷는 기분도 꽤나 괜찮았겠다...고 짐작.
마지막 날 첫 행선지는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유형의 관광지인 배 박물관이었다. 내가 일본 배 박물관엘 뭣하러 가서 홍보영상물까지 봐야한담... 여러 종류의 배를 실컷 시식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나마 좀 참았다. ㅋㅋ
20세기 배라나 뭐라나가 돗토리현 특산품이라는데 색깔이 우리나라 배처럼 노란 갈색이 아니라 연두색인 게 특징이래고, 좀 아삭한 품종은 시큼하고 그나마 좀 단 놈은 푸석거렸다. 시식이 끝난 후엔 왕비와 곧장 로비 의자에 앉아 빈둥거리며 박 물관에 대한 무관심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시간을 죽였다.
그나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배 박물관 건물의 뼈대... 얼핏 봤을 땐 대나무이거나 최소한 나무 소재인 줄 알고 허걱 놀라 한참 올려다봤다. 다니는 곳마다 산에 대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대나무 쪼개서 만든 부채살처럼 곡선으로 배 형상을 본떠 만든 건물이 밖에서 볼 땐 좀 우스꽝스러운데 안에서 볼 땐 꽤 근사했다.
건물 골조가 뼈처럼 드러나는 저런 구조를 내가 선호하는 건가?
어슬렁 거리며 건물을 나와 주차장에서 맞닥뜨린 건 어딜 가나 보이는 일본의 경차들.
경차는 노란 번호판을 단다는데 브랜드도 모양도 정말 다양하게 많더라. 일본 자동차는 각진 게 유행인지 경차든 아니든 각진 모양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저런 차 한번 운전해보고 싶었다. +_+ 그치만 차선이 반대라 사고내기 딱 좋겠지...
마지막 행선지는 쿠라요시? 에도시대 옛거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전통 건축물 보존지구였다. 이른바 아카가와라(적와, 빨간 기와라는 뜻이랜다) 시카라베 토장군 거리. 맷돌로 커피 갈아주는 데가 있다고 그래서 지도 들고 찾아가보려고 했으나(규모가 인사동 만큼도 안 되는 듯;;) ㅠㅠ 날씨도 다시 껌껌해지고 빗방울도 뿌리기 시작하는데다 왕비마마의 다리가 비협조적이어서 그냥 눈에 띄는 데만 돌아다녔다.
늘 복작거리는 인사동과 달리 완전히 한산했다 |
아주 어린 시절 나도 개울을 낀 이런 집에서 산 적 있다! |
이런 창고를 개조해서 공방과 기념품점으로 만들었다지 |
가게주인들은 물건 팔 생각이 없어보인다 -_-; |
작은 시가지 중심에 실개천 같은 저런 개울이 흐르고 골목골목 더 좁은 수로가 이어지는 곳도 있는데 야트막한 물속에 팔뚝보다 더 굵은 색색깔의 잉어가 돌아다닌다. 나는 인공색소로 물들인 것 같은 잉어를 좀 징그러워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신기해서 사진 찍으려다가 매번 놓쳤는데, 이 사진엔 운 좋게 난간 사이로 한 마리 보인다. ㅋㅋㅋ
무슨 환경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징그러워 보여도 저 잉어들이 생활오수에 포함되어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먹어치워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던데, 여기도 그러는 걸까 궁금해도 어디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했다.
맷돌로 갈아주는 커피집은 포기했어도 지도를 보니 일본 절이 눈에 띄어 얼른 왕비마마 모시고 찾아갔다. 대
대련사였을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비마마는 일본 절 부처님 앞에 백엔짜리 몇개 보시하고 싶어하셨는데, 드디어 원풀이했다. 온 동네가 그렇듯 여기도 꽤 오래된 느낌이던데 유독 절마당 한구석에 마련된 납골묘만 화려번쩍 으리으리했다.
지도에 표시된 걸 보니 절 앞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에 <대련사 대로>(절 이름 맞다고 치고) 적혀 있었다. 일본 사람도 뻥이 참 심하다는 걸 느껴야 했으니...
[#M_더보기|접기| ㅋㅋㅋㅋ 이런 골목에다 <대로>를 붙이다니...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딱 편할 정도의 폭이다.
수공예품을 전시도 하고 팔고 있는 가게 몇군데를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엄청난 가격대에 비해 물건은 어찌나 조악한 느낌인지... 사고싶은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러더라. 이런 데 비하면 우리나라 인사동이나 삼청동은 정말 세련되고 멋진 곳이라고. ㅋㅋ
모든 일정의 마지막은 이 거리 한 구석에 있는 떡 샤브샤브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사흘간 하도 음식에 실망을 했던 터라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맛있어서 감탄하며 먹었다. 열심히 외웠던 <오이시이데스네>를 쓸 수 있었던 유일한 음식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쓸 기회가 없었다. ㅋㅋ
랩이나 좀 벗겨내고 찍을 것을... 본디 음식 앞에두고 유별나게 사진찍어대는 인간들을 혐오해왔던 터라 민망하여 얼른 슬쩍 한장 찍고는 먹기에 바빴는데, 거의 다 먹고 나니 샤브샤브에 찹쌀떡을 넣어 끓여먹는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기록해둘만한 가치가 있을만큼 맛있어서 딱 하나 남았던 떡을 찍었다. 끓는 육수에 10초 정도만 넣으면 말랑말랑해지는데, 너무 오래 두면 흐물흐물 집을 수도 없게 녹아버린다.
우린 공항가느라 영업시작하자마자인 듯 미리 세팅된 자리에서 11시반부터 먹어댔는데, 꽤 유명한 집인 모양으로 12시가 넘자 일본인들이 바글바글 모여들더니 급기야 문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렸다. 식당 이름이나 알아올 것을... 잠든 도시인 것처럼 우리 일행 말고는 거의 사람도 보이지 않던 거리에서 유독 그 음식점만 사람들로 들끓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오찬이 흡족해서 그랬는지 검게 변한 하늘에선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떠나는 발걸음이 여유로워졌다. 이미 우산은 짐가방에 넣고 싸버려서 다시 꺼낼 수도 없는 일이고...
빗길을 달려 요나고 공항까지 한시간 반쯤 걸렸던가 모녀는 처음에만 아쉬운 마음에 창밖 풍경에 시선을 돌렸을 뿐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공항 규모가 하도 작아서 수속하는 승객들도 딱 우리가 탈 비행기 인원밖에 없었는데도 줄은 참 엄청 오래 섰던 것 같다. 그 시간에 비하면 돌아오는 비행시간 1시간 20분은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올 때와 똑같이 성의 없는 기내식을 물리치고 간만에 종이 신문 하나를 다 훑었더니 벌써 착륙준비를 하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던 파아란 한국 하늘. ^^*
그러나 저 구름을 뚫고 내려오니 이 땅도 잔뜩 흐렸었다.
그러고 보니 2주 전 일인데 두어달은 된 일처럼 아득하다. 그래도 전혀 짧지 않은 사흘이었다. 요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 두 가지.
1. 앞으로 또 모녀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냥 국내 여행지만 실실 다니는 게 낫겠다. 물론 그마저도 섣불리 떠날 마음은 먹기 어려울 것 같다. ㅠㅠ
2. 내 일본어 발음이 꽤 괜찮은가보다! 다음 일본여행을 위해 (행여나?!) 일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볼까나? ㅋㅋ 답례 인사 따위로 내가 쓴 말은 딱 두 가지, <오하이오 고자이마스>랑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였는데 내가 저 말을 하면 일본인인줄 착각하거나 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막 말을 더 붙였다. 예를 들어, 토장군 거리에서 앙증맞은 검정콩 붕어빵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을 보자 우리말로 "검정콩 드세요. 맛있어요!"라고 하면서 시식용 빵을 내밀었다. 계속 "검정콩!"을 외치는 아저씨에게 나는 예의상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하면서 하나 집었는데 그 아저씨가 막 당황하면서 "아하, 스미마생... 어쩌고 저쩌고... " 그러면서 빠르게 다시 일어로 지껄이는 거다. 놀라고 당황한 나는 고개만 꾸벅하고 얼른 도망쳤다. +_+
외국인이 우리말로 하는 "감사합니다"는 어쩐지 어색해서 금방 알지 않나? 흠...
아시아나 승무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내게 일어로 말을 걸지 않나... 하여간 이상하다!
다시 유럽에 갈 날을 꿈꾸며 사두고 구경만 하다가 요번에 짐가방에 매달고 간 이름표를 잃어버렸다. 흑...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둘쨋날 버스에서 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짐을 보니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딱 한번쓰고 이별이라니... 마구 던지고 험하게 굴리는 짐가방에 매다는 항공용 이름표 고리를 그따위로 약하게 디자인한 인간이 나쁘다! 그나마 사자마자 자랑용으로 찍어둔 이 사진이라도 있어서 다행인건가.. ㅠ.ㅠ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둘쨋날 버스에서 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짐을 보니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딱 한번쓰고 이별이라니... 마구 던지고 험하게 굴리는 짐가방에 매다는 항공용 이름표 고리를 그따위로 약하게 디자인한 인간이 나쁘다! 그나마 사자마자 자랑용으로 찍어둔 이 사진이라도 있어서 다행인건가.. ㅠ.ㅠ
Posted by 입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