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도 2장밖에 안 남았고, 날씨가 하루하루 추워지는 걸 보니... 올해도 후딱 흘러갈 것 같다. 연말이 되면 괜한 조바심에 뭔가 기록을 남겨야할 것 같지만 또 워낙 게을러서 올해는 뭘 하고 뭘 보고 어딜 다녔는지 죄다 아득하다. 

그래도 기억에 또렷이 남은 공연이 있으니, 적어두자.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 7월이었던가 8월이었던가 아무 정보도 모르고 있다가 벨로가 스팅 내한 예정되었다고 해서 후다닥 예매 오픈일에 무작정 당일권 예매를 했다. 과거 스팅공연을 함께 다녔던 일행을 떠올리면 석장을 사야겠으나, 요샌 관계가 좀 서먹해진 고로 2장만.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흘러 드디어 10월 5일. 하필이면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정치적 세싸움을 벌이는 중이었고 설상가상 올림픽공원 주변 여러 경기장에선 전국체전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려했으나 담요에다 돗자리에다 소소한 먹거리에다 따뜻한 차와 물이 든 보온병에다가 짐도 많았고, 공연 끝나고 난 시각에 일행이 파주까지 가는 일이 요원하여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다행히 꽉찬 공원 주차장을 한바퀴 돌고 났을 무렵 한 대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신나게 주차완료. 오후 4시쯤 올림픽공원 잔디마당 도착했다. 둥두르둥둥 울리는 음악 소리에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록페스티벌 분위기 이 얼마만이냐!

​잔디마당을 한바퀴 두른 담벼락에서 공연포스터 발견! ㅎㅎㅎㅎ 신난다.

입장권을 손목에 차는 팔찌와 바꾼 뒤 입장하니 루카스 그레이엄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한가롭게 공연보는 분위기... 좋다좋다. 신난다. 어깨춤이 괜히 들썩들썩 났다.

5일 출연진을 대충 살피고 유튜브에서 한두곡 골라듣기도 했지만 그저 심드렁했었는데 현장에서 들으니 역시 오.. 노래 좋다. 생김새도 귀엽잖아! 갑자기 확 옷을 벗어 드러낸 상반신은 귀욤귀욤 근육질. ^____^​

​체력딸려서 록페스티벌이든 스탠딩공연은 못다닌다고 선언했지만, 또 막상 이런 현장에 나가보면 없던 체력과 에너지가 막 샘솟는 것 같다. 우리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한두 자리 건너편 깔개에선 반백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중년남녀 관객들이 보였다. 뭔가 덩달아 안심되는 분위기? 젊음의 현장(?)에서 나도 모르게 이놈의 연령주의에 함몰되어 괜히 위축되는 비굴한 태도 좀 버려야할 텐데, 그게 잘 안된다. 남들도 우리 보며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쳇...

이런데 왔으면 치맥은 필수지... 손목에 찬 성인인증 팔찌와 출입증 인증샷도 찍어주고.. ㅋㅋ

루카스 그레이엄에 이어진 무대는 아일랜드 밴드 코다라인. 나로선 듣보잡이었지만 작년엔가 내한공연도 했대고, 드디어 돗자리를 벗어나 스탠딩 구역으로 들어가보니 사운드도 좋고 음성도 좋고 팬들도 어마어마했다. 다들 노래 따라부르는데 우린 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고. ㅠ.ㅠ 에고 미안해라. 째뜬 공연음향이 돗자리에서 듣는 거랑은 천지차이라서 이전 공연도 들어와서 들어볼 걸 후회가 됐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스팅...

스팅 내한공연을 간다고 하면 비아냥거리는 누군가는 맨날 옛날 노래만 재탕할 뿐 최근 노래는 넘 후져서 들어줄 수가 없다는 말도 하지만 흥! My Songs로 세계 투어중인 연주는 아는 노래라도 느낌이 또 달랐다. 나 역시 또 앨범을 살까말까 망설였었는데 공연 들어보고 CD 사기로! 밴드 공연에 어울리게 편곡한 노래들이 새삼 정겹고 좋더라는.​

2년만인가 3년만인가... 다시 본 스팅은 여전히 변함없이 날렵하고 우아하고 멋졌다. 이 아저씨는 대체 목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걸까. 함께 공연온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는 확 늙어버린 느낌이던데.. 그래서 요번 공연에서도 도미닉 밀러의 아들이 더 멋진 활약을 보이는 것 같던데 참 나... 랩을 곁들인 편곡도 신나는 코러스도 다 좋았다. 에효... 행복한 한숨. 또 언제 스팅을 보게 될까? 야멸차게 앵콜 없이 90분 공연이 끝나고 쌩 돌아선 스팅을 아쉬워서 몇번 더 불러보다 우리도 공연장을 나왔다. 자정을 향해 달려가며 차에서도 계속 스팅 노래들을 들으며 행복한 마무리.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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