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떠나 어제 무사히 돌아왔음. 동생들은 사흘이 후딱 갔다면서 벌써 와서 아쉽겠다고 위로했지만, 모녀의 2박3일은 어찌나 길었는지 원래 예정대로 3박4일이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바람과 달리 도착하는 날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바람에 소망하던 꽃비는커녕 육중한 노친네 부축하고 우산 받쳐들고 다니느라 무수리는 완전 녹초 상태로 몸살 직전까지 빌빌대야 했다. 게다가 어제 인천공항에 내리니 갑자기 겨울 날씨! 삭신이 쑤셔서 어젯밤부터 오늘오전까지 두 모녀는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워 끙끙 앓았음. ㅠ.ㅠ
동해바다에 면한 곳이라 느낌이 속초나 강릉 즈음으로 여겨지는 톳토리현, 시마네현 일부를 보고 온 주제에 일본이 어쩌니 저쩌니 말하는 건 가당찮은 짓이겠지만 어쨌거나, 처음 가본 일본에 대한 느낌을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 생각보다 벚꽃이 별로 없더라. 끝물이기도 하고 비가 와서 많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아직 벚꽃축제기간이라는데 공원에 서 있는 벚나무가 그리 많지도 않았음. 진해나 여의도처럼 일본에도 일부 대도시에만 대규모로 벚꽃길이 조성되는 건가?
- 화산지역이라 당연하겠지만, 일본 온천물 우리나라 온천물보다 좋더라. 온천욕 별로 안 좋아해서 효능 따위 잘 모르는 편인데, 머리감고 나서 곧장 매끈거리는 머릿결이 느껴졌음. 떠나는 날 아침에 한번 더 담그지 못하고 돌아온 걸 모녀 둘 다 후회스러워했다. ㅋ (나이가 들면서 온천이 좋아지는 걸지도.. -_-;;)
- 다다미방으로 된 온천료칸 체험, 은근 매력있다. 다다미를 해마다 바꾸는지 어쩐지 방에 들어가자마자 싱그러운 돗자리 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풍겼고, 저녁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에 다기 놓여있던 테이블 치우고 이불 깔아놓는 서비스 마음에 들었음.
-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음식맛과 염도에 차이가 있으니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어쨌거나 이번 여행의 현지음식은 절반 정도 내 입에 맞지 않았다. 모험정신 강하고 식탐 많은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나. 일행 중엔 컵라면과 과자부스러기로 거의 연명한 이도 있었다. ㅋ
- 귀엽고 아담한 경차가 정말 많더라. 경차 비율이 30퍼센트가 넘는다는 말만 들을 때랑 직접 보는 거랑 역시 느낌이 다르다.
- 전통과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전국 어딜 가나 도시든 시골이든 볼썽사나운 아파트와 시멘트 양옥집 투성이인 이 나라와 달리, 오래된 일본집스러운 느낌의 나무로 된 집들이 참 많았다.
본격후기는 슬슬 밀린 일 눈치 봐가면서 올리도록 하겠음. 여행은 늘 좋지만, 집에 돌아오는 건 더 좋다. 예전엔 판에 박힌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싫어서 항상 여행 끄트머리에 느끼는 아쉬움이 몹시 컸던 것 같은데, 이번엔 진심으로 귀가를 기다렸다. 오죽하면 제목이 <살아돌아옴>이겠나. 집에 와서 기쁘다. ㅋ
어쩐지 아쉬워서 두고두고 조금씩 후기를 올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도 같고 기억력도 가물거려 나중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마무리를 해야겠다.
2008. 8. 1.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식사용으로 사놓았던 소박한 양식(바나나, 사발면, 포장용기 밥 따위)들은 거의 떨어져 우유와 주스 정도만 남았지만 그나마도 모두 해치우고 가야한다는 일념에 모두들 우유와 주스를 두잔씩은 벌컥벌컥 마셔댄 것 같다. 호화로운 나인브릿지 빌라와는 일찌감치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는데, 밤중 귀가길에 앞좌석에 앉았던 잇점을 살려 얼핏 풀 뜯어먹는 노루를 구경한 벨로와 키드님과 달리 당시 뒷자리에 앉았던 지다님과 나는 결국 한라산 중턱에 사는 노루를 볼 기회가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숙소 주변을 산책했더라면 또 모르겠는데, 잠자리가 설어 토끼잠에 시달리는 데다 아침잠까지 많은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 수는 없었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마지막 날엔 다들 꼭 가보고 싶었다고 손꼽았던 김영갑님의 두모악 갤러리를 먼저 찾았다.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 사진만 찍다가 병든 몸으로도 제주도에 남아 그곳에 묻혔다는 사진작가의 일대기가 아니더라도 길쭉하게 제주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참 아름답고 정겨워서 슬펐다. 접사는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서 이 정도면 접사일까 아닐까 고민하면서 굳이 서툰 솜씨로 찍어본 사진들은 그분 작품에 대한 훼손일 것도 같아서 올리지 않기로 했다. 마치 아프리카 대초원의 바람을 담은 듯한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처음엔 갤러리 바깥에 조성된 정원에 옹기종기 장식되어 있는 작은 조각들도 혹시나 사진작가의 작품일까 열심히 사진에 담았는데 어느 여성화가의 작품이라는 듯하여 맥이 좀 풀렸다. 어쨌든 현무암 하나하나를 쌓아올리고 곳곳에 나무를 심어 가꾼 정성은 본인의 것이라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뒷마당에 줄지어 놓인 작은 돌 연못도 예쁘다.
공항 시간에 맞춰 한 군데 더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했던 우유부단한 일행들은 갤러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물 자연휴양림을 선택했다. 산굼부리와 휴양림 가운데 고르라고 칼자루를 지다님께 쥐어주었는데 단칼에 "휴양림이요!"라고 대답해주어서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 산굼부리는 산등성이 중간쯤에 형성된 분화구라 가을엔 단풍과 억새밭이 장관이고, 봄에도 꽃구경이 흥미롭지만 한여름 뙤약볕에 그늘 하나 없는 그곳으로 올라가려면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휴양림에 가기 전에 먼저 점심을 떼우기로 했던 우리는 전날 우도 정자 옆 간이 식당에서 본 열무국수를 계속 부르짖으며 비빔밥 같은 것도 좋지만 열무국수를 먹고싶다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주워섬겼는데, 토룡마을을 이끄는 뛰어난 영도력과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눈썰미마저 빠른 키드님이 전격적으로 국수전문점을 발견하여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시원한 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콩국수는 비싼 흰콩을 아끼느라 땅콩을 너무 많이 넣은 맛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훌륭했고 열무국수 또한 담백하고 시원하여, 더불어 시켰던 해물파전과 먹기엔 금상첨화였는데 어찌나 양이 많던지 모두들 국수와 파전을 조금씩 남기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먹은 국수와 파전까지... 이번 여행의 먹거리는 <제주도에선 맛난 음식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예전 제주도 여행에선 친한 현지인이 권해준 식당이 아닌 한, 늘 먹고도 별 맛도 없으면서 터무니 없이 바가지 쓴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는데, 제주도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정비를 했다더니 먹거리 문화까지 개발된 것 같아 흐뭇했다.
절물 휴양림은 역시 지난번 막내동생의 여행담을 주워듣고 알게 되어 처음 가본 것인데, 손바닥만한 공간을 휴양림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입장료를 받는 기분 나쁜 과거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퍽 괜찮은 곳이었다.
꽤 넓은 중앙로엔 그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골진 나무판자가 정갈하게 깔린 오른쪽 숲길로 무조건 접어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오로지 우리의 목표는 그늘진 평상을 찾아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드러누워 산림욕과 낮잠을 즐기는 것이었다. ^^ 그렇게 평상에 드러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어찌나 맑고 파랗던지...
평상에 드러누워 이 사진을 찍을 땐 드러난 하늘 모양이 나비 같다고 생각하며 자랑삼아 찍은 것인데 와서 보니 막상 그 느낌이 별로 없다. 솜씨 탓도 있겠지만, 특히 자연은 마음에 담기는 것처럼 푸근한 모습으로 사진에 담겨주질 않는 듯.
숲속에선 피톤치드가 나오네, 음이온이 발생하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야 없는 법인데 이곳 평상에 드러누웠을 땐 확 트인 공간에서 절대로 잠들지 못하는 까칠한 인간답지 않게 나도 까무룩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숲의 심신 안정 효과가 그만큼 탁월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
아쉽게 휴양림을 떠난 우리는 공항까지 21분 걸린다는 네비게이션의 말을 믿고 시간을 안배했건만 마지막에 연료탱크를 꽉 채워 렌터카를 돌려줘야하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마지막 주유소를 지나치는 바람에 다시 공항에서 빠져나와 뺑뺑도는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무사히 차를 넘길 수 있었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건 제주도 휘발유 값이 서울보다 훨씬 싸다는 것! 서울에선 2천원이 넘는데, 제주도는 리터당 겨우 1810원! 연료통을 가득 채우면 거의 만원 가까이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졌다. +_+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국내여행이지만 공항에서 면세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듯한데 한도액이 40만원이다보니 아주 값비싼 명품 가방같은 것들은 있지도 않고 주로 화장품과 선글라스 정도인데도 사람들이 완전 미친듯이 쇼핑을 하더군. 나도 화장품을 사기는 했지만 대단히 정신없는 도깨비 시장 같은 분위기라 오래 구경하진 못할 듯했다.
다들 몹시 피곤하여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들 꾸벅꾸벅 조는 분위기였는데, 돌아오는 한성항공은 착륙을 앞두고 어찌나 불안하게 흔들거리는지 뱃속과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고 설상가상 통로 반대편에 앉은 몰상식한 인간이 계속 휴대전화를 끄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어 <다이하드>에서 몰래 기내에서 전화질하는 기자에게 주먹질을 했던 브루스 윌리스 부인의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아는 여자>에서 동치성 부모님이 기내에서 동치성이랑 통화하다 꽝 추락사하는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물론... 김포에 무사히 착륙했으니 이렇게 후기를 올리고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내 몰상식 비율을 봐서라도 비행기 같은데선 아예 휴대폰 전파가 안잡히게 해야하지 않을까 공연히 부르르 주먹쥐고 떨었었다. -_-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비행기 이착륙할 때 매번 불안하지만, <그래도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보상금도 많이 나오잖아>라고 위로하며 자신을 달랬었는데 저가항공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쩐지 보상금도 적게 나올 것 같아 앞으로는 더더욱 좀 덜 흔들리고 안전한(확실하진 않지만;;)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했음. ㅋㅋ
셋쨋날(2008. 7. 31)은 드디어 내가 우도에 발을 디디는 날이었기에 더욱 설렜다. 스물한 살 이후 제주도엘 꽤 여러번 가봤지만 우도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 수학여행이나 패키지 여행상품엔 우도행이 포함되지 않았었고 나중에 렌터카를 빌려 제주도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됐을 땐 늘 날씨가 나빠 배를 탈 수 없거나 시간이 촉박해 매번 우도를 포기해야 했는데 우도에 하필 국내 유일의 산호해변이 있다는 말에 더욱 동경을 키웠던 것 같다.
찬란하다 못해 검은 머리가 지글지글 타버릴 것 같은 강렬한 태양과 새파란 하늘 아래 우도행 배는 더욱 푸른 바닷물을 헤치고 출발했고, 방파제 위에 마주보며 서 있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성산항을 빠져나갔다.
돌아보니, 일년 중에 말갛게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 절반도 안된다는 한라산이 저 멀리서 우릴 배웅하듯 구름을 이고 서 있었다.
성산항에서 빤히 건네다보이는 우도는 어느새 우리 눈앞에 나타났고 역시나 제일 먼저 빨간 등대가 눈에들어왔다.
뒤이어 우릴 반기는 건 검은 바위 해안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갈매기들. 서해안 갈매기는 새우깡에 목을 매고 기를 쓰며 달려드는 데 반해 제주도 갈매기들은 인간들이 귀찮다는 듯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
나름 서둘러 나선다고 생각했지만 우도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2시. 가장 뜨겁고 더운 시간에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돌아야 한다니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넉넉하게 마지막 뱃시간에 맞춰 자전거를 빌린 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전거 초보자가 어련하겠나. 출발 직후 처음 만난 번잡한 삼거리에서 다가오는 트럭을 피하려던 나는 그만 어이없게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넘어져 시멘트 차단벽에 무릎을 갈았다. 나중에 보니 바지에도 살짝 구멍이 났더군. -_-;; 그나마도 이후엔 피를 보는 사고는 없어 다행이었다.
처음 자전거를 세운 곳은 기대했던 대로, 하얀 산호가 깔린 해변이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볼 수 있다던 서빈백사 해수욕장. 봄에 동생이 사진에 담아왔을 때만 해도 날이 흐리긴 했어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지난 봄 우도에 간 지우
미세하게 부서진 돌멩이처럼 새하얗고 동글동글한 산호 백사장은 똑같았으나 사람들이 들어가 휘저어 놓은 바다는 해초들이 떠올라 에메랄드빛은 커녕 뿌연 미역국 같았다. +_+
실망을 애써 감추고 다시 해안도로로 페달을 밟으니 드디어 백사장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옥빛 바다를 발견할 수 있었고
돌담 앞에서 풀을 뜯고 있는 예쁜 어미말과 새끼말도 만났다. ^^;
지다님과 벨로가 실제로 말을 타고 작은 마당을 한바퀴 돌며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벌써부터 기진맥진해진 나는 그늘에서 기력을 회복한 뒤, 근처 정자에서 전날 내기했던 대로 우도반점에서 자장면을 배달해 먹고는 잠시 행복해했으나 4시 넘어 늦은 점심을 먹고난 뒤의 체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다행히 우도의 절반은 돌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햇빛은 숨막히게 뜨겁고 어느덧 맞바람까지 치고 있는데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 계속해서 일행들보다 최소 50미터는 뒤쳐져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막판 고비인 언덕이 시작되었으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전망대가 있을 법한 우도 꼭대기의 등대 주변에서 잠시 쉴 때는 거의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득하고 혼미했던 나의 정신이 반영된 듯 그 때 찍은 사진은 이렇게 뿌옇다. ㅋㅋ ^^
게다가 이미 상당히 얼이 빠져 헉헉대던 나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선 난간 기둥에 걸어두었던 가방을 깜박 잊었다가 나중에 자전거 세워둔 곳까지 가서야 비로소 기억해내고 후다닥 다시 가져오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니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알만하다.
우도를 자전거로 1시간이면 돌 수 있다는 말은 확실히 거짓말이다. 우리는 서빈백사 해수욕장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는데 나중의 언덕 고비를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반대방향으로 돌았더라면 초반부라 힘이 더 있기는 했겠지만 더 오랜 시간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야했을 터. 중간에 자장면을 배달시켜 한참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고 중간중간 쉰 시간까지 합해서 꼬박 3시간 반이 걸렸는데, 아마 마지막 배를 놓쳐선 안되며 5시반까지 자전거를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다면 나 혼자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아니, 앞으로 다시는 우도를 자전거로 돌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다. ㅠ.ㅠ 지난 봄 자동차로 우도를 돌아보았던 막내동생은 내가 이번에 바구니 달린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일주했다고 하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우도 자전거일주는 남들에겐 별것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겐 철인3종경기 못지 않은 레이스였음을 고백한다. 마지막 언덕을 오를 땐 첫날 느루를 타고 나갔다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어지러움증도 느껴졌으므로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사례를 할 터이니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어달라고 부탁을 할까, 트럭을 불러서 자전거를 보낸 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갈까, 일행들은 먼저 마지막 배로 돌려보낸 뒤 나는 우도에 남아 어디서든 일박을 하고 다음날 합류할까,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을 다 했었지만, 결국엔 무거운 몸과 자전거를 이끌고 마지막 언덕을 올랐고 생존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
다들 언덕이 완만해지자 자전거에 올라 타고 가는데도 끝까지 질질 끌고 오르다 드디어 나도 자전거에 올랐으나 지나가는 버스에 놀라 또 다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맨 직후, 그늘에서 불쌍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일행과 만난 기념으로 자청해서 찍어달라고 한 사진이다. 몹시 헤벌쭉 웃고 있기는 한데 짐작컨대 아직 언덕이 끝난 게 아니어서 빠져나간 얼이 되돌아오지 않은 탓으로 여겨진다. ㅋㅋ 그늘과 선글라스와 모자로 가려져 이 정도 공개해서는 아무도 못알아볼 것이라 생각되긴 하지만 민망해지면 나중에 삭제할지도 모르겠다. ^^;
이후 우도 항에 도착해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배에 올라 성산항으로 돌아오던 과정은 과음 후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단편적이다. 선실에서 다짜고짜 드러누워 늘어져 있던 모습을 벨로가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지 않았다면 내 몰골이 얼마나 흉측했는지 몰랐을 듯.
성산항에서 가까운 섭지코지는 일몰이 가까운 시간에 가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유명한 건축물을 보겠다며 일행들은 검은 오솔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우도 이후 체력이 고갈된 나는 뒤에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울타리 난간에 앉았다가 옆을 돌아보니 섭지코지의 또 다른 등대와 전망대
해는 시나브로 기울어가는데 일행들은 돌아올 생각을 않고...
(역광이라 실제보다 어둡게 나와서 그렇지 아직 꽤나 밝았고, 사실은 일행들도 금세 돌아왔음 ^^;;)
섭지코지에서 일정을 마무리한 우리는 9시까지 운영한다는 콘도 식당에서 <활어해물탕과 가마솥밥>을 먹을 일념에 열심히 달려왔으나 너무 늦어 방에서 사발면, 사발우동 따위로 저녁을 떼워야했지만 별로 배고픈 줄도 모르는 피로 뒤끝이라선지 그것 또한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일행들은 또 다시 마지막 밤까지 포켓볼 열정을 불태우러 나갔지만 나는 홀로 남아 소파에서 뒹굴며 맥주를 홀짝였는데, 당연히 쏟아질 줄 알았던 잠은 놀랍게도 피로에 지친 마지막 밤까지 나를 배신하였으니... 오후 늦게 우도에서 원샷했던 커피 탓을 해보아도 이미 후회하기엔 늦은 뒤였다. 쓸데없이 예민한 잠버릇은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는지 원... 암튼 그렇게 제주도의 마지막밤은 광란의 음주나 유희 없이 소근소근 가벼운 맥주 한잔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사실 제주도로 떠나기 전에 나에겐 끝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원서 읽고 리뷰 쓰기를 죽도록 싫어하긴 하지만, 지난 원고를 워낙 늦게 넘겼던 터라 벌 서는 셈치고 출판사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넉넉하게 2, 3주 동안 소설을 한 권 읽고 검토서를 보내달라는 약속날짜가 바로 제주도 출발 직전의 월요일. 그러나 또 내가 누군가. 원고 마감일에 관한 한 이미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녀가 된 지 오래. 제주도 가기 전에만 보내면 되겠거니 차일피일 미루며 영화보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사먹으러 다니며 실컷 놀다간 또 다른 책 역자후기 때문에 일주일 또 낑낑댔으니, 출발일 전날 새벽 3시 반까지 검토서를 정리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책을 싸들고 가자 결심하고 말았다.
겨우 4시간 자고 일어나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고 밤중에 일행들과 맥주도 한 잔 걸친 셈치고는 새벽까지 꽤나 양호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역시 습성을 속속들이 잘 모르는 일행들과의 여행 때문에 소심한 인간답게 퍽 긴장을 했던 모양인데다, 더 늦기 전에 검토서를 마무리하고 남은 기간 부담없이 놀아야겠다는 욕망이 작용한 듯했다. 해서 모두들 잠든 새벽 (실은 닌텐도 동물의 숲에 심취한 벨로가 게임하는 소리가 딩동딩동 꽤나 오래까지 아어지긴 했지만;;) 게으름녀의 여행 첫날밤은 일과 함께 3시 반이 넘도록 이어졌다. ㅠ.ㅠ 원래 계획은 일을 끝내는 대로 클럽하우스로 걸어가서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컴퓨터로 문서를 정리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에 숲속으로 난 꽤 먼 오솔길을 홀로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해서 또 다시 눈을 붙였다 떴다 4시간쯤 토끼잠을 잔 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는 일행들이 일어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올 심보로 몰래 카드 키를 들고 컴퓨터로 향했으나...
애당초 검토서가 늦어졌던 이유, 출간을 권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론을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으니 타이핑을 다 끝낸 뒤에도, 결정적인 검토 소견을 마무리하지 못해 전전긍긍 급기야 일행들이 모두들 잠에서 깨어나 외출준비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놀 때까지 2시간을 넘기고서야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기상청의 날씨예보 어긋나기는 제주도에서도 어김이 없었고 오전오후 비올 확률이 각각 60%나 된다는 예보와 달리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에 우린 셋쨋날로 미뤘던 해수욕을 전격적으로 당겨 즐기기로 결정. 미리 수영복을 챙겨입고 놀기 가장 좋다고 벨로가 추천한 협재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은 올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했고, 공기가 맑기 때문인지 제주도 하늘의 구름은 늘 손을 뻗으면 잡힐듯 낮게 깔려 바람따라 떠돌았다.
허나.. 이틀 내리 수면부족에 시달린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리 없으니, 놀랍게도 협재 해수욕장에선 사진을 단 한장도 찍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ㅠ.ㅠ 완만하고 고운 모래의 백사장과 옥빛 바다, 그 주변에 어우러진 검은 현무암의 해안,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초록과 연둣빛 비양도의 모습을 남겼어야 하는 건데... 미치도록 뜨거운 햇살 아래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나는 가방도 지키고 뙤약볕 아래 우산을 쓰고서라도 어떻게든 눈을 붙여볼 요량으로 홀로 남았으나 쓸데 없이 예민한 인간이 그런 해변에서 잠들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잘못이지. 더위에 헐떡이다 잠시 바다에 몸을 식혔다가 또 금세 돌아와 망연자실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벨로는 <애들 노는 거 지키는 엄마 같다>며 정곡을 찔렀다. ^^; 실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심 나이가 들면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노는 재미도 줄어드는 것인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날은 암튼 덥고 피곤하고 가방과 돗자리를 지키는 책임감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 마냥 심신이 늘어졌던 것 같다. 암튼 경사가 완만해서 서해안처럼 가도가도 물이 얕고 깨끗하고 파도도 적당히 치는 협재 해수욕장은 가족단위로 파도타기에 아주 좋은 해변이었다. 과거에 함덕해수욕장과 하얏트 호텔쪽 중문 해수욕장에서 놀아본 적이 있었는데 중문은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굵어 발바닥이 좀 아팠던 반면, 함덕 해수욕장은 모래가 거의 밀가루 수준으로 곱고 백사장이 넓어 흡족했었는데 제주도에서 해수욕하려면 협재, 함덕처럼 북쪽 해변이 놀기 좋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오후들어 백사장에서 시켜먹은 '주황색' 치킨 한 마리와 미리 싸 간 천도복숭아로 점심을 떼운 우리는 주섬주섬 해수욕을 마무리하고 차디찬 물로 바닷물과 모래만 대강 닦은 뒤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선 다들 최대한 여유롭고 헐렁한 일정을 목표로 삼았던 데다 대체로 무얼 하든 다 좋은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선보였으니, 매번 가장 어려운 점은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었던 듯. ^^
바닷가에 가서는 반드시 해산물과 회를 먹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엔 회를 못 먹는 일행이 둘이나 되었으므로, 거나한 횟집을 가는 것은 당연히 횡포였기에 비교적 저렴하고 푸짐한 동복리 해녀 잠수촌의 포장마차 같은 간이 횟집엘 가자고 내가 주장했는데 그리도 푸짐하던 해녀 할머니들의 인심도 성수기 관광철엔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걸 실감하여 마음이 상했다. 4년 전 봄에 갔을 땐 냉장고 대신 바닷가에 담가 놓았던 그물에서 건져올린 해삼과 멍게를 푸짐하게 잘라주고도 무조건 한 접시에 만원이었으며, 삶은 문어와 구운 석화도 대단히 넉넉했었는데 이번엔 아예 석화도 없고 접시는 하나같이 바닥에 깔린 정도. 내 마음도 상했지만, 굳이 해산물 싸게 먹자고 거기까지 데려간 일행들에게 미안해서 더 화가 났다. -_-;;
이어 보성 녹차밭보다 훨씬 더 넓고 볼만하다는 지인의 귀띔을 들었던 터라 오설록 녹차박물관에 가자는 내 의견에 다들 그러마고 하긴 했는데, 예상과 달리 입장료가 없는 건 좋았고 뜻밖에 10년만에 대학동창을 만나기도 했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겉에서만 바라본 제주 녹차밭은 큰 감흥이 없었다. 골이 좁은 밭고랑으로 일일이 사람들이 들어가 차잎을 따는 광경을 상상만해도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차 농사의 어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주도의 비경은 역시 바다와 오름이라는 사실만 백만번 실감했다.
퍽이나 부실했던 둘쨋날의 먹거리에 그나마 식탐의 기쁨을 준 건 저녁에 찾아간 유리네 식당의 갈치조림. 늘 관광버스 줄지어 서 있고 왁자지껄 요란하여 순번을 기다리기 일쑤인 그곳에서 우린 운 좋게 가자마자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고 3만5천원에서 전격적으로 값을 내려 3만원(공기밥 값은 따로^^)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으며 다들 공기밥을 후딱 비웠다. 딸려나온 게장과 다른 반찬들도 괜찮았는데, 시끄럽고 번잡하긴 해도 제주도 갈치조림은 역시 유리네만큼 맛있는 데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갑자기 불붙은 포켓볼 열정... 운동신경 젬병인데다 기억력도 나쁜 나는 소싯적에 시도해 본 당구와 포켓볼을 평생 멀리하며 살리라 다짐했건만 콘도에 마련된 당구 테이블을 발견한 일행들은 전의를 불태웠고... 난생 처음 쳐본다면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키드님과 지다님, 그리고 다른 데 가서는 형편없는 실력이라지만 우리들에겐 완전고수로 보였던 벨로의 내기 본능에 편승하여 얼떨결에 시작된 2:2 게임에서 막상막하의 막당구 내공을 보이던 라니와 지다의 하수팀은 결국 우도반점 자장면 내기에서 분패하고야 말았다. 팔다리가 짧은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느라 낑낑거린 나는 이미 두번째 게임 즈음에서 지루해져 하기 싫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낮에 해수욕장에서 비교되었던 파도타기의 열정과 더불어 나의 나이듦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ㅜ.ㅡ
어쨌거나 둘쨋날도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벌써 이틀이 지났다는 사실에 마구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2008. 7. 30)
나는 웬만한 동남아시아의 휴양지보다 제주도가 백번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 가격이면 차라리 외국을 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 가격이면 차라리 제주도를 가지!>라고 추천한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맑은 옥빛 바다와 절경이야 비슷하다 쳐도, 더 가깝지, 훨씬 더 깨끗하지, 더 안전하지, 말 잘 통하지, 직접 운전해 돌아다니든 택시를 부르든 싼값에 맛난 음식 골라먹을 수 있지, <기브 미 원 달라>라고 외치며 쫓아다니는 눈동자 풀린 아이들이나 기념품을 팔려는 가난한 현지인들을 감당할 필요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가깝고 가기 쉽지만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라는(대학 수학여행 때 목포에서 배 타고 한 번 가봤는데 ㅠ.ㅠ 8시간이던가 끔찍이도 오래 걸렸던 뱃길로는 두번 다시 제주도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어쩐지 제주도는 내게 늘 동경과 그리움의 장소이건만 이번엔 무려 4년만에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난생 처음 타보는 한성항공은 저가 항공사답게 작고 허름한 비행기로 (내가 싫어하는)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만끽하게 해주었으나, 기내에서 물 한잔도 안 주더라는 '카더라' 통신과는 달리 주스와 생수는 한잔씩 마시게 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큰 비행기는 게이트에서 곧장 탈 수 있지만 작은 비행기에 배정되었을 땐 공항내 버스를 타고 활주로까지 친히 나가야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게이트에서 다시 버스로 비행기까지 가야하는 건 그러려니 했으나 문제는 비행시간. 예정 시간은 1시간 5분이었지만, 갈 때 올 때 실제 걸린 시간은 각각 1시간 반이었다. -_-;;
째뜬 벨로의 신분증 사건과 예약없이 극성수기에 렌터카 확보하기 과정에서 식겁하는 순간이 있기는 했으나 모두 극적으로 해결되어 꿈결같은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달쯤 전부터 이번 제주도 여행을 꿈꾸며 펼쳤던 로망엔 '미니쿠퍼'를 렌트해서 제주 해안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가격도 가격이려니와(미니쿠퍼 따위 수입차의 렌트비는 우리가 가까스로 구했던 아반떼의 3-4배 가격이었던듯) <예약 없이 렌트카 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상황에서 가격도 연비도 훌륭한 작은 차를 완전 새것으로 몰고 다녔으니 아무래도 우리가 운이 대단히 좋았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묵은 숙소는 제주도 최고 시설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세계 골프장 순위 100위권에도 든다는 나인브릿지의 콘도가 아니던가!
도착한 날 오락가락하던 비에 촉촉히 젖은 진입로
숙소 현관을 열고 나오면 바로 이런 숲이다. 얼마 전 번역을 끝낸 소설에선 이런 삼나무 숲에서 늑대와 곰이 출몰하는데;; ^^
제주도 이마트에서 잔뜩 본 장거리를 숙소에 떨궈두고 나온 우리가 처음 고민 끝에 택한 행선지는 중문. 롯데호텔의 인공적인 리조트와 전망대를 시큰둥하게 지나 중문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지만 엄청난 계단의 압박에 모두들 굴복하는 분위기여서 우린 그냥 절벽 꼭대기에서 장엄한 바다와 파도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흐린날 바라보는 수평선의 묘미는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경계가 흐려져 온통 하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지만, 이날은 그렇게 심하게 흐리지 않았다
파도가 무섭게 몰아치는 해변에서도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부지런한 사람들...^^
하얀 포말과 해무가 어우러져 꽤나 장관을 이룬 하얏트호텔 주변 절벽
첫날의 일정은 여기까지. 날씨는 흐려도 푹푹 찌는 습한 날씨에 일행은 곧장 숙소로 향했고 나인브릿지 클럽하우스의 음식이 꽤 쓸만하다는 정보대로 여름 특식을 시켜먹었는데 <제주흑돼지와 한치 두루치기>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원래 제주도는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해 특산 먹거리를 잘못 시도했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역사적으로 질곡이 많았고 농사도 여의치 못한 데다 풍부한 해산물로도 맛있는 요리비법을 개발하여 문화로 승화시키기엔 워낙 제주의 삶이 척박했기 때문이라고 들은 듯.
과거 제주 특산음식이라며 오분자기 뚝배기, 옥돔구이, 갈치 미역국 같은 것들을 먹고 실망을 금치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여행의 음식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 역시 아는 것이 힘. ㅋㅋ (2008. 7. 29)
방방곡곡 아직 안 가본 곳이 더 많기는 하지만 경주는 내가 제주도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내 여행지다. 제주나 경주나, 그저 눈길 닿는 곳이면 다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느낌이라 갈 때마다 그 감흥이 조금씩 달라지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달까.
고등학생 때 기차를 타고 처음 찾아가 불국사 근처의 형편없는 여관촌에서 먹고자며 둘러본 경주 수학여행은 '경주'보다 '수학여행'에 방점이 찍히는 기억으로 남았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따위의 기억은 죄다 그 앞에서 60명이 빨간 모자를 똑같이 쓰고 찍은 단체사진으로 남았을 뿐이었고, 천년 고도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서의 경주 느낌 보다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기관사 아저씨를 구워삶아 객차 불을 끄고는 선생들에게 밀가루와 생닭발을 던진 일, 여관방에서 단체로 몰래 술마시다 뛰쳐나가 주정 부린 친구때문에 모든 것이 발각돼 단체기합을 받던 일, 토함산 일출을 본다며 깜깜한 새벽에 몽둥이 든 양치기에게 몰린 양떼처럼 바삐 산길을 오르다 숨이 딸려 몰래 뒤쳐진 것 뿐인데, 뒤 따라 오는 남학교 학생들과 모종의 접선(?)을 시도하려는 몹쓸 문제아 취급을 받아 억울했던 일, 모든 반찬이 비리고 짜기만 해서 너무도 맛 없었던 여관 음식 때문에 단식투쟁(?)을 하며 초코파이로 버텼던 일... 등등 주로 사고 치고 즐거워 했던 수학여행의 추억이 강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사진으로 남은 추억뿐 ^^;;
불국사 앞이다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더라면 누구든 하나씩 갖고 있을 사진이 아닐까...
그 후 10년쯤 지나 가을 단풍이 예쁠 때 찾아간 경주는 정말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겼고 똑같은 자리에서도 나는 전혀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운 좋게도 분황사 터에서 만난 어떤 대학원생 덕분이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라던 그는 안내문을 대충 읽고 종알종알 떠들면서 몰려다니는 우리에게 국사책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모전석탑을 제대로 보는 법을 설명해주었고 유적지 한 귀퉁이에 그냥 아무렇게나 놓여 굴러다니는 바위 하나도 예전엔 어느 돌부처의 몸뚱이나 어깨였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말로 어느 마당 한 구석에 절반쯤 파묻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석상과 돌부처를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이번엔 1월이라 무료 문화재 설명 도우미도 없었고 운 좋게 신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냥 아는 만큼, 모르는 만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어설피 구경한 경주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50년만에 다시 경주를 찾은 엄마와 20년 만에 다시 경주에 간 막내, 15년 만인 올케, 10년이 조금 넘은 나, 그리고 난생 처음 경주에 가본 어린 조카의 느낌을 비교하는 묘미가 워낙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여행지에서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건 어쩌면 달라진 내 나이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통점이라면 수학여행 이후 늘 그랬듯 이번 경주여행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주까지 처음부터 차로 여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학여행 때 말고는 계속 울산이나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렌터카로 경주까지 올라가는 경로를 택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대단히 먼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가보니 중간에 휴게소에 두번 들러 점심까지 먹은 시간을 포함해도 총 5시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그리고 과거엔 매번 해안도로를 따라 경주에 진입했기 때문에 몰랐는데^^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로 들어서면 톨게이트마저도 기와를 멋드러지게 얹어 아, 역시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물며 경주 시내 길거리의 주유소도 지붕엔 죄다 기와를 얹어놓아 양복에 갓 쓴 것마냥 어색한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검정색 기와와 날렵한 기와집을 원없이 볼 수 있는 건 좋았다.
첫날엔 워낙 추운 날씨라 돌아다니기 힘들 것 같아, 2시반쯤 콘도에 도착하자마자 짐풀고 곧장 아쿠아월드로 내려가 물놀이를 했으므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 설악 워터피아에 비하면 규모가 절반도 안되는 크기이고 놀이시설 내 먹거리도 훨씬 부실했지만 한겨울에 온천여행 삼아 가족끼리 놀러온 사람들이 꽤 많았고 조카들도 울 엄마도, 본전 안 아깝게(!) 실컷 놀다가 늦은 저녁을 먹으러 숙소로 퇴청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에겐 본디 여행이란 최대한 '편하고' 맛있게 즐겨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해서 숙소를 콘도로 잡았다고 해도 웬만하면 끼니는 밖에서 사먹는 걸 고집하는데 놀러가서 한 끼는 꼭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어야 제맛이고 아침 정도는 간단히(?) 해먹자는 막내부부의 계획에 살짝 난감했지만 ^^;; 알뜰한 그들의 방식을 무조건 마다할 수도 없어 그러마고 동의를 했더랬다. 허나... 테* 그릴까지 싸가지고 간 동생 부부의 열성으로 삼겹살은 맛있게 구워먹을 수 있었으되 으으으... 코딱지만한 전기밥솥에 무식하게 많은 쌀을 앉힌(다음 날 아침에 먹을 밥까지 한꺼번에 해치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만;;;) 나의 실수로 밥은 완전히 설어 냄비에 다시 쏟아 밥을 짓느라 냄비를 새카맣게 태우고 3층밥을 해서 뒤집어 억지로 익히는 해프닝이 벌어지고야 말았으니... 어흑..
동생부부와 엄마는 탄내 별로 안나고 먹기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그 많은 밥을 다 망쳤다는 자괴감에 빠진 나는 일단 뱃속에 넣어 최대한 밥을 줄여보자는 작전으로 삽겹살을 배불리 먹은 뒤에도 술김에 집에서 먹는 양보다 두배나 많은 밥을 꾸역꾸역 먹은 뒤 술과 밥에 취해 그대로 뻗어버리고야 말았다. @.@
다음날 나는 물론이고, 역사상 최대 과음으로 우릴 모두 놀라게 했던 왕비마마, 복분자주+맥주에 취한 올케까지 세 여자는 모두 탱탱 부은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여 여전히 빌빌 거리고 있는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나신 왕비마마 曰, "다들 술 마셨는데 국물이 있어야 밥을 먹지 않겠니...." ㅠ.ㅠ 2박3일간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었던 무수리는 어쩔 수 없이 슈퍼에 내려가 대파와 계란, 고춧가루, 소금, 3분 북어국을 사와 계란탕을 끓여 왕비마마께 바칠 수밖에 없었다.
째뜬 해장에 성공한 우리는 ^^ 드디어 경주 시내 관광에 나섰으니 첫 행선지는 안압지.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완전히 폐허가 된 그곳에 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붙여진 후대의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임해전'이라는 별궁이 있던 터라는 뜻의 '임해전지'였다. 막내는 이곳에 조명시설을 잘 해놓아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며 혼자라도 찾아가 야경 사진을 찍어보려고 노렸으나 밤마다 음주를 하느라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내가 찍은 사진은 이렇게 참 민망하게 멋없다. 하늘로 뻗어오른 지붕 꼭대기 장식인 '치미'와 처마 끝에 장식한 도깨비 모양의 기와가 확실히 다른 시대 건축물과 다름을 느꼈는데 내가 찍은 사진엔 제대로 안보인다. 흑..
임해전지에 복원해 놓은 제일 큰 건물 지붕..
임해전지는 별궁을 세우고 못을 파 희귀한 동물과 식물을 길렀다는 곳인데 연못을 따라 한 바퀴 완전히 돌아볼 수 있도록 길이 닦여 있다. 유모차를 끌고 가기엔 좀 험란했지만, 신기하게도 뒤쪽엔 작은 대숲도 있었다.
남쪽이기 때문인지 경주에선 곳곳에서 흔히 이런 대나무를 볼 수 있다. 불국사 근처에도 수종 다양한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가느다란 대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던데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알량하게나마 <와호장룡> 생각도 나고 해서 볼때마다 느낌이 색다르다. 7살난 준우는 저기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나올 것 같다며 앞에 서서 으르릉 공룡소리를 내는 바람에 또 한참을 웃었다. ^^
경주에 사는 사람들은 늘 보니까 아무런 감흥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갑자기 옆에 커다란 능의 봉분이 예고도 없이 솟아오르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도 신기하고 좋았다. 이번엔 다리 부실한 왕비마마 때문에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아 시내를 구석구석 다니지 못해 그런 느낌을 많이 만끽하진 못했지만 천마총 근처 대릉원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능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날 날씨가 참 좋았는데 햇살이 너무 찬란한 때문인지 역광이라 사진이 영 어둡다. ㅠ.ㅠ 역시 실력없는 찍사는 사진기 탓만 왕창...
다음 행선지는 대릉원에서 아주 가까운 첨성대. 고등학교 때 처음 첨성대를 보고도 "에게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작아?"라고 구시렁거렸는데 어쩐 일인지 첨성대는 와서 볼 때마다 작아지는 느낌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천문대"라는 안내판의 문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새로운 학설에 의하면 천문대 용도로 쓰인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주술의식에 쓰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재미 있었던 건 첨성대를 본 준우왕자의 반응이었다. "엄마, 저게 뭐야? 찜질방이야?" 크하하하... 7살짜리로선 그럴듯한 추론이어서 우린 또 다 같이 까르륵 웃어댔다.
다음엔 또 어딜갈까 지도를 들고 고민하다 분황사로 가기로 결정. 오래 전 국사책에서나 보던 유적을 실제로 보는 느낌은 마치 TV로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맞닥뜨린 것처럼 신기하고 약간은 기대와 달라 실망스럽기도 하다. ^^;; 10여년전의 경주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황사 모전석탑은 이상스럽게도 이번에 보니 그저 그랬다. 아무래도 그때의 감동은 사자상이 있는 모퉁이에서 탑을 보지 말고 부처님이 모셔진 문 앞에서 탑을 보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구조를 설명해준 대학원생 덕분이었던 듯했다.
탑의 돌문 네 개 안에 모셔진 부처님은 한 군데밖에 남아있지 않고, 원래 몇층이었는지도 추정만 할 뿐이다. 무너진 탑안에서 나온 커다란 돌덩이들이 마당 한구석에 놓여만 있는데 기술이 없어 복원해볼 엄두도 못내고 있는듯하여 아쉬웠다.
또 하나 이상한 건 분황사 마당에서 정말로 땅속에 박혀 있는 여러 부처 석상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그새 어디론가 옮겨놓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분황사 마당 구석에 남아있는 이 석상을 찾기는 했는데 내 기억과 달라 계속 갸우뚱...
분황사 모전석탑 뒤쪽의 작은 전각 문창살이 예뻐서 찍어보았다. 옛날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에도 어쩜 이리 정성을 들였는지 원... 다 낡아 부서질듯한 문고리도 내 눈엔 그저 정겹다.
불국사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제일 비싼 입장료 거금 4천원(그 이전까지의 유적지들은 대개 천원에서 1200원 사이^^)을 내고 불국사 경내에 들어가니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 가방에서 카메라 꺼내기도 귀찮아 막내가 삼발이 놓고 찍은 단체사진으로 만족할 태세였는데, 그래도 석가탑 다보탑은 찍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ㅋㅋ
조카에게 10원짜리를 꺼내 보여주며 비교해보라고 했더니만 몹시 신기해했다. 탑 중간에 놓인 사자상은 원래 4개였으나 아쉽게도 다 도둑맞고 한쪽에만 저렇게 놓여 있는데 10원짜리 도안에는 사자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쪽 면을 새긴 것이 틀림없다. -_-;;
다보탑과 마주보고 서 있는 석가탑은 당연히 역광이라 너무 어두워 실루엣만 나오는 바람에 몇번이나 다시 찍었어도 여전히 부실하다. 기념촬영하는 다른 사람들도 피할 길이 없었고..
그리고 여기는 불국사 내부의 주랑. 궁궐도 그렇고 대규모 사찰도 그렇고 이렇게 기둥을 가지런히 세우고 지붕을 얹은 주랑(회랑이라고도 한다)이 나는 공연히 참 좋다. 게다가 저렇게 가운데가 통통한 기둥들이 바로 배흘림 기둥이잖아!! ^^
어라.. 사진에서 보니 기둥 가운데가 덜 통통하닷..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넓은 경내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자꾸만 계단과 전각 기단 위로 올라가려는 어린 조카 때문에 시간이 늦어져 부랴부랴 바다를 보러 감포로 향했건만, 그리고 시간이 되면 수중능이라는 문무대왕릉을 찾아갈 작정이었으나 금세 해가 져버렸다.
감포항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는 갈매기 사이로 일손 바쁘게 출항을 준비하던 배들은 우리가 어영부영 항구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고 최대한 바다를 가까이 가보려고 감포항 주변으로 차를 돌리니 저 멀리 바다엔 벌써 환한 유인등을 켠 배들이 줄지어 떠 있었다. 낮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 아래 옥색 바다가 철썩이는 장엄한 모습이었는데 늘 그렇듯 '내'가 찍은 사진 속에 담긴 자연은 실제 모습을 한참 왜곡하여 슬프다.
감포항에서 가격대비 너무도 실망스러웠던 대게찜과 참돔회로 저녁을 먹은 우리는 둘쨋날을 마무리했다. 경주를 비롯해 경상도쪽으로 여행을 갈 때 늘 듣는 이야기가 '먹거리'에 별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기는 하지만 점심때 먹은 맷돌순두부도 그렇고, 이름은 '명성' 횟집이되 명성 날리기엔 애저녘에 글른 듯 불친절하고 곁다리 반찬 부실하고 마리당 거금 6만원이나 하는 대게도 별 맛이 없고 ㅠ.ㅠ 회 접시 자체도 어찌나 맛없게 잘라놓았는지 정말로 마음이 상했었다. 앞으로 누구든 경주 감포항에 가시려거든 절대로 '명성횟집'은 가지 마시길...
인터넷 검색으로 몇 군데 찾아보고 갔음에도 그 식당들은 찾을 길이 없어 그나마 그럴싸하게 생긴 집으로 고르고 골랐으나 아무리 경상도 음식이 형편없음 감안해도 완전 대실망을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회를 싫어하는 막내 때문에 분명히 '곁다리 반찬'이 많이 나오느냐고 미리 물었는데 당연히 그렇다고 해놓고선 달랑 네 개 나오는 석화 한 접시 더 달라고 했더니, 그건 더 안 준다고 한 마디로 자르질 않나 우리가 회 조금 시켰다고, 다른 테이블엔 서비스로 주는 '그 싼 오징어회'도 안 주질 않나 동해한 횟집 어딜 가도 당연히 곁다리 서비스로 나오는 해삼은 구경할 길도 없고 대게찜이 나오기에 잘라달라고 했더니 원래 손님들이 잘라먹는 거라면서 대단히 생색내며 가위질을 해주질 않나.... 그날 저녁엔 한동안 명성횟집 불매운동에라도 나설 마음이 들만큼 괘씸했다. 바로 옆에 있던 감포횟집을 갈까말까 고민하다 그집에 붙들린 것을 어찌나 후회했는지 지금도 버럭 열이 샘솟는다. @.@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침은 나의 소원대로 콘도 꼭대기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부페를 먹었는데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부페는 가격대비 괜찮더라는 '카더라' 통신의 정보를 믿었던 나의 기대를 여지 없이 부숴놓았기에, 앞으로 정말 다시는 경상도 쪽에서 먹거리에 기대를 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 1인당 만2천씩이나 하는 대명콘도의 아침부페는 뜬금없이 단맛이 나는 수프, 제과점이 아닌 수퍼에서 파는 빵을 그것도 한 종류만 가져다 놓은 듯한 토스트빵, 여러 개씩 들러붙어 있는 베이컨, 밥과 미역국은 있으되 같이 먹을 반찬이 부실했기 때문에 몹시 감점! 째뜬 그래도 아침밥을 내 손으로 안 해먹은 것이 어디냐.. 하는 마음으로 배를 채운뒤 가뿐히 호숫가 산책에 나섰다.
햇살 찬란한 보문 호수
역시나 역광이라 반짝반짝 은비늘처럼 빛나는 수면의 느낌은 못담아왔지만 (반대방향으로 찍은 건 몹시 황량하게 나왔다 ㅠ.ㅠ) 그리고 귀차니즘의 발동으로 자전거로 호숫가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동생과 조카가 타는 4륜 오토바이를 구경하는 것으로 경주 여행은 마무리 되었어도 새삼 이렇게 사진을 정리하며 돌이켜보니 결론은 '그저 좋았더라'. ^^*
아참... 계속 실망스러웠던 경주의 먹거리 가운데 유일하게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경주빵! ^^ 경주시 황남동에서 수십년전에 유래하여 일명 '황남빵'이라고도 불리는 이 경주 토산품은 파는 곳마다 약간 맛이 다른데, 아마도 우리가 들러 사온 곳이 바로 황남동에 있는 원조격인듯 별로 달지 않고 꽤 맛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