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길

놀잇감 2013. 6. 27. 00:59

언제부턴가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행인가 싶어진다. <난중일기> 정도면 세계문화 기록유산 등재했다는 소식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새마을운동> 때문에 그 빛이 바랬다. 아무려나 군데 군데 끊어지긴 했지만 서울 성곽도 <한양도성>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중이라고 들었다. 아마 남한산성도 해당 지자체에서 똑같이 준비하고 있을 걸?

 

하기야 뭐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서울 성곽 주변으로 둘레길을 잘 정비해놓아 평평한 일부 구간은 쉬엄쉬엄 산책하기에 딱이라는 말을 얼핏 듣고는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다. 성북동 쪽과 남산 주변이 괜찮다던가... 그냥 벼르고만 있었는데 요번에 반강제로 일부 구간 답사를 다녀왔다. 그것도 북대문인 숙정문 주변으로. ㅠ.ㅠ 완전 등산이두만... 흑... 며칠 지난 아직까지도 뒷다리가 땡긴다.

 

다녀온 코스는 명륜동 와룡공원에서 출발하여, 말바위 안내소(여기서 신분증 확인 필요)를 거쳐 숙정문, 곡장, 청운대, 창의문까지였다. 중간중간 쉬면서 설명을 듣긴 했지만 총 3시간 반쯤 걸렸고 수없이 많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가뜩이나 계단공포증 심한 인간이, 나중엔 다리가 후들거려 맨 마지막 급경사 구간 계단을 내려올 땐 아찔아찔 어지럽기도 해서 한발 한발 옮기며 맨 꼴찌로 내려왔다. 으이구.

 

 

여기가 와룡공원 앞 성곽이다. 저 성벽 너머로는 성북동이 내려다보인다는데, 마을버스 내려서  첫번째 계단 올라가자마자 이미 낙담하여 쉬느라 넘겨다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우리가 올라간 계단길 은 이 구간에서 성북동 쪽에서 올라오는 언덕길과 만난다. 올라가다보니 길이 낯익어 반가웠다. 수방사에 배치됐던 막내동생이 근무하던 곳이었다. ㅋㅋㅋ 성균관대를 가로질러 수동 프라이드를 몰고 급경사 언덕을 올라 면회 갔던 때가 언제인고...

 

어차피 군사지역이라 웬만하면 사진촬영이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대도 헥헥대느라 휴대폰 꺼낼 엄두를 잘 내지 못했을 거다. 이 얼마만의 등산인지! 게다가 한 여름에....

그나마 오전에 비가 내려 기온은 30도 밑이었지만 이날 땀 엄청 뺐다.

 

경비와 신분확인이 삼엄한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면 곧장 약간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산 아래쪽 시내 방향으로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적혀 있음에도 사복입은 군인들이 걸핏하면 다가와 제지를 했다. 어린 군인들이 더위에 고생한다고 생각했다가 놈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나중엔 좀 언짢았다. 무전기로 계속 우리 일행의 동태를 보고하고 보고받는 듯하던데, 대다수 인원들이 몰려오니 엄청 짜증나는 듯, '이 사람들 뭐야'라고 지들끼리 욕하는 거 다 들었다! 흥. 서울시내에서 반팔 등산복에 팔토시까지 차고 맨몸에 무전기만 들고 근무하는 거면 꿀보직 아닌가? -_-;; 물론 중간엔 진짜 군복입고 총까지 들고 움직이는 군인들도 봤지만... (그들도 군복 소매 접은 후 팔토시를 끼었더라. 군인들도 이젠 팔이 새까맣지 않으리란 걸 처음 알았음)

 

계단을 한참 올라가다보니 어느 순간 시야가 툭 트이면서 성북동 일대가 내려다보였다. 서울시 아름다운 조망 장소에 꼽혔다는 것 같더라.

비교적 초입이었고, 아는 건물도 보이길래 얼른 휴대폰으로 한장 찍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큰 기와집이 바로 삼청각이다. 성북동길 지나다 보면 담벼락도 참 길고 장대한데, 건물도 저렇게 컸구나 싶은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할딱할딱 이어지는 계단길. 등산로에 나무데크를 깔아 놓는 이유는 생태계 보존임을 잘 알지만, 난 진짜 계단으로 된 등산로 싫다! 아니 그냥 등산 자체가 싫 다... ㅎㅎ

 

어쨌거나 옛날에 좌우로 풀섶 난 흙길 올라가며 바위도 짚고 나무도 짚고 쉬엄쉬엄 돌아가는 등산로가 더 좋았다. 좁은 계단 등산로에선 앞뒤 사람에 밀려서 좀처럼 속도 조절을 할 수가 없으니 원;;; 숨은 차 죽겠는데, 계속 목동한테 쫓기는 양떼 중 한 마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사진은 서울의 스모그와 저 멀리 남산과 빌딩숲과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기뻐서 찍어보았는데 신장의 열세로 소나무가 너무 많이 나왔다. ㅎㅎ 나중에 청운대였나, 정말로 경복궁을 거의 정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거긴 사진촬영 절대 금지. 저 멀리 태평로부터 광화문을 거쳐 교태전까지 완전히 일직선으로 늘어선 전각이 한눈에 들어와, 낑낑대며 오르락내리락 한 보람이 있다고 약 5초쯤 느꼈다.

 

 

오랜 세월 청와대의 주인들만 만끽했던 북악산 비경 속에 사리잡은 한양의 북대문, 숙정문이다. 옛날부터 있던 건 아니고 70년대 복원했단다. 서울 성곽을 보면 시커멓게 변한 오래된 돌들 위로 갑자기 새하얀 시멘트 돌덩이가 얹혀있는 부분이 많다. 콘크리트로 뚝딱 광화문 짓듯이 성곽도 그 당시 시멘트로 뚝딱 대강 복원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왕 할 거 잘 좀 하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 부분만 흉하다. 그러고는 또 잘했다고 저 현판도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이왕 쓸 거면 구색 맞춰서 오른쪽부터 쓸 것이지. 하기야 광화문도 한글로 떡하니 써붙인 분이니까 뭐;;

 

<한양도성>은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산,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낙산 등성이를 이용해 태조 때 불과 4개월만에 한양도성민과 경기도민을 동원해 쌓았단다. 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서둘러 쌓느라 꽤나 부실공사였던 듯, 금세 허물어져 세종 때 다시 쌓았고, 그것 역시 허물어져 숙종 때 엄청나게 큰 돌을 잘라 또 다시 정비했다. 그래서 남산 구간에 가면 태조때부터 세종 때, 숙종 때, 70년대에 쌓은 돌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도 있다고.

 

놀라운 건 그 당시에도 책임실명제 공사여서, 군데군데 돌에 동원된 백성들의 출신지역(태조와 세종 때)과 군대 소속(숙종 때)이 적혀 있다는 점이다. 해설을 맡은 서울시 담당자의 말로는 그렇기 때문에, 한양도성은 '기록유산'이기도 하다고. 암튼 그렇게 해야 제대로 관리를 할 수 있었겠지만 하이고, 그냥 맨몸으로 걷기에도 힘든 가파른 산등성이에 그 무거운 돌을 지고 올라갔을 조선시대 백성들을 생각하면 어휴... 세종때 보수공사 당시 기록을 보면 사망자만 800명이란다. 부상자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오죽 힘들었으면 달아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어떤 고을에선 수령이 자기네 주민들을 몽땅 데리고 내빼기도 했단다. 농번기를 피하느라 한겨울에만 공사를 했다니, 춥기는 또 얼마나 추웠을까. 

 

숭례문이 불타버리는 바람에 사대문, 사소문 가운데서는 이제 창의문이 가장 오래된(영조 때 고쳐지었다고) 문이라는데 막판에 너무 힘이 들었던 터라 답사 끝난 것만 기뻐서 문은 휙 쳐다보고 말았다. 창의문을 나오면 곧장 청운동, 부암동 입구가 나온다. 답사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랬다. 창의문에서 시작해 숙정문으로 거꾸로 올라갔으면 다들 반죽음이었을 거라고. 어쨌든 수월한 편이었다고 해도 내 다리는 푸들푸들 떨려서 죽을 맛이었다는 점. 몇년 치 등산은 이것으로 또 다했다고 생각했다. ^^;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주변 사유지들도 죄다 개발이나 수리가 불가능해질 텐데 그 넓은 지역의 주민들이 다 동의를 해줄까? 세운상가 허물고 고층빌딩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러면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고 하여 문화재청에서 반대한다고 들었다. 요즘은 문화유산도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더 중시한다나 뭐라나. 서울 성곽이야 구간구간 경관은 뛰어나지만, 어차피 평지 부분은 죄다 끊겨나갔고 그 넓은 지역의 관리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그게 잘하는 짓인지 어쩐지 난 잘 모르겠다. 좀 오래 된 건 무조건 싹 다 밀어버리고 새로 짓고 만들어야 좋아라하는 도심에서 그나마 옛모습을 간직한 성벽이 건재하다는 걸 기뻐하는 걸로 내 입장은 끝.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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