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하다

투덜일기 2015. 8. 11. 23:24

다른 곳도 아니고 교단에서 지속적으로, 조직적으로 벌어진 성추행 관련 뉴스는 경악을 금하지 못하겠으나 돌아보면 이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어른 남자들의 성희롱과 성추행은 그야말로 고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병폐였다. 그 현실은 지금도 변하질 않았고 학교든 직장이든 그 어느 조직에서든 성희롱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나간 태도로 추한 행동과 언어생활을 일삼는 이들이 많다. 


언젠가 <학교 때 이런 선생 꼭 있었다>는 주제로 옛날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다들 열변을 토했던 건 미친개, 변태 따위의 별명으로 불리던 기막힌 남선생들의 존재가 학교마다 있었기 때문이었다. 체벌이랍시고 여중생, 여고생들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질 않나, 걸핏하면 여학생들 귓불을 만지고, 팔뚝 안쪽 살을 꼬집고, 등뒤에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겨 탁 고무줄을 튕기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와락 껴안고... (다 우리 학교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여러차례 당한 일이다) 


그들이 '선생님'이라는 엄청난 권력의 소유자들이었기에 학생인 우린 그저 투덜투덜 뒤에서 욕이나 해댔을 뿐, 가끔 교련선생이나 여자 사회선생한테 고민상담을 하고 좀 말려달라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사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가재는 게편, 여선생들은 니들이 행동을 잘하라고 오히려 우리 탓을 했던 것 같다. 니들이 자꾸 치마 짧게 입고 입술에 번쩍거리는거 칠하니깐 그렇잖아! 라면서.. +_+ 


그 옛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체로 회식이 죽도록 싫었던 이유는 1차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2차로 꼭 나이트클럽엘 가서는 노땅 상사들과 '부르스'라고 하는 춤을 춰야한다는 사실이었다. 빠른 음악이 끝나고 느린 음악의 반주가 시작되면 여직원들은 눈치빠르게 '튕기듯' 다들 화장실로 도망치기 바빴지만, 그래도 몇번은 어쩔 수 없이 놈들에게 붙들렸었다. 춤추는 게 싫어서 테이블에 붙박이하는 여직원들도 '부르스 타임'엔 손목을 잡혀 질질 끌려나가기도 했고...으으으... 음흉한 인간들. 


90년대 초반임에도 회식 자리에 일부러 여직원들을 사이사이 앉히고 술시중 들게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그러면서. 쌈닭이었던 나도 기껏 반항한다는 게 아버지가 집밖에 나가서 절대 술 따르지 말라셨는데요... 라고 좀 빼보거나, 술 따르면서 확 엎지른다거나 해서 싫은 티를 내는 정도였다. 나중엔 그래 많이 많이 처먹어라, 그러면서 별 말 없이 따라주기도 했다. 치기가 극에 달했던 20대 후반 한동안은 취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말하고 욕해대는 걸 나의 술주정으로 삼은 적도 있었다. 물론 인간적으로 괜찮은 상사나 동료들도 있었고, 여직원들을 보호해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가끔 기분 좋게 마시다가  어느 정도 다들 이성을 잃고 추태를 부리기 시작하면 막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 같이 개가 되주마.. 야! 김부장! 너 재수없어!...


술자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웬만하면 다음날 맨정신에 다시 거론하지 않는 너그러운 음주문화(?) 덕분에 상사에게 술주정했다는 이유로 내가 짤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취했다는 이유로 온갖 실수를 다 용서해주고 심지어 범죄까지도 심신미약상태라며 처벌을 경감해주는 사회적 용인이 더 큰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성희롱, 성추행, 음주운전을 비롯해서 술에 취해서 한 실수는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취중실수는 용서해주는 사회적 관용 때문인지, 그걸 빌미로 맨정신엔 멀쩡 얌전했다가도 술만 취하면 이른바 '개'로 변하는 남자들도 많았다. 회사 동료들 중에도 더러 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요주의 인물은 '기자'였던 친구 남편의 친구. 평소엔 말도 없고 조용히 구석에 짱박혀 있는 사람인데 술만 좀 들어갔다 싶으면 성격이 활발해지면서, 여자 옆으로 자리를 옮겨선 자꾸만 몸을 만지는 나쁜 손버릇이 있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처음 어깨나 팔을 스쳤을땐 어라 실수인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대번에 면박을 주지도 못하고 참게 되는 것. 친구는 우리 일행 중 한 사람과 그 남자를 엮어주려고 자꾸만 우리 모임 있을 때 남편과 그 남자를 동석시키곤 했는데, 막상 친구는 그 남자 바로 옆에 앉은 적이 없으니 놈의 손버릇을 알 리가 없었다. 나와 지인들은 한동안 예의를 지키려고 다들 한두번씩 팔이나 어깨를 잡히는 민망한 일을 겪고도 그 자리에서 제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계속 참을 수는 없는 법. 일단 그 남자와 괜히 동석하는 자리가 싫다고 친구에게 주의를 주고는 못된 술버릇을 일제히 성토했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후배는 심지어 화장실 앞에서 허리를 잡히기도 했다고. 이 개자식을 정말!! 


속으로 벼르던 우리는 그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도 손버릇을 지적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마침 신촌으로 마눌 데리러 온 친구 따라 쫄레쫄레 나타난 그 인간에게 집중포화를 날렸다. 본인이 그런 나쁜 술버릇이 있는 걸 아느냐, 당신 한마디로 말해서 변태다, 계속 그러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다... 모든 여자들을 접대부 취급하는 거냐 뭐냐... 그 남자가 뭐라고 변명을 했던 것도 같은데 암튼... 그 인간은 두번다시 우리 모임에 불청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듣자하니 신문사에서도 성추행으로 문제가 되어 징계를 받았다던가, 얼마 안 돼 회사에서 짤렸다고 들었다. 그런 이상한 인간을 우리와 엮어주려 했던 친구와도 어쩐히 사이가 멀어져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되었다. 


조직생활을 관두면서 20년 가까이 직접적인 성희롱 성추행 문제로 눈쌀을 찌푸릴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동안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과거엔 대체로 용인된다고 (남자들만) 믿었던 폭력적인 언어와 성차별 논리가 확실한 문제거리라고 자꾸 대두되고 있으니 남자들도 좀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멀었다. 갑과 을, 권력을 쥔 자와 휘둘리는 자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패배주의에 젖은 못난 남자들의 비뚤어진 생각이 건설적으로 변화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연배가 높다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예의상 대우를 잘 해주다보면 꼭 선을 넘는 추한 남자들이 있다. 물론 성희롱, 성추행은 남자들만 하는 게 아님을 몸소 보여주시는 추한 여자들도 있다. 아무데서나 음담패설 꺼내고 맞받아치는 걸 대체 왜 인기비결 입담과 유머라고 생각하는지??!! 남편이랑 베갯머리에서나 할 대화라든지 아줌마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주책스럽게 떠들어대는 여자어른들을 보면 어휴... 그치만 주로 심하게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일은 오십대 이상 아저씨들의 추태다. 요샌 말도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지들끼리 한탄하면서도 워낙 성희롱 언어와 행동이 몸에 밴 탓에 과연 어디까지 용납되고 안되는지 계속 실험을 해대는 것도 같고... 남자든 여자든 듣는 사람이 민망하고 기분 나쁘면 무조건 성희롱이라고 아무리 가르치고 짜증을 내도 그들은 안 변한다. 이번 성추행 교사 사건에서 보듯이 끼리끼리 덮어주고 눈감아 주고 무마해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는 거다. 공공연하게 패가망신을 당하게 하면 모를까...


놀랍게도 자원봉사로 만난 사람들 중에도, 등산 모임에서 스친 사람들 중에도 내 선에서 용납 안되는 추태를 부리는 사람들이 포착되었다. 티나게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하고 우회로로도 경고를 몇번 날렸는데 약간 조심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아니고, 과연 내가 이러면서까지 그런 인간들을 계속 보아야하는 건가 한심스럽다. 삽십대 같았으면 확 상을 엎어버렸을텐데... 나도 성질 다 죽었구나 싶은 자괴감도 좀 들고. 그런 인간들은 피하는 게 상책인데... 연줄연줄 뭐가 많아져서 확 짤라버릴 수도 없고 우쒸... 암튼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서로 껄끄러워지더라도 싸워야지. 가만 있으면 그게 옳은 줄 아는 인간들, 그냥 둘 순 없다. 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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