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열나흔날부터 보름날까지 나무 아홉 짐 해오고 아홉 가지 나물에 오곡밥을 아홉 번 먹어야 한다는 세시풍습을 나는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다. 보름날 아침에 자고 있으면 엄마가 부럼을 가져와서 어서 깨물으라고 재촉했는데, 부스럼을 비롯해 각종 병을 막아준다는 부럼깨기 풍습도 재미났고, 이름 불러서 더위파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아이들은 대개 나물을 즐기지 않는다지만 나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각종 나물이 맛있다고 생각했고, 특히 대보름 나물은 하나같이 좋아한다. 엄마가 부엌일에서 손을 놓은 다음 한두 해는 귀찮아서 오곡밥과 나물을 얻어다 먹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무모한 도전정신을 발휘해 막요리를 시도하는 쪽을 택했다. 밥이야 어차피 밥솥이 하는 거고, 아홉 가지나 만들 자신과 열정은 없어도 몇 가지 나물쯤이야 몇번의 실패 후 그럭저럭 맛을 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작년에도 대보름 나물을 만들었을 텐데 올해는 왜 그리도 다 새롭던지. 결국 시레기 나물은 실패한 것 같다. 다 기록을 해두지 않은 탓에 요리할 때마다 대충대충 하기 때문인가 싶어, 내년을 위해 또 막요리를 기록한다. 시레기 나물과 취나물이 좀 질겨서 속이 상했지만 다섯 가지 나물을 차려놓고 김에 싸먹는 오곡밥은 행복과 지혜의 맛이 틀림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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