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2009.09.28 휴대폰 음성메모 15
  2. 2009.09.15 늙음에 대하여 4
  3. 2009.08.14 안경과 눈물 11
  4. 2009.08.12 스팸단어 8
  5. 2009.08.10 국수 18
  6. 2009.08.07 오래 된 선풍기 13
  7. 2009.07.21 어떤 죽음 2
  8. 2009.07.16 참 잘했어요 6
  9. 2009.06.15 그럴듯함 27
  10. 2009.05.21 품위있게 죽을 권리 3
디자인이 예쁜 휴대폰을 보면 탐이 나긴 하지만 나는 웬만한 디카보다 성능 좋은 카메라에, 전체 화면이 터치식이고 동영상 재생 화질도 엄청 뛰어나게 만들었다는 초고가의 최신 유행 휴대폰에 별로 마음이 가질 않는다. 일단 기능이 많아지면서 꽤나 무거워졌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내가 그 많은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 둘째 이유다.
내가 휴대폰에서 쓰는 기능은 전화 걸고 받기, 카메라, 문자 메시지, 알람, 전화번호부, 메모장, 단순한 게임 하나(스토니^^), 아주 가끔 계산기와 스톱워치, 깜깜할 때 랜턴 대신(그나마 플래시 기능은 얼마 전에야 알았지만 귀찮아서 그냥 액정 불빛만 비춘다), 역시나 아주 가끔 DMB 시청(주로 차에서 엄마 드라마 보여드리느라)이나 몇곡 안되는 mp3 듣기가 전부다.
앞으로 휴대폰 기술이 엄청 더 진화한다고 해도 난 이 이상의 기능을 쓸 것 같지 않다. 휴대폰 화면이 아무리 좋아져봤자지, 고 작은 화면으로 뭘 보겠다고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집중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하다. 난 멀미나던데...

암튼 휴대폰 기능 중에 음성메모도 있음을 알면서 그걸 써볼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영리한 친구들은 메모할 게 마땅하지 않을 때 통화내용을 아예 녹음해 나중에 확인한다는데 나는 운전중이 아니라면 굳이 메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적도 없는 듯하고, 나중에 메뉴 버튼 눌러 음성메모 찾아가서 그거 확인하는 게 귀찮아서라도 상대에게 문자로 한번 더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만다. 실제로 음성메모 기능을 파악해 유용하게 써먹는 사람이 과연 주변에 얼마나 될까?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음성메모 기능을 열심히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휴대폰 회사마다 기능 버튼이 다 다르겠지만 몇년 전에 나온 모 회사의 휴대폰은 통화중에 기기 옆면에 달린 여러 버튼을 누르면 통화음을 크게 하거나 줄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버튼을 아주 길게 누르면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 요즘 대세라는 터치폰도 기기 옆쪽에 그런 기능 버튼이 달려있는지 어쩐지 안 써봐서 잘은 모르겠는데, 통화중 음성메모 기능을 사용하려면 손쉽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하므로 비슷한 원리가  적용됐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주로 휴대폰 사용에 서툰 어르신들이 자기도 모르게 통화내용을 음성메모함에 녹음해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완전히 기계치인 분들은 또 곤란하고, 휴대폰 통화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정도는 알아야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다.

지금 왕비마마가 쓰고 계신 휴대폰은 둘째 조카인 준우왕자 탄생 기념으로 아버지가 장만하신 거라 만 7년이 지난 구형 슬라이드폰이다. 액정이 좀 작아 문자메시지를 읽고 보내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원래부터 기계치인 영자씨는 전화를 걸고 받기만 하면 그뿐이고 문자가 와도 일일이 무수리가 읽어드려야 하니 사용엔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거기 달린 카메라를 전혀 못쓰는 걸 안타까워하실 정도. 깨끗하게 써서 아직도 새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휴대폰은 혹시 나중에 왕비마마가 다른 휴대폰으로 바꾸게 된다해도 영영 버릴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거기 녹음된 음성메모 때문이다. 왕비마마는 전화 받다가 잘 안들려도 휴대폰 통화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시므로, 거기 녹음된 내용은 모두 이전 사용자가 무의식중에 남기신 거다.
주로 등산 갔다 오시면서, 어디쯤 왔노라고, 엄마에게 저녁 반찬 거리로 무얼 사갈 것이 있느냐고 묻거나, 일일 드라마 잘 보고 있다가 나중에 내용 들려달라고 당부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열 개나 휴대폰 음성메모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거의 1년이나 뒤에 알게 되었다. 그것도 할머니 휴대폰으로 장난을 하던 정민공주의 발견으로. 더 오래된 엄마 휴대폰을 해지하고 아버지 유품을 엄마가 쓰시도록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영영 그 존재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라 생각하면 참 놀랍다. 

아버지의 청년시절 일기장을 장농에 넣어놓고 잘 꺼내보지 못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목소리도 너무 슬퍼서 좀처럼 듣게 되질 않는데, 추석 전 성묘를 갔다가 어차피 울 거니깐 까짓것 하면서 다시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누가 개발해낸 것인지 몰라도 휴대폰에 음성메모 기능을 그렇게 쉽게 작동하도록 넣어둔 기술자에게 대단히 고맙다. 그리고 블로그 이웃들과 지인들에게도 그런 기능과 어르신들의 오작동 가능성에 대해서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휴대폰 음성메모함에 의외의 추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거나 연휴동안 집에서 부모님의 휴대폰에 접근하게 된다면 슬쩍 한번 찾아보시길 권한다. 우리 아버지 말고도 무심코 휴대폰 음성메모함에 통화내용을 녹음해둔 분이 또 계시면 정말 나도 기쁠 것 같다. 특히 무뚝뚝하게 툴툴대는 자식과 정겨운 부모님의 대화가 녹음된 소중한 보물을 건진 분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시기를. 나 또한 통화중에 휴대폰 음량을 자주 조절하는 편이라 실수로 녹음해놓은 게 없나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내 휴대폰 음성메모함은 텅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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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하여

삶꾸러미 2009. 9. 15. 18:27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주말에 놀러가 함께 저녁을 먹다 보면 늘 되풀이되는 광경이 하나 있었다. 밥상 아래로 자꾸만 밥풀이나 반찬을 흘리는 할아버지를 타박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
양반은 모름지기 매끄러운 놋쇠 젓가락으로 청포묵 하나를 집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입까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젓가락질에 능해야한다며 코흘리개 시절부터 우리 손주들에게 엄하게 젓가락질을 가르치셨던 바로 그 할아버지가 진지를 잡수시면서 뭔가를 흘린다는 건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물론 할머니도 가끔 입가에 밥풀 같은 게 묻었는데 느끼지 못하실 때도 있지만, 그런 사실을 잘 아는 할머니는 수시로 입가를 닦거나 스스로 밥상 아래를 살피셨기 때문에 마지막에 밥상을 치우고 나서도 매번 지저분한 할아버지 자리와 달리 할머니 자리는 늘 깨끗했다.
게다가 골초였던 할아버지한테선 늘 심한 담배냄새와 함께 할아버지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할머니는 그게 늙은이 냄새라면서 질색을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은 늙은이 냄새 나면 애들이 싫어한다며 언제나 바지런하게 씻고 로션(할머니 용어로는 여전히 '구루무')을 바르셨는데, 정말로 우리 할머니한테선 노인 특유의 냄새를 느낄 수 없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6개월쯤 다시 할머니와 한집에서 동침하며 살던 시절, 내가 새벽녘에 컴퓨터를 끄고 옆방으로 들어가 부시시 할머니 옆자리로 파고들면 할머니는 나를 꼭 안아주셨는데 팔순이 넘어서도 아기피부처럼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할머니의 팔다리를 어루만지면 금세 잠이 들었다. 마지막까지도 우리 할머니한테선 흔한 노인냄새 대신 우리 할머니만의 달콤한 체취가 났던 것 같다. 역시나 팔순 넘어서까지 전국 방방곡곡 사찰로 성지순례를 다니실 만큼 정정했던 우리 외할머니한테서도 노인 냄새를 맡은 기억이 없다. 친할머니처럼 잘 때 껴안고 자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주 뵙고 팔다리 주물러드리고 했으므로 충분히 체취를 맡을 기회는 있었을 텐데.

내가 늙음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된 건 엄마 때문이다. 올해 나이 예순 아홉. 아직도 나에겐 아줌마 영자씨가 익숙하지만,  어느 누가 봐도 할머니라고 인정할 나이다. 요즘엔 특히 젊게 사는 노인들이 많아 칠순 넘어서도 펄펄 날아다니며 건강을 자랑하는 분들도 많지만, 지병도 많고 마음도 약하고 의존적이기까지 한 울 엄마는 그들과는 확실히 다른 그냥 할머니로 늙어가고 계신다. 그간의 여러 병력을 따져본다면 이 정도 회복도 고마워 해야 하는 수준이고, 노인으로선 그게 당연한 건데도 내 마음 속 어린아이는 젊은 엄마를 포기할 수가 없는 모양인지 자연스레 노인의 특징을 보이는 엄마가 매번 놀랍고 속상하고 서글프다가 버럭 짜증이 치민다. 
노인들이 밥풀이나 반찬 양념이 입가에 묻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입주변의 근육과 신경이 노화해 정말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입술과 혀의 놀림도 자연히 전보다 날렵하지 못해 음식을 입에 넣거나 씹을 때도 흘릴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울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말초신경이 상해 손가락 소근육의 움직임이 원할하지 못해 젓가락을 떨어뜨리기 일쑤이니 오죽하랴. 엄마 티셔츠를 보면 하나같이 앞섶에 보일락말락한 얼룩이 묻어 있다. 음식물을 흘린 자국이다. 미리 알아차렸을 때는 얼른 애벌빨레를 하거나 문질러 지우기나 하지, 몰랐다가 그냥 세탁기에 돌리고 나면 나중엔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식탁 밑 엄마 자리도 흘린 음식물로 매 끼니마다 어지럽다. 어린 조카 밥먹고 난 자리랑 똑같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치우자면 버럭 화가 난다.
진짜 화가 나는 대상은 인간의 노화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인데, 짜증과 분노는 늘 엄마에게 날아가고 만다. 숟가락질에 서툰 아이가 밥을 흘리는 게 당연한데도, 그걸 치우는 게 짜증나서 애한테 화풀이는 하는 몹쓸 엄마처럼.
며칠 전엔 심지어 울 엄마한테서도 드디어 노인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사로잡혔다. 노인 특유의 냄새는 피부 노화로 떨어진 죽은 세포와 각질 때문이라 완전히 피할 순 없으니 잘 씻고 향수를 사용하는 수밖엔 없다고 들은 듯하다. 빨간 립스틱 하나 바르는 게 화장의 전부인 울 엄마가 향수를 쓸 리는 없고, 벌써부터 춥다고 매일 샤워는 안할 태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새삼 느껴진 모양이다. 쓸데없이 민감한 나만 가끔 감지할 정도이긴 하지만, 끈적거린다고 바디로션 바르는 것도 싫어하는 왕비마마의 노인 냄새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청력도 나빠져 TV도 거실을 왕왕 울릴만큼 틀어놓아야 하고, 돋보기가 없으면 작은 글씨는 전혀 볼 수가 없으며 기억력도 현저히 나빠져 했던 얘기를 자꾸 되풀이해 당부하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데도 딸로서 선뜻 수긍하게 되질 않는다. 그건 본인도 마찬가지라 나보다 더 속상할 텐데 화를 내는 건 언제나 못된 딸이다.
조금 전에도 늙은 딸 먹으라고 복숭아를 주고 가면서 끈적끈적한 과일물을 사방에 뚝뚝 흘리며 먹고 다니는 엄마에게 와락 신경질을 부렸다. 식탐에도 여러종류가 있지만 울 엄마의 식탐 특징은 입 한가득 넣고 씹는 쾌감을 유독 즐기신다는 점이다. 예쁘고 정갈하게 자른 과일을 포크로 얌전하게 찍어먹는 건 절대 울 엄마 스타일이 아니다. 무조건 통째로 들고 우적우적 크게 베어먹어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드나보다. 아오리나 홍옥사과는 나도 당연히 그렇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인정하지만, 단물 뚝뚝 흐르는 복숭아 같은 건 좀!!!
당연히 눈도 어두워졌으니 늙은 엄마가 닦는다고 해봤자 끈적임을 말끔히 닦아낼 리 만무해 두어군데는 빼먹기 일쑤인데 걸레질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목. 결국엔 내몸 편하자고 내는 화풀이였던 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계셨던 것도 아니고 팔순 넘어 시들어가시는 그분들을 익히 지켜봤으면서도 늙어가는 엄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잘 안되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늙음에 대한 지극한 공포를 품고 있나 보다. 늙기 싫어서 발악하는 사람들의 흉한 모습을 손가락질하면서 말로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게 멋진 거라고 주장하지만, 나 또한 다른 방향으로 흉하게 발악하며 억지 용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확실히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는 지나버렸으니 아쉽고 중년도 노년의 미래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싫으니 천상 이게 철 안든 사십대의 청승이 아니고 무언가. 스무살 무렵의 유치한 나는 예순살까지만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좋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적이 있다. 아마 그때도 죽음보다 늙음이 더 무서웠던 건 아닐까.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이치라고 고개 끄덕이기엔 늙음이 가져오는 심신의 흐트러짐이 너무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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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과 눈물

삶꾸러미 2009. 8. 14. 21:26

안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모를 일이겠지만, 안경을 쓴 채로 눈물을 흘리고 나면 안경알에 분무기를 살짝 뿌린 것처럼 점점이 미세한 물방울이 말라 붙는다. 처음엔 눈물이 눈물샘에서 솟을 때 화산 용암처럼 분출되는 방울들도 있는 것인가 멍청한 생각을 했었는데, 누가 가르쳐줬다. 눈물 젖은 속눈썹을 들어올리는 순간 미세한 눈물방울이 안경알에 흩뿌려지는 원리일 거라고.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수채화붓을 물통에 빨고 나서 바닥에 물기를 흩뿌려 말리는 장면이 연상됐고, 축축하게 젖은 속눈썹을 깜박일 때 눈물방울이 딸려올라가 공기중으로 퍼지는 광경을 슬로모션으로 촬영한 광학 카메라 동영상을 상상하며 풋 웃음이 났었다.
안경을 쓴 사람들은 안경알과 속눈썹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탓에 안경알에 보일듯말듯한 흔적을 여지없이 남기는데, 안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그 작은 눈물방울들은 공기중으로 흩어져 순식간에 말라버리거나 둥둥 떠다니는 것일까? 아니면 공기보다 무거워 뺨에 내려앉는데 흘러내린 눈물에만 신경쓰는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손닿는 곳마다 안경닦는 천을 두고 수시로 안경알을 닦는데도 매일 더러워지는 안경알을 보며 새삼 궁금해졌다.   

인체가 늙어가면 어떤 노화증상이 나타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계시는 왕비마마 덕분에 새삼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눈물샘은 나오는 구멍만 있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구멍도 있단다. 눈 앞쪽 눈밑살을 살짝 눌러보면 쉽게 보이는 눈물구멍은 흔히 눈물샘이라고 부르는 눈물 나오는 구멍이고 저기 안쪽으로 어딘가 눈물이 들어가는 구멍도 있다는 뜻이다. 특별히 외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사실 눈물은 언제나 조금씩 분비되어 안구의 습기를 유지하고 불순물을 씻어내려 다시 코와 목으로 연결된 구멍으로 내려보내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어가는 눈물구멍이 막히는 수도 있고, 그러는 경우엔 슬프지 않아도 눈에 뭐가 들어가지 않아도 아무때나 대책없이 눈물이 밖으로 넘쳐 주르륵 뺨으로 흘러내린다. 막힌 눈물샘을 뚫거나 인공 눈물을 수시로 넣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듯 불편하면 눈물 들어가는 구멍을 수술로 다시 뚫어야 한단다. 사람 몸에서 나오는 여러 분비물 가운데 유일하게 천대받지 않을 뿐더러 문학적으로 낭만적으로 상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눈물의 또 다른 신비다.
슬플 때의 눈물과 기쁠 때의 눈물, 화날 때의 눈물은 다 성분이 조금씩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이들수록 눈물의 순도가 떨어져 탁해지니 위험한 콘택트렌즈 대신 안경을 상용하라는 사실을 통보받았을 땐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눈물조차 다르다니. 그렇다면 앞으로는 안경알에 튕긴 미세한 눈물방울도 점점 더러워질 거라는 얘기. 안경 닦는 천이 오래 된 탓인지 오늘따라 안경을 닦아도 닦아도 성에 차질 않는다. 이미 탁도가 극심해진 눈물방울이 튕겼기 때문이려나. 별 게 다 신경에 거슬리는 더운 여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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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단어

삶꾸러미 2009. 8. 12. 18:09
내 휴대폰에 등록된 스팸 단어들은 무려 스무개.
최대한 꽉 채워서 등록해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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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거부
찍은
잘터져
신용
연결할까요
데이트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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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 거래은행 중에 제일 문자와 전화를 자주해서 아예 전화번호까지 스팸 등록해놨다.
삼성생명 - 걸핏하면 이모티콘 문자나 안부문자 날리는데 나는 정말 짜증난다. 거기 연락해서 수신거부 처리해달라고 하면 된다는 데  전화하는 건 또 귀찮고.

스팸문자함을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 아님에도 그간 특별히 놓친 문자는 없었는데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서 크게 웃었다. 지난주엔 친구 하나가 납량특집이라며 <무서운> 셀카 사진을 두개나 보내주었는데, 내 사진도 보내라고 요구하는 문자가 스팸함에 들어 있는 걸 어제 발견한 것. '사진'이라는 말이 스팸 단어라고 알려주며 한참 웃었는데, 바보같이 오늘 또 같은 일을 겪고도 먼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지다님의 구글신 포스팅에서 삭제한 사진의 주인공을 문자로 알려주신 건데, 두번 다 스팸함으로 들어간 걸 나는 멍청하게도 지다님이 확인해보라고 한 뒤에야 깨달았다. 못살아...

그간 요상한 사진 보라고 꼬드기는 여인네들의 문자가 자주 오길래 저런 문자들을 죄다 등록해놓은 거였는데, 나의 형편없는 기억력을 감안할 때 이제 그만 <사진>은 해방시켜야하는 것일까.. 흠... 며칠 두고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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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삶꾸러미 2009. 8. 10. 16:21

어느 책에선가 국수가 혁명가들의 음식이란 얘기를 봤다. 후루룩 먹고 또 일을 해야하기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기다란 국수발을 끊지 않고 목으로 넘기며 죽음을 경험하는 거라나 뭐라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최소한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일 순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맛 없어도 면발 몇 줄기 삼키는 건 누구나 가능하고, 노동의 중간에 후다닥 끼니를 해치우기엔 국수만한 것이 없는데다 값도 싼편이니까. 물론 전통의 맛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는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의 냉면은 사먹으려면 7, 8천원이나 하는 고가(?)의 음식이 되었지만 몇만원짜리 만찬에 비하면야 뭐. 

국수 애호가였던 이북 출신의 조부모님과 오래 살면서 나 역시 국수를 어려서부터 먹고 자랐고 지금도 퍽이나 좋아한다. 내가 파스타류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국수와 워낙 친근하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할머니댁에서 살 때나 나중에 분가후 주말에 다니러 다닐 때도 그 옛날 여름이면 점심끼니는 으레 국수였다. 평안도 출신 답게 물냉면 아니면 비빔국수. 멸치다시를 내서 뜨거운 육수에 말아먹는 잔치국수는 아무래도 서울이나 남도쪽 음식인듯 집에서 해먹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저 매일 냉면냉면... 맛있는 동치미 국물을 늘 마련해놓은 것도 아니어서 인스턴트로 파는 마른 냉면을 사다가 삶고 거기 딸려오는 봉지스프로 육수를 대강 만들어 먹는 건데도 삶은 달걀 하나만 얹어 있으면 어찌나 맛있게 여겨졌던지. 할머니가 신김치 송송 썰어 참기름과 설탕을 약간 넣고 맨손으로 고추장과 함께 조물조물 국수에 비벼 주시던 비빔국수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어린 시절엔 동네마다 국수가게가 있어서 빨래를 널듯 긴 젖은 국수를 기다란 가로대에 걸쳐 높은 건조대에 척척 올려놓았다가 다 마르면 걷어서 잘라 팔았다. 그땐 쌀이 부족할 때라 혼분식을 장려하기도 했고 안 그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집마다 국수를 참 많이도 먹고 살았던 모양이다. 국수 심부름을 가는 것도 늘 내 차례였는데, 신문지에 크게 한움큼 싸준 국수를 사들고 오며 나는 한줄기씩 그 밀가루 국수를 뽑아 과자처럼 오독오독 끊어 씹어먹으며 즐거워했다. 엄마는 배탈난다고 질색을 했지만, 국수 삶는 걸 기다리는 동안 동생들과 나는 엄마 몰래 얼른 마른 국수 한두 줄기를 뽑아 씹으며 좋아했었다. 여름이면 우리 식구들은 냉면도 좋아했지만 콩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유난히 콩국수를 더 많이 해먹었던 것 같다. 학교 급식제도가 막 시작되고 있던 시절이라 그 땐 일주일에 한번씩 우유 대신 유리병에 든 두유가 빵과 함께 나오곤 했는데, 나는 지금이나 그 때나 단맛을 가미한 콩국물을 절대로 못먹는 반면(편식은 안된다며 담임선생이 억지로 먹였다가 다 토해버린 기억이 있다) 소금을 쳐 고소한맛이 더욱 강조된 콩국물은 몹시 좋아했다. 콩을 덜 삶으면 콩비린내가 나고 너무 삶으면 메주냄새가 나기 때문에 콩국수를 맛있게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엄마는 늘 푸념을 하면서도 매번 맛있는 콩국수를 만들어주셨던 것 같다. 몇해 전 나도 큰 마음 먹고 흰콩을 사다 삶아 손수 콩국수를 만들어보았지만, 콩이 옛날 콩이 아닌 때문인지 그 옛날처럼 고소하고 뿌듯한 맛은 결코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푹푹찌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도 점심끼니는 거의 언제나 국수다. 더욱이 마트에 나가보면 다양한 국수 종류는 물론이고 평양냉면 육수며 콩국물까지 1인분씩 봉지에 담아 팔고 있으니 금상첨화. 이런저런 브랜드 냉면을 죄다 사먹어 보니 굳이 완제품으로 비싸게 호화포장된 냉면을 세트로 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저렴하게 포장된 생냉면을 사고 제일 싼 봉지육수를 골라도 완성후의 맛은 거의 똑같다. 반면에 콩국물은 브랜드별로 가격과 맛의 차이가 심한 편인데, 딱히 내 입맛에 맛는 정말 고소한 콩국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무원이가 만든 콩국물이 *정원이네서 만든 것보다 낫더라. ^^

그저께 점심은 물냉면, 어제는 콩국수, 오늘은 크림스파게티. 그끄저께는 열무비빔국수를 해먹었을 텐데, 지난주에 사온 육수와 콩국물을 다 먹었으니 내일은 또 다시 비빔국수 차례. 연일 너무 더워서 입맛이 없으니 자꾸만 차가운 것만 찾아서 그러는지 계속 배탈기가 있어서 오늘은 일부러 스파게티를 해먹었는데도 속이 편하질 않다. 이어지는 밀가루 세례를 감히 내 뱃속이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더위와 스트레스에 심신이 지쳐버린 것일까. 그래도 확실히 국수는 식욕이 없는 와중에도 일단 입안에 넣으면 술술 잘도 넘어가니 신기하다. 말년에 이가 부실해 단단한 음식은 거의 못드셨던 우리 할머니가 유독 소면을 좋아하셨던 눈물겨운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밥먹기 귀찮은 심정으론 저녁끼니도 국수로 대충 때우면 좋겠구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일 점심때 비빔국수는 특히 맵게 비벼먹고 나면 늘어진 정신줄이 좀 팽팽해지려나. 국수 한 그릇 먹자마자 얼른 또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요즘의 나를 보면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인 건 맞는 듯도 한데, 왕비마마는 무슨 죄람. 고종황제도 냉면을 즐겨먹었다는 이야기로 위로를 해드려야 할까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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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의 가장 오래된 선풍기는 지금처럼 온통 몸체가 플라스틱이 아니라 튼튼한 철제 구조에 드르르륵 로터리식 손잡이를 돌려 20단계쯤 풍량을 조절할 수 있고, 회전조절 장치는 둥그런 날개판 뒤쪽의 목덜미에 배꼽처럼 달려 있는 것으로 아마도 상표가 <도시바>였던 것 같다. 그 선풍기는 어찌나 튼튼한지 30년쯤을 쓰고도 멀쩡했고 풍량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제일 느린 바람으로 틀어놓으면 밤새도록 바람을 쐬어도 문제가 없어 해마다 5월부터는 무조건 선풍기를 끼고 사셔야 하는 열혈남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당연히 110볼트 제품이라 트랜스로 감압을 해야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했으나 몇년 전까지도 멀쩡히 사용했는데, 그 선풍기가 어쩌다 우리집에서 사라졌는지 그 부분이 기억에 없다. 결국 망가지고 말았었나??
여름이면 방방마다 TV와 선풍기를 각자 돌려대는 건 우리집 식구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에어컨을 설치하고 난 뒤에도 우리집엔 선풍기가 늘 석 대는 완비되어 있었다. 에어컨은 두세 배로 뛸 전기요금을 감당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못견디게 덥거나 동생네 식구들까지 모두 와 좁은 집에서 득시글거릴 때나 트는 물건이니까.
사라진 <도시바> 선풍기만큼 오래되진 않았어도 아직 멀쩡한 우리집 선풍기 가운데는 이제 LG로 이름을 바꾼지 오래인 <골드스타> 선풍기가 있다. 금성, 골드스타에서 LG로 이름을 바꾼 게 최소한 10년은 넘은 듯하니, 그 녀석의 수명은 그 이상이란 얘기다. 작년 여름 끝무렵에 멀쩡히 돌아가던 날개가 깨져버리는 바람에 그만 버려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모델 번호로 LG 전자제품 AS센터 사이트를 찾아보았는데, 고맙게도 모델명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작년엔 그냥 날개 없는 선풍기를 잘 닦아 넣어두었고 올 여름이 시작되면서 나는 굳이 AS센터엘 가서 날개를 사다 끼웠다. 원래 여름마다 아버지는 제일 신제품이고 디자인이며 색깔도 화사한 LG 선풍기를 내방에 놓아 주셨는데, 이제 그건 왕비마마가 쓰셔야 할 것 같아 곧 골동품 반열에 들게 될 골드스타 선풍기를 내가 차지한 거다. 
그런데 이 선풍기가 요즘 들어 어째 좀 시원치를 않다. 큰 이상은 없는데 회전할 땐 멀쩡하다 고정만 시켜두면 뭔가 틱틱 걸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마감모드랍시고 몹시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런 미묘한 소리는 이상스레 내 신경을 긁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는데, 모니터와 컴퓨터 본체에서 뿜는 열기를 하루 열몇시간씩 견디려면 선풍기는 필수고 그렇다고 종일 에어컨을 틀자니 아침저녁으론 꽤 선선한 날씨에 나만 뭐하자는 짓인가 싶다. 
마감 스트레스 때문에라도 갑자기 확 열이 오르면 대낮엔 간간이 에어컨을 틀기도 하지만 컴퓨터 열기를 날려보내는 방향으로 고정시켜두는 선풍기의 존재는 밤낮으로 나에겐 필수적. 틱틱거리는 소음이 싫어 휘휘 회전시킨 선풍기로는 성에 안찬다는 얘기다.
하는 수 없이 어젠 또 하나의 선풍기를 꺼냈다. 망가진 <도시바> 선풍기의 대체품으로 사들였거나 어디선가 포인트 사은품으로 받은 듯한 선풍기엔 <더위사냥>이라는 제품명과 **해상 1억 배상책임보험을 자랑하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다. 산지 몇년 된 듯하지만 여전히 새것처럼 말끔해 보여 반색을 하며 선풍기를 작동시켰더니...
ㅋㅋㅋ 미풍 버튼을 누르면 날개가 용을 쓰듯 천천히 돌아가며 시동을 걸다가 한참이 지나야 제 속도를 내며 돌아간다. 거의 종일 틀어놓고 있으니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는 이 선풍기 갑자기 서버리면 어쩐다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예전엔 모든 전자제품을 수리해주는 <전파상>이 동네마다 있었지만 요샌 웬만한 전자제품 AS는 모두 자체 회사가 운영하는 곳에서 담당하니 <전파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 이렇게 이름 없는 회사에서 만든 전자제품은 어디에서 수리를 하라고? 싼맛에 사서 쓰다 고장나면 버리는 1회용이란 뜻인가?
틱틱 소리를 내는 <골드스타> 선풍기는 아마도 LG AS센터에 가면 수리를 받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대형 가전과 달리 선풍기는 들고 가서 수리를 받아야한다는 난점이 있어 과연 내가 그런 수고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집안내력상 아마도 쉬이 내다버리진 못할 거다. 최소한 회전으로 틀어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오래된 물건엔 어쩐지 이런저런 역사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선뜻 내다버리지 못하는 성향은 나의 우유부단함과 함께 혈통에 잠재된 DNA의 결과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식구가 30년 가까이 이 좁은 집에서 오래된 짐을 그대로 껴안은 채 살고 있지 않았겠지.
생각해보니 오래된 추억의 <도시바> 선풍기가 30년 넘게 여름을 지켰던 데는 솜씨 좋은 아버지와 전파상 아저씨의 거듭되는 손질이 주효했던 것 같다. 누렇게 변한 전선과 플러그 연결부분에 검은 테이프가 감겨 있던 게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드르르륵 둥근 손잡이를 오래 돌려야하는 그 <도시바> 선풍기가 여름마다 마루를 차지하고 있는 걸 창피하게 여기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나마 제일 오래된 <골드스타>가 완전히 고장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다. 겉보기엔 아직 멀쩡한데... 아직 10년은 더 쓸 수 있겠는데... 그러면서. 
노인들이 오래된 물건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건 자신의 처지를 물건에 투사하기 때문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망가지고 생채기 나 쓸모 없어지게 되어 외면받는 물건에서 늙고 병들어 가는 자신들의 종말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고쳐 쓰고 싶어 하거나, 그냥 끌어안고 산다는 의미다. 
나는 옛날부터 오래된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이었고 아직도 낡은 물건의 처지에 스스로를 투사할 만큼 늙은 건 아닌데도 어쩐지 이렇게 나이들어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오래 된 선풍기 하나 때문에 이렇게 구질구질 시시콜콜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만 봐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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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삶꾸러미 2009. 7. 21. 17:10

최근에 목도한 어떤 죽음, 아니 죽음 이후 산자들에게 남겨진 의식의 절차와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이 참 착잡했다. 확실히 장례는 망자보다, 남겨진 산자들을 위해 그것도 남들에게 뵈주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게, 최소한 흉하지 않게 죽음을 치러내려면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코미디 소재로 사용될 만큼 흔해진 상조회사들의 존재는 바로 그런 필요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상조회사들의 도움과 비용, 제례 준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의식이 장례라는 점이다.
혼례는 하객을 많이 부르지 않고 간소하고 조용히 치러도 의식 있는 이들에게 칭송받을 수 있으며 단 둘이서도 얼마든지 치를 수 있지만, 장례는 절대 그렇질 않다. 버젓이 배우자와 자식도 있고 친지들도 있는데, 문상객이 거의 없고 살뜰하게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드물어 운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망자와 가족들이 살아온 방식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들은 의례적인 품앗이가 싫어 안주고 안받겠다 여기며 살았을 지도 모르고, 단순히 반사회적인 성향 때문에 은둔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딱히 그들의 태도가 누구에게든 해악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말릴 도리도 없고 잘못이라고 여길 이유는 없다. 특히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데 죽음을 앞두고선 그런 삶의 방식이 주변인들에게 민폐일 수 있음을 이번에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인들의 좋은 일은 모른 체 해도 나쁜 일엔 모른체 하면 안된다는 옛말이 철저하게 옳다는 것도 비로소 새삼 깨달은 것 같다. 과거 조부모님, 외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까지 상을 치르며 나는 오히려 너무 많이 몰려드는 손님을 버거워했고 슬퍼할 겨를 없이 문상객 접대에 힘써야 하는 장례문화를 개탄했을 뿐, 그렇게 찾아주고 상주들의 곁을 지키는 문상객들의 존재에 깊은 고마움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막힐 정도로 한산하고 썰렁한 장례를 지켜보니 확실히 죽음도 사람의 일이기에 사람이 필요하며, 사람은 돈만으론 살 수 없는 복이고 재산이란 게 실감된다. 가끔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짜증스럽고 관계의 유지가 힘들어도 계속해서 <잘하고> 살아야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단순히 물질과 노동의 품앗이를 위해 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의 도리라는 것, 사람들에게 마음의 곁을 내주는 역사를 쌓아간다는 것,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 <선뜻> 지인을 지켜줄 진심을 얻는 것의 중요성을 무시해선 안되겠다는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은둔이 자타에게 모두 편리함이겠지만, 죽음 이후엔 민폐일 수 있다는 점은 사실 이번에 내게 아득한 충격이었다. 사후세계를 부정하든 않든,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든 알든, 죽음이 남겨진 이들에게 민폐인 삶이라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나. 앞으로 현대인들 대부분은 더욱이 독거노인으로 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데 과연 내가 <잘하고>살려고 노력하더라도 마지막은 민폐를 면할 수 있는 삶일까. 그건 장담할 수 없겠지.
삶은 살수록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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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했어요

삶꾸러미 2009. 7. 16. 12:46

일주일에 한번꼴로 장을 보러가는 집 근처의 OOO마트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낡은 상가 건물 1층에 있다. 재래시장과 마주보는 위치이기도 하고, 워낙 옛날 건물이라 지하 주차장 따위가 갖추어져 있을 리 없으니 건물 앞 도로에 구획이 그려진 노상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마트 바로 앞쪽 주차구획을 이용하면 무료 주차 확인 도장을 받아 처리할 수 있으므로, 뱅글뱅글 멀미나게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폐소공포증 비슷한 두려움에 젖을 필요도 없고 오히려 시간도 절약된다. 
내가 식탐이 많기도 하지만, 고른 영양분 섭취까지 신경써서 나름대로 메뉴를 짜 사들이는 일주일치 장보기의 양은 꽤나 거대하다. 무거운 건 배달을 시키고 신선식품만 먼저 들고오는데도 낑낑거려야할 때가 많으므로 나는 최대한 마트 입구에 가까운 주차공간을 찾는 편이다. 따라서 마트에 갈 때마다 만나는 공영주차장 요원 아저씨도 늘 동일한 분인데, 내가 그간의 긴 공백을 어렵사리 접고 드디어 끼적거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바로 이 아저씨다.

처음 이 아저씨를 만났을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길어야 1년 반 정도.
낯선 사람과 쓸데없이 말 섞는 걸 싫어하는 내가 처음 차를 세운 뒤 이 아저씨를 만나고 뜨악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기 때문이다. 마트 입구쪽에 차를 세우면 그간 다른 주차요원 아저씨들은 아무 말 없이 시간만 표시한 종이를 앞 유리창에 끼우거나, 그나마 친절한 분들이 "마트가냐?"고 묻고는 도장 받아올 종이 반쪽을 찢어 건네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일단 차가 접근하면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무조건 양팔을 휘저어 반색하며 주차를 돕고는, 차에서 내리면 이렇게 말한다. "잘 하셨습니다!" 이면도로에 계속 오가는 차들이 있으니 주차과정이 험난할 때도 있는데, 이 아저씨는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던져 주차를 도울 때가 있다. 저러다 차에 치이지 싶을 정도로...
그러고는 마트에 간다고 하면 "아유, 잘 오셨어요."라며 주차증 반쪽을 찢어주는데,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도 잊지를 않는다. 과잉 친절에 어색해지는 나 같은 사람은 얼른 "네"라고 대꾸하고 머쓱해서 장을 보러 도망치듯 들어가게 됐는데, 처음 장을 보고 나와서 나는 좀 짜증이 났었다.
그 아저씨의 일처리가 어쩐지 굼뜨고 느렸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찍어준 확인 시간을 초과하면 돈을 더 내야하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내 경우는 하도 장을 많이 봐서 대부분 시간도장을 넉넉히 찍어받기 때문에 주차증만 척 봐도 알텐데 이 아저씨는 주차증 시간과 자기 시계, 그리고 또 다른 장부에 적힌 기록을 꼼꼼이 확인하지 않고는 보내줄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늘 빨리빨리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에 길들여진 나는 몇분 안 되는 그 아저씨의 꾸물거리는 태도에 괜히 부아가 났던 것 같다. 실은 그게 일 처리의 원칙임에도 말이다. 처음엔 아저씨가 주차요원 초보라서 그러는 줄 알고 속으로 혀를 찼지만, 1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아저씨의 주차증 확인시간이 빨라지지 않은 걸 보면 그 분은 그냥 원래 그런 분이라는 의미다.
"아유, 넉넉하네요. 잘하셨어요."라고 또 한번 칭찬의 말과 함께 무료주차 확인이 끝나면, 그 아저씨는 또 열심히 오가는 차를 살피고 양팔을 휘저으며 내가 차를 빼기 좋도록 안내를 한다. 이면도로의 주차구획선을 떠나기까지, 제 아무리 운전과 주차에 베테랑이더라도 "오세요, 오세요!" "천천히 하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조심하세요." "잘하셨어요." "안녕히 가세요."로 이어지는 그 아저씨의 인삿말을 피할 도리는 없다. ^^
언젠가 한번은 그 아저씨가 잠시 화장실에라도 간 듯 옆 구역의 아저씨에게 주차증을 드리고 확인을 받아야했는데, 내가 차를 뺄 무렵 헐레벌떡 달려온 아저씨는 동료에게 "아유, 미안해요."라고 하더니 도장 찍힌 주차증을 확인해 장부에 끼우며 덧붙였다. "잘했어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늘 하던 자기 일에 <잘했다>는 칭찬을 들은 동료 아저씨의 표정이 궁금해진 나는 얼른 거울을 쳐다보았는데, 예상대로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칭찬쟁이 아저씨는 정말로 기쁜듯 싱글벙글.

어제도 장을 보러 다녀오며 나는 어린시절 숙제공책에 찍힌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은근히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그 아저씨의 익숙한 칭찬 3종 세트를 듣고 돌아왔다. 
"아유, 주차 잘하시네요." - 다른 차의 주차증을 발급하느라 미처 도와주지 못하는 새에 내가 냉큼  차를 대자
"잘 오셨어요." - 마트에 간다고 하니까
"아유, 넉넉하게 잘 받아오셨네요." - 30분 무료 도장 두개를 쾅쾅 받아온 나의 주차증과 유리에 끼워놓은 주차증에 적힌 시간과 자기 손목시계를 유심히 다 확인하고 난 다음에

도대체 그 아저씨는 어째서 그렇게 매사에 싱글벙글 감탄하고 칭찬하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일처리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인 것 같지만 타인에 대한 예의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그 아저씨를 처음엔 버럭 짜증스럽게 여겼고, 아직도 그 아저씨의 "잘하셨어요"라는 말에 민망하다는 생각이 크긴 하지만 나도 본받아야할 점이라는 건 분명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는데 말이지...
칭찬은커냥 입만 열면 뾰족한 꼬챙이로 콕콕 찔러대는 말만 뿜어대고 있는 초절정 까탈스러움을 떨쳐버려야하는데 참, 그게 쉽질 않다. 

오늘은 왕비마마한테 "잘했다"는 말을 최소한 3번은 해보겠다는 다짐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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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함

삶꾸러미 2009. 6. 15. 17:39

당신은 속설이나 미신, 사람들이 근거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이야기들을 잘 믿는 편인가, 아닌가? 누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대번에 <안 믿는 편이다>라고 대답<은> 할 것 같다.
현재 가장 널리 퍼져 있고 마케팅에도 이용되고 있는 듯한 <혈액형별 성격 분류>의 경우엔 정말이지 웃긴다고 생각하니까.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외향적이니 하는 게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어떻게 모든 인류의 대표적인 성격과 심리를 단순히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은 밖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다를 뿐, 온갖 심리와 특징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 성격이 드러나고 개발되는 경향은 환경과 교육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 국민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평생 자기 혈액형이 뭔지 모르고도 잘만 살아가는데, 혈액형별로 공부법, 성공법, 옷입는 법, 연애법까지 버젓이 엄연한 진리로 회자되고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보면 너무도 신기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도 어려서부터 혈액형별 성격 및 심리 유형에 노출된 나머지 그렇게 재교육되고 길들여지는 게 틀림없다. 내 주변에서도 참 많은 지인들이 혈액형 속설을 깊이 신뢰하며 친구끼리도 궁합과 코드가 서로 맞느니 안맞느니 할 때 혈액형을 들먹이다 나한테 쓴소리를 듣는다. 그래봤자 그들은 결국 "역시 언니는 A형이라 까다롭고 따지길 좋아해.."라고 일갈하며 내 말문을 막아버리지만.
물론 철석같이 믿진 않아도 재미삼아 보는 사주풀이라든지 타로점, 이름풀이 같은 기회를 나 역시 마다하진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 결과가 내가 믿고 싶은 방향이거나 놀랍게도 내 생각과 일치하는 경우, 감탄과 함께 희희낙락 역시 타고난 운명이었어, 라며 잠시 즐거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도 말로는 속설이나 미신을 안 믿는다고 하면서 뒷구멍으로 솔깃해 하는 의지박약인이란 얘기일 수도 있다. 뭐라는 거냐냐, 이랬다 저랬다.
어쨌거나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인 해리님의 전생과 관련한 포스팅을 보고 나도 재미삼아 내 이름 한자를 넣어 보았는데 그 결과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화면을 저장해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주 아버지 제사 때, 조카들이 대낮부터 깎은 밤이며 여러가지 제사 음식들을 먼저 먹고 싶어 안달복달을 하는 걸 본 엄마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그런 거 보면 귀신 없다는 소린 못한다니까...."
영문을 몰라 내가 설명을 요구하자 엄마는 예로부터 아이들이 제사 때 제사음식을 먼저 탐하면 혼백들이 와서 먹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아이들의 영혼이 가장 맑아 통하는 구석이 있는 거라나 뭐라나.
물론 논리적인 사고로는 상황이 빤히 짐작되는, 말도 안되는 미신이다. 옛날엔 당연히 제사음식들이 귀했을 테고, 일년에 겨우 몇번 보는 귀한 음식을 접한 아이들이 입맛이라도 다셔보려면 자정 이후에 지내는 제사때까지 기다려야 했을테니 얼마나 안타까워 엄마를 졸라댔을까. 그걸 본 어른들이 만들어낸, 조상의 혼백이 정말로 제삿날 찾아와 차려놓은 음식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합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짐작을 하면서도, 나 역시 제사를 지낼 때 정말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혼백이 와서 지켜보고 계시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으되 마음속으로는 정말로 그런 것처럼 인삿말을 되뇌이며 절을 한다. 성묘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고, "고수레~"라고 외치면서 땅신이든 부엌신이든 귀신에게 먼저 먹을 것을 바치고 그런 다음에 인간이 준비한 음식을 먹는 민간신앙도 꽤 그럴듯하고 재미나다 여겨 따라하는 편이다.
공포영화는 절대 못보고 보지도 않으며 인간을 괴롭히는 <무서운 귀신>이 있다는 건 믿지 않지만, 모든 사물에 혼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범신론엔 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학적인 사고로는 죄다 헛되다 손가락질해야 하는 것들임에도 그냥 내가 그때그때 느끼기에 그럴듯하면 귀가 솔깃하고 안 그럴듯하면 코웃음친다는 뜻이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별자리 운명이나 혈액형별 심리분석을 철저히 신봉하는 이들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내가 보기엔 100퍼센트 사기꾼이고 뚜렷한 증거도 있는 범죄자인데, 그런 사람을 <믿고> 한 나라의 지도자로 뽑기도 하는 세상에서 사람에 따라 어떤 믿음인들 그럴듯하지 않겠나. 결국 사람들은 그냥 <믿고싶은> 것일 뿐이다. 내 현재의 두뇌엔 정말로 놀 욕망과 돈 벌 걱정이 가득 차 있다고 믿고 싶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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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대법원에서 존엄사 권리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소송중이었던 환자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 같은데, 얼마 전 서울대병원에서도 말기암 환자의 경우엔 별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지 않을 존엄사의 범위와 관련법 제정 문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방향으로 진척이 있는 듯 해 기쁘다. 소모적인 중병으로 오래 앓지 않고 편히 자연사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사람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수명이 나날이 길어지면서 말년에 온갖 병마에 시달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맞게 되어 있지만, 자살을 제외하곤 그 운명의 순간을 자기 의지대로 결정할 방도가 없었다. 갑작스레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는 물론이고 이제껏 중병에 걸린 환자의 치료방향에 대한 결정권은 언제나 의사와 보호자의 몫이었다. 입원할 때부터 치료비를 담보할 수 있는 연대보증인을 반드시 세워야 하고, 아주 간단한 수술에도 각종 의료사고에 대한 온갖 책임을 다 짊어지겠다는 보호자의 동의서가 필수적인 이 나라 의료체계에서는 무엇 하나 환자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 의미도 없고 소모적이기만 한 연명치료를 무작정 이어가며 환자 본인과 가족들을 경제적,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뜨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치료비가 없거나 병상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살아날 가망성이 있는 환자의 목숨을 비정하게 끊어버려도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당연히 살인이고 파렴치한 범죄임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치료의 단계가 아예 불가능해져서 진통제로도 고통을 제대로 줄여줄 수 없고, 전적으로 기계장비에만 의존해 고통스럽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터라 죽음의 순간을 억지로 지연시키고 있을 뿐이라면, 그 환자가 바로 나라면 나는 환자의 인권따위를 운운하는 게 하찮게 보이는 중환자실의 숨막히는 공기를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을 것이고, 기꺼이 편한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가족의 입장에선 또 마음이 달라짐을 나 역시 잘 안다.
2년 전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멀쩡히 걸어다니며 농담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다시는 깨어나시지 않았을 때, 우리 가족들은 냉정하게 가망성을 낮춰 말하는 의사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우린 의사들을 믿느니, 일주일에 세번씩 꼬박 등산을 다니시던 울 아버지의 의지력과 건강을 믿는다며, 고집을 부렸다. 겨우 2주만에 뇌손상으로 적극적인 치료는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요양병원 같은 곳으로 모시고 나가라는 세브란스 병원측의 몰인정한 통보를 받고도 우린 아버지가 곧 깨어나실 것이기 때문에 믿음직한 의료진이 없는 요양병원 같은 곳은 절대 갈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온갖 연줄과 인맥을 동원해 다른 대학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기고 나서도 우린 희망을 버릴 수 없었고, 의사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든말든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의 장기 입원에 대비해야 한다고 의논을 했었다. 그땐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고, 그렇게 온갖 주사와 약물로 버티고 있으면 기적 같은 게 일어나 아버지가 조만간 번쩍 눈을 뜨실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나날이 약물과 주사의 양이 늘어났고, 체액순환이 거의 안되는 아버지의 체중도 늘어났다. 의사들은 <뇌사 직전의 상태>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포기를 종용하는 눈치였지만, 우리는 <아직 뇌사는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달라고 우기는 우리들에게 의사들은 그나마 아버지가 그 어떤 고통도 느끼실 수 없으니 다행이라는 식으로, 아버지를 우리가 쓸데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었다. 마지막엔 거의 협박처럼 들리는 말을 들어야 했다. 보호자들의 고집 때문에 무리한 치료를 계속하게 되면 나중에 임종후에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수도 있다고. 우리 아버지도 그 병원으로 옮긴 뒤부터 따져도 이미 10kg이나 체중이 늘었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의사들이 냉혹하게 퍼센티지로 말하는 가망성에 연연하지 않고 온갖 치료방법을 동원해 아버지를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다.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쉽사리 처음부터 포기할 가족이 어디 있겠나. 야속한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한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는데, 너무 많이 부어 평소의 모습과 퍽 달라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켠에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한다. 억지로 온갖 약물과 주사액을 주입하던 과정에서 혹시 아버지가 고통을 느끼셨던 건 아닐까, 내 마음 편하자고 심한 고집을 부린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죄송한 마음은 마음이고, 가족으로서 품는 희망은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쪽을 선택했더라도 후회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여한없이 노력하고 버텨보는 쪽을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환자의 입장이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버지가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 그곳 의료진들은 무의식인 환자의 치료를 편하게 하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버지에게 환자복도 입히지 않은 채 얇은 시트로 덮어놓기만 했었다. 중환자실에서도 홀로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체온이 수시로 오르내리고 해당 바이러스에 맞는 항생제를 찾는 게 시급한 상황이긴 했어도,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인권을 찾는 게 사치일 순 있어도, 평생 점잖으셨던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나는 몹시 안타까웠다. 내가 아무리 의식이 없는 환자라도 발가벗겨져 아무렇게나 의료진의 손길에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으니까. 품위 있게 죽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조목조목 따질 순 없지만,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우받으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기필코 나는 그 방법을 택하겠다. 타인이 주체가 되어 거의 의도적인 살인의 의미마저 풍기는 <안락사>라는 말 대신 <존엄사>라는 말이 쓰이게 된 배경에도 환자 본인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들어있을 것이다. 존엄사 결정권에 대한 엄밀한 법적 통제와 의사들의 정직한 직업윤리, 환자 및 보호자의 인권을 모두 감안한 도덕적인 존엄사의 존재는 정말로 환영할 일이다. 부디 엄숙한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이 제도가 맹목적인 종교 윤리를 앞세운 무작정 반대나 패륜의 도구로 이용되는 일 없이, 진짜로 품위있게 죽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이 되기를 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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