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한번 더 온천욕을 즐길 사람을 위해 6시반부터 울린 모닝콜을 무시하고 우린 8시까지 내쳐 잤던 것 같다. 8시반에 아침 먹고 10시까지 모이라고 했던가... 암튼 아침형 인간인 친구 덕분에 상당히 여유롭게 아침 먹기 전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있었다.

 

 

이곳이 우리가 묵은 하나미즈키 료칸. 방 열쇠 나눠줄 때 보니깐 3층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앞에서 보니 2층이다. 뒤와 옆쪽으로 애매하게 건물이 더 연장되어 있는 듯.

 

일행 중에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온 모녀커플이 있었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어르신에겐 좀 고역이었겠으나 젊은 사람들은 이 정도 규모의 저렴한 료칸에 묵어도 정말 아무 문제 없겠다. 늙은이처럼 난 왜 점점 온천 료칸이 좋아지는 걸까나 ㅠ.ㅠ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골목엔 이따금씩 옛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다녔다. 남학생들은 진짜로 7, 80년대 우리가 입었던 깜장교복이고 여학생들은 세일러복.

대체 왜 죄다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한 온천 사진을 찍고 다니다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내가 자기들 사진을 찍는 줄 알았는지(사진기 방향으로 볼 때 절대로 카메라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비켜있는 게 아니었음;;) 그 자리에서 배시시 웃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뒤늦게라도 내가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담아왔다. 나 같으면 얼른 도망가고 말았을 텐데, 착하기도 하여라. 

 

 

 

 

 

 

 

 

 

 

 

 

한국인 관광객이 엄청 오는 곳인 듯.. 글씨체는 좀 이상할망정 표지판마다 한글이 있다. 이런 거 찍어오는 거 웃기다면서도 결국 찍어오고야 말았다는;;; 일본은 어디나 기복신앙의 공간이 정말 많은 듯. 온천 골목에도 떡하니 이런 집이 있었다. 절 같지도 않고 규모도 엄청 작던데;;; <연애성취> 글자만은 대번에 알아본 나는 이웃주민 지다니를 떠올렸다. 종이 하나 매다는 데 100엔(대략 천오백원)이라는데 저걸 매달아 걸면 정말 연애가 성취될까? ^^;;

 

 

료칸에서 먹은 이날의 아침식사. 먹을 거 별로 없는 호텔식 뷔페가 아니라서 좋았다. 저 뚜껑을 열면 달걀 프라이와 베이컨 한 조각이 지글지글 익고 있고, 하얀 스티로폼 통엔 낫또가 들었다. 청국장은 좋아하여도 내 낫또는 못 먹는 사람이건만, 친구가 화장실 성공을 기원하며 먹어야한다고 해서 꾸역꾸역 삼켰다. 김이 딱딱하고 창호지 같긴 했지만 그럭저럭 가벼운 조찬으로 딱이었다. 이래야 부담없이 간식을 사먹을 수 있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아침을 먹고 나서 가방을 싸가지고 내려온 우리는 근처 가마토 지옥을 둘러봤다. 분출되는 성분에 따라서 같은 집인데도 군데군데 온천 색깔이 막 다르고 온도가 800도라나 어쩧다나... 정말 지옥이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부글부글 끓는 온천수 나오는 샘을 한바퀴 돌아 구경한 뒤 온천 수증기로 찐 달걀 사먹고 족욕 한판하고 나왔다. 그런 온천 지옥 자산 가치가  엄청나다는데(몇백억이라고;;), 귀엽게 생긴 사장 아들이 담뱃불 붙여서 재 떨어뜨려가며 수증기 많이 나오는 모습 시연하고 있는 걸 보며, 우리가 중얼거렸다. 한국 같았으면 부자 사장 아들이 저런 시답잖은 안내 하고 있겠냐. 일본이니까 가능한 거지....  

두 사진이 같은 집이라는 것이 신기...

 

다음은 벳부의 마지막 코스 유노하나. 유황재배지라는데 아마 한 10분쯤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ㅋㅋㅋ

움집 같은데서 수분과 햇빛을 막아 유황결정을 오래오래 키우는 걸 '재배'라고 표현한 듯. 움막이 선사시대 움집같이 생긴 건 약간 관심을 끌었으나 꼬리꼬리한 유황냄새는 좀체 좋아할 수가 없다.  

흐리고 침침했던 전날 날씨와 달리 화창하고 푸르른 하늘과 눈부신 햇빛. 이런 가을날에야 어디를 데려가서 풀어놓아도 좋아라 했을 듯. ㅋ

 

이어지는 행선지는 유후인. 아기자기한 기념품점과 민예품 상점 늘어서 있는 거리라며 익히 들어본 적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뭐 내 생각엔 인사동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싶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민예품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낼 수 없고 싸구려 기념품은 조잡해! ㅋㅋㅋ

차라리 유후인 공부를 미리 했더라면 호숫가에 있다는 샤갈 박물관엘 가볼 것을.. 사진 찍으며 샤갈이라고 적힌 건물이 보이길래 카페인가보다 했더니만,나중에 여행책자를 보니 샤갈 작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물이 엄청 맑아서 뛰노는 물고기 비늘이 보인다는 호수는 전날 내린 비로 혼탁... 전날 비와서 혼탁하다는데 물은 또 왜 저리 적어보이는가? 

그래도 단풍 들었으면 호들갑 떨며 예뻐라 했겠다 중얼거리며 뒤돌아섰다. 호수로 이어지는 개울은 문득 선운사 올라가는 길을 연상시켰음. 여기도 단풍 들었으면 더 아름다웠겠지...

 

 

유후인의 특산 먹거리는 일본 전지역 출품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했다는 코로케. 역시나 가이드는 '너무' 맛있을 것을 기

대하지 말라고 귀띔했고,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였으나.... ㅋㅋㅋ 역시나 튀긴음식을 안좋아하는 우리에겐 심히 느끼했다. 고로케가 당연히 그렇지 뭘! 생선을 넣은 듯한 금상 고로케보다는 차라리 감자고로케가 난 더 나았던 듯.

 

사진은 금상 고로케였는지 감자 고로케였는지 모르겠다. 금방 튀겨내어 바삭바삭 따끈하긴 했는데;; 우린 이후 상점들은 보는둥 마는둥 '진한' 커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


유후인에서 내가 제일 신기하게 느꼈던 건 어느 집 담장에 철사로 만들어 세워놓은 자그마한 조형물들이었다. 아무렇게나 철사를 구부려놓은 것 같지만 죄다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새의 형상은 분명 예술가의 솜씨!

 

 

 

어렵사리 찾아낸 커피집에서 산 쓴 커피로 느글느글한 목구멍을 씻어내리며 버스에 오르고 보니 또 점심시간.

휴게소 같은 데 있는 대형 음식점에 주르륵 준비되어 있던 솥밥 우동정식을 먹었다.

튀김과 연어구이가 차갑기는 했으나 맛은 대체로 훌륭. 고로께는 언제 먹었냐 싶게 밥과 우동을 흡입했다. 앙증맞게 나온 사과랑 귤도 맛있었음.

 

이후 스케줄은 내가 전체 일정 중에서 가장 관심이 없었던 아소산, 활화산 분화구 구경이었다. 그런데 아싸~! 날씨는 쾌청해도 바람이 거세 '로프웨이'(케이블카를 이렇게 부르는 듯;) 운행이 중단되었단다. 처음 나눠준 일정 안내에도 날씨에 따라 분화구를 못 보게 되면 화산 박물관으로 대체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가이드 말이 말이 화산박물관이지 사진 몇장 보고 오래 된 영상물 보는 게 전부이니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 말이! 해서 화산 사진은 로프웨이 승강장 건물에서 대강 보고, 그곳 특산물이라는 요구르트 한 병씩 마신 뒤 후쿠오카로 향했다. 심지어 점심 때 먹은 것 같은 저녁을 또 단체로 먹느니 박물관 입장료랑 저녁값이랑 챙겨서 각자 돌려줄 터이니 자유로이 사먹으라는 가이드의 제안. 우리야 당연히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별 불만이 없었던 이유는 가이드가 융통성을 많이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버스 타고 이동거리를 최소로 하려고 일정 순서도 좀 바꾸고 보나마나 한 전망대 관람 같은 건 하나 쯤 슬쩍 빼먹고...  워낙에도 마지막날은 자유여행이었지만 사흘 간 절반쯤이 자유롭고 보니 우리에겐 더욱 금상첨화였다. 

 

결국 우리는 늦은 오후에 후쿠오카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나서부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애당초 셋이 가려던 여행이라 숙소 때문에 여행사 직원과 여러번 통화를 해야했는데, 우린 방이 좁아도 당연히 셋이 묵겠다고 우겼으나 매번 불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었다. 트윈이 아니라 세미더블이 어떻고 저떻고....

암튼 결국 둘이 갔으니 문제는 해결됐지만, 호텔방에 올라가 본 우리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비즈니스호텔이라 방이 정말 비좁아서 트윈 침대를 들여놓을 데가 아예 없어! ㅋㅋㅋ

 

치산호텔 방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등뒤에 출입문이 있고 침대 발치에 벽처럼 있는 곳이 화장실. 욕조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야할 정도로 귀여운 크기에 변기에 앉으면 거의 문에 무릎이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엄청 깨끗해서 하룻밤 자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음.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고 우리는 또 한 번 중얼거렸다. 다만...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 호텔임이 좀;; ㅋ

그러고 보니 일본은 대체로 와이파이에 인색했다. 로밍은 해갔어도 데이터는 차단해뒀던 터라 와이파이 되는 데서만 신문물 검색이 가능했는데 도심 호텔에서도 와이파이가 안될 줄이야! 벳부 료칸에서도 와이파이 패스워드 알려주던데 쳇!

그래도 나에겐 제법 실한 눈썰미와 방향감각이 있겠다. 두려움에 떠는 친구를 호기롭게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포장마차촌에서 본토 오뎅도 먹게해주마.

 

강을 따라 저녁때만 나타난다는 포장마차촌을 향해 곧장 강을 건너니 벌써 어스름. 

 

 서서히 장사를 시작하려는 포장마차가 보이긴 했으나 본격 영업은 해가 져야 할 모양이라 우린 계속 강을 따라 걷다가 월요일이라 문을 닫은 뭔가 문화재스러운 건물도 만나기도 하고, 다리를 두어번 건너 공원 벤치에 한참 앉았다가 돌아섰다.

 

 

 

 

 

호텔 바로 옆부터 '캐널시티'라고 어마어마한 쇼핑몰이 있던데 후쿠오카는 운하의 도시인 듯했다. 넓지 않은 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세 갈래였던가?) 도심에서 다리를 건너 조금 가면 또 다시 강줄기가 나왔다. 차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사람들만 건너다니는 다리가 있고... 다음날까지 다리를 몇개나 건너다녔는지 셀 수도 없다.

 

엄청 큰 물고기가 가끔 펄쩍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는 후쿠오카의 강에선 그런데 한강처럼 낚시질 하는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다. 낚시는 금지인가? 하기야 한강에서도 낚시는 원래 금지됐는데 사람들이 몰래몰래 하는 거라고 들은 것도 같다. ^^;

 

강변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오다 드디어 일본에선 드물다는 포장마차 촌에서 오뎅을 사먹기는 했는데, 맛은 뭐 그저 그랬다. 내 입맛이 워낙 서민적이다보니 오뎅도 좀 구수하고 팅팅 불은 걸 선호하는데 (반면에 친구는 쫄깃한 걸 선호;;) 국물이 너무 짜고 달아서 새삼 일본이구나 싶었음.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포장마차 안주는 비싸니까 조심하라는 가이드 말은 이번에도 틀렸어! 고기 꼬치 파는 집은 비싼 집도 있었지만 우리가 먹은 오뎅집은 둘이 먹고 450엔. 한국 떡볶이 포장마차랑 비슷하구만 뭘;; 겁을 주고 그러시는지.

 

암튼 요기를 하긴 했어도 저녁식사로는 제대로 된 일본 라멘을 먹기로 결심했던 터라 캐널 시티에 모여 있다는 유명한 라면집을 찾아 올라갔다. 입구에서 자동 주문기로 먼저 돈을 내고 주문서를 뽑아야하는 데 그걸 몰라 어리바리 테이블에 앉았다가 다시 나와 시킨 라면은 그나마 제일 맵다는 것이었으나... ㅋㅋ 친구는 라면 면발이 아무리 생면이라도 꼬불거리지 않는 건 반칙이라며 느끼함에 괴로워했다. 돼지뼈 국물 라멘에 뭘 기대하셨나요 ㅎㅎㅎ

 

교자랑 세트로 나오는 걸 시켰으니 망정이지 양이 하도 적어 미리 오뎅 안 먹었으면 배고파서 화났을지도...

 

 

암튼 시내 거리를 쏘다니다 엄청 비싼 과일집에서 발견한 네모난 수박  구경과 편의점에서 일본맥주 쇼핑을 끝으로 둘쨋날도 끝이 났다. 

 

나야 가끔씩 버스타고 나다니기나 하지, 새벽부터 종일 12시간(동부와의 시차 때문에 6시에 출근한단다 헐;;;) 근무에 시달리는 은행 간부인 친구는 여행 이틀만에 고백했다. 석달치 걸을 거 여기 와서 다 걸은 것 같다고. 12센티미터나 되는 통굽 슬리퍼를 용감하게 신고 일본 여행 오겠다는 걸(인천공항엔 맨발에 그걸 신고 내렸었다)  내가 극구 말려 운동화를 신게 했었는데  운동화 안 신었음 어쩔 뻔 했누 ㅎㅎㅎ

 

(2012. 10. 15)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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