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반찬

식탐보고서 2010. 4. 6. 14:54
어릴 때 하고 놀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놀이를 기억하는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자~~안다.
잠꾸러어~~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하~~안다.
예쁘~~은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옷입느~~은다.
멋재~~앵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학교가~~안다.
모버~~엄생.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놀러가~~안다.
날나~~리.
.
.
딱히 가사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지 않은 이 놀이의 마지막은 <밥먹느~~은다 -- 무슨 바~~안찬? -- 개구리 바~~안찬 -- 살았니 죽었니?>에 대한 대답과 함께 술래가 친구들을 잡으러 가거나("살았다!"고 외쳤을 때) 움찔 움직인 친구를 잡아내는 ("죽었다!"가 대답일 때) 것으로 끝이 난다. 운동신경도 둔하고 달음박질 느린 나는 친구들과 밖에서 놀이를 할 땐 별로 즐기질 않았는데, 다 놀고 집에 들어와서 흥얼흥얼 새로운 댓구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했고, 부엌을 들여다보며 할머니나 엄마한테도 놀이를 하듯 장단 맞춰 "무슨 바~~안찬?"이라고 묻는 걸 재밌어했다. 그리고 할머니나 엄마가 "개구리 바~~안찬"이라고 대답할 땐 기쁘게도 뭔가 맛있는 <고기> 반찬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였다.

수십년도 훨씬 지난 오래 전 추억이지만, 가끔 우리집에선 개구리 반찬이 아직도 <맛있는 고기 반찬>의 의미로 쓰일 때가 있다. 대개는 내가 입을 쑥 내민 채로 콩닥콩닥 냉장고와 조리대를 오가며 꽤 오래 부산을 떠는 저녁 무렵이면 왕비마마가 슬쩍 부엌으로 다가오며 묻는다. "무슨 개구리 반찬이라도 만드니?"
그러고 보니 옛날에 엄마가 장보러 가면서 아버지와 내게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으면 가끔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개구리 반찬!"이라고. 

채식이 지구를 살리고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지름길이란 걸 알지만, 우리 가족은 고기를 너무 사랑해서 절대 채식주의자로 살 순 없을 것 같다. 일주일만 고기를 굶으면 손발이 후들후들 떨린다는 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아무리 생선으로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해도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오리고기 따위를 먹어야만 채워지는 육식애호 인자를 확실히 엄마도 나도 보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채소 싫어하는 조카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정말로 개구리 반찬을 만들어 먹는 것 같다. 당연히 일주일에 한번씩 장을 볼 때도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종류별로 거의 빠뜨리는 일이 없다. ㅠ.ㅠ 고기마다 다 맛이 다른 걸 어쩌란 말이냐. ㅎㅎㅎ 봄이 오면 남들은 식욕을 잃는다는데, 왕비마마도 무수리도 입맛을 잃기는커녕 지난주부터는 이상스레 식탐이 동해 고기가 더 먹고 싶어서 이틀이 멀다하고 과식을 거듭하고는 피둥피둥  몸무게를 늘이고 있다. 그러고서도 여전히 또 다른 개구리 반찬을 떠올리는 식탐 모녀를 위해 적어두는 반성의 기록이다. 



적고 보니 아무래도 한우는 비싼 가격 탓에 국으로 끓여먹지 않으면, 장조림 해먹는 게 다인듯. 오리고기는 훈제오리 제품을 사다가 살짝 데워서 무쌈에 싸먹으면 되므로 요리랄 것도 없다. 이렇게 먹고도 어제 왕비마마는 또 삽겹살을 구워먹고 싶다 하셨다.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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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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