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2006.10.31 10월도 끝 7
  2. 2006.10.30 올빼미족
  3. 2006.10.26 숙취 1
  4. 2006.10.22 어느 일요일 1
  5. 2006.10.20 소장품 2
  6. 2006.10.19 요즘 아이들 3
  7. 2006.10.15 운전 습관 5
  8. 2006.10.15 뇌의 가지치기 7

10월도 끝

삶꾸러미 2006. 10. 31. 19:08
늘 날짜에 쫓겨 사는 인생이다보니
달력은 매번 며칠 일찍 넘겨 다음달을 준비한다.
지저분하게 이런저런 약속과 메모가 적힌 달력을 한 장 넘기면
제일 먼저 초록색으로 적어둔 원고마감일이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 각종 기념일이 눈에 띈다.

어제 상담하면서 11월 스케줄 확인하느라 하루 먼저 달력을 넘긴 뒤
선물받은 베어브릭 달력도 11월에 맞춰 다시 조립을 했다.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시간과 세월 속에서 단순히 달력이 몇장 남았다는 것 때문에
언제는 여유롭고 언제는 조바심나고 지난 열달을 돌아보고 그러는 거 참 부질없는데
그래도 11월쯤 되면 매번 나는 비감에 젖는다.

올해도 별로 해 놓은 것 없이 다 갔네.
지혜도 지식도 깨달음도 여유도, 더 얻은 건 없는 듯한데 또 나이 한 살 먹겠네.
가뜩이나 나이값 못한다고 퉁박인데 이거 원 나이 먹기도 민망하여라...
뭐 이런 서글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다.

원래 11월이 가장 우울증이 기승을 부리는 달이고 일조량이 급격히 적어져 자살률도
높다고는 하지만 내게 가을은 늘 넘기 어려운 고비였던 것 같다.
오히려 한해를 '정말로' 마감하는 12월보다 자학하는 마음도 더 깊어지는 것이
매사에 짜증도 늘어나, 사소하게 달콤함을 즐기거나 지인과의 편한 대화로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 막연하고도 끊질기고 고집스러운 '그 무엇'이 묵직한 쇠스랑처럼 내 발목을 붙든다.

11월은 가을의 끝자락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분명 겨울의 시작이다.
가뜩이나 왜소하고 볼품없이 느껴지는 내 몸뚱이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드는 추위는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어깨가 결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내일로 다가온 11월이 참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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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족

삶꾸러미 2006. 10. 30. 00:50
아침형인간이 여러 모로 유리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얘기가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고, 아침형 인간이 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들도 쏟아져나와
나 같은 저녁형인간, 즉 올빼미족을 민망하게 만든 적도 있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올빼미족 생활을 탈피할 수가 없다.

별로 여유도 없으면서 집 밖에 작업실을 장만했던 건
일의 능률을 올려보겠다는 욕심에 더하여,  나도 한번 '남들 자는 시간에 자고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일해보자'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는데
여전히 나는 오전엔 시체처럼 자고, 정오가 넘어야 부스스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뒤
아침형, 새벽형 인간이 하루를 시작할 무렵에야 잠이 든다.
오후 두어시쯤 작업실에 출근했다가 가끔은 초저녁에, 대부분은 밤늦게 퇴근하는 나의 행태가 몹시 이상했는지, 오피스텔 관리인 아저씨는 어느날 나에게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랬다.
ㅎㅎ

하여간 며칠 전 또 다시 컴퓨터방 형광등을 갈아주시며 아부지가 타박을 하셨다.
도대체 일년에 형광등을 몇개나 잡아먹느냐고...
생각해보니, 자는 방 형광등은 언제 갈았는지 기억에도 없는데
일하는 방 형광등은 몇달 전에 갈아준 것도 같다.

낮에 일할 때도 시력보호를 위해 형광등은 켜고 컴퓨터 작업을 해야한다고 변명은 했지만
나의 밤일에 대한 타박이 단순히 전기료나 형광등값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건강을 위한 것임을 잘 알기에 그냥 말꼬리를 흐렸다.

한밤중에 내 방쪽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보면
부모님은 한숨이 다 나오신다고 한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생명 단축시켜가며 (밤에 안자고 낮에 자면 잠의 질이 떨어져 남들보다 일찍 죽는다는 얘기를 부모님은 철썩같이 믿고 계신다 *.*) 왜 꼭 밤에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사실 밤에 일을 하면 오히려 작업시간이 짧다.
간만에 일찍 일어나 낮동안에 일을 해보면 훨씬 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래도 한밤중의 고요함과 집중력은 낮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밤중에 열심히 일만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때아니게 심취한 블로그질도 해야지, 싸이질도 해야지, 쓸데없이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며 기웃거리기도 해야지...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밤에도 몇 시간씩 허튼 짓을 하고 돌아다니기 일쑤라, 차라리 일찍 잠이나 잘 것을... 하는 후회를 할 때가 많은데도
아침형 인간은 고사하고 시간활용을 제법 잘하는 저녁형 인간이 되려는 노력마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아주 열심히 일을 하고 난 어스름 새벽
귀가 멍해질 만큼 피곤이 느껴질 때쯤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기분은
아침형 인간들이 일찌감치 하루를 시작하는 뿌듯함과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고,
홀로 집에 버려진 이웃 개가 슬피 운다든지 ㅠ.ㅠ 한여름에 이른 새벽부터 매미떼가 울어재낀다든지 하는 문제만 없으면 아침에 잠들어도 제법 잘 잘 수 있으므로
올빼미족 생활 자체에 크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혹시 내 명이 좀 단축되더라도 그건 내가 선택한 삶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아무튼 오늘도 나는 올빼미족의 하루 마감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새벽까지
버틸 요량인데, 밤참 챙겨 먹으러 거실에 나가보니
거의 다 컴컴한 동네에서 우리 집 앞 빌라 맨 꼭대기층에만 불이 환하다.
그러고보니, 늘 거긴 한밤중에도 불이 켜져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올빼미족이 사는 겐가.
뭐하는 사람일지 궁금하면서, 한편으로 반갑다. ^^;;
이따 새벽에 자러 들어가면서 또 한번 확인해봐야지.

아무려나...
지금 깨어서 일하고 있는 모든 올빼미족들에게 축복 있으라!
또 혹시 모르지.
몇십년쯤 후에, 누군가 올빼미족의 일생과 아침형 인간의 일생을 다시 비교평가했는데
올빼미족의 삶의 질도 아침형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다거나 더 월등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올지도. ^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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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

삶꾸러미 2006. 10. 26. 19:59
역시 생각과 현실은 늘 괴리감을 떨쳐버릴 수 없나보다.
지인과 차나 커피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담소도 즐겁지만
모름지기 가끔씩은 술을 사이에 두고 약간 느슨하게 풀어진 신경과 감정의 너그러움 속에
희희낙락 나누는 대화야말로 삶의 낙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막상 술자리를 갖고 보니, 숙취 때문에 타격이 만만치가 않다. ㅠ.ㅠ

간만에 술친구를 청한 후배를 만나러 어제 대학로에 나가면서 가슴이 약간 설렜다.
두달간 이스라엘과 터키, 이집트를 둘러보고 돌아왔다니
신비로운 여행담을 안주삼아 최소한 술자리가 2차까진 이어지겠구나 싶었던 거다.

삼겹살묵은지찜에 산사춘 한병을 비우다
그녀석은 술이 안 오른다며 소주를 한병 더 마셨는데
맨날 맥주만 들이키던 나는 산사춘 반병에도 좀 알딸딸했다.
수다에 수다가 이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우린 다시 조용한 바로 자리를 옮겼다.
몇년 전까지 대학로에 직장이 있었던 터라 근처 맛집멋집을 죄다 꿰뚫고 있다더니
역시나 후배가 이끄는 대로 처음 가본 그 술집은 다른 데와 달리 조용하기도 하려니와
높고 기다란 잔에 레몬 한조각을 '깔고' 담아주는 생맥주도 맛있었고
음악도 완전 옛날 노래만 틀어주는 바람에 진짜로 예전 학창시절이나 직딩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서 나는 더욱 유쾌해졌다.
그러느라 분위기에 약한 나는 당연히 과음을 피하지 못했고...


신데렐라 귀가시간에 맞춰 멀쩡히 집에 잘 돌아오긴 했는데
한밤중부터 오히려 취기가 마구 올라와 정신은 몽롱하고
그렇다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해 새벽녘에 계속 깨서 뒤척이며
처음으로 과음이 숙면에 방해가 된다는 게 맞는 말이란 걸 실감했다.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숙취도 아니건만
결국 난 다음날인 오늘 온종일 병든 닭마냥 비실비실
틈만 나면 피식 쓰러져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느라
일은 커녕 간간이 온 문자메시지도 다 씹고 헤매고야 말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 좀 머리가 맑아진 듯 한데
오늘 하루 고스란히 '공친' 걸 생각하니 새삼 몹시 속이 쓰리다.

좋은 사람들이랑 즐거운 대화를 안주 삼아 마셔대는 술자리는 정말 좋은데
별로 많이 마시지도 않고 이리도 후유증에 시달려서야 어디 무서워서 또 술자리에 달려나가겠나... 그 옛날 이틀이 멀다하고 술자리를 즐겼던 나는 어디로 간 건가. ㅜ.ㅜ;;
그렇다고 나란 인간이 금주를 선언할 리는 절대 없다.
대신 그간 엄청 줄어든 알콜분해효소를 차근차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거나 찾아봐야겠다.

그래야 또 비오면 비온다고, 바람 불면 바람분다고, 계절 바뀌면 계절 바뀐다고
온갖 핑계를 대가며 여기저기 사람들 불러내는 걸 취미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 취미가 무어냐고 물으면 '음/주/가/무'라고 대답했던 게
부끄럽지 않게 슬슬 다시'수련' 좀 해야겠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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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삶꾸러미 2006. 10. 22. 21:48
아주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점심무렵부터 추적추적...
사실 며칠 전에도 밤새 조금씩 비가 내렸던지, 요새 차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뽀얗게 앉은 먼지에 빗방울이 말라붙어 온통 차체가 알금알금 얽은 것 같더니
제법 오래 내린 비에 말끔히 씻겨 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듯했다.

하도 변덕스러워 비가 싫을 때도 있고 반가울 때도 있는데
오늘은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이 커피도 더 맛있고, 음악도 더 감미롭고
그간 내 심신도 매우 메마르게 건조했다가 촉촉한 습기에 진정이 좀 되는 것 같다.
(다만 일이 잘 안되는 것이 문제인데.... 요일 따질 것 없는 준백수 주제에 주말엔 늘
일이 잘 안되는 편이다. ㅠ.ㅠ)

게다가 어제 온 집안을 들쑤시듯 까르륵 거리는 웃음과 비명과 울음의 여운을 남기고 간 조카들 때문에 더욱 집안이 고즈넉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컴퓨터 의자 하나만 보아도, 녀석들이 어제 돌아가며 의자에 앉아
뱅글뱅글 서로 돌려주면서 가짜 돈을 내고 받고
제법 그럴듯하게 회전의자 놀이기구 시늉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비싯 웃음이 배어나왔다.

나른한 기운을 떨쳐보려고
굳이 작업실까지 나왔는데도, 커피, 루이보스차, 둥글레차... 종류별로 바꾸가며
따끈한 차 마시고 음악들을 궁리나 할 뿐 도통 진도가 나가주질 않는다.
바야흐로 초절정마감모드임에도 말이다.

게다가 블로그 시작하고 뜸했던 게 미안해
싸이에도 글 하나 올리고 보니, 여긴 더 쓸말이 없는 것 같더라.
이것저것 써보고 싶은 글은 많은데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았고
마감모드라는 것도 자꾸 좀 진지한 글쓰기는 뒤로 미루게 하는 듯.
그치만 생각해보면
나는 늘 마감모드에 허덕일 때 더 다른 짓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렇다고 용감한 블로그 이웃들처럼 한달쯤 블로그 포스팅을 작파하고
열심히 일에만 전념할 자신도 없다.
글만 안 쓰면 뭐해. 맨날 수시로 기웃거릴 게 뻔하니까.

가늘어졌던 빗줄기는 밤이 내리면서 다시 굵어졌는지
창밖으로 다니는 자동차들이 내는 젖은 바퀴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차선이 안 보여서 빗길 밤운전은 좀 위험하지만
윈도 브러시가 슥삭슥삭 너무 빠르지 않게 팔을 휘저어 앞유리를 닦아대고
그 위에 맺힌 물방울 때문에 주황색 가로등이 아련하게 수백만개 별처럼 반사되는 걸
홀로 음미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하나 흘러나오면
그길로 난 아주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오늘도 집까지 겨우 5분 거리가 너무 짧고 아쉬워서
공연히 먼 동네까지 한바퀴 돌고 집에 가게 되는 건 아닌지.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어느 일요일
확실히 감상의 과잉에 허덕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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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삶꾸러미 2006. 10. 20. 15:55


지난 번 고모 전시회에서 찜해둔 작품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나무그늘에 자건거가 기대어져 있는 흑백 판화작품 하나는 이미 갖고 있지만
이번에 전시한 사랑스러운 느낌의 채색 동판화 소품들은
조곤조곤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모의 성품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꽃도 있고, 별도 있고, 초승달도 있고
아련한 밤하늘을 담은 창문도 있고
탁자 위에 놓인 꽃병 옆엔 향기로운 커피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하면서 행복해지는 여러 일의 목록을 따져보면
미술관 관람이 상당히 상위권에 들어 있다.
화가가 되려는 꿈을 한번쯤 꾸어본 사람들은 많겠지만, 나 역시 한동안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더랬다. 그 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이 그림의 주인공인 우리 막내고모.
지금은 고궁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금지됐다지만, 우리땐 사생대회는 늘 고궁에서 열렸고,
가끔씩 주말에 고모 따라 화구 챙겨들고 경복궁이나 덕수궁에 이젤을 세우고
고모 유화 그림을 수채화로 똑같이 베껴(!) 그리던 전적이 있는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온갖 미술대회에서 제법 상도 받았더랬는데
그것만 믿고 무작정 화가의 꿈을 키웠던 거다. ^^;;

그러나 그 꿈은 결국 그냥 꿈으로 남겨졌고
그림에 대한 열망은  이제 감상으로만 만족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소장까지 하게 되다니 어찌 아니 기쁠소냐!
ㅎㅎㅎ
사진 들어간 포스팅을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자랑질!

(ㅎㅎ 고흐 그림이 바탕에 희미하게 비치는 가운데 작품이 놓이니까 느낌이 또 좀 다르다)
(아깐 그림 받은 흥분에 대충 써 올렸다가 다시 좀 더 덧붙였음을 실토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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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삶꾸러미 2006. 10. 19. 21:10
물리적으로는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은 풍요를 누리고 사는 요즘 아이들이
나는 좀 가엾다.
교육전문가들이 제 아무리 지나친 조기교육의 폐해를 강조해대도
요즘 엄마들은 '대부분' 백일 갓 지난 아이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고
백만원쯤 한다는 학비를 들여 영어유치원엘 보내질 않나
초등학생쯤 되면 온갖 학원으로 실어나른다.

어린아이들을 무조건 공부의 홍수 속에 떠밀어 놓고야 마음을 놓는 이상한 분위기가
몹시 못마땅해서, 나는 내 딸도 아닌 조카의 교육에 자꾸만 밤 놔라 대추 놔라 참견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 일주일 전부터 매일 시험준비를 하고 문제집을 풀고 그러는 건 말도 안되는 거 아닌가!? ㅡ.ㅡ;;
물론 세월이 엄청 흘렀으니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와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저학년땐 그래도 마냥 노는 게 삶의 중심이어야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올케 말로는 우리 조카가 다른 집 애들처럼 선행학습을 시켜주는 보습학원에도 전혀 안 다니고 수학 학습지 하나만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단다. 헐...
(게다가 우리 정민공주는 ^^;;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다. ㅋㅋㅋ)

그래도 정민공주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니깐
태평하게 그냥 지켜보기나 하자는 내 말에 일견 수긍하면서도
(엇.. 이렇게 또 쓰고 보내 이런 내 참견도 올케한테는 시누이 시집살이가 되겠구나.. ㅜ.ㅡ;;)
주변 엄마들의 악착같은 자식농사에 자꾸만 자극받은 우리 올케는 남들 하는 만큼은 아니라도
완전히 방치하여 조카가 자기네 반에서 밑바닥을 맴도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며
틈틈이 조카 군기를 잡는다.
하긴 그 말도 맞다.
대부분 공부는 뒷전이고 놀러 다니던 그 옛날에도
시험 전날 공부 하나 안하고 시험봐서 거의 상위권에 속하는 아이들이 있고
늘 꼴지 언저리를 맴도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요즘처럼 '다들' 공부에 미친듯이 매진한다면, 특별히 공부에 관심이 없고 그냥 즐겁게 놀기만 하는 아이들은 벌써부터 제도권 교육에서 열등한 학생으로 치부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 시험을 앞두고 주말에도 공부를 해야했고
어제는 수학 문제집을 두 개째나 푸느라 기운이 쪽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정민공주가
오늘 오후에는 하늘 꼭대기를 찌를 듯 신이 오른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는 시험 끝났으니 엄마랑 영화보러 간다고 자랑을 했다.
영화 끝나고 고모랑 만나 저녁을 먹자나?

어엇.. 이거 몹시 익숙한 시추에이션이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따위가 끝나고 나면
룰루랄라 단체로 영화보러 갔다가 떡볶이랑 튀김 사먹고 집에 왔었는데...
그걸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정민이는 벌써 한다는 뜻이다.
어휴...
하긴 요즘 초등학생 수학문제는 내가 중학교때나 풀었던 것보다 더 어렵고 요리조리 비틀려 있더라. 그러니 그 시절보다 5, 6년쯤 정민이가 앞서가는 게 당연하겠지.

어리숙했던 나의 어린시절보다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더 똘똘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리분별도 뛰어난 것 같아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하기는 참 싫을 게 틀림없다.
얼마전 만난 후배 딸에게 추석날 보름달 보며 무슨 소원 빌었느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공부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대답해서 몹시 안쓰러웠다.
겨우 7살짜리가 공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니;; ㅠ.ㅠ
정민이와 달리 그앤 5살에 이미 한글을 떼고, 심지어 한자 초급 자격증까지 있으며, 초등학교 입학에 대비해 국어와 수학 선행학습을 탄탄하게 해낸 우수한 학생으로 주변에서 마구 칭찬을 받는 아이인데도 말이다.

나로선 정말 어떤 게 아이들을 잘 교육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즐겁게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은 철없다고 나를 나무라며 본인이 엄마가 아니니 남의 말 한다고 타박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공부에서 뒤떨어진 아이는 절대로 앞으로도 상위권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나 뭐라나;;;
그렇게 다들 공부를 잘해서 과연 뭐가 될 건데??

물론 공부를 잘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고 '잘' 살 확률이 높은 것은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 어른이 되었을 때나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지만,
단지 학벌과 교육수준으로 삶의 질이 평가되는 절대적인 잣대는 분명 예전보다 훨씬 힘을 잃었다고 생각된다.
좀 황당한 예를 들자면,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바로 '연예인'이라는 것부터 확실히 뭔가 다르지 않은가?? ^^*
그러니까 우리 정민공주를 비롯해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어른이 될 무렵엔
지금과는 많이 다른 가치에 따라 삶의 질과 행복이 좌우되는, 좀 더 괜찮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거다.

여전히 교육정책은 휘청거리고, 정치판엔 무지한 정치꾼들의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당장이라도 한반도에 핵폭탄이 터져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온 세계가 떠들어대지만...
부디 다가올 미래는 지금보다 여러가지로 나아진 세상이길 바란다.
워낙 근시안이라 이대로 흥청거리며 살다간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고,  마실 물마저 없어진다는 아주 먼 미래는 나도 잘 모르겠고 ㅡ.ㅡ;;;
적어도 우리 조카들이 살아갈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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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습관

삶꾸러미 2006. 10. 15. 02:23

드물게도 이번 주엔 두 번이나 고속도로를 탈 일이 있었다.
그리 먼 데는 아니고, 오산과 수원.
서울 시내에선 요즘 그리 멀리까지 다니는 일 없이 기껏해야 엄마 모시고 신촌에 있는
병원에 가거나 그 근처 백화점, 아니면 집에서 10분 이내 거리인 작업실 왕복이 다라
내 운전습관에 대해서 새삼스레 생각해보고자시고 할 일이 없었는데
지난 수요일에 오산엘 다녀오며 죽도록 막히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온몸을 비꼰 이후
며칠 뒤 또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보니
그동안 많이 나아지기도 했고, 아직 변하지 않은 나쁜 버릇까지 내 운전습관에 대한
분석이 되더라.

나아진 점.

1. 욕설이 줄었고, 양보가 늘었다.
원래 나의 언어생활이 좀 과격한 편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악다구니를 치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는데, 운전을 할 때면 아직도 나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리게 된다.
이건 비교적 초창기였던 시절 서울에서 안산까지 왕복 100km를 수인산업도로로 출퇴근하면서 작은 차(프라이드였다)와 여성 운전자를 업수이 여기던  수많은 대형 트럭 운전수들과 쌈박질에 가까운 들이밀기를 하면서 배우게 된 생존전략에서 비롯됐다. 14년 전엔 정말로 여성 운전자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특히 수인산업도로 같은 길을 달려 출퇴근을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고속도로와 달리 군데군데 신호등이 수시로 있는 그 길에서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대부분은 지들이 잘못해놓고-- 대뜸 무시무시한 경적을 울려대며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퍼부었는데, 처음엔 눈물을 쭉 뽑던 나도 나중엔 같이 거나한 욕으로 대작하며 바짝 따라가거나 앞질러서 확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싸움에 응수했더랬다. ㅡ.ㅡ;;
그런데 이젠... 그래.... 너 바쁜 놈이로구나, 먼저 가라.. 그러고 만다. ㅎㅎ
조금 열받을 때는, 그래, 너 평생 길바닥에서 그 짓 해먹고 살아라.. 그런다 ㅡ.ㅜ
물론 아직도 내 입에서 '어라 내가 이런 욕도 알고 있었나?' 싶게  놀라운 욕설이 새나오기도 한다. 끙..

2. 하이빔을 번쩍이거나 경적을 울리는 일이 "거의" 없다.
예의 없게 깜박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기를 하거나, 간선도로 진출입로에서 미리부터 빠져 길게 줄지어 따라오지 않고 중간에 끼며 얄밉게 운전하는 인간들 아직도 참 많지만
예전에 혈기방장할 때는 헤드라이트 상향등으로 번쩍이고 경적 울려대며 신경질 부렸는데
요샌 최대한 차간격을 줄여 안 끼어줄듯 약간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엔 그냥 끼워주고 만다. 그래.. 넌 그렇게 살아라, 얌통머리 없는 인간아.. 그러면서.

3. 과속을 "잘" 안한다.
순전히 과속 범칙금 때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밟을 수 있을 땐 밟아줘야한다며 미친듯이 가속페달을 밟아대는 짓은 잘 안한다. 속도감을 즐길 때쯤 되면 어김없이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나타나기 때문인데, 갑자기 브레이크 밟는 건 또 내가 싫다.
그치만...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잘 없고 길이 좋으면 살짝 속도감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ㅎㅎ

4. 차로를 잘 안 바꾼다.
운동신경 무딘 인간이 허술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내 몸과 달리 제법 날렵하고 속도감 있게 움직여주는 자동차라는 수단의 묘미를 알게 된 뒤로, 그리고 몇번의 접촉사고로 도로와 운전의 철칙을 어느 정도 깨달은 후로는 그저 빨리 가는 게 능사인줄 알고, 성질 급하게 요리조리 차로 바꿔가며 달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공연히 조급증을 내며 서두르는 짓은 안하게 된다. 아무리 재주를 부리고 차로를 변경해봐야, 서울 시내에선 정말 5분이나 빨리 가려나.. 고속도로에선 먼길 운전에 어차피 피곤하니, 졸음 쫓으려고 일부러 왔다갔다 할 때 빼곤 신경질적으로 차로 변경하는 버릇, 정말 완전히 없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다. ^^;;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

1. 1차로를 선호한다.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은 큰 동생 녀석은 웬만해선 1차로로 다니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다른 차로에선 사고가 나도 추돌사고지만, 1차로는 정면충돌 사고라 피해가 크다는 게 이유인데... 나는 다른 차로에서 수시로 드나들고 멈춰대는 버스와 택시를 감당하기가 싫고, 초보 운전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하위 차로가 별로 내키질 않는다.
물론 나도 초보 시절이 있었으므로, 초보 운전자를 우습게 알거나 위협하진 절대로 않지만 워낙 브레이크 밟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라 물 흐르듯 유연하게 운전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1차로가 좋다. 사고가 나는 경우 정면충돌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라도 말이다. ㅡ.ㅡ;;
다행히 이제껏 경미한 접촉사고라면 몰라도, 충돌사고를 내거나 당한 적은 15년 경력에 단 한 번 도 없었다! ㅎㅎ

2. 규정속도보다 심하게 느리게 달리는 차는 절대 참지 못한다.
이건 뭐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 규정속도가 시속 100km인데 하필 1차로에서 느리게 빌빌빌빌 앞차와의 간격을 몹시 넓게 두고 달리는 차들이 꼭 있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조수석에 앉은 사람과 심하게 다정한 대화를 나누거나 ㅡ.ㅡ;; 아주 드물게 초보운전자인 때도 있는데, 초보들은 고속도로에서 1차로엔 잘 들어가지 않으므로 정말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은 딴짓 중인 것 같다.
이럴 때 난 절대로 못참고 앞지르기를 해줘야 한다. 착한 어떤 이는 그 앞차가 볼일 다 볼 때까지 그냥 졸졸졸 따라도 가던데 말이다. 흠...

3. 차간거리가 좁다.
양보운전을 안하는 편은 분명 아닌데 ㅡ.ㅡ;; 예의바르게 깜박이를 켜고 의사표시를 한 뒤에 끼어드는 차의 경우 대부분 양보하는 데 반해,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족을 곱게 보진 않기 때문에 여전히 나 역시 차간거리를 좁게 유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다들 그런 습관 때문인지 대부분 운전자들은 고속도로에서도 차간거리를 규정만큼 길게 유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전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30대가 넘는 차들이 추돌사고를 일으켜 자동차가 불타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도 그 버릇은 여전한듯. 나 또한 오래 전 갑자기 비상등을 켜고 멈추는 차들을 따라 가까스로 멈추는 데 성공은 했으나, 내 뒤의 뒤차가 제동을 못하고 내 앞차까지 모두 한꺼번에 들이받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도... 여전히 앞차와의 간격은 좀 좁은 편.
고속도로에서 달리다 병목현상 따위가 나타나 갑자기 속도를 줄이게 되면 비상등을 켜서 뒤차에게 알리는 제법 쓸만한 신호가 정착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은 방법은 차간 거리를 제대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안지키는 이 심보는 뭔지...
이리저리 차로를 안바꾸기로 한 대신에 남들이 내 앞으로 끼어드는 꼴도 못보게 된 걸까?

아무튼...
새삼스럽게 내 운전습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니
내일부터는 예전에 매일 강남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처럼
아침마다 착하게 운전하고 욕 안하고 양보 많이 하고 교통법규 잘 지키기로
다짐을 한번 해봐야겠다. 그런 다짐을 몇년 되풀이하면서 그간 내 못된 운전습관을 개선하는데 절반이나마 성공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사고 나면 내가 더 손해고, 운전은 오래 할수록 대범해지기보다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요새 계속 착하게 살기 운동원처럼 반성모드가 지속된다. 나답지 않게 왜 이러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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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가지치기

삶꾸러미 2006. 10. 15. 01:27
師라는 말도 있으니
(벨로를 위해 읽어주면 '삼인행 필유아사', 셋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 될만한 이가 있다'는 뜻^^;)
언제 어디를 가나 따라 배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한 진리인데
(심지어 몹시 싫은 사람에게도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걸 배우게 되니까!)
오늘은 이십여년 전부터 늘 참 배울 게 많던 친구한테서 아주 중요한 걸 배웠다.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의 뇌는 몇년에 한 번씩 지식의 가지치기를 한단다.
미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경로로 주워듣고 눈으로 스쳐
엄청나게 두뇌에 입력된 정보들 가운데서, 뇌의 주인이 최근 몇 년간 그닥 관심을 갖지 않고 기억의 저 너머로 밀어두었거나 관심 밖으로 외면한 정보와 지식들은
쓸데없는 가지 쳐내듯 몇년 동안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스르륵 기억에서 잘려져 나간다는 거다.

오늘도 늘 달변이고 박학다식하던 친구의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난 요즘 자꾸 바보가 되어가는지, 아니면 홀로 일하는 시간이 많아 대화술이 퇴보하는 건지
사람들과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말문이 막히거나 정확하게 콕 찝어 표현할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게 되는 바람에, 예전처럼 수다스럽지 않아졌다고 고백한 나에게 친구가 현자처럼 빙그레 웃으며 들려준 이야기였다.
자기도 얼마 전 뇌의 가지치기를 당했는지, 예전엔 몹시 관심 많던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돌연 해당 낱말들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고 당황하는 바람에,
워낙 같잖아 읽기를 관뒀던 신문도 다시 구독하고, 이런저런 책도 골라 읽는다는 것이었다.

자꾸 뇌에서 꺼내 쓰고 다시 저장해둔 정보들이야 그럴 염려가 없지만
가물가물 기억이 날까말까 하던 얼마 안 되는 지식들은 계속 꺼내 쓰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분야째로 뭉텅뭉텅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니!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식충이처럼 살다간 정말 빈 깡통처럼 뇌에서 텅텅 빈 소리만 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아닌가!
그러잖아 요새 머리에 들여보내는 것 없이 계속 뽑아쓰는 소모적인 짓만 하고 있어
불안하던 차에 '뇌의 가지치기' 이야기까지 듣고 보니 더욱 고개가 끄덕여졌다.

글과 말로 먹고 산다는 인간이
제대로 아는 게 하도 없고 무지한 것 같아 뒤늦게 다시 공부랍시고 시작했던 2002년부터 휴학포함 3년 동안엔 그럭저럭 머리에 뭔가를 채워넣는 것 같기도 하고
비록 뜬구름 잡는 기분이긴 했어도 이런저런 지식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구경이나마 한 것 같았는데, 그 뒤로는 확실히 퇴보하고 있었던 거다.

욕심인지 허영인지 이런저런 책들을 사들여 쌓아놓기는 했으되
제대로 읽고 생각도 해보면서 뇌와 마음의 자양분으로 삼아본지가 과연 언제던가.
하물며 매일 집에서 뒹구는 신문조차도 책 서평이 실리는 토요일자만 찾아보는 게 전부일 뿐 인터넷 접속할 때 잠깐씩 보이는 기사 제목도 휘휘 훑어보는 게 고작이니
온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쓸만한" 정보와 지식에 신경을 쏟아본 기억이 참 아득하다.

조금 비약하자면
이러다 몇년에 한 번씩 대거 가지치기를 당하는 바람에 50줄에 접어들 무렵
내 두뇌엔 기계적으로 눈과 손가락을 연결해주는 번역 시스템만 남는 건 아닌지
겁이 다 덜컥 난다. 

시방 옮기고 있는 풋풋한 십대의 사랑 이야기의 작업 진도가 지지부진한 것은
결국 내 사랑의 경험이 워낙 오래된 탓에 더하여 ㅠ.ㅠ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를 감미롭게 전할 풍성한 어휘력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었던 거다.

다음번 내 두뇌의 가지치기 시기가 오기 전에
바쁘게 이것저것 많이 보아두고 공부하고 느껴 두어야 할 터인데
상당부분 이미 아메바스러워진 나의 기억력은 이 결심만이라도 잘 간직해줄 것인지.
과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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