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2011.10.18 아흔개의 봄 4
  2. 2011.08.26 캘리포니아 우리문화나눔회 돕기 11
  3. 2011.07.11 결혼식 하객 유형 10
  4. 2011.07.10 출생의 비밀 1
  5. 2011.05.12 카네이션 9
  6. 2011.04.15 누가누가 잘하나 7
  7. 2011.04.12 출판 외주자와 프리랜서 3
  8. 2011.01.04 인지상정 14
  9. 2010.11.20 환상깨기 4
  10. 2010.10.20 삼겹살과 여드름 5

아흔개의 봄

삶꾸러미 2011. 10. 18. 20:50

우울증이 심해지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엄마의 자학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는 쓸모없는 자신을 어디에든 '갖다 버리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매달 후원금을 보내시던 불교 간행물 <연꽃마을>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을 콕 찝어서 그리로 보내고 너는 자유롭게 편히 살라는 말을 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얼마전 엄마는 얼마 되지도 않는 월 후원금 자동이체를 끊어버렸다. ㅋㅋ) 그 말은 곧 엄마가 가장 피하고픈 상황이 어딘가에 버려지는 것이며, 낯선 곳에 버려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깃든 투정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년이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칠순을 넘기면서 엄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다. 얼마 전엔 나 몰래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노인건강관리 프로그램에서 치매검사도 하고 왔단다. 한달에 한번 꼬박꼬박 정신과의와 상담을 하고 우울증 약을 먹는데도 안심이 되질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건 다 잘했는데 단어 세 가지 기억했다 나중에 말하기 문제를 하나도 못 맞혔다면서 아쉬워하긴 했지만, 검사 결과 '양호' 판정을 받아온 엄마는 자기 치매 아니라면서 몹시 기뻐했다. 

가끔씩 내가 엄마에게 구구단을 외게 시키고, 불쑥 덧셈 뺄셈 문제를 내는 이유도 자꾸만 깜빡깜빡 잊는 건망증이 치매 초기증상일까봐 벌벌 떠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함이다. 헌데 멀쩡한 젊은 사람들도 잠 잘 못자고 컨디션 안좋으면 말도 헛나오고, 구구단은커녕 단순한 셈도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일조량 떨어지면서 해마다 몹시 불안불안 조마조마하게 넘기는 가을에 접어들며 심신의 컨디션이 약간 떨어진 엄마가 불면과 건망증을 잠시 겪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지어 나는 잠 잘 자고 컨디션 좋을 때도 암산이나 돈계산 같은 숫자와 관련된 사고는 단순한 것조차 잘 하지 못하며, 가끔씩 손에 멀쩡히 들고 있는 차키나 휴대폰을 찾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인간이다. 치매초기를 의심하려면 차라리 나를 의심해야지, 수십년 전 사건부터 쓰레기 배출요일까지 나보다 더 잘 꿰고 있는 엄마는 염려할 게재가 아니다.

다른 노인들은 청년처럼 펄펄 뛰어다니실 나이인 71세에 울 엄마가 너무 엄살(?)을 떠는 것 같아 못마땅해 툴툴거리지만 내심 나도 겁이 나긴 한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아버지 세분은 앓지도 않으시다가 졸지에 쓰러져 운명하셨고, 꽤 오래  병을 앓으신 외할머니도 끝까지 정신은 거의 말짱하셨기 때문에, 우리 엄마도 자잘한 지병은 있으시되 정신은 끝내 혼미해지지 않기를 바라고는 있으나 건강에 관한 한 누구도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게다가 노인성 우울증이 치매로 이어지는 확률이 꽤나 높음(치매 초기가 노인성 우울증으로 시작된다던가?)을 알기에 마음을 놓을 순 없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은 울 엄마의 우울증이 45년 역사를 넘긴 지병이라 노인성 우울증과는 양상이 다르고 (사실 엄밀히 말해 울 엄마는 조울증이시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오고 있으며, 평생 비빌 언덕이셨던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오히려 더 잘 견뎌내고 계셔 4년째 심하게 앓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못된 딸년인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우환에 대비하여 이미 방향도 세워놓았다. 요즘은 치매노인 부양을 돕는 데이케어 센터가 동네마다 생겨나기도 했으므로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보도록 노력하되, 힘에 부친다고 생각되면 당연히 요양병원에 모실 거라고.
 
하지만 요양병원에 방치하고 더는 돌보지 않는 수많은 노인 환자 문제를 언론에서 접하거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일부 요양병원의 운영실태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되면 이미 일어나지도 않은 일,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마치 결국엔 우리 엄마도 치매에 걸릴것임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아닌가 말이다. 80세 이상 노인의 30-40%가 치매를 앓는다는 통계를 온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든 미리 온갖 가능성을 상상하고 미리 걱정하는 나의 태도는 자꾸만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해두어야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짓는다.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내비친 적 없는데도, 엄마가 가끔씩 우울증이 도졌을 때 들먹이는 '내다 버려라' 레퍼토리를 보면 엄마는 당신 딸년이 능히 그럴 수  있는 '냉정한' 인물임을 미리 알고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병증이 좀 나아지고 나면 다시 "엄마는 너 없이는 못산다"는 절박한 레퍼토리로 방침을 바꾸시는 것을 봐도 그런 쪽으로 심증이 굳어진다.

요양병원에 병든 부모 수발을 내맡기는 것을 '현대판 고려장'에 비유하는 세태에 우리 엄마도 나도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몇년전 중풍에 걸려 요양병원 신세를 꽤 오래 지고 있는 친구분을 더러 면회하러 다녀본 엄마도, 거동 못하시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더니 물리치료와 집단생활 덕에 오히려 건강을 상당부분 되찾으셨다는 친구의 고무적인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 나도, 요양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이 직접 살뜰히 모시는 것만 하겠나, 하는 인습적인 사고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지인 한분은 10년째 거동 못하시는 어머니를 간병인과 함께 집에서 모시고 있다. 자기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워낙 언사가 요란하시어 단체생활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이유인데, 내가 보기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간병인이 돌아가는 주말에 꼬박 하루 혼자서 간병을 하고 나면 심신이 완전히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서 왜 그 힘든 끈을 놓지 않으려는지. 하기야 그분은 나 역시 자기 같은 상황이 되어도 절대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나는 그 반대를 결심하고 장담하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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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뜬금없는 홍보성 글이라 민망하지만, 한번 해보니 얼굴에 철판깔기 그리 어렵지도 않은 듯하여 그냥 저지른다. 새벽이라 정신도 몽롱하겠다... -_-;

아는 분(실은 친구 남편이시다)이 LA에서 NGO활동(KIWA라는 단체임)을 오래 해오고 계신데, 최근 역점사업이 한인교민들을 위한 생활공동체같은 나눔농장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간 순전히 기부금으로 농장부지 마련에 힘을 써온 끝에 7만불이 모였지만 아직은 기금이 많이 모자란 상황이고, 그 타개책으로 기부금 대신 <희망벽돌 쌓기>라는 이름으로 씨앗기금 출연을 하고 있단다. 간단히 말해서 벽돌 한장(2천 달러 이상)씩 품앗이를 하듯 2년간 무이자로 빌려주시는 분께, 정확히 2년 후 원금을 갚겠다는 뜻이다. 씨앗기부자들에게는 일년에 몇번 농장 내 숙소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고(이거 핑계 대고 놀러가야지!),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하는 일종의 담보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래는 메일로 받은 제안서 일부에 적혀 있는 혜택 부분.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에게 고향 같은 공간을 마련해보겠다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인 것 같다. 문제는 한달 아내로 기한이 상당히 촉박하다는 것. 십시일반으로 마지막 벽돌을 쌓을 수 있도록 주변인들에게 널리 알려달라는 취지에서 나한테까지 연락이 닿았다. 도대체 뭘 믿고 이런데 투자를 하라는 건지 빗발치는 비난이 예상되는 것도 같지만, 친구든 친척이든 캘리포니아쪽에 이민하신 분들을 주변에서 찾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에 무례를 무릅썼다.

이민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탓이겠지만 LA에 가보면 코리아타운이라고 해봤자 한국 상점들이 군데군데 모여있을 뿐 진짜로 고향의 느낌 따위는 전혀 없다. 반면에 일본인들의 리틀도쿄 거리엘 가보면 확실히 다르다. 심지어 일본 이민사 박물관도 있더라니까!(궁금해서 들어가봤는데 친절한 일본인 할머니가 끝까지 쫓아다니며 설명을 해주더라 -_-;) 한인공동체는 세계 어느 지역엘 가든 교회가 아니고선 좀체 결집되지 않는 것 안타까웠는데, 이런 나눔농장 같은 움직임이 있다는 게 나는 그저 반갑다.

내가 제대로 설명을 잘 했는지 모르겠는데, 더 궁금한 게 있으신 분들은 우리문화 나눔회 사이트(www.nanum.us) 게시판에서 직접 확인해보셔도 좋을듯. 사이트 정비한지 얼마 안되는 듯, 단체 홍보내용은 많지 않지만 게시판엔 사업내용과 요지가 잘 적혀 있다. 아래는 농장 위치와 주소가 들어 있는 제안서 부분이다.

요즘 부쩍 방문자수가 많아서 두렵고 불편했는데 의외로 그 덕을 캘리포니아에 계신 분들이 보게 될지 어쩔지 모르겠다. 사기극은 절대 아님을 보장하는 바이니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참여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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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결혼식에 참석한 횟수가 열손가락도 채우지 못할 만큼 드물다는 이웃 블로거의 글을 읽고 문득 생각났다. 결혼식 하객 유형을 분류한다면 몇 가지나 될까? 이제껏 결혼식을 다닌 횟수가 설마 백번은 안되겠지 싶으면서도, 암튼 다분히 풍부한 결혼식 하객 경험을 바탕으로 유형을 분류해봤다.

첫째로 다짜고짜 식당 직행형.
주로 나이든 남자 어르신들이 이에 속한다. 혼주에게 악수로 인사를 건네고 축의금을 접수한 뒤엔 예식은 본체만체 곧장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대개 다 이런 분들이라 오래 전 동생들 결혼식 두번 다 피로연장 출입을 예식 시간보다 한두시간 일찍부터로 정했었다. -_-;;
심지어 무대뽀 아줌마가 된 내 친구들 중에도 예식은 뭘 똑같은 걸 굳이 보냐고 먼저 식당에 가서 자리부터 잡고 있는 이들이 있으며, 사실 나도 관광버스 대절해 내려간 어느 지방 예식장에서 예식 보기 전에 밥부터 먹은 적이 한번 있다. 버스가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주최측에서 아예 그러라고 권했다. ㅎㅎㅎ 그나마 요샌 호텔 예식이 많아 다짜고짜 식당으로 직행하려야 할 수가 없으니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둥근 테이블에 앉아 애꿎은 떡과 음료수만 축내시는 어르신들 꽤 많이 봤다. ㅋㅋ

둘째, 거의 들러리형.
신랑신부의 가장 절친이 하는 역할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들러리를 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이렇게 이름을 붙였으나 서양식으로 드레스랑 턱시도 입혀 두셋씩 들러리 세우는 요란한 결혼식도 두어 번 본 적 있다.) 신랑의 경우는 사회를 맡아 주례 선생님 챙기는 것까지 신경써야 하고(은사님인 경우는 직접 모시러도 가더라!), 신부의 경우는 부케를 받거나 이른바 '가방모찌'가 되어 소지품 및 신부대기실에서 받는 축의금, 선물을 챙긴다. 한두 번 해봤는데 아주 못할 짓이다. 덜렁거리는 인간이 행여 신부 가방 잃어버릴까봐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머리가 욱신거렸던 기억이 있다. 이젠 늙어서 아무도 시킬 생각을 안하니 정말 다행.

셋째, 착실 관람형.
일찍 도착해 신랑신부랑 사진도 찍고 예식장 안에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착실하게 관람하는 유형이다. 대체로 끝까지 남아 사진을 찍거나 예식 끝낸 신랑신부에게 수고했다고 인사까지 건네는, 그야말로 모범생 하객이다. 이십대까지 나도 이런 모범생 하객 유형이었던 것 같다. 받을 사람 없으면 막 부케도 받아주고...  -_-a
요즘 호텔형 예식은 어쩔 수 없이 모든 하객을 착실 관람형으로 만드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밥을 먹으려면 예식을 지켜봐야 하잖아! 하기야 아주 늦게 참석하면 구석자리에 앉아 코스요리를 헐레벌떡 단번에 펼쳐놓고 먹는 수도 있더라마는;;

넷째, 정밀 분석형.
세번째인 착실 관람형과 매우 비슷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이유는 인생의 관록을 바탕으로 결혼식 자체를 찬찬히 품평하며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주로 아주머니 하객들이 많은데 떼로 몰려 앉아서 신랑신부 인물이 어떻네, 시어머니나 친정 어머니 관상이 어째 보이네, 한복이며 화장의 정도, 전체적인 친척들의 인물분석까지 대략적으로 끝낸다. 이런 분들 근처에 앉으면 의외로 결혼식이 아주 즐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ㅋㅋㅋ

다섯째, 병풍수다형.
예식장에 들어가기는 하되 하객석에 앉지는 않고 뒤쪽 벽에 병풍처럼 늘어서서 대충 예식을 보다가 수다도 떨다가 웅성웅 소란함을 유도하는 형이다. 요즘의 내가 주로 이 유형에 속하는 듯 ^^;; 굳이 친하지 않아 친구들 사진 찍을 때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엔 예식이 끝나자 마자 피로연장으로 향한다. 호텔형 예식의 경우엔 제일 구석자리를 선호하며, 그러다 메인홀엔 못들어가고 별실에서 스크린으로 결혼식을 지켜보는 것도 전혀 섭섭하지 않다. ㅋㅋ

여섯째, 의식 알레르기형.
결혼식에 참석하긴 했으되 굳이 예식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없어 식장 밖에서 어슬렁거리나, 그렇다고 곧장 피로연장으로 가는 것도 아니어서 나름 방황한다. 종교적 의식이 행해지는 결혼식인 경우 이런 사람들은 많이 늘어난다. 특히 일어났다 앉았다 여러번 하객을 괴롭히는(?) 성당 혼배성사나, 특정 목사님의 예배가 길어질 것이 예상되는 교회 결혼식에서 두드러진다.(대형 교회 결혼식의 경우 나도 이 유형에 속하는 때가 많았다. 신부님 주례사는 참겠는데 목사님 특유의 번드르르한 목소리를 나는 좀체 못견디겠다.) 굳이 종교의식이 아니어도 천편일률적인 절차와 광대놀음 같은 혼례식 자체가 못마땅하다며 일부러 안보는 사람도 있다. 그럼 부러 왜 왔느냐고 물으니 신랑신부에게 예의상 참석이라고;; 

일곱번째, 알뜰실속형.
이왕 가는 결혼식 본전(?)은 빼야한다는 경제관념에 충실한 하객이다. 주로 직장 동료들 가운데 이런 문화가 많은 것 같은데 결혼식에 갈 때는 반드시 온 가족을 동반해 주말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데 주로 목표를 둔다. 보통 배우자와 아이둘, 네 식구가 모두 축하하러 가는 식이다. 축의금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스스로 이런 행태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거나 품앗이로 여긴다. ^^;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은 어디까지나 옵션이다.

여덟번째, 순수 품앗이형.
나무님이 알려주셔서 덧붙인다. 초대를 받긴 했으니 안 갈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축하한다기보다는 그간의 마음 빚을 갚는다거나 명목상 인사치레를 한다는 데 의의가 크다. 내가 아는 사람의 경우 이럴 땐 요즘 직접 안 가고 축의금 봉투만 인편에 보내거나, 송금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어른들 대신 참석하는 경우 번듯하게 차려입고 가서 그럴싸한 인삿말도 전하며 '얼굴도장'을 찍은 다음 봉투를 접수한 후 얼른 도망친다. 간간히 어른들에게 잡혀서 억지 밥을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 요망.

으음.. 내가 생각해낸 건 이 정도. 또 어떤 유형이 있을지 이웃분들의 기탄없는 아이디어 제공 바랍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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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삶꾸러미 2011. 7. 10. 04:25

제목이 어째 좀 낚시 같아서 찔리지만 우스개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대단히 식상한 소재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출생의 비밀이라는 장치가 여전히 드라마에서 종종 이용되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일이 꽤 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무 해, 서른해 쯤 친부모라 굳게 믿고 살아온 가정에서 갑자기 네 생모나 생부는 따로 있단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혹시 모를 상처나 방황을 피하기 위하여 온 친족이 공모한 경우라면 이해보다 배신감이 앞서지는 않을까. 비밀로 감춰왔던 사연에 대해서, 그간 통 몰랐던 존재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싶어질 텐데, 삽시간에 몰려드는 궁금증과 호기심과 의문은 어떻게 감당할까. 그간 친부모로 알고 있던 각별한 관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까. 과거 상황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이성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충격이 나중에 한꺼번에 몰려들진 않을까. 주변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없었던 일처럼 못들은 듯 시치미를 뚝 떼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제 밝혀졌으니 스스럼없이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까...

이미 수없이 많은 드라마, 예술 작품에서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주인공의 모습을 참 많이도 본 것 같은데, 저 많은 의문 가운데 무엇 하나도 확실하지 않으니 계속 마음이 쓰여 아무것에도 집중이 되질 않는다. 벌써 수십년째 차례 때마다 지방도 없이 누군지 특별한 설명도 없이 맨 마지막에 올렸던 메밥이 그분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제는 그들에게 말해주어도 된다는 사실이 홀가분하면서도 차마 알은 체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가슴이 저린다. 말로는 괜찮으니 염려 말라지만 그 속을 본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까. 놀라운 진실을 전해들은 밤을 지내고 지금쯤은 잠이 들었을지, 혹시 상념에 젖어 계속 뒤척이고나 있는 건 아닌지. 인간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믿음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의문만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라 답답하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공간에 끼적이고 앉았는 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고.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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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삶꾸러미 2011. 5. 12. 14:47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달아드리거나 사다드리는 건 어째 좀 쑥스럽고 민망했다. 꽃으로만 따져도 카네이션은 내눈에 별로 안 예쁘다. 부모님도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고 출근하는 걸 자랑스레 여기는 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카네이션을 선물했겠지만 그 이후로는 현실적으로 선물만 내미는 게 편했다. 혹시 꽃을 사더라도 깃에 다는 용이 아니라 바구니째 놓고 보는 쪽을 선호했고. 꽃을 달고 나다녀야 하는 민망함에서 놓여나 부모님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동생들이 결혼을 한 뒤 나는 아예 카네이션을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올케들이 다 알아서 했으니 말이다. 조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꽃까지 종종 색종이로 만들어와 가슴에 달아드렸던 것도 같고... 암튼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이제 동생들 몫이라고 제쳐두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카네이션이 미학적으로 그리 예쁜 꽃은 아니란 건 다들 인정하는 모양인지 카네이션 바구니는 해를 거듭할수록 달라졌다. 내가 카네이션 바구니를 사올 때만 해도 빨간 카네이션에 안개꽃을 약간 꽂은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더니 올케들이 어버이날 꽃을 대기 시작하며 카네이션과 안개꽃에 장미가 혼합되어 화려해졌다. 언제부턴가는 다른 작은 꽃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기야 수년 전부터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만드는 양상이 달라졌다. 꽃을 한 종류로 하던 경향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꽃을 아름답게 섞어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카네이션 꽃바구니에도 당연히 그런 추세가 적용됐을 것이다.

덕분에 더욱 아름다워진 어버이날 카네이션에 해마다 감탄해왔는데 올해는 정점을 이뤘다. +_+ 두 동생이 가져온 앙증맞은 꽃바구니는 똑같이 카네이션을 활용했으면서도 분위기가 아예 달랐다. 카네이션 별로 안 예쁘다고 툴툴대던 나의 편견이 교정될 정도였다. 다량으로 제작판매하는 바람에 신선도가 떨어져 그 아름다움이 오래가진 못했지만 어차피 화무십일홍이랬다(잘하면 2, 3주일도 거뜬한 국화는 예외다 ㅋㅋ). 토요일부터 사흘간 한껏 예쁜 자태를 자랑하다 푹 고꾸라져버린 꽃들을 빼버리고 남은 것들만 다시 추려 유리병에 꽂아놓았는데 식탁 센터피스로 아주 딱이다. 밥 한 숟가락 먹고 꽃 한번 쳐다보고 반찬 한번 집어먹고 벌어진 봉오리 한번 쳐다보고... 서양사람들이 정찬 식탁에 왜 꽃을 두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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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오후, 거실쪽 TV에선 어김없이 동요가 들려온다. <누가누가 잘하나>를 하는 시간이다. 채널 충성도가 대쪽같은 영자씨가 꼭 놓치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는데 <누가누가 잘하나>는 그 가운데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41년생인 영자씨의 어린시절 소원이 <누가누가 잘하나>에 뽑혀 나가 상을 타는 것이었다고 하니 프로그램의 역사가 정말 오래 됐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반 친구가 이 프로그램에 나가서 예선을 통과해 TV에 나왔던 적도 있다. 비록 상은 타지 못했지만 그 친구는 한동안 교내 스타였다. 영자씨는 본인이 못 이룬 소망을 자식들이 이루어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지만 우리 삼남매는 일단 노래실력을 제쳐두고라도 그런 데 나설 만큼 숫기 있는 아이들이 못됐다. 합창할 때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처지에 감히 독창이라니. 어린시절 TV에서 <누가누가 잘하나>가 방영되면 영자씨는 니들도 저기 나가면 좋을텐데, 라고 몇번 아쉬워 했지만 자식들의 깜냥을 알고 쉽사리 포기했다. 그저 동요를 따라부르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듯했고, 지금도 못말리는 동요 사랑은 여전하다. 

영자씨는 장래 희망이 한때 성우였을 만큼 목소리도 고운 편이다. 음치는 아니라서 옛날 동요는 거의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알고 불러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심한 박치다. TV를 보며 동요를 따라 불러도 늘 혼자 뒤쳐지면서 숨차다고 막 짜증을 낸다. 본인도, 자식들도 <누가누가 잘하나>에 못나간 한이 어찌나 깊은지 영자씨는 손자들한테도 잠시 희망을 품었었다. 문제는 손녀손자들이 아주 잠깐 동요를 즐겨부르다 이내 가요로 관심이 넘어가는 바람에 <누가누가 잘하나> 같은 프로그램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금요일 오후가 되면 손녀딸한테 전화를 걸어 <누가누가 잘하나> 하니까 니들도 좀 보라고 종용하곤 했는데,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누가누가 잘하나>에 어린이만 출연하는 게 아니라 아무나 다 나온다. 동요를 좋아하는 애어른이 연합으로 가족 팀을 이루어 나오기도 하고, 할머니나 대학생이 혼자 나와 동요를 부르기도 한다. 평생 염원을 품었던 영자씨는 옳다구나 싶었던지, 언젠가 "우리도 노래 하나 연습해서 저기 나가면 저 사람들보다 잘하지 않을까..."라고 말을 흘렸다. 당연히 나는 펄펄 뛰었다. 창피하게 온 가족이 TV엘 나가서 노래를 부르자고요??? +_+ 동요야 요즘 아이들에게도 길이길이 전해야할 문화유산(?)이라고 나도 동감한다. 동요보다 유행가를 더 잘 부르는 요즘 아이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지만 동요 부르기 운동을 위해 직접 나설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영자씨의 노래솜씨는 결단코 '대회'에 나갈 만한 수준이 아니시라고요! 가족 중창단으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우린 도무지 구성원이 안나온다. 대학시절 노래 깨나 한다고 껄렁댔던 동생들은 둘 다 혼자 질러대는 스타일이지 결코 조화로운 합창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니고, 올케들도 음치를 면한 정도일 뿐 대회 재목은 아니다. 집안 내력 따라 숫기 없는 조카들은 또 어떻고!

그러고 보면 영자씨는 동요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몇년 전까지는 구청에서 하는 노래교실도 꽤 오래 쫓아다녔다. 아무리 노래교실을 다니며 새 노래를 익히고 연습해도 그놈의 고질적인 박자 틀리기는 변함없었지만서도.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같은 다른 노래 프로그램도 열심히 보는 편이지만, 영자씨가 노래를 따라부르기까지 하는 열정을 드러내는 건 어디까지나 <누가누가 잘하나> 하나 뿐이다. 그러니 내가 보기에 결론은 하나다. 중간에 TV에서 사라졌다 다시 시작된 <누가누가 잘하나>가 앞으로도 계속 방영되어 영자씨의 동요 열망을 일부나마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 다음엔 이왕이면 영자씨가 제일 좋아하는 동요 '오빠 생각'을 누가 나와서 불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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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님 블로그에 갔다가 알게 된 출판 외주자 실태파악 설문조사.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있을 뿐 거의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출판계의 무수한 외주자들을 어떻게든 하나로 묶어 권리의 목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름도 낯선 <한국외주출판인회의>라는 단체도 있대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설문조사가 이루어진다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도 일단은 대강의 '실태' 파악이라도 된다는 게 고무적인 느낌이다. 얼핏 들여다보니 편집 외주자들이 제일 똘똘 뭉쳐 활동하는 것 같다. 번역하는 사람들은 바쁜 일정 때문에 일감을 못맡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일이 거의 드물다. 그런데 편집 외주일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단행본이든 잡지든 1교, 2교, 3교를 서로 나눠 보기도 하고, 본인 일정이 안되면 다른 지인들에게 얼른 비상연락을 취해 인력을 확보해준다. 아예 외주자가 처음부터 단행본의 책임편집을 맡아 정해진 제작비 내에서 비용을 집행하는 이도 있다. 그런 경우는 사업자 등록증을 내서 하는 엄연한 단독 사업이다.

그에 비하면 번역자들은 정말 모래알처럼 흩어져 은둔하며 사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얼떨결에 출판사 행사에 참여했을 때 담당자가 그랬다. 50여명의 번역자들에게 초청의사를 밝혔으나 오겠다고 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혔다고. 번역하는 분들은 대개 집밖에도 잘 안나오는 히키코모리 같다고. 그런 자리를 왜 내가 나갔던고 나도 무릎을 꼬집으며 후회했었다. 확실히 나를 제외하고 그날 만난 번역가들은 대외적인 활동이 활발한 분들이었다. 매체 인터뷰 같은 데서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유명인이거나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거나 두개 이상의 언어를 번역하는 멀티플레이어거나... 불어나 독어를 번역하는 실력파 가운데선 영어도 같이 번역하는 분들도 꽤 있다. 영어권 단행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어/독어 번역일이 적어 어쩔 수 없노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나 같은 사람에겐 밥그릇을 다투는 경쟁자다. 그리고 책이란 게 편집과정을 거쳐 탄생되는 터라 번역직후의 생원고를 볼 기회가 없으니 웬만해선 다른 번역가의 실력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 난감하다. 1, 2, 3교 교정지만 딱 보면 편집자의 역량을 알 수 있다는 외주 편집자의 경우와는 다르다. 도무지 연대가 안되는 성질의 일이랄까. 그래서 사실 나는 이런저런 번역가 모임에 들라는 조언을 죄다 거절하고 살았다. 무슨무슨 협회에 들어 설렁설렁이든 열심이든 회원 활동을 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죄다 나 같은 생각만 하고 사니 번역과 번역가의 지위를 바라보는 출판계의 시선과 대우가 크게 달라질 리 없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나는 출판 외주자 프리랜서들의 연합과 단체행동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자기 이름을 옮긴이로 인쇄할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아주 저렴하게, 아니 공짜로도 번역을 하겠다는 의욕 넘치는 이들이 세상엔 아직도 많고, 낮은 단가에라도 일단 생계를 위해선 일감 끊기는 일 없이 지속적인 작업을 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니까. 그렇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는 건 알기에 우선 실태파악이라도 해보자는 움직임에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에라도 출판 외주자 노동조합 같은 게 생겨나 권익이 제대로 보호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나. (당장 떠오르는 건 주변에서 죄다 내용증명 보내라고 부추기는데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 출판사의 미출간 원고료 미지급건  +_+)

어쨌거나 현재의 일과 대우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느냐, 마감때 하루 일하는 시간은 몇시간이나 되느냐, 월평균 수입은 얼마냐, 외주일을 끝내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를 느낀 적이 있느냐, 외주 일감에 대한 급여를 떼먹힌 적이 있느냐 따위의 설문에 답변하며 문득 서글퍼지기는 했지만 아무튼 퍼질러 앉아 있기보다는 손가락이라도 행동에 참여해보자는 취지로 여기에 퍼다놓는다. 출판 번역에 종사하고 계신 이웃들도 혹시 설문에 참여하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번역뿐만 아니라 편집, 디자인, 글, 그림, 대필, 원고 입력, 영업 등 분야도 다양하다니 가끔 눈팅만 하고 가는 프리랜서 두 J양도 마침 보게 되면 참여해보심이 어떨지. ^^* (링크된 사이트들을 보니 당신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기는 하군)

설문조사 안내는 여기(설문 참여는 4월 말까지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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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상정

삶꾸러미 2011. 1. 4. 22:16

늦깎이로 다시 공부하던 시절 '인지상정'이 별명이었던 황당한 인물이 하나 있었던 터라, 미안하게도 한동안 '인지상정'이라는 말은 내게 본래의 의미('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와는 상관없는 비아냥거림의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탈식민 담론이 오가던 이론수업에서 발표를 하며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인종차별이 인지상정이라고 했던가, 암튼 앞뒤가 맞지 않는 짜깁기 발제문을 설명하며 터무니 없이 사용한 '인지상정'이란 말이 던진 파문과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는 시선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벌써 그 시절도 까마득한 추억이 돼가고 있다보니, 나는 또 내 나름대로 그 의미를 변용해서 쓰고 있는 듯하다. 누구나 가지는 건 아니겠지만 나로선 이러저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식으로. 택시 기사분에게 오히려 커피값을 받았다는 파피의 포스팅을 읽고 생각난 건데, 여전히 우유부단함과는 별도로 '불의'라고 여기는 점에 대해서는 까칠한 쌈닭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반면에 나와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직업군의 사람들에게는 질끈 눈을 감아주는 너그러움이 생겨났음을 실감한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오늘 오후에도 겪은 일인데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의 경우, 범퍼에 살짝 흠집만 난 정도는 그냥 너그러이 보내준다. 아까 병원 갔다가 갈림길에서 막무가내로 후진하던 BMW에게 앞범퍼를 받혔다. 자기가 받은 줄도 모르고 그냥 가려던 어리바리 운전자를 빵 소리로 일단 잡아 세운 다음 "우쒸..."하면서 기세 좋게 차에서 내렸다. 마침 주차안내요원 코앞이라 확실한 목격자도 있었다. 콩 하고 받힌 거라 페인트가 살짝 묻어나긴 했던데, 상대 운전자가 따라 내리자마자 "죄송합니다"하는 순간, 그냥 보내주자 싶었다. 전에도 그렇게 보내준 적 많지만 평소 외제차 모는 인간들의 고압적인 태도에 열받을 때가 많았던 터라 얼굴부터 찌푸리고 내렸다가, 범퍼가 망가진 건 아님을 확인하기도 했으니 금세 마음이 풀렸다. 나의 선의(물론 나도 비슷한 선의를 받은 적 있다)가 내 주변의 모든 운전자들에게 퍼져나가 혜택을 비는 마음이랄까.

음식점도 그렇다. 작은아버지들을 비롯해 친구, 후배들 중에서도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주변인들이 점점 많아지다보니 위생에 심히 문제가 있다거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음식점에서 웬만해선 까탈을 부리며 불평을 터뜨리지 못한다. 내가 쓸데없이 음식점에서 진상을 떠는 유형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분들은 물론 친절이든 위생이든 맛이든 어느 면에서나 훌륭히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겠지만, 일부 음식점에서 몇몇 종업원의 무개념 행동에 벌컥 화가 났다가도 예전처럼 전투적인 태세로 항의하질 못하겠다. 내 아무리 소심하고 우유부단해도 불의는 참지 못했거늘! 요번 통큰 치킨 사태 때도, @@치킨에 입사한 사촌동생을 떠올리며 통큰 치킨 판매 중단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프랜차이즈 치킨이 다 비싼 건 아니다>라고 애써 주장했다. ^^; 

비행기를 타도 승무원을 수시로 불러대 괴롭히지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항공승무원이 얼마나 고된 직업인지 지인들에게 익히 듣기도 했지만, 사무장으로 승진했다던 선배가 상당한 거구로 좁은 통로를 왔다갔다 오가며 양손에 적, 백포도주를 나눠들고 따라주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어이쿠 찔렸다. 장거리 여행땐 초반에 술 팍 마시고 잠드는 게 최고라면서 한때 꽤나 성가시게 땅콩 달라, 치즈 있냐며 호출버튼을 눌러대거나 치솔 내놔라 베개 달라 슬리퍼 없냐 진상떨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_- 물론 이젠 승무원들 쉬는 시간엔 절대 귀찮게 하지 않는, 아주 착하고 얌전한 승객이 되었다. (설마 승무원 안 괴롭히려고 최근 몇년 간 장거리 여행을 못떠나는 건 아니겠지;; ㅠㅠ)

버스 운전하는 친구 생각해서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들한테 꾸벅 인사도 잘하고, 택시 운전하시는 지인 떠올리며 우수리는 미리 동전으로 챙겨 거슬러받기 좋게 돈을 내거나 3백원 미만은 거스름돈 안받는 원칙을 세웠으며, 은행다니는 지인 생각해서 창구업무는 웬만해선 회피하고 현금지급기만 상대하며, 스님된 친구 목사된 친구 생각해서 땡중이란 말도 사기꾼 목사라는 말도 삼가는 중이다(워낙 타락한 종교인이 많아서 그쪽 욕은 '아예 중단'할 수가 없다;;). 까먹어서 그렇지 내가 각별히 신경쓰게 된 직업군이 또 있을텐데.... 물론 한두번의 나쁜 경험으로 무작정 싫은 눈으로 짜증스레 바라보는 편견의 직업군도 어마어마하겠지만서도.

제발이 저려서 책을 읽으며 남의 번역에 대해서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범주에 드는 느낌인데 그건 나만의 인지상정이 아니라 동병상련에 더 가까운건가, 아님 혹시 제 밥그릇 감싸기? 암튼 세월이 흐르면서 몇가지 면에서는 유해진 것인지 통이 커진것인지 확실히 너그러워졌다. 다만 이런 태도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어물쩡 타협이나 비리 옹호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도 게을리해선 안될 것이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어려서 내가 혐오했던 '중장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건 절대 안될 일이다. 그러려면 계속 까탈스러움을 잃지 말아야하는 건가... -_-a 
흐이구 왜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마무리가 안 되누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이러다 내 별명도 조롱의 뜻을 지닌 인지상정이 되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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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깨기

삶꾸러미 2010. 11. 20. 02:52

겪어보지 보지 않더라도 결과가 이미 뻔한 것들도 많지만(시멘트로 대강 처바른 청계천이 썩어갈 것이라거나, 4대강 사업이 국토를 영구히 망치는 엄청난 범죄라는 것 따위),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기대치와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굳이 경험한 뒤에야 환상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나처럼 근시안 단세포 동물의 경우엔 더더욱.

가령, pvc가 아니라 '천연고무'로 만들어서 어쩐지 막연하게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던 '장화'는 막상 신어보니 엄청 무거운데다 안에 천이 덧대어져 있어도 여름엔 땀이 차서 상당히 불편하다. 폭우때 몇번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우산도 소용없을 정도의 폭풍우에는 장화 안으로도 비가 들이쳤음을 감안할 때, 몇년간 벼르다 장만한 장화는 결국 앞으로도 애물단지가 될 확률이 높다. 부피는 또 좀 큰가.

보들보들 부드럽고 거의 천가방 만큼이나 가벼워서 엄청 마음에 들어했던 양가죽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가죽이 부드러우니 어찌나 약한지 괜히 서둘러 차문을 닫다가 가방이 살짝 끼었던 날 겨우 그 충격에도 그만 앞부분이 살짝 찢어져버렸다. ㅠ.ㅠ 그것을 교훈삼아 여름엔 튼튼한 소가죽 가방을 하나 샀으나 역시 무거워서 어깨가 아파 몇번 안 들고 다녔다. 내 수준엔 그저 천가방이 진리라는 의미.

번역가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바깥에서 선망의 직업으로 생각했을 땐 자유롭고 여유롭고 지적이고 고상한 노동이라고 상상했지만 (다분히 나의 게으름 때문임을 인정하더라도), 현실은 그리 자유롭지도 그리 여유롭지도 않으며 내가 노상 여기 투덜거리는 꼬라지만 봐도 드러나듯 지성과 고상함이 필수조건은 아니다. 게다가 글줄로 밥벌이를 삼으면 왜 다들 '돈문제'에서 초월하여 가난하더라도 유유자적하게 살 거라고 생각하는지? 원고료 협상 같은 데서 목소리를 좀 낼라치면 속물스럽다고 손가락질이나 하고 말이다. 몇달씩 번역료 늦게 주는 건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면서(사상 최악의 출판 불황이라는 말 16년째 듣고 있다 ㅋㅋ), 번역료 때문에 주요 출판사와 얼굴을 붉힌 적이 있는 번역가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명단이 떠돈단다. 

하기야 모든 직업은 막상 들여다보면 겉에서 보는 것만큼 멋지지 않다는 게 진리일 것이다.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 판검사가 된들 뭐하겠나. 만날 범죄자들이나 상대하고 살아야 하는 인생인 것을. 철밥통이라는 교수는 또 어떤가. 가르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행정업무 봐야지, 때 되면 논문 발표해서 승진해야지, 끼리끼리 파벌 형성해야지.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게 환상 깨기의 연속 같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되면 뭔가 대단히 근사하고 멋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꿈꿨고, 스무살 땐 서른살, 마흔살이 되면 꽤 대단한 인물이 되어 있을꺼라 상상했는데 차례차례 그 환상이 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사춘기 때 쓴 일기에 늙으면 구차하니 딱 예순살까지만 살겠노라고 당당히 적어놓은 걸 발견하고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지금으로 봐선 예순살까지도 제대로 철이 나기 쉽지 않은 인간이라 앞으로 깨어질 환상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되레 기뻐하며 사는 게 이로울 것 같다.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법이라지만 죽는 날까지 꿈꾸는 건 본인의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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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과 여드름

삶꾸러미 2010. 10. 20. 17:26

사춘기 때도 여드름이 그리 심하진 않았건만 도자기 피부와는 거리가 먼 내 얼굴엔 중년의 나이에도 가끔 여드름이 난다. 이건 여드름이 아니라 뾰루지라고 불러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암튼 나는 익숙한 이름인 여드름으로 부를란다. 내 경우, 여드름이 나는 이유는 뻔하다. 불규칙한 수면시간, 스트레스, 외출 안하는 날 걸핏하면 세수 건너뛰는 습관 -_-; 그리고 기름지거나 심하게 단 음식.

특히나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중3무렵부터 지금껏 변함이 없는 건 삼겹살을 와구와구 구워먹고 나면 하루 이틀 뒤 반드시 얼굴에 여드름이 솟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온 가족이 다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특별히 여드름 수에 변화가 있는 건 나뿐이었고, 그간 식품의학계는 삼겹살과 여드름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었다. 여드름은 어디까지나 호르몬 분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과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됐으면 모를까 직접적인 음식섭취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이다. 나는 속으로 아닌데, 내 얼굴에 난 여드름이 증거인데... (삼겹살을 2인분은 거뜬히 해치우며 나는 다만 행복할 뿐 스트레스 따위는 느끼지 않는 식탐가란 말이다!) 중얼거리면서도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하니 아닌 줄로 알아야지 어쩌겠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뉴스를 보니 여드름의 주원인이 음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며 학회지에도 실릴 예정이란다(관련기사). 그간 음식과 여드름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박박 우겼던 과학자들과 식품학자들은 물 먹은 거다. 하기야 이 주장 역시 일단은 반박의 가능성이 있는 또 하나의 '가설'일 뿐이니 앞으로 또 무슨 얘기가 나올지 두고봐야 알 거다. 사실상 과학에선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여러가지 증거가 뒷받침 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신빙성을 얻었을 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인정되는 '진실'(참=truth)은 없단다. 엄밀하게는 모두가 그저 '가설'의 지위를 갖고 있으므로 언제든 과학의 검증과 실험으로 뒤집힐 수 있다니 얼마나 허무한지 원. 하지만 또 그렇게 언제든 과학적인 검증과 실험으로 진실의 권위에 수없이 의문을 품는 과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진실이 인정될 수 있다니, 나 같은 단순한 머리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는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요번 여드름 연구결과 뉴스를 보고서도 나는 또 한번 깨달았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권위를 내세워도 결국 자기 몸에 대해서 '진실'을 제일 잘아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재 당연하다거나 '진실'로 인정되는 것들이 앞으로 언제 뒤집히게 될지도 모르니 이렇게 계속해서 삐딱하게 '어디 두고보자'는 태도로 살아도 무방(? 또는 안전?)하겠다는 점이다. 지켜본다고 결국엔 매사가 깔끔하게 밝혀질 리 없겠지만 어쨌든 당장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는 건 우유부단한 나에게 퍽이나 안심되는 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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