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유난 2

식탐보고서 2008. 7. 15. 23:46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도 마시고싶다는 욕망이야 커피 깨나 좋아한다 싶은 이들은 누구나 품는 것일 테고
나 또한 그런 이들을 커피 유난 떤다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내심으론 커피 주변기기를 호시탐탐 노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커피 주변기기를 파는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귀동냥도 하고 실제로 써본 이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여
내가 오래 전부터 흠모해왔던 건 바로 <비알레띠 브리카>.
에스프레소 머신처럼 크기와 가격이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생김새마저 앙증맞고 어여쁜데다 뽀얀 크레마까지 추출된다니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매번 커피콩을 '적당히' 갈고 또 물과 불조절을 잘해야한다는 것인데 뭐,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라면 까짓거 그 정도 어려움쯤이야 감수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적극성이 나의 귀차니즘을 이기기까지 거의 반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

그렇다.
두둥~.
드디어 나도 모카포트의 지존이라고들 칭송하는 <비알레띠 브리카>를 갖게 된 것이다!


대강은 사용법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설명서를 다시 꼼꼼히 숙독한 뒤, 그래도 못 미더워 매 단계마다 설명서를 손에 들고 오늘 드디어 시음을 계획하였으니, 떨리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처음 포트를 사용할 때는 커피를 마실 생각 말고 3회 반복해서 추출해 버린 뒤에 본격적으로 추출해서 마시라고 되어 있는데, 볶은지 열흘밖에 되지 않은 '귀한' 원두커피를 시험삼아 써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커피로 테스트를 해본 뒤에 본격적으로 마실 것만 좋은 원두로 할 것인가 판단도 서질 않았다.
지인의 조언에 따르면 모카포트에 넣을 커피의 굵기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차피 몇번 시행착오를 거쳐야한다고 했는데, 매번 다른 원두콩을 갈아서 과연 내가 가장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처음 두번 포트를 청소하는 의미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는 냉동실에 오래 보관해두었던 원두콩으로,
세번째 청소용과 실제 시음용은 최근에 선물받은 원두콩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실험에 돌입.
아.. 역시 바리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원래 처음 테스트용으로 3번 추출해서 버릴 때는 물과 커피의 양을 평소의 3/4으로 하라고 설명서에 되어 있는데 세번째 테스트 때 욕심을 부려서 그만 계량컵에 표시된 눈금만큼 물을 다 넣었더니, 압력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자마자 폭발하듯 저 작은 주전자 주둥이에서 커피가 튀어 벽에 커피 얼룩을 만들고야 말았다.
게다가 압력추 소리가 나면 재빨리 가스불에서 내려야 뽀얗게 생성된 크레마가  죽지 않는다는데....
으휴, 불을 끄는 순간과 가스불에서 포트를 내리는 순간이 달라짐에 따라 크레마의 양도 매번 차이가 생겼다. ㅠ.ㅠ

그뿐이랴, 커피원두의 입자가 과연 최적의 상태인지, 커피원두의 양은 적절한지 어쩐지도 알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가 최상의 맛인지 그것도 아직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
온 집안에 은은하고 그윽한 커피향이 감돌기는 했지만, 내가 추출한 에스프레소로 탄 아이스커피는 생각만큼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고 최소한 일주일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알량하나마 바리스타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오후 내내 낑낑대며 커피를 추출해보니, 카페에서 사 마시는 맛있는 커피는 리필까지 해주는 경우를 감안할 때 그리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_+

째뜬, 이렇게 해서 드디어 나도 커피 유난 떠는 부류에 합류하였음을 고백함.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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