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타령

식탐보고서 2008. 8. 26. 16:30
내겐 한동안 안 먹으면 점점 욕망이 커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다가 불만과 짜증에 휩싸이게 되는 음식이 있다.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음식들은 아니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떡볶이, 라면, 버거왕표 와퍼 따위.

그 가운데 라면과 와퍼는 언제 어디서나 표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봉지라면이 개발되어 있거나 거의 똑같은 맛을 내는 매장들이 거리에 즐비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멀리하려고 애쓰다가 못 먹는 주기가 길어지면 욕구불만이 쌓일 뿐이므로 문제 해결 방법이 그리 어렵진 않다.
그러나 떡볶이는 다르다.

아마도 국민학생 시절 하굣길 좌판이나 포장마차에서 50원어치씩 사먹던 밀가루 떡볶이가 역사의 시작인 것 같은데 중고등학생 때 들락거리던 분식집 떡볶이(완제 및 즉석 떡볶이)를 거쳐, 나로선 떡볶이로 쳐주지도 않는 신당동 떡볶이와 최근 들어 술집 안주로 볼 수 있는 '고급' 해물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몹시 다양하게 즐겨온 떡볶이는 어느새 내 머릿속에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는 꿈의 맛으로 새겨진 모양이다.
그 어느 떡볶이를 먹어도 나의 떡볶이 욕망이 100퍼센트 채워지질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솜씨를 발휘해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어보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집 근처 마트 앞 좌판에서 꽤나 맛있는 떡볶이를 팔기 때문에 떡볶이 욕망이 솟구치면 쪼르르 달려가서 2천원어치만 사먹어도 흐뭇해지기는 하는데, 수십년째(!) 떡볶이 타령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바로 이거다' 싶은 환상적인 떡볶이를 만난 적은 없다.
맛있는 걸 좋아하긴 해도 맛에 몹시 까탈스럽게 구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조미료 맛이 심히 나지 않으면서 적당히 맵고 달달한 떡볶이는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도, 환상의 맛이라 인정할 수 있는 떡볶이를 찾지 못한 걸 보면 내가 찾는 떡볶이는 아마 괜한 추억의 감상을 버무려 넣어 실제로는 만날 수 없는 허구의 맛이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환상의 떡볶이를 찾는 식탐 여정을 끝냈다는 뜻은 아니며, 앞으로도 떡볶이 욕망이 솟구칠 때 떡볶이 포장마차를 보면 앞뒤 생각 없이 달려가 매운 입을 후후 불어가며 빨간 떡볶이를 먹고 있을 게다.

바로 어제가 그런 떡볶이의 날이어서 좌판에 들러붙어 한 접시 먹어치우고는 그래도 아쉬워 1인분 포장해다 밤참으로 또 먹었는데도 어쩐지 좀 아쉽다. 그러고 보니 나의 떡볶이 타령은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허함의 상징인 것도 같군.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