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함

삶꾸러미 2009. 6. 15. 17:39

당신은 속설이나 미신, 사람들이 근거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이야기들을 잘 믿는 편인가, 아닌가? 누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대번에 <안 믿는 편이다>라고 대답<은> 할 것 같다.
현재 가장 널리 퍼져 있고 마케팅에도 이용되고 있는 듯한 <혈액형별 성격 분류>의 경우엔 정말이지 웃긴다고 생각하니까.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외향적이니 하는 게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어떻게 모든 인류의 대표적인 성격과 심리를 단순히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은 밖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다를 뿐, 온갖 심리와 특징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 성격이 드러나고 개발되는 경향은 환경과 교육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 국민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평생 자기 혈액형이 뭔지 모르고도 잘만 살아가는데, 혈액형별로 공부법, 성공법, 옷입는 법, 연애법까지 버젓이 엄연한 진리로 회자되고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보면 너무도 신기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도 어려서부터 혈액형별 성격 및 심리 유형에 노출된 나머지 그렇게 재교육되고 길들여지는 게 틀림없다. 내 주변에서도 참 많은 지인들이 혈액형 속설을 깊이 신뢰하며 친구끼리도 궁합과 코드가 서로 맞느니 안맞느니 할 때 혈액형을 들먹이다 나한테 쓴소리를 듣는다. 그래봤자 그들은 결국 "역시 언니는 A형이라 까다롭고 따지길 좋아해.."라고 일갈하며 내 말문을 막아버리지만.
물론 철석같이 믿진 않아도 재미삼아 보는 사주풀이라든지 타로점, 이름풀이 같은 기회를 나 역시 마다하진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 결과가 내가 믿고 싶은 방향이거나 놀랍게도 내 생각과 일치하는 경우, 감탄과 함께 희희낙락 역시 타고난 운명이었어, 라며 잠시 즐거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도 말로는 속설이나 미신을 안 믿는다고 하면서 뒷구멍으로 솔깃해 하는 의지박약인이란 얘기일 수도 있다. 뭐라는 거냐냐, 이랬다 저랬다.
어쨌거나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인 해리님의 전생과 관련한 포스팅을 보고 나도 재미삼아 내 이름 한자를 넣어 보았는데 그 결과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화면을 저장해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주 아버지 제사 때, 조카들이 대낮부터 깎은 밤이며 여러가지 제사 음식들을 먼저 먹고 싶어 안달복달을 하는 걸 본 엄마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그런 거 보면 귀신 없다는 소린 못한다니까...."
영문을 몰라 내가 설명을 요구하자 엄마는 예로부터 아이들이 제사 때 제사음식을 먼저 탐하면 혼백들이 와서 먹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아이들의 영혼이 가장 맑아 통하는 구석이 있는 거라나 뭐라나.
물론 논리적인 사고로는 상황이 빤히 짐작되는, 말도 안되는 미신이다. 옛날엔 당연히 제사음식들이 귀했을 테고, 일년에 겨우 몇번 보는 귀한 음식을 접한 아이들이 입맛이라도 다셔보려면 자정 이후에 지내는 제사때까지 기다려야 했을테니 얼마나 안타까워 엄마를 졸라댔을까. 그걸 본 어른들이 만들어낸, 조상의 혼백이 정말로 제삿날 찾아와 차려놓은 음식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합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짐작을 하면서도, 나 역시 제사를 지낼 때 정말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혼백이 와서 지켜보고 계시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으되 마음속으로는 정말로 그런 것처럼 인삿말을 되뇌이며 절을 한다. 성묘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고, "고수레~"라고 외치면서 땅신이든 부엌신이든 귀신에게 먼저 먹을 것을 바치고 그런 다음에 인간이 준비한 음식을 먹는 민간신앙도 꽤 그럴듯하고 재미나다 여겨 따라하는 편이다.
공포영화는 절대 못보고 보지도 않으며 인간을 괴롭히는 <무서운 귀신>이 있다는 건 믿지 않지만, 모든 사물에 혼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범신론엔 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학적인 사고로는 죄다 헛되다 손가락질해야 하는 것들임에도 그냥 내가 그때그때 느끼기에 그럴듯하면 귀가 솔깃하고 안 그럴듯하면 코웃음친다는 뜻이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별자리 운명이나 혈액형별 심리분석을 철저히 신봉하는 이들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내가 보기엔 100퍼센트 사기꾼이고 뚜렷한 증거도 있는 범죄자인데, 그런 사람을 <믿고> 한 나라의 지도자로 뽑기도 하는 세상에서 사람에 따라 어떤 믿음인들 그럴듯하지 않겠나. 결국 사람들은 그냥 <믿고싶은> 것일 뿐이다. 내 현재의 두뇌엔 정말로 놀 욕망과 돈 벌 걱정이 가득 차 있다고 믿고 싶은 것처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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