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20.01.06 양극성장애 2
  2. 2014.12.22 새 부엌 12
  3. 2014.10.13 아무튼 산에... 6
  4. 2014.03.16 안산
  5. 2013.06.27 서울성곽길 4
  6. 2013.01.22 궁궐답사 6
  7. 2012.10.10 아등바등 2
  8. 2012.10.04 추석 맞이 식겁 8
  9. 2012.05.28 되다 14
  10. 2012.05.25 버릇 8

양극성장애

아픈 손가락 2020. 1. 6. 16:46

양극성장애( bipolar disease)는 조울증의 다른 이름이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꿔부르면서 조현병과 조울증이 너무 비슷해보였나? 아니면 기분이 심하게 오르락거리는 사람에게 조증이냐고 놀려대는 질병 혐오발언 탓에 공식 병명을 달리 부르기로 학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걸까? 암튼 그 이유는 몰라도 새로 나온 몇몇 정신건강 관련 책을 보니 조울증을 죄다 '양극성장애'로 표현하고 있었다. 비전문가로서 그냥 단어만 봤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를 짚어본다면, 조울증은 '증상'의 느낌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 같은 반면에, 양극성장애는 '장애'를 붙여놓으니 지적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같은 항구적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 같다. 뭔가 치료는 불가능하고 장애 상태에 그냥 적응해서 살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공황장애(panic disorder),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름을 붙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disorder와 disease는 똑같이 '장애'로 옮기기엔 뉘앙스가 사뭇 다른 듯하다. disorder(dis-order, 질서가 무너짐, 엉망진창)는 신체적인 이상, 약간의 기능 장애 같은 느낌인 반면에 disease는 비록 그 어원이 편하지 않음/불편함(dis-ease)에서 왔다고는 하나 엄연히 '질병'이란 말이지. ㅠ.ㅠ

 

하여간 점점 분리불안 상태의 어린애처럼 구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를 혼자 감당하는 게 힘들어서 작년에 보험공단에다 요양보호 등급신청을 해보려고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에게 진단서를 부탁했더니만, '경도인지장애'와 함께 '양극성장애'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물론 보험공단에선 울 엄마 정도의 인지능력과 조울증으로는 심사도 불가능하다고 전화로 통보해왔다. 아주 치매환자로 인정을 받아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심한 인지장애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있어야 한다고. 젠장.

 

조울증이나 우울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 잘 아는 사람들(심지어 아들들도!)이라도 짧은 시간 우리 엄마를 지켜보면 대체로 엄마 멀쩡한데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나에게 핀잔을 준다. 나도 미칠 노릇이다. 일년내내 약을 드시고는 있지만 어떤 빌미로 증상이 심해져 겉잡을 수 없게 되면, 엄마는 하루종일 중얼중얼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입밖에 내거나 온 집안을 서성서성 돌아다니거나, 집안 구석구석에서 오래된 서류나 우편물을 끄집어내 새삼 읽어보며 의심을 하거나, 딸이 눈에 안 보이는 게 불안해서 졸졸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댄다. 

 

홀로 중얼거리는 내용은 대체로 자책과 후회, 어후, 미쳤어, 미쳤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살면 뭐하나...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작년부터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나 밖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하게 감시하고 뭔가를 훔쳐가려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젠 심한 의심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었다. ㅠ.ㅠ 치매 환자들이 흔히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서 도둑으로 몬다는데, 울 엄만 치매도 아닌데 왜 나를 도둑년으로 모는 건지 원!

 

습관처럼 말로는 "XXX(내 이름) 없으면 엄마는 시체야. 너 없으면 엄만 못 살아..."라고 하루에 열두번도 더 되풀이하면서(까칠한 요즘 나의 상태로는 이 말도 딸에 대한 엄마의 가스라이팅 같아서 짜증스럽기만 하다. 도둑년 취급이나 하지 말든지! 나더러 뭘 더 어쩌라고!), 12월 들어서는 실질적으로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기에 이른 것! 학교에 수업 간다고 외출해도 거짓말 하는 거라고, 자꾸 거짓말 하고 대체 어딜 나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고, 친척 결혼식 축의금을 내가 송금받아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돈을 내가 다 떼어먹었다고 의심하시고! KTX 티켓을 모바일로 구매했다는 말조차 믿지를 못해서 사흘 내내 고모들을 동원해 설명을 해드려야 할 지경이었다. 부산 숙소와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두고 여행겸 떠나려던 부산 결혼식을 결국 이런 상황에서 다녀왔다는 게 정말 기적이다. 

 

기막히는 건 내 앞에선 눈을 흘기거나 부라리며 험악한 얼굴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의심하거나 발을 구르며 펄펄 날뛰다가도, 아들 전화를 받을 땐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온화한 표정으로 돌변해서 '아들?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마...'라고 한다는 거다. 물론 친척분들이랑 통화를 할 때도 말투와 태도가 달라진다. 누구보다도 남들의 시선과 평판을 의식하는 분이라 그런걸까? 요번엔 나도 정말 지치고 지긋지긋하고, 열이 뻗쳐서 엄마의 본모습을 증거로 남겨두겠다며 동영상 촬영을 해두었다. (한두달 뒤에 엄마가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면, 병증이 심했을 때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엄만 당신의 '미친 모습'을 찍어두었다며 당연히 길길이 화를 내시고 딸을 더욱 미워하고 있지만, 내가 오죽하면!  고모들 두분과 같이 떠난 부산에서 1박2일간 엄마는 집에서 보이던 모습과 달리 대체로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는데, 엄마의 고질병을 잘 아는 고모들도 드디어 밤사이 드러난 불안증과 의심병의 진실을 확인하고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나를 불쌍히 여겼다. 나의 인내심이 놀라운 수준이라고. ㅠ.ㅠ 

 

양극성장애 환자의 사연들을 들어보면 정말 기막힌 경우가 많다. 조증인 상태에선 환자가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주변에서 자칫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집을 확 팔아버리거나 고가의 물건을 막 사들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20년 전쯤엔가 울 엄마도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 바람으로 지갑 하나만 들고 뛰쳐나가선 막내동생 예식장을 계약하겠다며 동네에서 멀지 않은 특급호텔에 찾아간 적이 있는가 하면, 며칠 뒤엔 백화점에 가서 투피스를 서너벌이나 사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들어온 적도 있다. 그때 너무 속이 상해서 주치의에게 털어놓았더니, 집을 팔아버리거나 비싼 보석을 사들이거나 남에게 주어버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하더라.

 

조증 상태의 장점을 굳이 찾는다면 신체기능이 평소보다 좋아진다는 점이다. 시력도 청력도 더 예민해지는지, 보청기가 없어도 소리를 잘 듣고 안경을 쓰지 않아도 TV 자막이 다 보인단다. 다리가 아파 집안에서도 느릿느릿 걸어다니던 엄마는 종종 내가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의심스러워서 와다다다 쿵쿵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오신다. 물론 저러다가 심신이 안정되면 드디어 통증을 느낄 수 있게 되어 며칠 끙끙 앓아누울 게 뻔하고 하루종일 지껄여댄 혀도 다 갈라지고 입안이 헐어 한참 고생을 해야 할 거다.

 

다른 때 같으면 어서 약을 바꾸러 병원에 무작정 가보자는 나의 부탁을 들어줄만도 한데, 요번엔 극심한 딸 의심증상 때문에 (정신병원에 자기를 처넣으려고 하는 술수란다) 원래 예약날자까지 꼬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이 한달여일만에 잡힌 정기 예약일이다. 정신과 약은 한꺼번에 투약량을 확 늘일 수도 없고 약을 바꾼다고 해서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도 아니므로, 사실 크게 기대되지도 않는다. 다만 나보다 신뢰하는 의사의 위로와 이야기를 엄마가 잘 듣고 플라시보효과도 좀 생기길 바랄뿐.  연초부터 참으로 지치는 나날인데, 이러다 내가 병나겠다 싶어서 자꾸 밖으로 도망칠 일을 꾸미고 있다. 나도 숨은 쉬어야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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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부엌

투덜일기 2014. 12. 22. 10:45

오래된 싱크대의 수납장 문이 잘 안닫히기 시작한 건 오래 되었고 얼마 전엔 덜컥 수도꼭지, 아니 물 나오는 부분의 길쭉한 철제 호스 같은 게 부러졌다. 이리저리 꺾어서 각도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안에 든 플라스틱까지 끊어진 건 아니므로 물이 나오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철제 호스가 꺾여 덜렁거리니 설거지를 하려면 뭔가를 기대어 놓거나 왼손으로 잡고 한손으로만 그릇을 헹구어야하는 사태. 


그 수도꼭지도 몇년 전 언젠가 막내동생이 사다가 직접 달아준 거였는데, 아니 무슨 수도꼭지가 10년도 안 쓰고 고장이 나나 그래... 아무튼 노상 야근에 주말 출근도 불사하는 불쌍한 동생을 또 불러댈 순 없는 일이고 철물점 같은 데 가서 수도꼭지 사고 웃돈을 얹어 출장수리를 해달라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비용도 따지면 총 10만원 가까이 들겠더라.


요즘 유행하는 쿡탑 렌지를 비롯해 싱크대를 싹 바꾸고 싶은 마음은 수년째 품고 있었지만 그러다 집이 전격 팔리면 어쩌나 아까비.. 하는 마음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무 상판이 남아있는 한쪽 싱크대가 물에 쩔어 막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문은 하나같이 제대로 안 닫히는 데도 강제로 욱여 닫아가며 살아왔었다. 아우 새삼 청승맞기도 하여라.


덜렁거리는 수도꼭지와 연일 씨름을 하며 드디어 부엌을 싹 갈아엎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혹시 아나, 머피의 법칙이라고 부엌 싱크대 갈자마자 집 팔려서 속쓰려하는 일이 생길지. 엄동설한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불운/행운이 작용하여 아무도 보러오는 사람 없는 집이 팔린다면 수리비 아까워할 게 아니라 좋아서 팔짝팔짝 뛸 일이다. (집이 하도 낡아 누가 이사오려면 벽부터 완전 개조가 필요한 집이라서 아마 부엌도 다시 뜯어야할 테니 하는 말이다;; ) 하여 결심은 섰으나 우유부단 추진력 제로인 게으름뱅이는 또 동네 주방가구점에 견적을 받으러 가야하는데, 가야하는데... 그러고만 있었다.


헌데 두둥~ 한 열흘 전 한밤중에 괜히 TV 리모컨놀이를 하다가 홈쇼핑에서 부엌 개조 상품 발견! <무이자 12개월 할부>에 특정 카드는 청구 할인, 일시불이면 또 할인... @.,@ 어떤 색깔로 할지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이 그냥 죄다 세트 상품이었다. 이거다 싶어서 얼른 줄자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 대강 칫수를 재고는 주문 완료!


그러고는 속으로 마구 빌었다. 제발 크리스마스 이브(마침 울 할아버지 19주기 제삿날이다) 이전까지 설치 가능하게 해주세요... 아니면 망함...  설마 일주일이면 되겠지... 아 몰라... 설마.. 간만에 나한테 주는 거한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그랬다.


다행히 바로 다음날 주방가구 직원이 실사를 나와서 다시 직접 치수를 재고 사진을 찍더니 일주일 뒤 설치를 약속했다. 휴우... 게다가 진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면 철거와 시공이 다 된다네. 좋은 세상이닷. 감사하여라. 유럽이나 미국에선 수도꼭지 하나 바꿀라고 주문해도 최소 열흘은 걸린다던데 빨리빨리 대한민국 역시 최고. -_-; 


해서 오늘 드디어 대망의 부엌공사가 진행중이다. 어젯밤 우렁각시처럼 살금살금 온갖 그릇들을 치워 싱크대를 비우고, 식탁도 번쩍 들어 옮기고 타일공사 대신 내가 붙여야지 마음 먹었던 시트지 붙이기도 일부 먼저 해놓느라 이미 삭신이 다 쑤신데, 저쪽에선 드르륵 드르륵 공사를 하건말건 난 내방에서 일이나 하겠노라 맘먹은 건 그저 작심일 뿐 귓바퀴는 깔대기처럼 자꾸만 저쪽 집으로 쏠리고,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발소리에 아무데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차 한 잔 드시겠어요, 그러면서 싹싹한 아줌마 코스프레나 하는 수밖에... 철거팀은 한시간 반만에 벌써 후딱 오래된 싱크대를 해체하고 간략한 수도공사까지 마친 뒤 철수했고, 어느 틈에 설치팀이 와 거실쪽을 비닐로 완전 차단막을 쳐놓고 조립 작업중이다. 놀라운 분업의 세계. 과연 이따 저녁땐 어떤 부엌이 나를 맞이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뭐 그래봤자 누렇게 된 벽지를 배경으로 새하얀 씽크대가 심히 튀기밖에 더하겠냐마는... 째뜬 나도 드디어 새 부엌을 갖게 되었다.  이사나 가야 가능할 줄 알았던 일인데.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하나 그간 불편을 외면했던 내가 미련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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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에...

놀잇감 2014. 10. 13. 17:20

아무튼 산에 계속 다니고는 있다. 8월엔 무려 세번(광교산, 도봉산, 북한산!)이나 등산을 하기도. 

워낙 등산 고수들을 따라다니는 거라서 종종 힘에 부치고, 너무 괴로워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순간도 있지만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좀체 안 쓰던 근육까지 죄다 동원하여  약간 몸을 학대(?)하고나면 괜히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일단은 오래 앉아 일을 할래도 체력이 딸리는 점을 보완하고자 시작한 일이므로, 얼마나 더 있어야 체력이 확~ 좋아지나 지켜보는 중. 아직은 본격 등산을 하고 나면 머리가 띵~ 두통이 올 정도로 호흡도 엉망이고 저질체력이다. ㅠ.ㅠ


봄부터 쫓아다녔어도 바쁘게 거의 땅만 보고 쫓아다니며 헐떡대느라 산에서 사진 찍을 여유 따위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여름부턴 잠시 쉬는 동안 휴대폰을 꺼내들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몇장 안 되는 사진 대거 자랑. ㅋㅋ


<도봉산 오봉 올라갔던 날> 8월 15일

중간에 점심 먹던 곳에서 발견한 쓰러진 나무와 버섯.


그리고 드디어 오봉이 눈앞에... 고소공포증을 핑계로 바위엔 안올라갔다. 숲은 좋지만... 낭떠러지 바위는 정말 너무 무섭다 ㅠ.ㅠ

 



<설악산> 9월 13일.

설악산 대청봉엘 당일코스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과연 따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삼아 도봉산엘 가본 거였는데, 역시 무리라고 판단. ^^;  한계령부터 올라가서 귀때기청봉 언저리까지만 다녀오는 B팀을 선택했다. 그러기를 잘했지... ㅋ


9월인데도 이날 날씨가 정말 변화무쌍했다. 운해가 자욱해 능선도 안보이다가 햇빛 비치다가, 안개에 휩싸였다가... 점심을 먹을 땐 춥기까지... 





마지막 사진은 한계령 내려오다 마지막 바위에서 보이는 구불구불 옛 도로. 한계령 휴게소 규모가 옛날엔 엄청났던 것 같은데 요번에 보니 아주 작아서 의외였다. ㅎㅎ


대청봉 정상까지 찍고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우린 낙산사에도 다녀왔다. 8월에 다녀온 부산바다가 올해 구경하는 마지막  바다겠거니 생각했는데... 인생은 역시 예측불허다. ^^; 의상대와 홍련암에서 내려다보는 짙푸른 양양 앞바다도 참 아름다웠다. 다만... 산불로 홀라당 타버려 새로 지은 낙산사는 확실히 별로였다. 다행히 화마를 피한 의상대와 홍련암은 그대로인 것이 기뻤으나 그 주변에도 뭘 그리 덕지덕지 새 건물을 지어놓았는지.... 결국 한국의 종교는 하나같이 새 건물 지어 돈벌이 할 궁리에 힘쓰는 게 추세인 듯. 








<안산> 10월6일.

동네 앞산을 우리집에서 올라가면 그냥 계속 거의 숲길인데, 독립문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정상 부근부터 암릉 구간이 좀 있다. 무서워서 혼자선 엄두도 못낼 길이었는데...(사진 왼쪽 귀퉁이에 하얀 철제 난간 있는 길이 바로 등산로. 남들에겐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낭떠러지 길은 내겐 무조건 후덜덜...) 지인들과 안산 자락길 산책에 나선 날 담력훈련 하는 셈 치고 미친척 한번 올라가봤다. '산세만 보면 설악산 못지않다!' 이러면서 그냥 운동화 신고 올라가 질질 미끄러지며 내려왔다. ^^v

이날 날씨도 좋고 시계도 완전 멀리 트여서 한강 너머 관악산, 청계산까지 다 보였는데, 오후 늦게 올라가는 바람에 금방 해가 져서 사진은 많이 못찍었다. 담엔 안산 자락길도 완전 일주해봐야지. 



지난 주에도 도봉산 우이암엘 다녀왔으니, 알량하게나마 이로써 10월에도 이미 등산을 두번이나... ㅋ 

시시각각 변해가는 단풍 색깔 구경하는 묘미로도 10월엔 앞산엘 좀 더 자주 올라가볼 작정이다. 여기다 적어놔야 또 약속을 지킬 것 같아서 하는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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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투덜일기 2014. 3. 16. 17:00

내가 올 들어 조금씩 산책겸 올라가보기 시작한 동네 뒷산은 부르는 산은 엄밀히 집 앞에 있으니 '앞산'이고 버젓이 이름도 두 개나 있다. 안산 또는 무악산. 이름의 유래는 여러번 들었는데 또 홀라당 다 까먹었다. '안산'이라는 말은 흔히 풍수지리에서 쓰는 말이니 그와 관련이 있으려니... 검색해보면 금세 나오겠지만 귀찮아서 패스~.

 

하여간 남들은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부러 '등산'을 하러 오기도 한다는 얘기에 괜한 자극을 받아, 언젠가는 나도 정상에 오를 일이 있겠지 여기며 힘 닿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중간까지만 갔다가(정상까지 998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앞에서) 돌아오기를 두달여. 그러다 어제 전격적으로 욕심을 내 봉수대가 있다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집안에서 볼 땐 햇살이 따사롭고 화창해보였으나 밖에 나가보니 수시로 바람이 쌩쌩. 혹시 추울까 든든하게 입고나갔기에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추워서 10분만에 귀가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산 중턱 팔각정 앞 개울에서 두꺼비 발견!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기운도 없고 살가죽이 쪼글쪼글 느릿느릿 걸어다니고 있었다. 차가운 개울과 황량한 풀숲에서 녀석이 뭘 먹을 게 있으려나... 

숨을 헐떡대며 오르다 보면 후끈 덥다가 또 바람계곡으로 들어서면 춥다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콧물을 훌쩍이며 올라가려니 어디선가 내 뒤에서 홀연히 나타나 쏜살같이 앞으로 차고 나가는 외국인 미녀. ㅠ.ㅠ 내가 입은 오리털 조끼가 무색하게 그녀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허거걱...  도촬이 미안하기도 해서 머뭇거렸지만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저 앞으로... ㅋㅋ

산꼭대기에는 방송 중계용인듯 철탑도 있고, 헬기장도 있고, 조선시대에 평안도부터 남산까지 이어졌다는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었다. 계단 아래쪽 기단부는 오래된 느낌이 나는데 봉수대 돌은 너무 하얗고 새것이라 어쩐지 졸속 복원의 냄새가 풀풀... -_-; 남산에 복원해 놓은 세 개짜리 봉수대랑 모양이 똑같은지 잘 어울리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째뜬 중요한 건 내가 꼭대기에 올랐다는 것. 집에서부터 1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두꺼비 구경에 몇분이나 허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이 하도 여러 갈래이고 여러 동네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아 몇번 익숙해지면 가장 수월한 길, 또는 가장 험난한 길을 골라 선택할 수도 있겠다. 중간중간 얼었던 길이 녹아 진창도 있고 등산화 없이는 꽤나 미끄러울 법한 바위 구간도 있었는데, 음마야, 플랫슈즈에 반바지 입고 남친이랑 손잡고 가뿐하게 올라온 커플도 발견했다. ㅠ.ㅠ

 

나 같은 주민들에겐 동네 뒷산 또는 앞산이고

어떤 이들에겐 등산 스틱까지 찍고 올라가야 하는 서울 근교의 만만한 등산코스이고, 일부 커플들에게는 그냥 데이트 산책 코스라는 얘기. ㅎㅎ

 

 

 왼쪽 사진에서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산이 바로 북한산. 가운데 사진에선 인왕산 능선을 따라 한양 성곽도 보인다. 오른쪽 사진 중앙에 서 있는 게 남산. 서쪽으로는 여의도와 한강도 눈에 들어오는데 역광인데다 미세먼지 탓에 온통 뿌옇게 찍혔다. 등산의 묘미 중 하나가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는 거라고 하던데, 그 잠깐 좋자고 꾸역꾸역 낑낑대며 꼭대기까지 올라가야할 '의미'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정상을 '정복'한다는식으로 말하는 심리도 통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어제는 뭔가 '숙제'를 다 마친 기분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얼어붙은 방죽 1월 모습 얼음 풀리고 봄이 오는 방죽, 어제

게다가 눈 쌓여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 산길부터 조금씩 변해가는 계절의 변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곧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날 봄과 신록이 우거질 여름도 기대중. 누가 산에 가자고 하면 그렇게 싫다고 미쳤냐고 펄쩍 뛰던 내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운동삼아 산엘 오르게 되다니 참... 느낌이 묘하다. 나이가 들면 원래 산이 좋아지는 건지... 어느 산에나 득시글거리는 중장년 등반객들을 보면 그런 것도 같아서 좀 씁쓸.  

 

 

올라갈 땐 대부분 땅바닥만 보며 헉헉대느라 놓쳤는데 내려오다 신기한 나무를 발견했다. 군데군데 동글동글 붙어있는 건 이끼인가? 암튼 솔잎이 뭉쳐진 듯한 이끼무더기 끝에 방울방울 물기가 맺혔다. 뭔가 나무도 이끼도 열심히 봄을 준비하고 있는 느낌.

 

오후들어 점점 밀려든 미세먼지 때문에 기분을 좀 잡치긴 했어도, 약간 팍팍한 느낌의 장단지와 허벅지가 엄청 건강해진 듯한 착각을 안겨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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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길

놀잇감 2013. 6. 27. 00:59

언제부턴가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행인가 싶어진다. <난중일기> 정도면 세계문화 기록유산 등재했다는 소식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새마을운동> 때문에 그 빛이 바랬다. 아무려나 군데 군데 끊어지긴 했지만 서울 성곽도 <한양도성>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중이라고 들었다. 아마 남한산성도 해당 지자체에서 똑같이 준비하고 있을 걸?

 

하기야 뭐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서울 성곽 주변으로 둘레길을 잘 정비해놓아 평평한 일부 구간은 쉬엄쉬엄 산책하기에 딱이라는 말을 얼핏 듣고는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다. 성북동 쪽과 남산 주변이 괜찮다던가... 그냥 벼르고만 있었는데 요번에 반강제로 일부 구간 답사를 다녀왔다. 그것도 북대문인 숙정문 주변으로. ㅠ.ㅠ 완전 등산이두만... 흑... 며칠 지난 아직까지도 뒷다리가 땡긴다.

 

다녀온 코스는 명륜동 와룡공원에서 출발하여, 말바위 안내소(여기서 신분증 확인 필요)를 거쳐 숙정문, 곡장, 청운대, 창의문까지였다. 중간중간 쉬면서 설명을 듣긴 했지만 총 3시간 반쯤 걸렸고 수없이 많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가뜩이나 계단공포증 심한 인간이, 나중엔 다리가 후들거려 맨 마지막 급경사 구간 계단을 내려올 땐 아찔아찔 어지럽기도 해서 한발 한발 옮기며 맨 꼴찌로 내려왔다. 으이구.

 

 

여기가 와룡공원 앞 성곽이다. 저 성벽 너머로는 성북동이 내려다보인다는데, 마을버스 내려서  첫번째 계단 올라가자마자 이미 낙담하여 쉬느라 넘겨다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우리가 올라간 계단길 은 이 구간에서 성북동 쪽에서 올라오는 언덕길과 만난다. 올라가다보니 길이 낯익어 반가웠다. 수방사에 배치됐던 막내동생이 근무하던 곳이었다. ㅋㅋㅋ 성균관대를 가로질러 수동 프라이드를 몰고 급경사 언덕을 올라 면회 갔던 때가 언제인고...

 

어차피 군사지역이라 웬만하면 사진촬영이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대도 헥헥대느라 휴대폰 꺼낼 엄두를 잘 내지 못했을 거다. 이 얼마만의 등산인지! 게다가 한 여름에....

그나마 오전에 비가 내려 기온은 30도 밑이었지만 이날 땀 엄청 뺐다.

 

경비와 신분확인이 삼엄한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면 곧장 약간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산 아래쪽 시내 방향으로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적혀 있음에도 사복입은 군인들이 걸핏하면 다가와 제지를 했다. 어린 군인들이 더위에 고생한다고 생각했다가 놈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나중엔 좀 언짢았다. 무전기로 계속 우리 일행의 동태를 보고하고 보고받는 듯하던데, 대다수 인원들이 몰려오니 엄청 짜증나는 듯, '이 사람들 뭐야'라고 지들끼리 욕하는 거 다 들었다! 흥. 서울시내에서 반팔 등산복에 팔토시까지 차고 맨몸에 무전기만 들고 근무하는 거면 꿀보직 아닌가? -_-;; 물론 중간엔 진짜 군복입고 총까지 들고 움직이는 군인들도 봤지만... (그들도 군복 소매 접은 후 팔토시를 끼었더라. 군인들도 이젠 팔이 새까맣지 않으리란 걸 처음 알았음)

 

계단을 한참 올라가다보니 어느 순간 시야가 툭 트이면서 성북동 일대가 내려다보였다. 서울시 아름다운 조망 장소에 꼽혔다는 것 같더라.

비교적 초입이었고, 아는 건물도 보이길래 얼른 휴대폰으로 한장 찍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큰 기와집이 바로 삼청각이다. 성북동길 지나다 보면 담벼락도 참 길고 장대한데, 건물도 저렇게 컸구나 싶은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할딱할딱 이어지는 계단길. 등산로에 나무데크를 깔아 놓는 이유는 생태계 보존임을 잘 알지만, 난 진짜 계단으로 된 등산로 싫다! 아니 그냥 등산 자체가 싫 다... ㅎㅎ

 

어쨌거나 옛날에 좌우로 풀섶 난 흙길 올라가며 바위도 짚고 나무도 짚고 쉬엄쉬엄 돌아가는 등산로가 더 좋았다. 좁은 계단 등산로에선 앞뒤 사람에 밀려서 좀처럼 속도 조절을 할 수가 없으니 원;;; 숨은 차 죽겠는데, 계속 목동한테 쫓기는 양떼 중 한 마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사진은 서울의 스모그와 저 멀리 남산과 빌딩숲과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기뻐서 찍어보았는데 신장의 열세로 소나무가 너무 많이 나왔다. ㅎㅎ 나중에 청운대였나, 정말로 경복궁을 거의 정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거긴 사진촬영 절대 금지. 저 멀리 태평로부터 광화문을 거쳐 교태전까지 완전히 일직선으로 늘어선 전각이 한눈에 들어와, 낑낑대며 오르락내리락 한 보람이 있다고 약 5초쯤 느꼈다.

 

 

오랜 세월 청와대의 주인들만 만끽했던 북악산 비경 속에 사리잡은 한양의 북대문, 숙정문이다. 옛날부터 있던 건 아니고 70년대 복원했단다. 서울 성곽을 보면 시커멓게 변한 오래된 돌들 위로 갑자기 새하얀 시멘트 돌덩이가 얹혀있는 부분이 많다. 콘크리트로 뚝딱 광화문 짓듯이 성곽도 그 당시 시멘트로 뚝딱 대강 복원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왕 할 거 잘 좀 하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 부분만 흉하다. 그러고는 또 잘했다고 저 현판도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이왕 쓸 거면 구색 맞춰서 오른쪽부터 쓸 것이지. 하기야 광화문도 한글로 떡하니 써붙인 분이니까 뭐;;

 

<한양도성>은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산,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낙산 등성이를 이용해 태조 때 불과 4개월만에 한양도성민과 경기도민을 동원해 쌓았단다. 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서둘러 쌓느라 꽤나 부실공사였던 듯, 금세 허물어져 세종 때 다시 쌓았고, 그것 역시 허물어져 숙종 때 엄청나게 큰 돌을 잘라 또 다시 정비했다. 그래서 남산 구간에 가면 태조때부터 세종 때, 숙종 때, 70년대에 쌓은 돌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도 있다고.

 

놀라운 건 그 당시에도 책임실명제 공사여서, 군데군데 돌에 동원된 백성들의 출신지역(태조와 세종 때)과 군대 소속(숙종 때)이 적혀 있다는 점이다. 해설을 맡은 서울시 담당자의 말로는 그렇기 때문에, 한양도성은 '기록유산'이기도 하다고. 암튼 그렇게 해야 제대로 관리를 할 수 있었겠지만 하이고, 그냥 맨몸으로 걷기에도 힘든 가파른 산등성이에 그 무거운 돌을 지고 올라갔을 조선시대 백성들을 생각하면 어휴... 세종때 보수공사 당시 기록을 보면 사망자만 800명이란다. 부상자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오죽 힘들었으면 달아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어떤 고을에선 수령이 자기네 주민들을 몽땅 데리고 내빼기도 했단다. 농번기를 피하느라 한겨울에만 공사를 했다니, 춥기는 또 얼마나 추웠을까. 

 

숭례문이 불타버리는 바람에 사대문, 사소문 가운데서는 이제 창의문이 가장 오래된(영조 때 고쳐지었다고) 문이라는데 막판에 너무 힘이 들었던 터라 답사 끝난 것만 기뻐서 문은 휙 쳐다보고 말았다. 창의문을 나오면 곧장 청운동, 부암동 입구가 나온다. 답사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랬다. 창의문에서 시작해 숙정문으로 거꾸로 올라갔으면 다들 반죽음이었을 거라고. 어쨌든 수월한 편이었다고 해도 내 다리는 푸들푸들 떨려서 죽을 맛이었다는 점. 몇년 치 등산은 이것으로 또 다했다고 생각했다. ^^;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주변 사유지들도 죄다 개발이나 수리가 불가능해질 텐데 그 넓은 지역의 주민들이 다 동의를 해줄까? 세운상가 허물고 고층빌딩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러면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고 하여 문화재청에서 반대한다고 들었다. 요즘은 문화유산도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더 중시한다나 뭐라나. 서울 성곽이야 구간구간 경관은 뛰어나지만, 어차피 평지 부분은 죄다 끊겨나갔고 그 넓은 지역의 관리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그게 잘하는 짓인지 어쩐지 난 잘 모르겠다. 좀 오래 된 건 무조건 싹 다 밀어버리고 새로 짓고 만들어야 좋아라하는 도심에서 그나마 옛모습을 간직한 성벽이 건재하다는 걸 기뻐하는 걸로 내 입장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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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답사

놀잇감 2013. 1. 22. 01:23

한옥의 역사와 궁궐의 역사, 이론 수업을 두 주일 하고 나니 벌써 궁궐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최초의 조선 궁궐인 경복궁을 시작으로 일단 창덕궁까지. 경복궁은 가뜩이나 관람객 바글거리는 토요일 오후에 시끌시끌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창덕궁은 휴관일인 월요일에 교육생들만 특별 출입을 할 수 있어서 고즈넉하니 좋았지만 온종일 철철 비가 내렸다는 사실이 함정. 다행스럽게 이틀 다 날씨가 별로 안추웠지만, 경복궁은 허허발판이라 칼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역시나 영하였고 창덕궁엔 살얼음이 얼거나 얼어붙은 길이 다시 비에 녹아 미끌미끌 위험천만이었다. 완전무장 후 핫팩을 들고 다녔는데도 발시리고 손시리고 코시려워서 여간 힘이 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을만한 한겨울의 궁궐답사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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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투덜일기 2012. 10. 10. 10:51

 

 

지난 여름 생일에 지우가 선물한 그림.

난 무대체질도 아닌데, 내 평생 외발자전거는 타본 적도 없는데, 그림 속의 나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저글링까지 하고 있다. 운동신경 젬병인 고모를 저런 모습으로 담아준 것이 그저 고맙고, 녀석의 뛰어난 상상력을 신기해하며 줄곧 냉장고에 붙여두고 흐뭇해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요즘 문득 쳐다보며 어린 조카의 혜안(?)이 참 놀랍구나 싶어졌다. 잘 타지도 못하는 외발자전거에 올라 공을 세개나 허공으로 던지고 받느라 아등바등...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언제 넘어질지 위태롭기만 하다. 딱 요즘 내 모습이 아닌가. 이 다음 장면에서 난 분명 저 높은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자빠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거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당분간 아등바등 몸부림은 그만둬야겠다. 철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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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맞이 식겁

삶꾸러미 2012. 10. 4. 09:00

추석 전날, 식탁에서 엄마랑 동생은 밤을 까고 나는 나물을 다듬는 중이었다. 명절은 자기에게도 잔칫날임을 잘 아는 조카네 개 파랑이, 꼬리를 흔들며 여기저기 기웃거려봐도 아직은 먹을 것도 없고 퉁박만 받기 일쑤였다. 자꾸만 다리에 기어올라 아양을 떠는 녀석에게 저리 가라고 이르고는 주방으로 뭘 가지러 갔던가. 우연히 나는 파랑이가 식탁 밑에서 뭔가를 집어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침 개주인인 큰동생 내외는 빠뜨린 물건을 사러 외출 중이었는데, 잠시 뒤 파랑이가 갑자기 컥컥거리기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식탁 밑으로 떨어진 밤껍질을 낼름 주워먹은 듯했다. 개문외한인 나와 막내동생이 보기엔 녀석이 숨을 못쉬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린 조카가 목부분을 어루만지고 입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소용없는 일. 사람이면 뒤에서 껴안고 상복부 마사지라도 한다지만, 개는 그럴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파랑이는 입도 못 벌리고 그릉그릉 캑캑 괴로워했다. 하필 주인도 없는데! 

 

버둥거리는 파랑이를 안고 동생과 나는 다급히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막내동생은 얼마 전 친구 가족들과 놀러갔었는데, 그날따라 아픈 개를 집에 두고 갈 수 없어 함께 데려왔다는 친구네 개가 시름시름 앓다가 새벽에 결국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며 심난해 했다. 입도 못 벌리고 몸부림치던 파랑이는 다행히 차에 타고 가는 도중 입을 벌리고 캑캑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추석연휴라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동물병원은 열려 있었고, 의사에게 파랑이 상태를 이야기하니 그나마 밤껍질이라면 다행이라고 했다. 똥으로 나올 확률이 높은 거라서 외과적인 수술까지는 필요없을 것 같다고.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자면서 석장이나 찍었는데, 밤껍질은 또 엑스레이에 안나오는 이물질이란다. 일단 식도에선 넘어갔으나 이물질에 놀란 위가 약간 뒤틀려 있는 상황이고, 지켜보아야 알 수 있으니 소화를 돕는 주사 2대를 놔주겠다고. 어휴...

 

우린 완전 식겁해서 벌벌 떨었는데 전화로 소식을 전해들은 개주인은 가끔 뭘 잘못 삼켜서 좀 그러다 마는데 뭐하러 병원까지 갔느냐고 천하태평이었다. 우쒸! 우린 진짜로 파랑이 숨넘어가는 줄 알았단 말이다! 명절 앞두고 웬 난리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순간적으로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 쓰고 앉았던 것도 모르고 나 원 참. 원래도 파랑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최대한 불쌍을 짓고 바들바들 떨면서 모두에게 사랑의 손길과 맛있는 것을 갈구하는 놈이다. 해서 바들바들 떠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집에 와서도 약간 몸을 뒤채며 경련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밤껍질이 위와 장의 벽을 긁어대면서 빠져나갈 거라 토할 수도 있으니, 수의사는 문제 생기면 다시 병원에 데려오라고 말했었다. 잔칫날 앞두고 파랑이도 나름 포식의 꿈에 부풀어 있었겠으나, 놀란 위에 인간의 음식이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 요주의 애견인들에게 신신당부를 해두었고, 결국 추석날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나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애완동물은 정말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님이 확실하다. 엄청난 병원비도 그렇고(4만7천원!), 말도 안통하는 애들이 어딘가 모르게 아프면 무서워서 어쩐담.

 

요번 추석엔 노동의 후유증이 어찌나 강렬한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미 몸이 막 늘어지고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바닥난 체력탓 수면부족 탓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아마 본격적인 노동도 하기 전에 파랑이 때문에 식겁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다. 명절 노동의 최소화를 위하여 그나마도 온 친척들이 저녁까지 내리 먹고 버티던 악습을 걷어치우고,  점심 먹고 헤어지기로 결정한 지 수년째. 하도 길이 막혀 15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려 집에 돌아와선 다 저녁 때가 됐거나 말거나 곧장 쓰러져 자버렸는데 열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도 온몸이 결렸다. 머리는 또 왜 지끈지끈 아픈지 좀 서러울만큼 연휴 내내 힘이 들었다. 볕 좋은 가을날씨 즐길 틈도 없이 연휴는 다 가버렸는데, 묵직한 몸은 여전하다. 오늘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 이러면서 기운내려고 용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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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다

투덜일기 2012. 5. 28. 23:30

삼일 내리 붙은 황금연휴 딱 가운뎃날에 사촌동생이 결혼을 했다. 눈에 콩깍지가 덮인 사촌동생 커플이 지들끼리 돌아다니며 잡은 날과 식장에 대해서 벌써부터 친척들은 말이 많았다. 사흘 연휴 딱 한 가운데인 일요일에 날을 잡으면 어쩌라는 거냐! 게다가 일요일 12시라니! 교회 다니는 사람은 어쩌라고? 멀리서 가는 사람들은 대체 몇시에 일어나라는 건지?! 그 동네가 대체 어드메 붙어있는 것이관대 거길 잡은 거냐! 너무 신랑쪽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 거 아니냐! (물론 인륜지대사라는 혼사를 앞두고는 원래도 이런저런 참견과 말이 많은 법이다 ㅋㅋㅋ)

 

어쨌거나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으며 여유롭게 대사를 치러낸 사촌동생은 참으로 어여뻤고, 결혼식도 잘 끝났다. 원래도 집안 결혼식에 다녀오면 엄청 더 피곤한데, 이날은 집에 돌아와 완전 픽 쓰러졌다.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전날밤에 제대로 잠을 못잤다. 굴러다니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 것으로 나를 식겁하게 만들기 선수인 조카녀석이 난데없이 자고 갈줄이야. 게다가 한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식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된통 자빠졌다.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먼저라 벌떡 일어나긴 했는데 ㅠ.ㅠ 심신의 충격이 꽤 컸다. 그러고는 귀가길에 한 차 가득 친척어르신을 태우고 잘 쓰지도 않는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인근 전철역을 찾는데, 우어~~~~ 꼭 5초쯤 느리게 가야할 길을 지나서야 안내를 하더군. 결국 내비게이션 전철역 안내는 무시하고 강을 건너와 내가 빠삭하게 아는 곳에서 넷째 고모를 내려드렸다. 처음부터 내 맘대로 길을 찾았으면 막히지도 않고 더 편했을 텐데! 내비게이션 떠들지, 어르신들 떠들지, 나도 간간이 맞장구 쳐야지... 운전할 때 정신 시끄러우면 음악도 잘 안듣는데 아주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간만에 한복까지 떨쳐입고 큰엄마 노릇을 톡톡히 하신 엄마도, 원피스 떨쳐입고 자빠진 사촌언니라고 사돈댁에 소문날까 무서웠던 나도 집에 오자마자 드러누웠다. 

 

부모 등골이 빠지든 말든 호화롭고 번듯한 결혼식을 선호하는 요즘 풍조 속에서 사촌동생은 퍽 야무지게 부모 도움 전혀 안받고 순전히 자기가 모은 돈으로 소박하게 결혼준비를 했고 예단도 생략했다. 유치원 교사의 박봉으로 결혼자금을 모았다니, 나는 그게 그렇게 기특하고 장할 수가 없는데 일부 어른들은 그게 또 예의가 아니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우 짜증! 친척 예단으로 돌린 이불 같은 건 짐만 되고, 현금봉투로 받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실제로 울 엄만 몇년 전 고모네 집에서 현금으로 받은 예단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예단 없어 섭섭하다는 그 고모를 흉봤다. "자기네도 예단 안했으면서!"라고. +_+ 어휴, 엄니;;) 겉치레가 더 큰 예식 자체도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지만, 가풍이니 예의니 따져가며 한 마디씩 보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진저리가 난다. 결혼식은 사라져야 할 제도라는 심중만 굳어질 뿐이고!

 

친구 하나도 요즘 그놈의 '식' 때문에 연일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올해 학부형이 된 그 친구는 오래 전 '쿨'하게 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남자네 집에서 결혼을 결사반대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둘 다 결혼식에 들일 무모한 비용을 집 얻는 데 더 보태자는 실용적인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부모님 마음이 돌아서면 제대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계획 같은 것도 아예 없었다. 여자라면 꼭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웨딩드레스의 로망? 그딴 거 없는 여자도 있다규! <주목 공포증>이란 게 있다는 걸 요즘에서야 알았지만, 그 옛날부터 그 친구와 나는 지인들 결혼식장 구경 다니며 서로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다. 사람들 수백 명이 동시에 쳐다보는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걸어들어가냐, 신기하다. 저런 것도 끼가 있어야 하는 건가봐... 나와 달리 친구는 독신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외국영화에서 남녀가 평상복 입고 시청 같은데서 혼인서약 하고 양쪽 집안에 전화로 결혼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을 멋지다고 하더니, 현실에서도 그 비슷하게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10년도 넘게 잘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새삼 '그래도' 결혼식은 올려야한다고 친정엄마가 졸라대고 계시다는 것. 교회에서 운영하는 부부수업(?)을 듣고나서 웨딩드레스 입고 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라고, 죽기전 평생 소원이시라고 하루에도 두세번씩 협박과 읍소와 호통을 번갈아하고 계시단다. 부모로서의 마음을 일견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게 원래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집안 대 집안의 거사임을 알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쩌란 말인가. 전화로 징징대는 친구에게 위로랍시고 내가 해준 말은 그나마 친정엄마라 싸울 수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도 안통하고 무서운 시어머니(진짜 무서운 양반이다 ㅎㄷㄷ)가 시키는 게 아니라 얼마나 좋으냐는 거였다. 20주년에 리마인드 웨딩 멋지게 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일단 10년은 시간을 버는 셈이니까;;) 해보라는 조언도 했는데, '그 전에 나 죽는다'며 엄마한테 혼만 났단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뭘 안다고... 

 

푸념 들어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반복되는 상황에 내가 슬슬 짜증을 내고 있다는 걸 친구도 알았챈 모양이다. 며칠째 시도 때도 없이 딩동딩동 날아오던 문자가 잠잠해졌다. 남들은 들로 산으로 바글바글 여행을 떠났다는 황금연휴에 나는 피곤한 심신을 달래느라 일 한자 못하고 비실비실 방바닥을 뒹굴었다. 앞으로 넘어져 무릎에 멍이 들었는데, 왜 엉덩이도 욱신거리는지 원. 정말이지 결혼은 구경하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다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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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투덜일기 2012. 5. 25. 18:39

이웃 주민의 꿈의 미용사 포스팅을 읽기도 했겠다 나도 머리 얘기 잠깐 해야겠다. 전에도 그런 얘기를 쓴 적 있지만 내가 바라는 '꿈의 미용실 & 꿈의 미용사'의 조건은 늘 똑같다.

- 파마나 두피케어, 영양손질 등 값비싼 시술을 강요하지 말 것.

- 호구조사 나온 사람처럼 꼬치꼬지 질문을 던지거나 말을 너무 많이 걸지 말 것.

- 커트 실력이 좋을 것.

- 가격이 적당할 것.

- 소요시간이 짧을 것.

하지만 이런 나의 취향에 똑 떨어지는 꿈의 미용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암튼 나름 적정선에서 신촌 일대의 미용실을 이곳저곳 기웃대다 결국엔 동네 미용실 하나를 뚫었다. 나 정도의 반곱슬이면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파마하러 간 손님을 커트만 해서 보내는 원장을 만나 살짝 감동했던 이 동네 ㅂ미용실에 꽤 다녔으나, 결정적으로 재작년 겨울이었나 그곳 실장이 내 머리를 완전히 쥐뜯어먹은 것마냥 잘라놓은 이후 두번다시 발길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찾아낸 곳이 두 정거장 정도 걸어가야 하는 ㄲ미용실. 시험삼아 처음 미용실에 딱 들어갔을 때 나는 미용사의 머리모양으로 신뢰도를 일차로 판단한다. '헤어디자이너'라는 사람이 자리 머리를 촌스럽거나 엉망으로 하고 있다면 말이 되냐고! 꽤 세련된 머리모양을 한 그 미용사는 비교적 빠른 손놀림으로 최대한 내 바람에 맞추어 머리를 잘라주었고, 나는 내심 퍽 만족했다.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해!

 

그러나 지난 3월 머리를 자르러 가보니 아리땁고 적당히 친절했던 그 미용사가 보이질 않았고, 그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미용사가 새로 와 있었다. 머리 자르러 왔다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미용덮개를 씌우더니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두피가 엄청 약한가보다고, 각질 관리도 엉망이고 (머리로 열이 올라오는 체질이라나 뭐라나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에 노상 뭐가 많이 난지 오래;;) 머리카락도 가늘고 탈모증세도 있다고 완전 난리... ㅠ.ㅠ 커트하는 손길이 매우 재빠르긴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보니 재빠른 게 아니라 성의없고 덜렁거린 탓인지 뒷덜미 머리칼 한 줌이 길게 그대로 남아 있어 내가 잘라야 했고, 들쭉날쭉 앞머리는 사람들이 왜 머리를 자르다 말았느냐고, 혹시 니가 잘랐냐고 묻기에 이르렀다(내가 앞머리를 얼마나 잘 자르는데!). 아우 정말! 암튼 그 미용사는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대머리라도 된다는 듯이 나를 구박했고, 시간이 없고 바빠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다고 웅얼거리던 나를 결국 굴복시키고 말았다. 그나마 20분이면 끝나고 가격도 저렴한 두피케어를 받기로 한 것. 시간도 2시간쯤 걸리고 가격도 두배로 뛰는 영양두피케어를 일주일에 한번씩 세번은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극구 주장하는 미용사 앞에서 나는 머리감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하고 게으른 여자로 전락했다. ㅠ.ㅠ

 

하여간에 커트가 끝나자마자 뭔가 두어 종류의 액체를 면봉으로 두피에 발라 온 머리통이 화끈거리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그 미용사는 뿌듯해했고, 다음번 머리 자르러 올 땐 꼭 영양두피케어를 받으라고 충고했다. 과거엔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마음 먹으면 원래 그날로 잘라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으나, 마음에 꼭드는 미용실을 잃은 이후 내게 머리 자르기는 이제 벼르고 별러 마뜩찮게 실천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 마당에 또 그 막무가내 아줌마 미용사를 대면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지난번 그 간단한 두피관리를 받고도 일주일 넘게 두피가 따갑고 가렵고 괴로워 다시는 그런 짓거리 안 할 생각이건만, 내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바로 내일모레 사촌동생 결혼식도 있고, 가뜩이나 성의없이 들쭉날쭉 자른 머리를 대책없이 두달 가까이 기른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삼손 같다'고 할 지경이라 어제 드디어 그 미용실을 찾았다. 아무리 강권해도 딱 머리만 자르고 나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는데, 우왕~ 그 미용사가 없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새 미용사 둘이 다 새로운 인물로 대체됐고 원장은 아예 부재중. 아싸! 나는 새로운 미용사들의 실력도 모르는 채 그냥 쾌재를 불렀다. 다듬기만 할 건데 뭐 망쳐봤자지.

 

새로운 미용사도 역시나 롤스트레이트 파마기가 다 풀려 머리칼에 히마리가 없다며 은근히 파마를 종용하는 기세였다. 허나 이미 나는 '이 정도의 반곱슬머리면 롤스트레이트 파마가 필요없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놓은 터, 그 정도 공격은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어딜 가나 머리를 자를 때마다 반복되는 '약한 두피' 타령은 어김없이 이어졌는데, 그 뒷 이야기가 의외였다. 두피가 약해서 여기저기 올라온 뾰루지를 내가 긁어서 상처를 내놓았다는 것! 나는 지난번에 두피케어를 받고 나서 일주일 넘게 따갑고 가려운 증상에 힘들었다고 얘기했더니, 이런 상태에선 두피케어를 할 게 아니라 두피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란다. 지난번 미용사는 뭐냐! 각질관리라면서 면봉으로 아플 만큼 엄청 두피를 문질러대두만. 그래서 그렇게 따갑다가 나중엔 가려웠구나야. 암튼 이번 미용사는 나더러 절대 뾰루지에 손대지 말고(내가 긁은 적 없다고 했더니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긁었을 것이라고;;;) 머리 감기 전에 브러시 빗으로 두들겨 혈액순환을 시켜주라고, 불가능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게다가 왼쪽 머리만 심히 바깥으로 뻗치는 이유는 내가 왼쪽 머리만 무의식적으로 자꾸 만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헐... 맞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책 읽을 때라든지 뭔가 생각할 때 왼손으로 머리칼을 비비 꼬는 게 내 버릇이다. 해서 과거 자율학습 시간 선생님한테 '이잡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드라이를 해주며, 아니 이렇게 드라이가 잘 먹는 머리를 왜 손질 안하고 다니느냐고 또 한마디 했다. 파마 굳이 안하셔도 되겠네요, 라면서. ㅡ.,ㅡ;;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도 당분간 두피케어와 파마를 강권하는 일은 없겠군. 다시 양심적인 미용사를 만난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자면서 무의식적으로 긁는 머리를 어찌 중단할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또 반전. 오늘 종일 '두피에 난 뾰루지'와 왼쪽 머리칼에 좀 신경을 쓰며 있어보았더니, 머릿속 상처는 내가 자다 긁은 게 아니고 깬 상태에서 긁어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집에 있을 땐 앞머리도 신경쓰여서 핀으로 질끈 올려꽂고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손이 자꾸 머리로 올라가 여기저기 쑤시며 뾰루지 부분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예리한 전문가의 관찰력. ㅠ.ㅠ 빌어먹을 이놈의 손버릇, 이참에 좀 고쳐야할 터인데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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